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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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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3일 07시 01분 등록

1. 마키아벨리와 조조

엉뚱하게도 조조(曹操)와 마키아벨리의 만남을 생각해 본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조만큼 마키아벨리가 말한 ‘군주’의 모습과 닮아 있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가장과 기만의 명수이며 명분보다는 실리를 취하고 인간의 본분 보다는 본성에 충실하게 행동했지만, 누구보다도 깊은 신뢰를 받고 있었고 삼국 중 가장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가장 안정된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있던 참모들(정욱, 곽가, 가후)의 모습 또한 마키아벨리를 닮아 있다. 군주론은 난세에 어울리는 이론이고 마키아벨리 역시 난세에서 빛을 봤어야 할 인물이었다.


2. 내안에서 재창조된 생각들

+
나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나는 졸업을 하고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키아벨리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그 때는 내가 만난 사람이 마키아벨리인 줄도 몰랐고 알았다 하더라도 그리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찾지 못했던 그 시절이 떠올라 허망하고 허망하다. 귀자가 부럽다.

++
지난 4월, ‘코리아니티 경영’에서 나오는 ‘군주와 경영자’의 대구(對句)를 보며 군주론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리 되었다. 마키아벨리가 이미 간파해버린 인간의 여러 가지 얄팍한 속성은 대부분 맞는 부분이었다. 덕과 도리라는 지배논리에 눌려 양지로 나돌아다니지는 못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 뒤의 그림자처럼 인간과 함께 해온 부분이다. 그러한 부분을 군주의 할 바에 접목시킨 것이 마키아벨리고 그것을 다시 경영에 선 뵌 것이 코리아니티 경영에 나오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점이 마땅찮다. 결국 군주론에 대입된 경영은 너무나 인간적이기에 비인간적일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 것으로 되어 버렸기에 나는 불편하다. 잘 가꿔진 외양 덕에 눈치를 못 채게 되겠지만, 어쨌거나 나의 직장은 가장과 위선이 지켜주는 곳이 되어 버렸다. 경영자의 생존의지와 전의를 불사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론이 군주론이지만 동시에 그를 긴장과 위협으로 가득 찬 야생으로 내모는 것 역시 군주론이다.

윗분들의 경영이란 충분히 이러하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어쩌면 그들이 야생에서 버텨주기에 나 같은 사람이 천막 안에서 이상을 꿈꿀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혹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살이 찢겨서 드러난 뼛조각을 쳐다 보는 것처럼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영혼을 구원하려는 사람은 정치에 뛰어들어서도 안되고 경영에 뛰어들어서도 안된다.


3. 내가 저자라면

+
이 책의 해제는 아주 훌륭한 보너스이다. 군주론의 본문은 사실 많이 보편화되어 알려진 부분이라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읽었지만, 이 책이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역자가 쓴 해제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번역서가 제대로 된 평을 받지 못한다면 둘 중 하나이다. 하나는 전공자가 유창하지 않은 외국어 실력으로 번역한 나머지 글을 맛깔스럽게 살려내지 못한 것인데 이것은 내용이 형식을 갖추지 못하여 거친(野)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어가 능란한 비전공자가 번역을 충실히 하여 문장은 매끄러우나 내용이 받쳐주지 못한 경우로서 이는 형식이 지나친 것(史)이다. 하지만 이 책의 역자는 마키아벨리 뿐만 아니라 서양의 정치외교사에 해박하며 이를 바탕으로 본인이 이해한 바를 비교적 쉽고 정확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
이 책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을 펼쳐 보이고 싶으나 현장을 갖고 있지 못할 때, 이러한 형식의 헌정서를 쓰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비록 마키아벨리 자신에게는 실패한 헌정서가 되고 말았지만 시도는 훌륭했다. 이것을 빌려 올 수 있을 것이다.


4. 나에게 들어온 글들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부모님의 나이는 알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다.

<19>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입혀야 한다.

<22>
질병의 초기에는 치료하기는 쉬우나 진단하기가 어려운 데에 반해 초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진단하기는 쉬우나 치료하기는 어려워진다. 국가를 통치하는 일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23>
시간은 모든 것을 몰고 오며, 해악은 물론 이득을, 이득은 물론 해악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41>
나라를 얻기 위해서 겪는 시련은 부분적으로 그들이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새로운 제도와 법률을 도입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형태의 정부 수립을 주도하는 행위가 매우 어렵고 위험하며,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얻던 모든 사람들이 혁신적 인물에게 반대하는 한편,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얻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지근한 지지만 받는 이유는 잠재적 수혜자들이 한편으로 과거의 법 제도를 전횡하던 적들을 두려워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회의적인 속성상 자신들의 눈으로 확고한 결과를 직접 보기 전에는 새로운 제도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공격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온 힘을 다하여 공격하는 데에 반해서, 그 지지자들은 반신반의하며 행동하는 데에 그친다. 따라서 혁신자와 그 지지자는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마련이다.

