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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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일 07시 55분 등록
1. 작가에 대하여

안대회는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와 동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문학박사이며,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를 거쳐, 현재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담백한 글 솜씨로 옛글과 옛사람의 삶을 구수하게 풀어내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는 탄탄한 실증적 자료 수집과 해석, 그리고 연구에 10여 년을 몰입해온 한문학자의 내공이 숨어 있다. 주로 영웅이나 큰 사건에 의한 역사보다는 서민생활 위주의 사소한 역사에서 소재를 찾고 있다. 저서로는 『선비답게 산다는 것』, 『18세기 한국한시사 연구』, 『조선후기 시화사 연구』, 『7일간의 한자여행』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산수간에 집을 짓고』, 『한서열전』, 『궁핍한 날의 벗』, 『북학의』 등이 있다.


2. 나에게 다가온 책

가. 창조적 부적응자들

10명의 조선 프로페셔널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와 닿았던 부분이 바로 ‘부적응자’라는 단어였다. 꿈 벗을 지칭하는 다른 말로 창조적 부적응자라는 말과 묘하게 매치가 되었다. 아마 현재에 같이 살았더라면 분명히 꿈 프로그램에서 만났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경직된 계급사회와 좁은 세상에서 그들은 스스로 적응하지 않았고, 그들만의 세계를 추구하였다. 그들은 성별과 신분, 명예와 재물을 뛰어 넘었으며 각지 자기 분야에 목숨을 걸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대의 벽을 뚫고 나와 자기만의 직업을 가졌다. 구본형 선생님 말씀대로 자기가 만든 직업이요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나. 역사속에 숨겨진 일상의 이야기들

역사를 배우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간 방법이었다. 처절하고 시대의 요구에 맞서고 가장 바쁘게 살다간 영웅들, 그들만의 리그에서 영웅을 제외한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궁금하였다. 부초처럼 살다간 사람들의 삶은 역사가들이 관심을 끌지 않아서인가 생각했다. 영웅들의 역사가 큰 강줄기라면 그 밖의 사람들은 곁줄기에 지나지 않아서인가. 그런 의미에서 기인처럼 살다간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조선의 경직된 계급사회보다 더 자유로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다. 자유스러운 시대지만, 나름대로 전문가 대열로 올라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옛날과 달리 전문가 자리를 확고히 하면 명예와 재물이 생긴다. 영웅들과 그렇지 못한 사이에서 고민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간 그들이 더욱 새롭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영웅으로 불려지지는 않았다. 대신 한 알의 밀알이 되었고, 꽃씨가 되었다. 정철조의 지도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라는 커다란 나무를 만드는 밀알이 되었고, 운심의 검무는 다른 무용을 만드는 씨앗이 되었다. 그들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하여 자연을 찾았고, 독한 술을 찾았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자기만의 고고한 소명을 버리지 않았다. 세상과 자신을 조건 없이 바꾸었다.

다. 기록의 중요성

역사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기록이라고 본다. 아쉽게도 10명중 자신의 저서에서 그들의 활동상을 찾은 사람은 적다. 대부분 같은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글에서 나온 것을 저자가 찾아낸 것이다. 채제공이나 유득공의 글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확실하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글과 그림이라고 본다. 최천약이 만들었다는 자명종이나 각종 기구는 아직 현존하는 것이 없다. 운심의 검무도 남아있질 않다. 다른 사람의 글속에서만 살아있다. 지난달에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다시 펼쳐 보았다. 한 분은 임진왜란 중에 개인의 심경을 기록하였고, 한분은 자신의 인생을 아들에게 유서형식을 빌려 썼다. 영웅적인 모습 외에 너무나 인간적으로 괴로워하는 부분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놀라웠다. 조선시대에 가학(家學)위주의 학문이 당파와 파벌을 주도하였고, 치열한 싸움의 결과 패자에게는 기록을 남길만한 여유도 주지 않았다. 아울러 많은 전란과 일제의 침탈, 한국전쟁의 참화속에서 그 기록이 온전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록에서 찾은 10여명의 프로들도 동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들의 기이한 행동이 그들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 같다. 기록은 역사에 나를 드러내는 방법이고 나의 과거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무한한 기회인 것 같다.

