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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조셉 캠벨(1904~1987),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소년 시절 북미대륙 원주민의 신화와 아더왕 전설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콜롬비아 대학과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으며, 뉴욕 맨허튼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자주 방문하였다. 캠벨은 그 박물관의 한 코너에 있는 토템 기둥에 특히 매료되었는데, 그 뒤로 1925년과 1927년에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 대학교와 뮌헨 대학교에서 중세 프랑스 어와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하였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벡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며,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큐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하기도 했다.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그는 <신의 가면 the Masks of God>(전4권)을 펴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그 역저의 서곡에 해당한다. 1934년 이래로 사라 로렌스 대학의 문학부 교수로 재직해 온 그는, 프린스턴 대학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로도 유명하다. 볼링겐 시리즈는 신화, 종교, 철학, 심리를 두루 연계하는, 인간과 문학의 뿌리에 대한 연구가 집약되어 있는 총서이다.
그는 <신화의 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의 가면 1~4>,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야생 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다 1987년 세상을 떠났다.
[2. 책을 읽고 나서]
조셉 캠벨은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이 대표하는 신화비교학자로서 전세계의 신화관련 서적들을 섭렵하고 이를 비교분석함으로써 신화의 상사성(相似性)을 발견하였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은 그이 학문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는 신화가 일반인이 생각하는 단지 옛이야기에 지나지 않고 지식의 산물에 불과할 뿐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과 신화에 나타나는 사건들은 동화처럼 단지 흥밋거리에 불과하지 어떤 일관된 체계가 없다는 일부의 주장을 배격한다. 이러한 생각은 신화를 피상적으로만 보고 개별적으로 판단한 결과의 오류란다.
저자는 수많은 영웅 신화에서 기본적인 모티브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즉 영웅 신화는 인간세계로부터의 분리, 신적 세계로의 입문, 인간 세계로의 회귀 그리고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먼저 영웅이 어떻게 하여 인간 세계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아보면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은 그이 탄생이 당위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난세에 영웅을 부른다는 말처럼 모든 영웅의 출생은 목적을 갖게 되는데, 거인족으로부터 인간과 신을 구원할 운명의 헤라클레스나 메시아로서 등장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출생의 당위성을 갖는 영웅도 모험에 이르기까지는 일상적인 삶을 영위한다. 물론 이때에 때로 신이 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능력은 범인(凡人)이 수긍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웅은 그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남아 있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에게는 새로운 삶이 다가온다. 영웅이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삶의 가치성이 무너지고 미지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 이른바 분리와 재생의 순간인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통해 모험에의 소명을 받은 영웅은 초자연적인 조력이 그를 기다린다. 서양에서는 여성의 이미지(주로 女神)로 나타나고 동양에서는 남성의 이미지(주로 神仙)로 드러난다. 조력자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신분을 감춘 채 영웅에게 접근하는 데 이때 영웅은 영웅으로서 조력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시험을 받게 된다.
모험에의 소명을 받고 초자연적인 후광을 입은 영웅은 그 동안 자신이 속한 세계를 벗어나 미지의 영역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이때 영웅은 첫 번째 관문에 이르게 되는데,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관문의 수호자가 지키고 있다. 여기에서 영웅은 인간으로서의 한계 상황을 경험한다. 다름 아닌 죽음과 재생이라는 과정을 통해 영웅은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극복하고 신적인 존재가 된다.
이제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미지의 세계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웅을 도식화함에 있어 하나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바로 단일영웅 신화라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는 영웅의 모험을 지극히 단순화해서 한 가지 시련에의 투쟁으로 한정시켰다는 것이다.
모든 시련이 극복되고 괴물들이 퇴치되었을 때 영웅이 치르는 마지막 모험은 승리한 영웅과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스러운 혼례로 표상된다. 이러한 여신과의 만남은 영웅에게는 자각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 자각의 위기를 통해 영웅의 의식은 증폭되고, 어머니상과 파괴자 곧 천생연분의 배필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시련을 받는 당사자는 자기가 아버지와 동일하다는 사실, 곧 자기의 아버지의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수한 시련을 극복한 영웅은 미지의 세계에서 일상의 세계로 귀환하기 전부터 이미 신격화되고 이상향을 엿보게 된다. 오딧세우스는 뛰어난 지혜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고국 이타케로 돌아오는 도중 해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서 숱한 시련을 거듭하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거인족과의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 후 아버지 제우스가 승리를 기념한 천상에서의 향연에 초대받는다. 이는 고난으로 가득찬 그의 생애에 가장 편안한 순간이었다. 붓다 역시 보리수 아래에서 끝없는 정진을 거친 후 해탈을 경험하게 된다.
