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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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메이데이 2006
저 도발적인 제목이 아니었다면 인터넷에서 이 책을 만나지 못할 뻔 했다. ‘혁명’이라는 말이 거슬리는가, 그렇다면 혁명 대신 다른 단어를 넣어보자.
내가 춤출 수 없다면 사랑이 아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평화가 아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발전이 아니다
누군가 관념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우리에게 수락하기를 요구하는 상황이 있다고 치자. 그것이 얼마나 완벽하고 놓치기 아까운 것이라고 해도, 나의 본질이 희열로 가득차지 않는 한 그것은 가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가식과 권위, 지적 허영같은 모든 껍데기는 가라, 도도한 개인주의의 선언으로 들렸다.
일단 이 책은 ‘혁명’에서 풍기는 선입견을 일시에 불식시켜줄 만큼 깔끔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모든 예술 아니 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는 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컴퓨터 게임과 해커, 음악과 미술, 애니메이션과 대중가요 그 모든 것에 얽혀있는 이데올로기를 해부하고 있는데, 풍부한 사례를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어 읽기쉽고 흡입력이 대단하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민주노총 정보통신부장으로 일한 저자가, 노동단체 기관지에 <세상야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모음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일상 속의 정치적 논쟁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골수 운동권에 속한 인사의 해박한 문화예술적 지식에 매료되었다. 그저 이름정도만 알고 있던 예술계의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이 어떻게 정치색을 띠었던가 하는 것, 또 간간이 정치권의 우스운 행태를 조롱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먼저 바그너. 히틀러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겐의 반지>를 백번도 넘게 관람하고 악보를 암기할 정도로 그를 사랑했다고 한다. 바그너 자체가 반유태적 게르만 민족주의자였으며, 나치가 가두 행진을 할 때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연주하여, 한마디로 히틀러 하면 바그너, 바그너 하면 히틀러가 떠오르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베트남전의 광기를 표현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중, 단지 미군이 파도타기에 좋은 바닷가를 차지하기 위해 해변마을 하나를 초토화하는 장면에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 쓰인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는 얘기이다.
그 다음 피카소. 1881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1973년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까지, 러시아혁명, 1차대전, 스페인혁명, 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격동의 세기를 겪은 천재적 화가 피카소는 정열적인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다.
유명한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에 개입한 나치의 잔학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그림이고, 좌파 정부군을 위해 지원금으로 많은 돈을 보냈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피카소의 지론을 보라.
“당신들은 예술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미술가는 눈만 가지고 있고, 음악가는 귀만 가지고 있고, 시인은 심장 겹겹이 온통 서정시로 이루어져있고, 권투선수는 근육덩어리만 가진 얼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기는 커녕 예술가는 정치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마음을 찢기고, 열정을 느끼고, 행복하게 만드는 모든 일들에 반응하는 존재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 있고, 무수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삶에서 벗어나 우아한 냉담의 미덕을 보일 수 있겠나? 전혀! 미술은 집이나 장식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전쟁무기이다.” 피카소, 1945년
피카소는 1949년 파리 평화대회에 대표로 참석하여 포스터 <평화의 비둘기>를 내놓는 등 ,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한 피카소의 수많은 작품은 지금까지도 반전운동에서 주요한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나는 일단 그 많은 명작들이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붉은 돼지>... 하야오역시 60년대 대학에서 맑시즘과 안보투쟁에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으며, 스스로 心情左派-마음은 공산주의자-라고 밝혔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독재 권력이나 환경문제, 페미니즘을 표현하는 하야오의 경향이 이해가 되는 것같았다. 이제는 애니메이션 자본이 된 하야오에 대해, 지은이는 애정뿐만 아니라 비판을 놓지 말고 지켜보자고 권유한다.
지은이 최세진은 우리에게 “체 게바라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티셔츠에 가방에 심지어 맥주광고에까지 도용되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 자본주의는 그의 혁명사상도 투쟁정신도 아닌 오직 ‘잘 생긴 전사가 풍기는 1960년대의 낭만적 이미지’를 팔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은이는 남미의 혁명을 보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빈민가에서 머문 적이 있으며, 지금도 다시 남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를 행동하게 만드는 이념논쟁은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내가 책으로 접한 그의 사유방식은 아주 마음에 든다. 분명한 철학, 성실한 자료조사, 해박하고 명쾌한 문체로 무장한 그의 책 역시 아주 마음에 든다.
