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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9일 17시 58분 등록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북스넛, 2004


1. 창조성, 내 영원한 사랑


이 세상의 단어 중에서 하나만 택하라면, 나는 ‘창조’를 택하고 싶다. 나이들면서, ‘소통’이라는 단어가 부각되었지만, ‘창조’의 아성을 허물지는 못하였다. 학벌이나 사회적 위치에서 자유로운 대신, 내가 사람을 차별하는 한 가지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느냐’의 문제이다. 나는 그것이 ‘혼자 놀 수 있느냐’, ‘창의적이냐’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대2의 아들과 막 수능을 마친 딸애가 있다. 이 둘은 판이하게 다르다. 아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도 놀 수 있는 상황을 배치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대가가 주어지지 않아도 깊이 몰입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다. 얼음이 얇게 깔린 개울이 있다 하자. 아들은 돌을 던져 튀어오르는 물살을 사진찍기 시작한다. 돌을 던진다는 아이디어는 예상하지 않은 우연까지 제공하였다. 물살이 튀어오를 것은 예상했지만, 얼음장 밑으로 기포가 흐르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양한 모양의 기포가 흘러갔다. 어떨 때는 튀어오르는 물살을 둥근 환環 모양의 기포가 감싸는 멋진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또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갈라진 얼음장이 독특한 문양을 구성하기도 했다.


반면에 딸애의 최대 놀이는 TV시청이다. 내가 그 애를 가장 안쓰러워하는 부분이다. 나는 댓시간만 계속해서 TV를 보아도, 신경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는다. 발육도 제대로 안된 10대의 우상과, 상식적인 교양도 지니지 못한 MC의 진행을 지켜보는 것이 어지럽다. 수험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어디 너 맘대로 해봐라, 하며 지켜보고 있지만 정말 큰 일이다.


어쨌든, 스스로 몰입하여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창조’는 아주 멋진 삶의 방식이다. 글, 미술, 도예, 건축물, 음악, 옷...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은 참 좋아보인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동인이다.



2. 창조성은 분석될 수 있는가


이 책은, 다중지능이론으로 유명한 하워드 가드너가 일곱 명의 창조적 대가들을 연구한 것이다. 내게 가장 의미있는 단어 ‘창조성’에 관한 연구인 셈이다. 저자는 이들 전형적인 창조자를 E.C.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일곱 명의 E.C.에 대한 연구를 통해, 창조적인 행위의 본질에 대해 대략적이나마 결론을 내리고 싶었던 것 같다. 다양한 분야에서 선택한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창조적인 행위를 통어하는 법칙을 추려내고자 하는 것이다. 하워드 가드너도 대단한 법칙성을 기대하기 보다, 적어도 논쟁을 이끌어낼 수 있을만한 논의 구조를 세우는 정도를 바란다고 쓰고있다. 621쪽


그러나 7명의 E.C.에게서 창조성에 대한 어떤 법칙을 발견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저자가 세운 출생지와 가정환경, 조력자... 같은 분석포인트 자체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작업방식이나 대인관계의 측면도 제각기 다양했다. E.C.가 10년을 주기로 창조적인 도약을 보인다는 사실도, 이 방대한 연구의 결과라기에는 빈약해 보인다.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나조차 10년을 주기로 변화를 갖기도 하는 것이다. 20대의 농활, 30대의 결혼생활, 40대의 사업, 그리고 지금 시니어 분야에 몰입하는 주기가 정확하게 10년 주기와 일치한다. ^^


E.C.가 혁신적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기꺼이 특별한 계약을 맺는다는, ‘파우스트적 계약’조차, 드라마틱한 용어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약하다. 프로이트와 간디, 엘리엇의 금욕적인 삶, 피카소의 매저키즘적 대인관계는, 우리가 예술가에 대해 갖고있는 상식적인 견해를 뒷받침했을 뿐이다. 열정적이고 자기 감정에 충실하며, 그렇다보니 당연히 변덕스럽고, 경계인적인 성향을 지닌다는 특성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또 한 가지, 저자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것은 장-場, field-의 역할에 대한 지나친 비중이다. 당대에 인정받은 인물만을 선정한 데 대해, 저자는 슬쩍 피해간다. 그것은 성공의 문제이지 창의성의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 場의 인정이 없다면 우리가 E.C.를 가려낼 근거가 없지않느냐는 말은 아무래도 옹색하다. 니체나 고흐처럼, 후대에 와서 천재성이 인정된 E.C.에 대한 분석이 제외되었다.