영웅에게 내려진 모험이 끝나면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단일 신화의 전형인 완전한 순환체계는 영웅에게 지혜의 시문, 황금의 양털, 잠자는 미녀를 인간의 왕국으로 데려오는 또 한번의 수고를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이 은혜가 사회, 국가, 그 전체, 아니면 일반 세계를 재생시키는 데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웅의 전기에서 그 마지막장은 영웅의 죽음 혹은 소멸의 장이다. 여기에서 그의 전 생애가 요약된다. 말할 필요 없이 죽음에 겁을 먹으면 그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아내의 실수로 죽음을 맞이하는 헤라클레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한 것처럼 침착하게 화장대를 세우고 스스로 자진한다. 붓다 역시 죽음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열반으로 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이러한 죽음은 영웅에게는 단지 육체적인 소진에 불과할 뿐 본질적인 소멸로는 보질 않는다. 오히려 모험중에 그가 경험한 이상향으로의 여행으로 생각할 뿐이다.
작가의 뛰어난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식견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신화에 대한 기본적 상식의 문외한에게 이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다. 그러나 신화는 문명의 초기단계를 해석하는 과학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화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상징을 통해 투영하고 있기에 신화의 해석은 숨겨져 있는 비밀을 풀어내는 것 같은 짜릿한 묘미가 있음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신화가 영웅당사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유아기를 지나면서부터 우리도 "모험에의 소명"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면서 친구, 스승과 같은 조력자를 만나고 많은 인생의 시험을 거치면서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이다. 영웅의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의 본래모습이 꿈과 신화 그리고 동화책 속에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다면 그 심연속에 있는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무의식은 왜 신화와 상징을 통해서만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는 비밀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 비밀이 스스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인간의 어두운 그림자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상징의 코드를 이해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그 비밀을 공개하는 것일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그 본질을 아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으로 남겠지만 나와 같이 신화에 깊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처럼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3. 책 속에서]
이 책의 목적은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p6
많은 신화나 인류의 종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상사성이지 상이성은 아니다. 즉 신화의 상사성말이다. p6
저자가 바라기로는, 이러한 자자의 동서양 신화에 대한 비교 해석이 이 세계의 통합을 결실시키려는 작품의 경향에 대해, 종교적 혹은 정치적 제국의 이름으로서가 아닌, 인류의 상호 이해라는 측면에서 그리 초라하지 않는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배다 경은 〈진리는 하나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드러낸다.〉고 했다. p6
프롤로그 - 원질신화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인간의 신화에는 끊임없이 살이 붙어왔고, 이러한 신화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살아있는 영감을 불어넣었다. p14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p14
참으로 놀라운 것은, 상당수의 제의적 시련과 이미지, 정신 분석을 의뢰한 환자가 유아기 고착 상태를 떨치고 미래를 향해 발돋움을 시작하는 순간 꿈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p22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p23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p29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p33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p39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p40
비극과 희극은, 삶을 계시하는 전체성을 본질로 공유하며 죄악(신의 의지에 대한 거역)과 죽음(필멸의 형태에의 동화)의 오염으로부터 정화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사랑해야 하는 하강과 상승인 것이다. p43
신화와 동화의 고유의 사명은, 비극에서 희극에 이르는 어두운 뒤안길에 깔린 특수한 위험과 그 길을 지나는 기술을 드러내는 일이다. p43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이고, 오래전에 잊혀졌던 힘이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p44
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즉 〈분리〉, 〈입문〉, 〈회귀〉의 확대판이다. 이 양식은 원질신화(原質神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p45
제1부 영웅의 모험
1. 출발
꿈에서든, 신화에서든 갑자기 한 사람 생애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단계를 암시하면서 이런 모험에 등장하는 인물은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분위기를 갖는다. p77
현실 생활에서는 자주, 신화나 민간 전승에서도 드물지 않게 소명에 응하지 않는, 조금은 답답한 경우를 만난다. p81
소명을 거부하지 않은 모험 당사자는 영웅적인 편력 도중 첫 번째 보호자를 만난다. 노파나 노인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 보호자는 모험 당사자가 곧 만나게 되는 용과 맞설 호부(護符)를 준다. p93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p96
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p112
2. 입문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신화와 모험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루는 부분도 바로 이 국면이다. p128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p143
새들이 초록빛 숲 그늘에 깃들이듯
사랑은 온유한 마음속에 깃들인다.
이치로 보면
사랑 이전에 온유한 마음이 없었고,
온유한 마음 이전에 사랑도 없었다.
태양이 솟을 때 빛도 발하지니
태양에 앞서 빛은 있을 수 없다.
