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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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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11일 19시 55분 등록
사람풍경 /김형경/ 2004년 초판 /예담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이 책의 두 번째 장 '선택된 생존법들' 중 '의존' 꼭지에 인용된 황인숙 시인의 '강'의 전문이다.
처음 읽을 때는 마음이 불편했고, 두 번째는 고개를 끄덕였으며,
세 번째 부터는 읽을 때마다 피식피식 웃었다.

이 책도 그랬다. 김형경의 '사람 풍경'


저자소개

김형경. 본명 김정숙. 1960년 1월 22일 강원 강릉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학사.
1983년 '문예사상' 신인상 '죽음잔치' 당선 데뷔
1986-1991 중앙일보 출판국 기자
1992-1992 월간 '마스터라이프' 편집장
1994년 국민일보 창간 5주년 기념 장편공모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당선

작품
장편소설 ‘외출’, ‘성에’‘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창작집 ‘단종은 키가 작다’ ‘담배 피우는 여자’
심리 여행 에세이 ‘사람풍경’ 심리 치유 에세이' 천개의 공감' 등

그녀의 다른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대학 시절 '성과문학'이라는 교양수업을 받을 때 읽어야 하는 책 리스트 중 그녀의 것이 있었다. '사랑을 선택하는 아주 특별한 기준' 이라는 소설이었는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페미니즘이 깔려 있었다는 것과 ,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쾌한 느낌이 들어서 그녀의 책을 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책을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아마 그녀의 책 속에서 내 컴플렉스의 일부분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중학교 시절,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데미안'을 꼽았었다.
정확히 기억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네 안에 있지 않은 것은 너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김형경의 책 속에서도 이 내용이 되풀이된다. 알 속에 갇힌 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 안의 미성숙한 자아를 쓰다듬고 극복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 유독 불편한 것들은 그것이 내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자기치유나 내면 들여다보기- 에 항상 관심이 많았다. 사실 나는 관심이 온통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고민인 사람이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궁금했던 내면의 감정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많은 부분이 설명되었다.
20대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저자가, 20년이 지나 이렇게 성숙하고 멋진 책을 써냈다는 사실은 참 고마운 일이다. 2007년의 처음은 이 책 '사람풍경'부터 그녀의 신간 '천개의 공감'으로 이어진 심리여행으로 즐거웠다고 기억될 것 같다.


책 속에서


1. 기본적인 감정들

무의식 -우리 생의 은밀한 비밀 창고

p 25 우리 삶의 중요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비밀 한 가지는 우리 대부분이 세 살까지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여섯 살까지 배운 관계 맺기 방식을 토대로 하여 살아간다는 점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인간 정신이 생후 3년에 이르기까지 60퍼센트, 여섯 살까지 95퍼센트 형성된다고 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다섯 살까지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p 26 '세상에는 완벽한 어머니도 없고 완벽한 자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참자기가 생겨나서 독특하고 자율적인 자기에 통합되기 시작하는 생후 첫 3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이 어린 시절의 사소했던 갈등의 잔재 때문이고 그 결과 창조성과 자율성, 성적 친밀감에서 경미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

사랑-모든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

p 33 인간의 삶은 곧 사랑의 역사이며, 모든 피면담자가 정신분석의를 찾아가서 하는 이야기도 결국은 사랑에 관한 것이고, 분석 치료조차 총체적이고 면밀한 전이와 역전이의 스토리라는 것이다.

p 36 유치는 유아기에 제대로 된 애착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의 전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나를 갈망하면서도 내게 접근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내게 서운함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내게 투정하고 매달리는 대신 거리를 두었으며, 어느 순간 나를 향해 품었던 애착을 분노로 바꾸어버렸다.

