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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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3일 05시 26분 등록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기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빅터 프랑켈 -


1. 저자에 대하여

변신 사부의 사람 사랑
* 변화란 불행한자의 행복 찾기?
구본형! 그는 이 시대 변화경영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으며, 마치 인생의 숨겨진 새로운 길 찾기 연구가라도 되듯이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다. 특히 중년의 아름다운 인생의 길사랑 안내자라 할 수 있으리만큼, 그 스스로가 체험하고 개척하여 터득한 새로운 인생길에 대한 강한 탐색과 애정의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그가 중년의 나이 마흔 셋에 이르러 다시 찾은 새로운 그만의 인생길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우리를 향해 돕고자 하는 내용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아니겠는가. p198

* 사람이 전부?
‘사람에게서 구하라’ 이것이 지식사회를 맞은 현대 경영학의 가장 중요한 이슈이며 숙제일 것이다. (사람에게서 구하라 p122)

변화란 낡고 오래되어 자연스러움의 흐름을 막는 구습과 악폐를 제거하여 물길을 뚫어 주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을 잃으면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변화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니 사람을 잃고 이념만 남게 만든다면 결국 잘못된 것이다. (사람에게서 구하라 p177)

인간의 진보는 ‘사고의 혁명(thought revolution)’에 의해 이루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에 대한 생각들’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날려 보내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아주 특별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탄생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p153

1) 강한 유혹,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혁명가

살고 싶은 자, 스스로에게 분노하는 자,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은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아들답게 역사학을 전공하면서도 혁명사에 남달리 관심이 많았으며, 20년 동안 IBM에 근무하면서 전략적 변화경영에 관한 업무를 오래 다루었는데, 이 책에서도 소개 되었던 바대로 그것은 저자가 원하고 오래 전문가적 위치를 고수하여 이루어낸 성과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기질과 재능 숙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설립한 변화경영연구소를 날로 신나고 즐거운 보다 나은 새로운 삶의 창조 역할의 장으로서 유용하게 활용해 나가고 있다.

그가 연구원을 뽑을 때에도 이 책의 내용처럼 이런 지원자들을 받으며 스스로가 모색한 사람사랑의 실천적 삶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 자신과 세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
* 지금의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는 사람
* 오늘 내 개인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서로가 서로에게 훌륭한 스승이며, 믿을 수 있는 파트너며,
창조적 경쟁자인 관계를 통해 더불어 성장한다.”

2) 변신은 최고지만 춤 못 추는 남자의 매일이 춤추듯 즐거운 하루 또 하루!!!

댁에서는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흠이라고는 별로 찾을 것이 없을 것 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도 없는 것이 매일 알아서 돌아가시는데(?), 무슨 수로 미워할 수가 있겠는가. 그 대단한 절실함으로 완전히 주위를 전멸시키고야 말지 않겠는가. 다 잘하시는 것 같은데 춤은 못 추시는지 지난 꿈벗 모임에서는 약간 어색하였다. 혹시 부르스에는 능하실지 모를 일이다.^^

3) 가정적인 그리고 너무나 인간적인 북한산 자락의 꿈돌이!!!

스스로의 내면을 잘 다스리는 가장으로서 ‘삶의 방’ -기도의 방, 면벽의 방 하나 가지고 싶다고 말하는 소박한 그러나 꼭 필요한 꿈을 꾸는 구체적 실천가요, 철저한 자기 관리적 전략가이다. 또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소년 같은 유쾌함으로 젊은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신다.

4) 부지깽이님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고 강박관념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회의 때문이 아니다. 다만 훌륭한 상상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모르기 때문에 그 일을 지금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하는 일을 놓치는 것이다. p186



2. 내 가슴속에 들어온 글귀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밖에 없던 세상에 나의 이야기(me-story)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나의 역사, 나의 문명이 존재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p4

이 책에서 나는 몇 가지 사소한 실험과 반란을 시도했다. 반란이란 성공한 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p5

평범한 사람들의 ‘밑으로부터의 이야기’, 이것이 위대한 인물과 힘 있는 자들의 역사와 함께 또 다른 역사의 시선이 되어야 한다.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p6

만일 20대나 30대부터 기록할 수 있었다면 훨씬 젊은 시절에 나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 10년 후의 세계를 예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도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이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Me-story Project)'가 절실한 이유다. p7

나는 서로를 밧줄처럼 엮어줌으로써 굴비처럼 꿰어놓는 질서정연한 상징성을 싫어한다. 규칙이 생기면 즐거움은 줄어든다. 글쓰기도 마가지다. 멋대로 하는 재미와 기쁨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새처럼 가볍게 변덕을 부리며 쓰는 것 자체를 즐겼다. 불필요한 규제가 없어야 사업하기 쉽듯이, 형식이 가벼워야 글쓰기도 즐겁다. 사업을 하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규칙과 표준이 창의성과 예술성을 말살’한다. 어떤 일이든 그것을 이끄는 정신적 물결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잃으면 배를 띄울 수도 춤을 출 수도 없다. p10

프롤로그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 니체

써니: 6월 세렌디피티 꿈 벗 모임에서 사부께서 덜렁덜렁 말도 안 되는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그랬다. 사부는 흥겨운 가락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고 싶어 했다. 그 스스로가 흥에 겨워 그동안 잘 춰보지 않아 약간은 어색한 이름하여 ‘덜컹이 춤’을 추고 있었다. 당신의 내면에서 육체로 하여금 덩실덩실 춤을 춰도 좋다고 한 것 같다. 그 자리에 아름답게 모인 그 사람들을 보면서 ‘여보게 어화둥둥 덩실덩실 마음껏 흥에 겨워 춤을 춰 보시게’ 하는 것 같았다. 그 춤이 어찌나 귀엽고 재미났는지 아마 사부 자신은 모르실 것이다. ㅋㅋ

개인적으로 내 마음에 소라가 참석하지 않음이 그토록 아쉬울 수가 없었다. 저기에서 단 몇 스텝만 배우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그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새로운 ‘덜렁이 춤’이 완성될 수 있었으리라. 못내 아쉬웠다. 언제 기회가 되면 사부의 저 흥을 끌어내 어울림의 한마당에 흥겨운 좌판을 크게 한바탕 버릴 일이다.

시간이 다 되어 그 많던 모래알들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촛농이 숨을 다할 때 ..... 이때 인생을 돌아본들 무엇을 어찌 하겠는가! 후회 속에서 긴 한숨을 지어본들 갈 길을 재촉 받을 뿐이다.

써니: 변.경. 연구원에 지망하면서 무척 갈등을 했었다. 알량꼴량하게나마 홀로서기 이후 가장 믿음직하게 나를 지탱해준 일을 접고 새로운 또 다른 일 - 마흔 중반의 나이로 임용시험에 도전하느냐-아니면 변.경. 연구원을 거쳐 무엇이든 내 일을 시작해 보는 꿈을 꿔볼 것이냐를 두고 고심 또 고심 했다. 뭐가 그리 생각할 것이 많은지, 내가 생각에도 한심하기 짝이 없게 스리 주저하고 망설이며 맴돌고만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때, 급기야 내린 결론이 20년 쯤 후,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능동적인 삶을, 그것도 직장생활로 다 살아낸 후, 더 이상 고용이라는 틀의 아무대서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 나는 마치 개선장군이나 혹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그때서야 무언가를 하겠다고 달려들겠다는 것이 한편으로 가장 최선의 안정감을 준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을까 많은 생각을 하며 주판알을 튕겼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현실적인 아니, 가장 믿음직하고 옳은 대안은 그 길에 있다고 조언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변.경의 사부님과 초아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 역시도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비록 내가 60이후에 지금보다 더 안정되고 나은 기반 위에서 놀이 겸 글을 쓰고 책을 내게 된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고작 무덤을 향해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에도 또 많은 갈등과 다짐, 또한 용기 따위가 필요했다. 알지만 쉽게 행하며 살지 못하는 이유가 이와 같으리라. 그때 그 심정이 이 대목에 이르니 불현듯 스친다. 그래, 내 마음도 꼭 이와 같았다. 지금의 선택은 잘한 일일 것이다.

한 곳에서 햇빛이 사라질 때, 나는 아침이 시작되는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새로운 날을 다시 시작하며 후회가 있으면 고칠 것이고, 아쉬움이 있으면 채울 것이고,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볼 것이다. p11

써니: 가능한 한 오래 버티고 싶었던 직장에서 물러나 나는 또 다른 무슨 선택, 그리고 가장 최선의 삶을 취하고 싶었다. 이제라도 판을 뒤집어 없고 내가 적어도 한 번은 꿈꾸었고 희망해 왔던, 지금은 흔적조차 아득한 기억을 더듬어 소녀처럼 청년처럼 때로는 싸움터의 장군처럼 삶을 정면으로 맞붙어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그 막연함이 주는 기대와 내 자신에게 조차 일목요연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 불확실성에 발목이 붙들리며 한참을 서성이고 헤매기도 했었다.

