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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일 23시 27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르네 그루세, 그는 20세기에 프랑스가 낳은 동양 역사가로서 몽고 역사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라고 한다. 프랑스인 역사가로서 동양학에 심취했었던 그루세가 나는 신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동양인이라고 하면 일단은 무시하거나 차별부터 하고 바라보는 프랑스인들에 대한 나의 어릴 적 단편적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가 가지고 있던 종교, 철학, 정치, 군사, 사회, 경제, 문학, 예술 등 인간 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그의 사고의 폭과 관심의 범위를 넓혀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루세가 동양사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동양의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 서양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들은 동양을 배움으로써 서양을 보다 잘 알 수 있을 것이요. 서양을 배움으로써 동양을 보다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는 오직 하나다”

짐작하건대, 그루세가 살았을 시대적 배경(1885-1952)으로 미루어 보아 그와 같이 동양과 서양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연구했던 학자는 드물었을 것이다. 남들이 쉽게 포용할 수 없는 영역의 학문을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목 받았을 것이고, 그만큼 시대가 그에게 건 기대가 컸으리라. 그리고 균형적인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그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루세에게서 그의 철학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대학 강사 아버지를 뒀으나, 아버지의 뒤를 따라 교직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성의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세계 일차 대전이 발발해 전쟁에 참전했다 부상을 당해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동양 관련 미술품과 자료가 풍부한 기메 박물관 부관장과 아시아 신문 편집장으로서 일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는 루브르 학교의 인도학 교수를 맡았고, 뒤이어 몇 년에 걸쳐 체르느스키 박물관 관장, 국립현대 동양어학 교수, 국립박물관 관장 등 주로 동양과 관련된 직책을 맡았다. 그러는 동안 그가 남긴 동양 관련 저서와 논문, 강연 기록을 합치면 무려 1백 권도 넘는다고 한다.

그는 집념이 대단한 박식한 전문가답게 이렇다 할 유적이나 명쾌한 문서가 전해지지 않는 ‘초원의 지대’와 관련하여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였다. 지금도 표준이 되는 지침서로 간주되는 <아시아의 역사>를 비롯하여 <초원지대의 제국-아치라, 칭기즈칸, 타메루란>을 집필, 유목민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연구 기록하였다. 그 뒤 <몽고제국>이라는 두 번째 책을 저술하였는데, 여기서 그루세는 모든 자료와 원전의 번역을 비교 검토하면서 본문 각 페이지마다 수많은 각주를 덧붙였으며, 150페이지 분량의 ‘참조’를 첨부하였다. 그리고 그가 쓴 세 번째 책이 바로 본 저서이다.

그의 노력과 치밀함을 보며 또 한 번 느끼지만, 사람이 자신의 관심 분야 한 가지를 깊이 파고 들어 그 분야에 평생을 바치면 이렇게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루세를 보며 과연 나는 무엇에 나의 평생을 바칠 것인가 잠시 생각에 빠져본다.



<마음에 들어온 인용문>

“10월은 일찍부터 눈보라를 동반한 겨울이 찾아온다. 11월이면 추위에 강물이 얼어붙어 4월이 되기 전에는 녹지 않는다. 이때의 몽고는 시베리아의 연장이다. 이렇듯 무서운 기온의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지역에서 이 이야기는 펼쳐진다” (p. 14)

“그리고 몽고의 시인이 신화시대를 이야기할 때에도 사냥에 대한 일만 서술할 뿐 목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p. 18)

“ ‘이 말이 견뎌낼 수만 있다면 나도 살아남겠지. 말이 넘어지면 나의 목숨도 끝난다’ ”
(p. 20)

“ ‘주르치에트 족은 쉽사리 넘어뜨릴 수 있다. 그들은 윗자리에서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p. 23)

“또 어떤 부족이 방목지를 잃게 되고 사내들은 모두 죽고 빈털터리가 되어도 사냥과 목축의 넓은 평야가 끝없이 열려 있는 한은 새로운 번성의 길도 자연히 열리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p. 28)

