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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1일 23시 07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저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민음사(2007년 출판), 이희재 번역.
제목: 미완의 시대(Interesting Times, A Twentieth-Century Life)

제 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 혁명의 해인 1917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계 영국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빈과 베를린에서 성장, 나중에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의 킹스 컬리지에서 경제사를 전공하고 런던대학 부속 버벡 컬리지에서 사회경제사 교수로 근무, 그 후 뉴욕의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에서 교수직으로 활동하면서 세계각지를 돌며 강의와 강연을 하고 있다.
향년 90세로 영어는 물론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에 서반아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멀티링글이며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의 초기 저작들은 주로 19세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17•18세기 및 20세기에 관해서도 저술해 왔으며 정치, 역사서술, 사회이론뿐 아니라 프랜시스 뉴튼이란 필명으로 재즈 비평가로 활동할 정도로 문화비평과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대표작으로 역사에 관한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가 있으며 이 밖에 <노동하는 인간>, <산업과 제국>, <원초적 반란자들>, <극단의 시대> <노동의 세기, 실패한 프로젝트> ,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 등이 있다.

이번 Interesting Times(미완의 시대)는 전 세계적으로 20세기의 최고의 역사서라는 절찬을 받은 “극단의 시대”의 자매편으로 일컬어지며 많은 비평가들이 미완의 시대뿐만 아니라 극단의 시대를 함께 읽을 것을 권유하고 있다.

미완의 시대는 우리가 책에서 배웠던 격동의 현대사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저자가 자서전 형태를 빌어 서술하고 있어 근접하기가 비교적 쉬운 책이다.
그에게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그를 가리켜 깐깐하기도 하고 고지식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느낌보다는 상당히 문학적인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어 읽는 이에게 지적인 만족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하며 그 때 그 당시의 상황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저자의 문체는 영국에서도 그다지 읽기 쉬운 책은 아니라고 하니 긴 문장을 번역하느라 역자의 고생이 이만저만 하지 않았겠다 싶다. 그럼에도 나와 같은 문외한이 재미있게 읽었다면 잘 된 번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와 처음 만났지만 부담스러운 역사서가 아닌 자서전 형태를 통해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극찬을 받고 있는 “극단의 시대”를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 노 역사가에 관해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유대계 지식인들‘시오니즘과 결별’”
“역사학자 홉스봄을 포함한 영국 저명인사 130명 성명 발표”

그는 이 책에서“옳고 그름과, 정의와 불의는 겨레의 휘장을 달지도 않고 나라의 깃발을 휘날리지도 않는다.” 고 기술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그에게 공산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말은 그를 이해하는 하나의 모티브가 될지 모르지만 실은 그 모든 것을 넘어 인류평화라는 보편적 양식을 가진 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희재(번역자):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독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하고 2007년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 동양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옮긴 책으로 <소유의 종말>, <새벽에서 황혼까지 서양 문화사 500년>, <문명의 충돌>, <중국의 시대>, <브루넬레스키의 돔>, <리오리엔트>, <몰입의 즐거움>, <그린 마일> 등이 있다.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들]

자서전을 쓰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지도가 없이 어떻게 그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갈 수 있고 언제 그리고 왜 우리가 머뭇거리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는지, 또 우리가 기댔고 얽혀 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우리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27p

어릴 때부터 나는 구체적 현실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일도 그렇고 관심사도 그렇고 나와 겹치는 구석이 없었으므로 어른들은 적어도 나한테는 구체적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현실과 책에서 배운 것과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세계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41p

나는 조상들이 믿었던 종교의 관습을 지켜야 한다는 심정적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 한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연대를 요구하는 작지만 호전적이고 문화적으로 낙후했으며 정치적으로 공격 일변도로 나아가는 민족국가에는 더더욱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54p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는 겨레의 휘장을 달지도 않고 나라의 깃발을 휘날리지도 않는다. 54p

