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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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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1일 15시 16분 등록
1.저자소개

에릭 홉스봄은 1917년 이집트에서 태어나 빈과 베를린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14살에 고아가 되어 친적집에 얹혀 살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빠져 공산당에 가입하여 1991년 공산당이 해체될때까지 끝끝내 공산당원으로 남을만큼 원칙과 소신에 투철하였으나 막무가내식의 강경좌파에 일침을 가하는 등 소명의식을 지닌 인물이다.
홉스봄은 학창시절 히틀러의 등장과 만행을 겪었고 러셀과 함께 핵무기 반대 시위를 벌였고 게바라를 위해 통역해 주었다.

또한 재즈에 심취했던 홈스봄은 가짜 이름으로 재즈 비평가로 활동하였고 스스로 마할리아 잭슨이나 굿먼과의 만남을 잊을 수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며 그에게 재즈는 미국을 아는 창 이었으며 재즈를 통해 인권운동에도 관여했다.
홉스봄은 영국 미국은 물론이고 스페인, 이탈리아, 쿠바 등 다양한 나라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는데 특히 프랑스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그는 루부르에서 마네의‘올랭피아’에 반하였는데 누군가가 나를 프랑스로 개종시켜야 한다면 그 적임자는 바로 마네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홉스봄은 스스로를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그것은 타지에서 온 이방인처럼 스스로의 인생에 아무런 뜻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나라에 마음이 끌렸고 여러 나라에서 편하게 살았으나 자신이 시민으로 태어난 나라를 비롯하여 어떤 나라에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못가졌다고 한다.
중유럽 사람들에서는 잉글랜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는 유럽에서온 이민자였으며 어디를 가도 유대인이었고 특히 이스라엘 에서도 다른 곳에서 유대인이 받았을법한 왕따였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득세하는 세상에는 반대하는 길을 걸었고 여러 언어에 능한 코스모폴리탄이었고 못 배운 사람들에겐 정치적 관심과 학문적 관심을 쏟아부었던 지식인 이었으며 공산주의자였다고 스스로를 말한다.
한국에서의 그는 ‘혁명의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와 같이 근대 유럽이 지금까지 걸어 온 파란만장한 길을 명저로 담아낸 신뢰받는 역사로 유명하다 그러나 나는 '미완의 시대'를 통해 처음 저자를 만났다.

<미완의 시대>를 통해 내가 만난 에릭 홉스봄은 역사 중에서도 가장 변덕스럽고 끔찍한 한세기를 살면서 역사가로서 세상을 관찰하고 세상이 내는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줄 알았고 기록한 역사가 이다.

2. 내마음에 들어 온 글귀

<13> 역사는 일어난 일을 밖에서 기록하는 것이고 회고록은 일어난 일을 안에서 기록하는 것이다.

<27> 과거는 흔적을 남겼다.그렇지만 자서전을 쓰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지도가 없이 어떻게 그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 갈 수 있고 언제 그리고 왜 우리가 머뭇거리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는지, 또 우리가 기댔고 얽혀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어떻게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개개인의 삶에만 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에 빛을 던진다.

<31)얼마나 격동기였는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증거는 아이들에게는 정신없이 바뀌는 우표였다. 1920년대의 우표 수집은 아주 틀림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1914년 이후의 유럽 정치사를 파악하는데 좋은 길잡이의 구실을 한다.

<54>선택받았거나 특별한 민족이라는 주장이 조금이라도 정당하다면 그것은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에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그 부족이 모여 살았던 게토니 집단 거주 구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업적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이 게토를 떠나도록 허락받았거나 스스로 떠나는 쪽을 선택한 이후로 주로 두세기 동안 드넓은 세계에서 그들이 인류를 위해 이룩한 괄목할 만한 업적 덕분이라 생각한다.

<95>운명은 그처럼 무심코 내린 집안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103>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한 세기의 4분의 3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인 지질학적 퇴적물을 벗겨내 그 속에 묻혀 있던 낯선 사람을 드러내거나 찾아내서 다시 뜯어 맞추는 것을 뜻한다.

<166> 마르크스주의가 마약처럼 뿌리치기 어려웠던 까닭은 사상이 워낙 총체적이었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삼라만상의 이론” 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삼라만상을 보는 틀”은 제공했다.