라.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구본형 선생님의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은 세상과의 싸움을 의미했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은 처음에는 규제하고 강압하며 표준을 바라는 세상과의 싸움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원칙이 통용되는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려는 ‘일반의 세계’ 군중의 세계와의 오랜 싸움을 전제로 했다. 자신의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307p)


아마 여기에 나온 열명의 프로페셔널도 나름대로 독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자긍심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초창기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이기기 위하여 독심을 품었을 것이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술과 친구가 되었고 자연을 벗 삼았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시대적 보호막을 뚫을 수가 없었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고 바로 죽음과 결부시키기도 하였다. 아마 한 순간도 여유롭거나 마음속으로 즐기지는 못하였을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만이 잘 할 수 있는 재능이 그 소통의 핵심이 되었을 것이다. 재능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장막을 뚫었을 것이다. 나의 시대는 어떠한가? 나는 이럴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세상에 나 혼자 달랑 떨어진 곳에서 다시 헤쳐 나올 수 있을까? 현대의 시대로 볼 때 가장 아쉬움을 주는 사람이 운심과 이단전이다. 아마 현대에 태어났으면 세상을 주름잡았을 것이고 일세를 풍미한 예술가가 되었으리라.

3. 가슴을 치는 구절

<지은이의 말>

(6p) 역사지식으로 알고 있는 위인들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로 본받아야할 모범들입니다. 이 책은 그런 인물들을 배제하고 의도적으로 지금까지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분야의 프로페셔널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7p) 18~19세기 지성인들 가운데 일부는 우리가 간과했던 이런 인물들에 대해 기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하고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 깨어있는 지성인들의 시선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와 인간들을 조금이나마 조명할 수 있다면 역사와 문화는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8p)조선시대는 신분의 제약이 강했고, 의식이나 지향이 획일적이며, 직업의 귀천도 분명했습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직업과 신분, 가능성과 기대를 팽개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낯선 분야를 개척하는 전문가로 발돋움 한다는 건 평범한 용기나 집념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비좁은 사회가 끈끈한 테두리로 둘러져져 있어 동류집단에서 튀는 발언과 행동을 시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낯선 영역을 찾는 것은 보통 주류사회로부터 일탈을 의미하거나 반항적인 행위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들은 인생을 걸고 자신의 일을 함으로써 그런 숱한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결코 취미로, 여가생활로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9p)그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벽(癖)과 치(痴)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벽과 치만으로 이들의 삶 전체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가지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마니아 또는 폐인 역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전 단계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마니아의 세계에서 한 단계 비약하여 그 분야 최고가 되기를 꿈꾸었고 결국은 성취하였습니다.

(9p) 그처럼 힘든 길을 걸으면서 이들이 자신을 다 잡은 힘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부심과 자의식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과 자존심,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 그리고 오기입니다.

(9p) 유박(원예가)- 이십년동안 화원을 경영했고, 거기서 쌓은 전문지식과 감상의 안목으로 화암수록이라는 전문서를 지었고, 최천약- 칼을 잡으면 무슨 물건이든지 그대로 새기지 못하는 것이 없다. 책장수 조선신- 천하의 책이란 책은 모두 내 책이지요. 책은 아는 천하 사람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게요. 운심과 최북- 약산은 천하의 명승지요, 운심은 천하의 명기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한번 죽는 법,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더없는 만족이다.

(10p) 치열함과 열정은 간혹 자신의 몸을 갉아먹습니다. 자신의 혼을 넣어 프로가 되기 위한 길은 자신의 영혼과 몸을 불태워 버리기도 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처세의 달인들은 앞서나가는 사람 거꾸러뜨리기를 잘합니다. 현실의 냉혹함과 좌절의 시련을 안기고 프로들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들의 몸부림이 때로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몇 사람은 그 말로가 불행하기도 했습니다. 정철조나 최북, 이단전이 그렇습니다.