p 37 생애 초기에 엄마와 제대로 된 애착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이 갖는 문제 중에는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이 있다. 애착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시기의 결핍이 정신의 일부로 형성되어 있어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상선택-타인을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과정

p 43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전문 용어로는 '대상 선택'이라고 하며, 프로이트는 대상 선택의 기준을 의존적 대상 선택과 자기애적 대상 선택, 크게 두 가지고 나눈다.
의존적 대상 선택이란 말 그대로 의존할 대상을 사랑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아기가 엄마에게 그토록 애착을 품는 이유는 엄마가 먹을 것을 주고, 보살펴주고, 정서적으로 교류하며, 생존에 필요한 것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p 45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앞을 볼 수 없는 남편과 걷지 못하는 아내의 한 몸같은 삶을 소개하는 다큐멘처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부부는 서로의 눈과 다리 역할을 하며 어디를 가든 함께 다녔다....아마도 그것이 사랑의 가장 핵심적이고 진솔한 속성이 아닐까 싶었다. 각자의 절박한 욕망을 얼마나 잘 충족시켜주는가,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사랑의 유지 여부가 달려 있을 것이다.

p 46 자기애적 대상 선택의 특징은 우선 자기 이미지와 닮은 사람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점이다. 타인을 사랑할 때도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대상에 비친 자기 이미지를 사랑한다.

분노-대상 상실의 감정, 혹은 돌아오지 않는 사랑

p 59 분노의 또 한 가지 속성에는 '자기애적 분노'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태생적으로 나르시시스트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이 소중하고 특별하고 선하고 정당한 사람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자기 이미지가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를 자기애적 분노라고 한다. 타인이 자기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화가 나고, 타인이 자신의 성취에 대해 비판하면 분노하고, 타인의 사소한 지적에 대해서도 저항감을 느끼는 것이 자기애적 분노다.

p 63 '화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아기다. 그윽한 마음으로 화를 끌어안아야 한다. '
틱낫한 스님의 '화'에는 신경증적 분노에 대해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p 65 5분 이상 화가 난다면 그것은 나의 문제다.'
화를 잘 낸다 함은 어떠한 분노도 5분 안에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울-정신의 착오, 혹은 마음의 요술 부리기

p 70 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사랑이고 다음으로 중요한 감정이 분노라면 그것들의 연장선상에서 세 번째로 주의 깊게 돌봐야 하는 감정은 우울증이라고 한다.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들은 분노가 억압되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할 때 우울증이 생긴다고 보았다. 외부로 표출되지 못한 감정들이 내면으로 돌려져 자기 파괴, 우울증, 자살 등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우울증은 돌아오지 않는 사랑,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슬픔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p 76 삶에 장애가 되는 사랑이나 분노의 감정이 유아기에 형성된 것이듯 우울증 또한 현실의 문제에서 생긴다기보다는 의식의 어느 부분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과 기타 정서장애에 접근하는 '인지요법'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기분은 우리의 '인지' 또는 생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바로 그 정신적 왜곡들을 정확히 가려내고 제거하여 기분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 치료법이라고 한다.
' 우울함을 느낄 때 당신의 사고는 부정성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그런 때는 자신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어둡고 침울한 용어로 지각한다. 당신의 정서에 혼란을 일으키는 부정적 사고에는 거의 언제나 커다란 왜곡이 포함되어 있다. 그 비합리적으로 뒤틀린 생각이 당신 고통의 중요한 원인이다. '

p 77 생각해보면 내게도 우울증이 찾아올 때면 의식의 왜곡 현상이 늘 함께 오곤 했다.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들끓어 올랐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다는 자기 비하감, 근거를 알 수 없는 죄의식,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 전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바로 그런 생각이 인지 왜곡, 즉 마음의 착각이며 유아기의 환상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우울증은 내 마음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난장판이며, 정신의 착오일 뿐이었다.
이제 나는 우울증을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틀림없이 이런 상황 중 하나다. 일주일 이상 운동을 하지 않았거나, 너무 오래 사람을 만나지 않은 채 틀어박혀 있었거나, 심하게 추위에 노출되거나 햇빛을 적게 쬐었을 경우이다.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20분 정도만 걷거나 달리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라앉고, 40분 정도 지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 시간쯤 지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솟아오른다. 이렇게 사소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깨닫는 데, 이처럼 손쉬운 대처법을 터득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게 가끔 약 오른다.