<218>공산당에 남아 있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쉽게 떠날 수 있는 공산당을 떠나지 않겠다는 선택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기 때문이다.

<230> 사회주의 세상이 왔다고 해서 모든 걱정과 슬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실연과 상심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무리 생각이 트인 사람도 가슴이 미어지는듯한 아픔을 느낀다.

<235> 전면전에 뛰어든 사람은 자기 희생에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믿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희생에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믿지 않았다. 권력을 잡지도 않았고 당장 잡을 것 같지도 않았으므로 우리는 교도관이 아니라 죄수가 되리라 생각했다.

<240>탄압이 아니라 특권을 누렸던 공산주의 체제를 살았던 사람들 그들은 국외자가 아니라 내부자였다. 대게는 국민 한테서 반감을 사면서 한 나라에서 저항세력이 아니라 지배세력으로 살았다. 경찰은 그들의 적이 아니라 하수인이었다. 혁명 이후의 찬란한 미래는 그들에게는 꿈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다.

<258>전쟁은 내 인생에서 6년 반을 앗아가 버렸다는 말로 가장 잘 요약된다. 나는 영국 군대에서 6년을 보냈다. 나한테는“좋은전쟁”도 “나쁜전쟁”도 아니었고 그저 “허망한 전쟁”이었다.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불만족스러운 시기였다.

<285>피의 자리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여전히 죽음이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그곳은 비극의 자리라기 보다는 희망의 자리였다....육신이 잘려 나갔다고 해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은 아니다..그들에겐 희망이 있다. 그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집에 파묻혀서 두문불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희망이 무엇인지는 이런 병원에 와서 보아야 비로소 실감이 간다.

<295>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 온 사람들은 수용소에 있었던 티를 내지 않았다.살아남은 사람의 하루하루는 다른 누군가의 죽음으로 사들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329>결정을 내리는 러시아 인과 그렇지 않은 러시아인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우리끼리 농담 삼아서 한 소리이긴 하지만 그들은 머리털부터가 달랐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의 머리털은 머리위로 빳빳이 섰거나 아니면 하도 세워서 나중에는 빠져버렸다. 결정을 내리지 않는 사람은 이마 위로 머리털이 가느다란 직모였다.

<332> 소련이 아무리 약점이 많다고 해도 소련이 버티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회주의는 더 이상 몽상이 아니었다.

<359>지진이라든가 화산 폭발처럼 한눈에 재앙처럼 보이는 순간이 역사에도 있다. 한 사람의 인생살이에도 그와 비슷한 순간이 있다. 지리적 비유를 좀 더 쓰자면 분수령이라는 말이 참으로 적절해 보이는 순간도 있다. ...4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접어 들었던 1960년에 그런 분수령이 나의 삶에 찾아들었다.

<362> 결혼을 한 사람은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장기 계획을 안 세울래야 안 세울 수가 없다.

<374>영국 정부가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소련에 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 서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안다.

<378>너무 일찍 정상에 올라서 제도권의 밋밋한 고원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지금의 성취와 한때 쌓아 올렸던 명성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너무 늦게 출발했고 오랜 세원동안 발목이 묶여 있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남들 같으면 내리막길을 미루기 위해 골몰할 나이에 아직도 이루어 놓아야 할 일이 많았다.

<387> 클러프..그가 만들거나 매만지려고 햇던 것은 건물이 아니라 석공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과 손길이 닿은 자연, 전망, 상징과 기념물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간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사람들의 소우주였다.

<388> 클러프가 생각한 환경은 “아름다운”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395>웨일스에만 가면 자연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험한 날씨와 지형과 늘 씨름을 하는데서 묘한 희열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두 꼬맹이를 데리고 눈 덮인 산길을 걷다가 산자락의 동굴에서 잠시 숨을 돌리면서 아이들한테 초콜릿을 주던 기억, 로빈과 함께 아주 멀리까지 하이킹을 갔다가 줄기차게 뿌려대는 비에 몸이 홀딱 젖어서 가파른 산등성이의 양들이 다니는 길을 양도 다니는데 중년의 역사학자가 못 다닐쏘냐 하면서 기어오르던 기억

<416>1960년대에 대해 기억 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늘 겉돌았다는 사실뿐이다

<427>거창한 표현과 우주적 기대로 가득 찬 먹구름이 일상의 비로 돌변하는 순간 환희와 정치, 진짜 힘과 꽃의 힘, 말과 행동의 차이는 다시금 확연해졌다. 여호수아가 나팔을 힘차게 불어 예리코 성을 무너뜨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구약의 기록일뿐 현실은 그랬을리 만무하다. 젊은이들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432> 20세기 후반의 역사에서 일어난 정말로 기념비적인 사건은 이념도 아니고 학생들의 대학 점거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작업복이었던 청바지의 힘찬 진군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1960년대에 대해 쓴 것은 청바지를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는 자서전 집필자가 딱 쓸 수 있는 내용이다.

