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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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3일 11시 17분 등록
1. 작가에 대하여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은 상상이나 인터넷 등 간접적인 도구를 통해서 저자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이번 책은 좀 다르다. 저자와 직접 대화도 해보았고 가까운 곳에서 세심한 관찰도 가능하였다. 또한 변화경영연구원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동안 내 눈에 다가온 구본형 선생님에 대한 소개로 저자 소개를 대신한다.

가장 먼저 feel이 꽃힌 것은 바로 꽃씨와 불쏘시개란 단어이다. 2005년 11월 어느 날, 수서역 인근 강연장에서 처음으로 선생님을 뵈었다. 화려한 PPT 쇼나 다른 도구도 없었고 오로지 목소리와 몸을 가지고 강연을 하는 것도 새로운 충격이었다. 또한 강연의 내용보다 강연 후 질의응답이 더 좋았다. 팽팽한 긴장의 질문과 대답이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번 수강생들은 눈빛이 살아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지하철 역 까지 같이 걸어가게 되었다. 선생님과 같이 걸었던 10분의 짧은 시간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유혹의 덫(?)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찾고자 했단 모호함과 막연함에 빛을 하나 주셨다. 나도 그러했다는 동감을 표시했다. 헤어지면서 조그마한 꽃씨를 주셨다. 스스로의 무능력에 한탄하고 자책감으로 새로운 도전을 꿈조차 꿀 수 없던 나의 동토에 꽃씨가 뿌려졌다. 꿈 벗 행사에 참가하면서 불쏘시개의 뜨거운 바람으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말대로 꽃씨와 불쏘시개라는 표현이 너무 적절하다. 첫 만남은 꽃씨라고 생각한다.

가장 강한 불쏘시개는 지난 3월 31일 3기 연구원 1차 모임 때 보여준 당신만의 퍼포먼스였다. 남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등으로 하고 나를 통해서 1년간 바다를 보라는 말이 끝나자 바로 사라지면서 그 다음 1년은 여러분 혼자서 가야한다. 이 말과 동시에 없어져 버리면서 그 다음 1년은 혼자서 봐야 한다는 3분 남짓한 짧은 퍼포먼스에서 변화 경영을 보았다. 이런 것이 바로 불쏘시개의 진수였다.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하루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강연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331p)

지난번 꿈벗 모임 때 민들레 씨앗의 신비함을 들었다. 바람을 타고 40km를 비행하여 땅에 씨앗을 뿌린다. 사람의 마음을 그 넓이를 잴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이 열길 정도 된다고는 하나, 그 물리적인 측정으로는 어림없다. 선생님 꽃씨의 위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로 다가온 것은 나무와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12번 정도의 만남이 있었다. 만남의 순간마다 한번도 같은 모습을 본적도 없었고, 같은 말을 들은 적도 없었다. 그는 늘 새로움을 주는 나무 같은 존재였다. 그런 나무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축복이자 행복이었다. 새로운 나무처럼 늘 펄펄한 모습이었다.


나는 트리맨(tree man)이다. 바람이 불면 ‘솨아’소리를 내며 잎들을 있는 대로 바람에 실어 날리는 나무이다. 봄이 되면 꽃을 주렁주렁 피우는 나무이다. 여름소나기 끝에 햇빛이 다시 쨍해질 때 초록색 물방울을 달고 서 있는 싱싱한 이파리로 뒤덮인 나무이다. 때가 되면 꽃보다 더 진한 단풍으로 깊어지는 나무이다. 아, 그리고 그 나무 겨울, 그 강풍에 아무 소리 않고 죽은 듯 서있는 그 나목, 그것이 바로 나이다. 나는 온몸 안을 꽃으로 가득 채운 채 꽃 터지는 봄날을 기다리고 있다. (352p)


상록수가 그 푸름을 유지하는 비결은 늘 푸르게 꾸민 것이 아니라 죽은 누런 잎이 보이지 않도록 부지런히 푸른 새잎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죽음과 생성의 속도를 동일하게 함으로써 푸름을 유지한다고 한다. 선생님이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기분을 안다는 표현으로 이와 같은 죽음과 생성의 힘든 순환을 반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말도 하셨다.


지지자로 둘러싸인다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모든 화려한 자들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근신할 줄 알아야 한다. 인기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것이다.


변화하는데 지치는 모습도 없다. 변화가 일상이고 일상이 변화이다. 그분은 늘 우리에게 변화경영의 진수를 몸소 보여 주신다.

아마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것이 시작일 것이다. 스승과 제자사이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왕에 사제지간이 되었으니 좀더 그분의 철저한 제자가 되리라 다짐해본다.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된다. 뒷물이 앞 물을 뛰어넘으려고 해야 비로소 강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다. 제자가 잘 나야 스승이 위대해진다.



