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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일 16시 51분 등록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 - 史記 1.

사마천 (지은이), 김진연 (옮긴이) | 서해문집


먼저 사기가 굉장히 오래된 책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서양에서 역사학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그 엣날에 이미 비평적 역사학에 입각해 이런 책을 썼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신화로 여겨지는 부분은 아예 빼버리는 등 비평적 역사학의 중요한 학문적 태도가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 중국을 대하면 놀라운 것이 유용성과 목적성을 제외한 예술성에 일찍부터 주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서예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사기 중에 대화체로 기술된 부분도 놀랍습니다. 그리스 철학에서도 대화체를 이용해 사상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생동감이 나는 전달방식입니다. 무엇보다 역시 리더쉽의 문제도 강조됩니다. 좋은 군주 밑에 좋은 재상이 있습니다. 사회 정치 체제가 어떠하든 군주의 통치이든 민주주의이든 예외가 아닙니다. 크든 작든 리더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단히 혼란스럽습니다만 일단 판단은 유보하겠습니다. 그러나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방점을 찍습니다. 만리장성과 피라밋과 같은 인류의 거대건축물은 대단히 웅장하고 경이롭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켜보며 그 건축에 희생되었을 노예와 민초들의 피와 땀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지어진 것 자체가 부당하니 그 현존 가치조차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전통적 가치관을 오늘날의 잣대만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무리입니다. 다양하게 상대적인 관점을 가지고 가치를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동을 주저하면 명성을 얻지 못하고, 일을 추진하면서 머뭇거리면 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또 식견이 높은 사람은 세상의 비난을 받기 마련이며,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대부분 백성들의 조롱을 받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일을 분별하는 데 어둡지만, 현명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P.156)

사기를 읽으며 여성이 소홀하게 다루어지는 점이 대단히 아쉬웠습니다. 여성은 여성 그 자체가 아니라 애첩이나 나라를 망치는 요물에 불과합니다. 달기나 포사 같은 인물들을 보세요. 군주나 권력자를 눈멀게 해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사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주로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사기에서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대해서는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권력은 대단히 비정합니다. 40만 대군을 생매장해버리는 등의 일이 그렇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들리는 여러 이야기들도 이런 비정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직 어려서 많이 듣고 배워야겠지만 정말 현실이 이런 것인지 씁쓸합니다. 사기에서는 '의리'라는 가치를 중요시 여깁니다. 오자서와 같은 인물을 보십시오. 일본에서도 쥬신구라와 같이 의리를 중요시한 인물들을 높이 기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의리라고 말할 때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습니다. 의리있는 인물이 대접받고 또 의리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리더쉽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마천이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을 평하는데 있어 훌륭하거나 그렇지 못한 것들을 나름의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백비가 40만 대군을 죽인 일과 같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또 평가됩니다. ‘사람을 많이 죽이면 영웅이고 적게 죽이면 살인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에서 영웅이나 위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로 인해 이름없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다는 점도 기억해야만 합니다. 역사에 기록된 사람보다 기록되지 않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평범한 군주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미워하는 사람을 벌준다. 그러나 현명한 군주는 그렇지 않다. 상은 반드시 공이 있는 사람에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지은 사람에게 내린다. (P.219)

생소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읽기에 마냥 쉽지마는 않았습니다. 앞서 다른 분이 지적했던 의리의 문제는 오늘날의 정치상황에 대단히 잘 들어맞습니다. 전직 대통령과 청와대 사이의 여러 미묘한 문제들도 그러하고 현재 대통령과 그 분이 예전에 몸담았던 정당 사이의 문제도 결국 의리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신의를 저버리는 배신의 결과는 언제나 비참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치 현실에서도 호남 민심의 변화 등 그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정치가 비정해도 너무 하다 싶은 것은 너무 한 것입니다. 사기는 결국 돌고도는 인간 역사의 모든 일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말하는 사람에 주목하고 그를 이상으로 삼습니다. 사마천이 겪었던 궁형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저 스스로는 그런 치욕을 감내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참으로 많은 인물들이 사기에 등장합니다. 역사 속에서 저 자신이 사표로 삼을만한 인물들을 찾아보았지만 딱 이렇다할 분을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영원한 위인도 영원한 성인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좋은 생각, 좋은 말씀 많이 접하고 많이 생각해보겠습니다