<458> 산호초로 다가가는 망가진 거대한 유조선처럼 방향타를 잃은 소련은 해체의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결국은 침몰했다. 그리고 중단기적으로는 단순히 옛 소련에 살았던 민족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그 피해를 입었다.
“자본주의와 부자는 당분간은 겁먹을 일이 없다”

<461> 대부분의 역사가는 아무리 먼 과거를 다룬다 하여도 과거를 탐구하다 보면 결국 현재와 눈앞의 사안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또 현재와 눈앞의 사안을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역사를 이해 한다는 것은 전문가에게 만이 아니라 시민에게도 중요하다.

<479>1970년대 초반의 어느 시점에서인가부터 역사학의 풍조가 달라졌다.‘구조’는 지는 해였고 ‘문화’가 뜨는 해였다.
역사적 모델을 세우거나 “왜라는 굵직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시들해지고 “분석에서 묘사로” 경제 구조와 사회구조에서 문화로 사실을 되찾는 것에서 감정을 되찾는 것으로, 망원경에서 현미경으로 역사 연구의 기본틀이 바뀌었다.

<481>역사가 길고 짧고를 떠나 국가와 체제, 정체성을 추구하는 집단, 냉전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수면 아래 은폐되어 있었던 힘들이 역사에 가하는 정치적 압력은 유례없이 강해지고 있고 현대 언론도 장사속으로 역사를 전에 없이 키워주고 있다. 진짜로 있었던 과거가 아니라 자기 목적에 부합되는 과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정되고 날조되는 역사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는 위대한 역사신화의 시대다. 역사 전문가들이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486>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그들의 젊음과 젊음 특유의 패기, 열정, 희망, 무지, 미숙에 끌렸기 때문이지 학생들이 우르르 모여 있는 앞에서 내가 특별히 많은 것을 기대했기 때문은 아니다.

<488> 가르치기와 글쓰기의 핵심은 모두 소통이다. 두가지를 모두 즐기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절해고도에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누가 읽을지도 모를 글을 책처럼 생긴 병에 담아서 드넓은 바다로 띄워 보내야 하는 막막한 처지에서 벗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489> 자서전을 쓰는 학자의 기억에서 지나간 세월은 언젠가 아메리카의 높은 언덕에서 지켜보았던 짐칸을 끝없이 달고 대지를 가르는 화물열차처럼 아득히 뻗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짐칸 하나하나 보다는 기차가 지나갈 때만다 달라지는 풍광이 인상적이다.

<491>‘정교수’라는 직함을 달게 된 것도 다른 교수들 같으면 갈 때까지 가서 이제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다고 세상에서 생각하는 50대 중반에 가서였다 그정도 나이를 먹으면 더 이상 쌓아 올릴것이 없고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내일을 끝없이 만나면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세계대전과 냉전 덕분에 그런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중년까지 청년처럼 앞날을 바라보면서 살 수 있었다.

<497> 역사책을 쓴다는 것은 한 나라의 정치와 세계의 정치에 깊이 발을 들여 놓는다는 것인데 정치와 역사를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507> 정말로 나는 재미있게 살았다. 영웅적인 행동이나 시련은 없었고 위험도 공포도 없는 전문직 종사자의 삶이었다. 나처럼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산 사람들이라면 느끼는 바겠지만 나는 “내가 겪은 삶과,,,20세기위 현실,,,인류가 겪어야 했던 끔찍한 사이의 명백한 모순에” 놀란다.

<512> 이 뛰어난 화가가 일시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을 겨누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까놓고 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올랭피아다. 누군가가 나를 프랑스로 개종시켜야 한다면 그 적임자는 바로 마네였다.