2.나에게 다가온 책

가. 자서전의 의미 - 그 살아있는 역사에 대하여

그동안 과제물로 몇권의 자서전을 읽었다. 에릭 홉스봄의 미완의 시대,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 등을 읽었다. 역사속의 인물과 현존하는 사람사이의 차이점도 많이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을 떠나 개인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까 유명한 인물들이나 쓰는 자서전 시장에 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끼어든 것이다. 그들에게는 불쾌한 일이고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이 책의 부제는 그래서 평범한 인간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라 불러 마땅하다.


역사를 알고 역사속의 영웅을 아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혜와 유용한 도구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 상황을 다시 해석해야하는 난점이 있다. 동 시대를 살면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의 결코 평범하지 않는 이야기에서 나는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다. 반드시 저자가 경험 속에서 진실이 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러한 비범한 이야기의 한 문장도 놓치기 싫었다. 좀더 많은 것을 두고 싶었고, 마음속에 많은 꽃씨가 되어 자리 잡기를 기원하였다. 나에 대한 자서전을 반드시 남기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나. 올해 마흔이 된 나에게 다가온 글

올해 마흔이 되면서 새로운 10년에 대한 단상이 마흔이 되면 불혹처럼 모든 근심과 걱정이 떨어져 나갈 줄 알았다. 40이전의 내 눈에 비친 선배들의 모습에는 그런 자신감이 보였다. 나도 마흔이 되면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직장에서의 문제, 부모님 문제 등등 문제의 수가 더 늘어났다. 한 문제가 더욱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으며 뿌리가 깊었다. 거기에다가 문제들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부부사이의 관계처럼 부모, 자식, 직장, 상사, 고객 등 모든 관계에 변화가 왔다. 기존 선배들의 여유 있는 모습이 문제를 해결하였기 보다는 그냥 덮어두거나 아예 문제의 범주에 두지 않고 회피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흔이 되어 연구원을 시작하였다. 선생님의 마흔에 대한 이야기는 칼로 아픈 곳만 찌르는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졌다. 비장한 죽음과도 많이 가까워졌다. 마흔에 대한 수없는 단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흔 초반의 인생의 매운탕에서부터 당나귀의 삶에 이르기 까지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운명에 대하여 앞서 돌이켜 보는 과정이 되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마흔에 대한 것은 다음과 같다.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모두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내가 도박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 밖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익어가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획했다. 나는 비장했다. 나의 40대는 죽음과 친근해진 10년이었다.


마흔 출발부터 이러한 교훈을 얻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축복이라고 본다.

다.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

나 자신의 변화와 실험도 중요하지만 가족에 대한 나의 역할을 비교하면서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글이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파견근무로 인한 주말부부로 나한테 늘 부족한 부분이 바로 가정이다. 자연 같이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아이들과의 대화도 그렇다.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이것저것 가르치려 들면 어느새 멀어진다. 가만히 놓아두면 사회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방기한 책임을 져야한다. 너무 가까우면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아 상처를 받고, 적절한 간격을 두면 그 간격이 허전하다. 어떤 책에서 이탁오 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읽었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문든 가르치려만 드는 멀어지는 아버지와 방기하는 아버지 사이의 경계와 경영 컨설팅 같은 지식산업은 사기와 진실의 경계에서 자유스러운 그 무엇이 보았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차별성이고 전문성이 아닌가 한다. 또 가정에 대한 사랑 속에서 가능한 관계일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곧잘 이와 같은 상황에서 너무 가르치려 들다가 큰 소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롭게 변화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다. 나도 그 경계에 다시 들어가서 한번 시작해 볼 생각이다.

라. 앞으로 나의 이야기

찾으려고 노력은 하였으나 간절함과 강렬한 욕망을 찾지 못하였다. 꿈은 꾸었으나 겉만 번지르르한 꿈,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꿈만 꾸었다. 그러고도 찾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리라. 다시 가슴을 통증으로 후벼 파는 구절이 들어왔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채. 든든한 밥그릇 하나 챙겨두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 쩨쩨함을 묻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을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우선 나를 알아가는 절실함이 없었다. 나의 기질과 재능 파악이 기초인데 기초공사가 부실하였다. 다시 바닥을 기어야 한다. 나를 알기 위해 나를 좀더 알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꿈 벗 프로그램과 형식에 얽매인 나의 인생의 틀을 다시 해체하고 짜 맞추는 일을 시작하려 한다. 이것이 변화경영연구원의 본연의 자세라고 본다.

3.가슴을 치는 구절

<개정판 서문>
변화경영전문가로서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나를 끊임없이 나를 혁신시키는 일이다. 내 속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해내는 일은 아주 훌륭한 모험이다. 내 스타일에 딱 맞는 벤처 산업인 셈이다. 만일 이 과정을 멈추면 변화경영전문가로서 나는 죽은 것이다.