불안 -사랑하는 대상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공포-분노가 가면을 쓰고 다른 대상에게 옮겨진 것

p 98 정신분석을 받고 깨달은 것은 그 폭발적인 공포의 감정이 모두 억압된 분노라는 사실이었다. 아기 때부터 억압되고 내면화된 분노는 다른 감정이나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포심이라고 한다.

2. 선택된 생존법들

의존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대상

p 116 의존성의 가장 대표적 사례가 사랑이며, 사랑의 중요한 속성 또한 대상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일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사람이 연인과 헤어지면 가장 먼저 다른 연인을 찾는다. 그런 이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의 속성이 의존성이어서, 그는 늘 누군가 심리적, 정서적으로 의존할 대상을 필요료 하기 때문이다.

p 120 황인숙 시인의 시집 '자명한 산책'에 실린 첫 번째 시는 '강'이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중독-의존성이 심화 극단화된 상태

p 135 중독을 치유하는 일은 정신의 지층을 재배열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라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알코올 클리닉이나 금연 학교에 대해 다룬 내용을 보면 그 과정이 거의 자기 파괴의 지옥에 가깝다. 그것이 힘든 진짜 이유는 심리적인 해체가 선행되어야 하며, 절대로 돌아보고 싶지 않은 내면으로 들어가 유아기의 고통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쉽지 않을 때 전문가들은 차선책으로 부정적 중독을 긍정적 중독으로 바꿀 것을 권한다. 알코올 중독은 운동 중독으로, 흡연 중독은 독서 중독으로.

질투-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

시기심-타인이 가진 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

p 155 질투심이 세 사람 사이의 감정이며 그 심리적 배경이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 이라면, 시기심은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며 그 심리적 배경은 '상대방이 가진 것이 내게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분열-세상을 반으로 축소시키는 태도

p 171 이제 나는 특정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라고 표현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의 내면에 혹시 이런 목소리가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나는 '좋은 사람'의 억압을 좋아해. 그 사람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억압하여 점차 무력한 사람이 되어가는 게 좋아. 그리하여 나를 공격하거나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점, 나의 경쟁자가 되지 않는 점이 좋아. 그가 마침내 암에 걸려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기뻐. '

투사-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타인에게 옮겨놓기

p 177 우리가 타인에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은 대체로 투사일 경우가 많다. 타인의 이기적인 면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은 대체로 이타적인 사람이겠지만 그 사람의 내면에도 억압당한 이기심이 들어 있게 마련이다. 타인의 성적 방종에 대해 유독 분노하는 사람은 성적으로 도덕적인 사람이겠지만 그의 내면에도 바람둥이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수다스럽고 경솔한 사람을 경멸하는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도, 거짓말하는 사람을 경원시하는 정직한 사람도, 저마다의 내면에는 바로 그들이 인정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바로 그 부정적인 측면이 억압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난할 때 그 행위는 곧 자신에 대한 비난이 되는 셈이다.

회피-자기 자신과 삶으로부터의 도피

p 191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절집 요사채나 여행지 숙소를 좋아하는 마음에 도피나 방어 심리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의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이 없는 공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간, 너절한 일상이 주변부가 섞이지 않는 사유..... 낯선 숙소에 대해 생각하는 그 모든 수사들은 삶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의 말투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절에 드나들었던 저 이십대부터 낯선 도시를 떠도는 그때까지 간단없이 도피하고 있었던 셈이다. 삶으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비로소 모든 게 확연해졌다. 틀림없이 여행 습관이 일종의 방어의식이었다. 삶의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가지 못해, 내면의 고통과 직면하지 못해 어디론가 도망치고자 하는 행동이었다. 표면적으로 그 여행은 정신분석에서 알아낸 많은 것들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고 넘어서기 위한 완충지나 숙성기의 시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분석을 받으며 헤집어진 고통스러운 감정,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삶으로부터 멀리 도망친 행동이었다.
나중에 그런 방어의식을 전문 용어로 '회피'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상황,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라는 것이다.