<520> 프랑스는 중요한 자산이 있었다. 프랑스는 원하는 외국인 한테는 누구나 자신의 문명을 선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프랑스 문화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가 덥석 받아들인 것이었다.

<546>프랑스 언어와 문화가 세상에서 맡았던 역할을 지키려는 프랑스의 끈질긴 수호 노력은 좌절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복수(複數)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인류를 동질화시키려는 세계화 조류에 맞서서 모든 언어를 지키고 민족과 문화의 특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또 어짜피 질 수밖에 없다고 처음부터 접고 들어가서는 안되는 싸움이다.

<556>스페인은 불행했다. 카페에서 ,트럭에서, 역이란 역에서는 다 서기 때문에 싸지만 정말 괴롭기 그지없는 완행열차에서 사람들은 “ 이세상에서 제일 고달픈 나라가 여기다”라든가 “이 나라 처럼 못사는 데는 없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578>이탈리아는 우리한테 좋은 나라였다.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우정을 안겨주었고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가 놀라운 창조력을 지닌 나라인가를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청춘을 넘기면 보통 사람은 웬만해서는 살아 있다는 데서 순수한 희열을 맛보기 어렵지만 이탈리아는 그 드문 기쁨의 순간을 열어 주었다.

<608>중남미는 역사 변화의 실험실이었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는 통념과는 다르게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중남미는 인습적인 진리를 허물기 위해 만들어진 대륙이었다. 중남미에서 역사 발전은 총알처럼 빠르게 진행되었다.

<623> 내 또래의 지식인에게 두 개의 조국, 그러니까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 또 하나는 프랑스가 있었다면 20세기에 서양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 아니 궁극적으로는 세계 어디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자기가 태어난 나라와 미국이라는 두 개의 조국이 있었다...미국은 우리 존재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미국은 정말 미국이 아니라 주로 미국 문화를 통해 전파된 모습이다.

<624> 미국을 무대로 한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식 삶을 다룬 것이 아니라 극장을 찾는 관객의 꿈을 겨누고 만들어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였다. 우리의 미국관이 어디에선가 왔다면 그것은 기술과 음악에서 왔다. 기술은 관념으로 음악은 경험으로 다가왔다.

<637>40대의 역사학자가 청춘남녀처럼 젊음을 만끽하기에는 너무 늦었을 테지만 그래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밤에 재즈를 듣다보면 살아 있음이 무한한 기쁨이었다.<641> 술꾼들이 담소를 나누는 그런 공간에서는 밴드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는 쏟아지는 박수갈채가 아니라 연주가 고조되면서 갑자기 대화가 끊기고 이어지는 침묵이었다.

<645> 랠프는 신이 사악한 세상을 차마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데 필요한 의인 열사람이 늘 버텨주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랠프 본인도 그 열 명 가운데 있다.

<651> “너는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이 “너는 미국 편이냐?”라는 물음에 밀려났다. 게다가 이런 질문을 버젓하게 던지는 나라는 미국 말고는 없다.

<652>미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그저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줄기차게 이루어 내는 나라라야 한다. 다른 모든 나라를 합친것보다 우월하고 전 세계가 인정하는 모범으로 자리잡은 최고의 나라, 가장 위대한 나라로만 미국은 스스로를 인식한다.

<654> 미국인은 자기와 자기 나라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657> 뉴욕은 공장이 빠져 나갔고 고급스러워졌고 제3세계에서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고 사회경제적 격변을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겪었는데도 별로 달라졌다는 느낌이 안들고 또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뉴욕은 언제나 뉴욕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들어선 세계무역센터가 없어졌으니 더 옛날과 비슷해졌다.

<660>미국은 본받을 만한 나라 노릇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대체로 미국을 본받고 싶어하지 않는다....우리의 문제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모른다는것, 혹은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기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인다 “미국의 세기”가 정점에 이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고충이자. 올해로 여든다섯인 나는 그 결과를 모지 못하고 눈을 감을 것이다.

