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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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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0일 09시 11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저자에 대한 설명으로는 저자 자신이 직접 책에서 설명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중유럽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잉글랜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였으며 어디를 가도 유대인이었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도 다른 곳에서 유대인이 받았을 법한 왕따를 당했다. 전문가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거기에 반대하는 길을 걸었고 여러 언어에 능한 코스모폴리탄이었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정치적 관심과 학문적 관심을 쏟아 부었던 지식인이었다. (p669)

간단한 약력을 추가하면 1917년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재즈를 좋아하고 많은 경험과 독서, 그리고 원칙을 지키는 삶을 살아왔다. 주요 저서로는 자본의 시대(1848-1875), 제국의 시대,1987년), 극단의 시대 (1914-1991) 역사론 등이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자서전은 몇 권 읽어보았지만, 역사가가 쓴 자서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자서전은 특정한 개인의 치적과 성공비결이 있어 독특한 비법을 내 것으로 만드는 흥미롭고 즐거운 작업인 반면에 역사가의 자서전은 특별한 비법이 아닌 영화를 보듯이 저자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일이어서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는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아직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20세기 역사중에서 가장 복잡한 공산주의의 등장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 소련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고,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정치적 목적에 의한 편협된 주입식 교육의 결과로 공산주의나 유물론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맞추면서 읽어나가는 것이 책읽기를 더디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무게가 있는 두툼한 책이었고, 실천적 지성의 좌파 역사학자의 자서전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였다.

책을 읽어가면서 3기 연구원 2차 시험 첫 과제물로 선정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각자 자기만의 길에 지조를 가지고 정진하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에릭홉스봄은 자기가 찾은 소명을 가지고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로써 공산주의자의 길을 선택 하였고, 실제로 공산주의 이론이 혁명을 거쳐 통치제도를 건설한 소련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서도 계속 그 길을 고수했다. 특히 냉전시대에는 학문연구나 취업 등에 많은 제약을 받았음에도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절개를 지켰고, 소련의 붕괴이후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연구와 비전을 제시하였다. 아마 에릭홉스봄과는 분야는 다르지만, 연구원의 길을 가는 길도 이와 다르지 않게 개인적인 소명과 시대적인 소명 그리고 평생 동안 자기만의 독특한 길을 일관되게 가라는 교훈이 아닌가 한다.

2.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머리말>
지식인의 자서전은 그 사람의 생각, 태도, 행동에 대한 기록을 담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이 한낱 변호로써 끝나서는 안 된다. 이 책에는 기자 같은 사람들이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좀 특이하게 살았던 마르크스주의자 역사가 홉스봄한테 호기심을 품고 나한테 여러 번 던졌던 물음들에 대한 답변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지만, 애당초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이 들어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애당초 그런 질문에 대답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었다. 역사가 나의 정견을 평가할 것이고 독자가 나의 책을 평가할 것이다. 내가 얻으려는 것은 역사적 이해이지, 동의나 승인, 연민이 아니다.(p11)

나도 개인적으로 아는 철학자 아그네스 헬러가 말한대로 역사는 일어난 일을 밖에서 기록하는 것이고, 회고록은 일어난 일을 안에서 기록하는 것이다. (p13)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은 개인의 경험으로 그려낸 세계가사 아니라 세계사가 경험의 내용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 아니 카를마르크스의 말을 약간 고쳐서 써먹자면 “ 인간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되 자기 마음대로 (그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상황 속에서 (그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주어졌거나 물려받았기 때문에 바로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아니 인간을 둘러싼 세계가 선택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데 발판이 되는, 늘 똑같지는 않지만 늘 제한된 수의 선택항을 내놓은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극단의 시대 뒷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p13)

<1장 프롤로그>

과거는 또 다른 나라지만, 거기서 한때 살았던 사람들에게 흔적을 남겼다. 과거를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스스로 깨우치기에는 너무 어렸던 사람에게도, 또 워낙 역사와는 담을 쌓고 살아가도록 구조화된 문명 안에서 자라다 보니 과거에 대해서 ‘하찮은 퀴즈’ 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과거는 흔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자서전을 쓰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지도가 없이 어떻게 그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갈 수 있고, 언제 그리고 왜 우리가 머뭇거리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는지, 또 우리가 기댔고 얽혀 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개개인의 삶에만 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전체에 빛을 던진다.(p28)

