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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4일 21시 10분 등록
김광우/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 미술문화 /2003

우리동네 도서관은 현대식 새건물이라 널찍하고 부대시설이 좋아보이는데, 서고는 그다지 넓지않다. 여성학, 심리학 등 한 분야에 할애된 책꽂이가 1개에서 4개정도라 아주 만만하다. 나의 레이더에 무언가 걸려들기를 바라면서, 서가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는다. 그러면서 역시 책의 제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의외로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제목이 많다. 그리고 전혀 이끌림이 없는 제목도 너무 많다.

오늘은 문득 건축, 미술쪽 책이 보고싶었다. 그림이 보고 싶었다. 서가를 훑어보는데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그림으로 확 쏠리는 느낌이 든다. 이건 뭐지? 내가 아름다움에 목이 말랐나? 별로 아는 화가가 없으므로, 사실주의는 심심해서 빼고, 고흐는 너무 흔해서 빼고,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라는 책을 골랐다. 세 화가별로 한 가지 그림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 - 해골같은 얼굴이 그야말로 절규하고 있는 그림, 쉴레의 선병질적인 자화상을 처음 보았을 때 조금 놀랐다. 아주 예민하고 고달픈 자의식이 그대로 살아있는 그림이었다. 퀭한 눈이 뭐라고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현란한 모자이크로 치장된 클림트의 그림은 판넬가게의 단골이 아니든가.

“예술은 모방이다”의 전통주의를 부정하는 모더니즘 계열에는 많은 미술운동이 발생했다. 상징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다다주의, 초현실주의, 팝아트... 이루 셀 수 없이 다양한 사조가 출현하였다. 마티스가, “회화는 결국 표현이다”라고 말한 것은, 회화란 눈으로 본 것을 눈에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낀 것을 마음에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뜻이었다. 이처럼 표현을 강조한 마티스는 야수주의 운동을 전개했고, 이는 프랑스 표현주의의 기초가 된다.

표현주의는 회화나 조각을 시각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고의 문제로 본다. 그들은 가시적 세계를 정신의 세계로 전환시키기 시작했다. 자연의 색을 거부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색으로 대신하면서, 과장과 생략을 통해 관람자의 시각과 판단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표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마티스지만, 표현주의 그림을 먼저 그린 사람은 뭉크이다.

뭉크처럼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착한 화가는 드물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잃었으며, 자신도 병에 시달린 뭉크는 끊임없이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고, 이런 의식이 그대로 그림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과 병마가 없었더라면 내 인생은 키 없는 배와 같았을 것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그가 짊어진 공포와 병의 위협은 그림의 모티프가 되어준 동시에, 그를 존재하게 한 이유가 된 것같다.

뭉크의 그림에는 번뇌하고 괴로워하는 자화상,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여자에 대한 증오와 강박관념 같은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있다. 그가 말했듯, 그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과 가장 친밀한 것, 자신의 영혼, 고통, 기쁨, 마음과 피를 제공하였다. 프로이트가 잠재의식의 자물쇠를 학문적으로 열기 전에, 이미 뭉크는 그러한 세계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알려준 셈이다.

클림트의 어떤 드로잉은 현대의 만화처럼 세련되거나 아주 은근하다. 그러나 그림들은 기법이 너무 똑같이 느껴져서 개인적으로 조금 식상하다.

그리고 에곤 쉴레,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자화상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처음 본 것은 “초롱꽃이 있는 자화상” 338page 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100편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다. 거울 앞에서 기기묘묘한 포즈를 취하는 그, 쉴레에게는 자기 자신이 가장 불가사의하고 탐색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였나보다. 또 쉴레는 지독하게 외설적인 그림도 많이 그렸다. 삐쩍 마르고 뼈마디가 툭툭 튀어나온 그림 속의 여자들은 하나도 에로틱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무표정한 가운데 이상한 슬픔을 건네준다.

그대신 나는 쉴레의 “이중 자화상”이 좋다. 330, 332page 역시 퀭한 눈으로 끊임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 기묘하게 꺾인 고개는 지극히 복합적인 내면과 동성애적인 뉴앙스까지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고루하지 않고 현대적이다. 만화나 상업적인 디자인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세련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가미된 음울한 자의식... 그것이 내가 쉴레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1918년 2월 6일 쉴레가 존경하던 클림트가 세상을 떠났다. 쉴레는 클림트의 마지막 침상에서 창백하고 홀쭉한 그의 얼굴을 드로잉했다. 화가는 우상의 죽음을 눈물로 애도하지 않는다. 그가 가진 도구로 추모한다. 쉴레의 드로잉은 죽어가는 클림트에게나 살아남은 쉴레에게 둘도없는 교감과 추앙의 행위이다. 예술가란 이처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진 존재이다. 아름다움의 생산에 목숨을 거는 부류이다. 나는 그들의 영혼이 부럽다.
IP *.209.10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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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7.08.16 17:32:57 *.72.66.253
전 뭉크의 풍경화에서 발견한 느낌표가 참 좋아요. 달이 뜨고 수면에 달그림자가 흘러다니면 .. 느낌표같이 정리된 달과 달그림자 한동안 그 달과 달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느낌표의 신선함에 뭉크대표작 절규를 똑바로 처다보기도 힘든.. 눈이 어디에 먼저 가야할지. 불편함을 씻고 그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에 기뻤기까지 했어요. 승완이가 한 독서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자료에서 느낌표가 표지로 크게 첫장인가 나왔을 때 마침 읽고 있던 서양미술순례기에서 본 그 그림을 떠올리고 혼자 웃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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