아무리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77p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 경우로 말 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한 세기의 4분의 3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인 지질학적 퇴적물을 벗겨내 그 속에 묻혀 있던 낯선 사람을 드러내거나 찾아내서 다시 뜯어 맞추는 것을 뜻한다. 103p

육체적 경험과 맹렬한 격정이 가장 깊이 맞물린 활동은 누가 뭐래도 섹스이겠지만 그 다음 가는 것이 바로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대중시위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결국 개별적으로 경험하는 섹스와는 달리 대중시위는 집단적 성격을 가지며 남자의 경우는 순간으로 끝나는 섹스의 경험과는 달리 대중시위에서 맛보는 희열은 몇 시간이나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섹스와 마찬가지로 시위에 나선 사람은 걷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육체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개인은 집단 안에서 일체감을 느끼고 집단과 하나가 된다. 128p

나는 내 공산주의의 바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집단 황홀경”은 피억압자에 대한 연민,”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완벽하고 총체적인 지적 체계가 주는 미학적 매력, 새로운 예루살렘을 염원하던 시인 블레이크와 비슷한 약간의 소망, 속물근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적 혐오감과 함께 내가 공산주의에 빨려 든 다섯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129p

그 여자는“ 내가 몇 달 동안 거기서 몸담고 있었지만 내 관념의 무대장치 뒤편에서 살아가느라고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세상의 일부분”이었다. 139p

내 경우에는 재즈가 첫사랑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외모가 워낙 자신이 없다 보니 보나마나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육체적 관능과 성욕을 억눌렀다. 지적 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당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절대적 감성을 심어준 것은 바로 재즈였다. 140p

내 인생의 3분의 2를 나는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끈끈한 교감을 나누며 살았다. 주파수가 통한다 싶은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문호를 개방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지하에서 활동하면서 국제적으로 결속되어 있던 프리메이슨 조직을 방불케 했다. 140p

화를 내는 것은 그만큼 무력하다는 뜻이었고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도와 달라는 뜻이었다. 144p

자기 나라이면서도 낯설기만 한 이 나라에 1933년에 첫 발을 내딛은 10대 소년은 어떻게 적응했을까? 어떤 면에서는 나는 가족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한테 가장 좋은 친구였고 또 유일하게 가까운 친구였던 사촌들이 열어놓은 좁은 문으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처럼 영국으로 들어갔다. 154p

“변증법적 유물론”은 “삼라만상의 이론”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삼라만상을 보는 틀”은 제공했다. 무기체와 유기체의 본성을 인간세계와 연결하고 집단과 개인을 연결하고 끝없이 유동하는 세계에서 모든 상호작용의 기본이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 166p

1930년대만 하더라도 충성의 대상은 국경선을 뛰어넘었다. 174p

케임브리지의 과거는 공식행사에서 재현된 화려한 제복이 판을 치는 영국의 과거와 마찬가지로 연대순으로 차곡차곡 쌓인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유물이 한꺼번에 뒤범벅이 된 것이다. 176p

그렇지만 공산주의가 우리세대의 가장 똑똑한 남녀를 왜 그렇게 많이 빨아들였는가 하는 물음과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은 20세기의 역사에서 핵심주제가 되어야 한다. 내 친구 안토니오 폴리오는 “20세기에 가장 위력을 떨친 악마는 하나의 정치적 열정”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처럼 20세기의 특징을 잘 나타낸 말을 없다. 그리고 그런 열정을 핵심을 꿰찬 것이 공산주의였다.
공산주의는 이제 죽었다. 소련은 물론이거니와 소련을 전범으로 하여 만들어진 대부분의 체계화 사회는 1917년10월 명의 유산이었고 우리한테 꿈을 심어주었지만 이제는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삭막한 폐허를 남기고 깡그리 허물어져서 공산주의라는 구상자체에 처음부터 허물이 있었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내기 어렵다. 그렇지만 공산주의라는 신념에서 자극을 받았던 사람들이 이룩한 업적과 “공산주의자가 정복하지 못할 요새는 없다”는 믿음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215p