불길 속이 가장 뜨겁듯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서만 뜨겁게 타오른다. p157
여신과의 만남은 사랑의 은혜를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 단계다. 이 사랑의 은혜는 바로 우리 삶이 누리는 영원성의 그릇과 같은 것이다. p157
세계 도처에 널린 영웅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모험은 일반적인, 어떤 계층에 속하는 사람에게든 그대로 적용된다. p160
창조의 역설, 영원으로서의 시간이라는 양식의 도래는 아버지가 지니는 근원적인 비밀이다. 모든 신학 체계에는 배꼽, 즉 어머니인 생명의 손가락이 닿았던, 끝내 아무도 알 수 없는 아킬레우스 건이 있는 법이다.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 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 p192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지기 몸에 박힌 가시를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p192
신이 남성과 여성의 성격을 두루 갖추는 예는, 신화의 세계에서는 그리 생소하지 않다. p198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도 지엄하신 그들의 주(主)가 가르친 에고, 에고의 세계, 그리고 에고의 종족 신의 정복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식민지주의적 야만성과, 너 죽고 나 죽자 식 전쟁의 선수로 역사에는 더 잘 알려져 있다. p206
무한한 사랑이며, 전능한 보살인 관세음이 지각있는 모든 존재를 포용하고, 굽어보고, 또 그 존재 안에 거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마음 안에는 평화가 있다. p210
보살에 대한 첫 번째 경이로움은 바로 이것, 즉 보살이라는 존재의 양성구유적 성격이다. p213
보살 신화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경이로움은, 보살이 삶과, 삶으로부터 해탈의 차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이다. p213
형상은 빈 것이며, 빈 것은 즉 형상이다. 빈 것은 형상과 다르지 않고 형상은 빈 것과 다르지 않다. 형상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빈 것이며, 빈 것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형상이다. 관념, 이름, 개념 그리고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p216
절대의 마음으로 만유 안에 있는 나를 우러러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속의 삶이 어떠하든 신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p217
영원한 생명이 그들 안에 깃들여 있음을 알 뿐만 아니라 그들과 만물이 사실은 영원한 생명임을 아는 사람은 소원을 성취시키는 나무 숲에 거하며 불사의 영주(靈酒)를 마시고, 들리지 않는 도처의 영원한 화음을 듣는다. 이들을 일러 신선이라고 한다. p218
보살 신화의 세 번째 경이로움은, 첫 번째 경이로움이 두 번째 경이로움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신적인 차원의 언어로 일컬을 때 시간의 세계란 곧 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이다. 아버지에 의해 끼쳐진 생명은 그 안에서 어머니의 어둠과 아버지의 빛으로 합성된다. p223
천상적인 것이 도다. 도는 영원이다. 여기에 이르면 육체가 썩는 것도 두려워할 바 아니다. p248
3. 귀환
근원을 투시함으로써, 혹은 남성이나 여성, 인간이나 동물로 화신한 자의 은혜를 입음으로써 영웅의 임무가 수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모험 당사자인 영웅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p253
승리한 영웅이 여신이나 신의 축복을 획득하고, 그가 속한 사회를 구원할 불사약을 가지고 원상 복귀할 대목이 되면, 영웅 모험의 이 최종 단계에서 초자연적인 후원자에 의한 지원이 따르는 법이다. p257
단일 신화가 완성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적인 실패나 초인간적인 성공이 아닌, 인간적인 성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p269
신화 영역에서 일상 현실로 귀환하는 영웅은 역설적이고 험난한 관문 통과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p280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말하자면 시간을 초월한 세계인 저승과 일상적인 세계인 이승을 두루 돌아다니는 자유는 거장들의 재능에나 어울리는 자유다. p297
신화는, 이미 변모한 신비의 형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 내보이지는 않는다. p297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 at-one-ment〉, 즉 〈자기화해 self-atonement〉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p306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p307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제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암시를 읽어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이 빈사 상태에 빠진 성화(聖畵)는 그 영원히 인간적인 의미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p320
제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 유출
신화 체계란, 전기나 역사, 그리고 우주론으로 오독되어온 심리학이다. p326
우리에게 전승된 신화학적 표상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리는 그러한 표상들이 무의식의 징후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신적 원리의 통제되고 의도된 진술임을 이해해야 한다. p327
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 p328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빛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p332
우주 발생적 순환에 의해 설명되는 철학적 공식이란, 존재의 세 단계를 통한 의식의 순환을 말한다. 그 첫 단계는 깨어나는 체험의 단계, 즉 태양의 조명을 받고, 만물에 공통된 외계 우주의 험난하고 총체적인 사실들을 인식하는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꿈 체험의 단계, 즉 꿈을 꾸는 당사자와는 본질상 동일한 개인적 내부 세계의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를 인식하는 단계다. 세 번째 단계는 깊은 잠에 빠지는 단계, 꿈을 꾸지 않는 지복의 단계다.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삶에 관한 교훈적 체험과 만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소화되어 꿈을 꾸는 당사자의 내적인 힘에 동화되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내부적 통제자가 들어앉아 방 안, 모든 것의 근원이자 끝인 상태, 즉〈마음속에 있는 공간〉안에서 모든 것을 즐기고 의식할 수 있게 된다. p338
우주 발생적 순환은, 비현현의 숙면 영역에서 비롯, 꿈을 통하여 깨어나 있는 대낮, 그리고 다시 꿈을 통하여 시간을 초월한 어둠에 이르는 보편적 의식의 통로로 이해되어야 한다. p339
신화 속에서는 부동하는 원동력, 즉 살아 있는 전능자가 관심의 중심으로 떠오를 때마다 우주의 조형에 대한 초자연적인 자발성이 뒤따른다. p358
민간 신화들은 초자연적 발산물이 공간적 형식을 취해 돌입해 들어오는 순간에만 창조 설화를 흡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신화들은 인간의 상황을 평가한다는 본질적인 점에 있어서 위대한 신화들과 차이가 없다. p373
2. 처녀 잉태
창조자의 부성적 측면보다는 모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신화 체계에서 이 원초적 여성은 태초의 세계를 지배하면서, 남성에게 맡겨졌을 법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원초적 여성은, 배우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처녀다. p375
우주적 여신은 여러 가지 가면을 쓴 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창조의 결과란 다양하고 복잡한 데다, 창조된 세계의 관점에서 경험할 때면 상호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p380
3. 영웅의 변모
영웅이 탄생하는 곳, 혹은 영웅이 도피 또는 추방당했다가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 성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오르는, 머나먼 땅은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배꼽이다. p419