<2장 빈과 유대인 소년>
그렇지만 1920년대 빈에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어린아이가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성에 눈뜨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정치의식을 갖게 되었다. (p37)

<3장 힘들었던 시절>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고 아주 힘든 일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직장에 다녔다면 그리고 그 직장이 운동과 음악에 대한 약간의 소양, 구김살 없는 성격으로 알아주는 곳이었다면 아버지는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p63)

그 당시 중유럽에서는 자기의 신상을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모아놓은 일종의 고백 수첩같은 것이 여전히 유행하고 있었는데, 이모의 고백수첩 1921년 항목에 아버지가 등장한다. 여기에 그 질문과 답변을 그대로 옮겨놓는다. 그것은 아버지의 묘비명이라고 해도 좋겠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 기회를 놓치는 것, 기회를 움켜 잡는 것
나의 기질과 성향 : 빗나간 이상주의자, 몽상가.
좌우명 : 오늘 먹을 것이 있으면 충분하다. 조금 더 있으면 좋겠고.

단순한 부정도 얼마든지 정체성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의 태도는 어정쩡하다면서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머리가 여물어서 반성하는 능력을 갖게 되기 전에는 정치 참여를 미루는 것이 좋다고 넌지시 유도한 것도 어머니였고, 나이가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도 어머니였다.(p79)

<4장 베를린 : 바이마르의 종식>

지금도 나는 중국 공산당한테서는 못 느끼는 너그러움과 따뜻함으로 소련의 기억과 전통을 대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10월 혁명이 세계의 희망이었던 세대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소련의 망치와 낫은 그 꿈을 상징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베를린에서 멀쩡히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공산주의자가 된 걸까?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세기의 4분의 3이라는 기나긴 세월동안 지질학적 퇴적물을 벗겨내 그 속에 묻혀 있던 낯선 사람을 드러내거나 찾아내서 다시 뜯어 맞추는 것을 뜻한다. (p103)

<5장 베를린 : 갈색과 빨간색>

육체적 경험과 맹렬한 격정이 가장 깊이 맞물린 활동은 누가 뭐래도 섹스이겠지만, 그 다음 가는 것은 바로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속에서 대중 시위에 동참하는 것이다. (p127)
(대학 재학중에 대중시위는 아니지만 교내 처우개선을 위한 1박 2일 동안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함성과 열정이 기억이 났다.)

<6장 섬나라에서>

지적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당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절대적 감성을 심어준 것은 바로 재즈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중에 커서 재즈애호가라는 평판이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도 그랬고, 어떻게 보면 평생을 그렇게 보냈지만 재즈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문화적 소수파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서도 유난히 똘똘 뭉쳐 다니는 동아리에 끼게 되었다. (p140)

내가 그 다음 몇 년 동안 극단적이리만큼 관념의 세계에서만 살았던 것은 피 끓는 열여섯 살의 소년이 자기의 머릿속을 온통 채운 정치투장에 뛰어드는데 결사반대한 대리부모와 함께 살아야 했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p141)

그 다음 두해 반 동안 나는 정치활동을 유보한 채로 살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지적활동에만 몰두했고, 지금 생각해도 경탄스러울 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내가 끼어들고 끼어들지 않고와는 무관하게 영국혁명은 신통하게 굴러가는 것 같았다. (p141)

자유로워지는 데 빠져서는 안 될 조건이 기동성이라고 한다면, 자전거야말로 구텐베르크 이후로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의 가능성을 온전히 구현한 최대의 발명품, 그것도 단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발명품인지 모른다
(나가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가 똑같다)

3년 동안 멜릴레본은 나에게는 배움의 전당이었다. 학교 말고도 학교 바로 옆에 있던 그 당시의 런던 시청 안에 훌륭한 공립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쉬는 시간에는 주로 거기서 죽치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빌렸다. (p163)
(좋은 글은 다독에서 나온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었다)