(13p) 이 책은 이백년 전에 자신이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한 사람들을 조명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작업입니다. 지금 보기에는 진정한 프로라고 말하기에 부족하고, 그들의 의식도 낭만적이고 승부욕도 약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성은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프로정신이 금전으로 바로 계산되지만, 당시에는 금전보다 역사와의 승부였습니다. 그들은 목숨과도 바꿀만한 매력적인 자기 분야를 개척하여 최고가 되기 위해서 조건없이 한 가지 일에 도전한 사람들입니다. 영혼을 불어넣어 자기 삶을 완성한 아름다운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케케묵은 문헌의 검은 글자들 사이에 그들을 불러 깨우는 작업이 내내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01 여행가, 정란> 천하의 모든 땅을 내 발로 밟으리라

(21p)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과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현대인은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더욱이 가까이에 있는 자연을 벗어나 먼 나라, 광대한 대륙을 밟는 여행은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탈주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인식과 존재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좁은 세계에 웅크리고 사는 답답함을 깨뜨리는, 넓은 세계로의 여행은 상상만 해도 꿈에 부풀게 한다.

(24p) 18세기 후반, 창해일사(滄海逸士)란 호를 사용한 정란(1725~1791)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정란은 그저 여행이 좋아서 조선 천지를 발로 누볐다. 종으로는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횡으로는 대동강에서 금강산까지, 산천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천생 여행가였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내용을 글로, 그림으로 남겼다.

(27p) 그는 현실도피라기보다 여행자체가 주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긍정했다. 그는 낯선 세계에 대한 모험의 욕망으로 끓어 넘쳤다. 정란의 성격도 평범한 인생에 안주하기를 싫어하였다.

(33p) 허둥지둥 세상사에 얽매여 이해에 정신을 놓고 마는 속물과는 다른 특이한 인간임을 발견한 것이다. 정란의 여행은 사람들의 무딘 감각을 일깨워 큰 세상,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묻게 만들고 있다.

(45p) 당대 최고의 화가가 그린 명작 속에 당대 최고의 여행가 정란이 우연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세상을 오시하는 자태와, 누가 뭐라든 열정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면에서 화가와 여행가는 통하는 데가 있다.

(47p) 물론 쉰 다섯살 노인에게 백두산과 한라산을 오르는 일이 생각만큼 쉬울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힘이 있어” 라는 말이 더욱 비장하게 들린다.

(51p) 정일사(鄭逸士)가 역내의 많은 승경지를 두루 노닐고서도 오히려 역외의 명산을 보지 못한걸 한스럽게 여겼다. 나는 일사에게 일렀다. “절세미인을 사모하는 자가 미인을 한번 보고는 바로 마음이 심드렁해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요. 차라리 오랜 세월 마음에 놓아두고 혹여라도 한번 만나기를 기다리는 게 낫겠소”

(55p) 정란은 여행에 인생을 바친 선비이다. 온 나라 안의 어린아이들과 종들조차 그를 창해선생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대적인 개념으로 보자면, 여행가, 산악인이라 이름 지어 부를 만큼 열성적인 산수벽의 소유자로, 18세기 문화계의 한 마니아로 기억될 인물이다.

(57p) 선비 정란은 남들이 추구하는 삶과 다른 삶을 살았다. 이백년 전에는 전문적인 여행가의 삶은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행위는 종종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이용휴는 수백년 뒤에는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기다려 보자고 했다. 지금 사람들은 이용휴의 질문에 무어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02 바둑기사, 정운창> 승부의 외나무 다리를 걸으며 오른 반상의 제왕

(62p) 조선사회는 바둑을 몹시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여가에 즐기는 여기(餘技)나 소기정도로 간주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인다.

(69p) 20세기 한국 현대 바둑계에서 제 1인자의 계보를 이어가는 기사는 모두 호남출신이다. 조남철은 전북 부안, 김인은 전남 강진, 조훈현은 전남 영암, 이창호는 전북 전주, 이세돌은 전북 신안출신이다. 고금에 걸쳐 쟁쟁한 기사는 유달리 호남출신이 많다. 국수의 전통이 백제 이래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도 맥이 닿아있다.

(76p)‘재능을 지닌 선비가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불운’을 말하는 독백에는 비장미가 감돈다. 초고의 고수와 겨루는 목적을 부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깐사이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야말로 ‘쿨’하고 멋진 승부욕이 살짝 드러난다.

