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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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강 출판사, 2006
@ 정여울
30대 초로 추정됨,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공간> <씨네21> <출판저널> 등에 써온, 책과 미디어에 대한 리뷰를 모아 첫 번 째 책을 펴냄.
고3 때조차 잠자는 시간을 아껴 TV드라마를 보았을 정도로 책과 영화, 드라마.. 같은 모든 미디어를 태반으로 자란 미디어키드로서, 자신의 유일한 미디어로 글쓰기를 지목한다.
아무리 미디어가 제도와 자본에 의해 가공된 상품일지라도, ‘인간’의 상처와 무의식이 녹아있는 것이므로, 미디어 내부에서 미디어 외부를 발견하는 것, 가장 미디어적이고 대중적인 것에서 탈주적 가능성을 찾아내는 꿈을 가지고 있다.
@ 제목의 작법
이 책의 제목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에서 한 번 ‘아가씨’를 떼어놓고 읽어보라.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같이 밋밋하고 흔한 제목이 되어 버린다. ‘아가씨’라고 한 번 불러놓고 쉼표에 충실하게 잠시 쉬는 사이에, 우리는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에 관심과 기대를 갖게 된다. 그 기대치는 개인에 따라 평소에 ‘아가씨’에 대해 갖고 있던 개념만큼 천차만별이겠지만, 제목에 쉼표를 넣어 잠시 생각할 틈을 주어 스치는 눈길을 붙잡는 방법은 아주 성공적인 것 같다.
@ 책의 밀도
우연히 이 책과, 출판평론가 한기호의 “열정시대”를 같이 읽었는데, 두 책의 밀도가 현격한 차이가 났다. 대학시절과 직장편력에 대한 “열정시대”는 글의 성격을 인정한다고 해도, 유독 글이 듬성듬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나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같은 베스트셀러에 대한 출판영업자로서의 비화조차, 아주 단시일에 빠른 속도로 쓰여진 것같이 급조된 느낌이 진했다. 저자가 한 달에 원고지 500장을 쓸 정도로 활동적이면서도 힘겹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꾸려나간다더니, 글을 빨리 쓰는 습관이 밴 것이 아닌가 싶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출판영업자의 길을 걸어와, 오늘 독보적인 분야를 개척한 저자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책의 인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좀 더 꼼꼼하게 한기호의 다른 글을 읽어봐야겠다.
반면에 정여울의 책은 얼마동안에 쓰여진 글들인지는 몰라도 - 글이 발표된 지면과 시기는 커녕, 저자가 리뷰한 어떤 책은 지은이와 출판사도 소개되어 있지 않은 것이 단 하나의 흠이다 - 모든 글을 최고의 집중력과 공력을 발휘해서 쓴 티가 역력하다. 자연히 다른 책들보다 컨텐츠의 질과 양이 촘촘하기가 몇 배는 된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이혜경의 <길 위의 집>이 있는데, 장편소설인데도 아무 곳을 펼쳐도 삶에 대한 작가의 차분한 성찰이 가슴에 스며든다. 정여울의 이 책 역시 두고두고 아무 데나 펼쳐도 아름답고 명석한 문장과 독특한 시선에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다.
@ 아름다운 수사
일단 정여울은 글을 잘 쓴다. 명함에 마음대로 직업을 새길 수 있다면 ‘행복한 글쟁이’라고 새기고 싶단다. 왜 못하랴. 밥을 벌기 위해, 시간강사에 서평에 출판기획과 사교육업계에서 논술까지 가르치는 짝퉁 프리랜서로 버티고 있지만, 그녀의 성장가능성은 무한해 보인다. 탄탄한 철학과 지적 토양을 드러내는 분명하고도 아름다운 문장, 미디어를 보는 독특한 시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그녀는, ‘행복한 글쟁이’임에 틀림없다.
내 안에 들어온 그녀의 문장들.
75- 사랑의 위대함이라면 자의식의 육중한 갑옷을 벗어 던지게 하는 것, 사랑을 핑계로 비로소 나 아닌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내가 되는 것이 아닌지. 너의 간절한 목마름을 읽어내고, 너의 꿈이 나를 통해 흘러가도록, 내가 너의 그릇이 될 때, 이미 더 이상 널 가질 수 없음에 슬프지도,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음에 아프지도 않은 나를 발견한다. 사랑을 가질 순 없지만 사랑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우리 앞에 널려 있다.
