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꾸는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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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송희식은 새로운 문명을 화두로 살아온 변호사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합격했다. 각 지방 지검 검사를 거쳐 현재 로마켓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통부 사단법인 새문명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저서로는 “분배와 성장”-1983
“존재로부터의 해방”-1991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양”-1992
“교육대개혁”-1994
“ 자본주의 우물을 벗어난 문명사”- 1995
“ 남자는 싸우고 여자는 이어간다”- 1996
“ 대공황의 습격” -1998 등이 있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차이에 대한 소개였다. 하지만 실제 읽기 시작하니 차이를 알기 위한 동양철학의 일부의 소개를 다루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일종의 철학개론서라고 할 수 있었다. 초반부터 관중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나로 하여금 재미속으로 이끌었다. 관중이라고 알려져 있는 인물의 재해석은 물론이 그를 사회적 정신의 시조로 명명하고, 석가는 깨달음의 정신으로 그리스 철학을 개념의 정신의 태동으로 신화이야기를 신화적 정신으로 크게 분류하여 인류의 정신이 이 태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관포지교에 등장하는 관중을 지은이는 관자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가 공자보다 150여년 앞서 이미 사회적 정신을 태동시킨 창시자로 보았고 따라서 공자처럼 관자라고 칭한다는 것이다. 이건 왠 오만인가? 하지만 관자가 이룩한 제나라의 정치,경제,사회적 이론은 정말 기가막히게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가능하다는 내용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것은 듣도 보도 못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저자의 해박함이 그대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관자의 사상의 핵심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칭한다. 권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 권위 자체가 아니라 권위에서 나오는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것 다시 말해 신뢰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다. 더욱이 당시 관자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슈인 화폐이론등 경제적 지식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은 세월을 거스르는 일종의 혁명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이책이 주는 가치는 그리스 철학으로 대표되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차이점에 대한 것을 실용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매우 쉽고 편안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사상의 원류를 인식할 수 있었고 동양으로 대표되는 우리가 서양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행동하는 양상에 대한 해결과 이해의 실마리를 주었다.
한편 단순히 이야기로만 이해했던 신화이야기가 수천년동안 내려온 인류의 정신의 산물이며 그 자체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이상의 것을 도입한 반면, 지금은 오히려 물질로 부터 세상을 이해하려한다는 시각의 차이를 깨닫게 해 주고 있다. 더불어 신화의 전문가라고 불리는 조셉 캠벨의 저서에 대한 이해에도 상당부분 도움을 주었다는것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불교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깨달음의 정신의 시초로 표상되는 석가모니의 사상, 특히 연기론과 사성제로 대표되는 석가모니의 깨달음은 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도 아직은 잡히지 않는 정말 말 그대로 석가의 깨달음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했다. 자신의 깨달음이 다른 사람에게는 깨달음으로 다가갈 수 없을 수 있음을 나도 경험했기에 석가의 깨달음이 무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공자는 어떤가? 공자의 유교사상은 종교의 학파가 아닌 계급을 만들었다는 면에서 그 어떤 사상보다 출발이 특이하며 그것이 2500년동안 살아 전해지고 있으면서 아직까지 우리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자가 성인이다라는 말이 왜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공자가 나에게 알게 모르게 끼친 영향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마는 어쨌든 공자의 사상도 나의 호기심의 기폭제가 되었음은 기뻐해야 하는가?
<내가 저자라면>
이책의 저자는 특이하다.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패스해 검사를 하다가 변호사로 활동중이며 새문명아카데미로 활동한 바가 있다고 한다. 먼저 궁금한 점은 이 작가 송희식님이 이런 류의 정신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무척이나 궁금하며, 공부방법도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두권의 책으로 인류의 정신사를 요약해 낸 것을 보면 엄청난 독학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집대성에 오류나 혹은 미진한 면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어렵고 읽기 힘든 부분을 흥미롭게 진행한 저력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그는 이렇게 책을 쓸 수 있었을까? 그의 지식의 보고는 어떤 곳에서 나오는가? 는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속에서 나오는 자동적인 질문이었다.
<인류의 정신사 1권>
1.사회적 정신
-관자의 정신
25> 인간의 정신은 문자가 쓰여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정신적 지평을 였었는데 그것은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이야기의 세계에서 논문의 세계로, 전일적인 세계에서 부분적 세계로의 전환이었다.
25> 관자는 기원전 720년경에 태어나 645년에 죽었다. 텔레스보다 100년 앞서, 석가, 공자보다는 150년 앞서,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보다 350년 앞서 살았던 사람이다. 말하자면 문명사회로 전환하면서 최초로 만나게 되는 사상가가 바로 관자이다.
29>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지략을 가진 사람(관자)이 따로 있고, 그러한 지략을 가진 인재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포숙)도 따로 있으며, 그러한 인재의 정책을 받아들여 쓸 수 있는 사람(환공)도 따로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4> 관자사상의 핵심- 인간과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는 관자 사상의 해석을 위하여 동원한 단어이다. 여기에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여 의사를 소통하는 것만이 아니다.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 어떠한 정책을 쓰는 것 자체가 대중들에게 어떠한 이미지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35> 인간사회를 형성하는 근원적인 기초는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따라서 인간사회를 움직이기 위해서 제기되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35>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인류최초의 정치사상가
1. 상대방 또는 사회 전체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한다.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계속해야 한다.