(86p) 어느 겨울밤 김종귀가 정운창을 초청하여 고기와 술을 대접하고 가슴속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는 장면이다. 두 국수의 대화가 몸시 장중하다. 김종귀는 아주 조심스럽고도 정중하게 정운창에게 부탁한다. 그렇지만 핵심은 당신이 등장하여 나를 현격한 솜씨로 이겨서 옛 명성이 사라진 건 말할 것도 없고, 자기에 대한 존경과 대우는 달라졌으니, 자기 체면을 보아 가능하면 대국을 피하거나 저주기도 했으면 하는 데 있다. 그 말을 정운창이 이해하지 못했을리 없다. 정운창은 흔쾌히 수락하고 그 이후 김종귀와 대국하려 들지 않았다. 한 시대 국수의 자긍심을 지켜주려는 배려였다. 눈 덮인 지붕 밑에서 비장하면서도 훈훈하게 진행되는 대화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정운창이 평범함 기사가 아니라 협기를 지닌 대장부로 다가온다. 추한 거래로 보이기보단 선배국수를 배려하는 감동어린 장면으로 보인다.

(86p)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승리한 자에게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고 패배한 자에게 모욕과 창피가 가해져 무대뒤로 사라지는 건 고금의 차이가 없다.

<03 화가, 최북> 내 붓 끝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태어난다.

(101p) 조선후기에 인간의 개성과 자의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낸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화단이다. 그림 자체가 전문적 수련과 집중이 필요한 예술일뿐더러, 화가들이 민감한 감각과 자유정신에 충만해있기 때문이다.

(109p) 붓 끝으로 먹고 산다는 말은 최북의 의도적 거짓말로, 실제 의도는 다른데 있다고 했다. 칠칠이 붓으로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의중을 담고 있듯이, 호생관에게도 화가의 붓끝에서 보살과 같은 위대한 존재를 탄생시킨다는 자긍심이 담겨있다. 도도하고 편벽된 최북의 성품으로 보아, 스스로를 비하하는 호칭을 쓴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110p) 어떤 귀인 하나가 최북에게 그림한점을 그려달라고 했다가 얻을 수 없게 되자 최북을 협박하려 하였다. 최북이 화가 나서 “남이 나를 저버린 게 아니다. 내 눈이 나를 저버린 게야!”라고 하더니 바로 제 눈 한쪽을 찔러 멀게 하였다. 늙어서도 안경알 하나만을 걸쳤을 뿐이다.

(124p) 그림은 대 뜻에 맞으면 그만입니다. 세상에는 그림을 아는자 드뭅니다. 그대의 말대로라면, 백 세대 뒤의 사람이 이 그림을 보면 그 사람됨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 저는 뒷날 저를 알아주는 지음을 기다리렵니다.

(136p) 최북의 말년은 비참했고, 그의 죽음 역시 참담했다. 그가 죽은 뒤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달랐다. 누가 무어라 하든 그는 온몸으로 개성과 자유를 발산한 예술가였다. 그의 행동은 이해받지 못했으나 그의 예술은 시대가 흐를수록 한결 빛난다.

<04 조각가, 정철조> 조선의 다빈치

(146p) 정철조는 호가 석치(石痴)이다. 석치란 글을 풀이하면 돌 석에 바보 치로 돌에 미친 바보라는 뜻이다. 여기서 돌은 벼룻돌이다. 그러나 벼루를 깎는 데 미친 바보다. 정철조는 벼루 깎는 것을 취미와 예술로 삼은 최초의 한국 사람이 아닌가 한다. 생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은지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벼루를 잘 깎는 명사로 그의 호는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의 예술적 감각이 당시에 유명했다는 징표다.

(167p) 정철조가 행한 과학연구의 결과 가운데 족적이 남아있는 것은 지도다. 조선 지도학의 계보를 잇는 아주 중요한 제작자의 한 사람이 바로 그다.

(176p) 제 뜻을 마음 껏 펼치지 못한 천재 정철조는 위대한 학자이기에 앞서 멋진 술꾼이었다. 인간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한 사람의 인간이 공유하기 힘든 다채로운 분야에 모두 정통할 수 있는 걸까? 그는 주량이 대단히 셌지만 술을 마음껏 마실 정도로 집안이 넉넉지 못했다. 그래서 소주라도 얻을라치면 막걸리를 사다가 한데 섞고, 커다란 자기를 가져가 술잔 삼아 마시고는 혼돈주라 불렀다. 일종의 폭탄주를 제조하여 마신셈이다.

<05 무용가 운심> 검무로 18세기를 빛낸 최고의 춤꾼

(209p) 검무가 몇 십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춤으로 발돋움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유례가 없는 역동성이 세상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역동성에 비례해 춤의 끝난 뒤의 정적은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다. 그 때문에 박제가도 “좌석이 텅빈 것 같이 고요하여 말이 없다”고 묘사했으리라.