속물적인 내가 그 모든 허망한 것들의 집착을 떠나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아직 겁이 나는 나는, 그래서 울면서 걱정하며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겨놓게 되었다. 긴가민가를 수없이 의심하고 반복하면서........ 그리고 나는 마침내 연구원을 계기로 내 꿈을 가져보기에 이른다. 나 역시 후회가 있으면 고칠 것이고, 아쉬움이 있으면 채울 것이며,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보겠노라고 다짐을 한다.

나는 모든 것을 털어내되 그 이야기에 책임지지 않는 방법, 즉 화자와 이야기를 분리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의 도움을 받았다. 그것이 소설이다.

이 책은 놀이며 유희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고 욕망에 대한 절제다. 못 가본 삶에 대한 질투다. 그동안 배운 학습의 노트며, 읽었던 책들의 주석이다. 자전적 소설이고, 소설적 자전이다. 지나간 삶에 대한 파괴고, 앞으로 살 삶에 대한 창조다. 나의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보려는 실험이다. p12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과거가 날 만들었으니, 과거를 버리고 벗어나는 것이 또한 내 미래의 과제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였다.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p13

써니: 내 삶의 작은 혁명을 위하여 나는 날마다 다짐해야 했다. 마음을 옮겨 적어놓은 시를 여기에 실어보겠다.

사랑하는 미친 여자에게 - 2007년 6월

당신
처음 보았을 때

그저 피식 고개를 돌렸더랬지.

잠시
하늘 올려다보며
눈부시게 푸른 그 사이에 어울린 하얀 구름 떼...
왜 어쩌다가 미쳤는가를
알지 못하여...

그저
미친 여자겠거니 그러나 다르게
네 속을 드려다 보기 위하여
창자를 끄집어 나를 토해야 했지.

오장 육부가
상처를 얽어매고 지들끼리 엉켜서
썩어가고 있었다는 걸
그때
난 처음 알았는지도 몰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정화수 눈물
날이 선 메스는
내 손으로 갈아서 떼어내야 하는 대수술

우리는 그것을 변혁이라 한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설익은 논조로
푸념과 나동그라짐을 교차하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또 다시
피가 된 눈물과 돌덩이가 되어버린 사랑을
어떻게 바스러뜨리지 않고 풀어 갈까.

부러진 다리를 깁스하다보면
더 많은 재활의 시간이 필요하듯
고름을 짜내고 잘못 붙어버린 다리를
다시 분질러 뼈를 맞춘다.

살기위해 죽어야 했던 목숨처럼
하루살이처럼
죽고 또 죽으며
매일 다시 태어나는 너를
보았다. 나는

1장 지난 10년
‘불행한 시기에 철학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철학은 오히려 행복할 때, 용감하고 성공적인 장년기의 열렬한 명랑함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써니: 맑은 정신과 바른 태도와 진취적 의욕이 살아 넘실거릴 때, 아무런 속박이나 구애도 없이 오직 가능성으로 가득한 순결한 꿈을 꿀 수 있을 때, 푸른 가을하늘과 속삭일 수 있을 때, 진정되고 싶은 내가 펄펄 살아있을 때, 긍정적 의도와 적극적 사고로 철학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리라.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오르고, 온갖 양념과 야채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절정을 살짝 지나치기 시작한 지점이다. 마흔은 한 움큼 잡히는 옆구리 살에서 시작한다. 술 취한 다음날 아침이 괴로워지고 숙취가 길어지면 마흔도 익어간다.

모든 것의 궤멸은 늘 내부로부터 온다. p18

내 마음을 흔들고 불안하게 하고 허무하게 하는 감정들이 있었다. 뜬금없는 과거의 진상들로 마음이 분열되다 어떤 장면에 그때의 감상이 되살아난다. 나는 느닷없이 잊었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혹은 앞이 보이지 않는 낯선 길에서 길을 잃고 망연히 서있기도 한다. 그러나 불현듯 모자란 잠이 마음에 걸려 다시 잠들려 하지만 날이 푸르게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느새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된다. 묵직한 몸과 휑한 머리로 자신 없는 하루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대해진 육체와 달리 정신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감지한다. 내게 마흔은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p19

써니: 사부님처럼 생을 충분히 잘 살아온 마흔도 정말 이러하였을까 믿기지가 않는다. 나는 정말 그러하였다. 이와도 같이. 아니, 더 아프고 절실하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목에서부터 어깨로 굵고 검은 근육들이 뻣뻣하게 굳는 듯하다. 그리고 심장은 가냘픈 흐느낌처럼 나약해진다. 머리가 아프고 무거워지며 둔해진다. 잠들려는 집착이 더 잘 수 없게 만들었다. p19

10년을 단위로 쓰여진 ‘마음껏 살아본’ 나에 대한 소설과 개인사가 기록될 것이다. 10년 동안 내가 나를 재료로 만들어보려 했고 부숴버렸고 다시 만들어낸 나에 대한 대하드라마 ....... 이 구상은 순전히 불면증 속에서 찾아낸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변화의 기술을 나에게 들이댄 변화경영 전문가의 그림으로 이어졌다. 지식은 지식에 적용됨으로써 증식된다. 지식을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체험한다. p22

써니: 나는 아직 아무것도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따금씩 이 즐거움과 흥에 대해 의심을 하곤 한다. ‘마음껏 살아본’ 아, 너무 멋있는 말이다. 나도 이렇게 살아볼 수 있을까.
나를 재료로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어내는 나에 대한 대하드라마. 나는 아직 단 하나밖에는 생각해 낸 것이 없다. 우선 그것 오직 하나이다. 책. 나는 이 과정을 마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매년 수료하고 매년 졸업 하고 싶다. 4기, 5기 계속해서 연구원을 따라 책을 읽고 쓰고 매년 선배들과 동료들, 또한 후배들과 더불어 졸업식에 참여하고 싶다. 나도 나를 기꺼이 다 살아낸 ‘마음껏 살아본’ 삶의 흔적을 매년 확인하고 싶다.

우선은 딱 하나, 오직 하나 책을 내고 싶다. 이것은 새로운 사랑이요, 새로 하는 임신이다. 누군가의 페니스가 나의 질을 삽입해 들어오는 수동적인 성행위로는 이 임신에 이를 수 없다. 아니 가능하더라도 사생아나, 미숙아를 낳아야 할 것이다. 알면서 그런 아이를 낳아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다. 독자가 많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식이어야 한다.
어떤 사랑? 쉼 없는 자가 수정을 통해서 또 하나의 내가 탄생하는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그런 체험을 해내고 싶다.

나는 내 스승이 자신의 장기에 어떻게 자궁을 만들고 어떤 사랑을 통해 자식을 잉태했는지를 알고 싶다. 그 비밀의 정원을 낱낱이 파헤쳐 그가 만들어낸 찬란한 혹 주머니를 찾아내고 싶다. 그 영롱함의 비밀, 그 까만 날들의 어둔 고뇌와 맑은 새소리와 시원한 바람들을 밝혀내고 싶다. 하여 마침내 세상에 한 줄기 빛으로 당당히 서기까지의 불면의 밤들을 나도 같이 하얗게 꼿꼿이 앉아 밤새도록 읽고 쓰며 지새고 싶다. 그런 사랑을 체험하고 싶다.

유혹의 나이 마흔
40대가 천천히 지나가면 청춘도 지나간다. 서서히 육체의 쇠락이 팽팽한 낚싯줄처럼 감지되고, 은은한 불안이 검은 동굴처럼 다가오면, 여자와 불처럼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인생을 드라마처럼 전환시키고 싶어 하고, 마음을 누르는 이 초라한 공허 속에 긴장과 갈등, 그리고 비극적 사랑을 담고 싶어 한다. ≪설국≫의 주인공처럼 눈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불행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마지막으로 소설과 영화처럼 사랑하고 싶어 한다. 50대가 되기 전에, 노인의 모든 특성이 나타나는 그 끔찍한 나이가 오기 전에, 아직 젊음이 늦여름처럼 무더운 이 40대에 마지막 폭염 같은 사랑으로 성년의 절정을 매듭짓고 싶어 한다.