2. 군사력은 그 자체의 힘이 아니라, 군사력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상대방에 대한 위압감 등)에 의하여 작용한다.
3. 권력도 그 자체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복종해야 한다 등)에 의하여 작용한다.
4.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국민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해 주어야 한다. 부유함을 이룩하는 군주라는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다.
5. 사회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민중의 마음을 규정하는 것이다. 인간사회는 학습에 기초한다. 민중의 마음을 형성하는 학습은 권력자의 윤리적 커뮤니케이션이다.
36>인간과 사회의 기초는 인간의 마음에 있으며, 인간의 마음은 정당성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움직여지고, 그것이 되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해진다는 뜻이다.
40> 신뢰의 커뮤니케이션, 이것이 관자의 패도였던 것이다.
48> 관자의 정치사상은 그 스케일이 천하에 이르고 있다. 본시 정치라는 것은 내정과 외교를 의미한다. 그러나 관자는 단순한 내정외교가 아니라 천하의 질서를 잡는다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50> 관자의 경제원리 – 인류최초의 경제학자
창고가 가득차야만 백성이 예의를 알고 衣食이 풍부해야만 사람은 영욕을 안다. 위에 있는 사람이 절도가 있으면 육친의 결합은 견고하고, 사유가 견고하면 국가 질서가 이루어진다.
관자는 2700년전에 화폐이론과 가격이론, 재정정책 등의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그는 국가사회에 대하여 포괄적인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토지는 정치의 근본이다.
조정은 사회질서의 중추이다.
시장상황은 재화수급의 지표이다.
화폐가치는 경제동태의 반영이다.
재후의 영토로 1천 대의 전차를 낼 수 있다는 것은 군비의 기준을 나타내는 것이다.
[관자의 목민편]
55> 관자는 말하자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업종규제에 해당하는 정책을 사용하여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시책을 시행했다.
59> 관자의 법률,윤리사상- 관자는 법이 법다워야 한다고 했다. 아마 가혹하지도 않으면서도 잘 지킬 수 있는 법이 가장 법다운 법일 것이다.
60> 명령이 실행되지 않는 것은 그 명령이 법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61> 관자의 법다운 법-합리적인 법과 법 답지 않은 법-비합리적인 법의 카테고리
ㅇ 합리성(법다운 법)
ㅇ 법 내용의 커뮤니케이션(정보성) : 법의 내용을 모든 사람이 숙지할
것, 모르는 것을 지킬 수는 없다.
ㅇ 상법(준법자의 이익, 위법자의 불이익) : 법을 어긴자가 결코 이익을 볼
수 없다는 믿음이 형성되는 것
ㅇ 신뢰 : 법과 상벌에 대한 신뢰가 확립되는 것
ㅇ 상위계층의 솔선수범 : 법이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62> 관자의 통치관은 구하고 금하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유효하게 구할 수 있고 금지할 수 있으며 명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66> 관자는 이미 2,700년 전에 이 모든 자원을 통찰했다. 그는 하나의 전투에서 전술적으로 승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정보의 차원이고, 그 보다 중요한 것이 훈련이며, 그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력, 병력, 무기, 공업력, 경제력이라고 보았다. 결국 경제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관자는 환공이 패업을 달성하자고 아무리 주장해도 경제력이 충실해질 때까지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경제력이 충실해지자, 단지 몇 번의 전쟁으로 천하를 제패하였다.
70> 관자의 한계- 관자가 죽자마자 그의 패업은 물거품이 되었다…. 관자에게는 무엇이 부족했을까? 그것은 관자가 체제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체제의 문제란 무엇인가? 한비자의 말을 빌리자면 ‘보통 사람이 정치를 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 때문에 관자는 후대 법가의 비판을 받게 된다.
2.개념적 정신-그리스 정신
74> 그리스인들은 최초로 이야기가 아니라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76>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개념적 사유에 의하여 인간정신세계의 지평을 열었다. 그것은 원시인들의 신화적 세계도 아니고 공자의 읽고 생각하며 사회에서 지혜를 얻는 방식도 아니며 명상이나 신의 계시를 통한 방법과도 다른 아주 독특한 방법이다.
77> 탈레스의 ‘물이 만물의 근원이다.’는 옳든 그르든 이 명제는 실로 인류사에서 위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류는 바야흐로 개념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물은 신이 아니다. 이제 세계를 해석할 때 그것은 당연히 이야기 형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77> 물이 만물의 근원이다라는 명제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명제의 이면에 있는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야말로 위대한 것이다. … 왜냐하면 이제 비로소 인간은 개념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82> 엠페도클레스는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 내는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죽은 지 30일이나 지난 한 여인을 소생시켰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뛰어들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91> 수학이 등장함으로써 세계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물이 세계의 근원이다’ 라는 엉성한 사유로부터 벗어나 좀더 명확하고 체계적인 인간정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된 것이다.