권력은 어김없이 개인을 부패시킨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부패한 권력은 떨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전쟁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권력은 개인의 자격으로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일을 우리가 하게 만들고 또 그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219p

우리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핵무기 제거라는 양심과 확신을 가지고 싸워야 한 적이 있었기에 사기를 잃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모든 불의와 잘못에 대해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240p

부헨발트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말하는 사람을 그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 나중에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된 사람도 있었지만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 온 사람들은 수용소에 있었던 티를 내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의 하루하루는 다른 누군가의 죽음으로 사들인 것이라고 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나중에 자살을 하는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처럼 그들의 상처도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296p

냉전시대에 자유주의자가 떠들어댄 논평 중에서 정말로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은 공산주의자는 누구나 적국 소련의 첩자이며 따라서 공산주의자는 지식 공동체의 일원으로 남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303p

20세기의 세계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존 리드가 같은 제목을 달아서 묘사한 10월 혁명의 열흘이고 또 하나는 1956년2월14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소련 공산당 제20차 대회다. 두 열흘 모두 시대를 그 “전”과 “후”로 확실하게 가른다. 굵직굵직한 이념운동이나 정치운동에서 이것에 필적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 또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10월 혁명은 세계공산주의 운동을 만들었고 제20차 대회는 그것을 무너뜨렸다. 331p

하지만 그 때도 그렇고 나중에도 그랬지만 나는 한때 공산주의자였다가 광신적인 반공주의자로 돌아선 무리와 한 패가 된다는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그들은 공산주의라는 “실패한 신”을 섬기는 데서 해방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자기들이 해방되기 위해 그 신을 사탄으로 몰아붙였다. 냉전시대에는 그런 사람이 수두룩했다. 356p
하지만 역사가가 아니라 자서전을 쓰는 사람으로 돌아와서 말한다면 개인적인 감정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357p

너무 일찍 정상에 올라서 제도권의 밋밋한 고원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지금의 성취와 한때 쌓아 올렸던 명성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378p

역사가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혁명은 혁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많은 말을 통해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입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아는 남녀가 써내는 수많은 글로 나타나다. 410p

1960년대에 제3세계는 혁명의 희망을 제1세계에게 다시 심어주었다. 국제사회를 열광시킨 두 주역은 쿠바와 베트남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것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하듯이 약자가 최강자를 상대로 따낸 승리라는 데서 더 큰 뜻이 있었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게릴라”라는 말은 세계 변혁의 열쇠로 인식되었다. 419p

1960년대에 영미권의 좌파를 감동시키고 행동으로 나서게 만들고 평소에는 반목이 끊이지 않았던 이런저런 좌익정파를 세대차이를 넘어 대동단결하게 만든 것은 베트남 사람들이 벌이던 투쟁의 비극성과 위엄성과 영웅성이었다. 420p

하노이에서 제복을 입은 몸집이 작달막한 역전의 노병들이 무공훈장을 달고 가로수 밑으로 호치민의 생가로 작은 무리를 지어 행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준 용사들이었다. 420p

나와 같은 세대의 혁명가에게 여전히 가장 중차대한 문제는 혁명과는 동떨어진 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 정당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427p

소련에서 고르바초프는 거의 완전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고르바초프에 대한 우리의 경외감은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 소련을 무너뜨린 책임은 누가 뭐래도 고르바초프한테 있었다. 하지만 거의 반 세기 동안 이어진 세계 핵전쟁에 대한 악몽을 종식시킨 것도 고르바초프였고 동유럽에서 소련의 위성국가들을 순순히 풀어준 것도 고르바초프였다. 베를린 장벽을 허문 주인공은 사실은 고르바초프였다. 수많은 서방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고르바초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앞으로도 간직할 것이고 그가 도덕적으로 정당했다는 생각도 잊지 않을 것이다. 457p

하지만 사회 민주주의에서 조직력이 약해지고 공산주의가 해체된 지금 위협은 이성의 적에서 생겨나고 있다. 바로 종교나 민족, 부족 근본주의자, 외국인 혐오주의자, 지금 인도, 이스라엘, 이탈리아의 정권을 쥔 세력처럼 파시즘의 후예거나 파시즘에 고무받은 정당들이 그들이다. 459p

