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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1일 22시 52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시대착오와 지방색 이 둘을 참으로 무서운 역사의 죄악으로 보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구하고 참여하는 길을 걸어왔고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어떠한 상황에도 초연하게 목소리 높여 외쳤고 그것이 그를 높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가난하게 자랐으며,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이 없는 집안 환경에서 자랐고 그런 환경에서도 자신이 가진 가능성과 능력을 마음껏 발현하고 자신의 소신과 뜻을 한 순간도 놓지 않고 일관되게 살았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부구조는 어떻게 토대와 연관되는가?” 하는 역사적 물음을 열일곱살 때 스스로에게 던지고 역사가로서 평생의 길을 걸었습니다.

가르치기와 글쓰기의 핵은 모두 소통이다. 두 가지를 모두 즐기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라고 스스로 말하면서 평생을 그렇게 살고 계십니다.

홉스봄에 대하여 더 잘 알기 위해서는 그의 <역사론(ON HISTORY)>은 읽어 보아야 합니다. 역사가라고 하는 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역사가의 역할과 임무 그리고 자신의 역사인식과 역사방법론을 체계적으로 보여줍니다.
"왜 모든 체제는 학교를 통해 아이들에게 특정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자신의 사회와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회를 받아들여 자부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미국이나 스페인이나 온두라스나 이라크의 좋은 시민이 되게 하기 위해 역사를 가르친다. 선동적 역사와 이데올로기적 역사는 자기를 정당화하는 신화가 되는 경향을 지닌다. 근대 민족과 민족주의의 역사가 입증해 주는 것처럼, 이것보다 더 위험한 눈가리개는 없다. 이러한 눈가리개를 없애려고 시도하는 것, 혹은 적어도 눈가리개를 조금 들어올리거나 이따금 들어올리는 것이 역사가의 직무이고, 역사가가 그러한 일을 하는 한 사람들이 배우려 하지 않을지라도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말해줄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하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질문은 차라리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예측은 어느 정도 가능한가? 어떤 종류의 예측이 가능한가? 예측은 어떻게 개선될 수 있나? 그리고 역사가들이 이 예측과 일치하는 것은 어디인가? 누군가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이론적이고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많은 미래가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효과적으로 노력해 나가야 한다."
라고 역사가의 임무와 역사인식에 대하여 명확히 이야기합니다.

에릭 홉스봄은 누구나 인정하는 20세기 최고의 역사가 중 한 명입니다.
역사 3부작 <혁명의 시대1789~1848><자본의 시대1848~1875><제국의 시대1875~1914>는 그의 대표작으로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류사회가 어떻게 변화. 발전하였는가를, 근대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페리 앤더슨이 “20세기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서”라고 평가한 <극단의 시대1914~1991>가 있고 그 외 다수의 명저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머리말
13p
나도 개인적으로 아는 철학자 아그네스 헬러가 말한 대로 역사는 “일어난 일을 밖에서 기록하는 것이고 회고록은 일어난 일을 안에서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계의 인정을 받으려는 책이 아니라 감사와 사과를 담은 책이다.

프롤로그
27p
자서전을 쓰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지도가 없이 어떻게 그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갈 수 있고, 언제 그리고 왜 우리가 머뭇거리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는지, 또 우리가 기댔고 얽혀 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개개인의 삶에만 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에 빛을 던진다.

본문
80p
내가 어려운 상황을 무사히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현실 세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몽상의 세계도 아니었다. 나는 호기심, 탐구, 고독한 독서, 관찰, 비교, 실험을 하면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100p
빌리 보드슈라는 선생님한테 내가 공산주의를 신봉한다고 밝혔더니 그 양반이 발끈하면서 나더러 당장 가보라고 한 곳도 학교 도서관이었다. 그는 나한테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네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그저 떠드는군. 도서관에 가서 공산주의가 뭔지 한 번 찾아보기나 해.” 나는 그 말을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공산당 선언>을 건졌다!

102p
베를린 생활을 하면서 나는 일평생 공산주의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아니면 적어도 누가 보아도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또 이제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나도 알지만 학생 때부터 헌신했던 정치적 활동 없이는 인생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140p
첫사랑을 느낄 만한 열여섯 아니면 열일곱 살 무렵에 나는 이렇게 음악의 계시를 받았다. 내 경우에는 재즈가 첫사랑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외모가 워낙 자신이 없다 보니 나는 보나 마나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육체적 관능과 성욕을 억눌렀다. 지적 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당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절대적 감성을 심어준 것은 바로 재즈였다.