95> 소크라테스의 개념적 사유의 한계를 통찰하면 우리는 스스로 무지함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개념을 만든 것에 불과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개념으로 우리가 과연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101> 형상과 질료를 구분하는 세계관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를 보는 관점으로 형상(form)과 질료(matter)를 구별했다. 설계사는 어떤 건물을 지을 때에 그 건물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린다.(그리고 설계도로 그것을 나타낸다) 바로 이것이 형상이다. 그리고 시멘트와 벽돌로 이러한 형상에 맞추어 건물을 구성한다. 이러한 시멘트와 벽돌이 질료인 것이다.
105>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사유재산제를 옹호했으며 평등을 부인했다.
106>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상의 대단히 중요한 개념들을 범주로 정리했다. 실체,양,질,관계,장소,시간,위치,상태,능동,수동 등이 그것이다…..서구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각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기계론적으로 해서하지 않고 어떤 의지(will)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인간을 떠올린다면 너무나 자연스런 사고방식이다. 우리에게 걸어가는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걸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것은 이러한 의지와 비슷한 것이 그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운동한다고 보았는데 그것을 그는 피시스(physis)라고 불렀다. 오늘날 이것은 보통 자연(nature)으로 번역되지만 생장과 관련된 것이다.
3. 깨달음의 정신-석가의 정신
깨달음의 정신의 세계는 내적인 통찰과 명상을 통해 발겨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다른 정신세계와 구별된다.
116> 석가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은 너무나 당연한 것에 대해 최초로 질문을 제기한 엉뚱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그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한 인도의 사변(개념적 사유)철학을 모두 소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17>C.G.융의 언어를 빌리면 깨달음이란 일상적인 의식이 옅어지고 무의식 내의 심적인 에너지가 집중되어 아키타입archtype(원형)을 자극하면 거기에서 떠오르게 되는 이미지나 아이디어를 가리키는 것이다.
123> 깨달음은 다만 세계의 진면목을 그냥 아는 것이다.
130> 연기법은 우리의 사고습관과 정반대의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른 일체로부터 분리해 내는 것이다. 가령 돌맹이라고 한다면 이 우주에서 돌맹이를 돌멩이 아닌 모든것으로부터 분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분리된 돌멩이를 우리는 존재로 인식한다. 이러한 우리의 존재방식을 ‘존재론적 사고방식’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연기법은 이것과는 정반대로 세계가 불가분의 전체라는 것, 일체의 것은 상호의존된 전일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존재론적 사고방식’과 구분하여 ‘연대성’의 통찰이라고 한다면 연기법은 결국 ‘연대성’의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131> 돌멩이 대신 우리 자신을 적용해 보자. ‘우리가 아는 바의 나 자신’은 결코 진정한 나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정하는 ‘진정한 나’는 실제로는 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기 때문이다.)
132>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141> 우리는 끊임없이 존재를 전제로 사유한다.
148> 고통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 원인을 없애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사성제이다. 그래서 『숫타니파아타』에서는 ‘두 가지 통찰’이라는 이름으로 다루고 있다 연기법으로 설명하면 고통이란 본질을 가진 실체가 아니라 인연에 의하여 연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연을 소멸시키면 고통도 사라진다.
사성제의 결론은 간단하다. 我가 없는데 고통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고통이 문제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지혜가 번뇌를 제거했는가? 나가세나는 주의작용의 특징은 움켜잡는 것이고 지헤의 특징은 끊어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151> 사성제의 기반이 되는 것은 역시 연기법이다. 고통은 어떤 진정한 실체가 아니라 마음의 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 역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수많은 자극과 그것을 받아들여 반응하는 ‘관계들의 총체’이다.
152> 고통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연기이며, 그것은 외부의 자극에 대한 필연적이고 기계적인 반응이 아니며, 외부의 자극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외부 자극의 정도를 조절할 수도 있으며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도 그에 대한 반응을 고통이 아닌 것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천적인 문제다. 이 실천적인 문제에 답하는 실천적ㅇ니 행동이 바로 수행이겠다.
153>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연기법이나 사성제는 모두 자신의 마음을 비우기 위한 지혜이다.다른 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153> 사성제의 근원적인 성격은 고통이 마음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인간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객관적인 상황이 변화하지 않음에도 객관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실체가 아니라 연기(緣起)이기 때문이다.
154> 인간은 고통을 느끼는 감성이 발달해 있으며, 행복에 대한 느낌은 쉽게 무디어짐에 반해 고통의 느낌은 더욱 지속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의 일기장은 비어 있기 일쑤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때, 계속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자가 가난해졌을 때는 오랫동안 고통을 지속적으로 느낀다. 이것이 쇼펜하우어의 염제주의의 논거였다.
155> 석가는 결코 욕망을 약한 것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었다. 욕망 그 자체는 선악을 구별하기 이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 무기(無記)로 규정했다.
