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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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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6일 21시 53분 등록
스티븐 브라운, 포스트모던 마케팅, 비즈니스북스 2006.8


1. 문체

사진으로 보는 저자의 이미지가 교수라기 보다 저널리스트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미지에 걸맞게 저자의 문체는 날아갈듯이 경쾌하다. 고객지상주의의 주류마케팅에서 벗어나, ‘포스트모던 마케팅’에 주목하는 관심자체가 그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세계적인 마케팅 석학들의 이론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논쟁화하는 저자 자체가 self-promoter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러면 논쟁적으로 딴지걸고, 막강한 사례로 무장하고, 여유있게 풍자하는 문체가 필요했을 것이다. 저자는 마케팅 학계의 장난꾸러기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번역자가 저자의 발랄한 비틀기 수법을 제대로 전달한 것같지는 않다. 게다가 이책에서는 영어문화권에서만 상식으로 통하는 개념들이 널리 쓰인다. Ted Levit, 광고의 Citizen Kane, Super-Duper, Big Gulp, Gotham City....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번역과 부연설명이라는 두 개의 터널을 통해, 즉각적이고 심층적인 -문자적인 전달 이전의 느낌공유라는- 의미의 바다에 빠지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이 두가지 이유로 해서, 저자의 생동감있는 문체를 충분히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쉽다.



2. 관점

스티븐 브라운의 포스트모던 마케팅은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출발한다.
피터 드러커가 ‘고객지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높이 쳐들었던 1950년대 중반 이후로, ‘고객중심주의’는 마케팅 교과서의 핵심을 차지해왔다. 그런데 그런 전략은 고객지향이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없었을 때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모든 기업이 고객지원이라는 편의를 제공하는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더 이상 효과가 없다.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과도하게 고객지향적이 되다보니, 소비자들의 사적인 공간을 침범하거나 지긋지긋하게 전화를 걸어대기도 한다.


심지어 현대기업들의 넌더리나는 고객지향에 대한 해학극이 등장하기도 한다. 비평가인 테드 낸시는 고객의 황당한 요구에 대한 서비스 업체들의 반응에 대한 글을 썼다.
덴버에 있는 호텔에다가 잃어버린 치아에 대해 문의하며, 시카고의 리츠칼튼 호텔 화장실에서 프로이센의 검을 분실했다고 주장했다. 터키의 한 대학에는 뮤지컬 공연에 도움이 되도록 71명의 빨강머리 터키인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비버리힐스 호텔에 단신의 곡예사 이름으로 예약하면서, 3피트 길이의 침대, 1피트 높이의 화장대, 30인치 높이의 샤워기 헤드를 요청하는 식이었다.

낸시의 요청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의무적인 진지함과 존경심을 가지고 이 요청들을 충실하게 처리했다. 고객중심주의의 압력으로 인해 고객의 지나친 요구에 대한 거부반응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고객중심주의에 휘둘려 기업들이 현대인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현대에는 ‘모든 것이 너무 많다!’ 오늘날 수퍼마켓에서 화장지 한 품종을 진열해 놓은 공간이, 옛날 구멍가게 전체보다 넓은 것이다! 물자도 너무 많고, 마케팅도 너무 많다.
경영대학원은 해마다 별 차이없는 마케팅 교과서를 통해 똑같은 지식을 갖게 된 MBA들을 10만 명씩 배출한다. 이 세상에 딱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부족함’ 뿐이다. 결핍성이 결핍된 것이다!

이에 저자는 고객중심의 마케팅에 반론을 제기하고 동시에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비약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포스트모던 마케팅’의 출발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서, 고객을 위해 노동하지 말고 고객을 유혹하라는 것이다. 고객지향이 흔해빠진 때에는 오히려 고객차단이 경쟁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고객을 껴안고 보호하는 것은 효과가 있다. 그러나 고객을 약올리고, 유혹하는 것은 더 효과가 있다. 그러니 고객을 구슬리고 회유하고 희롱하고 미끼로 낚고 기만하라. 바로 그거다. 오, 예!