나는 10년 앞을 달려 나가, 그곳에서 거꾸로 10년 동안 펼쳐지게 될 내 인생 최고의 장면들을 되돌아보았다. 시간적 도치가 주는 장점은 ‘계획을 이미 발생한 실천 결과’로 치환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10년을 잘 살게 ‘되었’다. 과거의 기록이 건강한 미래를 계획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


<책을 펴내며>

이 책은 나에 대한 기록에 기초한다. 그런 점에서 자서전이다. 그러니까 유명한 인물들이나 쓰는 자서전 시장에 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끼어든 것이다. 그들에게는 불쾌한 일이고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이 책의 부제는 그래서 평범한 인간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라 불러 마땅하다.

평범한 개인의 미시사(微視史)는 본인이 남기지 않으면 유실된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자신의 세계도 없다. 기록의 형태는 일기여도 좋고, 메모여도 좋고, 홈페이지여 좋고 사진첩이어도 좋고, 이 책 같은 자서전이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프롤로그>

(16p) 이 책은 놀이며 유희이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고 욕망에 대한 절제다. 못 가본 삶에 대한 질투이다.

(17p)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과거가 날 만들었으니 과거를 버리고 벗어나는 것 또한 내 미래의 과제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였다.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1장- 지난 10년>

(21p)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오르고, 온갖 양념과 채소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23p) 비대해진 육체와는 달리 정신은 알 수 없는 불안을 감지한다. 내게 마흔은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26p) 그리고 10년마다 이와 비슷한 책을 한 권 씩 발간할 예정이다. 10년을 단위로 쓰여진 마음껏 살아본 나에 대한 소설과 개인사가 기록될 것이다. 10년 동안 내가 나를 재로로 만들어 보려 했고 부숴버렸고 다시 만들어낸 나에 대한 드라마....이 구상은 순전히 불면증 속에서 찾아낸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변화의 기술을 나에게 들이댄 변화경영전문가의 그림으로 이어졌다. 지식은 지식에 적용됨으로써 증식된다. 그리고 지식을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체험한다.

(27p) 40대가 천천히 지나가면 청춘도 지나간다. 서서히 육체의 쇠락이 팽팽한 낚시줄 처럼 감지되고, 은은한 불안이 검은 동굴처럼 나가오면, 여자와 불처럼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인생을 드라마처럼 역전시키고 싶어 하고, 마음을 누르는 이 초라한 공허 속에 긴장과 갈등, 그리고 비극적 사랑을 담고 싶어 한다.

(30p) 그러나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 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사랑은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증식되는 능력이다. 그것은 영혼의 갈망 같은 것이다. 모파상은 ‘진실한 사랑은 영혼이 육체를 감싸 안는다.’ 라고 표현했다.

(31p) 아, 왜 그를 추월해 승진하는 것이 그렇게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졌을까? 그를 동정하면서 비웃었던 우월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비천함이었던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자제와 절제를 현명함으로 불렀던 그 어리석음은 또 어떻게 하랴

(32p) 공자에게는 불혹의 나이였던 것이 2.500년이 지나 유혹의 나이가 되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속절없이 질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나 마흔조차 흘러간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흔 살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점이다.

(36p) 나는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곧잘 낙관적인 정신적 전환에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 이것이 나의 강점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문제에 끌려 다니는 것을 더욱 싫어한다. 나는 문제를 일상에 던져진 예기치 않는 모험과 도전으로 인식하곤 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면 새로운 단면과 만날 수 있다.

(37p) 나이와 더불어 인간의 경제적 쓸모도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40대의 10년은 급격한 감가상각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완숙한 성취의 시기가 아니라 정리의 시기가 된 것이다. 이 때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은 먹고 사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것이 우리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마흔이 넘으면 그것이 모든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40대 최대의 위기를 불러온다. 과거가 사라진 상태에서 미래조차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갈 곳이 없다.

(38p) 너무 어린 나이에 뒷방 노인이 된 마흔이여..

<2장 - 마흔살>

(46p) 굽이굽이 흘러온 길도 어느 한 굽이에서 끝난다. 폭포, 여기까지 흘러온 것들이 그 질긴 숨의 끈을 한꺼번에 탁 놓아버린다. 다시 네게 묻는다. 너도 이렇게 수직의 정신으로 내리 꽃힐 수 있느냐. 내리 꽃힌 그 삶이 깊은 물을 이루며 흐르므로, 고이지 않고 비워내므로 껴안을 수 있는 것이냐. 그리하여 거기 은빛 비늘의 물고기 떼, 비바람을 몰고 오던 구름과 시린 별과 달과 크고 작은 이끼들 산그늘마저 담아내는 것이냐 -박남준 <나무, 폭포 그리고 숲> 중에서

(47p) 마흔 살은 늙지도 젊지도 않는다. 대부분 결혼을 했으며 살기 위해 일한다. 마흔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지치게 된다. 일상의 걱정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가장 필요한 내적성찰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개인적 시도와 실패, 직장에서의 갈등, 결혼생활의 무관심, 아이들과의 씨름이 이때 가장 잘 드러나는 문제들이다. 아무 조금 더 젊었더라면 전직을 하거나 이혼을 하거나 다른 모색을 했을지 모르지만, 마흔 살이 되면 문제를 끼고 살아가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러니 까 빼도 박도 못하는 시기다.

