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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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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4일 22시 20분 등록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 구본형 지음

1. 저자에 관하여

선생님은 나의 달콤한 알사탕이다. 한입에 넣어 아자작 씹어 삼켜버리는 비스켓류의 과자와는 성질이 전혀 다르다.
알사탕의 진가는 쪽쪽 빨아먹는데 있다. 한 입 빨고 그 달콤함을 입안 가득 느긋이 느낀다. 그리고 한 손에 들고 적당히 아이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내 앞에 아이들이 모이면 사탕의 달콤함은 그 강렬한 빛을 아낌없이 발한다. 아이들이 사탕에 대한 선망을 나에게 아부 같은 모습으로 보내면 나는 자비를 베푸는 선한 관세음보살을 흉내내며 한 두 번 빨아먹게 해 준다. 아이들은 그 황홀한 맛에 두발을 치켜 세우며 달리고 나는 덩달아서 우쭐해진다.

그러나 알사탕의 참다운 맛은 한 두 번 빨아먹고 반짝이 포장지에 다시 싸 두는 아찔한 즐거움 뒤에 숨어있다.
이것은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제일 앞자리, 선생님 코앞에 앉아 졸지도 못하는 절박한 5교시 시간일지라도 숨겨두고 온 달콤한 사탕이 있다면 유쾌할 수 있다. 타박거리며 걷는 무료한 귀가걸음이 경쾌해 질 수도 있다. 알사탕은 한 번씩 빨때마다 그 단맛이 더해진다. 푹 고아 뿌옇게 우러난 곰탕맛을 연상할 일은 절대 아니다.

나는 성질상 맛난 것이 있으면 덥석 한입에 물어버리지 못한다. 은근히 즐긴다. 음식이 그러하며 생활 또한 그러하다. 아무리 황홀한 것이 주어져도 바로 빠지질 못한다. 아껴두고 숨겨두며 조금씩 꺼내어 그 은근함을 즐기는 것이다. 어떤이는 나의 마음을 숨기는 것이라고도 했지만 이것은 나만의 방식인 것이다. 숨긴다고 말하면 어떠랴. 그렇게 보이면 어떠라.
나는 선생님을 처음뵈올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거니와 푹 빠지질 않았다. 누구를 붙잡고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더더욱 묻지 않았으며 그렇게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알사탕 같이 달콤함을 즐기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선생님께 무례로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개이치 않는다. 참다운 알사탕 맛을 아는 사람은 나의 심정을 이해하리라. 선생님께서 나를 ‘완전히 잘 못 뽑은 연구원이라고 재쳐 두셨는지도 모른다. 부지깽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언덕 배기에 자리잡은 산을 품은 자택을 찾을 줄도 모른다. 완전 아웃사이드다. 그러나 나는 지금 달디단 알사탕 맛에 빠져있다. 어쭈어 보면 단 번에 알아낼 일도 나의 상상에 가둔다. 지난 번 모자는 왜 쓰고 계셨을까? 모자를 좋아하시나, 아니면 우리 보라돌이처럼 약간의 대머리에 신경이 쓰이시는 걸까? 고구마를 까 드시는 것을 좋아하실까, 아님 껍질째 드실까? 여행지 중 어느곳이 아련히 남아있을까?
이러한 모든 것은 한 번 빨고 숨겨 둔 알사탕 맛을 일상의 기쁨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선생님의 알사탕은 크기가 다르고 그 달콤한 맛 속에 표현 못할 그 은근한 색다른 맛이 또 숨어있다. 그것은 때로는 입안을 톡 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할머니가 주시던 그 아련한 달콤함도 녹아난다. 선생님이 나무를 좋아하신다는 그 단맛을 나는 두고두고 즐긴다. 새벽 산책길에 만나는 소나무를 비롯해서 창밖으로 눈만 돌리면 숲을 이루고 있는 칠엽수를 통해서도 느낀다. 음악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을때는 바하의 첼로 무반주 곡을 들으면서 그 달콤함을 느낀다. 흘려가는 강물의 노래를 아신다면 섬진강가를 거침없이 거닐어 본다.

나는 학급의 뒷자리에 앉고 싶다. 선생님을 멀리서 바라보며 몸짓 손짓 하나에도 느긋이 즐기는 말없는, 약간은 아둔해 보이는 학생이고 싶다. 너무 감격해서 한 번에 이것 저것 다 알려고 하기보다는 내 방식대로 느릿느릿 따라가는 소 같은 학생이고 싶다.

