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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6일 08시 13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저서: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소명출판(2001)
저자: 고병권

니체 연구에 관해서는 그의 이름만큼 많이 오르내리는 인물이 없을 만큼 인터넷의 니체에서는 저자의 이름이 가득하다. 다음 그의 소개는 네이버에서 발췌하였음.

내 친구 고병권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니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화폐’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상에서 그는 항상 웃고 있다. 니체가 말한 ‘긍정의 힘’이 그의 신체에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웬만한 일로는 화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가 시도하는 유머는 대개 썰렁하지만, 다른 이의 썰렁한 유머에도 그는 크게 웃는다.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으며, 친구들과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행복론’이다.

현실에서 그는 자주 분노한다. 그의 분노의 대상은 주로 국가, 권력, 자본, 무기력 같은 것들이다. 친구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게 하고, 친구들을 ‘삶’에서 내모는 그것들에 그는 눈 감거나 고개를 돌린 적이 없다. 삶에서 그것들을 ‘추방’시키기 위해 그는 오늘도 친구들과 함께 웃고, 공부하고, 투쟁한다.
최근의 운동 속에서 혁명이나 코뮨주의를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연구공동체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 쓴 책으로 『화폐, 마법의 사중주』(2005),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03),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2001) 등이 있고, 맑스의 박사 학위 논문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2001)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곧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 사회를 분석한 『추방과 탈주』라는 새로운 정치 에세이를 선보일 계획이다.
― written by 김현경(그린비 편집주간) [모닝365 제공]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전통적인 서구 종교, 도덕, 철학에 깔려 있는 근본 동기를 밝히려 했으며, 신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시인, 소설가, 극작가 등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계몽주의라는 세속주의의 승리가 가져온 결과를 반성했다.
"신은 죽었다"는 그의 주장은 20세기 유럽 지식인의 주요한 구호였다

[생애]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5살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나움부르크로 이사하였다.
포르타 김나지움 시절에는 음악과 그리스•로마 문화에 심취하였고, 1864년 본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古典文獻學)을 배웠으나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이 시절 동안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고, 바그너와 음악을 통해 깊은 관계를 맺었다.
69년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스승 리츨의 추천을 받아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이 터지자 위생병으로 종군하였으나 병에 걸려 제대한 뒤 평생 병고에 시달리는 몸이 되었다. 당시 유명한 작곡자로 알려졌던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했으며, 특히 비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를 듣고 매혹된 나머지 처녀작인 <비극(悲劇)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die, 1872)>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는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비극의 정신이 진실한 문화창조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아폴론형>과 <디오니소스형>의 두 가지 원리로 그리스비극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 정신을 현대에서 부흥시킨 것이 바그너의 음악임을 논하여 그의 신예술운동을 지원하려 하였다. 뒤이어 발행된 <반(反)시대적 고찰 (Unzeitgemsse Betrachtungen, 1873-76)> 4편은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독일 국민과 문화에 통렬한 비난을 가하는 한편 유럽문화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고 천재(天才)를 위대한 창조자로서 문화의 이상으로 삼았다.

1편은 헤겔학파의 신학자 슈트라우스의 <교양(敎養)을 가진 속물(俗物)>에 대한 공격으로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2편은 역사를 기념비적•골동품적•비판적인 3종류로 구분한 역사주의에 대한 비평이었다.
3편은 쇼펜하우어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니체 자신의 실존적 결의의 표명이기도 하다.
4편은 바그너가 바이로이트에서 공연한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 관한 찬사이다. 그러나 이 저술을 계기로 바그너와 절교하였으며, 이리하여 천재적인 재질에 의하여 새로운 게르만적 헬레니즘문화를 세우려고 한 낭만적 이상은 무너졌다.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79년 대학에서 퇴직하고 알프스산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해변을 전전하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사색을 계속하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1878-80)> <서광 (Morgenrte, 1881)> <기쁜 지혜 (Die frhliche Wihssenschaft, 1882)>등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들은 잠언(箴言)과 사상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에서 종래의 낭만주의를 파괴하고 실증주의적•심리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다. 83-85년에 걸쳐서는 전에 알프스 산중에서 깨달은 <영겁회귀> 사상을 기반으로 한 <초인(超人)>의 이상을 그린 철학적 서사시인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1883-91)>를 저술하였다.