그것은 바로 역사는 개별 국민국가의 차원에서든 아니면 국민국가들의 상호 관계 차원에서든” 흘러간 정치의 역사”라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과 역사는 사회와 문화의 구조라든가 변화를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의 싸움, 과거에 벌어진 일을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과 그것이야말로 역사학의 본질이라는 입장의 싸움이었다. 466p

진짜로 있었던 과거가 아니라 자기 목적에 부합되는 과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정되고 날조되는 역사가 늘고 있다. 현대는 위대한 역사신화학의 시대다. 481p

우리는 10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났다. 농사를 짓고 도시를 세우고 나서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역사라고 부르는 기간은 통틀어서 400세대, 그러니까 1만년도 채 되지 않는다. 482p

가르치기와 글 쓰기의 핵심은 소통이다. 두 가지를 모드 즐기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절해고도에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누가 읽을지도 모를 글을 책처럼 생긴 병에 담아서 드넓은 바다로 띄워 보내야 하는 막막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488p

배우도 교수도 관객과 청중을 위해 공연하는 연기자다. 488p

결국 지난 반세기 동안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는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해 온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설득 작업에 도움이 된다면 나 같은 역사가의 이름에서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떠 올려도 무방하다는 생각이었다. 492p

학문과 정치가 이른바 제3세계에서 보다 더 밀착된 곳도 없었다. 제3세계에서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는 마르크스주의는 얼마 안 되는 학자들 몇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이 아니라 젊은 지식인을 온통 사로잡은 이념이었다. 498p

그리스, 스페인, 터키가 되었건 라틴아메리카의 단골 국가들이 되었건 한국 같은 나라가 되었건 지식인과 무엇보다도 학생은 때로는 공포에 짓눌려 침묵을 지키기도 했지만 군사독재에 강하게 저항했다. 군사 정부가 조금이라도 물러서는 틈새를 보였을 때 저항 서적을 보급하고 읽는 것이 정치적 민주화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었다. 500p

나는 1987년에 한국에 가서야 비로소 내 책 다섯 권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501p

공산주의가 몰락한 뒤로 역사와 정치를 다룬 진지한 저작물의 출판은 조지 소로스 같은 독지가의 후원에 기대고 있다. 502p

하지만 이 세상은 아직도 바벨의 우뚝 솟은 탑 그림자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무슨 수로 알 수 있겠는가? 503p

나는 어릴 때부터 꿈꾸던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런 식으로 삶이 풀려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부질없고 어리석기조차 하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508/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프랑스를 점령했던 독일의 인텔리들이 쓴 전쟁 회고록을 보면 아무리 패전국의 야코가 팍 죽었다고 자신하던 독일인도 비록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숙한 문명을 가진 아테네인 사이에 끼어든 로마인 같은 느낌에 스스로 젖어 들었음을 알 수 다. 518p

히틀러는 프랑스를 어느 때보다도 국제사회의 중심 거점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1933년부터 1939년까지는 유럽문명의 마지막 피난처로 그리고 파시즘이 점점 기승을 부리면서부터는 유럽 좌파의 유일한 보루로 만들었다. 522p

미테랑과 드골은 미국 헌법이 미국에 중요한 것만큼이나 프랑스 혁명이 자기들이 통치하는 프랑스의 핵을 이룬다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프랑스 정치가 위대한 프랑스 혁명의 기억을 놓고 좌우로 양분되는 싸움에서 탈피하는 시대를 살았다. 아니 두 사람이 그런 시대를 만들었다. 이 점에서 그들은 온건 자유주의, 무절제한 반공주의, 시장주의처럼 프랑스에서는 항상 소수에 머물러 있었지만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프랑스 지성계를 휩쓴 이념주의와 추종자들보다 현실적이었다. 541p

