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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28일 16시 03분 등록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20

[1. 저자에 대하여]

오동환은 1939년 강원도 횡성 출생으로 중앙대 국문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 기자, 경향신문 기자, 특집부 차장, 정경문화 부장대우, 심의위원, 논설위원을 거쳐 현재 강원도민일보 논설위원(비상임), 한국문인협회 회원(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우리말 에세이 『우리말 산책』『개나라 말 닭나라 국어』『말글뜻』, 세태비평 에세이 『겨울이 가면 겨울이 오는 나라』『누가 돼지를 잡겠다고 약속했는가』, 시집『밥풀인가 음절인가 사랑인가』『해바라기는 선글라스를 끼지 않는다』『기립박수』『불을 먹고 사는 새』등이 있다.

저자도 꽤나 우리나라말을 좋아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국문과 출신으로 근본적으로 단어를 연구하고 글을 작성하는 일이 본업이기는 하지만 글을 사랑하고 단어를 찾는 작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런 발상을 갖고 저술활동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사고의 저변을 통해 독특한 제목의 책을 저술하기에 이르는데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글자로 되어있다’라는 책이다. 이것은 한글에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지만 읽다보면 정말 한음절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영감(靈感)있는 책(冊)임을 알 수 있다.


[2. 책을 읽고 나서]

일전에 연구원의 과제를 제출할 때 나는 글자의 소중함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출발한 것이 사전에서 좋은 글자들을 모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글자의 소중함에 대한 책들을 읽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인터넷이나 서점들을 뒤적이면서 고른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나도 좋은 글자를 찾는 활동에서 한 글자의 힘을 느낄 때가 많았다. 우리의 활동에서 진짜 중요한 글자 중 한 글자가 유독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일전에 한 글자에 대한 컬럼을 쓰면서 이미 한 글자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를 다시 한번 언급하면 이러한 사실을 조금은 더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필수적인 의식주(衣食住)가 모두 우리 말로 한 글자이다. 즉 옷, 밥, 집이 그것이다. 놀랍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할 우리 신체 구조 대부분이 한 글자로 구성되어있다. 몸이 그렇고 피, 뇌, 뼈, 코, 입, 눈, 이, 귀, 손, 발, 간, 장, 혀, 침, 폐, 젖, 목, 털, 배, 위, 골, 볼, 턱, 등, 땀, 때, 숨, 키 정말 이렇게 많단 말인가.

태어나자마자 시작된 삶은 어떤가. 우리는 이것 때문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사라지고 없어지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삶에서 근원하여 사유(思惟)과 생기고 철학이 발생하며 인생이 펼쳐지지 않는가. 이것이 없다면 무엇이 소용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들이 둘러보고 그들이 둘러싼 중요한 자연세계 속에 한 글자가 무지기수다. 해와 달, 땅, 물, 불, 꽃, 산, 들, 강, 풀, 숲, 별, 비, 길, 흙, 샘, 못, 밤, 낮 등 이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하고 시를 짓고 풍류를 읊었지 않았던가.

그러한 글자여행에 관한 책을 찾던 중 내손에 처음 잡힌 것이 이 책이었다. 저자는 한 글자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데 그 중 저자 나름대로 40개의 단어를 정했다. 그것은 몸, 뇌, 뼈, 살, 피, 넋, 밥, 잠, 옷, 집, 땅, 흙, 일, 땀, 돈, 꿈, 복, 말, 글, 책, 앎, 길, 임, 벗, 술, 물, 강, 비, 불, 해, 달, 산, 숲, 풀, 꽃, 약, 힘, 때, 삶이다.

이상의 글자에 대해 깊이 있게 통찰한 내용이 책의 전체 내용을 에워싸고 있다.

첫째, 글자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가 저자의 학자다운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는 한문에 대한 다양한 공부가 선행된 듯하다. 한자조어가 우리 사전에 없는 내용이 즐비하게 펼쳐지는 모습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셋째는 외국의 고문헌들을 많이 섭렵한 흔적들이 다분하다. 역사, 신화, 전기, 유명한 저자 들이 책 곳곳에 언급되어 있다.