(50p) 마흔 살은 당나귀의 삶이다. 젊은이들의 자유를 포기한 채 두 어 깨에 가득 짐을 지고 홀로 사는 짐승이 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이행을 거부한다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위대한 화가나 음악가가 되고 싶어 하기도 하고, 백만장자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일 뿐이다. 꿈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는 사라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9p)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흔 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똑같은 실력을 가지고 후반전을 뛰어본들 또 한번의 고배와 비웃음을 자초할 뿐이다. 1막에서 엑스트라였던 사람이 2막에서 돌연 주연으로 바뀌는 연극을 본적이 있는가? 마흔 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연극의 지루한 2막이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끝내고 진짜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파괴와 창조, 죽음과 재생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되며 죽어야 살수 있다. 이 치열한 반전을 사람들은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 것인가?

(60p) 우리는 극장 밖으로 나와야 한다. 삶을 연극에 비유하는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삶을 극장 안으로 몰아넣고 짜여진 연극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62p)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모두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내가 도박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 밖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익어가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획했다. 나는 비장했다. 나의 40대는 죽음과 친근해진 10년이었다.

(63p)나는 마흔이 넘어서 바쳐야 할 목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으며,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푼돈 서푼 짜리 인생이었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한 세상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3장 - 직장생활>

(70p)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이미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그들에게 내 과거는 초라한 것이었다. 나는 나보다 유능한 세일즈맨들 사이에서 주류가 아닌 작은 샛길에 불과했다.

(75p) 모든 신뢰의 수명이 단축되고 있었다. 단기적인 전망과 사고가 변화와 돌변의 시대를 이래하는 경제적 키워드였다.

(76p)그들은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이미 나는 그곳에 없었다. 나는 조직이 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78p) 회사 경영진들은 늘 개탄했다. 남아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늘 나가고, 나가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늘 남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회사가 양로원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생각했다.

(78p) ‘짧은 체류, 여러 번의 전직’이 새로운 현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나는 이 현상을 조용하고 냉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 현상을 조용하고 냉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나에게, 내 미래에 활용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78p) 필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늘 그 처신에 특별한 공유가 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중략) 즉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하다.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지식은 변하고 경험은 늘 다르게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또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단추를 끼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요한 사람들은 떠남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떠남으로써 남겨진 조직의 힘이 격감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놓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알라야 한다. 니체는 가장 위험한 조직원은 ‘그의 이탈로 조직 자체가 파괴되는 조직원’이라고 불렀다.

(84p)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수동성이다. 나는 능동성이라는 유전자 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수동성을 강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말하자면 수동성을 적극적인 수동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시 시작했다. 이 과정은 꽤 재미있었다.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 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죽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

(85p) 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설득당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설득이란 언제나 스스로 이미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설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득의 제 1 법칙이다. 설득은 늘 미리 이루어진다. 미리 이루어진 설득, 무너진 자기방어를 유혹이라고 부른다.


(87p) 자신을 변화경영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새로운 직업을 하나 만들어 낸 셈이다. 사람들은 변화경영이라는 낯선 단어의 호기심을 가졌고, 변화 역시 경영될 수 있는 학문이며 과학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변화라는 단어와 혼용되었다.

(89p) 경영 컨설팅 같은 지식산업은 사기와 진실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끝없이 학습하는 사람은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사기꾼처럼 ‘달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나는 내가 ‘경계선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움을 멈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학위와 자격증은 과거의 영광의 흔적일 뿐이다. 미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90p) 회사를 나올 때 내 나이는 마흔 여섯이었다. ‘사오정’을 막 지나 아주 평균적인 시기에 나온 셈이다. 회사가 나에 대해 지루해 할 때 쯤, 그리고 내가 회사에 대해 지루해 할 때만큼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마흔을 넘어서는 그 위험한 시기에 나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 들었다. 나는 사는 듯 하게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바칠만한 것을 찾고 싶었다. 관성에 따라 굴러가는 하루 말고, 전혀 새로운 뜨거운 하루를 가지고 싶었다.