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어진〉사상의 옹호자가 아니라〈이루어지는〉사상의 옹호자다. p422
행동하는 영웅은 우주 순회의 주체이며 처음으로 이 세계를 움직였던 추진력을 생생한 사건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p432
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뜨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 p432
삶의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영웅의 유형이 있다. 즉 성자, 고행자, 출가자로서의 영웅이다. p443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그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p445
4. 소멸
놀랄 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손가락으로 고바르단 산을 들어올릴 수 있고, 자기 몸을 우주의 엄청난 영광으로 채울 수도 있는)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p458
개인이라는 창조된 형상이 결국은 소멸되고 말듯이 우주 역시 소멸된다. p468
에필로그 - 신화와 사회
신화의 해석에는 최종적인 체계가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런 것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신화 체계는, 〈진실만 말하는 고대의 해신(海神)〉프로테우스와 같다. p477
신화 체계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고 했고, 뮐러는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라고 했고,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이라고 했으며,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이라고 했고,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 p478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p478
개인이 실제든, 상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든, 그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의 절연을 의미할 뿐이다. p479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p480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개인의 민주적 이상,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발명, 과학적인 연구 방법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변형시킨 나머지 저 유서 깊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상징의 우주는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p483
신화 체계가 가득 담긴 지평의 꿈에 잠긴, 격리된 사회는 이제 착취의 대상으로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보한 사회 안에서도, 제의 도덕률, 예술이라는 고대 인류 유산의 흔적은 조락(凋落)의 길을 면치 못하고 있다. p484
현대 영웅의 위업은 영혼이 균형을 이루고 있던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대륙의 불을 다시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p485
오늘날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세계적 종교도 일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 이러한 종교들도, 선전과 자화자찬의 도구로서, 갖가지 도장짓기의 요인과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p485
『베다』의 말씀처럼, 「진리는 하나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언표한다.」즉 하나의 노래가 인간이라는 합창대의 갖가지 음색으로 들리는 것이다. p486
인간은 그러나 〈내〉가 아닌 〈너〉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족, 민족, 대륙, 사회적인 지위, 혹은 세기의 이상과 세속적 관습도 우리 모두의 내부에 살아 있는 불멸의, 놀라운 신적인 존재의 척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p488
감히 소명에 응하여, 우리의 운명을 화해시켜야 하는 존재의 거처를 찾아내는 현대적 인간이 현대의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 된다.
니체는 “그 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해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긜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구세주의 십자가를 지는 일-을 나누어 분담하는 것이다. p488
[4.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책 전체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읽는 다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이에 관한 분석자료가 있는지 인터넷을 통해 살펴보면서 가까스로 '영웅의 원형 분석'이라는 짤막한 논문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읽어본 후 아하 이 책이 그러한 내용을 담은 글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너무나 힘든 책임은 분명하다. 우선 책의 흐름이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호기심을 유발하는 면이 있으나 책 내용은 난해하기 그지없다. 이를 본질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동서양을 통괄하는 해박한 신화에 대한 지식 그리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과 융에 대한 저술의 이해가 없이 이 책을 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욕심인 듯하다.
독자를 위해서는 신화에 대한 동서양을 구분하여 서술하는 편이 좋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모든 신화를 두루 섭렵하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으며 이를 동서양 신화로 정리하고 동서양의 신화에는 상이성보다는 상사성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 독자에게 접근하기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되지 않고 페이지의 물리적 양으로 인해 보관용 책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과연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단연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을 거라고 단언하고 싶다.
책의 전개방법도 난해하고 인용하는 글귀들도 하나같이 이해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저자의 저술보다는 역자의 번역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지만 원문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는 신화에 인용하는 프로이트와 융으로 대표되는 정신분석적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저자가 뜻하는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신화의 순수한 의미를 독자에게 알리고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임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글귀가 그리 많지 않음은 프로이트나 융의 저술자체가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들에 대한 저술을 먼저 섭렵한 후 읽기를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끝으로 이 책은 작가가 세계적으로 흩어진 신화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까 너무 광범위하고 우리가 느끼는 신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것이기에 일반 독자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신화와는 너무나 격차가 난다. 부처나 그리스도는 이미 신화가 아니고 종교이며 그들을 영웅의 한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종교인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어 객관성을 결여할 수 있음도 사실이다.
