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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0일 11시 2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피터 페르디난드 드러커(Peter F. Drucker)는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부친 아돌프는 오스트리아의 재무성 장관을 지냈고,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으로 이주한 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교수로 봉직했다. 그의 모친 캐롤라인은 오스트리아에서 최초로 의학을 공부한 여성으로서, 특히 프로이트의 제자였다고 한다. 드러커의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관자의 모험》(1979)에서, 그는 자신의 집안 형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확실히 1920년대 중엽의 빈의 기준에 비추어서 말하면, 우리집은 아주 부유했다." 10세가 되던 1919년, 그러니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해, 드러커는 빈 김나지엄(Vienna Gymnasium) 에 입학했다.

드거커를 르네상스적 인물로 키운 사람은, 특히 음악과 교육 그리고 사회생활에서의 예의의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영향을 준 사람은 그의 할머니였다. 드러커의 할머니는 손자를 데리고 간혹 식당에 가곤 했는데, 만약 웨이트레스가 친절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꾸중을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기의 일을 존중하지 않고 제멋대로 고객을 접대하는 웨이트레스는 끝내는 불행해질 것이 뻔하다. 그녀에게 무리하게라도 예의범절을 습득시키는 것은 고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을 위해서였단다."

드러커에 따르면, 젊은시절 조모는 피아니스트였다.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96)의 제자로서 스승의 요청에 따라 몇 번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를 위하여 피아노를 친 것이 생애를 통해 최대의 자랑스런 추억거리였다. 물론 당시는 양가의 자녀가 공개 연주가가 된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남편이 타계하고 그녀 자신이 병상에 눕기 이전에는 자주 자선음악회에서 연주했다.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지휘하에 연주한 적도 있다고 한다.

드러커는 할머니에게 피아노와 음악을 배웠고 당시 유명했던 아르투르 슈나벨(Arthur Schnabel, 1882∼1951)의 지도도 받았다고 한다. 필자는 《미래의 결단》(1995) 역자 서문에 "드러커의 책의 구성은 그랜드 오페라의 악보와 같다"고 쓴적이 있는데, 지나친 추측이 될런지 모르겠으나, 드러커의 논문과 책의 구성은 어릴 때 받은 음악교육에 큰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생각된다.

드러커는 1927년 빈 김나지엄을 졸업하고, 그 해에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으며, 재학중 소규모 무역회사에서 3개월간 견습생으로 근무했다. 1929년 드러커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 이적했다. 재학중 독일의 오래된 어느 머천트 뱅크의 증권 애널리스트로 취업했다. 이 머천트 뱅크는 나중에 미국 월 스트리트의 주식중개업자의 유럽지점이 되었다. 증권 애널리스트로서의 드러커의 일은 1929년 가을의 뉴욕 주식시장의 붕괴와 더불어 짧게 끝났지만, 드러커는 프랑크푸르트 제일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프랑크푸르트 게네랄 안짜이거》(Frankfurt General Anzeiger)의 금융기자로 채용되었다. 드러커는 1931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드러커는 신문 편집자로서의 일 외에도 또 한 몫의 일이 더 있었다. 드러커는 함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법학부에 시간강사의 적을 두고 있었다. 1931년에는 국제공법의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그 무렵에는 이미 친한 사이가 되어 있던 국제법 담당의 병약한 노교수 대역으로 법학부 강단에도 섰던 것이다.

1933년 드러커는 영국의 런던으로 건너가 런던의 보험회사 및 은행에 근무했다. 1934년 베링턴 아케이드(Barrington Arcade)에서 개최된 일본 회화전을 감상했는데, 그것은 드러커가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런던에서 근무하던 중 도리스 슈미트(Doris Schmidt) 여사와 만나 1937년 초 결혼했는데, 드러커 부부는 그후 4명의 자녀와 6명의 손자녀를 두었다.

드러커는 학문적인 일을 원했지만 단순한 학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학문과 실무라는 두 개의 희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영국에서는 불가능한 데 반하여 미국에서는 용이하다고 생각하여 1937년 말 미국으로 건너갔다. 드러커는 1939년 뉴욕교외 브롱크스 빌에 있는 사라 로렌스 여자대학(Sara Lawrence Women College)에서 시간강사 자격으로 1주일에 하루씩 경제학과 통계학을 가르치는 것 뿐이었으나, 드러커는 교수생활이 즐거워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하버드대학과 프린스턴대학으로부터도 강의 권유가 왔다. 당시 드러커에게 있어서는 흑인이란 불황 이상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닌 영속적인 실존적 사실이었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이 "공정한 신(神)의 존재를 상기할 적마다 미국의 장래를 생각하면 전율을 느낀다."고 한 말을 드러커가 접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지만, 드러커는 뉴욕에 도착한 지 한 달만에 흑인들의 삶의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 스스로 겁쟁이 - 필자의 관찰로서는 드러커는 자신의 건강이나 생명에 대해 무척 신경을 쓰는 자애주의자이다 - 라고 생각했던 드러커는 도저히 남부에서는 살 수 없음을 통감했다. 그때까지 얘기가 있었던 교육계에서의 일자리로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애틀랜타의 에머리대학의 학부장직이었다. "이 직무를 제의 받은 것은 1940년 말로서, 그 당시는 아직 남부에서는 완전한 흑백분리가 실시되고 있었다. 드러커는 부득이 이 요청을 거절하고 결국 드러커는 1942년 버몬트에 있는 소규모 대학인 베닝턴대학(Bennington College)의 전임교수가 되었다.