(91p) 2000년 봄에 새로운 세계로 떠나왔다. IBM은 나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제 2의 인생 속으로 들어갔다. 조직에게 양도했던 힘과 권리를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평범함과 군중의 품을 떠나면서 외로워졌다. 이제 스스로의 작은 나라를 세워야 했다. 내 안에서 ‘군주적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나라, 나의 세계, 나의 꽃을 피워야 했다. 그것은 겨울보다 더 추운 봄이었다. 그러나 꽃 터지는 봄은 왔다. 피워야 할 꽃, 만들어야 할 세계가 생긴 것이다.

<4장 얼굴 페르소나>

(98p)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은 부담스럽다. 얼굴은 놀랄만 큼 유연한 물체다. 교교한 달보다 더 요염할 수 있고, 얼음보다 더 차가울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우리 신체 가운데 늘 벌거벗고 나타나는 부위다.

(112p) 인간은 권력에 오염되어 있다. 물질적 권력이 아니라 지식을 통한 훈육권력에 매여있다. 건강한 개인과 부강한 국가라는 거부하기 어려운 모토를 앞세워 개인의 삶을 규격화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이 우리를 묶어두고 있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만들어지고 조작되며 인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117p)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다운 것에 천착하고 매달렸다. 니체가 말한 ‘거리에 대한 파토스’를 추구했다. 이것은 차이에 대한 열정이었다. 차이는 다름이다. 그것은 다른 것, 다른 사람의 것을 자신의 것과 구별짓는 다름에 대한 열정이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정의 표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

(118p)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공간’을 지나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도 되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

<5장 가족>

(123p)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이것저것 가르치려 들면 어느새 멀어진다. 가만히 놓아두면 사회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방기한 책임을 져야한다. 너무 가까우면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아 상처를 받고, 적절한 간격을 두면 그 간격이 허전하다. 어떤 책에서 이탁오 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읽었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128p) 모두 바쁘고 서로의 세계 속에 빠져 있지만, 공유할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이어주고 서로 생각하게 해주었다.

(130p)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다. 작은 수고들은 이런 기쁨을 위해 동반되는 선물의 포장지거나 아름다운 포장끈이거나 리본 같은 것들이다.

(135p) 아내와 나의 관계에서 신혼 초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싸우고 난 후 화해할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이 극히 짧아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니 부딪치는 때가 많다. 그러나 싸운 후 다시 웃고 떠드는 데 까지 가는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는다.

(137p) 나는 마음껏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 자신과 한 약속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뒤로 배정한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된다.

(139p) 나는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 물었다. 왜 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장 먼저 아내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가장 소중한 그들이 바로 나의 구속인 것이다. 그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은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다른 대다수의 아버지들처럼 나도 그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147p)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 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148p) 따질 것도 없고 계산할 것도 없다. 마음이 가는대로 함께 가는 것이 친구이다. 친구란 함께 어울림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 없이는 그 어울림이 빛날 수 없다.

<6장 - 자연>

(154p) 남도를 돌며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바로 그 바람이었다. 바람은 어딜 가나 나를 따라 다녔고 , 나는 바람을 따라 떠돌았다. 그 바람 속에서 피어나는 첫 번째 꽃이 매화였다.

(157p)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 끓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것은 결국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이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160p) 우리가 왜 변해야 하느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작은 세포가 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그리고 죽는 것이 삶이다. 순수한 아이의 생각이 야망으로 가득한 젊은이의 생각이 되고, 이내 세상의 한계에 지쳐버린 장년이 되고 노회한 노인이 되고 이윽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은 시작되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트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167p)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몸이 땅에서 나와 영혼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듯, 땅을 움켜쥐고 온몸을 던져 하늘을 향해 자란다. 나의 모든 힘은 어두운 내면으로부터 온다. 어두운 곳은 언제나 비옥한 토지였다.

(170p) 나에게 낙엽은 책이다. 꽃과 나뭇잎, 그리고 열매는 나무의 일 년의 삶이다. 내 책도 내 일 년의 삶의 기록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내 일 년도 떨어진다. 그리고 열매를 남기듯 나도 내 책을 남긴다. 책 한 권이 쓰여지면 내 일 년도 지난다. 나무가 다음 해에도 똑같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이 혹독한 죽음과 재생의 의식을 거친 나무는 이미 전 해의 그 나무가 아니다. 나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영원히 죽은 것이다. 살아 있으나 이미 죽어버린 정신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173p)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하나의 씨앗처럼 날려 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생각인지, 나의 생각을 가장한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오리진이 어디에 있든지 분명한 진실은 나의 것이 된 생각들, 즉 이미 ‘내게 귀화한 생각’ 들이라는 점이다.

<7장 건강>

(183p)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된다. 뒷물이 앞 물을 뛰어넘으려고 해야 비로소 강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다. 제자가 잘 나야 스승이 위대해진다.

