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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2일 23시 41분 등록
차례
1. 내가 저자라면
2. 저자에 대하여
3. 책을 읽다 마음에 와 닿은 인용문

1. 내가 저자라면(미완의 시대를 읽고 난 후)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이 문구는 이 책의 말미에 나와 있는 것으로 아마 이 책을 숙제로 받은 3기 연구원 지망생들은 한번쯤은 인용했을 것이다. 이 문구는 공산주의자다운 마지막 멘트이다. 이것을 나의 버전으로 바꾸어 보았다.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시대를 탓하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한다. 세상은 좋을 때도 있고 나빠질 때도 있다. 나를 보자 나로부터 출발하고, 나로부터 개혁하자.”

구본형소장이 최근에 펴낸 ‘사람에게서 구하라’라는 책의 관점에서 이 문구를 다시 표현해보겠다.

“어렸을 때는 사회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좋았다.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불의와 타협하는 사람들은 미웠다. 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정의로울 수 없다는것을 알았고, 정의로운 사람과 불의에 타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정의롭기도 하고 불의와 타협하기도 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 속에 두가지가 공존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나는 다시 정의로움을 보게 되었고, 연민을 찾게 되었으며, 분노를 보게 되었고, 관용을 찾게 되었다. 위대함을 보게 되었고, 훌륭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얼마나 정의롭고 훌륭한가에 관심이 있었다. 흠 없이 아름다운 사람을 동경했다. 이제는 정의로움 속에 존재하는 불의에 타협하는 고통을 보게 되었다. 그 고통이야 말로 우리가 스스로 ‘어제보다 아름다운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변화의 동력이 숨어 있음을 보게 되었다. 정의와 불의가 공존해 있는 나로부터 출발하고 개혁하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보와 보수가 충돌하고 있는 시대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 보면 ‘나는 진보주의자인가 보수주의자인가’를 판단내리기 쉽지 않다. 길을 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 등 전반에 걸쳐서 진보와 보수를 택하라는 질문을 하면 100% 일치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생존해 있는 올해 만 90세인 에릭 홉스봄은 본인이 표현하기에 인간이 살아온 역사중에서도 가장 별스럽고 끔찍한 한 세기를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시대가 있었을까하는 의심이 든다. 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갈등과 투쟁의 역사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신이 살던 시대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할 것이다.

에릭 홈스봄 할아버지에게 공개적으로 질문한다. “마르크스/공산주의자의 껍데기를 덮어 쓰고 있는 당신은 과연 누구세요. 당신이 도대체 누구십니까?” 우리나라 말을 모른다면 영어로 하겠습니다. “Who are you?"

2. 저자에 대하여

에릭 홉스봄은 올해 만 90세로 현존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이며 공산주의자다. 그의 나이 1931년(14세때) 독일에서 사회주의 소년단에 가입했고, 1936년 영국에서 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권의 몰락으로 영국 공산당이 해체된 1991년까지 당적을 50여년간 유지한 열혈 좌파다.

그는 1917년 6월 9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양있는 오스트리아계 어머니와 유대계 아버지인 런던의 노동계급 집안 자식의 아들로 태어났다. 홉스봄은 12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2년 반 뒤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친척들의 도움으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처음에는 빈에서 자랐고 히틀러가 제국의회를 장악하는 와중에 고등학생으로서 베를린으로 이주하였으며, 1933년에는 런던으로 피하였다. 그곳에서 놀랍게도 그는 겨우 2년 후에 케임브리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다.