156> 당신이 화가 날 때, ‘왜 화가 날까?” 하고 참구해 보라, 당시이 무엇인가 애타게 욕망할 때 왜 그것을 원하는지 진심으로 참구해 보라. 당신이 누군가가 싫어서 견디지 못할 때 왜 그가 싫은지를 참구해 보라. 깊고 깊이 참구해 보면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 자신이 고통받는 이유가 허구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158> 석가가 최초로 연 깨달음의 세계라는 것이 인류의 거대한 정신적 영역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개념과 사유의 세계에서 개척될 수 없는 것이고, 사회적 지혜만으로도 해소될 수 없는것이다.
4. 신화적 정신-원시적 정신
162> 신화적 정신은 세계를 ‘신들의 이야기’로 해석하는 사고방식이다.
165> 신화적 정신이 인간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신들의 이야기로 세계를 해석한다면 오늘날 우리는 인간보다 하위에 있는 돌멩이, 원자, 벤젠, 유전자 등으로 세계를 해석한다는 것이다. 또한 신화적 정신에서는 신들이 여러 가지 욕구나 의지로 행동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결과로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 존재물들의 운동이나 인과관계에 관한 논문을 쓰는 셈이다.
165>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데 있어서 같은 시간에 움직인 거리와 태양 사이에 생긴 면적과 태양의 원호는 같다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케플러의 법칙이다.
166> 신화적 정신에서는 인간이 개입하고 이용하고 예측할 수 있는 법칙들이 없다.
171> 신화적 정신은 대단히 깊은 정신이며 또한 지극히 종합적이고 보편적인 정신이다. 그 이유는 지극히 명백하다. 신화적 정신 내지 원시정신은 한 사람의 정신, 한 시기의 정신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만 년 또는 수억 년 동안 정련되고 축적된 정신이기 때문이다…..신화적 정신은 이러한 참으로 고도한 지식, 기적적인 지식의 기반 위에서 그것과 함께 발전된 정신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것을 ‘신석기시대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171> 종합적인 세계관을 위험을 무릅쓰고 단적으로 결론지어 표현한다면 변증법, 주역, 한의학의 세계관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172> 변증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주역의 원리들이야말로 신화적 정신의 동양적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
문명의 세계-공자의 정신
자연의 나라-노자, 장자의 정신
지상의 나라-묵가, 법가의 정신
하느님의 나라- 예수의 정신
마음의 나라- 혜능의 정신
이기의 세계-주자의 정신
천국에의 도정 – 중세 토미즘
224> 공자는 인에 대하여 공손함, 경건함, 충성스러움, 너그러움, 신의 있음, 민첩함, 은혜로움의 마인드를 열거하고 있다.
226> 인의 마인드는 자기 수양을 통해 형성된다.
228> 도덕에 관한 황금률-己所不欲 勿施於人 이 인류 최초로 언급된다. 이 황금률을 500년이 지난 후에 예수가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었다. ‘ 너희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리고 다시 1800여 년이 지난 후 개념적 사유의 양식으로 칸트에 의해 표현딘다. ‘타인을 목적으로 대접해야 하며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 마인드는 전혀 다르다. 공자의 황금률은 ‘따뜻한 마음’에 서 남에게 못할 짓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예수의 황금률은 ‘사랑의 마인드’에서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며, 칸트의 그것은 자연법칙과는 같은 도덕법칙으로 개념적 사유의 결론으로 도출되는 것이다.
229> 공자가 말하기를 “어진 자는 반드시 용감하지만, 용감한 자라고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
232> 君子는 救諸(제)己하고 小人은 救(구)諸(제)人이라
군자는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잘못을 타인에게서 찾는다.
237> 공자는 종단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계급을 창조했다.
238>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겨하는 자만 같지 못하다.
6.자연의 나라
260> 노자의 도덕경은 성경 다음으로 서양에서 많이 번역된 책이다.
282> 노자는 천지를 어질지 않다고 단언한다. 만물을 마치 하찮은 풀강아지로 본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중국의 정신사에서 신화적 정신으로부터의 해방이다.)
286> 노자의 자연의 이미지는 스스로 그러함이며 바로 무위의 모습니다.
294>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 노자의 결론이다.
7장. 지상의 나라-묵가, 법가의 나라
308> 맹자는 묵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묵자는 인간을 널리 사랑하였고, 이마가 닳고 발꿈치가 벗겨지도록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을 했다. –맹자 “진심자욱상”
310> 묵자는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라 이러한 하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종교가였고 그의 신도들은 종교성을 가진 믿음의 신도들이었다.
328> 공자의 이상은 문명의 세계였다. 이에 반해 법가의 목표는 부국강병이다. 이 두 유파의 중간에 묵가가 이다. 묵가의 이상은 노동자의 도이다.
341> 현실성은 수명이 짧다. 현실에 철저할수록 수명은 더욱 짧아진다.