2.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6] 미래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를 딛고 이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충분히 썩어 비옥해진 과거가 미래의 수확량을 결정한다는 것은 농사를 한 번이라도 지어본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 과거를 충분히 썩혀 소화해내지 못하면 과거가 살아서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즉 과거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관성, 과거의 습관, 과거의 자취와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온갖 흔적, 그 영욕을 묻어 깊이 썩혀두면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이 앞길을 밝히는 불빛이 된다.

[6] 나는 10년 앞을 달려나가, 그 곳에서 거꾸로 10년동안 펼쳐지게 될 내 인생 최고의 장면들을 되돌아보았다. 시간적 도치가 주는 장점은 ‘계획을 이미 발생한 실천 결과’로 치환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10년을 잘 살게 ‘되었’다. 과거의 기록이 건강한 미래를 계획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22] 모든 것의 궤멸은 늘 내부로부터 온다.

[24] 마흔은 가끔 불면증과의 동행과 동침을 의미했다. 나는 오히려 불면을 즐겼다. 불면 역시 주어진 것이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결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찾아오면 싸우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26] 지식은 지식에 적용됨으로써 증식된다. 그리고 지식을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체험한다.

[30] 자유는 빛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확실한 것, 굳건히 서 있는 것들의 질서 안에서 자유는 끝나고 만다. 절실하게 바라지만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한다.

[30] 그러나 사랑은 다른 애인을 찾아냄으로써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감정으로 위장된 반복 속에서 소모될 뿐이다. 사랑은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31] 훌륭한 작품은 그것이 어떤 표현 방식을 가졌든 인생에 대한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현실보다 극적이고, 현실보다 교훈적이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45] 누군가의 칭찬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무엇인가 정말 괜찮은 것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45] ‘미루나무가 서 있는 강 길을 걷는다. 강 건너 마을에 하나 둘 흔들리며 내걸리는 불빛들. 흔들리는 것들도 저렇게 반짝일 수 있구나. 그래 불빛, 흘러온 길들은 늘 그렇게 아득하다. 어제였던가. 그제였던가. 그토록 나는 저 강 건너의 불빛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왔던 것이구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흔들리며 손짓하는 그 나무들의 숲에 다가갔다. 숲을 건너기에는 내 몸은 너무 많은 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지나간 세상의 일을 떠올렸다.

[48] 마흔이 되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사회적 윤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좀 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려고 한다.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수용한다. 따라서 개념의 깊이를 희생하는 대신 명료하고 구체적인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75] 우리는 ‘조급한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로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었다. 무엇인가 다가오고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이내 사라지고 다시 다른 그림이 닥쳐드는 홀로그램의 세계가 우리 시대의 특징이 되었다. 우리는 장기적 관점이 사라져가는 경제 시스템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78] 온갖 종류의 구조조정에도 상관없이 한 조직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성장하고 싶다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자신의 특별한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 자신만의 좋은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 말은 떼거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과는 매우 다른 개념이다. 적절한 관계라는 것은 본인의 성격에 따라 그 양상이 다르다 그러나 적절함의 특징은 하나이다. 폐쇄회로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누구와도 연결이 가능하다. 특별히 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배타적 폐쇄서응로 인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열린 관계가 유지되도록 적과 동지 사이의 제 3의 특징이다. 이들은 ‘누구의 사람’이라는 폐쇄적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한때 화려하게 권력에 줄을 대서 급부상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처럼 빼내기 어려운 자리에 있다. 이것은 소극적이거나 내향적인 사람도 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장점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을 이러한 휴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익숙하다.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전문성이 자격증에서 오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식은 변하고 경험은 늘 다르게 적용된다. 자신의 소질을 이해하고 잠재력을 계발한다. 이들은 대체로 겸손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을 대단하다. 애정 없이는 자신을 불태울 수가 없다. 어떤 분야든 자신을 불사르지 않고서는 핵심에 다가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또 그들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단추를 끼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요한 사람들은 떠남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떠남으로써 남겨진 조직의 힘이 격감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놓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니체는 가장 위험한 조직원은 ‘그의 이탈로 조직 자체가 파괴되는 조직원’이라고 불렀다.

