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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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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5일 18시 54분 등록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에 대한 하나의 시선.

생각의 지도


<1>리처드 니스벳에 대해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은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의 시어도어 뉴컴(Theodore M. Newcomb) 석좌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의 양대 심리학회인 미국심리학협회와 미국심리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했다. 2002년 사회심리학자로는 최초로 미국 과학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Human Inference: Strategies and Shortcomings of Social Judgemant』, 『Rules for Reasoning』, 『Culture of Honor: The Psychology of Violence in the South』, 『The Person and The Situation』, 『Men, Honor and Murder』을 비롯,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저술했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집필 의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물론 서문에서 대략 밝히긴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을까? 여기에도 저자가 서양인이란 특성이 개입하지 않았을까? ‘차이’를 발견하면, ‘논리적 접근’을 통해 차이에서 오는 ‘모순’을 해결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서문의 저자의 말이 우스웠다.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 존재하는 사고의 차이에 대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떠올랐을 때 나는 무척 망설였다. 아무리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책을 쓰더라도 내가 서양인인 이상,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동양인들에게 불쾌하게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 그 동양인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2>읽고난 느낌 하나, 생각 파편들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에 활동하던 대학연합 지식경영학회가 떠올랐다. 그곳의 모토는 변화와 혁신을 통한 성공이었다. 취업시켜준다, 성공하는 공부라는 말에 이끌려서 6개월 넘게 활동했었다. 그곳에서 정의한 변화는 ‘과거의 것을 갈아엎고 부정하는 대대적 혁신’이었고, 성공은 ‘물질적인 어떤 것’이었다. 한국적인 것을 뒤엎고 최대한 서구를 모방해라. 그것이 치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는 비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동양인, 한국인이란 것을 떠나 ‘나’를 그릴 수 있는가 하는 의아함이 생겼다. (이것이 내가 학회를 탈퇴한 주요인이기도 했다.) 저자가 지적하듯, 우리는 아무리 지구촌이라 해도 살아온 문화적 환경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다. 이를 무시한다면, 그 이론들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많은 동양인들이 이 책을 통해서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됨으로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평소 궁금했던 것이 여러 실험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풀어가고 있어 '이건 이렇군‘ 공감대를 형성하며 읽어간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술술 읽히는 재미가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불쾌했다. 저자가 우려했던 바대로 이 책이 불쾌하게 비친 동양인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단순히 고깝게 보이는 감정적 차원일 수도, 서양에 대한 비판이 이 책에 쏟아진 것일 수도 있다. 나의 비판이 주제 넘을까, 그가 주제 넘을까.

불쾌한 점은, 앞에 언급한 동서양 사고방식의 우열을 만들어 낸 것도 서구였고, (지능검사를 통해 동양인이 더 열등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서구의 문화방식을 세계적으로 강요한 것도 그들이었다는 데 있다. 열강의 침입과 식민지 정책, 그건 유럽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양’이 아니던가.
책의 내용처럼 ‘갈등과 차이’에 대해 동양은 포용적이지만, 서양은 그에서 오는 모순을 없애려 한다. 이런 입장이라면 동양과 서양을 나누고, 그 차이를 밝히는 이 책의 시도 자체가 매우 서구적인 발상이 란 이야기가 된다. 결국은 동양은 이러한 특성이 있고, 서양은 저러한 특성이 있구나. 그럼 둘이 서로 다르니까 이해하면 될 부분이네. 그리고 서로 좋은 부분은 닮아 가면 되겠네. 이것 아닌가? 차이에서 오는 모순을 줄여보고자 하는 이런 시도는 명백히 서구적이다.
나는 사회 과학 쪽을 깊이 있게 연구해보지 않아서 실험방식의 체계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실험방식의 풀어가는 논리가 매우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보여 졌다. 왜냐, 이자체가 이미 서양의 특성에 근거해 온 것이기 때문에.