이 저서에 니체의 사상이 상징적으로 모두 표현되고 있으나, 이 추상성에 불만을 품고 구체적 논문식으로 해설한 <선악(善惡)의 피안 (Jenseits von Gut und Bse, 1886)>을 저술하였다.
이 저술에서는 고귀한 정신적 귀족의 육성을 주장하고 장래의 위대한 입법자를 암시하는 한편 퇴폐적인 근대의 여러 현상과 단순히 객관에만 치우치고 있는 과학정신, 동정(同情)에 기반을 두었다는 그리스도교적 도덕, 역사의식의 과잉 등을 예리하고 독특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 후 <도덕계보 (Zur Genealogie der Moral, 1887)>가 유럽 윤리사상의 비판서로서 출판되었으며, 이때 이미 <권력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가 준비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사망 후에 유고(遺稿)만이 수집되어 출판되었다.
88년에는 <바그너의 경우> <우상(偶像)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안티 그리스도> <니체와 바그너>등이 저술되었다.
그 중 <이 사람을 보라>는 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89년 1월 정신착란 증세에 빠져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동생의 간호 아래 여생을 보냈다.

니체는 근대유럽의 정신적 위기를, 일체의 의미와 가치의 근원인 그리스도교적 신의 죽음, 즉 <신은 죽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단정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사상적 공백상태를 새로운 가치창조에 의해 전환시켜 사상적 충실을 기했다. 이리하여 신 대신 초인을, 불멸의 영혼 대신 영겁회귀를, 선(善)과 참(眞) 대신 권력에의 의지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기쁨 대신에 심연(深淵)을 거쳐서 웃는 인간의 내재적(內在的) 삶으로 가치를 전환시켰다.

'신의 죽음'과 그에 따른 모든 전통가치의 상실을 선포했다. 그는 유일하게 지지받을 수 있는 인간의 반응은 허무주의적 반응, 즉 신이 없음이며, 삶의 목적과 의미에 관한 문제에는 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니체에 따르면, 신의 죽음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자신을 완성하며 그 본질을 발견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원숙한 문장과 함께 주로 문학자들에 의해 높은 평가를 받았고, 시대 변천과 함께 사상적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날의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그들의 선구자로 불리게 되었다.

[작품]

1. 비극(悲劇)의 탄생(誕生) (Die Geburt der Trag Udie)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의 영향을 받은 니체의 처녀작. 1872년 <음악 정신에서의 비극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가 86년 <자기비판 시도>를 머릿글에 넣어 <비극의 탄생 또는 그리스정신과 염세주의>로 제목을 바꾸어 출판되었다.

고전문헌학 연구를 토대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사상을 원용하면서 그리스비극의 성립과 변천을 더듬고, 나아가 소크라테스 이후 에우리피데스 등이 전개한 주지주의의 비판을 통하여 바그너의 음악에서 근대 독일문화의 헬레니즘적 생명부흥을 기대한다는 내용이다. 종래 고대관의 중심이었던 조화로운 그리스적 청랑(晴朗)함은 아폴론적 가상(假象)에 지나지 않으며 그 배후에 더욱 근원적인 음악 정신, 충동적•파괴적인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역동적 그리스관을 제시하였다.