어쨌든 이 책은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한계가 없음을 보여 주었으며 또한 영웅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흔적을 남긴 서적으로 만족해야 하며 책을 얼마나 어렵게 작성할 수 있는지도 알게 해주었다는 것에 보람을 찾아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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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캠벨(1904~1987),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소년 시절 북미대륙 원주민의 신화와 아더왕 전설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콜롬비아 대학과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으며, 뉴욕 맨허튼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자주 방문하였다. 캠벨은 그 박물관의 한 코너에 있는 토템 기둥에 특히 매료되었는데, 그 뒤로 1925년과 1927년에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 대학교와 뮌헨 대학교에서 중세 프랑스 어와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하였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벡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며,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큐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하기도 했다.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그는 <신의 가면 the Masks of God>(전4권)을 펴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그 역저의 서곡에 해당한다. 1934년 이래로 사라 로렌스 대학의 문학부 교수로 재직해 온 그는, 프린스턴 대학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로도 유명하다. 볼링겐 시리즈는 신화, 종교, 철학, 심리를 두루 연계하는, 인간과 문학의 뿌리에 대한 연구가 집약되어 있는 총서이다.
그는 <신화의 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의 가면 1~4>,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야생 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다 1987년 세상을 떠났다.
[2. 책을 읽고 나서]
조셉 캠벨은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이 대표하는 신화비교학자로서 전세계의 신화관련 서적들을 섭렵하고 이를 비교분석함으로써 신화의 상사성(相似性)을 발견하였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은 그이 학문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는 신화가 일반인이 생각하는 단지 옛이야기에 지나지 않고 지식의 산물에 불과할 뿐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과 신화에 나타나는 사건들은 동화처럼 단지 흥밋거리에 불과하지 어떤 일관된 체계가 없다는 일부의 주장을 배격한다. 이러한 생각은 신화를 피상적으로만 보고 개별적으로 판단한 결과의 오류란다.
저자는 수많은 영웅 신화에서 기본적인 모티브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즉 영웅 신화는 인간세계로부터의 분리, 신적 세계로의 입문, 인간 세계로의 회귀 그리고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먼저 영웅이 어떻게 하여 인간 세계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아보면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은 그이 탄생이 당위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난세에 영웅을 부른다는 말처럼 모든 영웅의 출생은 목적을 갖게 되는데, 거인족으로부터 인간과 신을 구원할 운명의 헤라클레스나 메시아로서 등장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출생의 당위성을 갖는 영웅도 모험에 이르기까지는 일상적인 삶을 영위한다. 물론 이때에 때로 신이 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능력은 범인(凡人)이 수긍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웅은 그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남아 있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에게는 새로운 삶이 다가온다. 영웅이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삶의 가치성이 무너지고 미지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 이른바 분리와 재생의 순간인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통해 모험에의 소명을 받은 영웅은 초자연적인 조력이 그를 기다린다. 서양에서는 여성의 이미지(주로 女神)로 나타나고 동양에서는 남성의 이미지(주로 神仙)로 드러난다. 조력자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신분을 감춘 채 영웅에게 접근하는 데 이때 영웅은 영웅으로서 조력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시험을 받게 된다.
모험에의 소명을 받고 초자연적인 후광을 입은 영웅은 그 동안 자신이 속한 세계를 벗어나 미지의 영역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이때 영웅은 첫 번째 관문에 이르게 되는데,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관문의 수호자가 지키고 있다. 여기에서 영웅은 인간으로서의 한계 상황을 경험한다. 다름 아닌 죽음과 재생이라는 과정을 통해 영웅은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극복하고 신적인 존재가 된다.
이제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미지의 세계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웅을 도식화함에 있어 하나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바로 단일영웅 신화라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는 영웅의 모험을 지극히 단순화해서 한 가지 시련에의 투쟁으로 한정시켰다는 것이다.
모든 시련이 극복되고 괴물들이 퇴치되었을 때 영웅이 치르는 마지막 모험은 승리한 영웅과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스러운 혼례로 표상된다. 이러한 여신과의 만남은 영웅에게는 자각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 자각의 위기를 통해 영웅의 의식은 증폭되고, 어머니상과 파괴자 곧 천생연분의 배필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시련을 받는 당사자는 자기가 아버지와 동일하다는 사실, 곧 자기의 아버지의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수한 시련을 극복한 영웅은 미지의 세계에서 일상의 세계로 귀환하기 전부터 이미 신격화되고 이상향을 엿보게 된다. 오딧세우스는 뛰어난 지혜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고국 이타케로 돌아오는 도중 해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서 숱한 시련을 거듭하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거인족과의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 후 아버지 제우스가 승리를 기념한 천상에서의 향연에 초대받는다. 이는 고난으로 가득찬 그의 생애에 가장 편안한 순간이었다. 붓다 역시 보리수 아래에서 끝없는 정진을 거친 후 해탈을 경험하게 된다.