40개의 한 글자로 된 단어를 가지고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작성할 수 있는 저자의 식견이 놀랍기도 하고 그 많은 저작들을 통독하고 이해하여 책에 인용한 내용에 감복되며 인생의 저변에 깔려있는 철학적 냄새도 물씬 풍겨 책의 깊이를 더해준다.

글자의 여행은 끝이 없어 이러한 단어의 배열이라면 계속해서 2탄 3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도 들지만 아직 저자는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 것 같다. 나온다면 계속해서 탐독할 계획이며 이를 토대로 나만의 글자 여행을 더욱 감칠 맛나게 할 작정이다.

이 책은 좋아하는 글자를 얻는 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유익한 책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3. 책 속에서]

1. 몸

인간의 몸=흙이다. 기독교 성경의 정의가 그렇다. p9

인간의 몸은 위대하다. 과연 그런가. 그런데 왜 몸의 물질적인 값어치는 단돈 몇천원, 끽해야 단돈 1만원 값밖에 되지 않는가. p13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사후를 염려해서 그랬던 건 아닐까. 인간의 몸뚱이 재료로 값비싼 보석을 썼을 경우 사후에 그 푹푹 썩어 들어가는 시체를 놓고 하이에나처럼 독수리 떼처럼 아귀다툼을 벌일 것을 염려해서 그랬던 건 아닐까. p14

인간의 몸은 왜 쉬지 못하는가. 왜 인간의 몸은 태어나면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p16

인간의 몸은 그렇게 설계하는 게 아니었다. 자동차처럼 항공기처럼 인간의 몸뚱이도 엔진을 끄고 발동을 끄고 조용히 쉬도록 만들었어야 했고 당초에 그렇게 설계되었어야 옳았다. p17

2. 뇌

왜 무슨 이유로 심장이 멈추는 심장사가 되면 뇌는 즉시 심장 뒤를 따라 죽는데 반해 뇌가 먼저 죽는 뇌사가 왔을 때는 왜 무엇 때문에 심장은 즉시 뇌를 따라 죽지 않는 것인가. p22

그게 정반대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심장이 죽을 경우 뇌는 즉시 따라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대로 뇌가 죽으면 심장은 당연히 즉각 따라 죽어야 할 것이 아닌가. p22

3. 뼈

왜 강직한 기질의 쓸만한 사람, 용감하게도 임금의 허물을 서슴없이 아뢰고 직간하는 신하를 ‘뼈다귀 신하’ 즉 골경지신(骨骾之臣)이라 하는 것인가. p28

뼈 있는 집안, 뼈대 있는 집안은 또 무엇인가. 그런 집안에 뼈대 하나 없이 살과 피만 흐드러지고 흥건한 집안도 다 있다는 것인가 무엇인가. p29

4. 살

신은 미녀의 육신을 만들 때 잠을 자지 않았다. 몰입했고 탐닉했고 도취했다. 몰아지경에 폭 빠졌다. 신 자신의 작품을 신 자신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신은 놀랐고 신은 감탄했고 신은 찬탄했고 신은 자부심을 느꼈고 만끽했다. 그리고 반했다. 하지만 보통 인간의 살덩어리, 보통 인간의 육체는 천박한 속물의 대명사로 꼽힌다. p33

5. 피

같은 사람의 피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체위에 관계없이 그 피의 순도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동맥과 정맥의 피, 그 순도의 차이다. p37

인간에겐 피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헤모포비아 혈액 공포증이다. p39

6. 넋

누가 있거든 대답해 보라. 인간의 넋과 몸은 둘인가 하나인가. 인간의 몸이 죽으면 넋도 죽는가 넋만은 몸을 탈출해 살아 있고 계속 살아가는가. p43

정신은 위대하다. 정신은 육체를 지배하고 질병을 지배하고 행복을 지배하고 운명을 지배하고 그리고 세상 만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p51

얼 빠진 사람, 넋 나간 사람, 정신 나간 사람, 정신 내보낸 사람과 돈도 안받고 정신 판 사람 ‘정신 팔린 사람’이 아닌 이상 그의 정신은 위대하다. p51

7. 밥

법 먹는 것은 죄가 없다고 했다. 설혹 배가 고파 밥을 훔쳐 먹는다 하더라도 그 죄는 대단치 않다고 했다. p60

이식위천(以食爲天)이라 했다. 밥 먹는 것으로써 하늘을 삼는다. 즉 밥 먹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p60