[84] 나는 수동성을 강점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말하자면 수동성을 적극적 수동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은 꽤 재미있었다.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죽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

[87] 갑자기 나는 내가 기획하는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기획하고 연출하며 배역을 맡는 이 훌륭한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달쯤 지나 책이 나왔다.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독자에게 가는 선물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였다. 책은 잘 팔렸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잡지들은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광고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변화경영 전문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88] 전문가는 과거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끊임없는 자기학습에 의해 날마다 새로워질 뿐이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91] 나무들은 가장 추울 때 그렇게 서 있다. 죽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다. 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112] 사회적 기준은 나의 몸을 짜부라뜨린 후 침투했고, 나에게 허용된 개인적 밀실은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었다. 나는 내 속에서조차 옷을 벗고 편하게 쉬기 어려웠다.

[115]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늘 쩨쪠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범상치 않은 이야기, 나는 이것을 인류의 미시적 역사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각자 그 안에 자신의 역사를 안고 산다. 부끄러움도 있고 후회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도 있고 당당하고 장엄한 순간도 있게 마련이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재료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그저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 아파트 한 채를 남기고 일흔 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라고 기록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용동과 얼마의 책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마음의 자유를 잃을까 불안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날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다 홀연히 범상치 않은 결심을 한다.

[117] 나는 슬그머니 나를 묶고 있는 줄 하나를 끊어냈다. 다른 줄도 끊었다. 나는 인형에서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자유인이 가지는 자유와 책임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책임이 더 이상 구속이 되지 않도록, 일이 더 이상 밥벌이가 되지 않도록, 자유가 더 이상 방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다시 인형으로 돌아가서 수없이 많은 끈으로 조정될 수는 없었다.

[124]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124] 부모로서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 너머 함께 즐기고 어울리며 공유하는 친구로서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126]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다닌다.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세상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 사이에서, 이익과 마땅함 사이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편함과 배려 사이에서 우리는 늘 잠시 망설이게 된다.

[138] 언어의 표현 방식을 넘어 교류되는 정신적인 교감은 자연이 우리의 마음을 여는 방식이다.

[140] 현실이란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남들의 생각.’ 즉 다른 사람들의 견해일 뿐이다. 나는 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머슨의 말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그 사람의 성격임을 종종 잊고 지내는 것’ 같다. 누구의 삶이든 그것은 늘 그 주인을 닮게 마련이다.

[140] 얼마 전 작고한 이오덕 선생이 늘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140] 간혹 사랑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믿을 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단 한 번의 미풍에 녹아내릴 수 있을만큼 불안한 것임을 예감하기도 한다. 포도주 빛처럼 매혹적이다가 지독히 역겨운 상화응로 변전하기도 하고, 평화로운 푸른 바다 같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해일로 돌변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동반이기도 하고, 함께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기를 바라기도 한다. 사랑은 가장 극적이고 가장 드라마틱하고 가장 빠져들기 쉽고 가장 상처받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그게 사랑의 매력이다. 사랑의 개념은 불변하는 것이지만, 그 구체적 모습은 천변만화의 격정이다.

[142]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바다의 물결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145] ‘풀님에게 기도합니다.
당신을 밟고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내가 지나갈 때 당신이 고개를 숙여야 할 지라도
내가 죽으면
나 역시 당신의 자매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도다. 풀과 나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다. 우리는 같다.

[152]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하나의 씨앗처럼 날려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생각인지, 나의 생각을 가장한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오리진이 어디에 있든지, 분명한 진실은 나의 것이 된 생각들, 즉 이미 ‘내게 귀화한 생각’들이라는 점이다.

[153] “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할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고, 그 일의 가치게 빛나는 일을 하며,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로댕의 말을 잊지 마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164] 제퍼슨이 존 에덤스에게 보낸 편지 속에는 우리가 죽어야 할 이유가 잘 나타나있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무르익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또 다른 성장을 이루어야 할 바로 그때가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쓴 후에 남의 것을 탐할 수는 없겠지요.”

[165] 문명의 본질은 오랫동안 뿌리깊게 자리잡은 사냥꾼의 습성과 겨우 최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168] 노자의 도는 버리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형태를 떠나 자신을 잃어버리는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자연과 함께 자연을 따라 떠나는 것이다. 나이와 함께 현명함이 자라, 이윽고 극칭 달해, 현명함이라는 언어적 속박을 벗어나 용처럼 구름 속에서 노니는 것이다.

[177] 릴케처럼 말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신이여, 우리 각자에게 합당한 삶을 주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삶에 걸맞은 ‘합당한 죽음’을 주소서.”