97- 왕따의 기억이 없었다면,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텅 빈 놀이터에서, 물기 어린 망막에 비친 노을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 소중한 ‘빛’을 가능케 해 준 ‘어둠’은, 내 안의 괴물이 만들어낸 착한 어둠이었다.
118- 소주병이 깨지고 흩어져 있는 아스팔트 위를 속옷도 피부도 없이 생살을 문대며 기어다니는 애벌레 같은 그들. 그들은 규격화된 일상을 버티기 위해 지켜야 할 모든 매너와 관습의 시선을 부끄럽게 만든다.
242- 하루만 그 낡은 울타리에서 벗어나도 이토록 행복하기 그지없는데, ‘여행’과 ‘이국’이라는 동시 체험의 시너지 효과는 수십 권의 고전을 독파하는 지적 체험보다도, 몇 번의 뻐근한 연애 끝에 깨달은 생의 환희와 비애의 범벅보다도, 더욱 강렬하고 둔중한 것이었다.
243- 한국에서 우리가 느끼는 우울의 진원이 어디인지, 한국의 거리의 표정을 바꾸려면 어떤 건축적 고민이 필요한지,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지불하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눈치작전의 감정 낭비가 얼마나 막대한지 등에 대한 아이디어는 도미노처럼 번져갔다.
@ 지적 편력, 사회의식
짧고 단순하지만 좋은 책의 하나인 우화, “꽃들에게 희망을” 뒷부분에 저자가 이런 말을 실었다. “이 책을 쓰는 데 15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내 평생이 걸렸습니다.”
짧은 글에도 저자의 공력이 모두 실린다는 점에서 이 말은 맞다. 정여울이 대중적인 미디어를 재해석하는 솜씨를 보면, 그녀의 지적 편력이 만만치않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첫 회를 본 직후에 시청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방어본능까지 느꼈다는, TV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대한 애정은 놀라울 지경이다. 인생에 처절하게 실패한 사람은 재능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詩의 세계에 접근한다더니, 드라마 속 무혁과 은채의 아픈 사랑은 정여울의 감수성을 향해 사정없이 침투한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긴 제목의 영화를 나는 그저그런 로맨틱 터치로 보았는데, 정여울의 날카로운 시선과, 그로 인해 더욱 돋보이는 감성은 이 영화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미디어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감각에 고무받아, 나도 좀 더 뜯어보고 좀 더 새겨보는 습관이 생길 것 같다.
정여울은 주로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다. 내가 접해보지 않은 영화나 저술도 그다지 현학적인 것은 없다. 그녀의 문체는 쉽게 읽힌다. 그러나 그 쉬움 속에 만만치 않은 공력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빙산처럼, 제대로 한 공부와 진지한 사색이 버티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애초에 정여울은 어딘가 겉도는 수입이론 같은 것은 꺼내지 않는다. <안녕! 프란체스카>같은 흡혈귀 코미디에조차 애정을 기울이는 미디어마니아로서, 오로지 본인이 납득하고 체화한 칼날만을 사용한다. 그래서 정여울의 글에는 태작이 하나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정갈하다. 당연히 그녀의 평론에 신뢰가 간다.
소설가 방현석의 베트남 여행기, <하노이에 별이 뜨다>에서 정여울이 발견한 대목은 짐짓 감동적이다. 좋아하지도 않는 스파게티는 문제없이 잘 먹으면서, 왜 베트남 음식은 쌀국수조차 먹지 못할까? 서양의 낯선 음식은 우리와 ‘다른’ 맛이고, 베트남의 그것은 어딘가 ‘불결’하거나 ‘나쁜’ 맛이라는 내 머릿속의 식민주의 때문이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우리는 스스로의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편견과 맞닥뜨리게 되고, 고착된 자아의 경계를 넘나들고픈 꿈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무심히 접하는 대중문화에, 제대로 된 정신 하나가 들이대는 칼날이 매력적이다. 좋은 필자 하나를 새로 알게 되어 아주 흐뭇하다.
@ 그녀의 밥상
정여울이 차린 밥상이 그들먹하여, 몇 달 동안 읽을 것이 생겨 기분좋다.
그녀의 시선을 통해 내게 온 작품 중 우선 읽을 것들.
영화 “허공에의 질주” 정여울은 이 영화를 열 두 번쯤 보았다고.
