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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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버림받은 정치분석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 이탈리아 피렌체의 가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58세를 일기로 1527년 6월 21일에 세상을 떠난 정치이론가, 역사가였으며 고급관리였다. 피렌체 공화국의 10인 위원회 서기장을 역임하기도 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 외교적 사명을 띠고 대사 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로마교황청에 파견되어 궁중을 드나들기도 하였으나, 스페인 군대에 의해 해체되는 피렌체 공화정의 운명과 함께 장관직에서 해임되고 억울하게 군주국에 대한 반란 음모자로 낙인이 찍혀 피렌체 근교 산트 안드리아의 농장에 은둔하게 된다. 그 후 자신을 파면한 메디치 왕조에 ‘군주론’를 헌정하며 재기를 꿈꿨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난과 불운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군주론은 책으로 발행하려는 저술이 아니라 당시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메디치가에 바치려는 개인적인 기술인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가치, 야심 및 이기심이 부단히 충돌하고 운동하는 변화무쌍한 정치세계를 불변적이지 않은 ‘현상의 세계'로 이해한 최초의 정치사상가였다. 그는 정치세계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통제하기 위한 지배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능력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며 정치 역사에서 그 길을 찾았다. 이런 그의 국가통치술은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고 그의 사상에 포함되어 있는 다수의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역사적으로 널리 주목받게 되었다.
그의 군주론은 종교에 기반 한 중세를 정리하고 근대의 현실정치세계를 연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나이 44세인 1513년에 썼으나 사후인 1532년에 출판되어 온갖 공격을 받은 끝에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라 18~19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주목하기 까지 어둠 속에 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군주론에서 본 마키아벨리.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 잃기가 십상이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107)
마키아벨리는 당시 유럽의 지배적인 정치사회철학인 기독교와 인문주의적 공화제 사상과 같은 실제로 존재하는 정치라기보다는 이상적 정치공동체의 허구에 대하여 ‘전복’을 음모하며 일침을 날린다.
정치세계에서의 인간의 심리와 행동양식을 아무런 생각의 채색 없이 ‘있는 그대로’ 꿰뚫고 받아들인 그는 정치세계를 ‘이데아’가 아닌 ‘현상’으로 이해했다.
오늘날 ‘권모술수적인 정치책략가’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마키아벨리로서는 오히려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치세계를 현실에 드러난 현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떻게든 도덕과 규범에 맞춰 ‘바른 세계’로 채색하려는 위선과 불순함을 뒤집어씌움에 억울하고 원통할 것이다.
그런데 왜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능란한 위선자요 가장자여야 하며 성실함, 자비, 인간애 및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을 자기 자신의 주장에는 적용시키지 않았을까?
나는 군주론을 읽으며 마키아벨리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생각과 생각 속에 얼마나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샜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크고 작든 조직을 이끌거나 통치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드러난 현상들과의 고독한 투쟁일 수밖에 없고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일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교회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뒹글고 있던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권력 쟁패의 시대에 극히 제한적인 자원인 권력을 놓고 벌어지는 현실세계는 그의 눈에 단지 ‘현실일 뿐 그 이상의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키아벨리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항상 사적인 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적인 윤리규범이 적용되지 않는 정치적 상황의 특수성과 한계를 여전히 착각 속에 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외세에 짓밟히는 조국의 군주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을 것이다.
‘국가 공동체와 인민은 사적인 개인과는 다른 방법으로 통치된다’는 현실의 현상을 절절한마음으로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군주론을 읽으며 정치가로서 고위관료로서 마키아벨리의 충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군주론은 그의 직접적인 현장의 경험과 그 속에서 겪었을 처절한 고뇌의 산물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근대적 영토국가라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조직으로 등장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군사 대결장으로서 유린되던 이탈리아의 부활을 위해서 그가 마음의 피눈물을 흘리며 고뇌하던 밤들을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도덕률을 거부하는 그의 모습이 충격적이지만 그것이 그의 수사(修辭)적 필요에 의해서 나온 것이었음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제 ‘권모술수적인 정치책략가의 대명사’에서 그를 해방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군주론에서.