<661>전기는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난다. 자서전은 그런 자연스러운 결말이 없다. 하지만 이 자서전은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와 미 국무부 공격의 여파로 세계사에 생겨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극적인 휴지부에서 마무리 되는 이점을 누린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난 노쇠하고 회의적인 역사가의 눈에도 그것은 대량학살, 훌륭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기술, 할리우드 영화를 방불케 하는 현실 속에서 신의 세력과 사탄의 세력이 온 세계에서 죽기 살기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선언 등 20세기의 가장 고약한 요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662>워싱턴은 9.11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선언했고 그렇게 선언함으로써 실제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미국은 하나밖에 없는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누가 세계를 위협하는지도 자기 혼자서 정의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은 누구든지 잠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적으로 여겨졌다.

<663> 미국이 “국제 테러리즘”을 무찌르지 않으면 정체 불명의 야만주의가 일으키는 공포에 휩쓸릴지 모르는 문명 세계를 지키기 위한 수호자의 역할로 미국이라는 세계 제국을 포장하는 것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짓인지를 드러낸다...적어도 말하는 순간 만이라도 자기가 하는 거짓말을 믿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더욱 설득력있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2002년의 세계에는 어느 때보다도 역사가가, 특히 의심 많은 역사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늙은 역사가ㄱ의 평생에 걸친 편력을 읽으면 젊은 역사가가 21세기의 어두운 전망에 그에 합당한 비판주의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더 투명한 눈, 과거를 기억하는 역사 감각, 현재의 열풍과 장사판에서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가지고 맞서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664> 1998년에 여든 살이 넘은 사람의 수는 6600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약 1퍼센트였다.남들은 책으로만 아는 역사가 이 얼마 안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 삶이 일부가 되고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내 또래의 역사가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다르게 보았던 과거의 중요한 지점, 그 또 다른 나라로 가는 여행의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 거기서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666> 나만큼 오래 산 사람은 20세기를 겪으면서 역사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뼈저리게 느꼈다...되돌아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우리는 말해줄 수 있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라고.

<667> 거리라는 관점이다....역사는 우리 식의 종교 전쟁에서 비롯되는 격정, 감정, 이념, 공포에서만 거라를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위험한 “일체감”이라는 유혹도 멀리해야 한다. 역사에 필요한 것은 기동성과 넓은 영토를 내려다 보고 살필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자기의 뿌리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가 테어난 흙과 서식지를 떠나지 못하는 식물이 못 되는 것은 그래서다. 하나의 서식지나 환경은 아무리 고유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주제를 남김없이 규명하지 못한다. 우리의 이상은 아무리 늠름하다 하더라도 참나무가 삼나무가 아니라 지구의 절반을 누비고 다니면서 극지방에서도 열대지방에서도 잘사는 철새라야 한다. 시대착오와 지방색 이 둘은 참으로 무서운 역사의 죄악이다.

<668> 인생의 대부분을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다. 타지에서 온 이방인처럼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그것은 나의 인생살이에서 아무런 뜻도 없다. 나는 여러 나라에 마음이 끌렸고 거기서 편하게 살았으며 그밖에도 많은 나라를 조금씩 보았다.

<669> 중유럽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잉글랜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 였으며 어디를 가도 유대인이었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도 다른 곳에서 유대인이 받았을 법한 왕따를 당하였다.
...나는 내가 접해본 나라들 안에서 정치적으로 소수파에 머물러 있던 공산주의자들 안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았다. 개인으로서의 이것 때문에 살아가기가 고달팠지만 역사가에게 그것은 각별한 자산 이었다....일체감은 다른 누군가에게 맞서서 정의되는 것이므로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느 누군가와는 이질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것은 참극으로 이어진다.
<672>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써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3. 내가 저자라면...