“전설에 따르면 이 칭기즈칸 이전의 마지막 ‘칸’ 은 몽고인의 헤라클레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무서운 인물이었다” (p. 34)

“당신들이 태어나기 전에 몽고인의 땅은 황폐할 대로 황폐했습니다. 여기나 저기나 부족끼리의 싸움으로 몸 편할 곳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p. 37)

“예스게이 바토올만큼 죽은 후에 그 이름이 칭송받는 행운을 가진 인물은 역사를 뒤져보아도 그 예가 많지 않다. 칭기즈칸의 아버지로서 자기가 낳은 아들의 영광이 어버이에게까지 되미친 경우이다. 그렇지만 그 생애는 험난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크게 중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예스게이가 케레이트족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칭기즈칸의 정치 터전을 마련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동맹이 없었다면 칭기즈칸의 생애도 달라졌을 것이다” (p. 41)

“재미있는 일은 그들이 고비 사막의 파수병과 같은 역할을 했던 까닭에 기독교의 포교를 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p. 43)

“어쨌든 케레이트의 네스토리우스 파는 이 이야기 중심부에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고 그 덕택에 네스토리우스 파의 이단 기독교, 즉 경고는 훗날 칭기즈칸의 제국에서도 공인 종교의 하나로 인정 받게 되었다” (p. 44)

“대대로 족외혼을 율법으로 하는 몽고인은 아내를 맞으려면 약탈 결혼의 수법에 의지해야만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때문에 부족끼리의 싸움은 그칠 날이 없었다 오논 강 상류의 몽고족과 메르키트 족은 서로 부녀자 유괴를 그치지 않았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숙원을 낳아 끝내는 한쪽의 절멸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p. 49)

“이 같은 곧은 마음씨, 왕성한 기력, 확실한 분별을 가진 모친이 없었더라면 칭기즈칸의 생애는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 (p. 49)

“예스게이와 호에륜 사이의 장남, 마침내 칭기즈칸이 될 아이는 1167년 돼지해에 태어났다” (p. 50)

“예스게이의 죽음, 그 고통과 가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임종의 비통한 오침은 훗날 칭기즈칸이라 불리게 될 테무친의 전기에 첫째 장을 이룬다…… 그 얼마나 무서운 조건 밑에서 세계의 정복자는 인생을 배워야만 했던가...... 큰 지주였던 아버지를 잃은 아홉 살의 테무친은 그렇게 거친 사회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p. 55)

“훗날 그의 정치적인 모든 행위에는 강철같이 거센 사회에서 단련된 어린 시절의 교훈이 반영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자라카 노인이 죽어가는 앞에서 어린 테무친이 흘린 눈물에 대해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순수한 인간다운 애정과 인자함의 발로는 미래의 칭기즈칸이 여느 사람보다 뛰어난 인물이었음을 처음으로 나타내고 있다” (p. 59)

“보오르주 또한 처음 만난 테무친에게 온몸을 바쳐 언제까지나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 그 눈동자의 거역할 수 없는 광채’에 이끌린 것이리라” (p. 77)

“그리고 테무친의 신부 부르데는 훗날 칭기즈칸에게 큰 힘이 된다. 부르데는 몽고 여인으로서는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인 네 명의 튼튼한 아들을 낳았다. 뿐만 아니라 항상 사리판단이 정확했고, 남편을 위한 훌륭한 조언자이기도 했다. 칭기즈칸은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시기마다 선택에 고민할 경우 부르데의 의견을 따랐다. 그녀의 의견은 선견지명이 있었고 또 결정적이기도 했다” (p. 79)

“이처럼 복수는 세대에서 세대로 계속되어 유괴, 폭행, 살인이 그칠 줄을 몰랐다” (p. 85)

“그는 몽고의 습관대로 태양 쪽을 향해서 허리띠를 목에 걸고 모자를 벗은 다음 가슴을 두들기며 무릎을 아홉 번 구부리고 술을 올렸다. 그것은 몽고 원시종교의 특이한 의식이었다” (p. 86)