책 저변에 깔린 과학을 최우선으로 하는 논리체계가 불편했다. 그는 과학과 논리는 중시하는 (그가 말한)서구식 관점을 깔고서 논리를 펼쳐가고 있다. 동서양의 사고방식을 각각 비판하고, 각 사고 방식이 상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지만, 내가 보기엔 여전히 서구의 관점에서 동서양의 사고방식을 비판했다는 게 이 책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만약 같은 주제로 동양의 학자들이 책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베이징대, 동경대, 서울대의 학자들이 중심이 되고, 서양학자들의 외부적 도움을 받아 연구를 진행한다면? 쓸지 안 쓸지도 모르지만, (이제껏 동양에서 이런 시도가 없어T다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쓴다면 차이를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오는 시대를 언급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구의 과학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는 갔다.....고.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심리학자 최인철은 모순에 대하여 덜 민감한 사고방식은 지적 호기심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과학적 사고를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동양의 국가들이 보다 많은 과학자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시점에서 더욱 깊이 고려되어야 할 점이다. -271p
라는 지적은 웃긴 것이다.

재미는 있었지만, 차이를 바라보는 깊이가 ‘상식적’이었다는 게 이 책의 감상이다.



<3> 내가 저자라면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밝히고, 이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간 시도에는 박수를 보낸다. 심리학자로는 최초로미국 과학원 회원으로 선출된 만큼 저자는 과학적인 방법들을 적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냈다. 내가 저자라면 두 가지 보완할 부분이 있다.
첫째, 나는 여기에 역사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 500년을 지배한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는 서구의 방식이 주도한 세기적 흐름이었다. 우리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정치·경제의 흐름이 모두 서구식이라는 데 맹점이 있다고 본다. 서구의 바탕에 맞춰진 동서양의 수렴은 의미가 없다. 특히나 그가 밝혀놓은 동서양의 차이와 특성으로는 택도 없는 일이다. 그건 결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동양이 흡수된다거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동양화와 다른 말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신뢰해 마지않는 과학적인 방식, 즉 ‘문제제기-가설-연구방법-실험-논거검증-결론’ 의 논리적 흐름은 저자의 지적처럼 ‘가설’이 잘못될 경우 무의미한 실험이 되고 만다. 역사학자들의 조언 없이 섣불리 동서양의 차이를 논하다니. 너무 주제넘지 않은가? (7장에서 나름대로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차이에 대한 기원을 찾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정말 택도 없다!)
둘째, 에필로그에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수렴될 것이라는 저자의 덧붙임을 빼야 한다. 두 문화의 중간에 해당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건 서양의 변증법 ‘정반합’도 아니고, 동양의 ‘중용’이나 ‘중도’도 아니다. 문제를 명쾌하고 재밌게 풀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덧붙인 색다른 해석이 오히려 사족처럼 읽힌다.
차라리 미국에서 유행했던 New age 흐름(기존 서구식 가치와 문화를 배척하고 종교·의학·철학·천문학·환경·음악 등의 영역의 집적된 발전을 추구하는 신문화운동-네이버 백과사전)이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In my opinion, 지금 우리에게 (동 서양을 통합하여) 기존문화의 통합이 아니라, 기존의 문화에서 발전된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4> 인상적 글귀
<130>
서양인들이 ‘과학에서 거둔 성공’과 ‘인과적 설명에서 범하는 오류’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부리란 다름 아닌 ‘개인’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모델을 만드는 자유’, 그리고 ‘그 모델을 이용하여 결과로부터 원인을 추구하는 자유’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델은 사물과 그 사물의 속성에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탓에 맥락의 역할을 놓치고 있다. 따라서 맥락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맥락을 무시함으로써 기본적 귀인 오류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인간 행동의 예측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124>
와타나베는 미국인들의 역사분석을 ‘후행적’이라 규정했다. 왜냐하면, 사건들이 ‘결과→원인’의 순서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와타나베는 이러한 분석이 서양인의 목표 지향적 사고와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목표 지향적 사고에서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델을 나중에 설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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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6.06.25 19:53:43 *.85.149.233
귀자씨, 우리끼리 얘기지만, 할 말이 없어서 글 올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저자소개도 별다른 검색이 안 되고 해서 빨리 올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 ~~ 무난하게 썼지요.

근데, 귀자씨 좌우명이 너무 복고풍이라 재미있어요. 혼자 웃었다니까요 hihi. 운동도 열심히 하고 참 부지런하게 사네요. 양식있는 두 연구원이 몰두하는 운동이라면 어떤 것인지 알아볼 의도까지 있는데, 이곳 소읍에서는 못 본 것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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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6.06.25 23:17:11 *.145.122.220
ㅋㅋ 거 반가운 말이네요.
제가 차마 보여드리진 못하고...홈피하나 소개해드릴게요.
http://www.kich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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