(211p) 신분의 차별, 남녀의 차이, 나이의 차이 등등이 그들 사이에 놓여졌지만, 예술이라는 차원에서는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런 점에서 운심이 윤순과 나눈 사랑도 이해할 수 있다.

(214p)“약산은 천하의 명승지요, 운심은 천하의 명기(名妓)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한번 죽는 법,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더없이 만족이다.” 는 발언은 오만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검무라는 자기 예술의 성취에 대한 당찬 오기가 아닐까? 다른 이들이 무어라 하든 자기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세속의 질곡과 자기통제 속에 가두어 두고 있다가 술기운과 명승지의 장관 앞에서 우연히 발설한 것이리라.

<06 책장수, 조신선> 세상의 책은 모두 내 것이니라

(220p) “탐독완시(耽讀翫市), 우목낭상(寓目囊箱)” 이란 구절은 “독서에 빠져 시장을 돌아다니고, 눈을 한번 거치면 주머니와 성자에 넣어둔 듯 기억한다.”는 뜻이다 책을 사지 못해 고생스럽게 공부한 가난뱅이 학자를 묘사한 구절로 후한 시대의 저명한 삭자인 왕충의 사연을 바닥에 깔고 있다. 집이 가난하여 책을 사지 못한 왕충은 늘 낙양 저잣거리로 나가 서점을 돌아다니며, 파는 책을 뒤적거리는 척하며 모두 외웠다. 그는 나중에 온갖 학술에 정통한 유명한 학자로 성장하였다.

(225p) 조선왕조는 정책적으로 서점의 설립을 금하거나 억제하였다.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정책인데 그에 따라 서적은 떠돌이 장수인 서쾌가 담당하게 되었다.

(234p) 조수삼은 그에게 특이한 점이 있는 것에 주목하였다. 어디를 다니든 조신선은 책을 파는 장수답지 않게 걷지 않고 늘 뛰어다닌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마치 나는 듯이 뛰어다녔다. 조수삼은 그런 그를 ‘뛰어다니는 사람’ 이라고 곳곳에서 언급하였다. 해가 뜨면 밖으로 나와 “저잣거리고 달라갔고, 관아로 달려갔고, 골목길로 달려갔고, 서당으로 달려갔고, 관아로 달려갔다.” 책을 파는 일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객을 기다리지 않으며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뛰어다니는 열정적인 서적외판원의 모습이었다.

(242p) 천하에 책이 없어지면 더는 책을 팔려고 달리지 않을 것이며, 하늘이 자기에게 책을 팔라는 직업과, 책에 대해 모두 알라는 주문을 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책이 있는 한 책을 팔러 다니겠다는 말이다. 책장수로서의 소명의식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245p) 장서를 대대로 지키는 건 그 집안의 위의(威儀)를 지키는 것이고, 그 집안의 현재와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중요한 징표였다. 심지어는 국가조차도 그렇지 않은가? 조선의 국운이 기울자 조선의 가치 있는 책이 먼저 대거 일본으로 넘어간 것을 보라. 집안이 망하기 전에 먼저 그 집안의 책이 세상으로 흩어진다. 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정말 가슴 저린 일이 아닐 수 없다. 허나 책을 모으기는 어렵지만, 책을 흩어버리기는 너무 쉽다.

(246p) 책을 모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경험한 자 만이 안다. 그러나 그것을 간수하기는 더욱 어렵다. 세력이 있는 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얻는 것이 책이요, 관심 없는 자는 책을 사는데 한 푼 돈을 들이는 것도 아까워하는 것이 또 책이다. 가난한 학자가 어렵사리 사방을 다니며 구해놓은 책이 자신이 변변치 않아서, 도둑을 맞아서, 또는 가난 때문에 사라질 때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절절하게 묘사된 시다.

(253p) 18세기 중·후반은 조선왕조의 문예 부흥기였다. 조정을 비롯하여 사대부, 나아가 평민·천민까지도 학문과 예술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성숙시킨 것은 수많은 서적의 출간과 유통이었다. 조신선은 지금으로 치면 아주 뛰어난 북 마케터이다. 서적이 널리 보급되어 사회 전반의 지적욕구가 충만해지던 시기에 이름없이 그 역할을 담당한 직업인들이 서쾌였고, 조신선은 그 서쾌들의 한 대변자가 아니었을까?