중년의 금지된 사랑은 평범한 사람들조차 황홀하게 극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떨쳐버리기 어려운 유혹이다. ‘장미여관’은 만만한 것 하나 없는 현실 속에서 평범한 사랑들도 별 노력 없이 즐겁게 빠져들 수 있는 드라마의 현장이다. 성이 사랑을 대신하는 침대만큼 쉽게 흥분하고 값싼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p23

흔들릴 때마다 한잔
감 태 준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접시 위에 차례로 놓이는 날개를 씹으며,
꾼 옆에도 꿈이 판 없이 떠도는 마음에 또 한잔,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그어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수 없이, 다만 다 같이 풀리는 기쁨,
멀리 뒷산에는 문득 나무들이 손 쳐들고 일어서서 단풍을 털고 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소설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그녀와 함께 떠나자. 그녀와 함께 도망치자. 다시는 유럽으로 돌아오지 말고 그녀와 소박하게 살자. 태양이 있는 곳, 과일이 익는 곳에서 그녀의 육체와 더불어 살자. 다른 어느 것과도 연관을 맺지 말고 지나간 날의 모든 것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입 속에, 그녀의 젖가슴에 묻혀 살자.’ p24

남자는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가축’이다. 그러나 반밖에 길들여지지 않아 늘 울타리 밖으로 튀어나가고 싶어 한다. 자유는 빛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확실한 것, 굳건히 서 있는 것들의 질서 안에서 자유는 끝나고 만다. 절실하게 바라지만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한다. ‘이내 스스로를 함부로 던져 망가뜨리고’ 만다. 마르셸 프루스트는 이것을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모든 만족을 얻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함께 그녀를 배신한다.’라고 표현한다. p25

써니: 이 표현이 재미있고도 웃기다. 미친놈들.
그럼 바람난 여자들도 마찬가지일까? 그건 아닌 것 같지?
여자는 사랑을 구걸하나? 대게의 경우 일단 사랑한다고 혹은 마음이 움직여야 몸이 움직인다고 하면, 가장 맛있는 sex를 원하는 것일까 위안을 원하는 것일까. 위안을 얻으면 맛있는 사랑까지 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뭐?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모은 만족을 얻을 수 없어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함께 노닥거리며 그녀를 배신한다.’ 고? 내가 말이지, 쓸 데 없는 것에 비중을 두고 페미니스트적 발상을 한다고 비아냥 받았지만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너희 남자들이란 족속들의 그 말도 안 되는 언어도단과 유치찬란한 어리광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니들이 똥차냐? 도대체가 그게 무슨 이유가 되는 거냐고? 정말이지 그러고 싶니?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침대를 더럽히면서, 그게 좋아? 설마, 그 순간에도 이렇게 이성적으로 말하진 않았을 것 아니냐고? 온갖 역겨운 목소리로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혓바닥을 뱀처럼 굴려가며, 얼마나 애원하고 절절매며 꿇었을 네 놈들의 무릎팎이 안 봐도 뻔하다지.

모파상은 ‘진실한 사랑은 영혼이 육체를 감싸 안는다.’라고 표현했다.

써니: 이 말에 동의한다. 나는 오래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왔다. 아주 어린 아이일 때부터, 나는 성이 나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성을 터부시 하는 교육을 받고 다른 사람보다 많이 혹은 예민하게 받아드리는 결과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언젠가 중년의 동년배가 내게 물었다. ‘헤어진 지 10년이나 됐는데 애인이 없어? 나는 아직 참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 너는 그렇지 않아?’ 하고 제법 구체적으로 물어왔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내 경우야 어쩔 수 없는 경우이기도 하지만, 나는 삶에서 sex 가 중요하다거나 필수조건이 아니다. 그건 제대로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누군가 비난 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보다는 공감이 되고, 설령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없다고 해도 얼마든지 성행위를 능가하는, 교감 혹은 나눔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왔고 그러한 것 같다. 플라토닉 러브인지 플라스틱 러브인지....... . 나는 sex 잘하는 남자보다 인간적이고 진실한 남자가 더 좋다. 여자를 가볍게 성적 유희로 생각하는 그 어떤 종류의 부도덕한 치한들도 나는 다 때려주고 싶다.

인생은 결국 짧은 꿈이었다는 것을 모든 죽어가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p26

써니: 홀로서기 이후 인생의 많은 모순을 등에 지고서 80대 노인 한 분을 치료하면서 질문을 했었다. 무척이나 깐깐하고 욕심도 많고 배움도 있는 할머니였다. ‘할머니 인생이란 어떤 것이에요?’ 하고 내가 여쭈었다. 할머니께서 아주 단호하고 짧게 말씀하셨다. “一場春夢(일장춘몽)이야.” 그날 이후 그 말씀이 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인생! 그 덧없음이....... .

현실은 늘 죽음 앞에서 무력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오로지 삶만이 현실의 위력에 눌려 죽어지낸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그를 동정하면서 비웃었던 우월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비천함이었던가?
공자에게 불혹의 나이였던 것이 2,500년이 지나 유혹의 나이가 되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속절없이 질 수는 없기 때문에....... . 그러나 마흔조차 흘러간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흔 살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점이다.

써니: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그리고 성취와 행복에게.
아무 성취할 것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잡담에 능하다. 자기가 가진 것을 기준으로 잰다. 얻지 못한 것을 위해 남이 가진 것을 깎아 내린다. 전문인이 아니면서 전문인인척 하고 개뿔도 없으면서 있는 척 너스레를 떨며, 둘이 하나를 비하한다. 그래서 팔이 없는 사람은 그들 속에서는 영원히 병신이며, 짝이 없는 사랑 역시 불구자로 취급당한다. 마치 천년만년 선택적으로 모든 면에서 뛰어나게 잘 살 것처럼 겁 없이 지껄이고 비아냥댄다. 호호 낄낄 으르렁 깔깔.

절정을 지난 꽃의 아름다움
나는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곧잘 낙관적인 정신적 전환에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p31

써니: 철학은 건강할 때 세워 비관이 내 삶에 비바람과 먹구름 폭풍우를 휘몰아칠 때, 고요한 자신과 만나며 철학과 인생과 삶을 이야기할 일이다.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지다
과거가 사라진 상태에서 미래조차 만들어낼 수 없다면 갈 곳이 없다. 이것이 어쩌면 내 불면의 원인이었는지 모른다. p33

써니: 말짱 우스꽝스러운 사랑이란 열병을 치를 때, 그리고 그 치욕스런 관계를 청산하고 결별을 해야 할 때조차 나는 죽음을 생각했었다. 내 순결하고 화사한 젊은 꿈이 한 남자의 빗겨간 이성과 감정에 짓밟힐 때, 나는 분노했고 참을 수 없는 현실에 파르르 떨며 한웅큼의 재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역겨웠고 치사했고 굴욕적이었다.

2장 마흔 살
‘아직 밟아보지 못한 1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1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 -니체

‘미루나무가 서 있는 강 길을 걷는다. 강 건너 마을에 하나 둘 흔들리며 내걸리는 불빛들.
흔들리는 것들도 저렇게 반짝일 수 있구나. 그래 불빛, 흘러온 길들은 늘 그렇게 아득하다.
어제였던가. 그제였던가. 그토록 나는 저 강 건너의 불빛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왔던 것이구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흔들리며 손짓하는 그 나무들의 숲에 다가갔다.
숲을 건너기에는 내 몸은 너무 많은 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지나간 세상의 일을 떠올렸다.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들끓게 하였던 것들, 끝없는 벼랑으로 내몰고 갔던 것들, 신성과 욕망과 내달림과 쓰러짐과 그리움의 불면들.
굽이굽이 흘러온 길도 어느 한 굽이에서 끝난다. 폭포, 여기까지 흘러온 것들이 그 질긴 숨의 끈을 한꺼번에 탁 놓아버린다. 다시 네게 묻는다. 너도 이렇게 수직의 정신으로 내리꽂힐 수 있느냐.
내리꽂힌 그 삶이 깊은 물을 이루며 흐르므로, 고이지 않고 비워내므로 껴안을 수 있는 것이냐. 그리하여 거기 은빛 비늘의 물고기 떼, 비바람을 몰고 오던 구름과 시린 별과 달과 크고 작은 이끼들 산그늘마저 담아내는 것이냐.’

