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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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로스트의 <걷지 않은 길>, 이상옥 역
1.
나는 시가 싫었다. 시가 남기는 무수한 여백들, 시어가 주는 난해함. 내가 오로지 좋아했던 시인은 김삿갓과 류시화 뿐이었다. 가슴을 쪽 빨아 당기는 그 깔끔함. 나는 마음으로 와닿지 않는 시, 말만 어려운 시는 시도 아니라고 여겼다. 여리디 여린 감수성이 남긴 인생의 치기어린 고백일 뿐이라고.
지금은 모르겠다. 가끔 시들을 보며 어디서 이런 고운 말들을 길러냈을까 가만히 들여다볼때가 있다. 여전히 시가 주는 여백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조금씩 시에 다가가는 나를 볼때, 언젠가 시를 즐길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
긴 책들만 읽다가 짧은 글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 그러나 꼭 짧다고 쉽게 읽히는건 아니다. 오히려 더 힘들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내가 중학교 때 오빠가 읊어준 '걷지 않은 길'의 한 구절 때문에 뇌리에 깊이 박힌 인상이 있었다. 내심 기대하고 보았지만...솔직히 말해 읽어도 잘 모르겠다. 다른 분들의 리뷰가 얼른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먼저 쇄기를 박는다.
영시는 특히 번역이 반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데 역자 이상옥이란 자는 영문과 교수임에도 굉장한 진부함으로 시를 망쳐놓고 있었다. 영문과 교수가 아니라, 시인이 이 시들을 옮겼다면 어땠을까? 내내 생각했다. 어쨌든 무척이나 실망했고,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오기로 영어판으로 시를 읽었는데, 아다시피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꼭 영어를 잘해서 영어로 이해하겠다는 다짐만이 허공을 맴돌았을 뿐.
2.
걷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랗게 물든 숲속에 둘로 갈라진 길,
이 한 몸 한꺼번에 두 길을 갈 수 없어
섭섭히 여기며 오랫동안 서 있었네.
눈이 미치는 데까지 한 쪽 길을 바라보았네,
길이 휘어 덤불로 사라지는 곳까지.
이윽고 다른 쪽을 걸으니 역시 아름다운 길,
풀이 무성하고 인적이 덜해
마음이 그쪽으로 더 끌린 걸까.
하기야 지나다닌 흔적으로 말하자면
두 길이 거진 같았었지.
그날 아침 두 길 모두 잎이 덮여 있었는데
아직은 아무도 걸은 자국 없었지.
어쩌랴, 첫째 길은 훗날 걸을 수밖에!
하지만 길이 길로 통하는 세상이니
그 길을 걷게 될 날 기약 없었네.
멀고 먼 훗날 어딘가에서
한숨지며 오늘 일을 말하고 있으리라.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인적 드문 길을 택했노라고,
그것이 모든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읽으며 나는 어느 길 위에 있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어느길로 갈까 생각하며 어느 길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우두커니 서있는 첫째 연의 세번째 행의 모습이겠지.
내가 택했던 하나의 길...그것이 모든 것을 바꿨다고.
이걸 읽으며 이곳을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인적 드문 길을 택하려는 사람들이
한무더기 있는 곳이 아닌가!
(그래도 이 시가 번역이 나은 축에 든다. 그나마도 내가 읽은 책은 그 전판이라, 마지막이 '인적이 덜한 길을 택했었기에 오늘의 이 운명이 정해졌다고.' 라고 번역되어 있다. 나라고 더 잘하지는 못했겠지만, 최소한 그실력이면 안하는게 낫다고 사려된다.)
3.
뉴 잉글랜드 대표적 시인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간 로버트 프로스트.
그는 서문에 "시는 환희로 시작하여 지혜로 끝난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의 사물들에게서 발견하는 느끼는 놀람, 그리고 이 발견의 환희를 자아와 주위 세계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음으로써 지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모든 문학의 목적이 그것이 아닌던가.
시인이 발견한 세계속의 새로운 세계에 전혀 동조되지 못하고
시집을 덮는 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그 안에서 나의 느낌을 전혀 퍼올리지 못한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시는 나에게 있어 물을 긷기엔 너무 큰 종이 양동이가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시의 한쪽에 나의 모습을 묻는걸로 만족해야겠다.