특히 마지막 학년(1935~1936)에는 학교는 그저 나 혼자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서재나 다를 바 없었다.(p163)

베를린을 떠난 이후로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하던 내가 우정과 귀속감을 느끼고 개인적으로 또 집단속에서 사람과 어울리면서 젊은이만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세계로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도 세인트 메릴레본 학교 덕분이었다. (p164)

우리는 19세기의 의미로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했다. 프랑스의 리세나 독일의 김나지움과는 달리 영국 중등학교 교육에서는 철학이 핵심적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대륙의 동년배들처럼 철학적 지식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철학적 관심을 가지고 마르크스에 다가서지는 않았다.(p165)

변증법적 유물론은 삼라만상의 이론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삼라만상을 보는 틀은 제공했다. 무기체와 유기체의 본성을 인간세계와 연결하고 집단과 개인을 연결하고 끝없이 유동하는 세계에서도 모든 상호작용의 기본 이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p166)

<7장 케임브리지>

나와 함께 대학을 다닌 학생들은 케임브리지 역사상 가장 빨갛고 급진적이었는데, 나는 그 한복판에 서있었다.(p171)

내가 가장 정성을 쏟아 부은 것은 물론 당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투철한 공산주의자로 하더라도 선동과 선전, 조직 활동에만 전념하기에는 케임브리지에서 할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런 활동은 어차피 나의 주특기도 아니었다.(결국 내가 정말로 되고 싶었던 “직업혁명가”의 길은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는 씁쓸한 깨달음을 얻고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먹고 살 방도를 찾기로 한 발 물러섰다.) (p191)

<8장 반파시즘과 반전투쟁>

공산당은 낭만과 거리가 먼 세계였다. 낭만은커녕 조직과 반복이 지배하는 사회였다p(224)

<9장 공산주의자가 되다>

공산주의가 우리 세대의 가장 똑똑한 남녀를 왜 그렇게 많이 빨아들였는가 하는 물음과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은 20세기 역사에서 핵심주제가 되어야 한다. 내 친구 안토니오폴리토는 20세기에 가장 위력을 떨친 악마의 하나는 정치적 열정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처럼 20세기를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 그리고 그런 열정의 핵심을 꿰찬 것이 공산주의였다. (215)

권력은 어김없이 개인을 부패시킨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부패한 권력은 떨치기 어려운 유혹인 것도 사실이다.(218)

2차 세계대전 때 벌어진 대부분의 항쟁에서는 공산주의자의 수가 유난히 많았던 것은 그들이 그저 용감하고 조직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첩보, 기밀, 심문, 무장, 저항같은 가장 힘든 상황에 언제라도 몸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33)

성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한 것이다. 어디 포기하는 것이 우리뿐이겠는가?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20세기에 실제로 그렇게 살다간 사람들을 기억조차 해주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p254)

<11장 냉전>

살아남은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다른 누군가의 죽음으로 사들인 것이라고 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p295)

내가 억장이 무너졌던 것은 1950년대 중반에도 서평 두세 개의 원고료밖에 안되는 푼돈을 위로금이라고 던져주는 데 분개해서가 아니라 십중팔구 주제로 미루어보아 노동당 지지자로 보이는 원로학자의 조언으로 내 책이 퇴짜를 맞았다는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때문이었다(p304)

아슬아슬하던 나의 첫 번째 결혼은 1950년 여름 결국 깨지고 말았다. 나는 그때 받은 상처로 여러 해 동안 불행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p306)

<12장 스탈린과 그 후>
이념을 잃어버리는 아픔과 이념에 매달리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친구였던 사람들이 혹은 뭉치고 혹은 철천지원수로 갈라져서 반목하고 돌이킬 수 없이 불가항력으로 암벽을 향해 자갈길을 따라 내달리고 있다는 절박감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구속할 말과 행동의 내용을 끊임없이 선택하면서 견디기 어려운 긴장 속에서 버텨야 했던 그 몇 달을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338)

우리가 좌파 젊은이이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얻었거나 잃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우리가 예전에 했던 좌익 활동과 지금 가진 공산주의 사상이나 진보적 연구 활동을 통해 이른바 신망을 얻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355)