“그러나 이두정치란 원래 불안정한 것이다” (p. 96)

“여기서 우리들은 훗날 칭기즈칸이 될 사람의 재미있는 성격의 일면을 접하게 된다. 중요한 전기를 맞아 큰 결단을 내리게 될 때 그는 매번 주저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아내 부르데가 남편 대신에 결정을 내리는 처지이고 남편은 아내 의견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맡겨버렸다” (p. 97)

“칭기즈칸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정당한 원한도 잊어버리는 인물로, 새로 가맹한 자와 예전부터의 충신을 모두 모아 오논 강기슭에서 크게 주연을 베풀었다. 이처럼 칭기즈칸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그를 적으로 두기보단 보호자로 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할 만한 실력을 그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p. 107)

“세계의 정복자가 될 사람은 이와 같이 충성된 신하에게 절대적인 헌신을 길들이게 했던 것이다” (p. 122)

“모든 역사책이 일치하게 인정한 데에 따르면 자무카는 두 마음을 가진 기분파적인 음모가로 끊임없는 야망을 불태우는가 하면 그것도 금방 식어버리는 성격을 가진 사나이였다”
(p. 123)

“전쟁의 운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이긴 자가 최고의 칸으로서 패한 자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이다!” (p. 163)

“유목민들은 복수심을 채우고 빼앗은 물건을 서로 차지하려고 누군가 뛰어난 대장의 권위에 일시적이나마 복종하긴 하지만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일은 드물었다” (p. 164)

“이처럼 칭기즈칸은 충성을 다한 사람들에게 예를 베푸는 것을 잊지 않았다” (p. 170)

“대담하기 그지없는 그도 늙은 어머니에게는 거역하지 못하고 도리어 지금까지의 처사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 밖으로 나갔다” (p. 222)

“칭기즈칸은 부족들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반항의 움직임을 마지막으로 평정하여 지금의 외 몽고에 해당하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p. 227)

“그러나 칭기즈칸은 뛰어난 무인임과 동시에 또 투철한 정치가였기에 이미 동맹국과 손을 잡을 수 있도록 교섭을 펴놓았던 것이다” (p. 232)

“하늘은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 (p. 237)

“이렇게 해서 세계의 정복자는 동포의 적에게 맹타를 가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희생한 동지의 아들에게는 친아버지와 같이 따뜻한 정을 쏟았다” (p. 239)

“이 같은 작전에서도 칭기즈칸의 성격의 일단을 볼 수 있다. 그의 건전한 평형감각은 언제나 가능과 불가능을 분별해서 그때 그때의 실력에 맞춰 계획을 추진했다” (p. 244)

“칭기즈칸도 같은 일을 시키기 위해 타타통가를 채용해서 그날부터 새로운 몽고 제국의 공문서는 위구르 인이 사용하는 터키 어로 기록되었다. 그뿐 아니었다. 칭기즈칸은 일생을 문맹으로 그쳤지만 네 아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라도 위구르 문자를 배우게 했다. 타타통가 외에도 케레이트에서 태어나 위구르의 교양 혜택을 받은 칭카이라고 하는 문관도 칭기즈칸 정부의 사법서 창립에 참여하여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한 바가 있다”
(p. 252)

“칭기즈칸은 자존심이 꺾일 때도 있었다. 제왕이라는 지체 높은 그였지만 전혀 문맹자였으니까…… 그러나 그가 위구르 문화를 알뜰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유목민에게 끼친 위광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p. 253)

“너희들은 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 어머니이신 대지는 넓고 하천도 얼마든지 있다. 나는 제국을 나눠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정부를 가지고 또 각기 백성을 다스리며 따로따로 목축지를 가지도록 해주마” (p. 268)

“칭기즈칸은 살아있는 것이라면 벌레까지도 모두 죽여 없애라고 포고했다. 그리고 포로는 하나도 만들지 말 것,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까지 없애버릴 것, 전리품은 필요 없다. 모든 것을 깡그리 때려부술 것, 이상과 같은 살육 작업을 마친 다음에는 어떠한 생물도 살지 않는 이 땅을 저주 받은 도시라고 이름 지을 것” (p. 301)