- 박남준, <나무, 폭포, 그리고 숲> 중에서

써니: 책을 읽다가 문득 기억 하나 스치고
내가 밀쳐낸 그 가슴팍에 기대어 울고 싶다.
폭포처럼, 굵은 비 장마 후 터지는 봇물처럼 펑펑 쏟아내고 싶다.
무엇이 이토록 안타까운 것인지 묻지 않는 너른 바다와
굳이 쏟아내지 않은 채 포말로 부서지는 기억들 사이에서
그저 곤히 쉬면서
잠시 살포시 잠들었다가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고 싶다. 내 꿈에게로

마흔에 관한 이야기들
마흔이 되었을 때, 내게는 나의 세계가 없었다. 내 삶은 줄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창조적 주체가 아니었다. 그저 짜여 진 일과 속에 놓여 있었을 뿐이었다. 직업을 통해 이루어야 할 내면적 발전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나는 이미 중년이 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아직 활력이 넘쳤지만, 인생 깊숙이 자리 잡은 피로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p40
지금 있는 곳의 위치를 알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우선 내가 있는 이곳을 객관화할 수 있는 지도 같은 것을 보고 싶었다. p41

이상과 비전으로 상징되는 젊음의 마법이 사라진 후에 다가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일만이 생산적인 것이고, 지루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탈출구다. 이리하여 일은 일상과 실제의 삶이 된다. p42

마흔 살이 되면 사람들은 밀려드는 피로감 때문에, 그리고 자신에 대한 다소의 실망감 때문에, 혹은 그동안의 실패의 전력 때문에, 그리고 꿈을 실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저만치 물러앉는다. 노력이란 얼마나 지루한 가시밭길인가! p44

써니: 이쯤에서 신이 내린 마흔 중반의 선물 하나 받고 싶다. 책을 쓸 수 있는 능력이다.
나의 중년을 대변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단서, 오직 하나의 염원, 그리고 나의 노년을 설계해줄 근거가 될 것이다. 빛나지 않아도 좋다. 멋지지 않아도 좋다. 내가 읽고 내 가슴에 온통 눈물과 벅참 그리고 기꺼움을 선사해 다오. 내 중년이 아쉽지 않도록.

어쩌면 마흔 살은 여성적인 특성의 수용이기도 하다. 그동안 자신을 움직였던 힘과 지위와 성취에 대한 경쟁심리를 옆으로 치워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대신 좀 더 감성적이 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여성적인 특성을 받아들인다.
마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외부를 변화시키는 것에 무력해진다. 그들은 자신을 믿는 대신 더 힘이 센 다른 사람과 제도의 힘에 의존하게 된다. 타인에게 의존함으로써 노예가 된다. p45

써니: 마흔이 되면 여자는 인생의 여정에서 싸움터에 나선 용맹한 장군이 된다. 내 안의 남성성이 철통같은 위엄과 포효咆哮하는 함성을 질러대는 것이다. 마흔의 여자는 일마다에서 개선장군이 된다. 세상의 별것 아닌 것들을 쓸어버리거나 무너뜨리기에 거침이 없어진다. 주변 사람들을 하나, 둘 단호하게 굴복시키게 된다. 마침내 간 큰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게는 그 이후로도 계속하여 죽 그 영광의 나날은 지속될 전망이다. 두 손으로 받치던 냉수는 더 이상 대령하지 않는다. 발로 툭툭 차가며 한 이불속 성전환의 굼뜬 여성을 깨우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어나 이 인간아, 해가 중천에 떴어. 못 일어나니?’

젊은이들의 창조성은 ‘발작적인 불꽃’ 같다. p47

써니: 내게도 질풍노도의 청년시절이 있었던가.
가수 이선희: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 날, 그 날이여~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 나, 다시 돌아갈래.~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땀’이란 말은 중년의 창조성에 대한 명언이다.
마흔 살 너머의 창조는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써니: 중년의 창조성은 새로운 피와 땀의 정직한 운동 같은 훈련의 결과이지, 결코 빛나는 지위나 사장되는 생각이 아니란 말씀.

지혜란 ‘숭고하고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삶을 위해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 p48

써니: 사부께서는 철학은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일상적 취향에 녹녹히 녹아들고 반영되는 실체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무슨 책이더라?

싸울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을 때 유머는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다. p49

써니: 내 친구 가운데 제대로 된 푼수가 하나 있다. 그녀를 푼수라고 하는 말이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만하면 살림도 잘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도 잘하는 그야말로 한마디로 요조숙녀요 현모양처이다. 그런데 그녀를 푼수끼가 있는 여자로 그의 집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그녀의 웃음 때문이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말하기가 곤란하거나 미안하거나 자신이 좀 억지를 부린 때에는 영락없이 그 어의가 없는 웃음을 웃어재끼는 통에,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너스레를 보면서 죄다 따라 웃는다. 아이들도 웃고 애들 아빠도 웃고 옆에 있는 우리도 같이 덩달아 웃고 마는 것이다.

그 웃음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능글능글 유머스러워서 곁에서 듣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나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생활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만 보면 싱글벙글 이다. 그녀는 화를 내면서도 웃으면서 화를 내기에 당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주위의 친구들을 따라 점집엘 갔단다. 그랬더니 그 점쟁이가 하는 말, “당신은 천하에 아무 문제가 없소, 그러니 복채나 듬뿍 내고 가시오.” 하더란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 거금을 다 털어주고 왔단다. 그녀의 여유 있는 웃음, 유머를 동반한 강짜, 이 얼마나 생활의 현명한 지혜로움과 해결 책 인가.

유머는 중년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엔돌핀이다. 그것은 스트래스와 비극을 완화시켜준다.

치료란 역경과 비극을 극복하는 것이다. 중년은 강력한 치유력을 요구한다.

융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이 쓰고 있던 사회적 가면, 즉 페르소나는 중년이 되면 붕괴한다. 그리고 내면을 향해 들어가도록 강요한다. 중년의 과제는 각 개인의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치료이며, 재생을 위한 내적인 힘이다. 대체로 이러한 갱생의 힘은 절망과 고통 속에 감추어져 있다. p50

써니: 인간은 자신에 대한 성찰보다는 외부의 힘에 이끌리고, 동화되어 살면서 소위 사회화라는 틀을 중요시하며 위안을 받으며 사는 것 같다. 특히 현대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며 미국식 비즈니스 교육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치중하게 만드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더 먼저 중시되고 생각해봐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며 치열한 성찰이다. 그러지 않고는 내면의 울림을 알아차리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중년은 각자가 어떤 모습의 삶을 살아왔건 간에 관계없이 제2의 탄생을 의미할 만하다고 본다. 누구든지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하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라는 그 적절한 마흔 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과 삶의 맥락을 잘 짚어 온 사람들은 그대로 다듬어나가면 될 것이고, 설령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남은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만한 여유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동적 교육과 이치에서 벗어나, 진실한 자신과의 한판 투쟁을 벌이기에 딱 좋은 나이가 마흔 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들의 인생을 어떻게 운전하고 무엇을 어떻게 항해 하고 싶은가를 절실하고 치열하게 살아볼 수 있는 나이, 마흔은 그래서 청춘보다 장렬하고 엄숙하다. 믿음직스럽고 의연하며 더한층 싱싱한 생명력이다.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의 시처럼 완숙을 향한 “서른여섯 내 누이 같은 국화꽃” 마흔 언저리... 아직, 40대는 그래서 언제나 희망적이다. 아직 경쾌하게 울다가 웃을 수 있다.

마흔이 되면 한계에 대한 자각이 젊은 시절의 끝없는 희망을 대신한다. 운명이 희망과 기대를 가리게 한다. 쉽게 절망하고 냉소적이 되기도 한다. 젊었을 때 사람들이 너무 희망적이었다면, 마흔 살이 되어서는 모든 믿음을 쉽게 버리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저 두 개의 시선, 자신을 바깥에서 보는 시선과 안에서 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쓰임을 받으면 애써 일하고, 버림을 받으면 스스로를 즐기면 된다. 부름을 받으면 신명을 다하는 것이고, 그들이 잊으면 일상을 즐기며 스스로 벌어 궁색하지 않게 먹고살면 되는 것이다. p51

써니: 나는 이 부분에 대한 윗글의 언급을 가정을 이끌기 위해 인생의 치열한 전투장에서 밀려나는 한낱 가장의 모습에 국한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지니고 산다. 나는 그 시기에 가정이 깨졌고 홀로서기를 선택해야 했다. 이것은 세상의 보편적 이치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고 개인의 책임 문제이며, 아직까지도 이 사회가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는 지엽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이 개인의 의사가 아니라 기업의 처분이기도 한 것이지만, 어쨌거나 그들도 결국에는 인간관계에서 시간차를 두고 쓰임의 한계에 버려지고 상황을 종료해야 하는 것은, 개인들의 결별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최후까지 못간 인간관계는 기업이나 개인이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오버한 이야기로 치부할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 성질의 절박함은 매 한가지라는 의미를 두며 윗글에서처럼 ‘그저 두 개의 시선을 가져야’ 하겠다고 마음 먹어본다. ‘쓰임을 받으면 애써 일하고, 버림을 받으면 스스로를 즐기면 된다.’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하지 못하고 나는 굉장히 심한 가책을 느껴왔었다. 더 잘난 사회의 일꾼이 되지 못하는 것과, 단 한사람에게 조차 이해와 그 어떤 최소한의 설득도 마련치 못한 내 삶의 비루함이 다르지 않고, 당시의 내 삶의 무게 앞에 나는 무자비하고 처절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제법 오랜 시간 길게 헤매었다.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대강의 출혈만 얽어맨 상태에서 안간힘과 복장이 터짐을 억누르며 신음하듯 살아갔다.