강력한 도움을 준 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타인을 강하게 하는 자는 자멸을 자초할 뿐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세력은 술책이나 힘을 통해 증대되는데 이 두 가지는 그로 인해서 강력해진 자가 두려워하는 것이다.(29)
공화국에는 더 많은 활력, 더 많은 증오, 복수에 대한 강렬한 집념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유를 쉽게 잊지 못하며 실로 잊을 수도 없다. 따라서 확실한 방법은 그 나라들을 파괴해 버리거나 아니면 직접 그곳에 살면서 다스리는 것이다.(37)
노련한 군사가 목표물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활을 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한다. 그는 자기 활의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높은 곳을 겨냥하게 되는데, 이는 그 높은 지점을 화살로 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표물을 맞히기 위해서 그곳을 겨냥하는 것이다.(38)
새로운 형태의 정부수립을 주도하는 행위가 매우 어렵고 위험하며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얻던 모든 사람들이 혁신적 인물에게 반대하는 한편,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얻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지근한 지지만 받는 이유는 잠재적 수혜자들이 한편으로 과거에 법제도를 전횡하던 적들을 두려워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회의적인 속성상 자신들의 눈으로 확고한 결과를 직접 보기 전에는 새로운 제도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공격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온힘을 다 하여 공격하는데 반해서, 그 지지자들은 반신반의 하며 행동하는데 그친다. 따라서 혁신자와 그 지지자는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마련이다.(41)
개혁자들은 자신의 계획을 시작한 후 모든 위험들이 닥쳐오며 그들은 그 위험들을 자신의 능력을 통해서만 극복해야 한다.(43)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아니면 격파하는 등 사람 다루는 법에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55)
새로운 은혜를 베풂으로써 과거의 피해를 잊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이다.(58)
가해행위는 모두 한꺼번에 저질러야 하며, 그래야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적게 야기한다. 반면에 시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66)
현명한 군주라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시민들이 정부와 자기를 믿고 따르도록 조치를 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시민들은 그에게 항상 충성할 것이다.(73)
모든 국가의 주된 기초는 좋은 법률과 좋은 군대이다. 좋은 군대가 없이 좋은 법률을 가지기란 불가능하고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항상 좋은 법률이 있다.(84)
용병을 쓰는 것은 결과적으로 완만하고 사소한 이득이 있는 반면에, 돌발적이고 놀라운 손해를 가져온다.(91)
원군은 그 자체로서는 유능하고 효과적이지만 원군에 의존하는 자에게 거의 항상 유해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만약 그들이 패배하면 당신은 몰락할 것이고 그들이 승리하면 당신은 그들의 처분에 맡겨지기 때문이다.(94)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무력에 근거하지 않는 권력의 명성처럼 취약하고 불안한 것은 없다.”라는 격언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100)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보다는 잃기 십상이다.(107)
무질서를 너무 관대하게 방치해서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자보다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함으로써 기강을 바로 잡는 군주가 실제로는 훨씬 더 자비로운 셈이 될 수 있다. 전자는 공동체 전반에 해를 끼치는 데에 반해 군주가 명령한 처형은 단지 특정한 개인들에게만 해를 끼치는 데에 불과할 뿐이다.(115)
군주는 참소를 믿고 개인에게 행동을 취하는 데에 신중해야 하며 너무 의심이 많아서는 안 된다. 그는 적절한 신중함과 인간애를 가지고 행동해야 하며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해서 경솔하게 처신하거나 의심이 너무 많아 주위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116)
사랑을 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에 대해서 내 견해는 사랑도 받고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굳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117)
현명한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비록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미움을 받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118)
너무나 자비로웠던 스키피오의 군대는 스페인에서 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그 유일한 이유는 그가 너무나 관대해서 적절한 군사적 기율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보다도 많은 자유를 병사들에게 허용했기 때문이었다.(120)
군주는 함정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123)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고 또한 실제로 그런 것이 좋다. 그러나 달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면 당신은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125)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볼 수 있는 반면에 당신의 진면목에 대해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126)
군주는 미움 받거나 경멸받는 일은 무엇이든지 삼가야 한다.(127)
당신은 불평분자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자마자 그가 폭로함으로써 확실한 이득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130)
군주는 어느 한편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미움을 받는 일 만큼은 피하는 것이다.(134)
세베루스의 행적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그가 매우 격렬한 사자이며 동시에 매우 교활한 여우였고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이었으며 군대의 미움을 받지 않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138)