IP *.200.97.235
송희식은 새로운 문명을 화두로 살아온 변호사로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합격했다. 각 지방 지검 검사를 거쳐 현재 로마켓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통부 사단법인 새문명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저서로는 “분배와 성장”-1983
“존재로부터의 해방”-1991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양”-1992
“교육대개혁”-1994
“ 자본주의 우물을 벗어난 문명사”- 1995
“ 남자는 싸우고 여자는 이어간다”- 1996
“ 대공황의 습격” -1998 등이 있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차이에 대한 소개였다. 하지만 실제 읽기 시작하니 차이를 알기 위한 동양철학의 일부의 소개를 다루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일종의 철학개론서라고 할 수 있었다. 초반부터 관중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나로 하여금 재미속으로 이끌었다. 관중이라고 알려져 있는 인물의 재해석은 물론이 그를 사회적 정신의 시조로 명명하고, 석가는 깨달음의 정신으로 그리스 철학을 개념의 정신의 태동으로 신화이야기를 신화적 정신으로 크게 분류하여 인류의 정신이 이 태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관포지교에 등장하는 관중을 지은이는 관자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가 공자보다 150여년 앞서 이미 사회적 정신을 태동시킨 창시자로 보았고 따라서 공자처럼 관자라고 칭한다는 것이다. 이건 왠 오만인가? 하지만 관자가 이룩한 제나라의 정치,경제,사회적 이론은 정말 기가막히게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가능하다는 내용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것은 듣도 보도 못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저자의 해박함이 그대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관자의 사상의 핵심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칭한다. 권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 권위 자체가 아니라 권위에서 나오는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것 다시 말해 신뢰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다. 더욱이 당시 관자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슈인 화폐이론등 경제적 지식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은 세월을 거스르는 일종의 혁명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이책이 주는 가치는 그리스 철학으로 대표되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차이점에 대한 것을 실용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매우 쉽고 편안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사상의 원류를 인식할 수 있었고 동양으로 대표되는 우리가 서양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행동하는 양상에 대한 해결과 이해의 실마리를 주었다.
한편 단순히 이야기로만 이해했던 신화이야기가 수천년동안 내려온 인류의 정신의 산물이며 그 자체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이상의 것을 도입한 반면, 지금은 오히려 물질로 부터 세상을 이해하려한다는 시각의 차이를 깨닫게 해 주고 있다. 더불어 신화의 전문가라고 불리는 조셉 캠벨의 저서에 대한 이해에도 상당부분 도움을 주었다는것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불교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깨달음의 정신의 시초로 표상되는 석가모니의 사상, 특히 연기론과 사성제로 대표되는 석가모니의 깨달음은 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도 아직은 잡히지 않는 정말 말 그대로 석가의 깨달음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했다. 자신의 깨달음이 다른 사람에게는 깨달음으로 다가갈 수 없을 수 있음을 나도 경험했기에 석가의 깨달음이 무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공자는 어떤가? 공자의 유교사상은 종교의 학파가 아닌 계급을 만들었다는 면에서 그 어떤 사상보다 출발이 특이하며 그것이 2500년동안 살아 전해지고 있으면서 아직까지 우리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자가 성인이다라는 말이 왜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공자가 나에게 알게 모르게 끼친 영향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마는 어쨌든 공자의 사상도 나의 호기심의 기폭제가 되었음은 기뻐해야 하는가?
<내가 저자라면>
이책의 저자는 특이하다.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패스해 검사를 하다가 변호사로 활동중이며 새문명아카데미로 활동한 바가 있다고 한다. 먼저 궁금한 점은 이 작가 송희식님이 이런 류의 정신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무척이나 궁금하며, 공부방법도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두권의 책으로 인류의 정신사를 요약해 낸 것을 보면 엄청난 독학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집대성에 오류나 혹은 미진한 면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어렵고 읽기 힘든 부분을 흥미롭게 진행한 저력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그는 이렇게 책을 쓸 수 있었을까? 그의 지식의 보고는 어떤 곳에서 나오는가? 는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속에서 나오는 자동적인 질문이었다.
<인류의 정신사 1권>
1.사회적 정신
-관자의 정신
25> 인간의 정신은 문자가 쓰여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정신적 지평을 였었는데 그것은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이야기의 세계에서 논문의 세계로, 전일적인 세계에서 부분적 세계로의 전환이었다.
25> 관자는 기원전 720년경에 태어나 645년에 죽었다. 텔레스보다 100년 앞서, 석가, 공자보다는 150년 앞서,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보다 350년 앞서 살았던 사람이다. 말하자면 문명사회로 전환하면서 최초로 만나게 되는 사상가가 바로 관자이다.
29>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지략을 가진 사람(관자)이 따로 있고, 그러한 지략을 가진 인재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포숙)도 따로 있으며, 그러한 인재의 정책을 받아들여 쓸 수 있는 사람(환공)도 따로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4> 관자사상의 핵심- 인간과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는 관자 사상의 해석을 위하여 동원한 단어이다. 여기에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여 의사를 소통하는 것만이 아니다.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 어떠한 정책을 쓰는 것 자체가 대중들에게 어떠한 이미지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35> 인간사회를 형성하는 근원적인 기초는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따라서 인간사회를 움직이기 위해서 제기되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35>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인류최초의 정치사상가
1. 상대방 또는 사회 전체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한다.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계속해야 한다.
2. 군사력은 그 자체의 힘이 아니라, 군사력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상대방에 대한 위압감 등)에 의하여 작용한다.