8. 잠

잠이란 무엇인가. 잠의 아비가 밥이요 잠의 형이 죽음이며 잠의 아들이 꿈이다. 이 말은 뒤집으면 잠이란 밤의 아들이요 죽음의 동생이며 꿈의 아버지가 된다. p75

죽음의 연습이 잠이고 죽음의 연습이 삶이다. ‘삶=죽음 연습’이다. p78

9. 옷

옷에 대한 인류 최초의 수요와 필요와 꿈, 그런 걸 예감케 하기 위해 신은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그들의 벌거숭이 패션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수치스런 부분인 거기와 거시기를 무화과 잎사귀로 가리도록 했던 것이다. p83

우리의 전통적인 한복이란 한 마디로 두 마디로 시각용 의상이다. 쇼 윈도 속에나 걸어 놓고 보면 어울리는 관상용 의상이다. p93

10. 집

인간은 어디를 가나 집(우주) 속에 있고 집(우주) 속을 떠날 수 없다. 우주 전체가, 우주 자체가 집이기 때문에 집 없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영국의 사상가 칼라일이 그의 의상철학에서 우주를 하나의 옷으로 여겼듯이 우주는 또한 하나의 집이기도 한 그 자체이다. p101

‘유소씨(有巢氏)’라는 이름에서도 직감할 수 있듯이 오늘날 인간이 짓고 사는 주택의 원형질, 주택의 원형, 주택의 원류는 단연코 새집이고 한사코 새집이다. 태초에 새가 사는 새집이 있었고 그 다음에 새집에서 배워 지은 인간의 집이 있었다. p111


11. 땅

땅은 만물의 어머니다. 아버지인 하늘을 바라보며 땅은 만물을 낳았다. p113

숱한 목숨이 땅으로부터 오고 또 온다. 땅에 와 땅을 파고 마냥 땅과 비벼댄다. 땅에 부대끼고 땅에 매달린다. 땅과 씨름하고 또 씨름하며 땅에 살다 땅으로 돌아간다. p122

12. 흙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생어토귀어토(生於土歸於土)라고 했다. 흙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돌아가는가. 한 줌의 흙, 일촬토(一撮土), 일악토(一握土)로 돌아간다. p124

그러니 눈만 뜨면 갈아 먹고 파 먹고 집을 짓고 빌딩을 세우는가 하면 지하철이다 땅굴이다 뭐다 온통 들쑤시고 다니는 인간이란 늘 죽은 흙, 사토와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p128


13. 일

일이란 무엇인가. ‘곤충기’를 써 유명한 파브르는 ‘일하는 것만이 살고 있는 증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일을 안하거나 못하는 것은 ‘죽고 있는 증거’란 말인가. p129

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 층생첩출(層生疊出)이라는 말이 있다. 일이 겹치고 자꾸만 쌓일수록 그 인생은 즐겁지 않을 수 없고 눈 앞에 할 일이 태산 같을수록, 코앞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일수록 그 인생은 즐겁지 않을 수 없다. p131

일을 하되 그 일 그대로 정당해야 일이다. 사기사(事其事)라 했다. 다음 세 가지는 피하는 게 좋다. 첫째가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드는 사람’이다. 둘째는 ‘떡국이 농간을 하는’ 그런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 셋째로 피해야 할 일은 이른바 시근종태(始勤終怠)라는 고질병이다. p134-p135

14. 땀

얼굴에 땀을 흘리면 빵이 아닌 행복을 얻을 것이라고 강조한 사람은 영국의 저널리스트 스마일즈였다. 그는 그의 저서 ‘자조론(自助論)’에서 ‘노 스웨트 노 스위트(no sweat no sweet)’란 명언을 남겼다. p136

윈스턴 처칠은 1940년 5월 13일 수상 지명을 받고 국회에서 연설할 때 “내가 영국 국민에게 줄 것은 피와 고통과 눈물과 땀”이라고 말했다. p137

15. 돈

많은 돈을 물 쓰듯이 쓰되 꼭 필요한 곳과 절실한 경우에만 쓰고 쓸만한 가치가 있는 곳에만 쓰라는 것이다.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경우엔 꼭 돈의 화를 입게 마련이다. p148

