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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9일 06시 17분 등록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창작과 비평사, 1979, 187p
로버트 프로스트 , 꽃 바람 하늘 빛과 생명의 노래, 1992, 119p


1. 사부의 주문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되새기다.

"시는 문학 중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적 '관계와 연결'을 의미합니다. 21세기가 관계와 연결의 시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 창의성이란 ' 연결되지 않는 것을 연결하는 능력'이라는 정의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도록 하세요.

시가 그래요. 그래서 시인은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이며,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며, 종종 이해 받지 못해 고독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9월엔 그들을 찾아 보기 바랍니다."



2. 그리고 쓰다.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읽는 중에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답답하구나.
소리를 내어 감정을 실어보기도 하고
그의 단어 하나 하나를 되먹어 보기도 하였다.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그가 얼마나 아파 하는지 느낄 수 있다. 또
그가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보았기에, 또
그 아픔과 즐거움의 크기가 얼마나 인지
나는 닿을락 말락 닿을 수가 없다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사부의 말씀을 되새긴다
관계와 연결
창의성
연결되지 않은 것을 연결하는 능력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
그래서 이해받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고독한 사람들

내가 그 간극을 뛰어 넘을 수 있다면?
도레미 다음 파가 아닌 높은 도를 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도약을 그려내고 이해시킬 수 있다면?

그러할 수 있다면 나는 시인의 도약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창의성을 훔칠 수 있고
모두가 살고 있는 육지를 떠나
나만의 외딴 섬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나만의 섬
나의 도약

도약은 어떻게 하는가
나에게는 도약을 위한 정력이 넘치는가, 아닌가
슬픔과 고통이 있어야 하는가
고독과 외로움이 있어야 하는가
즐거움과 행복이 있어야 하는가
삶이 순탄했음은 행인가 불행인가

창의성은 어떻게 키우는가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원래 하고 있는가, 다만 내버려두지 못함인가

그런가, 내버려두지 못함인가?

답은 없고
질문만 늘어간다

시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안의 자유를 어떻게 풀어줘야 하는가

이게 훨씬 재밌구나
생각의 방황이 재밌구나
어디로 갈지 모르는
어디서 머물지 모르는
생각의 무한연쇄
나의 실험적 작은 도약

이제 돌아온다
날린 연 잡아 끌 듯
어르고 달래서 다시 감아 온다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육지로 돌아올 시간

그러나 난 내 섬을 넓혀 놓고 왔다네
내일 또 다시 가면 그 섬이 그 섬이 아닐테지
매일 자라거라
내 섬아


3. 눈에 들어온 시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시선집

<24>
보다 큰 집단은 큰 체계를 건축하고
보다 큰 체계는 보다 큰 악을 양조한다.

조직은 형식을 강요하고
형식은 위조품을 모집한다.

<82>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그렇지요, 좁기 때문이에요. 높아만 지세요, 온누리 보일 거예요.
잡답 속 있으면 보이는 건 그것뿐이에요.
하늘 푸르러도 넌출 뿌리 속 헤어나기란 두 눈 먼 개미처럼 어려운 일일 거예요.

보세요. 이마끼리 맞부딪다 죽어가는 거야요.
여름날 홍수 쓸려 죄없는 백성들은 발버둥쳐 갔어요.
높아만 보세요. 온 역사 모일 거예요. 이빠진 고목 몇 그루 거미집 쳐 있을 거구요.
하면 당신 살던 고장은 지저분한 잡초밭, 아랫도리 붙어 살던 쓸쓸한 그늘밭이었음을 눈뜰 거예요

그렇지요, 좀만 더 높아보세요. 쏟아지는 햇빛 검깊은 하늘 밭 부딪칠 거예요.
하면 영 너머 들길 보세요.
전혀 잊혀진 그쪽 황무지에서 노래치며 돋아나고 있을 싹수 좋은 둥구나무 새끼들을 발견할 거예요.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늦지 않아요. 이슬 열린 아직 새벽 벌판이에요.