1-1.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켈트족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유명한 중세의 사랑 이야기에 나오는 2명의 주인공.
이 켈트족의 전설은 실제로 고대 픽트족(브리튼 섬 북부에 살았던 고대인)의 한 왕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여러 가지 유사한 전설들을 파생시킨 원래의 시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현재 남아 있는 초기 이본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원래 시의 주요내용을 추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젊은 청년 트리스탄은 이졸데 공주의 도움을 얻어 그의 아저씨이자 콘월의 왕인 마크를 도울 목적으로 아일랜드로 모험을 떠난다.
아일랜드에 도착한 그는 그 나라를 괴롭히고 있던 거대한 용을 퇴치함으로써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한다.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불운하게도 이졸데의 어머니가 자기 딸과 마크 왕을 위해 준비해놓은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만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불후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사랑은 모든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고난을 이겨내지만 왕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대부분 서로 대응되는 2개의 기본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마크 왕과 신하들은 두 연인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지만 두 연인은 그들을 잡으려고 꾸며놓은 함정을 빠져 나온다. 그러나 결국 마크 왕은 그들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찾아내어 벌을 내린다.
화형장으로 가던 트리스탄은 절벽에 있는 예배당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해 마크 왕이 나병 환자들의 무리 속에 집어 넣어버린 이졸데를 구해낸다. 두 연인들은 모뢰아 숲으로 달아나 거기서 지내던 어느날 마크 왕은 이들이 칼을 칼집에서 빼내어 두 사람 사이에 놓은 채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후 곧 두 연인은 마크 왕과 화해를 하고 트리스탄은 이졸데를 마크 왕에게 돌려주고는 나라를 떠난다.
브르타뉴에 도착한 트리스탄은 '이졸데와 이름이 같고 아름답다는 이유로' 브르타뉴 왕의 딸인 '흰 손의 이졸데'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는 단지 이졸데와 이름이 같다는 점에서만 그녀를 자기 아내로 여길 뿐이었다.
독이 묻은 무기에 부상을 당한 트리스탄은 원래의 이졸데에게 전갈을 보내 그녀만이 자기를 치료해줄 수 있으며 만약 자기를 치료하러 올 생각이라면 타고 오는 배에 흰 돛을 달고 그렇지 않으면 검은 돛을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비밀을 알아챈 질투심 많은 트리스탄의 아내는 옛 애인을 도울 생각으로 서둘러 오는 이졸데의 배를 보면서 트리스탄에게 배가 검은 돛을 달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트리스탄은 얼굴을 벽을 향해 돌린 채 죽고, 너무 늦게 도착해서 연인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이졸데도 마지막으로 트리스탄을 껴안고 죽고 만다. 이들이 죽고 나자 기적이 일어난다.
두 그루의 나무가 그들의 무덤으로부터 솟아나와 서로 가지를 뻗쳐 얽히더니 다시는 풀리지 않게 되었다.

1-2. 디오니소스형과 아폴론형 (Dionysisch•Apollinisch)

그리스신화의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도취적•창조적 충동과 태양신 아폴론의 형식•질서에 대한 충동과의 대비에서 유래한 용어.
디오니소스적•아폴론적이라고도 한다.
셸링은 내용이 형식에 우월하는 시와 양자가 조화된 본래의 시와의 대립을, 니체의 스승 리츨은 피리와 하프의 음색의 대비를 이러한 대립개념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이런 대립개념이 확산된 계기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1872)>이다.
여기서 니체는 그리스조각의 맑고 밝으며 사물을 관조하는 분위기를 아폴론적, 음악의 격정적인 약동을 디오니소스형이라고 표현했다. 온갖 것을 가상(假象) 속에 형태화•개체화하는 조형예술의 원리로서의 아폴론적인 것이, 개체를 도취로써 영원한 삶 속에 해체하는 음악예술의 원리로서의 디오니소스형인 것과 결합되어 그리스 비극이 탄생한다.
이 비극은 일단 낙천적•이론적인 소크라테스주의 탓으로 멸망했지만, 바그너의 악극(樂劇) 속에 재생한다고 젊은 니체는 생각했다. 다만 훗날의 니체는 이 대립개념을 쓰지 않고 영원히 창조하고 파괴하는 생(生)의 긍정이라는 그의 철학의 핵심을 <디오니소스형>이라고 규정했다.
그리스예술의 발전에서 추출해 낸 니체의 이러한 개념은 훗날 예술체계적 구분의 원리 및 역사원리 혹은 예술제작의 전형으로서 널리 채용되었다.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니체의 저서. 4부로 된 철학적 산문시로 1883-85년에 저술되었다.
니체 자신의 이상적 분신(分身)인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를 통해 초인(超人), 권력을 향한 의지, 영원회귀(永遠回歸) 등 니체의 중심사상을 교설한 설교집의 모습을 띠고 있다.

서설(序說)과 제1부에서는 10년간 산상(山上)의 고독한 생활을 보내던 주인공이 <신은 죽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인간세계에 내려와 초인의 이상을 논한다.
제2부에서는 영원회귀의 사상이 그의 내면에서 성숙해가나, 이를 세계에 전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함을 느끼고 더욱 성숙한 인식을 위해 산으로 되돌아간다.
제3부에서는 영원회귀사상의 성숙을 기다리며 삶의 절대적 긍정을 노래한다.
제4부에서는 동굴생활을 하던 중 7명의 더 높은 사람을 만난 차라투스트라가 초인도, 대중도 아닌, 고뇌하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동정은 그에 대한 새로운 유혹이요 시련이다. 그는 결국 동정이라는 마지막 시련을 이기고 성숙한 영원회귀사상을 알리기 위해 홀로 산을 떠난다.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들]