돈이란 끊임없이 나누어지고 쪼개지는 것이고 물 흐르듯이 그침 없이 흘러 도는 것이다. 그래야 하고 그래야 돈이다. 그침 없는 순환과 유통이야말로 돈의 호흡이고 생명이다. p149

목숨덩어리를 이끌고 다니는 일생 동안 돈에 끌려 다니지 않는 자세야말로 중요하다. 돈에 굴복당하지 않고 지배당하지 않는 그 반대의 삶이야말로 중요하다. 돈이 뭐길래 돈에 기가 죽고 목이 내려앉고 잔뜩 주눅이 든단 말인가. p153

16. 꿈

인생이라는 일장춘몽에서 깨어난 뒤, 그러니까 죽을 때 돌아보는 자신의 일생이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일장춘몽 그대로가 아니라 꿈은 꿈이로되, 꿈과 같은 삶이긴 삶이되 그러나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알찬 일생의 일장춘몽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p155

보석을 갖고 싶어하는 여자의 꿈, 다름 아닌 DREAM(꿈)을 갖는 여자의 꿈도 꿈이라고 하지 않던가. 즉 여자의 꿈이란 다이아몬드(D), 루비(R), 에메랄드(E), 아메시스트(A), 문 스톤(M)의 두 문자로 연결된 DREAM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P158

‘돈 키호테’의 세르반테스는 ‘보잘 것 없는 재산보다 훌륭한 희망을 갖는 것이 낫다’고 했고 시성 괴테는 희망을 ‘제2의 혼’이라 일컬었다. P159

17. 복

‘복인복과(福因福果)’라는 말이 있다. 복인이 있으면 복과가 있다는 뜻이다. 선인선과, 악인안과처럼 복이란 인과응보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그 말 말이다. P168

‘복생유기(福生有基)’라는 말을 믿고 싶다. 복이 오는 것은 모두 그 터가 따로 있다, 토양이 따로 있다, 원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P169

‘복과재생(福過災生)’이란 말을 염두에 두고 싶다. 복이 지나치면 도리어 재앙이 생긴다는 뜻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마가 끼기 쉽다는 것을 꼭 기억해 두라는 것이다. P169

18. 말

역사상의 숱한 성인과 위인이 남긴 금언이 있고, 격언, 명언, 잠언, 에피그램(epigram), 경구가 있다. 깊은 체험적인 진리를 간결한 말 속에 교묘히 표현한 짧은 글, 즉 아포리즘(aphorism)이라는 것이다. p172

논어의 첫 구절은 ‘學’으로 시작되고 그 마지막 구절은 ‘言’으로 끝난다. 배움도 학문도 중요하지만 말을 올바르고 적절하게 제대로 구사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하나의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p181


19. 글

글이란 문자라는 용기에 담기는 삶의 신호, 삶의 부호, 삶의 암호, 삶의 사인, 삶의 증거, 그 확고부동한 불후의 썩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삶의 궤적이며 흔적이다. p182

애를 써서 시문을 다듬는 것을 ‘조심누골(彫心縷骨)’이라 한다. 마음에 새기고 뼈에 사무친다는 뜻이다. 문장을 꾸미자면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하고 힘이 든다는 얘기다. p184

글을 잘하는 지혜나 소질 주머니, 즉 ‘글구멍이 큰 사람’ 천하 문종(文宗)이라 불리는 대문장가라면 운문이든 산문이든 모두 능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야 문호요 문웅이며 문걸이다. p187

위에서 내리 읽거나 아래서 치읽거나 똑같이 말이 되는 글 즉, ‘회문(回文)’이라는 글과 ‘회문시(回文詩)’라는 글 그것이다. ‘소주 만명만 주소’라든지 ‘다시 합창합시다.’만 해도 얼마나 재미있는 회문인가 p190

20. 책

한 권의 책. 그 무게는 태산보다도 무겁고 대륙보다도 무겁다. 한 권의 책. 그 값어치는 일확천금보다도 낫고 억만금보다도 높다. 한 권의 책. 그 영향력은 태풍보다도 강하고 토네이도보다도 드세다. 한 권의 책. 그 높이는 하늘보다도 높고 달보다도 별보다도 높다. 한 권의 책. 그 달콤함이란 꿀보다도 더하고 첫사랑보다도 더하다. p195