p 197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말이 있지만 그 말에서 칭찬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칭찬이 아니라 인정과 지지이다. 칭찬의 심리에는 소극적 시기심과 적극적 방어의식이 숨어 있을 뿐이다.

p 198 인간은 본질적으로 방어적이라고 한다. 유아기 때부터 외부의 고통스러운 삶, 상황, 감정으로부터 자아를 방어하며 그 기질은 평생 지속된다.
p 198 정신분석을 받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맞닥뜨렸던 것 역시 방어의식이었다.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종류의 방어의식이 나의 내부에 있었으며 방어의식에 갇혀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는 듯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낯선 숙소에 머무는 듯한 삶, 저편 언덕에 닿지 않는 다리 위를 걷는 듯한 삶, 거대한 방패에 갇혀 있는 듯한 삶, 그 속에서 정신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생은 진퇴양난의 계곡에 방치되어 있을 것이다.
사랑의 반대말이 증오나 분노가 아니라 '무관심'이듯, 생의 반대말은 죽음이나 퇴행이 아니라 '방어의식'이 아닐까 싶다. 방어의식은 사람을 영원히 자기 삶의 바깥에서 서성이게 만든다.

동일시-타인을 받아들여 나의 일부로 만들기

콤플렉스-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의 근원

3. 긍정적인 가치들

자기애-퇴행과 성장으로 난 두 갈래 길

p 238 '나르시시스트들의 행동 특성들은 신체를 드러내는 것(노출증), 권력 있는 지위에 스스로를 천거하는 것(자기 과신) , 음식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먹는 것(자기 중심), 대가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커다란 호의를 구하는 것(특별 대우), 친구의 어려움을 보면서 웃는 것(공감 결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이용하는 것(대인 착취) 등이 있다.'

자기 존중-행복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느낌

p 245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한 사람의 사랑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처럼 가슴 아픈 구절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사랑한다' 는 말은 '타인의 욕망에 대상이 되는 일에 지극한 만족감을 느낀다' 라는 뜻이고, 또한 '나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돌볼 줄 모른다' 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내가 사랑을 느끼는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며, 그리하여 내 사랑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본 일이 없다'는 뜻과 같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른다' 는 뜻과 닿아 있을 것이다.

몸사랑-몸이 곧 정신이고 육체가 곧 정체성이다

p 263 그렇게 걸으며, 몸의 감각을 느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옷차림에도 변화가 왔다. 예전에는 노출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무릎 위나 등도 드러내 보았고,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도 입었다. 전에는 결코 선택한 적이 없는 얇은 레이스 원피스나 요란한 꽃무늬 의상을 선택했다. 오직 내 몸의 감각과 욕망에 충실하게 옷을 입었을 때 그 행위에서 다시 심리적인 해방감이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여행은 몸에 대한 억압을 벗고,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 몸의 욕망을 수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에로스-생의 에너지이자 예술의 지향점

p 283 '사랑의 실체를 그토록 적나라하게 파헤치다니, 나는 누나가 앞으로 사랑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후배에게는 말없이 웃기만 했지만 나는 후배와는 반대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성에'를 끝낸 후 앞으로는 사랑을 잘 할 것 같다는 용기를 얻었다. 나르시시즘 없이, 환상 없이, 헛된 기대나 욕망 없이. 그런데 이렇게 쓰고 나니 가슴 한켠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듯 서늘하다. 역시 사랑의 핵심은 환상이나 헛된 기대에 있는 걸까.

뻔뻔하게-유아적 환상 없이 세상 읽기

친절-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지켜보기

p 305 타인에게 과잉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을 것이다. 상대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사기 치는 사람. 심리적으로 더 문제가 되는 사람은 후자이다. 그런 이들은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가 받고 싶은 보호와 관심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방식으로 친절을 베푼다.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돌아올 호의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면서 그 일을 한다. 인간에게는 호의를 베풀어놓고 상대가 그것에 대해 보답하는지를 지켜보는 무서운 속성이 있다고 한다. 오른손이 한 일에 대해 왼손이 보답받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동안 내가 베푼 친절에도 틀림없이 그런 속성이 있었을 것이다.