우리 세대한테 프랑스는 지금도 남다르다. 이재에 밝았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언어가 세계를 정복하면서 교양 있는 볼테르의 언어가 패배한 데서 프랑스인이 느끼는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나는 공감한다. 545p

레닌과 스탈린의 시대를 마치 마르틴 루터의 시대처럼 받아들인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561p

파시즘은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의식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이탈리아의 정치적, 군사적 열등감을 치유하는 데는 실패했고 이탈리아 문화를 변방에서 중심으로 끌어들이지도 못했다. 파시즘 이후의 이탈리아는 문화적으로 따라잡아야 할 것이 워낙 많았고 지향점은 안이 아니라 밖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571p

이탈리아 국민은 이혼은 눈에 띄게 자제 했지만 낙태는 열심히 했다. 575p

이탈리아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는 고약한 기존의 체계를 무너뜨릴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꼭 더 나은 체계가 들어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578p

피델 카스트로가 승리를 거두면서, 그리고 1961년 카스트로를 축출하려던 미국의 피그 만 침공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유럽이나 미국에는 라틴 아메리카라는 마법에 홀리지 않은 지식인이 없었다. 586p

내 또래의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1970년 이후로 제3세계 사람들이 제1세계에 눈을 떴다는 사실, 또는 제1세계다 제3세계다 하는 말이 냉전 시대에 쓰이던 말이니까 다소 표현을 달리 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로 가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587p

내 생애 전반부 40년 동안은 그렇지 않았다. 언어가 사람들을 고립시켰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국어”가 아니라 글을 못 읽는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 50킬로미터 밖으로만 나가도 못 알아듣는 지독한 사투리를 말한다. 587p

1960년대 이전까지 사람들은 크게 두 집단에 들어갔다. 기독교도(퀘이커 교도까지 포함해서) 와 공산주의자였다. 방법은 달랐지만 둘 다 총체적 해방을 추구했고 평등주의에 대한 신념에서 인종주의를 혐오했다. 588p

1960년 이전만 하더라도 서양백인 사이의 인종적 우월감은 일부 예술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서양이 보인 압도적 우위와 성취로 더욱 굳어졌다. 그리고 백인 남자는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던 인종이 유독 육체적으로 우위를 나타내는 사실을 불쾌해하기도 하고 짐짓 모른 체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턱없이 치켜주기도 하면서 인종적 우월감을 묘하게 지켜갔다. 591p

특히 우정이 뒷받침되었을 때 공산주의자가 가진 엄청난 장점은 동지를 나와 같은 평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591p

말을 타는 사람이 느끼는 공포를 말도 알아차리는 것처럼 사람도 상대방이 열등한 존재로 대접받으리라고 지레 짐작한다는 것을 직감으로 안다. 지배 계급과 정복자는 이렇게 알아서 기는 의식을 늘 이용해먹었다. 592p

내가 본 콜롬비아는 사회혁명의 실패로 말미암아 공공 영역에서 폭력이 항구적이고 보편적이고 전면적으로 일어나게 된 나라였다. 603p

중남미 좌파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에 고문자들이 승리를 거두면서 상아탑으로 들어갔고 1980년대에 중미에서 미국의 지원으로 내전이 일어나고 남미에서 군부통치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더욱 상아탑 안으로 들어갔으며 소련이 망하고 공산당이 몰락하면서 완전히 비현실적으로 바뀌었다. 614p

재즈는 미국을 뜻했고 미국이 상징하는 것 때문에 재즈는 덩달아 현대성을 뜻했고 여자들의 짧게 친 머리와 기계의 시대를 뜻했다. 625p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자존심과 자긍심을 해쳐도 괜찮을 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를 한 사람이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지금도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628p