(서장)

단 한 번도 니체는 무엇이 진리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느끼는 자에게는 불필요한 말이 될 것이며 느끼지 못하는 자에게는 소용없는 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8/

(1부)

불행히도 서구사유의 기원에는 두 사람의 시체가 놓여있다. 소크라테스와 그리스도라는 두 스승의 죽음. 서구 사유는 그들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으로 시달리고 있다. 31/

신과 진리는 어떻게 위대해 졌는가? 그것은 바로 “부정”을 통해서, 바로 인간이 무한히 작아짐으로써이다. 이 세계와 자기 삶에 대한 거대한 부정이 신과 진리의 위대함을 만들어 냈다. 33/

그리스인들은 삶에 죄가 있다는 죽음의 설교를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과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비극성의 크기가 아니라 그 비극성을 대표하는 방식이다. 그리스 인들은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공포를 고유한 명랑성으로 극복한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거인들이라고 부른다. 36/

프로메테우스 전설이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인적 노력을 하는 개인은 필연적으로 (신을) 모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38/

니체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세 개의 죽음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디오니소스의 죽음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죽음이고 나머지 하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39/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긍정의 신으로 이해함으로써 삶을 부정하는 기독교의 신과 대비시킨다. 디오니소스 대 그리스도 “ 삶의 본능에 대한 옹호자, 삶에 대한 근본적 가르침을 제공한자, 이 반기독교적 스승을 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41/

미래란 “항상” 와 있지만 “항상” 오해되고 있는 시간이고, 아무리 늦게 나타나도 “항상” 너무 이르게 나타나는 시간이다. 그것은 시대와 불일치하는 시대이며 “때 아닌 것”의 형태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53/

“변증법은 상대방을 설득시킬 품성을 잃어버린 자가 아무런 방법이 없을 때 움켜쥐는 마지막 필사의 무기다” 57/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너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너는 폭군인가? 그러면 너는 친구를 가질 수 없다.” 57/

“삶을 사랑하는 철학은 변화하는 건강상태를 횡단하는 변모의 예술이다.” 59/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 방식이지 신앙은 아니다.” 59/

“도덕 역시 욕망을 표현하는 상징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62/

도덕에는 소심함 말고도 다른 요소가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무지이다. 우리가 우리 시대 우리 환경에서 나온 생각들을 쉽게 일반화 하는 데는 다른 민족, 다른 시대, 다른 과거에 대한 빈약한 지식도 이유가 된다. 63/

강한 자는 선한 자가 아니다. 강한 자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이다. 그러나 선한 자는 “억압하지 않는 자, 공격하지 않는 자, 인내심이 강하며 겸손한 자” 이다. 선한 자야 말로 약한 자이다. 77/

강자들, 고귀한 자들의 평가 양식을 니체는 “거리에 대한 열정”으로 표현하곤 했다. 거리에 대한 열정이란 다른 것과 자신을 구별 짓는 차이에 대한 열정이다……………..”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도록 노력하는 것. 이 때문에 거리에 대한 열정에는 자기 극복의 원리도 내재해 있다. 78/

노예와 약자들, 그들의 정신적 공격 본능이 밖으로 발산되지 못할 때, 그 본능은 안으로 투사된다. 81/

“반동적 힘은 능동적 힘으로부터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을 빼앗는다.” 84/

…성직자라는 의사들은 “의사로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상처를 입혀서” 자신들을 필요하도록 만들며, “상처를 진정시키는 동시에 상처를 감염”시킨다. 85/

삶에 죄의식을 심어주는 것, 성직자들이 마법사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86/

악이란 지금 현재의 조건 속에서 나에게 맞지 않는 것과의 마주침이다. 다른 관계 속에서 만났거나 내가 훨씬 강한 소화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악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해로운 존재, 그것이 바로 악이다. 스피노자에게 선과 악은 사실상 니체가 말하는 “좋음”과 “나쁨”의 의미만을 갖고 있다. 그의 선악 개념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자연학적인 것이다. 90/

현상에 머물러서 “있는 것은 오직 사실 뿐”을 외치는 실증주의자들에 반대해서 나는 말하리라. 사실은 없으며 있는 것은 오직 해석뿐이라고” 104/