IP *.81.21.101
저 도발적인 제목이 아니었다면 인터넷에서 이 책을 만나지 못할 뻔 했다. ‘혁명’이라는 말이 거슬리는가, 그렇다면 혁명 대신 다른 단어를 넣어보자.
내가 춤출 수 없다면 사랑이 아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평화가 아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발전이 아니다
누군가 관념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우리에게 수락하기를 요구하는 상황이 있다고 치자. 그것이 얼마나 완벽하고 놓치기 아까운 것이라고 해도, 나의 본질이 희열로 가득차지 않는 한 그것은 가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가식과 권위, 지적 허영같은 모든 껍데기는 가라, 도도한 개인주의의 선언으로 들렸다.
일단 이 책은 ‘혁명’에서 풍기는 선입견을 일시에 불식시켜줄 만큼 깔끔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모든 예술 아니 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는 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컴퓨터 게임과 해커, 음악과 미술, 애니메이션과 대중가요 그 모든 것에 얽혀있는 이데올로기를 해부하고 있는데, 풍부한 사례를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어 읽기쉽고 흡입력이 대단하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민주노총 정보통신부장으로 일한 저자가, 노동단체 기관지에 <세상야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모음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일상 속의 정치적 논쟁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골수 운동권에 속한 인사의 해박한 문화예술적 지식에 매료되었다. 그저 이름정도만 알고 있던 예술계의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이 어떻게 정치색을 띠었던가 하는 것, 또 간간이 정치권의 우스운 행태를 조롱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먼저 바그너. 히틀러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겐의 반지>를 백번도 넘게 관람하고 악보를 암기할 정도로 그를 사랑했다고 한다. 바그너 자체가 반유태적 게르만 민족주의자였으며, 나치가 가두 행진을 할 때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연주하여, 한마디로 히틀러 하면 바그너, 바그너 하면 히틀러가 떠오르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베트남전의 광기를 표현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중, 단지 미군이 파도타기에 좋은 바닷가를 차지하기 위해 해변마을 하나를 초토화하는 장면에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 쓰인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는 얘기이다.
그 다음 피카소. 1881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1973년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까지, 러시아혁명, 1차대전, 스페인혁명, 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격동의 세기를 겪은 천재적 화가 피카소는 정열적인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다.
유명한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에 개입한 나치의 잔학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그림이고, 좌파 정부군을 위해 지원금으로 많은 돈을 보냈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피카소의 지론을 보라.
“당신들은 예술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미술가는 눈만 가지고 있고, 음악가는 귀만 가지고 있고, 시인은 심장 겹겹이 온통 서정시로 이루어져있고, 권투선수는 근육덩어리만 가진 얼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기는 커녕 예술가는 정치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마음을 찢기고, 열정을 느끼고, 행복하게 만드는 모든 일들에 반응하는 존재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 있고, 무수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삶에서 벗어나 우아한 냉담의 미덕을 보일 수 있겠나? 전혀! 미술은 집이나 장식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전쟁무기이다.” 피카소, 1945년
피카소는 1949년 파리 평화대회에 대표로 참석하여 포스터 <평화의 비둘기>를 내놓는 등 ,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한 피카소의 수많은 작품은 지금까지도 반전운동에서 주요한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나는 일단 그 많은 명작들이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붉은 돼지>... 하야오역시 60년대 대학에서 맑시즘과 안보투쟁에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으며, 스스로 心情左派-마음은 공산주의자-라고 밝혔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독재 권력이나 환경문제, 페미니즘을 표현하는 하야오의 경향이 이해가 되는 것같았다. 이제는 애니메이션 자본이 된 하야오에 대해, 지은이는 애정뿐만 아니라 비판을 놓지 말고 지켜보자고 권유한다.
지은이 최세진은 우리에게 “체 게바라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티셔츠에 가방에 심지어 맥주광고에까지 도용되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 자본주의는 그의 혁명사상도 투쟁정신도 아닌 오직 ‘잘 생긴 전사가 풍기는 1960년대의 낭만적 이미지’를 팔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은이는 남미의 혁명을 보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빈민가에서 머문 적이 있으며, 지금도 다시 남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를 행동하게 만드는 이념논쟁은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내가 책으로 접한 그의 사유방식은 아주 마음에 든다. 분명한 철학, 성실한 자료조사, 해박하고 명쾌한 문체로 무장한 그의 책 역시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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