영웅에게 내려진 모험이 끝나면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단일 신화의 전형인 완전한 순환체계는 영웅에게 지혜의 시문, 황금의 양털, 잠자는 미녀를 인간의 왕국으로 데려오는 또 한번의 수고를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이 은혜가 사회, 국가, 그 전체, 아니면 일반 세계를 재생시키는 데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웅의 전기에서 그 마지막장은 영웅의 죽음 혹은 소멸의 장이다. 여기에서 그의 전 생애가 요약된다. 말할 필요 없이 죽음에 겁을 먹으면 그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아내의 실수로 죽음을 맞이하는 헤라클레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한 것처럼 침착하게 화장대를 세우고 스스로 자진한다. 붓다 역시 죽음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열반으로 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이러한 죽음은 영웅에게는 단지 육체적인 소진에 불과할 뿐 본질적인 소멸로는 보질 않는다. 오히려 모험중에 그가 경험한 이상향으로의 여행으로 생각할 뿐이다.
작가의 뛰어난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식견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신화에 대한 기본적 상식의 문외한에게 이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다. 그러나 신화는 문명의 초기단계를 해석하는 과학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화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상징을 통해 투영하고 있기에 신화의 해석은 숨겨져 있는 비밀을 풀어내는 것 같은 짜릿한 묘미가 있음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신화가 영웅당사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유아기를 지나면서부터 우리도 "모험에의 소명"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면서 친구, 스승과 같은 조력자를 만나고 많은 인생의 시험을 거치면서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이다. 영웅의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의 본래모습이 꿈과 신화 그리고 동화책 속에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다면 그 심연속에 있는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무의식은 왜 신화와 상징을 통해서만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는 비밀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 비밀이 스스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인간의 어두운 그림자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상징의 코드를 이해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그 비밀을 공개하는 것일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그 본질을 아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으로 남겠지만 나와 같이 신화에 깊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처럼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3. 책 속에서]
이 책의 목적은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p6
많은 신화나 인류의 종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상사성이지 상이성은 아니다. 즉 신화의 상사성말이다. p6
저자가 바라기로는, 이러한 자자의 동서양 신화에 대한 비교 해석이 이 세계의 통합을 결실시키려는 작품의 경향에 대해, 종교적 혹은 정치적 제국의 이름으로서가 아닌, 인류의 상호 이해라는 측면에서 그리 초라하지 않는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배다 경은 〈진리는 하나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드러낸다.〉고 했다. p6
프롤로그 - 원질신화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인간의 신화에는 끊임없이 살이 붙어왔고, 이러한 신화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살아있는 영감을 불어넣었다. p14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p14
참으로 놀라운 것은, 상당수의 제의적 시련과 이미지, 정신 분석을 의뢰한 환자가 유아기 고착 상태를 떨치고 미래를 향해 발돋움을 시작하는 순간 꿈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p22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p23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p29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p33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p39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p40
비극과 희극은, 삶을 계시하는 전체성을 본질로 공유하며 죄악(신의 의지에 대한 거역)과 죽음(필멸의 형태에의 동화)의 오염으로부터 정화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사랑해야 하는 하강과 상승인 것이다. p43
신화와 동화의 고유의 사명은, 비극에서 희극에 이르는 어두운 뒤안길에 깔린 특수한 위험과 그 길을 지나는 기술을 드러내는 일이다. p43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이고, 오래전에 잊혀졌던 힘이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p44
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즉 〈분리〉, 〈입문〉, 〈회귀〉의 확대판이다. 이 양식은 원질신화(原質神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p45
제1부 영웅의 모험
1. 출발
꿈에서든, 신화에서든 갑자기 한 사람 생애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단계를 암시하면서 이런 모험에 등장하는 인물은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분위기를 갖는다. p77
현실 생활에서는 자주, 신화나 민간 전승에서도 드물지 않게 소명에 응하지 않는, 조금은 답답한 경우를 만난다. p81
소명을 거부하지 않은 모험 당사자는 영웅적인 편력 도중 첫 번째 보호자를 만난다. 노파나 노인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 보호자는 모험 당사자가 곧 만나게 되는 용과 맞설 호부(護符)를 준다. p93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p96
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p112
2. 입문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신화와 모험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루는 부분도 바로 이 국면이다. p128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p143
새들이 초록빛 숲 그늘에 깃들이듯
사랑은 온유한 마음속에 깃들인다.
이치로 보면
사랑 이전에 온유한 마음이 없었고,
온유한 마음 이전에 사랑도 없었다.
태양이 솟을 때 빛도 발하지니
태양에 앞서 빛은 있을 수 없다.