방현석의 베트남 여행기, <하노이에 별이 뜨다>
권여선, 처녀치마
이탁오, 분서
남재일, 나는 편애할 때 가장 자유롭다
<프리다>에 대한 책과 영화
김지은, 서늘한 미인
이성욱, 쇼쇼쇼-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IP *.81.12.185
@ 정여울
30대 초로 추정됨,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공간> <씨네21> <출판저널> 등에 써온, 책과 미디어에 대한 리뷰를 모아 첫 번 째 책을 펴냄.
고3 때조차 잠자는 시간을 아껴 TV드라마를 보았을 정도로 책과 영화, 드라마.. 같은 모든 미디어를 태반으로 자란 미디어키드로서, 자신의 유일한 미디어로 글쓰기를 지목한다.
아무리 미디어가 제도와 자본에 의해 가공된 상품일지라도, ‘인간’의 상처와 무의식이 녹아있는 것이므로, 미디어 내부에서 미디어 외부를 발견하는 것, 가장 미디어적이고 대중적인 것에서 탈주적 가능성을 찾아내는 꿈을 가지고 있다.
@ 제목의 작법
이 책의 제목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에서 한 번 ‘아가씨’를 떼어놓고 읽어보라.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같이 밋밋하고 흔한 제목이 되어 버린다. ‘아가씨’라고 한 번 불러놓고 쉼표에 충실하게 잠시 쉬는 사이에, 우리는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에 관심과 기대를 갖게 된다. 그 기대치는 개인에 따라 평소에 ‘아가씨’에 대해 갖고 있던 개념만큼 천차만별이겠지만, 제목에 쉼표를 넣어 잠시 생각할 틈을 주어 스치는 눈길을 붙잡는 방법은 아주 성공적인 것 같다.
@ 책의 밀도
우연히 이 책과, 출판평론가 한기호의 “열정시대”를 같이 읽었는데, 두 책의 밀도가 현격한 차이가 났다. 대학시절과 직장편력에 대한 “열정시대”는 글의 성격을 인정한다고 해도, 유독 글이 듬성듬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나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같은 베스트셀러에 대한 출판영업자로서의 비화조차, 아주 단시일에 빠른 속도로 쓰여진 것같이 급조된 느낌이 진했다. 저자가 한 달에 원고지 500장을 쓸 정도로 활동적이면서도 힘겹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꾸려나간다더니, 글을 빨리 쓰는 습관이 밴 것이 아닌가 싶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출판영업자의 길을 걸어와, 오늘 독보적인 분야를 개척한 저자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책의 인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좀 더 꼼꼼하게 한기호의 다른 글을 읽어봐야겠다.
반면에 정여울의 책은 얼마동안에 쓰여진 글들인지는 몰라도 - 글이 발표된 지면과 시기는 커녕, 저자가 리뷰한 어떤 책은 지은이와 출판사도 소개되어 있지 않은 것이 단 하나의 흠이다 - 모든 글을 최고의 집중력과 공력을 발휘해서 쓴 티가 역력하다. 자연히 다른 책들보다 컨텐츠의 질과 양이 촘촘하기가 몇 배는 된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이혜경의 <길 위의 집>이 있는데, 장편소설인데도 아무 곳을 펼쳐도 삶에 대한 작가의 차분한 성찰이 가슴에 스며든다. 정여울의 이 책 역시 두고두고 아무 데나 펼쳐도 아름답고 명석한 문장과 독특한 시선에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다.
@ 아름다운 수사
일단 정여울은 글을 잘 쓴다. 명함에 마음대로 직업을 새길 수 있다면 ‘행복한 글쟁이’라고 새기고 싶단다. 왜 못하랴. 밥을 벌기 위해, 시간강사에 서평에 출판기획과 사교육업계에서 논술까지 가르치는 짝퉁 프리랜서로 버티고 있지만, 그녀의 성장가능성은 무한해 보인다. 탄탄한 철학과 지적 토양을 드러내는 분명하고도 아름다운 문장, 미디어를 보는 독특한 시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그녀는, ‘행복한 글쟁이’임에 틀림없다.
내 안에 들어온 그녀의 문장들.
75- 사랑의 위대함이라면 자의식의 육중한 갑옷을 벗어 던지게 하는 것, 사랑을 핑계로 비로소 나 아닌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내가 되는 것이 아닌지. 너의 간절한 목마름을 읽어내고, 너의 꿈이 나를 통해 흘러가도록, 내가 너의 그릇이 될 때, 이미 더 이상 널 가질 수 없음에 슬프지도,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음에 아프지도 않은 나를 발견한다. 사랑을 가질 순 없지만 사랑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우리 앞에 널려 있다.