<07 원예가, 유박> - 번잡한 세상을 등진 채 ‘꽃나라를 세운 은사’

(262p) 꽃을 가꾸는 기원 주인이야말로 비단을 짜는 여인보다도, 조화의 비밀을 표현해내는 시인보다도 더 자연이 선사하는 진정한 빛깔, 진정한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요지다. 꽃가 나무가 잘 가꾸어진 정원을 거닐다 보면, 이가환의 생각에 공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63p) 유박은 영·정조 시대의 화훼전문가이다. 본인이 직접 백화암이란 화원을 경영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화암수록』 이란 화훼 전문서를 지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이 책은 조선전기 강희안이 저술한 『양화소록』과 짝을 이루는 소중한 저술이다.

(269p) 유박은 과감한 선택을 한다. 평생 꽃을 키우며 살겠다는 선택이다. 전통적 세계관을 보자면, 대장부가 꽃에 관심을 두는 건 완물상지(玩物喪志-사물에 탐닉하면 의지가 손상된다)의 자세라고 하여 비판받았다. 선비들의 세계에서는 정치나 교화, 경서 등을 제외한 다른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완물상지라 하여 경계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285p) 작약: 귀우이다. 꽃의 재상이다. 금사낙양홍, 천엽구, 천엽순홍이 귀한 품종이다. 가을에 파종하는 것이 좋다. 작약은 한번 화가 나면 삼 년 동안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럴 때는 반드시 인분을 주어 화를 풀어주어야 한다.

(290p) 유박은 꽃 사랑을 실천하여 백화원을 경영한 원예가이다. 우리가 원예가라고 부를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화원을 만들어 꽃과 더불어 인생을 아름답게 살며 그 즐거움과 지식을 저서로 남겼다. 남들이 추구하는 인생과는 몹시 다른 그만의 색다른 길을 선택하여 그 세계에서 전문가가 되었다. 그 시대에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아간 분이라는 찬사를 바치고 싶어진다.

<08 천민시인, 이단전> “그래 나는 종놈이다.” 외친 천재 문인 - 천상병 시인 생각이 남

(304p)그에게 인생이란 술을 마시고 시를 쓰는 것 뿐이었다. 그는 “인생 백년이란 그리 길지 않다. 쌀과 소금, 땔감과 기름에 머리를 쳐박고 사는 것은 슬픈 일이다. 술은 청주·탁주를 가려서는 안되고, 시는 고고하지 않으면 신기하지 않는다.” 늘 말을 한 적이 있다. 허무의 냄새가 풍기는 발언이다.

(326p)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부귀란 수레바퀴가 구르는 것과 같아. 나는 패하지 않는 부귀를 본적이 없어. 해진 옷 한 벌에 막걸리 한 잔이면 나는 족해. 죽으면 바로 그 자리에 묻어줘. 허나 이 삶 앞에 있는 숲과 물, 바람과 달은 어쩌면 좋아!” 어딘가 무척 쓸쓸해 보인다. 그가 남긴 시집도 누군가의 보관되어 있을 뿐 간행해준 사람은 없다.

(329p) 이단전, 그는 “그래 나는 종놈이다!” 며 세상을 조롱했다. 노비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문화에 참여하려 했던 한 종의 처절한 삶이,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맑고 고고한 심상의 시로 남아있다.

<09 음악가, 김성기> 나는 학을 내려앉게 한 현악기의 거장

(348p) 김성기의 시조는 김중려가 기록해 가지고 있다가 김천택의 『청구영언』을 통해 세상에 널리 전해졌다. 김천택은 그의 시조를 불러보고서 “세 번을 거듭하여 읊조려보니 산수에서 질탕하게 즐기는 흥취를 얻은 노래로, 말 밖에 뜻이 저절로 들어났으며, 표연히 세상 밖으로 훌쩍 떠난 느낌이 있다.” 고 했다. 김천택의 말처럼 김성기의 시조에는 물욕에 초연하고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선같은 삶이 묻어나온다.