불길 속이 가장 뜨겁듯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서만 뜨겁게 타오른다. p157
여신과의 만남은 사랑의 은혜를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 단계다. 이 사랑의 은혜는 바로 우리 삶이 누리는 영원성의 그릇과 같은 것이다. p157
세계 도처에 널린 영웅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모험은 일반적인, 어떤 계층에 속하는 사람에게든 그대로 적용된다. p160
창조의 역설, 영원으로서의 시간이라는 양식의 도래는 아버지가 지니는 근원적인 비밀이다. 모든 신학 체계에는 배꼽, 즉 어머니인 생명의 손가락이 닿았던, 끝내 아무도 알 수 없는 아킬레우스 건이 있는 법이다.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 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 p192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지기 몸에 박힌 가시를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p192
신이 남성과 여성의 성격을 두루 갖추는 예는, 신화의 세계에서는 그리 생소하지 않다. p198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도 지엄하신 그들의 주(主)가 가르친 에고, 에고의 세계, 그리고 에고의 종족 신의 정복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식민지주의적 야만성과, 너 죽고 나 죽자 식 전쟁의 선수로 역사에는 더 잘 알려져 있다. p206
무한한 사랑이며, 전능한 보살인 관세음이 지각있는 모든 존재를 포용하고, 굽어보고, 또 그 존재 안에 거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마음 안에는 평화가 있다. p210
보살에 대한 첫 번째 경이로움은 바로 이것, 즉 보살이라는 존재의 양성구유적 성격이다. p213
보살 신화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경이로움은, 보살이 삶과, 삶으로부터 해탈의 차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이다. p213
형상은 빈 것이며, 빈 것은 즉 형상이다. 빈 것은 형상과 다르지 않고 형상은 빈 것과 다르지 않다. 형상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빈 것이며, 빈 것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형상이다. 관념, 이름, 개념 그리고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p216
절대의 마음으로 만유 안에 있는 나를 우러러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속의 삶이 어떠하든 신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p217
영원한 생명이 그들 안에 깃들여 있음을 알 뿐만 아니라 그들과 만물이 사실은 영원한 생명임을 아는 사람은 소원을 성취시키는 나무 숲에 거하며 불사의 영주(靈酒)를 마시고, 들리지 않는 도처의 영원한 화음을 듣는다. 이들을 일러 신선이라고 한다. p218
보살 신화의 세 번째 경이로움은, 첫 번째 경이로움이 두 번째 경이로움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신적인 차원의 언어로 일컬을 때 시간의 세계란 곧 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이다. 아버지에 의해 끼쳐진 생명은 그 안에서 어머니의 어둠과 아버지의 빛으로 합성된다. p223
천상적인 것이 도다. 도는 영원이다. 여기에 이르면 육체가 썩는 것도 두려워할 바 아니다. p248
3. 귀환
근원을 투시함으로써, 혹은 남성이나 여성, 인간이나 동물로 화신한 자의 은혜를 입음으로써 영웅의 임무가 수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모험 당사자인 영웅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p253
승리한 영웅이 여신이나 신의 축복을 획득하고, 그가 속한 사회를 구원할 불사약을 가지고 원상 복귀할 대목이 되면, 영웅 모험의 이 최종 단계에서 초자연적인 후원자에 의한 지원이 따르는 법이다. p257
단일 신화가 완성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적인 실패나 초인간적인 성공이 아닌, 인간적인 성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p269
신화 영역에서 일상 현실로 귀환하는 영웅은 역설적이고 험난한 관문 통과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p280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말하자면 시간을 초월한 세계인 저승과 일상적인 세계인 이승을 두루 돌아다니는 자유는 거장들의 재능에나 어울리는 자유다. p297
신화는, 이미 변모한 신비의 형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 내보이지는 않는다. p297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 at-one-ment〉, 즉 〈자기화해 self-atonement〉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p306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p307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제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암시를 읽어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이 빈사 상태에 빠진 성화(聖畵)는 그 영원히 인간적인 의미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p320
제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 유출
신화 체계란, 전기나 역사, 그리고 우주론으로 오독되어온 심리학이다. p326
우리에게 전승된 신화학적 표상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리는 그러한 표상들이 무의식의 징후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신적 원리의 통제되고 의도된 진술임을 이해해야 한다. p327
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 p328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빛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p332
우주 발생적 순환에 의해 설명되는 철학적 공식이란, 존재의 세 단계를 통한 의식의 순환을 말한다. 그 첫 단계는 깨어나는 체험의 단계, 즉 태양의 조명을 받고, 만물에 공통된 외계 우주의 험난하고 총체적인 사실들을 인식하는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꿈 체험의 단계, 즉 꿈을 꾸는 당사자와는 본질상 동일한 개인적 내부 세계의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를 인식하는 단계다. 세 번째 단계는 깊은 잠에 빠지는 단계, 꿈을 꾸지 않는 지복의 단계다.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삶에 관한 교훈적 체험과 만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소화되어 꿈을 꾸는 당사자의 내적인 힘에 동화되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내부적 통제자가 들어앉아 방 안, 모든 것의 근원이자 끝인 상태, 즉〈마음속에 있는 공간〉안에서 모든 것을 즐기고 의식할 수 있게 된다. p338
우주 발생적 순환은, 비현현의 숙면 영역에서 비롯, 꿈을 통하여 깨어나 있는 대낮, 그리고 다시 꿈을 통하여 시간을 초월한 어둠에 이르는 보편적 의식의 통로로 이해되어야 한다. p339
신화 속에서는 부동하는 원동력, 즉 살아 있는 전능자가 관심의 중심으로 떠오를 때마다 우주의 조형에 대한 초자연적인 자발성이 뒤따른다. p358
민간 신화들은 초자연적 발산물이 공간적 형식을 취해 돌입해 들어오는 순간에만 창조 설화를 흡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신화들은 인간의 상황을 평가한다는 본질적인 점에 있어서 위대한 신화들과 차이가 없다. p373
2. 처녀 잉태
창조자의 부성적 측면보다는 모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신화 체계에서 이 원초적 여성은 태초의 세계를 지배하면서, 남성에게 맡겨졌을 법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원초적 여성은, 배우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처녀다. p375
우주적 여신은 여러 가지 가면을 쓴 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창조의 결과란 다양하고 복잡한 데다, 창조된 세계의 관점에서 경험할 때면 상호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p380
3. 영웅의 변모
영웅이 탄생하는 곳, 혹은 영웅이 도피 또는 추방당했다가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 성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오르는, 머나먼 땅은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배꼽이다. p419
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어진〉사상의 옹호자가 아니라〈이루어지는〉사상의 옹호자다. p422