p 308 인간은 본질적으로 늘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행위에도 당사자의 욕망이 배제된 행위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랑이나 헌신도, 친절이나 호의조차도. 내가 타인에게 베풀었던 친절의 본질을 알게 되자 타인의 친절에 대해 특별히 감동하지도, 불친절에 대해서 서운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이 조금 더 잘 보이니 세상이 조금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정과 지지-고래도 춤추게 하는 놀라운 힘

p 320 칭찬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정이나 지지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칭찬은 우선 시기심의 다른 얼굴이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재능에 대해, 그것을 빼앗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 위해 칭송하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칭찬은 또한 말로써 타인을 움직이려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칭찬의 위력을 아는 사람들은 칭찬으로써 타인을 조종하는 생존법을 사용한다. 자기 존중감이 약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칭찬에 더 많이 황감해하고, 더 많이 지배당하기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비밀 한 가지는 모든 연애 선수들이 동시에 칭찬 선수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p 321 '지지 정신치료'라는 책에 의하면 '지지'란 모든 형태의 정신 치료의 중요한 요소이며, 카운셀러에게 필요한 기능이라고 한다. 지지는 '판단하는 마음 없이 타인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 충고하고자 하는 마음을 누른 채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정의된다. 바로 그 지지의 태도를 자기 자신에게 돌릴 수 있으면 타인의 칭찬에 그토록 들뜨거나, 외부의 비판에 그토록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자기 중심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타인에게 이르는 가장 선한 길

p 326 ' 대체 그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왜들 그렇게 요란을 떠는 거죠?'
그 학생은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이 우울해하고 근거 없이 자기를 비하하고, 특정한 사물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때 그 전문의는 '빨리 연애해서 실연이라도 당해보라'로 충고한다고 한다.

p 331
'불길한 붉은 석양이 퍼지고 벌써 달이 떠올랐다. 해가 지는 쪽을 향해 배 위에 앉은 다섯 여인.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다섯 여인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부짖는 여인이 있고, 수평선 끝을 향해 아주 멀리까지 시선을 밀어내는 여인이 있고, 수굿한 태도로 간절히 기도하는 여인이 있다. 그 상황에서도 빼어나게 단정한 자세, 의연한 눈빛을 허공에 두고 있는 여인이 있고, 발치에 앉은 개를 쓰다듬는 여인이 있다. 여인들은 모두 옆모습을 보이고 있고 화면 앞쪽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개 한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엎드려 있다. 털에 더러운 먼지가 많이 묻은 개는 지쳐 보이기도 한다. 화면 위쪽에서부터 덮이는 어둠이 벌써 그녀들의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

p 332 공감은 연민이나 동감과도 구분되는 감정이라고 한다. 연민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전제로 한 감정이고, 동감은 객관적 태도를 잃고 상대방에게 휩쓸리기 쉬운 감정이다. 반면 공감은 중립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는 것이라 한다. 한 인간의 비통, 애착, 공포, 분노.... 그리하여 인간이 그토록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느끼는 상태이다. 인정과 지지 역시 공감이 전제되어야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덕목일 것이다.
'자기 마음에 고요히 머물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에도 잠시 머물 수 있다. '

용기-절망 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는 능력

p 344 '혼자 있다'라는 말이 거느리는 이미지나 울림은 그 진폭이 상당히 크다. 고독을 잘 이겨내는 강인한 인성의 소유자라는 의미부터 외롭고 청승맞은 사람이라는 인상까지, 세속을 벗어난 독야청청한 수행자의 이미지부터 세상의 흐름에서 소외된 인물이라는 이미지까지. 아마 '혼자 있다'는 말에는 두 가지 측면이 다 존재할 것이다.
'혼자 있기'의 병리적 측면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극단적 방어의식, 또는 분노의 표현' 일 수 있다. 상처 입은 동물은 산의 가장 후미진 곳을 찾아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다. '혼자 있기'의 건강한 측면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분리와 개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은 채 충만함 속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정신 건강의 중요한 척도라고 한다.
롤로 메이는 생의 각 국면에서 여러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홀로 존재하는 용기, 자신의 내면과 직면하는 용기, 선이나 도덕을 지키는 용기, 신체의 힘을 잘 사용하는 용기, 창조하는 용기, 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감정의 동요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용기. 그는 어떠한 용기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은 모두 그 사람의 무의식적 공포를 감추기 위해 사용되는 단순한 허세라고 말한다. 용기가 없다면 사랑은 단순한 의존 상태가 되고 용기가 없다면 충성심은 획일주의가 되고 만다. 용기는 일체의 정신적인 덕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다.

