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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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 마르코 폴로 저, 김호동 역, 사계절
◆
무려 17년 동안을 여행한 ‘기록서’다.
1년을 여행하면서도 나는 사실 힘이 부쳤는데, 17년 동안을 세계여행 하면서도 이렇게 세밀한 묘사와 기록을 할 수 있었던 마르코 폴로에 묘한 부러움과 호기심이 일어난다.
마르코 폴로를 검색하니, 갖가지 자료들과 함께 ‘마르코 폴로; the missing chapter’ 라는 멋진 제목의 영화가 나온다.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동방견문록의 마지막 장을 마르코 폴로가 기록하던 순간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는 1996년 작이란다. 매우 흥미진진할 것 같다. 책에서 읽고 상상한 만큼의 광대한 스케일을 영화가 표현해낼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
책은 “내가 말하 건데, 이야기 하건데, ~함을 알아야 한다.”는 식의 말투를 그대로 차용함으로써 웃기면서도 生生도를 높였다. 마치 마르코가 앞에 앉아 이야기 하고 있고, 내가 받아 적는 기분이랄까. 마치 믿지 않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내가 말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믿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마르코 폴로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가 죽는 순간, 책의 내용이 거짓임을 시인하라고 종용했으나, 그는 끝까지 거부했다. 그에겐 모든 것이 진실이었으므로.
나는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함을 믿는다.
신화가 역사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믿는다.
꿈이 현실보다 더 강력하며
희망이 항상 어려움을 극복해 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웃음이며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걸 나는 믿는다.
-로버트 풀검
나는 무려 600년 전의 과거를 읽고 있다. 돈 주고도 못할 여행을, 제대로 지적여행으로 통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믿지 못하지만, 재미있었던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했다. 때론 마르코의 관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종교가 과학과 철학을 지배하던 당시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싶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눈으로 보아야만 믿고, 내가 알고 있는 세계를 전부라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의 대단한 착각일 수 있다는 것, 영화 맨인블랙이 보여주었다. 내가 잘 가던 카페 주인이 목이 막 돌아가는 외계인인지 누가 알겠는가? 911 테러가 미국의 음모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Who knows, nobody knows!
나는 작가의 냄새가 나는 책이 좋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삶이 좋은 향일 때, 늘 곁에 두고 싶다. 여기서는 특별히 그의 냄새를 맡을 순 없었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특별한 기교 없이도 살아 숨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몇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동방견문록이 거짓말이니, 진실이니 논란이 여전하다. 철저한 고증이 없어도, 나는 이 책이 천만금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중노인이니, 황금의 섬 이야기가 설사 거짓이면 어떠랴.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가도록 사람들을 만든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동방견문록은 간만에 쉬엄쉬엄 뒤적여 가며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방에 배 깔고 누워 뒤적거리며 듣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 들었다. 중간에 빼먹은 이야기도 있을 터이다. 마르코 폴로는 사라센 놈이니, 우상숭배자들이니 말하고 있지만, 눈살 찌푸려질 만큼 치우쳐진 입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으론 그런 말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관찰하고 있었을 마르코가 떠오른다. 동방견문록도 제목만 알아두고 늘 처박아 두던 ‘고전’에 불과했는데, 읽어보니 무척 재밌었다. 다가가기 쉬웠다.
◆◈◆
마르코 폴로가 지어서 만들어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진실이라고 들은’ 그대로를 옮겼을 뿐이며 또 자신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허구’와 ‘상상’의 일화들을 통해 그 자신 및 동시대인들의 관념세계의 일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0p
여기서 여러분에게 케르만 왕국에서 행해진 실험 한 가지를 소개해 주겠다. 케르만의 주민들은 착하고 순박하고 겸손하고 평화로우며 힘닿는 데 까지 서로를 도와준다. 그래서 케르만의 왕은 그의 현자들이 앞에 있을 때 그들을 향해서 “경들! 우리 지역과 그토록 가까이에 있는 페르시아 왕국에는 서로를 끊임없이 살육하는 사악하고 못된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들 사이에서는 남을 해치는 일도 남에게 성내는 일도 생기지 않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소.” 라고 말했다. 현자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땅에 바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중략) 흙을 페르시아 각지에서 실어오게 해 그 흙이 도착하자 방안에 타르를 칠하듯 깔도록 한 뒤, 카펫을 덮어 그 위에 있어도 미세한 먼지가 묻지 않도록 했다. 그러고는 그 방안에서 식사를 했는데, 음식을 먹고 난 즉시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하며 대들었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제서야 비로소 국왕은 땅이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선언했다. -1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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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7년 동안을 여행한 ‘기록서’다.