“<아라비안 나이트>의 도시가 줄지어 있는 고장, 아라비아 즉 페르시아의 문화의 꽃, 그 옛날 오리엔트의 경이…… 그 모든 것은 유목민과 공모하는 초원지대의 건조에 모두 삼켜지고 말았다” (p. 309)

“칭기즈칸은 후에 페르시아의 역사가가 이름 붙였듯이 이미 세계의 정복자로서 앞으로는 하늘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비법을 정복하는 것만이 남겨져 있었다” (p. 313)

“생명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한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불로장생이라는 선약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칭기즈칸은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다. 그가 일부러 먼 길의 중국 선인을 불러들인 것은 영구히 죽음을 면해볼까 해서 도교에 능통한 사람이 비법을 분간한다는 약을 어떻게 해서라도 손에 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p. 320)

“사내로 태어난 무상의 즐거움은 적의 패거리를 때려부수고 그 뒤를 쫓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빼앗고, 그들과 친한 자들이 눈물로 얼굴을 적시는 광경을 보고, 그들의 말을 빼앗아 타고, 그들의 딸과 아내를 안아보는 일이다” (p. 327)

“아이가 처음으로 사냥에 나갈 때에는 그 가운데손가락을 고기와 기름으로 문지르는 것이 몽고인의 풍습이었다” (p. 328)

“부르데는 영리한 여자로, 남편의 행장에 어떠한 일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자신의 뜻을 전했다. ‘강가나 갈대로 뒤덮인 호수에는 기러기나 백조가 많이 모여듭니다. 주군께서는 소원대로 그것을 쏘아 잡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젊은 처녀와 아내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마음에 내키시는대로 복된 여자를 선택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 아내를 얻는 일도, 길들이지 못한 말에다 안장을 채우는 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칭기즈칸도 마음을 놓고 아내의 오루도(왕후의 거처지)로 돌아갔다” (p. 329)

“그와 같은 이탈리아의 식민 도시를 짓밟아놓은 사실은 어쨌든 몽고인이 라틴 인의 세계에 가한 유일한 적대행위였다” (p. 336)

“9는 몽고인의 성스러운 수” (p. 341)

“칭기즈칸은 무엇보다도 이해력이 풍부한 건전한 상식가이다. 그러한 그가 병사들의 저지르는 잔혹한 행위를 내버려두는 것은 당시 몽고인의 환경으로 봐서 유목민 생활이 아닌 다른 형태의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오직 싸우는 것밖에 모르며, 정착민의 토지는 약탈과 학살의 대상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p. 352)

“칭기즈칸은 꿈의 계시를 받고 두 아들 오고타이와 툴루이를 불러들였다. 그는 막사에 있던 많은 무장에게 잠깐 밖으로 나가달라고 하고 가장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만 마지막 주의를 주었다. ‘너희 두 사람은 듣거라. 나도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이 보살펴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중앙에서 한쪽 끝까지 가려면 1년은 걸릴 제국을 정복해놓았다. 그러한 제국을 잃지 않으려면 너희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야 한다. 적에게는 협력해서 맞서고, 충성된 신하를 많이 두기 위해서도 힘을 모아라. 너희들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임금 자리에 오르면 된다. 오고타이가 나의 후계자다.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이 후계자 책봉은 소중히 생각하고, 또 여기에 없는 차가타이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해라” (p. 358)

“정복자가 임종에 즈음하여 쓸쓸한 생각을 전했다는 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 같다. ‘내 자손은 금빛 찬란한 옷을 입을 것이리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뛰어난 군마를 타며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여자들을 팔에 껴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누구의 덕택인 줄도 모르면서……’ 칭기즈칸은 1227년 8월 18일, 간쑤성 동쪽, 웨이수이 북쪽의 칭수이 근처에서 병중에 잠깐 동안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온 산속에서 그 생애를 닫았다. 겨우 60세가 되던 때였다”
(p. 360)