그들은 공산주의라는 실패한 신을 섬기는 데서 해방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자기들이 해방되기 위해 그 신을 사탄으로 몰아붙였다. 냉전시대에는 그런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357)

나는 냉전의 한복판에서 그런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공산주의자로 성공함으로써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자부심이 잘 났다는 것은 아니지만 못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았다. (357)

<13장 40대에 맞는 전환기>

지진이라든가 화산폭발처럼 한눈에 재앙처럼 보이는 순간이 역사에도 있다. 가령 두 번의 세계 대전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한사람의 인생살이에도 그와 비슷한 순간이 있다. (p359)

나는 1970년대가 되어서야 그러니까 내 나이 쉰 줄로 접어들어서야 교수로서 정년도 보장받았고 학술원에도 들어갔고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일찍 정상에 올라서 제도권의 밋밋한 고원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지금의 성취와 한때 쌓아 올렸던 명성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p378)

<16장 정치 관람자>

마르크스주의자이든 아니든 혁명파든 개혁파든 우리는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바람직한 삶의 조건을 만들어줄 수 없는 체제라고 믿었다. 자본주의는 정의롭지도 않았고 장기적으로는 존립 가능하지도 않았다.(p451)

<17장 역사가들 속에서>

게다가 실력 있는 역사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역사가는 아무리 먼 과거를 다룬다 하더라도 과거를 탐구하다 보면 결국 현재와 눈앞의 사안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또 현재와 눈앞의 사안을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p477)

제가 보기에는 지식인의 삶은 판에 박힌 강단보다는 예술가의 삶에 더 가까운 면이 있습니다. … 지적 활동의 형식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더할 나위없는 행복을 안겨준 활동은 사회학자라는 직업이었습니다. 사회학자 자리에 역사가만 집어넣으면 나는 이 말에 백번 동의한다. (p483)

<18장 지구촌에서>

1990년대 뉴욕의 뉴스쿨 대학교에서 내가 본 동유럽 출신의 젊은 학생들은 영어로 논문을 쓰는데 아무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학자들이 살아가는 지구촌은 안내자 없이 난징, 나고야, 서울의 거리에 덜렁 혼자 나섰다가 귀먹고 눈먼 벙어리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던 서양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절감하겠지만 아직도 여러 나라말에 능통할 것을 요구한다. 적어도 두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p505)

진정한 거점은 어느 한곳에 터를 잡고 사는 가족과 나그네와 외국인과 도착과 일감과 출발이 하나로 녹아들면서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지역에 뿌리를 둔 네트워크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p506)

나는 정말이지 즐겁고 편안하게 살았다. 여행도 많이 다녔고 아내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같이 다닐 때가 많았는데, 우리의 여행은 일과 발견과 휴가와 색다른 경험과 오랜 우정이 하나로 녹아든 것이었다. 아무리 가난에 찌들어도 살고 늘 재앙과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웃을 줄 알고 적어도 농담을 던질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로 나는 재미있게 살았다. 영웅적인 행동이나 시련도 없었고, 위험도 공포도 없는 전문지구 종사자의 삶이었다. (p507)

나는 어릴 때 꾸었던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런 식으로 삶이 풀려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부질없고, 어리석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p508)

<20장 프랑코에서 베를루스코니까지>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은 소재가 달려서 고민하는 법이 없다. 정 안되면 가족이야기를 써도 되고 자서전을 쓰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가가 되려는 사람한테는 과거의 어떤 부분을 파고들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주는 길잡이가 없다. (p547)

스페인은 무엇보다도 고립되어 있었다. 피로 범벅이 된 체제는 아직도 전통을 고수하면서 현대를 거부하는 가톨릭과 자급자족 체제의 등딱지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다음 삼사십년동안 스페인을 몰라보게 바꾸어 놓고 심지어 스페인 사람의 생김새 까지 바꾸어 놓을 어마어마한 산업화는 아직 걸음마도 떼어놓지 않은 상태였다. (p557)