97- 왕따의 기억이 없었다면,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텅 빈 놀이터에서, 물기 어린 망막에 비친 노을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 소중한 ‘빛’을 가능케 해 준 ‘어둠’은, 내 안의 괴물이 만들어낸 착한 어둠이었다.
118- 소주병이 깨지고 흩어져 있는 아스팔트 위를 속옷도 피부도 없이 생살을 문대며 기어다니는 애벌레 같은 그들. 그들은 규격화된 일상을 버티기 위해 지켜야 할 모든 매너와 관습의 시선을 부끄럽게 만든다.
242- 하루만 그 낡은 울타리에서 벗어나도 이토록 행복하기 그지없는데, ‘여행’과 ‘이국’이라는 동시 체험의 시너지 효과는 수십 권의 고전을 독파하는 지적 체험보다도, 몇 번의 뻐근한 연애 끝에 깨달은 생의 환희와 비애의 범벅보다도, 더욱 강렬하고 둔중한 것이었다.
243- 한국에서 우리가 느끼는 우울의 진원이 어디인지, 한국의 거리의 표정을 바꾸려면 어떤 건축적 고민이 필요한지,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지불하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눈치작전의 감정 낭비가 얼마나 막대한지 등에 대한 아이디어는 도미노처럼 번져갔다.
@ 지적 편력, 사회의식
짧고 단순하지만 좋은 책의 하나인 우화, “꽃들에게 희망을” 뒷부분에 저자가 이런 말을 실었다. “이 책을 쓰는 데 15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내 평생이 걸렸습니다.”
짧은 글에도 저자의 공력이 모두 실린다는 점에서 이 말은 맞다. 정여울이 대중적인 미디어를 재해석하는 솜씨를 보면, 그녀의 지적 편력이 만만치않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첫 회를 본 직후에 시청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방어본능까지 느꼈다는, TV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대한 애정은 놀라울 지경이다. 인생에 처절하게 실패한 사람은 재능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詩의 세계에 접근한다더니, 드라마 속 무혁과 은채의 아픈 사랑은 정여울의 감수성을 향해 사정없이 침투한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긴 제목의 영화를 나는 그저그런 로맨틱 터치로 보았는데, 정여울의 날카로운 시선과, 그로 인해 더욱 돋보이는 감성은 이 영화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미디어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감각에 고무받아, 나도 좀 더 뜯어보고 좀 더 새겨보는 습관이 생길 것 같다.
정여울은 주로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다. 내가 접해보지 않은 영화나 저술도 그다지 현학적인 것은 없다. 그녀의 문체는 쉽게 읽힌다. 그러나 그 쉬움 속에 만만치 않은 공력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빙산처럼, 제대로 한 공부와 진지한 사색이 버티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애초에 정여울은 어딘가 겉도는 수입이론 같은 것은 꺼내지 않는다. <안녕! 프란체스카>같은 흡혈귀 코미디에조차 애정을 기울이는 미디어마니아로서, 오로지 본인이 납득하고 체화한 칼날만을 사용한다. 그래서 정여울의 글에는 태작이 하나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정갈하다. 당연히 그녀의 평론에 신뢰가 간다.
소설가 방현석의 베트남 여행기, <하노이에 별이 뜨다>에서 정여울이 발견한 대목은 짐짓 감동적이다. 좋아하지도 않는 스파게티는 문제없이 잘 먹으면서, 왜 베트남 음식은 쌀국수조차 먹지 못할까? 서양의 낯선 음식은 우리와 ‘다른’ 맛이고, 베트남의 그것은 어딘가 ‘불결’하거나 ‘나쁜’ 맛이라는 내 머릿속의 식민주의 때문이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우리는 스스로의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편견과 맞닥뜨리게 되고, 고착된 자아의 경계를 넘나들고픈 꿈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무심히 접하는 대중문화에, 제대로 된 정신 하나가 들이대는 칼날이 매력적이다. 좋은 필자 하나를 새로 알게 되어 아주 흐뭇하다.
@ 그녀의 밥상
정여울이 차린 밥상이 그들먹하여, 몇 달 동안 읽을 것이 생겨 기분좋다.
그녀의 시선을 통해 내게 온 작품 중 우선 읽을 것들.
영화 “허공에의 질주” 정여울은 이 영화를 열 두 번쯤 보았다고.
방현석의 베트남 여행기, <하노이에 별이 뜨다>
권여선, 처녀치마
이탁오, 분서
남재일, 나는 편애할 때 가장 자유롭다
<프리다>에 대한 책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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