1년을 여행하면서도 나는 사실 힘이 부쳤는데, 17년 동안을 세계여행 하면서도 이렇게 세밀한 묘사와 기록을 할 수 있었던 마르코 폴로에 묘한 부러움과 호기심이 일어난다.
마르코 폴로를 검색하니, 갖가지 자료들과 함께 ‘마르코 폴로; the missing chapter’ 라는 멋진 제목의 영화가 나온다.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동방견문록의 마지막 장을 마르코 폴로가 기록하던 순간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는 1996년 작이란다. 매우 흥미진진할 것 같다. 책에서 읽고 상상한 만큼의 광대한 스케일을 영화가 표현해낼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
책은 “내가 말하 건데, 이야기 하건데, ~함을 알아야 한다.”는 식의 말투를 그대로 차용함으로써 웃기면서도 生生도를 높였다. 마치 마르코가 앞에 앉아 이야기 하고 있고, 내가 받아 적는 기분이랄까. 마치 믿지 않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내가 말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믿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마르코 폴로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가 죽는 순간, 책의 내용이 거짓임을 시인하라고 종용했으나, 그는 끝까지 거부했다. 그에겐 모든 것이 진실이었으므로.
나는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함을 믿는다.
신화가 역사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믿는다.
꿈이 현실보다 더 강력하며
희망이 항상 어려움을 극복해 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웃음이며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걸 나는 믿는다.
-로버트 풀검
나는 무려 600년 전의 과거를 읽고 있다. 돈 주고도 못할 여행을, 제대로 지적여행으로 통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믿지 못하지만, 재미있었던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했다. 때론 마르코의 관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종교가 과학과 철학을 지배하던 당시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싶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눈으로 보아야만 믿고, 내가 알고 있는 세계를 전부라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의 대단한 착각일 수 있다는 것, 영화 맨인블랙이 보여주었다. 내가 잘 가던 카페 주인이 목이 막 돌아가는 외계인인지 누가 알겠는가? 911 테러가 미국의 음모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Who knows, nobody knows!
나는 작가의 냄새가 나는 책이 좋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삶이 좋은 향일 때, 늘 곁에 두고 싶다. 여기서는 특별히 그의 냄새를 맡을 순 없었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특별한 기교 없이도 살아 숨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몇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동방견문록이 거짓말이니, 진실이니 논란이 여전하다. 철저한 고증이 없어도, 나는 이 책이 천만금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중노인이니, 황금의 섬 이야기가 설사 거짓이면 어떠랴.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가도록 사람들을 만든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동방견문록은 간만에 쉬엄쉬엄 뒤적여 가며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방에 배 깔고 누워 뒤적거리며 듣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 들었다. 중간에 빼먹은 이야기도 있을 터이다. 마르코 폴로는 사라센 놈이니, 우상숭배자들이니 말하고 있지만, 눈살 찌푸려질 만큼 치우쳐진 입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으론 그런 말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관찰하고 있었을 마르코가 떠오른다. 동방견문록도 제목만 알아두고 늘 처박아 두던 ‘고전’에 불과했는데, 읽어보니 무척 재밌었다. 다가가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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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가 지어서 만들어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진실이라고 들은’ 그대로를 옮겼을 뿐이며 또 자신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허구’와 ‘상상’의 일화들을 통해 그 자신 및 동시대인들의 관념세계의 일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0p
여기서 여러분에게 케르만 왕국에서 행해진 실험 한 가지를 소개해 주겠다. 케르만의 주민들은 착하고 순박하고 겸손하고 평화로우며 힘닿는 데 까지 서로를 도와준다. 그래서 케르만의 왕은 그의 현자들이 앞에 있을 때 그들을 향해서 “경들! 우리 지역과 그토록 가까이에 있는 페르시아 왕국에는 서로를 끊임없이 살육하는 사악하고 못된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들 사이에서는 남을 해치는 일도 남에게 성내는 일도 생기지 않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소.” 라고 말했다. 현자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땅에 바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중략) 흙을 페르시아 각지에서 실어오게 해 그 흙이 도착하자 방안에 타르를 칠하듯 깔도록 한 뒤, 카펫을 덮어 그 위에 있어도 미세한 먼지가 묻지 않도록 했다. 그러고는 그 방안에서 식사를 했는데, 음식을 먹고 난 즉시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하며 대들었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제서야 비로소 국왕은 땅이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선언했다. -1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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