변화-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의 방식 수정하기

p 353 평생에 걸쳐 꿈꾸어온 '삶이 안정되면....'이라는 욕망은 내 불안감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생의 구체성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은 우울증의 한 증상일 뿐이었고, '생은 아름답지만 일상은 참 너절하다'는 생각은 일상이 안락하지 못하다고 느낀 유아기의 착오였을 것이다.

p 358 인간과 세상을 보는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삶의 태도에도 변화가 왔다. 유아적 환상에 가득 차 있던 내면 세계에서 빠져 나와 비로로 객관적 실체로서의 외부 현실을 인식하게 된 것 같았다.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는 대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타인을 돌보는 것으로 나의 가치를 삼는 이타주의 방어기제를 포기했다. 외부의 인정과 지지를 구하는 대신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훈련을 했다. 남의 말이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타인의 어떤 말이다 행동은 전적으로 그들 내면에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은 타인의 언행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타고난 존재라 믿게 되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과 정서의 여러 층위들을 더 세미하게 느끼고 수용하면서도 건강한 자기 중심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자기 실현-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일

p 368 전문가들은 그런 행위를 '자기 실현'이라고 칭한다. 억압이나 회피의 방어기제를 벗고,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도 깨뜨리고, 외부에 내보이는 페르소나도 벗고, 진정한 자신의 내면에 닿는 것, 그것이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라고 한다. 본성의 자기와 만날 때에야 빛나는 통찰과 창조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의존-나와 애인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큰 단어

p 116 의존성의 가장 대표적 사례가 사랑이며, 사랑의 중요한 속성 또한 대상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일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사람이 연인과 헤어지면 가장 먼저 다른 연인을 찾는다. 그런 이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의 속성이 의존성이어서, 그는 늘 누군가 심리적, 정서적으로 의존할 대상을 필요료 하기 때문이다. /

애인이 가끔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너 나 죽으면 어떡할래?'

.........한 일주일동안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펑펑 울면서 엄청나게 슬퍼한 다음에, 새 애인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애인 왈. '나쁜 놈. 넌 그럴 줄 알았어. '

애인을 향해 짓는 무방비한 표정, 어린 아이같은 행동. 시시콜콜 모든 일을 다 이야기하고 위로를 바라는 나의 태도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아기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온몸으로 애인에게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상처받기 쉽고 약한 어린아이야. 나를 보호해줘. 나를 사랑해줘. 네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나는 새로운 엄마를 찾아갈 거야.

회피-자기 자신과 삶으로부터의 도피

p 191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절집 요사채나 여행지 숙소를 좋아하는 마음에 도피나 방어 심리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의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이 없는 공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간, 너절한 일상이 주변부가 섞이지 않는 사유..... 낯선 숙소에 대해 생각하는 그 모든 수사들은 삶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의 말투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절에 드나들었던 저 이십대부터 낯선 도시를 떠도는 그때까지 간단없이 도피하고 있었던 셈이다. 삶으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비로소 모든 게 확연해졌다. 틀림없이 여행 습관이 일종의 방어의식이었다. 삶의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가지 못해, 내면의 고통과 직면하지 못해 어디론가 도망치고자 하는 행동이었다. 표면적으로 그 여행은 정신분석에서 알아낸 많은 것들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고 넘어서기 위한 완충지나 숙성기의 시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분석을 받으며 헤집어진 고통스러운 감정,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삶으로부터 멀리 도망친 행동이었다.
나중에 그런 방어의식을 전문 용어로 '회피'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상황,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라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2002년에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났었고, 일년 후에 또 그곳을 향했다. 그 여행의 시작은 회피였고, 나는 그곳에서 만난 이에게 의존했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새해 첫 날 쓰는 '올해 하고 싶은 일 ' 중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히말라야 가기'였다.
그것은 막연한 기대이자 회피였다. 히말라야가 내 문제를 덜어줄 것 같은 근거 없는 희망.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가 나를 도와줄 것 같은, 기적적으로 내 마음을 가볍게 해 줄 것 같은 기대. 그런 것이었다.
이번 해 첫날에는 그 희망을 지웠다. ‘ 내 인생은 내 문제이고, 히말라야는 히말라야다 ‘ 라는 마음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히말라야에 가지 않기로 했다. 히말라야에 어떤 막연한 희망을 갖지 않게 되는 때 히말라야 행 티켓을 살 것이다. 무심하게 히말라야를 즐길 수 있게 되는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는 내 인생의 많은 문제들을 회피하고, 다른 이에게 의존해왔다. 너무 많이.