드러커는 주로 철학, 정치, 그리고 종교를 강의하는 한편 자문위원으로서 정부의 일을 맡기도 했다. 드러커는 1949년까지 7년 동안 이 대학에 근무했는데, 그 동안에 자문위원으로서 주로 다룬 문제는 산업과 기업의 문제였으나, 나중에는 금융문제에서부터 조직문제와 경영방침에 관한 문제에까지 확대되었으며, 연구상의 관심도 이에 집중되었다.

드러커는 1950년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Graduate School of Business, New Youk University)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이후 드러커는 교수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산업과 기업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컨설턴트로서의 일의 영역은 점차 국제적으로 넓어졌고, 그와 함께 드러커의 명성은 세계적인 것으로 되어 갔다. 1943년경 드러커는 이미 명성 높은 자유기고가가 되어 있었다. 《하퍼즈 매거진》(Harpers Magazine)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었고 (1940년부터 25년 이상에 걸쳐 그 잡지에 가장 많이 기고한 사람은 드러커로서, 매년 짤막한 논문 5, 6편을 게재하였다), 또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 여러 편의 논문을 기고했는데, 그 가운데 몇 편은 맥킨지 상(Mckinsey Award)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드러커는 《월간 애틀랜틱》(The Atlantic Monthly) 그리고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와 같은 잡지에도 자주 기고했다. 또한 1975년부터 1995년까지 20년간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에 칼럼을 고정 기고했다. 그 무렵 드러커는 신문 이외에 집필활동도 시작하고 있었다. 그 이후 드러커는 《타임》·《포천》 등에 기고하고 편집에도 관여했다.

드러커가 GM으로부터 GM의 조직을 연구하기 위해 초빙된 것은 1943년이었는데, 또한 이 해에 드러커는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가 진정한 의미의 경영학자로서 역량을 발휘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이를 바탕으로 1946년 명저 “기업의 개념”을 썼다. 그 후 드러커는 민간인 신분으로 마샬 플랜에도 참가했는데, 그 당시 조지 마셜 장군과의 만난 경험을 리더십 차원에서 분석 기고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고전 경제학에서 중시됐던 노동과 자본의 가치가 떨어지고 지식이 경제의 기준이 되는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미래관을 제시함으로써 지식경영의 장을 열었다.

드러커의 저술 영역은 법학, 정치학,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즉 사회과학 전분야에 걸쳐 대략 30권의 저서가 있고, 수필집은 물론이고 소설도 두 권 썼다. 그의 저서는 2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번역되었고 총판매 부수는 600만 권을 넘어섰다. 2002년에는 미국 시민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35편의 논문, 그리고 애틀란틱 만슬리와 포린 어페어즈 등 미국의 유력지에 지속적으로 기고를 하였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박사는 2005년 11월 11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어떤 평론가들은 드러커의 수많은 저서와 기사를 4가지 범주로 분류하는데 『경제적 인간의 최후 The End of Economic Man』(1939), 『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1950) 등과 같은 초기 작품은 산업사회의 특성을 논술한 것이다. 제2기의 작품은 『법인의 개념 The Concept of the Corporation』(1946),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ement』(1954) 등으로 현대의 기업경영에 대한 일반적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후기 작품들인 제3기 작품은 『미국의 향후 20년 America's Next Twenty Years』(1957), 『단절의 시대 The Age of Discontimuity』(1969), 『기술·경영·사회 Technology, Management and Society』(1970) 등으로서 기술변화의 발전 등으로 인한 미래의 영향에 대해 예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회사경영 문제를 다룬 『험난한 시대의 경영 Managing in Turbulent Times』(1980)과 『변화하는 경영진의 세계 The Changing World of the Executive』(1982, 수필 모음집) 등이 있다.


2. 내가 저자라면

여성운동의 제도화의 길목에서 과연 NGO단체가 선택해야 할 사명과 조직의 형태는 무엇일까? 나의 현장인 상담소에서는 작년부터 미래전망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성폭력’ 이슈로 한정된 우리의 운동 역사는 많은 성과를 이루어 냈지만, 현재 어느 영역보다도 제도화의 물결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조직 내에서는 우리가 NGO 단체인가에 대한 회의와, 공무원의 일을 대행하는 단체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의 간섭과 공무원 권력에 의한 통제는 해를 더할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 단체는 어느 때 보다도 안 밖으로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시점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연구원 과정을 통해 미래학자, CEO, 경영서적을 처음 접하였다. 책의 내용이 영리 기업의 책이라 할지라도, 그 책들을 통해 현재 우리 단체의 경영 방침이나 조직의 모습이 변명의 여지가 없을 만큼 체계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희망적인 일이었다. 그것을 자각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하지만 그 다음에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질문에 속 시원히 답을 주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팁은 많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만나게 된 저자의 ‘비영리단체의 경영’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힘을 실어 주는 책이었다.

