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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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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일 20시 45분 등록
안드레아 오펜하이머 딘, 희망을 짓는 건축가 이야기, space 2005
토바 마틴, 타샤의 정원, 윌북 2006

교보문고에 가면 책이 너무 많아서 어지럽다. 쉬운 책은 경박해 보여서 어지럽고, 어려운 책은 또 너무 두껍고 너무 진지해서 어지럽다. 한 번 히트한 책을 모방해서 제목을 붙인, ‘00콘서트’, ‘00백서’ -- 하는 아류와 세태를 쫓아가는 유행서들을 보면 심란하다. 제일 좋은 자리를 제일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문학 서가 쪽에 가면, 이번에는 너무 두껍고 너무 어려운 책이 많아서 심란하다. 도대체 누구보고 읽으라고 이렇게 대책없이 어렵단 말인가. 인류의 지성사는 꼭 이렇게 어려워야만 하는지, 독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책들의 낭비와 파괴, 누구 말마따나 나무에게 미안할 일이다.
이 많은 책의 밀림 속에서, 나를 기쁘게 해 줄 ‘나의 책’을 찾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한 두 시간 집중해서 뒤지다 보면 지쳐서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다. 오늘은 네 권을 찾았다. 오늘은 되었다. 다음에 다시 오자, 철수!


두 권의 책을 울면서 보았다. 자기의 삶을 자기 스타일대로 만들어 나가는 그들의 의지와 성취가 아름답고 부러워서, 비전만 있지 아무런 방법도 갖지 못한 내가 한심해서 비죽비죽 눈물이 나왔다. 좋은 책은 그렇게 어려울 이유가 없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데에도 그렇게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삶과 유리된 모든 이론을 경계한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소박한 지식과 실천을 사랑한다. 나는 사무엘 막비와 타샤 튜더를 사랑한다.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투박한 고집과, 기어이 일구어낸 그들의 ‘작품’을 사랑한다. 나도 내 삶의 작품을 만들어내야 할텐데, 왜 그렇게 시간을 낭비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더디 배우는 사람이란 말인가.


사무엘 막비는 미국 오번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서 학생들과 빈민촌에서 실제로 건축을 하는 수업을 이끌었다. 이름하여 루럴 스튜디오. 건축비를 줄이면서도 지역에 어울리는 건물을 짓기 위해 그들이 동원한 기발한 재료들은 실로 감탄스럽다. 건초와 폐타이어, 빈 병과 자동차유리, 자동차 번호판과 녹슨 여물통... 왁스먹인 골판지에 이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집들이 15,000달러 정도의 건축비로 지어질 수 있었고 그것도 모금이나 기부로 행해진 경우가 많았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재료들을 건축재료로 활용하는 방식, 그것이 누군가의 안식처가 된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집짓는 일은 매혹적이다.


이들의 작업은 ‘집’과 ‘건축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오한 대답을 준다. ‘집’은 생활인이 몸을 담을 수 있는 곳이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위용이나 자산가치를 위해서 불필요한 공간을 지닐 필요는 없다. ‘건축가’는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다. 이동주택도 없어서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에게 집을 지어주는 일은 거의 신성하기까지 하다. 가난한 건축주들의 의견을 물어서 최소단가로 집을 짓기 위해 애쓰는 학생들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루럴스튜디오에 참여한 학생들은 하루 종일 전력을 다해 설계, 재료 연구에 몰두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직접 시공까지 해내기 때문에 실용성과 인간주의에 눈뜨게 된다. 이것이 학문이다. 대학에서 배운 것이 현장에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그 사람들의 만족감이 다시 건축가의 행복이 된다.


타샤 튜더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작가이다. 작가이자 ‘비밀의 화원’과 ‘세라 이야기’의 일러스트를 그린 화가로, 지난 70년간 100권이 넘는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녀는 91세의 나이로 버몬트 주 시골에 30만 평이나 되는 정원을 가꾸며, 동화같은 삶을 살고 있다. 19세기식 생활을 좋아해서 옛날 집을 그대로 지어 살고 있으며, 팔이 긴 복고풍 원피스를 입고 염소젖으로 요쿠르트를 만들고 장작 스토브로 음식을 만든다.


그녀의 정원은 정말 아름다웠다. 검소하나 운치있는 짙은 나무색의 집, 화려하기 그지없는 돌능금나무와 작약, 양귀비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가 네 개를 원예서적으로 가득 채울 정도로 그녀는 원예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지금 고령의 나이에도 그녀는 장미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어릴 때 동화책 ‘비밀의 화원’을 보며 아련한 동경을 가졌는데, 타샤가 그 책의 일러스트를 그렸다니 정말 신기하다. 그리고 지금 타샤는 ‘비밀의 화원’을 가꾸고 있다. 반은 자연주의자요 반은 원예가로서, 자연을 도구삼아 연출하는 것을 즐기며, 직접 재배한 복숭아, 블루베리로 잼과 젤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그녀, 겨울에는 장작불 앞에서 그림을 그리며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에 로즈마리 한 대를 끼워놓는 그녀는 실로 자기 삶을 자유롭게 연주하고 있구나.


신기하게도 타샤와 나의 공통점이 많다. 넝쿨식물을 좋아해서 넝쿨을 올릴만한 곳에는 모조리 심어놓았다는 점, 꽃은 무더기무더기 피어야 한다고 구근을 늘 넉넉히 심는 점, 폭탄 모양의 꽃들을 좋아해서 붉고 흐드러진 작약이나 동백을 특별히 아끼는 것, 그밖에도 날씨가 조금 풀리면 늘 맨발로 땅을 밟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물론 나는 마음 뿐이고 타샤는 ‘비밀의 화원’을 가꾸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차이이기는 하다. ^^


보통 책을 보면서 밑줄 긋는 것이 큰 재미인데, 이 책들에는 한 군데도 밑줄을 긋지 않았다. 눈에 잘 띄는 곳에 꽂아두고 피곤할 때나 어려울 때, 늘 꺼내보고 쓰다듬고 싶은 책이다. 나아가 그들처럼 나의 삶을 연주해 봐야 할텐데... 조급하게 만드는, 눈물겨운 책들이다.

IP *.81.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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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6.10.01 23:59:30 *.147.17.79
이거 읽어야겠네요. 월척인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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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6.10.02 08:38:52 *.57.36.18
책에서 향기가 납니다.
그리고 글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그런 향기를 맡으면서 사는 님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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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뎀뵤
2006.10.03 12:17:18 *.74.62.22
나는 책이 수북히 쌓인 곳에서 책을 고르는 맛을 본지가 꽤 오래된것 같아요... ;;;
여기의 작은 서점에는 그저 베스트셀러만을 전면배치하기도 비좁고,
넉넉히 앉아서 책을 읽을만한 여유 공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대충 제목을 보고 맘을 끄는 것들을 골라 사면,
다섯중 하나는 꼭,,, 이건 아닌데~ 하는 후회를 하게 만드는 책이 끼어 있죠...

사실, 제목과 저자만을 알고 주문을 해도 실패하지 않는 '연구원 추천도서'만을 읽기도 벅찬상황이기는 하지만요~ ^^

'타샤의 정원'을 읽어봐야겠어요~
그리고, 이번 모임에 갈때는 교보문고도 들려봐야겠어요~
(한선생님 따라하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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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2006.10.14 20:05:28 *.107.228.58
좋은리뷰 감사합니다^
정말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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