<86>
[발]

배화점 층계를
비뿌리는 오후, 내려오던 다리.

스카아트 속을
한가한 미풍은 왕래하고 있었지만
깜정 힐 위 중력을 주면서
가벼운 오뇌 속삭이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어
너희들의, 걸음은
어데가지 가고 있는 걸까

희끗희끗 눈발 날릴 때
중학교 원서 접수시키러 구멍가게 골목
종종치던 종아리.

송화강 끝에서도 왔다
구름 같은 흙먼지,
아세아 대륙 누우런 벌판을
군화 묶고 행진하던 발과 다리
지금은 어데 갔을까.

꽃 피는 남국
부드러운 모래밭 해안에 배가 닿으면
부지런히 신무기를 싣고 뛰어내리던
이유없는 발톱.

보리밭을 밟고 있었다,
물방아 위에도 있었다,
해수욕장에선
그 싱싱한 허벅다리 사이로
태양이 지고.

깎아놓은 유리창 위 비는 내리고
넘치는 가슴덩이 찰떡같이 몸부림 흐느낄 때,
노래하고 싶었다.
뱀같이, 열반같이, 경련하다 급기야
나른하게 죽어 뻗던 그 흰 다리.

다리,
너를 보면
빛나는 여름
우뢰소리 들으며 산맥을 넘던
낭만,

나리꽃 동산에 전쟁은 가고
채소밭 가운데 섰던
국적 모를, 두 개의 무릎뼈에도
눈은 없었다.

어머니를 불렀지.
집행장 문앞
엉버티었지, 안 가겠다고
있는 힘 다하여 안간힘하며
마지막 땀 흘리던
연약한 다리여.

밀회도 실어 날랐지,
착취로 기름진 아랫배,
음모로 반짝이던 골통들도 실어 날랐지,
그리고 눈은 없어도
링 위에서 멋있게 그놈의 턱을 걷어찼다.

다들 남의 등 어깨 위로 올라갔지만
아직 너만은 땅을 버리지 못했구나
넌 우리네 조국
넌 하층구조
내 한을 실어오고 또 실어간다.

백악관 귀빈실 주단 위에도 있었어,
대영제국 궁전 금의자 아래에도 있었어,
종로 삼가 창녀 아랫목에도 있었지,
발바닥
코 없는 너를 보면
눈물이 날 밖에.

강산은 좋은데
이쁜 다리들은 털난 딸라들이
다 자셔놔서 없다.

일어서야지,
양말 신은 발톱 흉물 떨고 와
논밭 위 세워논, 억지 있으면
비벼 꺼야지,

열번 부러져도 그 사랑
발은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있는 것,
발은 인류에의 길
멎고 멎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있는 것,
다리는, 절름거리며 보리수 언덕 그 미소를 찾아가려 나왔다.

다시 전화는 가고
쓰러진 폐허
함박눈도 쏟아지는데
어데서 나왔을까? 너는 또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97>
[담배 연기처럼]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머릴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다한
이 안창에의 속상한
드레박질이여.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맷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 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104>
종로오가

<116>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

<130>
조국

<170>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 꽃 바람 하늘 빛과 생명의 노래 - 로버트 프로스트
<18>
[구름 그림자]

부드러운 바람이 내 펼쳐진 책을 보더니
봄을 노래한 시를 찾으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길래
난 ‘그런 건 없다’고 말해 주려고 했어.

누구를 위해 봄을 노래한 시가 있겠는가
바람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
그 시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을까 봐
얼굴에 구름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어.

<22>
거짓 없는 진실은 노동이 알고 있는 가장 달콤한 꿈.

<23>
[장미 가족]
장미는 장미
언제나 장미
하지만 요즘 생각에는
사과도 장미
배도 장미입니다, 하여
오이도 장미가 됩니다.
다음엔 무엇이 장미가 될지
아무도 몰라요.
당신은, 물론 장미이지요.
언제나 장미였거든요.