[183] 아직 살 시간이 남아 있을 때는 과거의 일들이 추억으로, 현실과 이어지는 원인으로 남아 있다고 인식하겠지만, 마지막 숨은 이런 모든 것들 역시 한순간에 일어난 찰나의 것들임을 증명해줄 것이다. 원인도 결과도 없이, 느닷없는 장면들의 중첩으로 떠오를 것이다.

[195]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많은 착오를 범하고 싶다. 지금 살았던 것보다 더 어리석게 행동하고 싶다. 사실 인생을 살며 심각한 일이 어디 그렇게 많겠는가? 그러니 더 미친 척 행동하고 싶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이며, 더 많은 여행을 할 것이며, 더 많은 산을 오르고 더 많은 강을 건널 것이다. 또 아이스크림도 원 없이 먹을 것이다. 그 대신 콩은 조금 덜 먹을 것이다.오! 나 자신만의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난 나에게 속한 더 많은 시간을 경험해보고 싶다. 내가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다니고 싶다. 회전목마를 더 많이 타고, 더 많은 일출을 보고, 더 많은 아이들과 놀 것이다. 내가 다시 한 번 살 수만 있다면.’

[229] 책을 통해서만 사상을 더듬는 일당들,
책을 짓눌러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일당들,
머리를 종이 위에 처박고 있는 일당들,
부디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하여 ‘진리의 노예’가 되지말고, ‘지혜의 친구’가 되시라.

[241] 차례를 보고 몇 장 넘겨보면 매력을 살살 풍기는 책들도 있다. 나는 그런 책들을 본다. 그러나 그들이 쳐놓은 사유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살금살금 걷듯 본다. 나는 단번에 매혹시키는 도약을 즐긴다. 물론 내가 이해할 수없는 도약을 만들어놓은 책을 애써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의 눈으로 책을 본다. 이미 마흔이 넘은 사람이다. 이미 삶의 웬만한 구석들은 혀로 핥아본 사람이다. 저자의 권위에 눌려 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해한 것을 생활 속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도 바쁜 일인데, 언제 그들의 중언부언을 들어줄 시간이 있겠는가?

[244] 이성의 작은 촛불을 끄지 않고는 대우주의 별빛을 볼 수 없다. 가까운 작은 산이 먼 큰 산을 가리고 있듯이 작은 지식은 늘 큰 지혜를 가리고 있다.

[251]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미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려면, 내가 새로운 일상을 하나하나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이어야한다. 그 새로운 일상이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내 삶을 그들에게 의미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256] 도전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일 수 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 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것이다. 세 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성공도 실패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266] 죽어 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흥미가 살아나고 열정이 살아나고 삶이 살아난다. 그리고 끊임없이 실험하게 된다. 실험이 곧 창의성이다. 글쓰기에서의 실험이나 사업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모색은 다를 바가 없다. 글쓰기와 사업은 업종은 다르지만 같은 특성을 요구하는 행위라 말해도 좋다.

[280] 다른 사람의 영우이 되기를 거부하는 영웅, 자기 자신의 영웅은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지키고 이끌어간다.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영웅, 이들이 바로 ‘유일한 자’들이다. 자신의 소우주를 가지고 있는 작은 왕자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우리는 유일함을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비범한 사람으로 자신을 안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치 않은 위대한 이야기’로 전환된다.
‘유일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숙달해야 한다. 손과 머리 사이에 자연스러운 교감과 조화가 이루어지면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나 최고는 늘 기계적 익숙함에 다시 한 번 저항한다. 일단 숙달하면 일탈한다. ‘불온한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다른 방식을 찾아보고 새로운 방식을 다시 익힌다. 다시 배우는 불편과 새로 배우는 흥미를 반죽하면 일상은 다시 깨어나고, 일은 같은 일이지만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애인이 아내가 되고, 아내가 다시 애인이 된다.