청춘을 넘기면 보통 사람은 웬만해서는 살아있다는 데서 순수한 희열을 맛보기가 어렵지만 이탈리아는 그 드문 기쁨의 순간을 열어주었다. 이탈리아는 또 역사가로서 탐구해 볼만한 주제를 안겨주었다.(p578)

<19장 마르세에즈>

프랑스는 원하는 외국인한테는 누구나 자신의 문명을 선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프랑스 문화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우리가 덥석 받아들인 것이다. (p520)

서양식 교육을 받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근대사의 출발점이라고 믿는 프랑스 혁명은 자장 유명하면서도 폐쇄적이었던 궁정문화를 민주화시켰고 어느 누구보다도 국수주의적이었던 나라의 문호를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어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원칙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었다. (p520)

히틀러는 프랑스를 어느 때 보다도 국제사회의 중심거점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1933년부터 1939년까지 유럽문명의 마지막 피난처로, 그리고 파시즘이 점점 기승을 부리면서부터는 유럽좌파의 유일한 보루로 만들었다(p527).

나와 말이 통한 것이 마네의 올랭피아였다. 열다섯 살 먹은 사춘기 소년이 호사스럽고 느긋한 자태를 한껏 드러내면서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관능적 쾌락에서도 벗어난 것처럼 초연해 보이는 벌거벗은 여자의 냉담하고 성숙한 시선에 압도당하여 옴짝달싹 못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작과의 만남을 내가 도저히 잊지 못하는 까닭은 관능미가 아니라 이 뛰어난 화가가 일시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을 겨누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까놓고 말한다. 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올랭피아이다. 누군가가 나를 프랑스로 개종시켜야 한다면 그 적임자는 바로 마네였다. (p512)

<22장 루스벨트에서 부시까지>

정치에 관심을 두고 살아오는 동안 나는 세 명의 유능한 대통령(루스벨트, 케네디, 닉슨)이 자격도 없고 신망도 없었던 사람에 의해 전격적으로 교체되었으면서도 나라와 세계가 나아가는 진로에 이렇다 할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나라를 미국 말고는 본 적이 없다. (p659)

<23장 에필로그>

소리와 종이에 둘러싸여 침대에 누운 몸으로 나는 2002년 세계에는 어느때 보다 역사가가, 특히 의심 많은 역사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늙은 역사가의 평생에 걸친 편력을 읽으면 젊은 역사가가 21세기의 어두운 전망에 그에 합당한 비관주의만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더 투명한 눈, 과거를 기억하는 역사 감각, 현재의 열풍과 장사판에서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가지고 맞서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p663)

나는 세계의 강대국들이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하는 것을 천년을 갈 것처럼 보였던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혁명정권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미국의세기가 끝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는 그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히 빗나간 예상은 아니리라(p665)

역사에 필요한 것은 기동성과 넓은 영토를 내려다보고 살필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자기의 뿌리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가 태어난 흙과 서식지를 떠나지 못하는 식물이 못되는 것은 그래서다. 하나의 서식지나 환경은 아무리 고유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주제를 남김없이 규명하지 못한다.(p667)

3. 내가 저자라면

책을 읽으면서 구성에 있어서 공간과 시간적인 순서의 배치를 잘했다. 자서전의 특성상 어릴적부터 순차적으로 기술을 하겠지만, 워낙이 가정적인 문제로 여러 지역을 전전하였고, 각 시간과 공간적인 좌표에서 겪었던 사소한 가족사에서부터 만났던 사람들, 정치적인 상황등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아무래도 역사학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일반사람이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는 것 같다. 1장에서부터 20장까지는 작가가 각기 다른 시간대와 장소에서 생활한 것을 기록하였고, 21장부터는 굵직한 사건들 제3세계, 미국 등에 대하여 적어서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쉬웠다. 각 장의 소재 또한 시시콜콜한 가족들의 사건에서부터, 인물묘사, 만났단 사람들에 대한 기록까지 모두 적어 놓아서 자신의 걸어온 길을 옆에서 보듯이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자서전이지만 본인에 대한 평가나 자화자찬이 아닌 소수에 좌파 역사학자가 어렵게 걸어온 길을 옆에서 같이 걸으면서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형식은 자서전이지만 저자는 역사학자의 자서전은 미로를 찾아가는 지도라고 말한다. 그 시대에 사고나 사건, 인물에 대한 단순한 정보는 얻을 수 있지만, 역사적인 사실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지도를 통해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남북전쟁과 반공주의로 공산당이나 공산주의에 대하여는 깊은 환멸을 갖게끔 교육을 받아왔다. 아직도 공산주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가지고 있고, 구성원들 간 갈등의 불씨로 남아있다. 정치제도와 군사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공산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움이 많다. 그 지도를 따라서 이론적으로 명쾌하지는 않지만 왜 많은 젊은이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었고, 인생을 버리면서까지 추종을 하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이해를 하게 되었다.