왜 그랬을까? 이중적 시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 아니면 모식의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싹쓸이식 획일의 사고방식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일부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타협이 전혀 불가능했을 무자비한 선택, 그것은 외로움과 고립을 낳은 선택이었다. 알고 있었다. 물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러나 좀 더 나를 객관화시키고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더 나은 삶을 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벌어진 사태에 쪼그려 숨을 죽이는 쭈그러짐이나 상황에 처박히는 것이 아닌, 보다 적극적인 길을 모색할 수 있었으리라.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내 인생이 소중하다는 것을 안으로만 기어들어가 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이고 능동적으로 내 삶의 길을 모색하고 더 나은 가치를 부여하며, 더 치열하게 찾고 한바탕 승부를 걸어보기에 아쉬움이 없었으리라.

아, 나는 결코 내 나이 마흔 언저리를 아무렇게나 보내고 싶지 않다. 무작정 소모적으로 살 수가 없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또한 지금이 아니고는 결코 피어날 수 없는 아직 남아있는 최고의 정열, 가장 정점의 적응과 부적응의 반목을 토대로 쌓아올리는 창조의 힘, 지금이 아니고는 결코 해내지 못할, 내 나이 마흔의 언저리의 아쉬움과 나자빠진 사랑, 나는 그 모두를 긁어내어 활화산처럼 태우고 싶다. 용암처럼 치솟고 싶다. 나의 마흔 언저리여, 아직 찬란한 40대여!

개혁은 마음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마흔 살의 문제는 결국 가슴과 영혼의 문제다. p51

그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파괴와 창조, 죽음과 재생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되며, 죽어야 살 수 있다. 이 치열한 반전을 사람들은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 것인가? p52

우리는 스스로 참여하는 자들이며 변신하는 자들이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부러움과 질시로 관람하는 관객이 아니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써니: 나도 진짜를 원한다. 나는 도마사제와 같다. 예수를 만져보지 않고 믿을 수 없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일치 하지 않는, 일체의 교만스런 기교적 영웅들을 나는 거부한다.
나는 내 안의 불일치를 몰아내고 싶다. 나의 파렴치한 허영과 가식을 다 쓸어 시퍼렇게 날이 선 메스로 잘라내고 싶다. 나는 좀 더 가벼워지고 싶다. 내 안의 모든 허물로부터, 죄의 속박으로부터, 또한 끝없는 욕망과 허무를 골라내고 싶다. 그리하여 최대한 가뿐하게 후련히 살다가 세상 끝 날에 홀연히 사라지고 싶다. 일체의 감정도 남기지 않고서....... .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나이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다. p53

그들은 위험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잃어도 좋은 푼돈만 투자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내가 도박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밖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익어가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획했다. 나는 비장했다. 나의 40대는 죽음과 친근해진 10년이었다. p54

써니: 그랬구나. 스승은 죽기를 무릅쓰고 기를 쓰고 자신의 인생에 뛰어들어 개척자가 되었구나. 혼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영국인이 되어 그 영토의 일부를 차지하기 위해 인디언들과 맞붙었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였구나. 피를 보았고 눈알을 부라렸고 두려움을 참았던 거구나.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가서 잠을 이루지 못했구나. 눈을 감아도 전쟁을 치루며, 피의 현장이 눈에 선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구나. 그러면서 하루하루 죽고 또 죽으며 살아났구나.

내 스승 구본형은 하루에도 수천 번 떼죽음을 당하는 무수한 하루살이 떼를 몰며 살았구나. 내 스승 구본형은 얼마나 많은 하루살이 떼들의 영혼과 넋의 실체이더냐. 매일매일 그들의 무덤 앞에서 장송곡을 울리고 한걸음 또 한걸음 나아갔던 거구나. 그렇게 하루를 몽땅 불사르고 미련과 후회 없이 하루살이들을 떠나보냈구나. 스승의 책은 무수한 하루살이 떼들의 장송곡이 이루어낸,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 수없는 하루살이 떼들의 넋의 결정체로구나. 매일 스스로를 걸고 스스로의 장례를 치르면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숱한 날들의 하루살이 떼로구나.

나는 문한소녀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치유하는 일기를 쓰고 나를 만들어 가는 하루하루를 계획하는 일지를 쓰며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교훈을 되새기고, 더불어 함께한 시간들의 의미와 그곳에서 내가 찾아낸 길들의 목록을 적어가고 싶다. 내가 인정하고 내가 돌이키며 나를 깨울 수 있는 글을 먼저 쓰고 싶다. 내 삶의 실체를 글에 반영하고 싶다.

‘내게 꼭 죽어야할 의리는 없다. 그러나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이 되었건만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죽는 이가 없다. 다만 그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 바쳐야할 목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푼돈 서푼짜리 인생이었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한 세상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p56

3장 직장생활

‘삶의 방식을 바꾸기 전에는 병이 낫지 않는다.’ - 니체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그들에게 내 과거는 초라한 것이었다. 나는 나보다 유능한 세일즈맨들 사이에서 주류가 아닌 작은 셋 길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은 두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그 부서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던 이유는 내가 붙잡은 길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p62

두 번째 이유는 설명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이유였다. 나는 혁명학을 전공하고 싶은 역사학도였다. 왜 혁명사를 전공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단어는 내게 감동을 주었고 전율을 주었다. 그 말처럼 매력적인 단어는 없었다. 왜 그렇게 그 단어가 연인처럼 다가왔을 까? 아마 가난 때문이 아니었을까? p63

써니: 피는 물보다 진하고 그 피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기로 사부의 부친께서는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알고 있다. 정치를 한 것과 다르다. 독립운동이야말로 혁명이 아닌가. 빼앗긴 국권을 되돌려 찾는 것은 여간한 어려움이 아니다. 하다못해 시장에서 내 돈 주고 산 물건도 바꾸는 것에 몇 번이고 주인의 허락을 조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물며 나라의 주권을 상실했었다. 내 나라 내 땅, 내 조국의 반환이었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고 죽기를 무릅쓰고 달려들어 되 찾아야하는 혁명, 바로 수천수만의 죽음과 땀과 피의 결정체로 이룰 수 있는 대반란의 치열하고 처절하며 장엄한 몸부림, 뼈를 에이는 대혁신이 아니던가. 그 피가 유유히 흐르기 때문에 결코 쉽게 살지 못하고, 손수 어려움을 취하고 외로움과 함께 나아가며 부적응자와 어우러져 살아가시는 것이리라. 부적응자들을 창조적 쓰임으로 만들기에 누구보다 앞장서면서.

에게 해에는 꽃과 바위만 있는 섬이 있다 한다. 다른 곳에서는 잠깐 피었다가 지고 말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꽃들이 그곳에서는 한 해에 두 번이나 크고 화려하게 만발한다고 한다. 옹색한 땅과 준엄한 바위가 오히려 개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결핍이 꽃을 아름다운 꿈 안으로 몰아넣어 준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p63

개혁과 혁신, 그것은 혁명이라는 단어의 현실적 대체용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IBM에서 가장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이 그 일이라는 것을 나는 뼛속부터 알고 있었다. p64

홀로그램의 세계 속에서
나는 성공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늘 변화의 현장에 있었고, 모든 변화 프로그램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실무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가운데 있었다. 나는 조직이 바뀌는 모습들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고, 저항과 벽들이 생겨나는 양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p65

나는 그 전환의 몸부림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경영혁신의 현장에서 차갑고 냉정한 눈으로 생사를 건 변환의 투쟁을 주시하고 있었다. p65

평생직장은 사망했고, 평생직업은 끝없는 학습으로만 가능한 움직이는 타깃이 되고 말았다. p66
그들은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이미 나는 그곳에 없었다. 나는 조직이 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67

써니: 나는 스승보다 더 많이 찾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 하는 것이구나. 그 1/100을 못 따라 하니 이 일을 어이 할꼬.