166p
1934~1935년에 쓴 일기를 읽어보면 일기의 주인공은 확실히 조금씩 역사에 마음이 끌렸던 모양이다. 내가 무엇보다도 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읽은 마르크스의 역사해석을 더욱 치밀하게 가다듬는 것이었다.

168p
에릭 존 어니스트 홉스바움. 이해력이 빠르고 피상적이지만 일반 상식이 대단히 많고 이론적이고 보편적인 영역에서 남다른 아이디어도 풍부하다. 혁명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아직까지는 신통한 지도력을 보이지 못했음. 태산을 옮겼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만 하지 신념은 없음.

190p
결국 나는 내가 정말로 되고 싶었던 “직업혁명가”의 길은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는 씁쓸한 깨달음을 얻고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면서 먹고 살 방도를 찾기로 한 발 물러섰다

240p
강인하고 명철한 지성에다 놀랄 만큼 박식했던 그는 사상가, 작가, 저명한 학자가 얼마든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해석하기 보다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을 선택했다.

우리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핵무기 제거라는 양심과 확신을 가지고 싸워야 할 적이 있었기에 사기를 잃지 않았다

356p
내가 공산당에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그저 파시즘하고만 싸운다는 뜻이 아니었다. 세계 혁명을 위해서 싸운다는 뜻이었다.

357p
공산당원이라는 멍에를 벗어 던진다면 적어도 미국에서는 더 잘나갈 것이다. 은근슬쩍 빠져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냉전의 한 복판에서 그런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공산주의자로 성공(“성공”이 무엇을 뜻하든 간에)함으로써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자부심이 잘났다는 것이 아니지만 못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았다.

364p
개인의 삶은 역사라는 더 넓은 세상에 얹혀 있다.

432p
20세기 후반의 역사에서 일어난 정말로 기념비적인 사건은 이념도 아니고 학생들의 대학 점거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작업복이었던 청바지의 힘찬 진군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457p
그는 ‘페레스트로이카’ 곧 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해 ‘글라스노스트’ 곧 개방을 선택했지만 거꾸로 했어야 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도 서방 경제학자도 그쪽으로 이론과 경험이 없어서 아무 도움이 못 되었다.

462p
먼저 역사적 논제 하나를 소상히 설명하고 이어서 그것을 완전히 발가벗긴 다음 마지막에 가서 자기 식으로 설명을 하는 그의 강의는 지식과 수사학이 자웅을 겨루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477p
역사는 애석하게도 여전히 저자에게나 독자에게나 일차적으로 일련의 틈새 시장으로 머물러 있었다. 내 때만 하더라도 이런 다양한 역사들을 포괄적인 세계사로 통합하려고 시도한 역사가는 겨우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것은 주로 제도의 문제와 언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역사가 국민국가의 틀에서 벗어나는 데 철저히 실패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돌이켜보면 이런 지역 색 이야말로 내가 평생을 몸담은 역사라는 분야의 주된 취약점이 아닌가 싶다.

479p
역사적 모델을 세우거나 “왜라는 굵직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시들해지고 “분석에서 묘사로”, 경제구조와 사회구조에서 문화로, 사실을 되찾는 것에서 감정을 되찾는 것으로, 망원경에서 현미경으로 역사 연구의 기본들이 바뀌었다.

482p
역사가는 할 일도 많다. 인간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이제는 인간 사회에 거의 발을 담그지 않고 문제만 해결하는 기술관리자의 잣대를 통해 처리되지만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역사는 예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482p
인간의 역사는 지구의 진화, 아니 우주의 진화라는 큰 틀 안으로 다시 끼워 넣어졌다. 우리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진정한 지구사의 틀을 갖게 되었다. 올바르게 중심의 자리를 되찾은 지구사는 인문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연과학과 수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런 지구사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에서 모두 필수적 역할을 하며 그 안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따로 놀지 않는다. 내가 다시 젊어져서 그런 지구사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488p
가르치기와 글쓰기의 핵은 모두 소통이다. 두 가지를 모두 즐기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절해고도에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누가 읽을지도 모를 글을 책처럼 생긴 병에 담아서 드넓은 바다로 띄워 보내야 하는 막막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488p
배우도 교수도 관객과 청중을 위해 공연하는 연기자다. 듣는 사람들이 슬슬 딴전을 피울 때야말로 강의를 하면서 뼈아프게 배우는 순간이다. 교수는 배우보다 더 힘든 일을 한다. 공연을 보면서 정서적 만족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새겨듣고 써먹어야 할 구체적 정보와 사상을 청중에게 듬뿍 안겨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끼기 때문이다.