(184p) 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다. 또한 생명은 죽음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다. 죽음 없이는 생명도 없다. 마치 변하지 않는 것 없이는 변하는 것이 없고, 어둠 없이는 밝음도 없는 것과 같다. 어둠은 늘 생명이 자신을 준비하는 참으로 비옥한 토양이다.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니며 썩는 것들만이 자신을 땅에 버릴 수 있다. 땅에 버려져야 ‘무엇’이 될 수 있다.

(199p)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는 또 다른 방식의 이해력이 우리의 마음속에 스며들게 되는 시기라는 뜻이다.

(201p) 아름다운 봄날은 빨리 지나간다. 모두 그리워하고 섭섭해 한다. 그러나 가을 또한 곱게 온다. 나이 먹음은 가을을 즐기는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릴케처럼 말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신이여, 우리 각자에게 합당한 삶을 주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삶에 걸맞은 ‘합당한 죽음’을 주소서“

<8장 길에서>

(206p) 나는 지금 과거의 한 시간과 미래의 한 사건 사이에 있다.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일리고 하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물론 미래의 일은 반드시 일어날지 아닐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이 매우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는 추억이고 하나는 꿈이다.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마흔 아홉이 되어 지나온 삶을 되새겨보니 실제로 일어난 것과 상상 속에 존재했던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모두 한줌의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211p) 꿈은 시간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역서적이다. 욕망을 버리는 것이 꿈이기도 하지만, ‘욕망을 버리는 것’ 역시 욕망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욕망의 특별한 모습이라고 부를 수 있다.

(215p)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221p)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223p)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가 아니겠는가.

<9장- 집 공간>

(232p) 이 작은 방은 늘 내가 새롭게 태어나게 도와주는 작은 공간이 될 것이다. 나중에 누군가 이방을 ‘기도의 방’이거나 ‘면벽의 방’이라고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방에서 나는 늘 나와 만나고 싶다. 이것이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집이라는 공간이었다.

(243p) 나도 늦게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다. 나는 어디서나 만나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그러다 우연히 글 쓰고 강연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인지 정체를 잘 모르는 식물이 자라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자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처럼, 나도 잎만 가지고는 내가 어 떤 나무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아니다. 유일함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인가!

(249p) 우리는 증거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일을 하면 티가 나야 그 기쁨이 배가된다. 정원 일을 하는 것은 즐거운 노동이다. 지금 막 시작했지만, 아주 훌륭한 취미가 될 것 같다. 생명을 만나고, 생명과 이야기 할 수 있으며, 생명이 자라는 것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산에 가서 걷는 것도 좋고, 이렇게 작은 정원 하나에 매달려도 좋으며, 댓평 쯤 되는 텃밭에 매여 여름을 보내도 좋다. 즐거운 일이다.

(254p) 명상은 나를 즐기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괴로움으로 가득 찬 현실에 갇힌 내가 아니라, 원래 있었던 아름다운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명상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평화를 건져내는 것이다.

<10- 학습>

(261p) 엄청나게 많은 말들을 구겨 넣어 아주 작게 응축해 놓으면 가래 같은 한마디의 욕으로 밖에는 표현되지 않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씨팔’과 ‘퍼크유’는 설명이 필요없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투명하기 그지없는 통렬한 동물적 으르렁거림이다. 하고 나면 어쨌거나 후련해지지 않는가!

(263p) 학습은 성공을 오랫동안 빛나게 해준다. 나는 학습이 의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 하나의 의무이다. 이 짐을 견디지 못하면 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짐을 견딘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무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의무란 재미없는 것이다.

(264p) 나는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자제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썼다. 매일 쓰는 것은 다행히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나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와 느낌과 생각을 내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 씩 찾아내고 표현해보려고 했다. 그것은 늘 살아있는 느낌을 선사했다. 나는 놀이가 가진 위대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논다는 것은 순수하며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는다. 경제적 재산을 넘어 빠져들게 한다.

(265p)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며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그저 움직이게 한다. 먹이를 나르는 개미처럼 한없이 움직이게 한다. 경제라는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이 된 것처럼 낮도 밤도 없이 움직이기만 한다. 똑같이. 이 지겨운 반복적 소모를 ‘일한다’라고 부른다.

(267p)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녀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처럼 가슴 뛰는 일이 없을 때 그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밥 한 사발에 즐거워하고 산속을 걷는다는 것 때문에 털 하나 까지 긴장하고 살아 있는 개.....그 개를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69p) 미래는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세계다. 그저 내적으로 감응하는 나침반 하나 달랑 들고 떠난다. 이 때는 내 발자국이 곧 지도이다. 완성될 수 없는 지도, 때때로 잘못된 지도, 방황과 위험이 도처에 숨어있는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69-270p)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쓰기 시작한지 8년이 되었다. 책을 쓰는 일은 내가 가장 잘 배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재능이 있겠지만, 이 방법이 내 스타일이다. 나는 내가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271p)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이란 ‘어떻게 배우는 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학습이란 지식의 습득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학습의 하위 기능일 뿐이다.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답은 이 탐험의 끝에 나타나는 보물이다.