3. 권력도 그 자체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복종해야 한다 등)에 의하여 작용한다.
4.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국민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해 주어야 한다. 부유함을 이룩하는 군주라는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다.
5. 사회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민중의 마음을 규정하는 것이다. 인간사회는 학습에 기초한다. 민중의 마음을 형성하는 학습은 권력자의 윤리적 커뮤니케이션이다.
36>인간과 사회의 기초는 인간의 마음에 있으며, 인간의 마음은 정당성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움직여지고, 그것이 되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해진다는 뜻이다.
40> 신뢰의 커뮤니케이션, 이것이 관자의 패도였던 것이다.
48> 관자의 정치사상은 그 스케일이 천하에 이르고 있다. 본시 정치라는 것은 내정과 외교를 의미한다. 그러나 관자는 단순한 내정외교가 아니라 천하의 질서를 잡는다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50> 관자의 경제원리 – 인류최초의 경제학자
창고가 가득차야만 백성이 예의를 알고 衣食이 풍부해야만 사람은 영욕을 안다. 위에 있는 사람이 절도가 있으면 육친의 결합은 견고하고, 사유가 견고하면 국가 질서가 이루어진다.
관자는 2700년전에 화폐이론과 가격이론, 재정정책 등의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그는 국가사회에 대하여 포괄적인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토지는 정치의 근본이다.
조정은 사회질서의 중추이다.
시장상황은 재화수급의 지표이다.
화폐가치는 경제동태의 반영이다.
재후의 영토로 1천 대의 전차를 낼 수 있다는 것은 군비의 기준을 나타내는 것이다.
[관자의 목민편]
55> 관자는 말하자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업종규제에 해당하는 정책을 사용하여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시책을 시행했다.
59> 관자의 법률,윤리사상- 관자는 법이 법다워야 한다고 했다. 아마 가혹하지도 않으면서도 잘 지킬 수 있는 법이 가장 법다운 법일 것이다.
60> 명령이 실행되지 않는 것은 그 명령이 법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61> 관자의 법다운 법-합리적인 법과 법 답지 않은 법-비합리적인 법의 카테고리
ㅇ 합리성(법다운 법)
ㅇ 법 내용의 커뮤니케이션(정보성) : 법의 내용을 모든 사람이 숙지할
것, 모르는 것을 지킬 수는 없다.
ㅇ 상법(준법자의 이익, 위법자의 불이익) : 법을 어긴자가 결코 이익을 볼
수 없다는 믿음이 형성되는 것
ㅇ 신뢰 : 법과 상벌에 대한 신뢰가 확립되는 것
ㅇ 상위계층의 솔선수범 : 법이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62> 관자의 통치관은 구하고 금하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유효하게 구할 수 있고 금지할 수 있으며 명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66> 관자는 이미 2,700년 전에 이 모든 자원을 통찰했다. 그는 하나의 전투에서 전술적으로 승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정보의 차원이고, 그 보다 중요한 것이 훈련이며, 그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력, 병력, 무기, 공업력, 경제력이라고 보았다. 결국 경제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관자는 환공이 패업을 달성하자고 아무리 주장해도 경제력이 충실해질 때까지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경제력이 충실해지자, 단지 몇 번의 전쟁으로 천하를 제패하였다.
70> 관자의 한계- 관자가 죽자마자 그의 패업은 물거품이 되었다…. 관자에게는 무엇이 부족했을까? 그것은 관자가 체제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체제의 문제란 무엇인가? 한비자의 말을 빌리자면 ‘보통 사람이 정치를 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 때문에 관자는 후대 법가의 비판을 받게 된다.
2.개념적 정신-그리스 정신
74> 그리스인들은 최초로 이야기가 아니라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76>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개념적 사유에 의하여 인간정신세계의 지평을 열었다. 그것은 원시인들의 신화적 세계도 아니고 공자의 읽고 생각하며 사회에서 지혜를 얻는 방식도 아니며 명상이나 신의 계시를 통한 방법과도 다른 아주 독특한 방법이다.
77> 탈레스의 ‘물이 만물의 근원이다.’는 옳든 그르든 이 명제는 실로 인류사에서 위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류는 바야흐로 개념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물은 신이 아니다. 이제 세계를 해석할 때 그것은 당연히 이야기 형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77> 물이 만물의 근원이다라는 명제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명제의 이면에 있는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야말로 위대한 것이다. … 왜냐하면 이제 비로소 인간은 개념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82> 엠페도클레스는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 내는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죽은 지 30일이나 지난 한 여인을 소생시켰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뛰어들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91> 수학이 등장함으로써 세계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물이 세계의 근원이다’ 라는 엉성한 사유로부터 벗어나 좀더 명확하고 체계적인 인간정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된 것이다.
95> 소크라테스의 개념적 사유의 한계를 통찰하면 우리는 스스로 무지함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개념을 만든 것에 불과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개념으로 우리가 과연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101> 형상과 질료를 구분하는 세계관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를 보는 관점으로 형상(form)과 질료(matter)를 구별했다. 설계사는 어떤 건물을 지을 때에 그 건물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린다.(그리고 설계도로 그것을 나타낸다) 바로 이것이 형상이다. 그리고 시멘트와 벽돌로 이러한 형상에 맞추어 건물을 구성한다. 이러한 시멘트와 벽돌이 질료인 것이다.