분열정책은 군주의 유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강력한 군주국은 그러한 분열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분열정책은 속민들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평화 시에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그러한 정책의 어리석음은 명백히 드러나게 마련이다.(148)
군주는 정권초기에 그에게 적대적이지만 자력으로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못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가 매우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149)
군주에게 최선의 요새는 그의 신민들이 그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151)
적극적인 중립은 적을 만든다. 그러나 적극적인 동맹은 친선을 획득한다.(155)
모든 행위는 위험을 수반한다. 사물의 도리상 하나의 위험을 피하고자 하면 으레 다른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사려 깊은 사람은 위험을 평가하는 방법을 알고 가장 해악이 적은 대안을 따라야 할 올바른 대안으로 선택한다.(158)
군주는 1년 중 적절한 시기에 축제나 볼만한 구경거리를 주선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159)
당신 자신을 아첨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당신이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163)
정보와 의견을 구하고 자신이 제기한 사안에 관한 솔직한 견해에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일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무슨 이유에서건 침묵을 지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노여움을 표시하여야 한다.(165)
조언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항상 우선시하기 때문이다.(166)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넘어져서는 안 된다. 당신의 주도하에 있고 자신의 능력에 입각한 방어만이 효과적이고 확실하며 영구적이다.(169)
나는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유연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처신 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성공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다고 결론짓겠다. 나는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175)
불가피하게 수행하는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며 무력에 호소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무력 또한 신성한 것이다.(178)
이방인들의 범람으로 고난을 겪던 이탈리아의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흠모의 정을 가지고 구세주를 맞이할 것인가?(182)
운명은 젊은이들에게 호감을 가지니 모험을 해라. 그리고 시대에 적응하라. 많은 사람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처신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한다.(195)
나는 자연이 인간을 상이한 얼굴로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이한 종류의 심성과 기질로 만든다고 믿는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그의 심성과 기질의 경향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러므로 시대와 상황이 다양함에 따라서, 어떤 인간들은, 자신들의 처신 방식이 시대에 부합하면, 자신들의 목적을 완전하게 성취한다. 반면에 자신의 처신 방식이 시대와 상황에 잘 부합하지 않는 인간은 성공하지 못한다.(196)
IP *.44.152.193
버림받은 정치분석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 이탈리아 피렌체의 가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58세를 일기로 1527년 6월 21일에 세상을 떠난 정치이론가, 역사가였으며 고급관리였다. 피렌체 공화국의 10인 위원회 서기장을 역임하기도 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 외교적 사명을 띠고 대사 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로마교황청에 파견되어 궁중을 드나들기도 하였으나, 스페인 군대에 의해 해체되는 피렌체 공화정의 운명과 함께 장관직에서 해임되고 억울하게 군주국에 대한 반란 음모자로 낙인이 찍혀 피렌체 근교 산트 안드리아의 농장에 은둔하게 된다. 그 후 자신을 파면한 메디치 왕조에 ‘군주론’를 헌정하며 재기를 꿈꿨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난과 불운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군주론은 책으로 발행하려는 저술이 아니라 당시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메디치가에 바치려는 개인적인 기술인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가치, 야심 및 이기심이 부단히 충돌하고 운동하는 변화무쌍한 정치세계를 불변적이지 않은 ‘현상의 세계'로 이해한 최초의 정치사상가였다. 그는 정치세계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통제하기 위한 지배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능력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며 정치 역사에서 그 길을 찾았다. 이런 그의 국가통치술은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고 그의 사상에 포함되어 있는 다수의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역사적으로 널리 주목받게 되었다.
그의 군주론은 종교에 기반 한 중세를 정리하고 근대의 현실정치세계를 연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나이 44세인 1513년에 썼으나 사후인 1532년에 출판되어 온갖 공격을 받은 끝에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라 18~19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주목하기 까지 어둠 속에 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군주론에서 본 마키아벨리.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 잃기가 십상이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107)
마키아벨리는 당시 유럽의 지배적인 정치사회철학인 기독교와 인문주의적 공화제 사상과 같은 실제로 존재하는 정치라기보다는 이상적 정치공동체의 허구에 대하여 ‘전복’을 음모하며 일침을 날린다.
정치세계에서의 인간의 심리와 행동양식을 아무런 생각의 채색 없이 ‘있는 그대로’ 꿰뚫고 받아들인 그는 정치세계를 ‘이데아’가 아닌 ‘현상’으로 이해했다.