<25>
[씨뿌리기]
저녁 준비가 끝나거든
날 데리러 일터로 오게.
내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흰 꽃잎 묻는 일을 제쳐두고
자네와 같이 올 수도 있지 않겠나.
(연한 꽃잎이지만 주름진 완두와
매끈한 콩과 서로서로 어울려서
단단한 열매를 맺는다네.)
무엇하러 왔는지도 잊고, 자네도 나처럼 될지 몰라.
봄철에 땅에 매인 사랑의 노예 말이야.
씨뿌리기로 시작해서
잡초가 흙 위로 번질 무렵
튼튼한 묘목이
몸을 구부린 채 어깨로 땅을 헤치고 나와
흙을 털며 탄생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훈훈히 솟아나는 그런 사랑 말일세

<36>
[눈 녹이는 바람에게]
오, 힘찬 서풍이여! 비를 몰고 오라!
노래하는 새, 둥지 트는 새, 다 불러 모아라!
땅 속에 잠자는 꽃은 꿈을 주어라.
눈 덮인 언덕에는 깊이 솟게 하라
흰 눈 아래 옥토를 드러내어라.
오늘 밤엔
내 창을 적셔 얼음이 녹아내리게 하라.
언 유리창이 녹아 은둔자의 십자가처럼
창살이 제 모습을 보이게 하라.
내 작은 방에 몰려들어 와
벽에 걸린 그림이 흔들리게 하라
책장을 넘겨라
마루 위엔 시를 뿌리고
시인일랑 문 밖으로 쫓아내 다오.

<45>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어느 곳에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자작나무를 기어오르듯이 살고 싶어라
하늘을 향해,
흰 눈이 덮인 거무스레한 줄기를 타고 올라
자작나무가 이길 수 없이 높이 올랐다가
줄기의 끝이 휘어져 다시
땅 위에 내려서듯이 그렇게 살고 싶다
돌아감도 돌아옴도 다 좋은 일이다.

<51>

늘 뭔가 수확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면,
정해진 계획보다도 더 남은 것이 있다면,
사과든 뭐든 잊혀져 남겨진 게 있다면,
그래서 그 향기에 취함이 죄가 되지 않는다면.

<53>
[어둠 속의 문]
어둠 속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 가면서
얼굴을 부딪치지 않으려 손을 앞으로 뻗었지만
손가락을 엮어 팔을 동그랗게 감싸는 것을
잊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날쌘 문이 내 방어를 뚫고 들어와
말할 수 없을 만큼 억세게
나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었는데 이제
사람과 사물들은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나 봅니다.

<71>
[짧은 인생]
늙은 개가 일어서지도 않은 채 뒤돌아보며 짖는다.
그 개가 강아지였을 때를 나는 기억한다.

<112>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
높으신 목적 위해 사랑을 성화(聖火)함은
하늘에 계신 신의 몫이요,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뿐이라네.


4. 책 속의 작은 발견
- 일기를 간혹 시처럼 써보도록 하자
- 지까다비 : 일본 버선 모양의 노동용 작업화.
- 파랑나비 = 하늘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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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2006.09.29 08:22:12 *.116.34.245
질문의 위대함에 대하여 생각할 것. 괴리에 대한 인식이 질문을 만든다. 괴리가 없으면 건너 뛸 수 없다. 이 단절 이 무지 이 암흑에 대한 인식이 곧 질문이다. 시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자유로운 창의적 답들이다. 무엇이든 꿈 꿀 수 있고 무엇이든 가정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시가 없었다면 인간은 세속에 갇혔을 것이다. 인류의 정신적 지평을 넓히고, 고도를 높이고 깊게 판 주역이다. 시인을 이해하려 하지 마라. 그 놈도 어제 고민이 많거나 삶이 마냥 즐거워 지나치게 많이 먹은 술에 취해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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