489p
자서전을 쓰는 학자의 기억에서 지나간 세월은 언젠가 아메리카의 높은 언덕에서 지켜보았던 짐칸을 끝없이 달고 대지를 가로지르던 화물열차처럼 아득히 뻗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짐칸 하나하나보다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달라지는 풍광이 인상적이다.

491p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사실 내 인생을 정말로 지연시킨 것은 오직 전쟁이었다.

505p
지구촌은 현실이다.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니는 방랑 생활로 얼추 40년을 살아온 모양이다. 그쯤 되면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살아온 삶과 나의 개인적 삶을 나누는 경계선이 흐려지면서 나중에는 아예 사라져버린다.
교수도 그렇고 기자도 그렇고 기업인도 그렇고 지구촌이라는 것은 살아가는 곳이라기보다는 만나는 곳이다.

507p
나는 정말이지 즐겁고 편안하게 살았다. 여행도 많이 다녔고 아내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같이 다닐 때가 많았는데 우리의 여행은 일과 발견과 휴가와 색다른 경험과 오랜 우정이 하나로 녹아 든 것이었다. 아무리 가난에 찌들어 살고 늘 재앙과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웃을 줄도 알고 농담도 할 줄 알고 적어도 농담도 던질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로 나는 재미있게 살았다.
나는 “내가 겪은 삶과……20세기의 현실….인류가 겪어야 했던 그 끔직한 사건들 사이의 명백한 모순”에 놀란다.

508p
나는 어릴 때부터 꿈꾸던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런 식으로 삶이 풀려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부질없고 어리석기조차 하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되지.” 젊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520p
프랑스는 중요한 자산이 있었다. 프랑스는 원하는 외국인한테는 누구나 자신의 문명을 선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프랑스 문화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우리가 덥석 받아들인 것이다

585p
1962년 나는 록펠러 재단을 설득하여 남미 여행 경비를 타냈다. 얼마 전에 쓴 <원시적 반란자들>의 주제를 당대의 역사에서는 20세기 중반의 유럽보다 더 관련성이 높은 대륙에서 더욱 심도 있게 파고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597p
남미 국가들에서 첫눈에 지금도 나날이 벌어지기만 하는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보다도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남미를 찾는 외국인 학자들이 주로 어울리는 지배층이나 지식층과 보통 사람 사이의 엄청난 격차였다.

623p
20세기에 서양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 아니 궁극적으로는 세계 어디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자기가 태어난 나라와 미국이라는 두 개의 조국이 있었다.

628p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자존심과 자긍심을 해쳐도 괜찮을 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를 한 사람이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지금도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636p
시장경제의 한 부수적 측면으로서 “조직폭력단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작은 연구 논문을 썼을 때 나는 그 주제에 충분히 익숙해 있었다.

651p
소련을 상대로 냉전에서 승리를 거둔 미국이 얼토당토않게도 2001년 9월 11일자로 자유라는 이상이 이번에는 엄청나게 모호하게 적으로 규정된 악과 또다시 사투를 벌이게 되었다는 판단을 내린 이후로, 미국과 미국의 정책을 조금이라도 삐딱하게 보았다가는 또다시 미움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652p
미국은 이 세상 어느 곳보다도 재능과 열정과 새로움에 개방되어 있다. 미국은 또 점점 시들어가고 있지만 지적 탐구의 기회를 누구에게나 무료로 평등하게 제공하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653p
한 축구감독의 말대로 “승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부다”. 외국인한테 미국이 참 희한한 나라로 보이는 것은 그런 점 때문이다.

654p
미국적 가치관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것은 평등주의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인, 다시 말해서 반권위주의적이고 이율배반적이지만 기묘하게 합법화된 무정부주의다. 평등주의의 유산이라고 한다면 높은 사람한테 먼저 숙이고 들어가지 않는 태도 정도라고나 할까. 누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미국 안에서 또는 미국에 의해서 일상적으로 힘이 사용되는 방식이 유럽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거칠고 잔인하기조차 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660p
우리의 문제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 혹은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인다. “미국의 세기”가 정점에 이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고충이다. 올해로 여든다섯인 나는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것 같다.