런던의 성메리르본 고전문법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킹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킹스 칼리지에서 홉스봄은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1947년 버벡 칼리지의 사학과 강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뉴욕에 있는 뉴스쿨대학교에서 보냈다. 그 외에도 많은 나라와 여러 대학에 있었지만 주로 버벡 칼리지와 뉴스쿨대학교에서 교육자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버벡칼리지는 1825년에 세워진 런던 기계학원의 후신인 버벡 칼리지는 낮에는 일을 하는 직장인을 가르치는 야간 대학이다. 이곳에 오는 학생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뉴스쿨대학교는 이단과 국제주의가 혼합된 독특한 학교였다. 1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시험 만능주의에 반발한 교육분야와 사회운동 분야의 진보인사들이 뜻을 모아 세운 학교였다. 실력있는 교수들을 영입해서 고전 철학에서 요가까지 수요가 있으면 뭐든지 가르쳤다. 이곳은 히틀러가 집권한 독일에서 망명한 학자들과 그 뒤 독일에서 점령당한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탈출한 학자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1933년에 만들어졌다. 학생들도 다양한 나라에서 왔다. 두 학교에서 보낸 것으로 보아 홉스봄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홉스봄의 저서는 시대 시리즈가 유명하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초까지 다룬 4권의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 : 단기 20세기사》의 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4권 모두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하여 현실 사회주의 몰락에 이르는 총 대략 140여년(1789~1991년)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 시리즈는 에릭 홉스봄을 유명하게 만든 역작으로, 각 시리즈 별로 특정한 주제를 비중있게 다루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시리즈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 등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통사에 가깝다. 홉스봄이 이 시리즈를 쓰기 위해 동원한 사료의 양은 방대하며, 홉스봄은 나름대로 중립적 시각으로 서술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인생관과 역사관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의 마지막에 쓰여진 문구를 소개한다.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3. 인용문(책내용 발췌)
p27
자서전을 쓰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지도가 없이 어떻게 그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갈 수 있고, 언제 그리고 왜 우리가 머뭇거리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는지, 또 우리가 기댔고 얽혀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개개인의 삶에만 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에 빛을 던진다.
P54
나는 “유대인아닌 유대인”으로 자유롭게 살았다. 그것은 유대교를 신봉하거나 민족 의식이 강한 평론가가 “자학하는 유대인”이라고 꼬집는 잡다한 부류하고도 달랐다. 나는 조상들이 믿었던 종교의 관습을 지켜야 한다는 심정적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 한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연대를 요구하는 작지만 호전적이고 문화적으로 낙후했으며 정치적으로 공격 일변도로 나아가는 민족국가에는 더더욱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p77
10대 때 그 시를 읽고 내가 그레틀 이모한테 별로라고 이야기했더니 이모가 펄쩍 뛰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고 그때부터 생각한 모양이다.
p106
나 같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프린츠 하인리히스 김나지움 같은 기존의 형태가 되었건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같은 형태가 되었건 게르만 민족주의는 나 같은 잉글랜드이자 유대인이 동조할 수 없었다. 물론 잉글랜드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독일인이 왜 민족주의에 열광해는지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이미 독일에 오기 전부터 심정적으로 좌파에 끌렸던 소년의 처지에서는 공산주의자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다.
p119
히틀러의 부상보다 위험한 것이 사민주의라는 생각, 사민주의는 “사회 파시즘”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은 정치적으로는 지극히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그것은 본능과 상식에도 맞지 않았고 나치보다는 공유하는 바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사회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 노동자의 사회주의 전통에도 맞지 않는 소리였다.
p125
히틀러의 집권이 임박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회민주당을 여전히 주적으로 삼은 공산당이 얼마나 분별이 없었는가를 보여준다.
p140
내 경우에는 재즈가 첫사랑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외모가 워낙 자신이 없다 보니 나는 보나 마나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육체적 관능과 성욕을 억눌렀다. 지적 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단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안흔 절대적 감성을 심어준 것은 바로 재즈였다.
p142
나는 일기장에다 이렇게 썼다. “사회주의 국가는 묵은 관습의 단점은 없애되 장점은 살려 나가는 새로운 사회주의 관습을 만들어내야 마땅하고 또 만들어낼 것이다.”
p165
마르크스의 시각으로,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역사적 시각으로 세상을 풀이하고 싶었다. 가슴은 뜨거웠지만 조직에 속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소극적으로 움직이던 10대의 공산주의 지식인에게는 그것(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일)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사실 없었다.