‘부킹(booking)’이라는 그 말 말이다. 부킹이란 ‘장부 기입’ 등이 본뜻이지만 골프장을 예약하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요정이나 룸살롱 등을 예약하는 것까지 왜 무엇 때문에 부킹이라고 한다는 것인가. 체크한다의 ‘체킹(checking)’이라고 할 수도 있고 곧이곧대로 ‘예약’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 데 말이다. p201

21. 앎

밖으로는 세상만사 삼라만상을 모두 아는 체 하면서도 안으로는 정작 자신의 정체 하나 파악하지 못하고 사는 그런 무지의 암벽에 다다르고 충돌하는 것이다. p207

‘자신의 무지를 스스로 깨닫는 지(知)’ 그것이다. 즉 무지에 대한 자각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무지의 지’말이다. p207

알아야 할 앎은 무한한데 알고 있는 앎은 유한하다 p207

22. 길

보다 중요한 길은 불가시적인 길이다. 육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길, 완전히 보이지 않는 길이다. 심안으로만 보이는 길, 가슴의 눈과 영혼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길이다. 인생 길, 인생 행로보다 중요한 길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p211

미로는 어떤가. 일단 들어갔다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는 끝내 죽고 마는 미궁(迷宮)의 길, 미도, 메이즈(maze) 그런 길 말이다. p215

23. 임

몹시 그리워하는 임이라야 임이다. 눈이 빠지는 듯 보고 싶어 하는 임이라야 임이고 사슴처럼 기린처럼 목이 솟아오르도록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임이라야 임이다. p220

‘옥오지애(屋烏之愛)’라고 했던가. 그 임을 사랑하면 그의 집 지붕에 앉아 있는 까마귀까지도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뜻이다. 즉 임에 대한 사랑이 그의 집 까마귀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이다. p223

역사 마이너스 임은 제로다. 역사에서 임과 임을 빼면 남는 것은 제로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p228

24. 벗

‘아버지는 보물이요 형제는 위안이지만 친구는 보물도 되고 위안도 된다’고 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p230

서양사람들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를 표현할 때 ‘데이먼과 피시어스(Damon and Pythias)’라는 말을 쓴다.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얘기로 한 마디로 말해 서양판 ‘관포지교’요 ‘문경지교’라 할 수 있다. p231

진정한 친구는 바로 이런 다섯 가지 벗인 줄도 모른다.
①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벗(道友)
② 의로운 벗(義友)
③ 부르지 않아도 찾아오는 벗(自來友)
④ 만나면 즐거운 벗(娛樂友)
⑤ 서로 보호해 주는 벗(相保友) p233

25. 술

‘색주잡기’가 아니라 ‘주색잡기’라고 말한다. 여자보다도 술이 먼저라는 말이다. 여자 없이는 살아도 술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 많다. p239

‘취중무천자(醉中舞天子)’라고 했다. 취중엔 아무도 어렵고 두려운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즉 천자, 제왕, 임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안하무인에 방약무인이 되는 것이다. p239

신선한 주선이 되고 주성까지 되어 하늘이 내린 미록을 누리느냐, 그렇지 않으면 ‘말고기 자반’얼굴의 천박한 취광의 개가 되고 망세간지갑자로 술 마시기에 세월 가는 줄 모르는 형편없는 술놈에 술벌레가 되느냐의 선택권은 누구에게나 자유가 아닌가. p247

26. 물

가장 좋은 물이란 어떤 물일까. 물론 먹는 물일 것이다. 그 첫째 좋은 물은 물의 영원한 원형인 ‘처녀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좋은 물은 ‘층상수’라는 물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샘물이며 우물물이다. p251

‘야불답백(夜不踏白)’이라는 말도 있다. 캄캄한 밤길을 갈 때 하얗게 보이는 것은 흔히 움푹 팬 곳에 괴어 있는 물이니까 그것을 밟지 않도록 피해 걸으라는 뜻의 말이 ‘야불답백’이다. p255