니체는 대표적인 예로 “유클리드 공간”을 든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사실이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유클리드적 공간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것은 일종의 “항변할 수 없는 식의 주관적 강요”라고 할 수 있다. “항변할 수 없다는 것, 그 때 증명된 것은 진리가 아니라 무능력이다. 108/

개인은 무언가 전혀 새로운 존재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존재, 무언가 절대적인 존재이다……개개인은 전통적 용어도 역시 개인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식을 개인이 창조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개인다. 즉 해석자로서 개인은 한결같이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112/

해석의 비밀은 바로 이런 것이다. 생성은 차이를 만들어 내고 차이는 계속해서 생성된다. 생성된 차이는 괴로운 것이기는커녕 하나의 멜로디다. 114/

해석자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창조와 생성이다………………들뢰즈는 아주 흥미로운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작업은 철학에 있어 일종의 계간(鷄姦)을 통해 사생아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는 것이다………………..니체를 계간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등뒤에 올라타고 있던 것이 바로 니체였다는 것이다. 니체는 들뢰즈를 상대로 사생아를 낳은 셈이다. 116/

들뢰즈는 니체 사상의 특징이 방법에 있다고 말한다. 즉 니체의 텍스트들을 파시스트적인 것, 부르즈아 적인 것, 혁명적인 것으로 규정짓기 보다 그런 힘이 만나는 하나의 장으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니체의 텍스트를 끊임없이 가로지르고 있는 혁명적 힘들을 추적하는 것이며 그것과 만나는 일이다. 118/

우리는 아직 “수많은 특이성을 즐기는 새로운 정치” 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헤르메스의 장난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해석학은 여전히 디오니소스의 웃음을 듣지 못하고 있다. 120/

니체는 자유주의에서 “자유로운 인격은 볼 수가 없으며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비겁하게 정체를 숨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뿐이다. 개성은 내면적인 것으로 움츠려 들어가 밖에서는 그것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고 말한다. 133/

정치에 연관된 말 중에서 신체에 대한 비유가 많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터너에 따르면 특히 “다이어트(diet)”라는 단어만큼 좋은 예는 없다. 우리는 다이어트를 체중감량을 위한 식이요법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나 원래 이 말은 그리스어 “diaita”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삶의 총체적인 양식”이었다. 그리스 의학에 따르면 인간의 신체는 네 가지의 체액의 균형체제인데 다이어트는 이것들의 균형을 맞추라는 의학적 처방이었다. 네 가지 체액은 각각 운동, 섹스, 수면, 사회적 관계에 관여하는 것으로 병이 생기는 것은 운동, 섹스, 수면, 사회적 관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40/

니체는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고도의 권위를 “윤리”라고 보았는데 윤리는 관습에 의하여 규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141/

전쟁이란 내가 주권적 능력을 그대로 가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생성적 힘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니체가 자주 말하듯이 좋은 전쟁은 화약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152/

니체가 그토록 비판 했던 철학자들의 흡혈주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앙상한 해골로 만들어 버리는 흡혈주의!” 157/

에피쿠로스에게 세계는 “사건들의 사건”, “번화로서의 변화”가 구성하는 시간이 흐르는 생성의 영역이었다. 158/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힘은 ‘정지’나 ‘불변’과 항쟁하고 있으며 그 양이 고정되어 있다고 해도 그 본질은 유동적인 것이다. 힘의 양이 고정된 것처럼 보일 때조차 그 성격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변화”는 힘의 앞지를 수 없는 본질이다. 161/

권력의지는 결코 결핍된 권력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니다. 니체는 그것을 차라리 “저급한 형태의 권력의지”로 부르자고 말한다. 니체가 권력의지를 “권력 없음” 혹은 “권력에의 무권력”(권력의 무력화)과 대비시킨 것은 권력의지라는 의지의 반대말이 “의지하지 않음”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관계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관계를 통해 힘을 주고 받으며 힘은 그 자체로 권력의지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니체는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모든 것을 권력의지의 관점에서 이해한다.권력 의지가 아닌 존재라면 그것은 더 이상 아무런 “능력도 없는 것”, 다시 말해 실존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싶어한다. 생명 자체는 권력의지다. 173/