필요한 사람들
그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지금의 일을 싫어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싫은 일조차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p68

써니: 도독이 제발이 저려서 웃음이 나온다. 내가 그 실체였다. 나는 급기야 꿈마저도 잃어버렸고 지극히 현실의 고삐에 얽매어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다. 다만 현실을 연명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아주 극도의 빈약하고 옹색한, 현실주의자라기보다 차라리 고삐 채워져 이빨이고 손톱이고 다 주저앉아 주인의 하명만 바라는, 한 마리 늙다리 개에 불과했었다.

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보내지 않는다. 어려울 때일수록 잡아두고 싶은 사람이 이런 사람들이다. 이것이 ‘필요의 원칙’이다. p70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자신의 특별함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 자신만의 좋은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적절함의 특징은 하나다. 폐쇄회로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배타적 폐쇄성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열린 관계가 유지되도록 적과 동지 사이의 제3의 꼭지점을 찾아내어 그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누구의 사람’이라는 폐쇄적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한때 화려하게 권력에 줄을 대 급부상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처럼 빼내기 어려운 자리에 있다. 이것은 소극적이거나 내향적인 사람도 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장점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휴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익숙하다.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전문성이 자격증에서 오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식은 변하고 경험은 늘 다르게 적용된다. 자신의 소질을 이해하고 잠재력을 계발한다. 이들은 대체로 겸손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애정 없이는 자신을 불태울 수 없다. 어떤 분야든 자신을 불사르지 않고서는 핵심에 다가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단추를 끼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요한 사람들은 떠남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떠남으로써 남겨진 조직의 힘이 격감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놓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니체는 가장 위험한 조직원은 ‘그의 이탈로 조직 자체가 파괴되는 조직원’이라 불렀다. p71

써니: 이것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일방적인 경영의 한 측면이다. 경영은 언제나 새로운 인제를 향해 눈길을 돌린다. 영원히 머물러야할 인재란 없는 것이 아닐까. 기업이 나이를 먹는 만큼 세상은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선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업은 공로보다 더 싼값의 효율을 원한다. 세대교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같은 비용의 더 나은 가치와 신뢰의 구축을 관건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에는 함께 잘해보려는 노력 없이는 언젠가는 깨지고야 만다. 어느 쪽에서 먼저 청해오느냐가 아니라 누가 남을 것이냐가 최선의 목적이 된다. 누가 남는가는 대부분 기업의 선택이다. 그래서 늘 개인은 허무함을 느낀다.

이제 버려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디든지 새롭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해야한다. 다만 그 시기를 기업의 손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많은 생각들이 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잠식해 버린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내가 기여해온 만큼의 노력을 스스로가 인정하고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내가 언제 어디서라도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며 행복 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 어디에 소속해 있느냐가 아닐 것이다. 조직이 잡는다고 해서 조직형 인간으로 더 오래 남는 것이 과연 좋은가?
따라서 언제든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든 아니든 할 수 있는 정신상태와 의지와 기반을 닦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연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을 체계화 시켜나가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그러므로 하겠다는 의지와 그 기반을 보다 충실히 닦아 놓아야 한다. 그렇지 못했다면 더 치열하게 찾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돌연한 출발
혼자 떨어져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람들 속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휘날리는 사람들이 있다. p72

이 여행이 나만의 여행이 아니라 가족 모두를 데리고 떠나는 가족여행이라는 것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p74

써니: 대부분의 가장들이 이 부분에서 아마도 크게 공감하며 자신들의 넋두리를 해댈 것이다. 나는 짐은 또 다른 의욕이라는 것을 경험하였다. 마치 어렸을 적 엄마가 집을 비우고 동생을 맡기고 외출하여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 동안의 두려움 같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 혼자였다면 아마 친구 집으로 놀러 가거나 했을 테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깜깜한 밤을 어린 동생을 보살피며 기다려야하는 불안한 심정 말이다. 그러나 대게의 경우 누구든지 어린 동생을 잘 지키며 오래 참고 기다린다.

왜? 나를 믿고 맡긴 어머니의 명령에 앞서, 지금 현재 나를 의지하고 있는 동생의 애처로운 눈길에 희망을 주고 늠름하게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다. 아니 실제로 그러한 생각들이 절로 생성된다. 이것은 환경이 주는 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오래 참고 기다리고 싶은 의욕을 북돋울 수 있도록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보람과 의미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이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엄마가 빨리 돌아오기를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닐까.

늘 가정을 이끌어 가야하는 일에 버거운 가장들이나 미성숙한 가장들은 엎친 데 겹친 격이라고 다만 혹으로 치부하며 냉소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를 믿고 의지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생각하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초능력의 힘이 불끈불끈 솟아날 수 있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어떠한 상황도 잘 견디는 것이리라.

써니: 이 대목에서 어린아이들의 힘 있는 메시지 이 노래가 떠오른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엄마 힘내세요, 위가 있어요. 󰁡♯󰁓

나를 마케팅하다
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설득당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설득이란 언제나 스스로 이미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설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득의 제1법칙이다. 설득은 늘 미리 이루어진다. 미리 이루어진 설득, 무너진 자기방어를 유혹이라고 부른다.

모든 위대한 리더는 유혹에 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자신을 포장하든지, 크고 부드러운 젖가슴으로 지그시 눌러 이성을 질식시키든지, 위대한 사상을 통해 혼을 빼앗거나 달콤한 꿈속으로 사람들을 몰고 간다. 매력이 없는 리더란 없다.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유혹은 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로몬이다. p76

새로운 시작
변화 역시 경영될 수 있는 학문이며 과학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변화라는 단어와 혼용되었다. p78

전문가는 학위와 자격증에 의해 증면되지 않는다. 전문가는 과거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끊임없는 자기학습에 의해 날마다 새로워질 뿐이다.

경영 컨설팅 같은 지식산업은 사기와 진실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끝없이 학습하는 사람은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사기꾼들처럼 ‘달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배움을 멈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학위와 자격증은 과거의 영광의 흔적일 뿐이다. 미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확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물로 된 항아리 속에 물을 담으려는 발상이다. p79

써니: 나는 비교적 꽤 오래 병원의 직원생활을 해왔다. 그러면서 정말 희얀한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개중의 의사들은 그 권위의 책상만을 끼고 앉아 사인을 해대는 것으로 치료를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그리하여 그 질의 여하 즉, 어느 대학, 어느 병원경력에 관계없이 거의 획일적으로 하양 평준화적 치료나 겨우 할 수 있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었다. 하여 의원급 개원의의 거의 모두가 감기치료정도나 하기에 머무르는 작태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병명을 말 해주지 않는 의사들의 대부분이 자신도 모르는 처방을 해대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게다가 전혀 공부하지 않으며, 그 수입여하에 따라서 직원들만 달달 볶거나, 수없이 교체하는 무리들이 아직도 많다.

의사들이 본격적으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은 의약분업이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더 이상 자격증으로 어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깨어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하고 학습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만연해 있는 나쁜 습성들이 있다. 한때, 이상한 책, 부자 아빠 이야기가 그러한 사회 전반적 분위기를 이끈 적도 있다. 우선 자신들의 몫부터 정하고 떼어 놓는 것, 그로인해 직원들은 갈수록 오히려 더 저임금에 허덕여야 했다. 경영의 문제나 개선점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몫만 분명하게 챙겨 놓고 나머지를 직원에게 주려하니 직원들은 점점 더 심한 노동과 더 낮은 급료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꼴란 퇴직금을 떼어 먹는 곳들도 많다. 지금도 그러하다. 대기업의 연봉제를 왜곡하고 악용해서 써먹는 것이다. 참 안타깝고 기막힌 현실이다. 사기란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거나, 그를 믿고 찾아온 사람들을 기만하여 제 잇속만 챙기려 드는 처방전이나 공부하지 않는 일시적 감언이설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 자격증이나 가운의 값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래서 늘 긴장했다. 새로운 학문과 가설들은 날이 새기가 무섭게 빗발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선진국처럼 우리 업종도 단독개원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제대로 한번 운영해 보고 싶은 데 아직까지는 요원한 이야기다. 환갑 전에는 혹시 가능할라나? 벙어리 냉가슴으로 이제나 저제나 하며 동종의 업에 종사하는 우리들끼리 해보는 소리다.

미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바닷물 속에서 식수를 찾는 것과 같다. 온통 가능성의 물로 채워져 있지만, 아직 한 컵의 마실 물도 되지 못한다.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p80

이유도 없는 우연한 흐름이 곧잘 필연적 운명으로 이어지곤 했다.