27. 강

‘인류 문명-강’. 인류 문명에서 강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원시의 야만 그것만 남는다.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가 강이기 때문이다. p260

강을 끼고 문명이 싹텄고 도시가 돋아났고 인류와 역사가 우거졌다. 그러니까 인류의 삶에서 강을 빼면 원시의 야만만이 남는 것이 아니라 그밖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p260

28. 비

지구상의 물의 양은 약 13억6천만㎦로 30억년 전부터 변함없이 똑같다는 것이 지구 과학자들의 정설이다. p265

한 대의 자동차를 완성하기까지만도 적어도 11만4천ℓ의 물이 사용된다. 오...빗물이여! p266

29. 불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 그 신이 아니었다면 어찌할 뻔했는가. 창세기, 그 무렵의 창조주는 우리 인간의 신체 구조를 다시 만들어 주었어야 했을 것이다. p268

불은 구원이며 축복인가 재앙이며 해악인가. 야누스의 두 얼굴 중 어느 쪽 불의 인상이 우리에겐 더 강력하게 머물러 있는 것인가. p277

30. 해

해는 정말 위대하도록 뜨겁다. 그래선가 흔히 ‘뜨거운 태양’이니 ‘작열하는 태양’ ‘불타는 태양’ ‘타오르는 태양’ 등으로 표현한다. 그건 해가 실제로 그렇게 뜨거우니까 그렇다고 치지 않을 수 없고 부인할 수 없다. p282

해는 위대하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존재가 태양이고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존재가 태양이다. p286

31. 달

초→분→시→일→주→달→해. 시간의 질서, 세월의 질서에서 ‘달’이 빠지면 시간도 세월도 무너진다. 달이 빠지면 연속된 시간의 사슬도 끊어지고 사슬의 질서도 무너진다. p290

달이야말로 모든 감탄 부호(!)가 조용히 고요히 안으로 속으로만 녹아들고 한 데 엉겨붙어 동그라미를 그리며 팔랑개비처럼 돌아가다가 딱 멈춰 선 채 이루어낸 동그란 하늘의 마침표(.)가 아니던가. p295

32. 별

별들은 어떻게 왜 저토록 반짝거리는 것일까. 그런데 놀랍게도 달에서 별을 볼 때는 깜빡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달에는 대기가 없기 때문이다. p307

저마다 자기 별이 있다는 그 자기 별이 떨어지지 않고 좀 더 어둠 속에 빛나 주기를 바라는 것인가 그밖에 또 다른 바람이 있는 것인가. p312

33. 산

신이 천지의 지, 땅을 창조할 때 바다를 제쳐놓고 가장 먼저 창조한 작품은 아마 산일 것이다. p313

‘산은 마음의 고요와 고상함이요 큰 산은 마치 높은 덕이 솟아있는 것 같다’ 팔만대장경에 나오는 말이다. p315

그래선가 역사속의 거의 모든 위대한 문필가가 산에 오르고 산에 파묻혀 산을 읊고 산을 그리며 살았고 거기 묻혔다. 또 거의 모든 사상가가 산에 묻혀 치솟은 산세처럼 사상을 키워 올리며 살았고 거기서 고이 생을 마감해 고요히 묻혔다. p315

34. 숲

필자는 그런 것 말고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무 앞에 서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자못 숙연한 마음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름 아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오래 사는 존재가 바로 나무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그렇다는 것이다. p327

흔한 말이지만 울창한 숲이란 지구의 허파요 인간의 산소다. 바닷속에 플랑크톤과 숲이 없으면 바다가 죽고 뭍에 숲이 없으면 육지가 사망한다. p334

이변이 없는 한 나는 내세에 가서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몇백년 몇천년은커녕 단 100년을 못사는 나무라 해도 그렇게 살고 싶다. p335

35. 풀

우리 모두 풀에 맺힌 열매를 먹으며 풀숲에 묻혀 살다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스러져 가는 것이다. p337

인간의 ‘초창기(草創期)’가 있었다. 인간이 하는 어떤 일, 어떤 사업의 처음, 초기가 바로 초창기가 아닌가. p339

36. 꽃

꽃이란 신이 창조한 모든 가시적인 미의 원형이자 원본이며 본보기 샘플이다. p344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천국인 극락정토를 ‘연꽃 나라’, ‘연화국’이라 이르는 것을 보면 이승과 저승 양쪽에 동시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대표적인 꽃은 연꽃이 아닌가 싶다. p347