(367p) 이 장례에는 오로지 제자 둘만이 술과 악기를 들고 참석했다. 어떻게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어 보이나 실은 몹시 엄숙하면서도 비장하다. 술을 따르고 통곡을 하고, 그리고 스승으로부터 배운 음악을 연주하여 저승으로 가는 스승을 보낸다. 음악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스승과 제자만이 교감하는 장례이다. 그 장면을 보는 사람 누구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늘과 땅, 새와 짐승 그리고 바람은 함께 슬퍼했다. 조선시대의 음악인들은 스승의 죽음을 이런 방식으로 추모하곤 했다. 진정으로 위대한 예술은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10 과학기술자 최천약> 자명종 제작에 삶을 던진 천재 기술자

(371p) 바늘의 수입은 조선시대의 기술 수준이 얼마나 낙후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기술자를 몹시 천대한 사회 구조 하에서 기술이 낙후되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엄격한 위계로 백성들의 직업을 줄 세웠기에,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신분이 드러났다. 그런 세상에서 각종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는 위계질서의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하였다.

(373p) 평상시에 오만하게 ‘사람을 다스리는 자 따로 있고,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자 따로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공업 제도에 마음을 쓰려하지 않는다. 물건을 가공하고 사람이 쓸 기구를 제작하는 일을 무지한 사람들에게 전부 맡겨 놓은 채, 보잘 것 없고 지리멸렬한 결과를 가만히 앉아서 당하기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렇게도 이런 일에 생각이 없는 것인가?

4. 내가 저자라면

가. 글의 소재와 구성에 대하여

글의 소재가 되는 열명의 프로페셔널은 직접적인 글을 남긴 사람이 드물다. 최북이 그린 그림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의 기록을 전혀 다른 사람의 기록에서 찾아낸 것이라면, 아마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시 책을 보는 우연과 비슷할 것이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열명의 생생한 흔적들을 찾기 위한 저자의 꾸준한 노력이 슬며시 엿보인다. 기록의 소중함에 비하여 같은 시대를 살면서 이인처럼 살다간 열명의 일면을 슬쩍 글로 건드려 놓고 간 당대를 같아 살아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자본주의가 되면서 천편일률적인 성공신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공한 사람이라는 허울 좋은 개념보다, 오히려 인간미 넘치는 열명의 프로가 마음에 다가온다. 이러한 흘러지나간 기록을 뒤져내어 열명을 다시 현재에 복원시켜 놓았다는 점이 좋았다. 책의 구성도 열사람 각자의 전기를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각기 다른 열사람과 비교가 되었고, 각기 다른 직업 속에서 그들이 세상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기록이 적다 보니 중간 중간 단절이 조금 아쉽기만 하다.

나. 열명의 프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저런 숨어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역사가 이어져 왔고, 문명의 발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경탄과 즐거움을 주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로 불러온 열명에 대한 대우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점이다. 열사람 모두 자신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여 꽃피웠고, 시대적인 벽에 가로막혀 평생을 기인으로 살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느낌을 들었다. 물론 기록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들의 한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자료와 간접적인 사료로는 한 사람의 전체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불확실의 시대, 불안의 시대에 자신만 믿고 꿋꿋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지혜가 오늘날 우리에게 그냥 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세상을 알아가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시대를 잘못 태어났어도 절대 꺾이지 않는 나만의 그 무엇을 가지고 살았다. 너희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호되게 나무라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나에 대한 아쉬움도 많다. 조상들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가 담겨있는 서적을 보고도 한문에 까막눈이라 제대로 볼 수 없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늘 이렇다. 언제나 이 답답함을 지울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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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31 23:23:25 *.72.153.12
리뷰 잘 봤습니다. 책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감성이 살아나는 가을에 읽는 것은 좀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리뷰만 보아도 슬픔이 몰려와서 책으로 10명을 만났다가는 감당 못 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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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8.01 07:58:39 *.99.242.60
삶의 단편적인 흔적도 그들의 삶에 대한 연민이 드는데,
정작 본인들은 어떻게 하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술을 좋아하고 세상과 싸웠지만 따뜻하고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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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8.01 10:35:20 *.75.15.205
자네는 전생에 학자였나벼. 지독시리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남달리 고전에 애착을 갖는 것도 가만보면 선비기질이 있는 것도 같어. 밀짚모자에 밭갈이 할 때는 우직한 소같으고 말여. 언젠가 한자능력시험도 패스하고야말 것 같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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