p166
마르크스주의가 마약처럼 뿌리치기 어려웠던 까닭은 사상이 워낙 총체적이었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삼라만상의 이론”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삼라만상을 보는 틀”은 제공했다. 무기체와 유기체의 본성을 인간 세계와 연결하고 집단과 개인을 연결하고 끝없이 유동하는 세계에서 모든 상호 작용의 기본 이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
p167
나의 마르크스주의는 예술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함께 무르익었다. 그 당신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생산 양식”의 변천을 놓고 역사의 발전 단계라는 주제로 벌어진 거창한 고전적 역사 논쟁이 아니었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사회 안에서 예술가와 예술(사실은 문학)이 차지하는 역할과 성격, 마르크스주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부 구조는 어떻게 토대와 연관되는가?”하는 주제였다.
p203
우리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
사랑일랑 집어치우자
그리고 말하자
우리의 애정을 오직
노동자에게 바치겠다고
사랑일랑 집어치우자
혁명이 올 때까지
그때까지는 사랑은
반혁명이다.
p215
공산주의가 우리 세대의 가장 똑똑한 남녀를 왜 그렇게 많이 빨아들였는가 하는 물음과 공산주의가 된다는 것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은 20세기의 역사에서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20세기에 가장 위려을 떨친 악마의 하나는 정치적 열정”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처럼 20세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 그리고 그런 열정의 핵심을 꿰찬 것이 공산주의였다.
p218
평생을 저항하면서 살았던 공산주의자와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으므로 그 안에서 벌어진 일에 알게 모르게 책임이 있었던 공산주의자의 차이는 컸다. 권력은 어김없이 개인을 부패시킨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부패한 권력은 떨치기 어려운 유혹인 것도 사실이다.
p224
레닌주의 정당의 비밀은 바리케이드 위에 서서 싸우는 몽상도 아니었고 마르크스 이론도 아니었다. 그것은 “결정은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과 “당론”이라는 두 가지 원칙으로 굴러갔다.
p226
당의 노선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지적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당원으로서 마땅히 납득해야 했기에 그것을 이해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선뜻 수긍이 안될 때조차도 우리는 당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았다.
p230
그때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회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안에서 형제가 되고 자신의 개별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공동의 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점에서 이상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이럴 수가 있는데 왜 나머지 경우에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p235
스탈린과 코민테른에게 모든 것을 걸었을 때 우리는 스탈린 치하에서 소련 인민이 얼마나 허덕였는지를 상상하지도 못했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자기들이 알았거나 짐작한 내용을 우리한테 들려주는 몇 안되는 사람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을 믿고 싶지 않았다.
p250
그것은(공산주의) 아주 좋게 보자면 “사회주의와 편안함” 사이의 어디쯤 아니면 “느긋한 집단주의”로 귀착되었다.
p254
"세상 사람들은 성배와 원탁에 대해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사람들에게 원탁의 기사는 바보, 멍충이, 범죄자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성배를 믿는 걸까, 하고 그는 자문한다. “모르겠다.” 랜슬롯은 말한다. “그런 물음에는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 우리는 성배를 영영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배가 아니라 성배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는 아서 왕의 말은 옳지 않은가?
P258
나는 영국 군대에서 6년을 보냈다. 나한테는 “좋은 전쟁”도 “나쁜 전쟁”도 아니었고 그저 허망한 전쟁이었다. 나는 전쟁에서 의미 있는 일을 조금도 하지 않았고 또 그런 일을 해달라는 부탁도 받지 않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불만족스러운 시기였다.
p296
나치의 인종주의적 반유대주의를 그대로 뒤집어서 우리가 반독일주으로 치닫지 않은 것은 우리 나름대로 현실인식과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도 우리는(적어도 나만큼은) 국가사회주의를 탓했지 독일인을 욕하지는 않았다.
p356
내가 당에 남은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잉글랜드에서 영국 젊은이로 공산주의에 입문한 것이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져갈 때 중유럽에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내가 공산당에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공산주의가 된다는 것은 그저 파시즘하고만 싸운다는 뜻이 아니었다. 세계 혁명을 위해 싸운다는 뜻이었다.
p357
결국 내가 공산당에 남은 것은 그래서가 아니가 싶다. 아무도 내 등을 떠밀지 않았을뿐더러 나가야 할 피치 못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역사가가 아니라 자선전을 쓰는 사람으로 돌아와서 말한다면 개인적 감정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 나는 냉전의 한복판에서 그런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공산주의자로 성공(“성공”이 무엇을 뜻하든 간에)함으로써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자부심이 잘났다는 것은 아니지만 못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았다.
p378
(13장 40대에 맞는 전환기)