죽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다. 죽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p81

4장 얼굴- 페르소나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방황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 메이 시턴 (May Sarton),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중에서

머리카락, 약간의 콤플렉스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길들게 마련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라는 말이다. ‘나에게 길들게’ 하면, 그게 목적이 되면, 함께 살 수 없다. p91

중학교 다닐 때 사진을 보면 이마가 좁았다. 언제부턴가 아마만 성장을 했는지 넓어지고 환해졌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약간 의아하다. 이마만 자랄 수 있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여 이마가 머리까지 연결되어서 커 보인 것일까? p91

써니: 사부님이마는 굉장히 이쁜 이마이다. 그 이마는 절대로 좁을 수가 없는데... 이상하다. 짱구이마는 도저히 좁을 수가 없다. 이마가 넓어지는 것은 자고로 개운의 징조라는 것을 언젠가 어른 들게 들어온 것 같다. 이치상으로도 그러하다. 이마가 벗겨져도 어울리지 않거나 조화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부님은 이마가 아주 이쁘게 생겼다. 나는 사부님의 이마가 코보다 더 좋더라. 사부는 머리통 자체가 잘 생겼다. 마치 머리통에 복이 있는 사람 같다. 그럴지도 모른다. 코가 순조로움과 중년의 재력을 상징한다면 머리통은 사주 전체를 총괄하는 것은 아닐까. 공연히 그런 생각이 든다.

또한 사부님께 가발을 씌우면 무척 재미날 것 같다. 레게머리 가발을 씌어드리고 입술을 힘껏 내밀라고 해서 사진을 찍으면? 방자같이 머리를 따 넘기고서 색동한복을 입혀 드리면?
내 생각에 백산같이 멋있는 꽁지머리는 애저녁에 틀린 것 같다. 그건 머릿결이 굵고 힘이 있어야 하니까. 아마도 드라이 빨을 먹이지 않으면 그대로 폭삭 가라앉을 것 같다. 늘 모자를 쓰셔서 더 그렇게 보이나? 또한 백산처럼 약간 퍼머를 해서 길러도? 으하하 웃기다.
빈약한 머리카락의 쓰라린 恨(한)을 좀 이해할 것 같다. 나도 머리카락이 별로라서.

인형에서 자유인으로
내 얼굴은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의 한계 속에 머물면서 겨우 몇 가지의 모습으로 고착되어 있었다. 고착의 패악은 정신을 경직시킨다는 점이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마음대로 변형시켜본다는 것은 내게도 익숙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나도 날 무서워했고 밀실에서도 내 의식은 갇혀 있었다. 사회적 기준은 나의 몸을 짜부라뜨린 후 침투했고, 나에게 허용된 개인적 밀실은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었다. 나는 내 속에서조차 옷을 벗고 편하게 쉬기 어려웠다. p99
욕망이 자신을 충족해가는 것은 개인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욕망은 부숴Em려 땅에 묻어야 하는 끔찍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p100

수필이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고 진무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늘 쩨쩨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범상치 않은 이야기, 나는 이것을 인류의 미시적 역사라고 생각한다. 개인은 각각 그 안에 자신의 역사를 안고 산다. 부끄러움도 있고 후회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도 있고 당당하고 장엄한 순간도 있게 마련이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재료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p100

써니: 나는 정말이지 수필이나 단편을 쓰고 싶다. 너무 긴 소설에 대한 구상도 재주도 없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수필을 좋아했다. 아직도 그 때 그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필을 생각하면 오월의 파릇한 나뭇잎새들이 떠오르고 피천득의 수필『인연』의 아사꼬가 생각나면서 기분이 좋다.
나는 피천득의 수필을 참 좋아했다. 그분의 삶 또한 정갈한 수필 같기도 했다.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다. 흉내라도 내볼까?

‘오동은 천 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p102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자유를 천만금에도 팔지 않는다. 돈에 묶이지 않고 가볍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다. p102

사회적 기대가 존재하는 곳에는 늘 인형을 움직이는 끈으로 가득하다. ‘어떤 행위가 칭찬받게 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그 무엇이라도 성취해낼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도그마에 갇히면 인형이 된다. p103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했고 매달렸다. 니체가 말한 ‘거리에 대한 파토스(pathos of distance)’를 추구했다. 이것은 차이에 대한 열정이었다. p103

써니: 이 경우에 나를 이야기 하면 어울리지 않으려나. 내가 홀로서기를 지향할 때 진실로 나답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저질은 일 혹은 업장으로 인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이해 받지 못함으로 해서, 전혀 상상하지 않은 또 다른 내가 원치 않는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참을 수 없었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 분명한 게 病(병)일지 모르지만 나는 동의했고, 그날 이후 나를 구하느라 빠뜨린 또 다른 나를 향해 뒤를 돌아보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것을 나는 그리움이라고 명명하였다. 차라리 그리워하며 살자. 서로가 부딪혀 아귀다툼을 하고 사는 것보다 그 편/헤어짐 이 훨씬 낫다고 결론 내렸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슬픈 결론뿐이라고 생각했고, 막막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숨통이 트이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나로 인한 많은 희생 때문에 가슴이 아파왔다. 책임지지 못한 내 삶에 대하여 언제까지나 가슴이 저민다. 까르르 웃는 듯 눈물이 고일 수밖에 없다.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104

우리는 수없이 많은 남의 얼굴을 그리워하다 여기에 이르렀다. 학교에 가고 규범을 배우고 문화 속에 던져지면서 의도적 왜곡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되어갔다. 내가 마흔이 되어 한 일은 그런 나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공간’을 지나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도 되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 p104

써니: 나는 이것을 찾아야 한다. 더군다나 나는 인생의 고배를 마셨고 실패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상황에서 기만 쓰고 살았지, 정작 내면을 들여다 볼 틈도 여유도 없었다. 나는 나를 힘껏 던져 변.경.연에 들어왔다. 나는 내 삶의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래, 수많은 미련 때문일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인생의 짐을 지고 무덤까지 가고 싶지 않다. 나는 이승에서 생긴 모든 문제, 온갖 일들 다 풀어놓고 아무런 뜻도 미련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고 싶다. 일체의 어떤 한 조각의 미련도 슬픔도 아쉬움도 남기고 싶지 않다. 나는 살아생전에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다 내려놓고 가뿐하게 날고 싶다.

5장 가족
잡아야 할 손이 필요할 때, 따뜻한 손을 가진 그녀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p106

‘진정으로 사랑했던 마음은 결코 그 사랑을 잊지 않는다.’ - 토마스 무어 p107

써니: 애로스에서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가페적 사랑에서는 경험했다. 바로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 李卓吾 p108

나를 닮은 아이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었다. 작은 수고들은 이런 기쁨을 위해 동반되는 선물의 포장지거나 아름다운 포장 끈이나 리본 같은 것들이다. p114

삶의 우선순위

나는 시간의 불모지를 내게 불하했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시간대로 만들었다. 찾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묻혀버렸을 보물 같은 땅이었다. p120

그런데 왜 하필 죽음이 생각날까? 그때 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주어야 할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내와 남편,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만 존재할 뿐, 그 사이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없었다.

써니: 남자의 무력감이 이런 걸까? 나는 참으로 이해 할 수 없었고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그 스스로가 해결해 보려 하지 않는, 그 어떤 방법도 제시할 수도 없었고 속수무책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나는 발만 동동 굴렀다. 그리고 급기야 내 숨이 먼저 넘어갔다. 심장에 박히는 육중한 대못은 못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위덩어리였고 천근만근의 철근보다 더 무겁고 두꺼운 나무기둥 같은 쇠파이프였다. 그것이 내 심장을 뚫고 내 가슴에 박혔다. 목구멍은 뜨거운 감자가 화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팔딱팔딱 뛰었고 미친년처럼 박차고 나가고 싶은 그러나 갈 곳 없는 영락없는 미친년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기막힌 것은, 나는 아직 아니 더욱 뜨거웠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치명적인 엇갈림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내 불은 식지 않았다. 꺼진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제까지나 영원불멸의 불길을 간직할 수 있었다. 나는 식지 않아, 나는 식어지지 않았다. 나는 식지가 않아....... .