깡다구가 있는 사람끼리는 서로를 꼭 신뢰하지는 않더라도 말은 통했다. 634p

자기도취, 미국적인 것의 의미를 자꾸만 따지는 버릇, 지적으로 무게를 잡는 것은 미국 문화의 세 가지 고질병이었는데 랠프는 그래도 그런 데는 전혀 물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미국적 가치”라든가 “아메리칸 드림”이라든가 하는 한심한 말은 그의 사전에는 없었다. 644p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들이 널려 있는 대지에서 살아가면서 랠프는 신이 이 사악한 세상을 차마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데 필요한 의인 열 사람이 늘 버텨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랠프 본인도 그 열 명 가운데 하나였다. 645p

미국적 가치관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것은 평등주의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인, 다시 말해서 반권위주의적이고 이율배반적이지만 기묘하게 합법화된 무정부주의다. 654p

고상한 정치와 위대한 개인의 중요성을 신봉하는 역사가는 미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659p

우리의 문제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 혹은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 붙인다. “미국의 세기”가 정점에 이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고충이다. 올해로 여든 다섯인 나는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것 같다. 660p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는 그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히 빗나간 예상은 아니리라. 665p

역사는 우리 식의 종교전쟁에서 비롯되는 격정, 감정, 이념, 공포에서만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위험한 “일체감”이라는 유혹도 멀리해야 한다. 역사에 필요한 것은 기동성과 넓은 영토를 내려다보고 살필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자기 뿌리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다. 667p

시대착오와 지방색 이 둘은 참으로 무서운 역사의 죄악이다. 둘 다 다른 곳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는 무지에서 생겨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더라도 그런 무지는 잘 극복이 안 된다. 과거는 여전히 다른 나라다. 과거라는 나라에 그어진 국경선은 여행자만이 넘나들 수 있다. 하지만(유목민을 제외하고는) 여행자는 정의상으로 자신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다. 667p

역사라는 시계의 잣대로 보았을 때 다른 제국들은 오래 전부터 병세가 완연했던 소련까지 포함해서 모두 하루아침에 망한 반면 오스트리아의 지성은 자기들의 제국이 사멸하고 해체되는 모습을 성찰할 만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668p

일체감은 다른 누구인가에 맞서서 정의되는 것으로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느 누군 가와는 이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669p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불의는 여전이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672p

[내가 저자라면]

역사가의 입장에서 쓰는 글과 한 개인의 입장에서 쓰는 글은 분명 쓰는 이에게 있어서 느낌이 다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잠깐 자신에게 돌아가 역사란 무엇이고 어떻게 마주서야 할지 생각해 본다.

한 시대의 어떤 한 사건이 우리를 어떻게 바꾸고 새로운 세상이 어떻게 왔던 것일까.
지구상의 어느 장소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사건이 세월이 한참 지나 사건이나 혁명으로 불리게 되고 그것이 사회구조와 세상의 질서를 변화시켰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때때로 오랜 시간이 경과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자기 자신이 그 어마어마한 회오리 바람 속에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또 그러한 현장이 그렇게 까지 큰 변화로 이어갈 줄 보통 사람들은 감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80학번이면서도 당시 한국 상황에 대한 인식은 군부독재의 매스컴 규제 덕에 그렇게 큰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기실 반공과 반일을 모토로 권력을 유지하던 정치가들 덕에 어쩌면 동막골 주민들처럼 안온한 꿈을 꾸며 살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경탄한 부분은 그의 기록습관과 편중되지 않은 역사관이었다.
유대인이면서 시온주의에 일침을 가하고 영국인이면서 프랑스 문화의 우월함을 당당히 표현하며 또한 정통 공산주의자이며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일컬어지는 그가 고르바초프에 대해 명쾌하리 만치 경외감을 표시하고 미국의 세계 군사 패권 전략에 대해 사정없이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영국 왕실에서 요란한 전통 풍습이라고 세상에 알려진 것들에 대해서도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닌 최근 빅토리아 시대의 백 년 가량에 불과하다고 명확히 알려준다.