(273p) 단 칼에 내 심장을 찌르지 못하는 자들은 나와 인연이 없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다시 그들의 책을 펼쳤을 때 운명처럼 심장을 찔리게 되면 그 때가 그들과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명성이 자자한 책이라도 그 명성 때문에 보지는 않는다. 흘러간 시대의 흘러간 흔적이 지금 나를 깨우지 못한다면 나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이다.

(273p) 나는 배움이란 이해와 인식으로부터 시작할지 모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모르지만 맛있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

(276p) 스승은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길 바란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277p) 그의 본질은 넘실대는 불꽃같은 변화였다. 그에게 있어 완성에 이르는 길은 살인적인 자기파괴와 가지고 있던 믿음의 상실, 가지해체로부터 생겨났다. ‘자기처형’없이는 새로운 자기가 있을 수 없다. 단순한 자기변화로부터 스스로에게 반대하고 자신의 적이 되려는 데서 그의 기쁨이 생겨났다.

(281p) 삶을 살면서 삶속에 녹아버렸으면,,,,, 탐닉하고 오직 삶이 되어 삶속에서 노닐 수 있다면...... 조금씩 조금씩 빠져 들어 마침내 삶이 되었으면.

(281p) 내게 배움이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또는 자기 경영은 가능할까? 비트겐 슈타인이 말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경영 철학은 가능할까?

(283p)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매일 그럴수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285p) 청중을 통과한 것들은 살아남는다. 그러나 청중의 반응을 얻지 못한 것들은 새로운 언어로 고쳐지거나 버려진다. 책을 내는 것. 다른 사람에게 강연하는 것은 음악가들의 리사이틀이고 화가의 전시회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자체로 소중한 학습의 도구와 방편이 된다.

(288-289p) 나는 내가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도전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일 수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 번 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 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11장 -일>

(294p) 모든 일에는 고객이 있다. 이것이 경영의 관점이다. 누가 내 일의 첫 번째 고객인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의 첫 번째 고객은 나이다. 내가 내 일의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내 일은 반드시 만족 시켜야 한다.

(297p)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 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299p)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새벽의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것들과 원리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는 우선 모방이다. 많은 글을 읽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 두루두루 알아보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사업가들은 그것을 정보를 얻는다고 표현하고 글 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책읽기라고 부를 뿐이다.

(300p) 얼마나 많이 모방하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감동하느냐가 중요하다.모방의 또 하나의 요령은 ‘한 작품을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이다. 글쓰기 또한 혁명이다. 모방만 가지고는 좋은 글쓰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버리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연결해야 한다. 창조성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창의적 발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303p)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인 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경력을 결합시 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304p)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307p)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은 세상과의 싸움을 의미했다. 생긴대로 사는 것은 처음에는 규제하고 강압하며 표준을 바라는 세상과의 싸움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원칙이 통용되는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려는 ‘일반의 세계’ 군중의 세계와의 오랜 싸움을 전제로 했다. 자신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310p)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 그 때 성공은 우리의 특징이 된다.

(311p)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 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 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 할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은 늘 한길로 간 사람들의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 길을 가기에도 숨이 차다. 다른 것들을 넘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해도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

(313p)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317p) 나는 글을 쓸 때 나에게 주술을 건다.
내가 쓰는 글은 짧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감동이라는 껍질에 싸여있는 씨앗이다. 그것은적대감이라는 위액과 소화액에 녹아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발아할 수 있는 장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피와 영혼과 정신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 그들 역시 알 수 없는 환상과 내면의 열정 속에 빠져들게 해야한다. 열정이란 심장과 감정과 창자로부터 생겨난다. 참다운 자신이 되는 자유는 ‘자유로운 공기를 들이켠 허파의 외침’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감동이며 환성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 속에서 위대한 힘을 감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속에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주는 터무니없는 위로를 받아서는 안된다. 그 대신 자신이 희망적 현실주의자로 바뀌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글을 통해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을 하염없이 반복하는 무료와 절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인생의 재료로 삼는 것을 도와야 한다. 자신을 반죽하고 주무르며 떼어내고 빚어낸 후 색칠하여 다시 세상에 내놓게 도와야 한다. 새로 만들어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자신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불임을 극복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내 글은 강력한 유혹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배해서는 안된다.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즐거운 여행, 이것이 내가 그리는 삶이다.