그는 더 멀리 달아났고 나는 나를 혼자서 태워야 했다. 짝을 잃은 슬픔이 그 지독한 아픔이 나 혼자 타는 불길 속에서 나를 태워 스스로 그 불길을 꺼야만 했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은 비어 있었고,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생명이 없었다. 책임과 의무만이 무성한 잡초처럼 내 마음의 벌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살아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먼저 살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었다. p122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되자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p122

현실이란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남들의 생각’, 즉 다른 사람들의 견해일 뿐이다. 나는 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머슨의 말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그 사람의 성격임을 종종 잊고 지내는 것’ 같다. 누구의 삶이든 그것은 늘 그 주인을 닮게 마련이다. p122

친구들 사이에는 이해가 끼면 안 된다. 친구와 비즈니스를 같이 하는 것은 안 좋다. p128

친구의 성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p129

따질 것도 없고 계산할 것도 없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함께 가는 것이 친구들이다. 친구란 함께 어울림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 없이는 그 어울림이 빛날 수 없다. p130

6장 자연
‘자연과 신, 그 어느 쪽도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 둘은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본성의 집행관이었다.‘ -에밀리 디킨슨 p134

변화의 이유
얼마 전 작고한 이오덕 선생이 늘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변화해야 하느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p140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삶이다. p142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불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p142

곽박郭璞의 시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 라고 했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찾기 어렵다. “밖으로 자연의 조화를 본받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체득해야 한다.(外師造化 中得心源)”는 것은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둘 충고다. p143

나는 나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바보들이기도 하다. 모든 꽃들은 ‘그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난다.
G. K. 체스터턴의 말대로 참으로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다. 기쁨은 도처에 있고 ‘늘 활동 중’이다. 그들에게 좋은 일이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참새에게 좋은 일이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풀들에게 좋은 일이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가 “나는 스며든다. 초록빛 풀밭에, 꽃들에게, 그리고 살아 있는 물살에. 나는 깃든다, 죽지 않는 모든 것에. 나는 곧 생명이므로.” 라고 말할 때, 그녀는 바로 나였다. p145

내가 회사를 나와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할 때, 나를 위로해준 것은 자연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않았던 일이기도 했지만, 이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45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오래된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하는 것도 수없이 보아왔다. 나는 자연의 방식을 추구했다. 자연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방식을 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데려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p146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몸이 땅에서 나와 영혼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듯, 땅을 움켜쥐고 온몸을 던져 하늘을 향해 자란다.

나는 나를 이용하고 활용한다. 가장 먼저 나의 모든 가능성을 탐사하고 이용해야 한다. 내 내면을 뒤지고 곳곳에서 흐르는 에너지의 샘들에 깊고 굵고 튼튼한 뿌리를 견실하게 박아두어야 한다. 이 힘들만이 나를 키울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교훈이었다. p148

나만의 씨앗
나무는 또한 해마다 새로운 자신을 분만시킨다. 수없이 자신을 탄생시킨다. 사는 법은 죽는 법에 있다.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지 못하면 다시 태어남도 없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파괴와 생성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이것이 나이테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늘 자신의 시체를 내다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무는 해마다 한해의 삶을 기록한다. 한 겹의 나이만큼 줄기에 그 흔적을 남기고 두꺼워지고 키가 더 자라게 된다. 나무는 매년 죽는다. 이 상징적 의식이 나무가 자라는 방법이다.
나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 나무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한다. 나에게 낙엽은 내 책이다. 꽃과 나뭇잎, 그리고 열매는 나무의 1년의 삶이다. 내 책도 내 1년의 삶의 기록이다. p149

식물에게서 배운 또 다른 교훈은 바로 번영하는 방법이다. 곳곳에 수없이 많은 자신의 복제를 만들어내는 것이 번영의 상징성이다.

나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날마다 내게 귀화한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육에 담아 수천 개씩, 수만 개씩, 수백만 개씩 퍼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마음속에서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귀화한 생각’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처에서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이다.

로댕의 말을 잊지 마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p153

7장 건강
‘의학기술이란 자연이 질병을 치료해주는 동안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 볼테르

탄생과 함께 시작되는 죽음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한다. 뒷물이 앞물을 뛰어넘으려고 해야 비로소 강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다. 제자가 잘나야 스승이 위대해 진다. p161

욕심이라는 이름의 암세포
문명은 인류가 여성화되는 과정이었다.

문명의 본질은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냥꾼의 습성과 겨우 최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인류이 역사가 그렇듯이 개인의 역사도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p165

‘쓰임을 받으면 행하고, 버림을 받으면 숨는다. (用之則行, 舍之則藏)’ p167

하루살이들에게 우리는 신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를 먹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일지 모르지만, 인생 100년도 한숨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욕심스러운 ‘나이 듦’은 과다한 욕망에 차 여전히 ‘두 개’가 되고 싶은 세포, 즉 암과 같다. 생명을 길게 연장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p168

이상신호
가끔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아픈 것보다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겁이 덜컥 나는 은근한 통증이 1~2분 정도 계속된다. 최근1,2년 사이에 생긴 증상이다. 몇 달에 한 번 정도, 잊을 만하면 간혹 다시 찾아오곤 한다. 병원의 건강지수로는 모든 작동이 정상이다. 지표상으로는 건강한 사람이지만, 최근에 일상 속에서 아주 사소한 일처럼 등장하는 여러 조짐들은 과거에는 없던 일들이다.

써니: 나의 경우 중간 책임자로 일을 하다보면 자질구레한 병원의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할 경우가 있었다. 단순히 내 업무 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의 경영에도 관여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약간의 페이를 조건으로 심하게 몸을 혹사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실제 그 병원에서는 나중에 일만 부려 먹고 약속한 인센티브를 거의 제공해 주지 않았지만, 하여간 그래서 몸을 죽어라 혹사한 적이 있다. 알았다. 피곤하고 지쳤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만 둘 수도 없는 상황들이었다.

하는 수없이 꾸역꾸역 그 일을 해나가며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는 환자를 치료하려고 몸을 수그리기만 하여도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왔다. 그래도 별일이야 있겠나 하고는 계속해서 일을 강행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러고 얼마 후에는 갑자기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심장이 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시 멍하니 앉았다가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심장이 갑자기 접지르기라도 하듯이 아얏 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정지해 버리는 것 만 같았다. 숨을 들이 쉴 수도 내쉴 수도 없는, 모든 것이 일시에 정지해 버리듯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일을 쉬게 되었는데 그 후로 차츰 그런 증상은 없어졌다. 경험컨대 우선 과도한 일을 쉬어야 하고 스트래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 돈을 못 버는 것도 굉장한 스트래스일 줄 알았었다.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일을 쉬는 스트래스보다 고된 일에 스트래스까지 받으면서 일하는 것이 더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심장이 순간적으로 발작을 일으켰던 것으로 생각된다. 일을 쉬고부터 뻐근함이 차츰차츰 사라지더니 요즘은 거의 그런 증상은 없다. 최근 6개월간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글쓰기도 처음에는 일 못지않게 힘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자판에 어쨌거나 써야 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심장이 이상이 있는 경우는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다만 간혹 요즘에 들어서 부쩍 컴퓨터 앞에 비교적 장시간 붙어있는 것이 괜찮을까, 유해전자파에 대한 걱정이 이따금씩 들기도 할 뿐이다.

사부님은 필요이상의 스트래스를 최대한 줄이고 사시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새 일을 시작하면서 그 스트래스가 많이 있으셨나보다. 더군다나 세심하고 감정이 여리다면 더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작가의 감수성인데 오죽이나 예민하였겠는가. 누군가 사부님이 하시는 일이 무척 외롭고 힘든 일을 해나가시는 거라며 자신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꿈 벗이 있었는데, 그가 사부님 심경을 익히 헤아린 것이란 게 새삼 느껴진다.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는 또 다른 방식의 이해력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게 되는 시기라는 뜻이다. p176

제8장 길에서
정신적 여행자
내 인생의 결말, 그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무엇이든 꿈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꿈꾸지 못한 것들만이 내 인생이 아니다. 꿈꾸지 못한 것 가운데 더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된다. p185

다만 훌륭한 상상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모르기 때문에 그 일을 지금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p186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하나는 이미 깨어난 꿈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꿀 꿈이다. 둘 다 지금이라는 현실을 속박한다. 혹은 지금을 구원해준다. 때때로 그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p186

길을 찾아서
꿈은 시간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역사적이다. 꿈을 만들어내는 것은 욕망이다. 욕망을 버리는 것이 꿈이기도 하지만, ‘욕망을 버리는 것’ 역시 욕망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욕망의 특별한 모습이라 부를 수 있다.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p187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걸어온 것에도 길은 없고
걸어야 할 것에도 길은 없다.
그렇지만
걸어온 것과 걸어가야 할 것 없이는
길 또한 없다.’ - 나가르주나 (대승불교의 스님) p191

지나간 것들 속에 내 인생이 담겨있다. 나는 그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였다. p193

행복해지는 법
우리는 불행을 만들며 산다. 누가 불행을 원할까마는 결국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만든 것일 뿐이다. p195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이 얻으면 그만큼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베풀 수 있는 만큼 행복하다. 베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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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23 05:33:43 *.70.72.121
또 넘어갔네요. 위에 이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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