<내가 저자라면>

일반인 독자를 대상으로 쓰여진 이 책은 칭기즈칸과 그의 시대를 가장 잘 부각시킨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 인용된 자료만 해도 몽고자료, 중국자료, 페르시아 자료 이렇게 세 가지로 비록 동시대의 자료들은 아니지만 각기 몽고인의 정복과 관련된 기록들이라고 한다. 기존의 저술의 잘못된 점과 부족한 점을 수정, 보완하면서 본질적인 부분만 전하려고 노력한 그루세의 도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알프레드 드 비니의 싯구를 인용해 본다.

“침묵의 대지가 언제까지 가로놓여 있을지”

그루세의 노력으로 분명 침묵의 대지는 더 이상 미지의 세계는 아닌듯싶다.
1944년도에 쓰여진 이 책은 1부에서 칭기즈칸의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2부 세계의 정복자인 칭기즈칸의 생애와 그의 업적들로 이루어진 독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책이다. 어느 프랑스 온라인 도서 평에 의하면, 그루세의 ‘칭기즈칸’은 적절한 대화체를 포함해 서술하여 마치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고 극찬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제패한 무력의 정복자, 야만인에 가까운 칭기즈칸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을 벗겨주었다는 데 이 책의 의의가 한층 더 쌓였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그의 지도자로서의 리더십과 야심, 그리고 영웅적인 모습 그 이면에는 그를 도왔던 수많은 충신들이 있었으며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칭기즈칸과 대면케 해주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잃고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불운한 일을 겪어야만 했던 어린 시절과, 그의 정복 기간 동안 견뎌내야 했던 내면의 고뇌와 갈등들을 보며 결국 그도 사람이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지난 달 읽었던 <가자! 아메리카로> 가 불현듯 떠올랐다.

왜일까? 아마도 거친 황야를 개척해야만 하는 험한 환경 속에서 일구어진 미국이라는 땅과 수 세기 전 황량한 초원지대를 무대로 유목 생활의 한계를 딛고 번창했던 몽고가 사뭇 비슷하기 때문은 아닐까. 수 세기 전에는 영토의 확장이 지배의 수단이었다면, 오늘날 21세기는 글로벌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문화의 확장이 지배의 수단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남는다면 그것은 자료의 부족함이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여전히 자료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루세가 크게 호령할지도 모르지만, 칭기즈칸의 죽음과 관련된 부분이 아직도 발라먹을 살이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루세보다는 문맹이었던 칭기즈칸에게 남는 아쉬움일지도. 그가 이순신처럼 일기라도 써서 후세에게 그의 생각을 길이 남겼더라면 하는 아쉬움. 세계를 정복해 놓고 그것을 누리지 못한 채 다 버리고 가야 했던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많이 궁금하다. 그리고 오래 전에 번역된 책이라 그런지 오타가 무수히 많았던 점이 조금은 거슬렸다.

8월 달에 계획되어 있는 몽고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더욱 관심을 갖고 읽었던 <칭기즈칸> 그의 충신이 그의 말을 빌려 타면서 말에게 ‘칭기즈칸의 애무’를 해줬더니 그 말이 쏜살같이 달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나도 이번 여행에서 칭기즈칸이 호흡했던 같은 하늘 아래에서 말을 달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에 흠뻑 젖어 있다.
IP *.6.5.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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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7.02 12:56:24 *.249.167.156
원서가 같다 해도 번역자에 따라 글의 느낌이 참 달라지는구나. 인용문을 보니 전혀 다른 책 같으네..

“우리들은 동양을 배움으로써 서양을 보다 잘 알 수 있을 것이요. 서양을 배움으로써 동양을 보다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는 오직 하나다”

르네 그루쎄의 한 마디,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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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07.03 23:12:26 *.6.5.241
그 인용문... <칭기즈칸> 해설에 나와 있는 부분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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