3. 내가 저자라면

책을 3주째 걸쳐 읽었다. 생각할 꺼리가 많음에도 그 이유가 있었지만 나의 생활과 사유의 동질성 발견,그리고 내가 갈망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을 일상으로 옮기신 그 아찔함에 중독되었음이다.
나의 삶이 거침없었다고 생각 했지만 실타래를 끊어버리지는 못했다.
타인이 무서워서 라기보다는 나에 대한 작은 배려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생활이 나를 죄어오고 사유의 밭이 산성화 되어갈지라도 한 길에 나란히 섬이 내 몸의 울림이라고 판단했다.
내면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기울이기 시작했다. 나의 참 목소리를 듣고자 했고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글을 대하면서 순간순간에 절망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내가 살 집을 가로채셔서 먼저 사 버렸다는 생각을 가졌고 내가 나무를 사랑하는 방식을 살짝 훔쳐다가 옮겨 적어놓았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기 까지 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시는 것은 내가 음악을 듣고 그 감흥을 글로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을 따라하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가족을, 죽음을, 그리고 삶을 바꾸어 나가는 방식에서도 그러했다. 지난 번 연구원 모임에서 선생님과 나, 그리고 소라가 기질이 같다는 것을 몰랐다면 큰 착각이라도 할 뻔 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산맥 같은 생각과 행동성은 나의 범위 밖이었다. 경이였고 나에 대한 질책이었고 새로운 눈뜸이었다. 그 경이는 나에게 지극히 따듯한 온기로 다가왔다. 그 온기에 힘입어 나는 내 과거의 일상들을 모두 꺼집어 내기로 했다. 그들을 썩혀야 했다. 고약한 냄새를 두려워 한 나머지 숨기고 피하고 때로는 쳐박아 두기까지 한 내 과거의 한올한올을 모두 꺼집어 내는 작업을 들뜬 마음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선생님의 온기가 힘을 실어주었다. 화해할 일은 화해하리라. 미안해 할 일은 충분히 미안해하고 울일은 실컷 울것이며 눈물을 닦아 줄 일은 밤새껏 닦아줄 것이다.
책을 읽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설움의 눈물을, 그리움의 눈물을 한껏 쏟았다. 그것이 박남준의 글 때문이건 선생님의 ‘행복해 지는 법’ 때문이 건 상관이없다. 나는 오랜만에 지극히 평온해 졌고 또다른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무작정 새벽을 쏘 다니던 수많가지의 갈래길에서 내가 마음에 드는 오붓한 길을 선택할 배짱을 가지게 되었고 선택에 따른 책임도 기꺼이 받아드릴 자세도 조금은 갖추었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몸짓으로 나타내리라. 그리고 작은 일탈부터 내 일상에 끌어들이이라. 그가 머지 않아 반찍이는 내 아름다운 강물이 될것이라는 믿음의 출발에서.
IP *.86.177.103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7.07.23 16:55:40 *.72.153.12
^______^
전 알사탕을 으득득 깨물어 먹는 우제님과는 다른 기질을 가졌어요.
그래도 사부님 책이 울게만들고 웃게 만들었습니다.
조용한 리뷰 잘 보고 갑니다.
프로필 이미지
정희근
2007.07.24 12:00:45 *.124.218.100
샬롬!
조금은 침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때에 우제님을 만나게 됨이 위로가 됩니다.
"충분히 썩어져 비옥해진 과거"
이 문구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흥을 다시 살려냅니다.
단숨에 다 읽고는 흥분했던 지난 시간들이 기억납니다.
다시 끄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마음의 평정을 빨리 찾아야 하는데, 이것은 결코 저의 맘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닌것 같아서....
알사탕 - 저도 으거적 깨물어 삼켜 버리는 스타일인데, 사부님과 우제님은 그렇지 않을 거란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됩니다.
빨리 현장으로 가자고 재촉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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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07.24 22:05:54 *.86.177.103
정화씨 쑤욱 커가는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정희근 님 방학 때 경주에 가면 뵐 수 있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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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24 22:56:38 *.70.72.121
자유를 동경하는 언니를 늘 느껴... 튕그러져 나가고 싶어하는 빽빽히 들어선 숲 그늘의 어떤 나무... 그런데 그 많은 일들을 해대는 초인적인 정신과 힘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머니 신이라도 내린 걸까? 그 나무만을 때리는 벼락이라도 맞은 걸까? 더불어 보라돌이님의 정체도 사뭇 궁금해 져요. 사모님은 뵈었거든^^

난 사람의 일부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사는 사람의 역할이 그 사람의 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사부는 홀로 있는 자들을 사람취급 안하시나? 크하하. 싱글에게 휴가 안 주신 걸 끝까지 물고 느러지네. ㅎㅎ 언니라면 큰 소리로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두에게 휴가를 떠나 보내세요. 그래도 우리는 늘 사부님 생각 안에 따로 또 같이 갇혀 있을 사람들이에요. 믿어주세요, 세검정 챙모자님!하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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