비영리 단체인 상담소는 영리 단체인 기업이나 정부가 수행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일을 수행한다. 즉, 기업은 고객이 상품을 사고 대금은 지불하고 상품에 대해서 만족하면 그것으로써 거래가 전부 끝나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제품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된 한 인간, 사회였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비영리 단체란 사람을 바뀌게 하는 전문 직업단체인 셈이다. 그들의 제품이란 병이 완치된 환자, 교육받은 아이, 훌륭한 성으로 자란 청소년, 한 마디로 변화된 인간 모두라고 말할 수 있다.(15)”

저자는 이러한 비영리 조직의 사명을 위하여 수행하는 서비스를 홍보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마련하는 정책은 과연 어떻게 세울 것이며, 어떻게 필요한 자금을 부지런히 모금할 것인가, 수직 명령으로 운영할 수 있는 단체와 달리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단체이기에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변화와 창의력으로 미래를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효율적 경영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책의 형식은 5부로 나누어져 있다. 5부를 다시 5장으로 나누어 각부의 주제를 먼저 토론 한 후 곧이어 비영리조직체의 경영에서 출중한 성곤 사례를 창출한 분들과 주제에 관한 원론과 경험담을 면담 형식을 실었다. 각 부의 마지막 장에서 간결하고 요악된 행동지침을 제시했다. 현재 상담소가 시급하게 논의하고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몇 가지 경영 방법은 모두 1부에 포함되어져 있었다. 그 만큼 상담소가 가장 기초적인 경영 방법들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시급하게 마음에 다가온 것은 ‘사명’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는가? 우리는 사명을 인식하고 있는가? 3년차인 나에게 상담소의 사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부끄럽게도 대답할 말이 없다. 상담소는 피해생존자 뿐만 아니라 여성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들을 펼치고 있고, 이 사업들은 상담소의 사명이나 가치기준이 아닌, 개인 활동가의 선호도에 따라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상담소 정관에는 사업목적이 존재한다. 성폭력없는 세상을 위하여 상담 및 여성인권 활동을 한다는 목적은 피터 드러커가 지적한 대로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내가 상담소에서 실시하는 춤테라피와 꿈테라피 프로그램도 상담소의 사명과 목적에 맞는 사업인가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진행되었다. 14명의 활동가가 있다면 14개의 상담소가 각자의 사명과 가치를 가지고 운영되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조직 체계에서 충돌하는 활동가들 사이의 역동이 개인 활동가 들의 소진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명 선언문은 곧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의의 의도로서 끝나기가 쉽다. 사명 선언문은 한 단체가 진정으로 이루어 보고자 하는 사업에 초점을 맞추어 조직단체의 구성원 한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하는 일이 우리 단체가 추구하는 목적에 어떠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32)“

다시, 16년 전의 정관을 만들던 그 시기로 돌아가, 사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피해생존자들이 너무 고통스럽고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갔다. 불쌍한 그녀들을 위해 후원회원이 되어달라고 호소하는 시기도 지나갔다. 앞으로 상담소가 창밖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누구와 함께 운동해 나갈지를 선명하게 그려가야 할 때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됐다. 이렇게 책을 읽어 가며 꼼꼼히 조목 조목 상담소에 필요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메모해 보았다. 앞으로 진행될 미래전망 회의에서 그녀들과 함께 구체성을 찾아갈 수 있는 소스들을 마련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 책을 계기로 관련서적을 많이 읽어나가며 끊임없는 단체의 성찰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승완과 세나가 쓴 공익 비즈니스도 더더욱 기대가 되는 책이다.

내가 만약 비영리 법인 운영자라면 안철수의 방법처럼 면접 시에 이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쓰는 미션을 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현재 비영리 단체에 있는 모든 활동가들에게 꼭 한번은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앞으로 한국 현실에 가까운, 혹은 여성단체운영에 가까운 책들을 접하게 되겠지만, 피터 드러커와의 만남이 오래 오래 첫 사랑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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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9.10 16:23:15 *.70.72.121
내용을 강화한 모습이 좋으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다 잘할 수 있어. 계속해서 밀어붙여보자. 일취월장해 나가는 그대 모습이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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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9.12 05:07:21 *.72.153.12
현장에 있는 너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했다. 나도 같은 책을 읽었거든.
역시 자신과 연관되는 것이 있는 책은 농도가 진하게 느껴지나 보다. 진지하게 읽었구나. 잘 보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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