오늘날 ‘권모술수적인 정치책략가’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마키아벨리로서는 오히려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치세계를 현실에 드러난 현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떻게든 도덕과 규범에 맞춰 ‘바른 세계’로 채색하려는 위선과 불순함을 뒤집어씌움에 억울하고 원통할 것이다.
그런데 왜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능란한 위선자요 가장자여야 하며 성실함, 자비, 인간애 및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을 자기 자신의 주장에는 적용시키지 않았을까?
나는 군주론을 읽으며 마키아벨리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생각과 생각 속에 얼마나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샜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크고 작든 조직을 이끌거나 통치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드러난 현상들과의 고독한 투쟁일 수밖에 없고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일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교회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뒹글고 있던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권력 쟁패의 시대에 극히 제한적인 자원인 권력을 놓고 벌어지는 현실세계는 그의 눈에 단지 ‘현실일 뿐 그 이상의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키아벨리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항상 사적인 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적인 윤리규범이 적용되지 않는 정치적 상황의 특수성과 한계를 여전히 착각 속에 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외세에 짓밟히는 조국의 군주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을 것이다.
‘국가 공동체와 인민은 사적인 개인과는 다른 방법으로 통치된다’는 현실의 현상을 절절한마음으로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군주론을 읽으며 정치가로서 고위관료로서 마키아벨리의 충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군주론은 그의 직접적인 현장의 경험과 그 속에서 겪었을 처절한 고뇌의 산물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근대적 영토국가라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조직으로 등장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군사 대결장으로서 유린되던 이탈리아의 부활을 위해서 그가 마음의 피눈물을 흘리며 고뇌하던 밤들을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도덕률을 거부하는 그의 모습이 충격적이지만 그것이 그의 수사(修辭)적 필요에 의해서 나온 것이었음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제 ‘권모술수적인 정치책략가의 대명사’에서 그를 해방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군주론에서.
강력한 도움을 준 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타인을 강하게 하는 자는 자멸을 자초할 뿐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세력은 술책이나 힘을 통해 증대되는데 이 두 가지는 그로 인해서 강력해진 자가 두려워하는 것이다.(29)
공화국에는 더 많은 활력, 더 많은 증오, 복수에 대한 강렬한 집념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유를 쉽게 잊지 못하며 실로 잊을 수도 없다. 따라서 확실한 방법은 그 나라들을 파괴해 버리거나 아니면 직접 그곳에 살면서 다스리는 것이다.(37)
노련한 군사가 목표물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활을 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한다. 그는 자기 활의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높은 곳을 겨냥하게 되는데, 이는 그 높은 지점을 화살로 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표물을 맞히기 위해서 그곳을 겨냥하는 것이다.(38)
새로운 형태의 정부수립을 주도하는 행위가 매우 어렵고 위험하며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얻던 모든 사람들이 혁신적 인물에게 반대하는 한편,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얻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지근한 지지만 받는 이유는 잠재적 수혜자들이 한편으로 과거에 법제도를 전횡하던 적들을 두려워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회의적인 속성상 자신들의 눈으로 확고한 결과를 직접 보기 전에는 새로운 제도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공격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온힘을 다 하여 공격하는데 반해서, 그 지지자들은 반신반의 하며 행동하는데 그친다. 따라서 혁신자와 그 지지자는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마련이다.(41)
개혁자들은 자신의 계획을 시작한 후 모든 위험들이 닥쳐오며 그들은 그 위험들을 자신의 능력을 통해서만 극복해야 한다.(43)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아니면 격파하는 등 사람 다루는 법에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55)
새로운 은혜를 베풂으로써 과거의 피해를 잊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이다.(58)
가해행위는 모두 한꺼번에 저질러야 하며, 그래야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적게 야기한다. 반면에 시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66)
현명한 군주라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시민들이 정부와 자기를 믿고 따르도록 조치를 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시민들은 그에게 항상 충성할 것이다.(73)
모든 국가의 주된 기초는 좋은 법률과 좋은 군대이다. 좋은 군대가 없이 좋은 법률을 가지기란 불가능하고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항상 좋은 법률이 있다.(84)
용병을 쓰는 것은 결과적으로 완만하고 사소한 이득이 있는 반면에, 돌발적이고 놀라운 손해를 가져온다.(91)
원군은 그 자체로서는 유능하고 효과적이지만 원군에 의존하는 자에게 거의 항상 유해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만약 그들이 패배하면 당신은 몰락할 것이고 그들이 승리하면 당신은 그들의 처분에 맡겨지기 때문이다.(94)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무력에 근거하지 않는 권력의 명성처럼 취약하고 불안한 것은 없다.”라는 격언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100)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보다는 잃기 십상이다.(107)