IP *.145.125.146
1.
나는 시가 싫었다. 시가 남기는 무수한 여백들, 시어가 주는 난해함. 내가 오로지 좋아했던 시인은 김삿갓과 류시화 뿐이었다. 가슴을 쪽 빨아 당기는 그 깔끔함. 나는 마음으로 와닿지 않는 시, 말만 어려운 시는 시도 아니라고 여겼다. 여리디 여린 감수성이 남긴 인생의 치기어린 고백일 뿐이라고.
지금은 모르겠다. 가끔 시들을 보며 어디서 이런 고운 말들을 길러냈을까 가만히 들여다볼때가 있다. 여전히 시가 주는 여백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조금씩 시에 다가가는 나를 볼때, 언젠가 시를 즐길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
긴 책들만 읽다가 짧은 글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 그러나 꼭 짧다고 쉽게 읽히는건 아니다. 오히려 더 힘들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내가 중학교 때 오빠가 읊어준 '걷지 않은 길'의 한 구절 때문에 뇌리에 깊이 박힌 인상이 있었다. 내심 기대하고 보았지만...솔직히 말해 읽어도 잘 모르겠다. 다른 분들의 리뷰가 얼른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먼저 쇄기를 박는다.
영시는 특히 번역이 반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데 역자 이상옥이란 자는 영문과 교수임에도 굉장한 진부함으로 시를 망쳐놓고 있었다. 영문과 교수가 아니라, 시인이 이 시들을 옮겼다면 어땠을까? 내내 생각했다. 어쨌든 무척이나 실망했고,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오기로 영어판으로 시를 읽었는데, 아다시피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꼭 영어를 잘해서 영어로 이해하겠다는 다짐만이 허공을 맴돌았을 뿐.
2.
....................로버트 프로스트
노랗게 물든 숲속에 둘로 갈라진 길,
이 한 몸 한꺼번에 두 길을 갈 수 없어
섭섭히 여기며 오랫동안 서 있었네.
눈이 미치는 데까지 한 쪽 길을 바라보았네,
길이 휘어 덤불로 사라지는 곳까지.
이윽고 다른 쪽을 걸으니 역시 아름다운 길,
풀이 무성하고 인적이 덜해
마음이 그쪽으로 더 끌린 걸까.
하기야 지나다닌 흔적으로 말하자면
두 길이 거진 같았었지.
그날 아침 두 길 모두 잎이 덮여 있었는데
아직은 아무도 걸은 자국 없었지.
어쩌랴, 첫째 길은 훗날 걸을 수밖에!
하지만 길이 길로 통하는 세상이니
그 길을 걷게 될 날 기약 없었네.
멀고 먼 훗날 어딘가에서
한숨지며 오늘 일을 말하고 있으리라.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인적 드문 길을 택했노라고,
그것이 모든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읽으며 나는 어느 길 위에 있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어느길로 갈까 생각하며 어느 길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우두커니 서있는 첫째 연의 세번째 행의 모습이겠지.
내가 택했던 하나의 길...그것이 모든 것을 바꿨다고.
이걸 읽으며 이곳을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인적 드문 길을 택하려는 사람들이
한무더기 있는 곳이 아닌가!
(그래도 이 시가 번역이 나은 축에 든다. 그나마도 내가 읽은 책은 그 전판이라, 마지막이 '인적이 덜한 길을 택했었기에 오늘의 이 운명이 정해졌다고.' 라고 번역되어 있다. 나라고 더 잘하지는 못했겠지만, 최소한 그실력이면 안하는게 낫다고 사려된다.)
3.
뉴 잉글랜드 대표적 시인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간 로버트 프로스트.
그는 서문에 "시는 환희로 시작하여 지혜로 끝난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의 사물들에게서 발견하는 느끼는 놀람, 그리고 이 발견의 환희를 자아와 주위 세계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음으로써 지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모든 문학의 목적이 그것이 아닌던가.
시인이 발견한 세계속의 새로운 세계에 전혀 동조되지 못하고
시집을 덮는 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그 안에서 나의 느낌을 전혀 퍼올리지 못한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시는 나에게 있어 물을 긷기엔 너무 큰 종이 양동이가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시의 한쪽에 나의 모습을 묻는걸로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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