권력의지의 질적이 차이가 힘의 질적인 차이를 가져온다. 175/

니체가 권력의지의 질적인 차이를 표현하는 용어들은 다양하다……………………………….무엇보다도 중요한 표현은 “긍정과 부정”이다. 긍정은 디오니소스의 정신이며 그리스 예술의 정수이고 예수가 전하는 복음의 본질이기도 하다. 반대로 부정은 삶을 비난하는 노예의 것이고 심판을 불러오는 사제의 것이며 역사를 하나의 체계로 포섭하려는 변증법의 것이다. 176/

부정의 권력의지가 힘을 다룰 때 그것이 가져오는 것은 “약화”이다. 긍정의 권력의지가 힘을 다룰 때 그것은 “저축”이고 “강화”이다. “나는 약화 시키는 것, 초췌하게 만드는 것, 힘을 저축하는 것, 힘의 감정을 긍정하는 것 모두에 대해 예를 가르친다. 177/

영원회기는 동일한 반복을 확인하는 문제가 아니라 “생성을 반복하는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191/

생성에 존재의 성격을 부여하는 것, 이것이 최고의 권력의지이다, 존재하는 것은 생성뿐이다. 그리고 생성만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영원회기는 이러한 생성의 반복을 의지하는(will)것이다. 191/

영원회기는 전적으로 긍정의 의지 편에 서서 부정의 의지와 대결한다. 그것은 피로를 조장하는 의지, 무를 의지하게 하는 의지와 대결한다. 따라서 영원회기는 긍정의 권력의지와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부정의 권력의지로부터 그것을 구분해 주는 시금석 같은 것이다. 193/

용기는 가장 훌륭한 살해자다. 공격하는 용기 그것은 죽음까지도 살해한다. 왜냐하면 용기는 “그게 삶이던가, 그럼 좋다. 다시 한번! 이렇게 외치기 때문이다. 196/

너무도 멀리 나는 미래 속으로 날아갔었다.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그리하여 내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보라! 시간만이 나의 유일한 동시대인다.” 197/

“파괴, 변화,생성의 욕망은 미래를 잉태한 넘치는 힘의 표현이다. 이것은 나의 용어로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198/

“부정과 파괴야 말로 긍정의 조건” 203/

긍정의 수단으로 사용된 부정은 더 이상 부정이 아니다. 그것은 긍정이다.” 204/

떨어지는 주사위는 새로운 느낌을 만들고 던져지는 주사위는 새로운 힘을 표현한다. 결국 주사위 놀이는 차이를 만들어 내는 놀이이다. 차이를 만들어 내는 놀이! 놀이가 만들어 내는 차이! 긍정은 차이의 생성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차이를 해소하고 싶은 것은 부정이다. 207/

영원회기는 긍정의 권력의지만을 돌아오게 하고 긍정의 권력의지만이 영원회기를 의욕한다. 영원회기는 긍정의 권력의지만을 선택하고 긍정의 권력의지는 영원회기를 의욕한다. 208/

아이들은 왜 그렇게 영원회기를 멈추지 않는 가? 그것은 즐겁기 때문이다. 209/

사실 인간은 자연을 잘못 이해하므로 자기 자신도 잘못 이해한다. 215/

우리는 “인간과 세계”가 서로 병립되어 있고 따라서 “과”라는 귀여운 단어의 숭고한 뻔뻔함에 의해 분리 되어져 있음을 발견할 때 웃지 않을 수 없다. 216/

너희는 벌레로부터 인간으로 이르는 길을 걸어 왔으며 아직도 너의 내부의 많은 것들이 여전히 벌레다. 예전에 너희는 원숭이였고 지금도 너희는 여전히 어느 원숭이보다도 더 원숭이인 것이다. 218/

인간이 진화를 통해서라면 초인은 변신을 통해서 태어난다. 220/

“짜라투스트라”의 마지막은 “신호”로써 끝난다. 디오니소스가 비로소 신호를 보낸 것이 아니라 짜라투스트라가 비로소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민감한 신체를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234/

니체는 바그너에게 몰입했던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참을 수 없는 압박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마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바그너를 필요로 했다. 바그너는 탁월하다고 하는 모든 독일적인 것에 대한 해독제였다. 나는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도 하나의 독이다.” 244/

니체는 항상 떠나는 사람이며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자신은 찾는 일은 항상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251/

철학이란 얼음으로 둘러싸인 고산 속에서 자발적으로 생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53/

(2부)