책을 보면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공산주의자는 이병주 선생님의 지리산과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빨치산의 힘들고 비극적인 삶이 떠올랐고, 사상에 의하여 밤낮으로 세상이 바뀌고 형제들끼리 서로 싸우는 1940년대 후반 지리산의 특수한 상황이 떠올랐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혁명적인 직업적인 공산주의자는 아니더라도 그 맹신하는 이론이 잘못 적용되고 실패하게 된 원인을 좀 설명해주었으면 했다. 저자는 공산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본주의 노선에 변화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지 않는 아픔을 갖고 있고 아직도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다. 과연 이런 것들을 어떻게 설명을 해줄지 궁금했다.

13장 40대에 맞는 전환기 전까지는 무척 더디게 나갔다. 소개하는 사람들이나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리 연관되는 것도 없었다.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저자는 어느 정도 사회에서 인정을 해주는 반열에 오른다. 지진이라든가 화산폭발처럼 한눈에 재앙처럼 보이는 순간이 역사에도 있다. 가령 두 번의 세계 대전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한사람의 인생살이에도 그와 비슷한 순간이 있다고 하면서 결혼을 다시 하고 40대 후반부터 점점 공산주의자라는 역사학자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40여년의 긴 노력이 보상을 받는다고 해야 하나 또 그것을 바라보는 저자는 너무 일찍 정상에 올라서 제도권의 밋밋한 고원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지금의 성취와 한때 쌓아 올렸던 명성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겸손해 한다. 나는 40대를 어떻게 살아갈까? 다시 한번 나에게 물어보았고, 그 답을 끊임없이 찾는 시간을 갖을 것이다.

책의 맨 마지막 세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마라.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이 말은 연구원으로 지원한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본인의 글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마라
자신의 능력은 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IP *.99.8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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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09 15:52:39 *.140.145.63
3기 1차 합격자 중 첫번째 서평의 주인공이 영훈이어서 더 반가웠다.
아마 내일 일본으로 떠나겠지. 같이 가고 싶었는데 아쉽구나. 영훈이
는 누구보다 실천적이고 성실한 연구원이 될꺼다. 건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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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3.09 16:57:09 *.99.84.60
좀더 읽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미 해놓기로 한것을 나중에 조정하면 계속 그 일이 반복될 것 같아서
많이 부족한 과제물이지만
제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조선땅 냉이와 달래가 먹고 싶다는 SOS가 와서
벌써 시장에 가서 사왔습니다.
3/9~3/12일까지 꿈두레와 같이
동경에 있는 짱가 위로해주고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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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09 20:22:50 *.72.153.146
벌써 서평 올리시다니, 음 부럽습니다. 최영훈님의 서평이 제가 책을 읽는데 가이드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앞부분에서 역사에 대한 지식의 부족과 지명들이나 이름들을 헛갈려가며 읽느라 더디읽고 있는데 최영훈의 서평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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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3.11 16:27:21 *.112.72.159
영훈이형, 진짜 존경스러워요!
승완형이 왜 늘 형이야기를 하는지, 입에 침튀기며 '진짜 진국'이라 부르는 지 알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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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3.12 08:58:08 *.44.31.37
옹박님. 과찬의 말씀을..
늘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실제로 해보고 배우겠다는 생각이 조금 더 많아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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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3.13 12:30:02 *.244.218.10
늘 겸손히 배움의 자세를 지속하시고 있다는 것... 저도 본받을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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