105>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사유재산제를 옹호했으며 평등을 부인했다.
106>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상의 대단히 중요한 개념들을 범주로 정리했다. 실체,양,질,관계,장소,시간,위치,상태,능동,수동 등이 그것이다…..서구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각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기계론적으로 해서하지 않고 어떤 의지(will)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인간을 떠올린다면 너무나 자연스런 사고방식이다. 우리에게 걸어가는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걸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것은 이러한 의지와 비슷한 것이 그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운동한다고 보았는데 그것을 그는 피시스(physis)라고 불렀다. 오늘날 이것은 보통 자연(nature)으로 번역되지만 생장과 관련된 것이다.
3. 깨달음의 정신-석가의 정신
깨달음의 정신의 세계는 내적인 통찰과 명상을 통해 발겨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다른 정신세계와 구별된다.
116> 석가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은 너무나 당연한 것에 대해 최초로 질문을 제기한 엉뚱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그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한 인도의 사변(개념적 사유)철학을 모두 소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17>C.G.융의 언어를 빌리면 깨달음이란 일상적인 의식이 옅어지고 무의식 내의 심적인 에너지가 집중되어 아키타입archtype(원형)을 자극하면 거기에서 떠오르게 되는 이미지나 아이디어를 가리키는 것이다.
123> 깨달음은 다만 세계의 진면목을 그냥 아는 것이다.
130> 연기법은 우리의 사고습관과 정반대의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른 일체로부터 분리해 내는 것이다. 가령 돌맹이라고 한다면 이 우주에서 돌맹이를 돌멩이 아닌 모든것으로부터 분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분리된 돌멩이를 우리는 존재로 인식한다. 이러한 우리의 존재방식을 ‘존재론적 사고방식’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연기법은 이것과는 정반대로 세계가 불가분의 전체라는 것, 일체의 것은 상호의존된 전일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존재론적 사고방식’과 구분하여 ‘연대성’의 통찰이라고 한다면 연기법은 결국 ‘연대성’의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131> 돌멩이 대신 우리 자신을 적용해 보자. ‘우리가 아는 바의 나 자신’은 결코 진정한 나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정하는 ‘진정한 나’는 실제로는 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기 때문이다.)
132>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141> 우리는 끊임없이 존재를 전제로 사유한다.
148> 고통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 원인을 없애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사성제이다. 그래서 『숫타니파아타』에서는 ‘두 가지 통찰’이라는 이름으로 다루고 있다 연기법으로 설명하면 고통이란 본질을 가진 실체가 아니라 인연에 의하여 연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연을 소멸시키면 고통도 사라진다.
사성제의 결론은 간단하다. 我가 없는데 고통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고통이 문제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지혜가 번뇌를 제거했는가? 나가세나는 주의작용의 특징은 움켜잡는 것이고 지헤의 특징은 끊어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151> 사성제의 기반이 되는 것은 역시 연기법이다. 고통은 어떤 진정한 실체가 아니라 마음의 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 역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수많은 자극과 그것을 받아들여 반응하는 ‘관계들의 총체’이다.
152> 고통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연기이며, 그것은 외부의 자극에 대한 필연적이고 기계적인 반응이 아니며, 외부의 자극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외부 자극의 정도를 조절할 수도 있으며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도 그에 대한 반응을 고통이 아닌 것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천적인 문제다. 이 실천적인 문제에 답하는 실천적ㅇ니 행동이 바로 수행이겠다.
153>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연기법이나 사성제는 모두 자신의 마음을 비우기 위한 지혜이다.다른 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153> 사성제의 근원적인 성격은 고통이 마음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인간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객관적인 상황이 변화하지 않음에도 객관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실체가 아니라 연기(緣起)이기 때문이다.
154> 인간은 고통을 느끼는 감성이 발달해 있으며, 행복에 대한 느낌은 쉽게 무디어짐에 반해 고통의 느낌은 더욱 지속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의 일기장은 비어 있기 일쑤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때, 계속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자가 가난해졌을 때는 오랫동안 고통을 지속적으로 느낀다. 이것이 쇼펜하우어의 염제주의의 논거였다.
155> 석가는 결코 욕망을 약한 것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었다. 욕망 그 자체는 선악을 구별하기 이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 무기(無記)로 규정했다.
156> 당신이 화가 날 때, ‘왜 화가 날까?” 하고 참구해 보라, 당시이 무엇인가 애타게 욕망할 때 왜 그것을 원하는지 진심으로 참구해 보라. 당신이 누군가가 싫어서 견디지 못할 때 왜 그가 싫은지를 참구해 보라. 깊고 깊이 참구해 보면 자신이 화가 나는 이유, 자신이 고통받는 이유가 허구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158> 석가가 최초로 연 깨달음의 세계라는 것이 인류의 거대한 정신적 영역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개념과 사유의 세계에서 개척될 수 없는 것이고, 사회적 지혜만으로도 해소될 수 없는것이다.