어떤 점에서 근대는 제 발로 “설 수 있는” 시다가 아니라 제 발로 “서야 하는” 시대다. 258/

종교 개혁은 삶 전반에 대한 교회의 지배를 배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때까지의 삶의 형식을 다른 형식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262/

자신들의 의지로 행동을 통제하기 보다는 의지를 포기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오히려 원하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확실히 중요한 전환이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개인들의 일상 생활의 수준을 넘어서 조직이나 제도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 관료제다. 베버는 관료제를 기계라고 불렀다. 266/

노동수단과 노동자의 관계에서 생산자는 노동자이지만 기계와 노동자의 관계에서의 생산자는 기계다. 267/

훈육의 최고 목적은 능동적 자제다. 274/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출현하려면 잘 훈육된 수동적 대중들이 필요하고 그러한 지도자가 정치를 하기 시작하면 대중들은 더욱 정신을 상실해 간다. 281/

아무리 수령이 오래된 거목이 계속해서 가지를 뻗는다고 해서 새로운 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301/

시민사회는 욕구들의 전면적인 상호의존체제라고 할 수 있다. 302/

차이는 회피되어야 하거나 해소되어야 하거나 심지어는 그것이 인정되고 보존될 때조차 “문제”다. 그것은 생산되기 보다는 관리되어야 한다. 316/

[내가 저자라면]

보통 책을 한번 읽고 다시 마음에 들어 온 글귀들을 옮기다 보면 대체적으로 정리가 되는 데 이 책은 정말 읽는 딱 그 순간만이고 일분만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읽다가 은근히 부아가 나는 책이었다. 무지가 분노로 바뀌면 이렇게 변질되는 것이리라. 들어본 철학자들의 이름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았던 그들의 위상이 한 순간에 추락해버리고 그 뒤의 해석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아연실색하고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으나 알 수 없는 오기가 끝까지 책을 붙잡게 했다. 그래서, 그러니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거요? 여전히 긴가 민가 이거였나 저거였나 그런가 보다. 그럴지도 모르겠네..계속 이 상태로 시간이 흘러만 갔다. 그래도 읽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은 개념이라도 잡고 싶다는 허기가 충동질한 덕택이다.

결론적으로 니체는 의식이 가져오는 인간의 굴레라는 한계에 대하여 멈추어 있지 말고 초인적인 존재로 나아가라는 소리인 듯 하다. 니체 하면 허무주의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그 허무주의는 그간 내가 알던 무 라는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 그것을 넘어서 초인적인 모습을 찾으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어쩌면 니체는 누구보다도 생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조각을 이어붙이고 나아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연결시키는 천재들의 깨달음은 범인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끊임없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다 미쳐버리고 만 니체를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영원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니체라는 사람에 대해 인식이 바뀐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글이 어렵다는 이야기의 배경에는 익숙한 단어의 의미가 오늘날 사용하는 의미와 동떨어진 의미들이 많고 그 당시에 그 단어의 탄생의 배경과 그 의미의 변질과정을 이해해야 하는 부담이 하나 더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쟁이란 단어 하나만을 보아도 그렇다. 니체가 오늘날의 국가에 대한 유일한 저항 수단을 들어 전쟁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상의 출현을 막는 다는 목표와 경쟁이 멈추어버린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초월성으로 인한 개인의 능력 상실을 의미한다. 결코 오늘 날의 화약냄새가 벌어지는 전쟁만을 의미하진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힘이라는 말, 의지라는 의미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하게 우리가 아는 힘이고 의지에서 머물지 않는다. 통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여러 물리학적인 개념을 빌려 “힘이란 항상 다른 힘에게 명령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개념을 얻기까지 무수하게 많은 오해와 인식의 전환이라는 골짜기를 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니체의 행위 양식과 가치에 대한 평가방식은 한 단어의 속에 들어가 여러 수식어와 단어자체를 뒤집는 이론, 또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해석을 낳고 있다. 단토는” 권력의지는 이해 가능성을 부정하는 개념이다. 영어로 이 이론을 설명한다는 것은 우리가 던져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으면서 인내하는 것과 같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이백프로 동감한다.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 철학의 단어를 다시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철학의 재정의 1: ① 자다가 봉창 두들기다 방문 열고 미끄러져 대들보에 머리 부딪히고 신발 신고 마당 내려가다 하수도에 빠지는 거. ② 이쑤시개를 반으로 부러뜨려 눈 아래위로 끼워 높고 싶을 만큼 졸려워지는 거. ③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냐구 하면서 머리 뚜껑 열리는 시간이 아주 짧아지는 거. ④ 이거구나 겨우 안심하면 금방 다른 인간이 나타나 또 다른 해석을 아주 헷갈리는 언어로 꼬고 또 꽈서 늘어 놓는 거. ⑤ 개똥철학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다는 거. ⑥ 우아 섹시 미모의 여인에게서 “돌아버려”~이런 말을 자꾸 나오게 만드는 거. ⑦ 이런 거 가지고도 고문이 되는 구나 하는 거.