감히 내가 저자라면을 생각할 수가 없다.
저자가 기록한 20세기 역사는 내가 살아있는 현실이 아니라 그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달달달 외우고 금방 잊어버렸던 기억에 지나지 는다.
홉스봄의 삶의 일부라는 말이 마치 그의 피부 살갗처럼 내게 느껴졌으나 나는 너무나 일천한 지식뿐이었다.
그렇기에 저자를 평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무리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왜 공산당원이 되었는 지와 왜 끝까지 공산당원으로 남아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본다. 물론 그가 서두에서 이미 밝힌바 있듯이 그가 얻으려는 것은 역사적 이해이지 동의나 승인, 연민이 아니기에 그는 그의 주관적 선택에 대해 밝힐 이유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는 바가 없고 미천하게나마 가지고 있는 나의 지식으로는 스스로도 역사중에서도 가장 별스럽고 끔찍한 세기를 살았다는 20세기 동안 그를 그것에 머무르게 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는 스스로도 공산당에 남아 있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쉽게 떠날 수 있는 공산당을 떠나지 않겠다는 선택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사실이라 표현했고 사회주의 세상이 왔다고 해서 모든 걱정과 슬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실연과 상심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무리 생각이 트인 사람도 가슴이 미어지는듯한 아픔을 느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가 공산당원이 된 이래 해체되기 까지 끝까지 공산당원일 수 밖에 없는 그의 소신과 투철한 원칙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이 책은 20세기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홉스봄의 어린시절부터 시작하여 그가 경유하였던 나라와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가 만났던 등장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치 자신의 주관적 시점이라기 보다는 마치 누군가가 홉스봄을 따라 다니며 관찰한듯 하다. 시대적 배경이나 그 인물들이 홉스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어떤 관계이었는지등 세부적인 묘사등이 부족하다.
마치 지나가는 듯이 기록한 나열식의 구성은 읽는 독자에게 지루함을 주었다.
만약 내가 저자라면 훑어가기 식의 시대설명 보다는 몇몇 굵직한 시대적 사건의 실체나 의미를 재해석하고자 하였을 것이며 등장인물의 수도 줄여서 내 인생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그들의 무엇이 내 삶에 영향을 주었는지 기록했을 것이다..
물론 홉스봄은 역사가이다.
따라서 그가 역사의 기록들에 객관성을 유지 하고자 하였는지 읽는내내 느낄 수 있었다.

내용 중 나를 흥미진진하게 한 것은 홉스봄의 미국에 관한 시선과 저자가 자연스럽게 9.11의 극적인 사건으로 결말을 이끌어 낸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본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스스로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 하고 나서고 있으나 이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와 우리는 대체로 미국을 본받고 싶어 하지 않으며 2002년의 세계역사는 어느 때보다도 의심 많은 역사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지지하는 바이다.
IP *.237.6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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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3.11 16:56:32 *.112.72.159
'마치 누군가가 홉스봄을 따라 다니며 관찰한 듯 하다'는 말에 백번 공감. 그런 글을 써보지 않아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르지만 쉽진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자서전에 굳이 그런 객관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기도 했죠. 비록 저자가 서문에 밝혀 두고는 있지만. 그래서 글이 나열적이 되고 잘 읽히지 않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나중에 함께 만나면 분명 이 책때문에 고생한 이야기가 태반일 것 같은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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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12 17:33:21 *.72.153.12
책을 읽고서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옮겨놓고 보니 20페이지가 넘더군요.
이은미님의 인용구절을 읽다가 보니, 제가 옮겨적고는 나중에 빼버린 구절이 많이 겹칩니다. 홈피에는 올리지 않고 따로 모아 두었지요.^^

저자의 80년 이상의 삶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과 저자에게 영향을 주었던 특정 사건들, 저자가 몰두 했던 것들에 대해서 저자의 생각을 마구 밑줄을 긋다보니, 중간쯤 읽었을 때 자서전에서는 대체 무엇을 캐어내야 되는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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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2 22:31:34 *.140.145.63
제가 이곳에 올라와 있는 리뷰를 읽는 방식은 저자에 관한 것과
내가 저자라면 두 파트만 읽는 것인데 은미님의 리뷰에서는 저자인
에릭 홉스봄의 삶의 이면에 대한 정보가 신선하게 다가오는군요.

3월말에 남해에서 그간의 느낌을 듣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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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2007.03.13 17:02:11 *.111.247.32
저두 저자가 그토록 오래동안 왜 공산주의에 머물러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물론 그 것 말고도 궁금한거 투성이지만.^^

내가 좋아했던 가수이름이라..
혹시 정말 가수 이은미인가? 라는..
재미난 상상도 하면서 읽었어요.
(실례가 되었을까요?)^^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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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2007.03.14 16:47:46 *.128.30.11
모두에게 감사를...
모두에게 기쁨이 있으시길...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혹 그렇지 못한다 해도 이 과정에서의 노력이 혼자로도 이러지기를...
나아가 벚꽃 흐드러지는 남해에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소라님 근데,,어쩌죠?
그 이은미가 아니라서
실례는요 무슨..소라님 어서 만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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