세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이 아무리 경제와 기술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세상의 안정은 겉보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았다. 그렇지만 중유럽과 서유럽에서 살아가는 행운을 타고난 우리 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허깨비는 아니었다. 우리가 얼마나 행운아인지를 그 당시에는 뼛속 깊이 깨닫지 못했을지 몰라도 아무튼 우리는 복 받은 땅에서 살고 있었다.
p394
웨일스의 오두막에서 우리는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살았던 조건에서 일부러 살았다. 아무리 1950년대의 중산층 형편이 팍팍했다고는 하지만 런던이나 케임브리지 같은 데서 살아가는 사람의 통념으로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었고 불편하더라도 없이 지내는 것이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고 자연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의 매제 발터 슈바르츠도 두 손 들 정도로 열악한 조건에서 우리는 지냈다.
p458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 10년 남짓 지난 지금 두려움이 다시 되살아 났는디도 모른다. 부자와 부자한테 하도 설득당하여 부자가 없으면 망한다고 믿는 정부는 빈자에게 안겨줘야 하는 것은 경멸이 아니라 양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p463
포스탄은 어느 누구의 스승도 아니었다. 학파도 만들지 않았고 따르는 제자도 없었다. 그렇지만 포스탄이라는 징검다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 넓은 역사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p469
분명한 것은 노동을 다루고 사회 계급과 사회운동을 다루고 경제 현상과 사회 현상의 관계를 다루고 무엇보다도 “경제라는 사실과 정치, 법률, 종교라는 현상 사이의 상호영향”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p481
역사가 길고 짧고를 떠나 국가와 체제, 정체성을 추구하는 집단, 냉전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수면 아래 은폐되어 있었던 힘들이 역사에 가하는 정치적 압력은 유례없이 강해지고 있고 현대 언론도 장삿속으로 역사를 전에 없이 키워주고 있다. 진짜로 있었던 과거가 아니라 목적에 부합되는 과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정되고 날조되는 역사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는 위대한 역사신화학의 시대다. 역사 전문가들이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가를 여기저기서 부른다.
p481
농사를 짓고 도시를 세우고 나서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역사라고 부르는 기간은 통틀어서 400세대, 그러니까 1만 년도 채 되지 않는다. 지질학자의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다. 이 짧은 기간 동안, 특히 지난 열 세대에서 스무 세대 동안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지금까지의 역사는 마치 인간이라는 종이 아무도 므로는 미래를 향해 생태사회 공간에서 초신성처럼 폭발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폭발이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자.
p488
가르치기와 글쓰기의 핵은 모두 소통이다. 두 가지를 모두 즐기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절해고도에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누가 읽을지도 모를 글을 책처럼 생긴 병에 담아서 드넓은 바다로 띄워 보내야 하는 막막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p488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점만 다르지 배우가 극장에서 관객들을 마주보면서 관객과 교감하는 것처럼 교수도 학생들이 꽉 들어찬 방에서 학생과 이런저런 방식으로 교감을 나눈다. 배우도 교수도 관객과 청중을 위해 공연하는 연기자다.
p491
직업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런 자리에 올라간 사람은 조금씩 먹어가는 나이 말고는 명예학위를 받은 사람으로서 그동안 자기 분야에서 올린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선물에 해당하는 가운과 리본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쌓아 올릴 것이 없고 오늘 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내일을 끝없이 만나면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
p497
역사책을 쓴다는 것은 한 나라의 정치와 세계의 정치에 깊이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인데 정치와 역사를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p501
내 책을 읽은 독자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나라도 있다. 나는 1987년에 한국에 가서야 비로소 내 책 다섯 권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p508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되지.” 젊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p547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은 소재가 달려서 고민하는 법은 없다. 정 안되면 가족 이야기를 써도 되고 자서전을 써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가가 되려는 사람한테는 과거의 어떤 부분을 파고들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주는 길잡이가 없다.
p671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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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3 00:48:29 *.140.145.63
정양수님.. 구선생님의 신간에서 인용한 구절이 다시금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군요. 이 책의 저자에게서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보고 교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직은 좀 더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아쉬움이 느껴지네요.
아마도 그의 생전에 또 다른 저작이 더 나온다면 그 아쉬움을 채울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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