영원 회기 쯤에서 조금씩 그를 알 것 같아지기 시작했다. 허무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강한 생의 애착을 가진 이로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영원회기, 생성의 존재론이다. 파괴 변화 생성의 욕망은 미래를 잉태한 넘치는 힘의 표현이다 라고 외친다. 비로소 반갑다.

그러다 7장의 인간에서부터 조금씩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란돌라 백작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전에 그가 쓴 “인간의 권위에 대하여” 라는 글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글에 집중하게 되었다.

저자 고병권의 설명은 때론 쫓아가지 못한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가 데리고 온 또 다른 사람들의 이론과 뒤섞여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니체의 본문만을 본다면 그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으리라는 점에서 이런 책을 쓰는 저자를 우러러보게 하기도 한다.

2부가 왜 필요했을까? 갑자기 니체의 이론에서 급작스럽게 근대로 나아가며 수많은 사람들의 복잡한 이론이 또 등장한다. 니체가 근대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려 했음일까?
책은 어려웠다. 이유는 당연히 독자의 무지일 것이다. 사진이나 부드러운 설명, 니체의 삶과 비추어가며 설명이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루 살로메가 니체에게 준 영향이랄까 하는 것들..

40페이지 남았을 때 한번 더 써본다. 맛 들린 듯..
철학의 재정의 2: ①건전(?)한 생활을 했음에도 뇌 속의 시냅스가 많이 끊겨있나 하며 지난 날을 돌이키게 하는 거, ② 속독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갸우뚱하게 하는 거 ③ 자꾸 허기가 진다는 느낌 땀시 냉장고를 수도 없이 열게 만드는 거 ④ 이들은 진정 이렇게 살고 싶었을까..갑자기 저자 생각을 하며 끌끌 차게 하는 것. ⑤ 잠깐 한 눈 팔면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고스란히 다시 읽어야 한다는 거 ⑥ 잊고 있던 딴지체가 쉴 때마다 자꾸 튀어나오게 되는 거 ⑦ 어쨌거나 궁둥이 살 확실하게 불려 주는 거. ⑧ 혹시 이 분들이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해서 항복을 받아내는 스타일인가 의심하게 되는 거. ⑨ 재미있다고 바람 잡은 인간 째려보고 싶어지는 거 ⑩ 외나무 다리를 건널 땐 꼭 가지고 다니다가 원수에게 선물할 책..

몰라서 대단한 책이었다. 읽어도 머리 속에 쏙 안 들어 오는 바람에 감히 반론의 여지가 없는 책. 어쨌거나 덕택에 유명한 니체라는 철학자와 더불어 다수의 그리스 언어에서 유래된 말과 심오한 철학 사상을 잠시 맛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고 싶다. 읽는 그 몇 초만큼은 아주 잠깐 이해가 되는 듯 하더니 어찌 그리 속절없이 사라져 버리는지 그저 나의 돌머리를 탓한다.

조금 거친 리뷰이지만 탐구심 왕성한 분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IP *.48.38.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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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10.17 09:00:01 *.114.56.245
니체가 이렇게 나를 유혹했다. '삶을 껴안고 사랑하라. 맑은 미소로 삶을 맞이하라' - 저자 고병권 도 니체의 미 말을 실천하고 있는것이아닐까? 은남님의 자세한 소개 때문에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다시한 번 음미할 시간을 가질려고 메모장에 기입했다. 멋진 가을날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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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10.17 17:58:19 *.48.38.252
덕택에 오늘 맛본 가을볕은 명품이었답니다. 다른 분은 몰라도 우제님만큼은 분명 니체를 음미하실거라고 생각했었지요. 역시 그러셨군요. 삶을 껴안고 사랑하라. 맑은 미소로 삶을 맞이하라' 이거 였군요.오늘 밤부터 당장 실행해보지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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