해도 중천에 뜨면 기울고,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 모든 일이 성하면 곧 쇠하게 되는 것이 변함없는 이치요, 그러한 까닭에 나라에 도가 행해지면 나아가 벼슬을 하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물러나 숨는다 (P.241)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먼저 사기를 읽으며 사자성어와 교양이 높아지는게 개인적으로 뿌듯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정리한 것을 나눠드렸으면 합니다. 사기에 나오는 여성의 문제에 있어 ‘하희’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하희는 세 번 결혼했습니다. 문득 미국 시트콤 앨리 맥빌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났습니다. 한 여자가 동시에 두 남자가 결혼했는데 검사가 그것이 불법이라고 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 여자의 이중생활이 가능한가가 문제의 핵심이었고 개인과 사회제도의 충돌에 어떤 관점으로 접근할 것인가가 논란지점이었습니다. 결국 그 여성은 유죄판결을 받게 되는데 이 여성은 50달러 정도의 가벼운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이에 비한다면 하희에 대한 당시의 논란은 정말 난리굿판입니다. 정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적 패러다임입니다. 어떤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사마천의 패러다임에 따라서 보아야 하는가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고민했습니다.

사마천의 기술은 주로 전쟁과 권력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인생의 여러 모습들을 투영하여 문화와 예술에 보다 초점을 맞췄으면 보다 내용이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정치적 투쟁과 피냄새보다는 문화와 지식향기가 보다 풍성히 풍겨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 역시 리더쉽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리더쉽은 단순히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의 문제는 아는 듯 합니다. 리더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것은 단지 리더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래 여러 참모들의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리더 밑에 숨겨진 2인자들에 대해 보다 주목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사기가 너무 방대하다보니 한 두 권 만으로는 맥을 잡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일반 사회적 관계와 달리 군신 간에는 의리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시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관계가 다시 정리되고 바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고 또 동지가 적이 되는 것이 결국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회를 움직이는 리더쉽에 있어서는 상대로부터 얼마나 가져오는 게 중요하다기보다는 상대에게 얼마나 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믿음과 의리의 문제가 발생하겠지요. 여러 상황 속에서 그것이 지켜지고 유지되는 것이지 언제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명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궁형을 당하면서까지 사기를 써야한다는 그러한 사명감이 현대인들에게는 희박합니다. 공무원들 역시 봉급에만 관심이 있지 사명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 주머니를 채우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교사들도 교육현장이 사명감이 갈수록 약해지고 회사 오너들도 그러한 것만 같습니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여자를 좋아합니다. 사기에도 나오지만 중국에서 손꼽는 4대 미인이 있습니다.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등입니다. 여기서 탈락한 조비연은 하도 가벼워서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사기에 보면 서시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다고 하는데 확실히 요즘 남자들은 로맨스가 없습니다. 로맨스 수준이 그때보다 떨어진 것입니다. 사기 중에 참으로 새겨볼만한 말들이 많습니다. 천하가 태평하면 영웅이 없다. 주는 것이 받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 여자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소설 칼의 노래를 쓴 김훈 씨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훌륭하게 극복하는 인물이 아니라, 아예 그런 위기가 닥치지 않도록 미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국에 대한 비판과 의식,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늘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전, 앙코르와트를 가보니 당시 파리 인구가 7만에 불과했는데 그 지역에는 100만여명이 살았다고 합니다. 한때 문명이 번성해 위대한 문화재가 있다해도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것을 얼마나 서포트할 수 있냐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왜 사기를 읽는가의 문제는 결국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는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현재가 중요합니다.

슬기로운 사람도 천 가지 일을 생각하면 반드시 한 가지 실수가 나오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가지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유익한 일을 하게 된다.(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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