4. 신화적 정신-원시적 정신
162> 신화적 정신은 세계를 ‘신들의 이야기’로 해석하는 사고방식이다.
165> 신화적 정신이 인간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신들의 이야기로 세계를 해석한다면 오늘날 우리는 인간보다 하위에 있는 돌멩이, 원자, 벤젠, 유전자 등으로 세계를 해석한다는 것이다. 또한 신화적 정신에서는 신들이 여러 가지 욕구나 의지로 행동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결과로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 존재물들의 운동이나 인과관계에 관한 논문을 쓰는 셈이다.
165>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데 있어서 같은 시간에 움직인 거리와 태양 사이에 생긴 면적과 태양의 원호는 같다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케플러의 법칙이다.
166> 신화적 정신에서는 인간이 개입하고 이용하고 예측할 수 있는 법칙들이 없다.
171> 신화적 정신은 대단히 깊은 정신이며 또한 지극히 종합적이고 보편적인 정신이다. 그 이유는 지극히 명백하다. 신화적 정신 내지 원시정신은 한 사람의 정신, 한 시기의 정신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만 년 또는 수억 년 동안 정련되고 축적된 정신이기 때문이다…..신화적 정신은 이러한 참으로 고도한 지식, 기적적인 지식의 기반 위에서 그것과 함께 발전된 정신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것을 ‘신석기시대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171> 종합적인 세계관을 위험을 무릅쓰고 단적으로 결론지어 표현한다면 변증법, 주역, 한의학의 세계관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172> 변증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주역의 원리들이야말로 신화적 정신의 동양적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
문명의 세계-공자의 정신
자연의 나라-노자, 장자의 정신
지상의 나라-묵가, 법가의 정신
하느님의 나라- 예수의 정신
마음의 나라- 혜능의 정신
이기의 세계-주자의 정신
천국에의 도정 – 중세 토미즘
224> 공자는 인에 대하여 공손함, 경건함, 충성스러움, 너그러움, 신의 있음, 민첩함, 은혜로움의 마인드를 열거하고 있다.
226> 인의 마인드는 자기 수양을 통해 형성된다.
228> 도덕에 관한 황금률-己所不欲 勿施於人 이 인류 최초로 언급된다. 이 황금률을 500년이 지난 후에 예수가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었다. ‘ 너희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리고 다시 1800여 년이 지난 후 개념적 사유의 양식으로 칸트에 의해 표현딘다. ‘타인을 목적으로 대접해야 하며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 마인드는 전혀 다르다. 공자의 황금률은 ‘따뜻한 마음’에 서 남에게 못할 짓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예수의 황금률은 ‘사랑의 마인드’에서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며, 칸트의 그것은 자연법칙과는 같은 도덕법칙으로 개념적 사유의 결론으로 도출되는 것이다.
229> 공자가 말하기를 “어진 자는 반드시 용감하지만, 용감한 자라고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
232> 君子는 救諸(제)己하고 小人은 救(구)諸(제)人이라
군자는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잘못을 타인에게서 찾는다.
237> 공자는 종단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계급을 창조했다.
238>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겨하는 자만 같지 못하다.
6.자연의 나라
260> 노자의 도덕경은 성경 다음으로 서양에서 많이 번역된 책이다.
282> 노자는 천지를 어질지 않다고 단언한다. 만물을 마치 하찮은 풀강아지로 본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중국의 정신사에서 신화적 정신으로부터의 해방이다.)
286> 노자의 자연의 이미지는 스스로 그러함이며 바로 무위의 모습니다.
294>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 노자의 결론이다.
7장. 지상의 나라-묵가, 법가의 나라
308> 맹자는 묵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묵자는 인간을 널리 사랑하였고, 이마가 닳고 발꿈치가 벗겨지도록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을 했다. –맹자 “진심자욱상”
310> 묵자는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라 이러한 하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종교가였고 그의 신도들은 종교성을 가진 믿음의 신도들이었다.
328> 공자의 이상은 문명의 세계였다. 이에 반해 법가의 목표는 부국강병이다. 이 두 유파의 중간에 묵가가 이다. 묵가의 이상은 노동자의 도이다.
341> 현실성은 수명이 짧다. 현실에 철저할수록 수명은 더욱 짧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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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 | 군주론(20060630) | 이미경 | 2006.06.30 | 2892 |
539 | 군주론-세상에 나와서는 안될 책 [2] | 도명수 | 2006.06.28 | 2761 |
538 |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20060624) [3] | 이미경 | 2006.06.26 | 2335 |
537 | 생각의 지도-서양과 동양의 시각 | 꿈꾸는간디 | 2006.06.26 | 3941 |
536 |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도명수 | 2006.06.26 | 2516 |
535 |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 [4] | 정경빈 | 2006.06.25 | 3139 |
534 | 생각의 지도 [2] | 김귀자 | 2006.06.25 | 2892 |
533 | 생각의 지도 [2] | 한명석 | 2006.06.25 | 2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