무질서를 너무 관대하게 방치해서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자보다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함으로써 기강을 바로 잡는 군주가 실제로는 훨씬 더 자비로운 셈이 될 수 있다. 전자는 공동체 전반에 해를 끼치는 데에 반해 군주가 명령한 처형은 단지 특정한 개인들에게만 해를 끼치는 데에 불과할 뿐이다.(115)
군주는 참소를 믿고 개인에게 행동을 취하는 데에 신중해야 하며 너무 의심이 많아서는 안 된다. 그는 적절한 신중함과 인간애를 가지고 행동해야 하며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해서 경솔하게 처신하거나 의심이 너무 많아 주위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116)
사랑을 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에 대해서 내 견해는 사랑도 받고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굳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117)
현명한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비록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미움을 받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118)
너무나 자비로웠던 스키피오의 군대는 스페인에서 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그 유일한 이유는 그가 너무나 관대해서 적절한 군사적 기율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보다도 많은 자유를 병사들에게 허용했기 때문이었다.(120)
군주는 함정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123)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고 또한 실제로 그런 것이 좋다. 그러나 달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면 당신은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125)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볼 수 있는 반면에 당신의 진면목에 대해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126)
군주는 미움 받거나 경멸받는 일은 무엇이든지 삼가야 한다.(127)
당신은 불평분자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자마자 그가 폭로함으로써 확실한 이득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130)
군주는 어느 한편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미움을 받는 일 만큼은 피하는 것이다.(134)
세베루스의 행적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그가 매우 격렬한 사자이며 동시에 매우 교활한 여우였고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이었으며 군대의 미움을 받지 않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138)
분열정책은 군주의 유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강력한 군주국은 그러한 분열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분열정책은 속민들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평화 시에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그러한 정책의 어리석음은 명백히 드러나게 마련이다.(148)
군주는 정권초기에 그에게 적대적이지만 자력으로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못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가 매우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149)
군주에게 최선의 요새는 그의 신민들이 그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151)
적극적인 중립은 적을 만든다. 그러나 적극적인 동맹은 친선을 획득한다.(155)
모든 행위는 위험을 수반한다. 사물의 도리상 하나의 위험을 피하고자 하면 으레 다른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사려 깊은 사람은 위험을 평가하는 방법을 알고 가장 해악이 적은 대안을 따라야 할 올바른 대안으로 선택한다.(158)
군주는 1년 중 적절한 시기에 축제나 볼만한 구경거리를 주선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159)
당신 자신을 아첨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당신이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163)
정보와 의견을 구하고 자신이 제기한 사안에 관한 솔직한 견해에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일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무슨 이유에서건 침묵을 지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노여움을 표시하여야 한다.(165)
조언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항상 우선시하기 때문이다.(166)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넘어져서는 안 된다. 당신의 주도하에 있고 자신의 능력에 입각한 방어만이 효과적이고 확실하며 영구적이다.(169)
나는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유연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처신 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성공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다고 결론짓겠다. 나는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175)
불가피하게 수행하는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며 무력에 호소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무력 또한 신성한 것이다.(178)
이방인들의 범람으로 고난을 겪던 이탈리아의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흠모의 정을 가지고 구세주를 맞이할 것인가?(182)
운명은 젊은이들에게 호감을 가지니 모험을 해라. 그리고 시대에 적응하라. 많은 사람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처신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한다.(195)
나는 자연이 인간을 상이한 얼굴로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이한 종류의 심성과 기질로 만든다고 믿는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그의 심성과 기질의 경향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러므로 시대와 상황이 다양함에 따라서, 어떤 인간들은, 자신들의 처신 방식이 시대에 부합하면, 자신들의 목적을 완전하게 성취한다. 반면에 자신의 처신 방식이 시대와 상황에 잘 부합하지 않는 인간은 성공하지 못한다.(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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