<57>
체사레의 대 실수 : 당신이 해를 입힌 적이 있는 자들을 신뢰하지 말라. 새로운 은혜를 베품으로써 과거의 피해를 잊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 기만에 빠지는 것이다.

<65>
따라서 정복자는 국가권력을 탈취한 후에 그가 행할 필요가 있는 모든 가해행위에 관해서 결정해야 하며, 모든 가해행위를 일거에 저질러서 매일 되풀이할 필요가 없도록 조처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가해 행위는 모두 한꺼번에 저질러야 하며, 그래야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적게 야기한다. 반면에 시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115>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신민들을 결속시키고 충성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평판을 받는 것을 걱정해서는 안된다.
그는 적절한 신중함과 인간애를 가지고 행동해야 하며,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해서 경솔하게 처신하거나 의심이 너무 많아 주위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117>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는 것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이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 자를 팽개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항상 효과적이다.

<118>
현명한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비록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미움을 받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그가 인민들의 재산과 부녀자에게 손을 대는 일을 삼가면 항상 성취할 수 있다.

<163>
인간이란 너무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활동에 만족하고 자기 기만에 쉽게 빠지기 때문에, 아첨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란 지극히 어렵기 마련이다.

<167>
당신 자신을 아첨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당신이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당신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에 대한 존경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다른 방도를 따르는데, 사려 깊은 사람을 선발하여 그들에게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그것도 당신이 요청할 때만 하는 것이지 아무 때나 허용해서는 안된다.

<166>
인간이란 어떤 필연에 의해서 선한 행동을 강요 받지 않는 한, 당신에게 악행을 저지른다.

<175>
나는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좋다고 분명히 생각한다. 왜냐하면 운명의 신은 여신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자를 손아귀에 넣고자 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계산적인 사람보다는 과단성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을 느낀다는 점은 명백하다. 운명은 여신이므로 그녀는 항상 젊은 사람들에게 이끌린다. 왜냐하면 젊은 사람들은 덜 신중하고, 보다 공격적이며, 그녀를 더욱 대담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188>
우리가 읽은 것을 기록해 놓지 않으면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테가 말했다.

<194>
아주 일반적인 의미에서라면 몰라도 어떤 사람에게든 조언을 하지 말고 어떤 사람으로부터든지 조언을 받지 마라. 모든 사람은 자신의 기질이 움직이는 바에 따라 대담하게 행동해야 한다.

<196>
나는 자연이 인간을 상이한 얼굴로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이한 종류의 심성과 기질로 만든다고 믿는다.

<222>
베버에 따르면 확신의 윤리는 인간이란 선한 존재라고 전제하고, 동기가 선하면 주어진 행위는 그 결과에 상관없이 선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서 책임의 윤리는 인간의 평균적인 악을 전제하고, 이를 감안하여 행동해야 하며, 따라서 동기의 선함보다는 결과의 선함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베버의 이러한 구분은 일부 문제가 없지 않지만, 기독교적 윤리관은 확신의 윤리에,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윤리관은 책임의 윤리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222>
영혼의 구원을 원하는 자는 차라리 정치영역에 들어서지 않는 편이 낫다.

<224>
마키아벨리는 정치가 본질(what is)의 영역이 아니라 외양(what appears)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226>
‘위선이란 악덕이 덕에게 바치는 공물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위선행위가 그 반도덕성에도 불구하고 덕이 악덕에 비해서 우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시인하고 확인하는 행위라는 의미이다.

<229>
역사적 설명이 가지는 장점은 그것이 운동과 변화를 서술하는 한편, 인간사회에 작용하는 일정한 항구적인 요인들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5. 책속의 작은 발견

로마사 논고
마키아벨리도 기질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IP *.29.236.39

프로필 이미지
귀한자식
2006.06.14 22:04:34 *.145.120.228
지금 군주론을 보고 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순간 경빈님의 분명한 시각이 더 부럽습니다.
왜 불편한지를 아니까.
프로필 이미지
미 탄
2006.06.14 22:31:28 *.199.135.184
윗분들의 경영이란 충분히 이러하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어쩌면 그들이 야생에서 버텨주기에 나 같은 사람이 천막 안에서 이상을 꿈꿀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혹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살이 찢겨서 드러난 뼛조각을 쳐다 보는 것처럼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영혼을 구원하려는 사람은 정치에 뛰어들어서도 안되고 경영에 뛰어들어서도 안된다.

대단한 표현이네요. 소장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셨듯, 경빈씨에게는 학자가 어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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