행동하는 영웅은 우주 순회의 주체이며 처음으로 이 세계를 움직였던 추진력을 생생한 사건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p432
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뜨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 p432
삶의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영웅의 유형이 있다. 즉 성자, 고행자, 출가자로서의 영웅이다. p443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그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p445
4. 소멸
놀랄 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손가락으로 고바르단 산을 들어올릴 수 있고, 자기 몸을 우주의 엄청난 영광으로 채울 수도 있는)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p458
개인이라는 창조된 형상이 결국은 소멸되고 말듯이 우주 역시 소멸된다. p468
에필로그 - 신화와 사회
신화의 해석에는 최종적인 체계가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런 것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신화 체계는, 〈진실만 말하는 고대의 해신(海神)〉프로테우스와 같다. p477
신화 체계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고 했고, 뮐러는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라고 했고,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이라고 했으며,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이라고 했고,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 p478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p478
개인이 실제든, 상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든, 그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의 절연을 의미할 뿐이다. p479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p480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개인의 민주적 이상,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발명, 과학적인 연구 방법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변형시킨 나머지 저 유서 깊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상징의 우주는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p483
신화 체계가 가득 담긴 지평의 꿈에 잠긴, 격리된 사회는 이제 착취의 대상으로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보한 사회 안에서도, 제의 도덕률, 예술이라는 고대 인류 유산의 흔적은 조락(凋落)의 길을 면치 못하고 있다. p484
현대 영웅의 위업은 영혼이 균형을 이루고 있던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대륙의 불을 다시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p485
오늘날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세계적 종교도 일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 이러한 종교들도, 선전과 자화자찬의 도구로서, 갖가지 도장짓기의 요인과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p485
『베다』의 말씀처럼, 「진리는 하나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언표한다.」즉 하나의 노래가 인간이라는 합창대의 갖가지 음색으로 들리는 것이다. p486
인간은 그러나 〈내〉가 아닌 〈너〉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족, 민족, 대륙, 사회적인 지위, 혹은 세기의 이상과 세속적 관습도 우리 모두의 내부에 살아 있는 불멸의, 놀라운 신적인 존재의 척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p488
감히 소명에 응하여, 우리의 운명을 화해시켜야 하는 존재의 거처를 찾아내는 현대적 인간이 현대의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 된다.
니체는 “그 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해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긜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구세주의 십자가를 지는 일-을 나누어 분담하는 것이다. p488
[4.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책 전체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읽는 다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이에 관한 분석자료가 있는지 인터넷을 통해 살펴보면서 가까스로 '영웅의 원형 분석'이라는 짤막한 논문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읽어본 후 아하 이 책이 그러한 내용을 담은 글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너무나 힘든 책임은 분명하다. 우선 책의 흐름이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호기심을 유발하는 면이 있으나 책 내용은 난해하기 그지없다. 이를 본질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동서양을 통괄하는 해박한 신화에 대한 지식 그리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과 융에 대한 저술의 이해가 없이 이 책을 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욕심인 듯하다.
독자를 위해서는 신화에 대한 동서양을 구분하여 서술하는 편이 좋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모든 신화를 두루 섭렵하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으며 이를 동서양 신화로 정리하고 동서양의 신화에는 상이성보다는 상사성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 독자에게 접근하기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되지 않고 페이지의 물리적 양으로 인해 보관용 책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과연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단연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을 거라고 단언하고 싶다.
책의 전개방법도 난해하고 인용하는 글귀들도 하나같이 이해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저자의 저술보다는 역자의 번역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지만 원문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는 신화에 인용하는 프로이트와 융으로 대표되는 정신분석적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저자가 뜻하는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신화의 순수한 의미를 독자에게 알리고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임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글귀가 그리 많지 않음은 프로이트나 융의 저술자체가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들에 대한 저술을 먼저 섭렵한 후 읽기를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끝으로 이 책은 작가가 세계적으로 흩어진 신화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까 너무 광범위하고 우리가 느끼는 신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것이기에 일반 독자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신화와는 너무나 격차가 난다. 부처나 그리스도는 이미 신화가 아니고 종교이며 그들을 영웅의 한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종교인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어 객관성을 결여할 수 있음도 사실이다.
어쨌든 이 책은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한계가 없음을 보여 주었으며 또한 영웅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흔적을 남긴 서적으로 만족해야 하며 책을 얼마나 어렵게 작성할 수 있는지도 알게 해주었다는 것에 보람을 찾아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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