p 344 '혼자 있기'의 병리적 측면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극단적 방어의식, 또는 분노의 표현' 일 수 있다. 상처 입은 동물은 산의 가장 후미진 곳을 찾아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다./

혼자 지내던 고 3 시절이 지나고 대학에 진학하였을 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친구와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던 무렵, 나는 집밖으로 겉돌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고, 저녁에는 술친구와 술을 마셨다. 나는 혼자 있을 수 있을 때만 집에 머물렀고, 사람이 있으면 집을 나왔다. 아직도 혼자 집에 있을 때 상처 입은 동물처럼 극단적으로 폐쇄적이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그런 모습이 싫어 다시 밖으로 나온다. 집밖에서도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카페를 찾아다녔던 모양이다. 카페는 혼자 머물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타인에게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딱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곳. 혼자 놀다가 외로우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고립되지 않되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내게 카페는 그런 의미인 모양이다.
내가 관심사라고 생각해왔던 카페라는 공간은, 불편한 현실로부터의 회피 장소였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깨닫게 된 부분이 많지만, 이곳에 다 옮기기엔 너무 개인적인 내용들이라 생략하기로 하고, 앞으로 내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는 문장으로 끝도장 찍기로 한다.

'평생에 걸쳐 꿈꾸어온 '삶이 안정되면....'이라는 욕망은 내 불안감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생의 구체성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은 우울증의 한 증상일 뿐이었고, '생은 아름답지만 일상은 참 너절하다'는 생각은 일상이 안락하지 못하다고 느낀 유아기의 착오였을 것이다.' p 353

마음의 착각, 왜곡일 뿐인 우울증. 내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라고 느끼던 것들이 결국 유아기의 착오일 뿐이라는 사실.

결국 마음은 가벼운 것이고, 인생 역시 그럴 것이다.

IP *.141.3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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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2007.01.11 15:16:58 *.191.110.12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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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
2007.01.12 17:41:45 *.81.17.227
yes24에 김형경과 정신과 전문의의 대담이 나왔는데, 김형경이 얼마나 예쁜지, 나이보다 10년 이상 젊어 보이네요.
화사한 옷과 염색한 머리가 곱고 발랄해 보였어요.

그녀의 자전적 소설 '세월'을 읽고난 후, 김형경이 마치 아는 사람같이 여겨지는터라, 암울했던 세월을 보상받는 것같아 보기좋았어요.

어둡고 긴 터널에서 살아남기 위해 읽었던 '정신분석'에 관한 지식이 그녀를 다시 버티게 하는 실마리가 되네요.
누군가 말했듯, 학문은 '일시에 얏! 하고 도약하는 힘'을 주는 것이 맞는 것같아요.
무언지 헷갈리고 명쾌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얏! 하고 도약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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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07.01.12 19:55:57 *.244.218.8
기원님: 고맙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

미탄님: 언제부터인가 한선생님 글에서 힘을 얻고 있는 저를 발견ㅎㅎ
감사합니다! 요즘 엄청 괴로워하고 있어요!
아아 마음을 가볍게 가볍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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