또한 기록일지를 참고하며 자서전을 작성했는데 2002년도이면 80중반의 노인임에도 아주 어릴 적부터의 기억과 느낌이 살아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꼼꼼하게 기록을 하는 사람으로 그 습관은 본 받을 점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역사를 쓰고 읽는 문화로 전기나 자서전, 회고록의 발행이 상당한 출판부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홉스봄 사후에 발행될 그의 전기는 어떻게 쓰여질지 흥미로운 부분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유럽대륙에 코카콜라와 리바이스가 휩쓸기 이전의 런던과 파리 그리고 스페인,이탈리아 또 라틴 아메리카등에 관한 도시의 묘사가 세밀하여 여행자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와 더불어 온전한 유럽 문화만이 있었던 과거의 도시로 들어가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으로 디킨스나 새커리의 영국을 어렴풋이 떠오르게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동아시아에 대한 기술이 아주 일부분밖에 할애되지 않았던 점이다.
한국인에게도 격동의 시기였던 20세기 그 시절을 홉스봄의 시각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며 일본과 더불어 중국에 대한 부분 또한 몇 줄인가에 그치고 있는 점이 아시아권 독자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일주일 내내 미완의 시대와 불 같은 연애를 한 느낌이다.
청춘 시절 그의 첫사랑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던 듀크 엘링턴의 재즈음반을 찾아 씨디에 걸어놓고 역사가 에릭 홉스봄과 재즈 평론가 프랜시스 뉴튼을 그리워하며 글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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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11 22:02:05 *.75.153.94
향인이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눈과 시원한 문장력이 돋보인다. 아직 젊은 그대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딱딱한 책을 독자에게 쉽고 감흥있게 전달하는 솜씨에 반했다. 자신이 가진 정치 사상으로 에릭을 공격했더라면 그대의 깊은 리즘을 이해하고 알 터인데, 은남씨가 장차 저술하면 내가 제일 먼저 사서 읽어야 겠다.

향인군!
이제 부터는 사랑타령은 하질맙시다. 더 굳센 의지를 가지고 시대의 사상가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끝에서 속도를 더 해가면서 두둘기는 타점은 많은 이의 양식이 될것입니다.

실존주의 이후에 새로운 리즘을 찾지못해 헤메는 많은 이를 어둠속에 구해줄 사상가를 시대는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구선생님의 문하에서 세계 정치 경제의 흐름을 바꿀 인물이 배출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가 현재에 인정 받지 못하면 사후에서 라도...

"升 元亨 用見大人 勿恤 南征 吉"
< 그대인가, 세상에 오를 인물이, 출생전에 정해진 것인가? 큰 스승을 만나니 난 이제 걱정이 없네, 오직 그대가 신명을 바처 노력할 걸 바랄 뿐, 나아가면 틀림없는데>

향인, 무어라 말해야, 무어라 쓰야, 그대가 믿고 열정을 낼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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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3.12 03:48:36 *.112.72.159
와~ 누나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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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3.12 12:29:10 *.48.37.37
초아선생님. 부끄럽기 그지 없는 글에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시는 뜻으로 알고 정진하겠습니다.
옹박도 열심히 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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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12 18:10:01 *.72.153.12
홉스봄 아저씨는 기록을 잘 하는 사람이었나봐요. 80년의 인생을 기록하는 데, 많은 것을 다 기억에 의존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봐요. 일기도 보고... 본받을 점이라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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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2 22:52:56 *.140.145.63
향인님.. 번역자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띄는군요.. 소유의 종말을 인상
깊게 읽고 있는지라 이희재씨에게 좀 더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마지막 대목은 온전히 향인님다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불같은 연애라니.. 이런 책과 말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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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3.12 23:17:54 *.142.243.157
이 글을 읽으니,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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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3.13 16:36:35 *.48.37.37
으와.. 페이지 한 면이 전부 꽉 찼네요. 다들 대단하십니다.
건강들은 돌보며 하시는 건지....밥은꼭 먹구 합시당.

전 아직도 홉스봄아저씨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다들 감사하구여 다음 글에서 또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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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2007.03.13 16:57:19 *.111.247.32
향인님. 이름에서 풍겨지듯이 글에서도 향기가 나요
음.. 뭐랄까. 제주도 한라봉의 향기?^^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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