3. 인상적이었던 부분


7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처음 접하니, 조금 질리는 기분이었다. 분량에 질려 한동안 밀쳐두었다가, 인물 편부터 한 명씩 읽기 시작했다. 일곱 명의 위대한 인물들에 대한 개략적인 전기물은 색다른 것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앞뒤로 붙여진, 연구의 틀을 읽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내게 단순한 전기물로 다가왔다. 굳이 하워드 가드너가 써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했다. 역동적인 높낮이가 없이 평면적인 문체가 지루할 때도 있었다. 대략 알고있던 위인의 생애에서 조금도 나아진 점이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제목은 좋았는데, 많이 서운하다.


E.C.의 생애에서 유독 인상적인 부분은 두 군데이다. 하나는 피카소의 정력! 두 번 째는 간디의 이상행동! 피카소는 어려서 신동이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어린 나이에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렸다는 자신감, 성년이 된 이후로 하루 평균 한 작품을 그릴 정도의 정열, 다채로운 애정편력, 잔혹할 정도의 인간관계는 예술가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천재는 보통사람하고는 달라야 할 것 같고, 또 그 다름이 모두 받아들여졌으며, 긴 생애 내내 온갖 명예와 부를 누린 피카소. 그의 날카로운 예술론은 그의 엽기적인 행각을 모두 상쇄한다.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이다. ... 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림은 집 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 322쪽


E.C.에 대한 내용 중에서 가장 낯선 부분은 간디의 개인적인 측면이다. 단식과 무저항의 영적 지도자로만 알고 있던 간디에게 숨겨진 부분이 흥미로웠다. 수백만 명의 대중에게 탁월한 호소력을 발휘했던 사람이 자기와 가까운 가족, 친지와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고, 자신의 추종자를 고압적으로 대했다는 것. 심지어 말년의 행각. 간디가 종종 다른 사람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을 만족시켰다는 사실은, 인간의 불합리함과 복잡함을 증거한다.



4. 역시 학문적 접근은 재미가 없다


학문적인 글은, 문체와 내용 면에서 모두 재미가 덜하다. 학자들은 보통 상식으로 통용되는 사실조차, 실험과 검증을 통해서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대중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실 하나를 얻기 위해 방대한 연구를 해야 하는 수고를 치룬다. 문체역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터치하지 않으려고, 온건하고 명백한 사실만을 합리적으로 기술하다 보니 맥빠지기 일쑤이다. 나는 학문적인 입장보다는 저널리즘적인 입장이 좋다. 미처 검증되지 않았다고 해도, 직관을 설파하고 희망의 나라로 이끌어가는 분명하고 명쾌한 글이 좋다.
IP *.105.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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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7.01.02 00:33:29 *.75.166.98
선생님!
저도 선생님의 "역시 학문적 접근은 재미 없다."에
백 퍼센트 공감합니다.
어느 분이 그러더군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 읽혀지는게
논문인데 독자가 여섯명이래요...
한 명은 저자고 다섯명은 심사위원이고... ^^

저의 생각도 그렇거든요,,
그들이 수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더 대중적일 필요가 있다...
아니 학문적으로 표현해서
좀더 현장접근적일 필요가 있다.라고 요...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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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01.02 08:03:01 *.81.62.91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삘이 안와서 의무감으로 쓴 글인데,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해 동안 날마다 홈피에서 뵈니 꼭 아는 분 같이 느껴지는군요.
스포츠맨 답지 않게 감수성과 창의성이 뛰어나고, 특히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아채는 감정이입이 놀랍습니다.

단도직입적이고 들이받는 측면은 저와 비슷할 것 같구요,
조분조분 말씀을 풀어내시는 것은 저와 다른 것같구요. ^^
저는 너무 말하는 걸 싫어해서 탈이거든요. 오죽하면 학원할 때 제일
힘든 것이 상담이었겠어요.

성렬님이 대중적인 글쓰기에 대해 말을 먼저 꺼내셨으니까, 한 마디만 보태자면요.
성렬님이 무언가 많이 겪었고, 무언가 되게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은 느껴지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우리 독자는 모른답니다.
구체적인 정황이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만의 힘듬과 깨달음이 독백으로 반복되니까, 읽기가 조금 힘들 때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시로 구체성을 좀 주시면, 성렬님의 글이 좀 더 커다란 메아리로 울려올 것 같습니다.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평소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많이 행복하고, 덜 외로운 새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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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7.01.02 13:48:02 *.75.166.98
선생님의 조언을 명심하고 실천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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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1.26 08:21:09 *.152.82.31
1월 들어 읽은 책 중에 어렵고 힘든 책이기도 하고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칼리 피오리나의 책과 더불어 진지하고 재미있게 읽고 있지요.
저 역시 답답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10년 주기'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 읽은 다음에 후기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쉬 읽혀지지 않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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