3. 사례들

저자가 주장하는 포스트모던 마케팅의 기법은, 희소성과 트릭, 증폭과 미스터리, 엘렉트로테이닝... 같은 것들이다. 마케팅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부터, 어떤 사람들은 이런 기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해왔다. 고객의 심리를 읽는 동물적 감각을 지닌 역발상의 천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븐 브라운은 그에 대한 사례를 엄청 많이 수집해 놓았다.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라.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둘 다 예술과 관계된 것이다. 종종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웃사이더, 비주류, 주변인 등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나오는 수가 있다. 마케팅도 예외는 아니다. 알렉스 세이커의 ‘새비지 걸 Savage Girl' 같은 소설에서 우리는 도저히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통찰력을 얻는다. -공짜 선물 3


-사람들은 요즘보다 단순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다. 그 시절에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가 순수하고 완벽하다고 느꼈고, 그들의 신체는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필요한 능력의 전부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소비자로 살아가는 데 지쳐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상품을 갖고 있다. 당신의 상품은 그들의 순수함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상품은 본질적으로 소비에 반대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상품을 소비하는 것은 소비를 전혀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이다. 홍보기획을 할 때 항상 이것을 기억하라. 이 상품이 구매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가볍게 만들 것인지, 당신 자신과 별다를 것 없는 사람들을 얼마나 자유롭게 만들 것인지를 염두에 두어라. -


소설 ‘새비지 걸’의 주인공 우슬라는 한 야성적인 노숙자를 만난다. 도시의 정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야성녀의 훌륭한 능력에서 영감을 얻은 우슬라는 자연으로의 회귀와 소비자 중심주의의 포기를 바탕으로 뛰어난 마케팅 캠페인을 벌인다. 고급스러운 야성의 유행이다. 인조 모피 의류, 뼈 모양 팔찌, 하이힐 모카신, 거친 헤어스타일, 활과 화살 모양 엑세서리들이 그것이다.


이 책에서 한 기업의 CEO는, 성공을 거둔 상품은 모두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케터의 과제는 두 갈래로 나뉘어진 핵심-세이커가 말한 역설적 본질 Paradoxical essence of a thing을 다루는 것이란다. 아이스크림에는 에로티시즘과 순진함이, 커피에는 흥분과 휴식이, 놀이공원은 공포심과 자신감을 준다는 것이다. 일개 소설이 어지간한 마케팅 교과서나, 문명비평서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그 외에 공짜선물 7의 ‘앱솔루트’의 예술가시리즈도 인상적이었다.



4. 소감

이 책은 고객중심주의가 만연하고, 완벽하게 넘치는 상태에 대한 대안이다. 따라서 고객중심주의에도 도달하지 못한 사회가 껴안기에는 시기상조인 감이 있다. 또한 판매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든, 세제부터 항공기까지 그 무엇이든, 제품이 균질적으로 완성된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본적인 전제가 가능하다면, 그 때부터는 마케팅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케팅에서는 오로지 팔리면 善이고 팔리지 않으면 惡인가. 기발한 악동의 안내를 받아 들여다본 포스트모던 마케팅의 세계가 어지럽다. 그 모든 기법의 대상이 되는 소비자로서의 나를 거부하고 싶다. 그럼에도, 창의적인 저자의 연구과제 선택이나 문체는 매우 흥미로웠다. 어떤 역할로 살아가든, 창의적인 인간은 자기 식대로 상황을 돌파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놀 것을 발견한다. 짖궂은 장난꾸러기 스티븐 브라운의 스타일에서, 아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영감을 받는다. 이 싹이 조금 커봐야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IP *.81.2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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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6.11.16 14:30:15 *.57.36.34
고객만족을 담당하는 저로서는
아직 시기상조!!

진정 고객만족, 고객감동, 고객성공, 고객열광, 고객희열, 고객절정까지 간다음 고객유혹으로 가야될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고객감동도 못갔거든요.
물론 물질만능주의에서는 돈만번다면
고객이 무슨소용이 있겠냐만은...

유혹이 전부일때는 고객만족으로 다시오겠죠..
장난꾸러기를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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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희
2006.11.16 16:18:14 *.86.169.137
고객과 같이 노는것은 어떨까요? 거창한 개념말고 고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또 만날 날이 기다려지고 고객이 어려울 때 돕고 싶어지는 마음이 느껴진다면 고객도 그 느낌을 느끼지 않을지요? 사람인 이상...
근데 머리 다커서 만나 이러한 설래임을 느끼는게 정말 쉬운일은 아닌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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