에필로그
664p
내 또래의 역사가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다르게 보았던 과거의 중요한 지점, 그 또 다른 나라로 가는 여행의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 거기서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665p
20세기를 80년이 넘게 살다 보면 정치 권력과 제국, 제도가 얼마나 가변적인가를 저절로 배운다. 나는 식민지를 거느린 유럽의 제국들이 그 막강한 대영제국이 졸지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세계의 강대국들이 마이너 리그로 강등당하는 것을, 천 년은 갈 것처럼 보였던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혁명정권이 허물어 지는 것을 보았다.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서 그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해도 과히 빗나간 예상은 아니리라.

667p
시대착오와 지방색 이 둘은 참으로 무서운 역사의 죄악이다. 둘 다 다른 곳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무지에서 생겨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더라도 그런 무지는 잘 극복이 안 된다.

670p
한 사람이 역사가로서 제대로 살았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은 그 자신과 세상에 각별한 의미가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 “만약에”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는지 또 거기에 답변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672p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옮긴이의 말
680p
개인이든 나라든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은 필연적으로 긴장의 이완을 낳으며 그것은 타락으로 이어진다. 사람은 자신이 몸담은 체제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가, 역사가 도달한 정점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을 고집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순간부터 역설적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체제와 시대는 본인들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내가 저자라면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하여 그가 말한 것처럼 싣고 가는 짐칸의 화물이 아니라 지나가는 풍광이 더 인상적이라고 말한 것처럼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세상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세심한 관찰과 연구로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지나간 것을 그려내고자 할 때 사건이나 사람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 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생생하고 절실하게 다가오며, 지나간 역사는 무미건조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생생하고 살아있는 것이 됩니다

역사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을 품고 상부구조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큰 역사라는 틀에서 이해하고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역사를 이해하는 틀을 스스로 가질 것을 끊임없이 재촉합니다.

홉스봄은 역사가는 지역주의 또는 집단주의에 대하여 엄중하게 경계할 것을 요구하고 스스로도 영국이나 프랑스 그리고 미국 등 자신이 주로 머물렀던 나라나 지역에 대하여 냉철한 판단을 하고, 그 나라의 정치나 경제와 문화를 스스럼없이 역사가로서 자신의 가치 기준을 들이대는 깨어있는 지식인입니다.

세계 여러 지역에 대하여 잘 서술하였지만 특히 프랑스와 미국에 대하여 홉스봄이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 과거 한 때 세계를 풍미했던 프랑스에 대하여 잘 알 수가 있었으며 지금 거의 한 세기를 풍미하고 있는 미국에 대하여 조금 더 깊이 있게 알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념을 단순히 사건이나 시대순으로 서술하지 않고 자신의 치열하고 살아있는 한 역사가의 삶을 통하여 이념의 본질과 순수성과 그 열정을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이념이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가슴으로 알 수 있게 해 준 것이 특히 좋았습니다.

홉스봄은 역사에서 어떠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나? 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활동한 역사가입니다. 그러나 자서전에서는 인생이나 역사의 고비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대안을 이야기 한 부분이 거의 보이지가 않습니다. 물론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하였다고 일부 인정한 부분이 있으나 자신이 스스로 시대의 흐름을 예측하고 대안을 제시한 부분을 거의 찾을 수 가 없습니다.
조금은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내 때에도 역사가는 괜찮은 직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즐거웠다. 지적 성숙이라는 주제로 담소를 나누면서 지금은 작고했지만 피에르 부드디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제가 보기에 지식인의 삶은 판에 박힌 강단보다는 예술가의 삶에 더 가까운 면이 있습니다.……. 지적 활동의 형식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안겨준 활동은 사회학자라는 직업이었습니다.

사회학자라는 자리에 “역사가”만 집어넣으면 나는 이 말에 백 번 동의한다. 라고 거침없이 고백한 그의 말이 내 가슴속에 맴돕니다.
IP *.34.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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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2 23:15:32 *.140.145.63
강종출님.. 님의 리뷰에서 와닿는 두가지 단어는 '상부구조'와 저자가
이전 저작을 통해 말하는 '역사가 역할론'이군요. 전자는 개인적으로
제가 잘 쓰는 말이고, 후자는 님의 시선이 줄곧 머물러 있는 단어였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꼽아 보았습니다.

리뷰에 님만의 색깔이 묻어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강종출
2007.03.13 02:17:24 *.34.47.17
감사합니다. 서평을 남겨주시고 그기에 좋은 평가까지 해 주시니 저에게 많은 격려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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