무궁화를 우리의 나라꽃, 국화로 정한 것은 잘못이다. 무궁화를 ‘화노’라고 한다. 꽃의 노예라는 뜻이다. p351

37. 약

고통엔 인내가 약이고 번뇌엔 해탈이 약이다. 실패와 좌절엔 딱 하나 용기가 약이고 절망에도 딱 하나 희망이 약이다. p355

눈에 보이는 가장 위대한 약, 육체를 위한 약이 밥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위대한 약, 정신을 위한 약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p355

암을 비롯한 불치병 치료약과 방지약은커녕 아직 감기가 하나 퇴치하지 못한다. 하물며 늙지 않는 약과 죽지 않는 약은 아마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영영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p359

38. 힘

“인생 자체가 힘에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이상 그런 힘의 다과를 빼놓고는 인생 속엔 가치있는 것이라고는 없다” p364

허망하기 그지없는 육신의 힘과 돈의 힘, 권세라는 힘의 세 가닥 나뭇가지는 세월의 비바람에 금세 썩어 꺾여버리지만 두뇌의 힘, 정신의 힘인 그 밑동과 뿌리만은 뽑히지 않고 영원한 고목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p367

39. 때

인간이란 왜 죽는 때를 알지 못하는가. 때라는 것이, 기회라는 것이, 찬스라는 것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인가. 그것도 정해진 필연의 만남이 아니라 정해지지 않은 우연의 만남이기 때문인가. p369

뜻있는 선비는 1년 1년을 소중히 여기고 현인은 하루 하루를, 그리고 성인은 매 시간 시간, 1각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p372

40. 삶

인간의 삶이란 무엇으로 출발하는가. 인간의 삶이란 눈알이 튀어나오는 구토로 시동을 걸어 낭자한 울음보로 출발하는 것. p375

삶에는 자의가 없다. 삶에는 자의가 끼어들 수 없는 것. 삶이란 타의의 시작과 타의의 끝장 사이에 도무지 단 한 뼘의, 단 한 줌의 선택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 p377

삶이란 무상한 것.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진리 중 가장 평범한 진리는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진리 중 가장 특수한 진리도 이상한 진리도 유별난 진리도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진리 중 가장 마지막 진리 역시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이다. p382]

[4. 내가 저자라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라는 테마가 독자를 유혹한다. 글자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한 글자의 소중함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아쉬운 점도 많았다.

우선 한음절로 된 단어들이 이토록 소중하다면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왕이신 세종대왕께서 무슨 연유로 소중한 대상을 한음절로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인데 국문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언급이 없다. 나는 이 점이 매우 궁금하다.

그리고 한음절로 구성된 좋은 단어들은 무지기수다. 저자가 발췌한 40개의 단어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고 왜 이 단어만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기에 아마 저자는 틈만나면 한음절에 대한 사유를 글로 적고 이를 틈틈이 모아 한 권의 책을 편찬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보니 책의 분명한 주제가 없음이 안타까웠다. 즉 이 좋은 한글자의 단어가 주는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저자의 생각이 담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수많은 책들과 고전 그리고 신화 등을 곁들인 감칠 맛 나는 이야기는 단어에서 오는 힘을 더욱 강조하여 독자로 하여금 심독(心讀)하게 하는 흡입력이 있었던 것에 반해 저자가 이 단어들에 대해 양분법의 논리로 모든 것을 설명하니 독자들이 어떻게 삶을 지탱하는 것이 옳은 삶인지에 대한 가치관을 읽을 수 없었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책을 모두 읽은 후 허탈한 감정의 잔상을 머리에서 떠나보내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러나 한 글자로 된 한음절의 말이 모든 특히 사회․문화적 영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러한 노력에 최초로 답한 책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한다.
IP *.57.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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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아이드잭
2006.08.28 23:55:58 *.140.145.80
서평에 담긴 정성이 특별해 보입니다..^^ 잘 읽었음돠..
그래도 도명수님이 앞으로 내실 책을 능가하지는 못할것 같슴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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