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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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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2일 20시 34분 등록
<너 자신을 디자인 하라> -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읽고

진중권 지음 , 웅진 지식하우스

진중권은 늘 삐딱하다.
그는 늘 삐딱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때로는 그를 읽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의 전작 ‘미학 오딧세이’도 미술작품에 대한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제공함으로서 기존의 소위 ‘아름다움’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해 문단에 시선함을 주었고, '춤추는 죽음' 또한 '죽음'에 대해 과거인들은 어떤 식으로 승화 시켰는지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죽음=슬픔 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삐딱한 긍정성을 부여해 주었다.
그의 최근작 ‘호모 코레아니쿠스’ 또한 이러한 그의 삐딱한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단, 그의 화두가 이제는 미학에 관한 것도 아니요, 정치적 맥락을 짚어내려는 것도 아니요, 한국인에 관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중권이 한국인을 풀어내는 시선은 아주 섬세하다.
그러나 그의 섬세함이 때로는 너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섬세한 측면에서 시작해서 화두를 재치있게 풀어가는 것은 그렇다쳐도, 때로는 너무 쉽게 그런 면들을 일반화 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국사람들이 빨리빨리, 하는 신속의 정서를 풀어나가는 그의 방식은 이렇다.

속도에 익숙한 몸에 가장 큰 고문은 ‘기다림’. 한국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은 심하게 마모되어있다. 외국에서도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닫힘’ 버튼부터 누르는 것은 대부분 한국인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힐 때까지의 그 몇 초를 못 참는 것이다. 그 몇 초를 아껴서 무엇을 하겠냐마는, 생산을 위해 속도감이 기입된 몸은 느린 속도에 불쾌감을 느낀다. 속도는 이렇게 지각의 욕망까지 변화 시킨다. p.64

외국에서 올라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그의 논리는 좀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사실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한국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그렇게 닫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을 그리 많이 보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의 왠만한 엘리베이터는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2-3초 후에 저절로 닫히게 되어있다. 그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한 상당부분은 그의 독일 유학 시절과 비교해 놓은 것들이 많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역사적으로나 경제적 측면에서도 미국의 영향이 지대한 나라이다. 그러한 문화적인 영역에 대한 비교를 놓고 볼 때 그의 유럽국가들과의 단순 문화비교는 좀 논리의 비약이 심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독특한 시선과 발랄한 그의 문체, 그리고 사물에 대한 차갑도록 섬세한 목소리는 책을 읽는 이에게 한국인에 대해서 공감이 가는 커다란 호수를 형성한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IT 산업을 분석한 부분에 대한 그의 시선은 그 창의력과 독특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디지털 구술문화’를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의 선진적인 인터넷 인프라는 역설적이게도 역사적 후진성의 덕분이라는 그의 논리는, 후에 우리나라의 PC방 문화의 범람과 인문학의 위기를 설명하는데 명쾌하고도 독창적인 해석을 가한다.

한국의 영상문화는 서구처럼 문자문화의 강력한 저항을 받지 않았다. 문자문화의 전통이 약한 게 외려 신속하게 디지털 영상문화로 이행하는 데에 유리한 조건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서구는 속도는 느려도 문자문화의 바탕 위에서 서서히 영상문화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 없는 그림은 선사시대의 주술적 상상력이고, 문자로 그린 그림은 디지털 시대의 기술적 상상력이다. 우리의 것은 이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p.209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에필로그 부분이다. ‘너 자신을 디자인하라’ 라는 제목의 이 꼭지는 그가 지적한 모든 소소한 부분들을 언급하면서 결정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한국인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을 집약해 놓는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도 이런 변화가 가장 신속하고 극단적으로 일어나는 곳. 이곳에서 신체가 받는 중력의 하중은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지만 신체는 권력의 생체공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나, 동시네 어느 정도는 존재미학을 통해 제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잠재성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늘 새로이 디자인하는 신체는 최소한 강요된 유목에 따른 고통을 적게 받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유례가 없던 가능성의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p. 297

그의 생각과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선택한 몇 가지 예술 작품들은 이 책을 읽는 이에게 예술 속에 숨어있는 심오한 의미를 해석해 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특정 인물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감이나, 실명을 거론하면서 수준 이하의 문장을 사용한 부분들이 여전히 이 책 전체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는 강력한 이미지로 작용한다. 분명 삽입된 그림 한 장 한 장, 작품 한 점, 한 점에 소소한 신경을 썼음이 분명한데, 그러한 원색적인 문장들에 대한 그의 무신경이 이내 아쉽기만 하다.


IP *.76.8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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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3 00:35:07 *.140.145.63
미완의 시대 리뷰에 한참 묻혀 있다가 휴식처를 발견한 기분이네요.
진중권에 대해서는 조금은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이 책은 한번쯤 읽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문득 이문열의 호모 엑세쿠탄스라는 제목과 오버랩이 되는군요.
연락 한번 주세요.. 만나서 영화얘기가 실컷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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