(322p) 강연은 하나의 지적 퍼포먼스이다. 내가 먼저 그 내용에 만족해야 하고, 청중의 개인적 관심사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이 관심을 갖는 주제 속에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사례들을 잘 포진시키는 것이 흡착력 있는 내용을 이루는 기본적 구성이다.

(325p) 지지자들로 둘러싸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리를 이루는 것이고, 그 무리 속에 휩싸이는 것을 즐긴다. 위로받고, 격려 받고, 무언가 된 듯한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속에는 늘 불안이 있다. 인기라는 것은 덧없는 것이며 언젠가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것에 의지한 자는 불안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늘 변하고 바 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기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인기를 추구하는 자는 인기를 잃음으로 결국 불행해지거나 스스로의 왜곡에 빠지기 쉽다. 지지자로 둘러싸인다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모든 화려한 자들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근신할 줄 알아야 한다. 인기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것이다.

(331p) 내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명 강연을 하고 싶었고, 청중을 사로잡아 감동시키는 콘서트 같은 강연을 성공한 강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그런 생각을 수정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목표여서는 안 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적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하루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강연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340p) 정신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새롭게 닦아놓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인간은 모두 다 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밀리면 정신적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다른 것을 잘하지 못할 때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매우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 때 자신의 분야가 나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세 개의 에필로그>

결과와 목적을 늘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 끔 그럴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 나의목적은 하루를 잘 사는 것이다. 하루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각성과 준비의 제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하루답게 사는 것이다. 어 떤 하루도 목적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희생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364p) 언젠가 한번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스스로 설계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깨끗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햇빛 가득한 산을 넘고 들을 건너 아름다운 인생 하나를 건설해야 했다. 한다. 아름다운 그날 하루를 내 삶의 국경일로 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결국 자신의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

4. 내가 작가라면

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속의 이야기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지난 10년, 마흔살, 자연, 건강, 길에서 등등 평범한 일상속의 소재들이다. 이러한 일상속의 소재에서 이렇듯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라는 사실이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연구원 전에는 이렇게 까지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어서 일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결코 평범하지 않는 이야기란 부분에서부터 사로잡기 시작한 이 글의 정체는 무엇일까? 8년간 매일 글쓰기의 내공과 끊임없이 읽고 쓰는 결과일 것이다. 평범함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비범한 방법, 독자적인 방법이 있었다. 그것이 차별화이고 변화경영이라는 화두 속에서 바라본 것일 것이다.


나. 생생한 유혹적인 단어들

책을 읽어나가면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단락 한 단락 마음으로 들어와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나 자신과 동일화되어 분노가 들 때도 있었고, 내가 배울 점이라는 공감도 들었다. 단어가 절묘했다. 단어들은 갓 태어난 생명력으로 꿈틀대었다.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단어였다. 한번 들으면 가슴속 깊이 박히는 단어였고, 그 유혹의 향기를 따라다니는 단어들이었다. 이런 단어들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단지 언어의 기교가 아니었다. 내가 한번 쯤 고민했던 문제들에 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단어였고, 그러한 질문에 답을 주는 단어였다. 앞으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단어였다.

교교한 달, 사랑이라는 염료, 가을 물빛 나무,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 갈등 없는 판단, 돌연한 변종, 여행자처럼 싱싱한 모습, 선비처럼 세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왜곡된 거울, 등등 기막힌 단어를 보고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야겠다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다.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그동안 살아온 인생에 대한 분노가 들었다.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하는 법, 개발전략, 등등 공허한 메아리로 울렸다가 금새 사라지고 마는 수많은 책들이 미워졌다. 그러한 반짝이는 새로운 전략과 특정한 기간동안에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알려주는 책에 대하여 화가 났다. 그런 허상에 마음을 맡겨두고 하루하루 우연으로 살아온 내 인생이 싫어졌다. 그른 관성대로 흘러가는 인생에 커다란 울림이었다. 새롭게 볼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주어졌다.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은 세상과의 싸움을 의미했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은 처음에는 규제하고 강압하며 표준을 바라는 세상과의 싸움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원칙이 통용되는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려는 ‘일반의 세계’ 군중의 세계와의 오랜 싸움을 전제로 했다. 자신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307p)


적극적인 수동성이 이렇게 강력한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IP *.99.2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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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23 17:44:26 *.70.72.121
자긴 수동성 아니 잖여? 적극적 수동성을 최성국 형 영훈이 하면 펄펄 뛰는 물고기처럼 생동감 넘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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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7.23 18:50:20 *.99.242.60
수동성은 아니지만, 오히려 능동성 보다 더 힘이 있는 글이라서 이런 소리를 했다오. 겉만 번지르 하고 뻥만 센 능동형보다 조용하면서도 절도있는 행동과 말이 놀라웠다오..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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