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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6일 12시 56분 등록
이번 북리뷰는 좀 다르게 적어볼까 한다. 이유인즉슨, 책의 도입부분부터 니체는 내게서 미운 털이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가 내 귓가에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속삭여주는 것이라 여기곤 하는데, 그냥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을 좋아한다. 중학교 때의 일로 기억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중고등학교 때도 대학생 시간표처럼 공강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무심코 도서관에 가 집어 들었던 책들이 철학과 관련된 책들이었다. 정확한 제목과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여하튼 나는 사색에 사로잡히는 것을 즐겼으며,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내게는 참 익숙한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조금은 색다른 리뷰를 쓰는 것도 내 나름대로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책을 집어 들고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두고 니체는 이런 말을 한다.

“누가 그를 죽였는가?”

이 대목에서부터 니체는 나를 참 힘들게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오히려 내 생각을, 내 신앙을 다시금 정리하고 체계를 잡아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는 자신을 좋아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도 필요한 법 이랬다. 언제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훈련시켜주는 좋은 기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읽고 열심히 반박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독서에 임했다.

나는 창조론을 믿는다. 그래서 신을 믿는다. 만물이 신의 피조물이듯, 인간은 그의 최고 걸작품이다. 그런데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우리에게 ‘자유 의지’라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부모가 이제 막 돌이 지난 갓난 아이가 자기 힘으로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혼자 일어나봐, 혼자 걸어와봐……”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혼자 걷게 되는 순간에 부모는 얼마나 그 아이가 자랑스럽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바로 이런 거다.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대로 하나님을 찾아와주기를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인격의 하나님이시기에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간혹,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 외쳐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것은 왜곡된 편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복음은 천당도 지옥도 아닌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전도’라는 것에 대해도 내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전도란 각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이다. 그 누구도 어떻게 감히 뭐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물론, ‘전도’를 위해 때로 신은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며, 본인과 하나님만이 아는 때이다. 하나님을 만나야 할 때가 된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해도 알아서 굳게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때가 아닌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해줘도 거부하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발걸음을 하나님께 향하기를 말이다.

이 ‘자유 의지’라는 것은 또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바로 ‘선택의 자유’이다. 우리는 살면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선과 악 앞에서 우리는 선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악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 선택을 하는 주체로서 우리에게는 아무런 제약도 가해지지 않는다. 물론, 선택 이후에 오는 것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말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신이 그렇게 전지전능하면,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하느냐고. 그냥 모두 다 선하게 만들어서 함께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않으냐고. 그러나, 신은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그렇게 로봇과도 같은 천편일률적인 세상을 만들지 않았다.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 ‘자유 의지’ 때문인 거다. 뭔 소리냐고 되물을 사람들이 많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그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셨다. 그것은 인간에게 선택권을 준 것과도 같은데 우리 인간은 선보다는 악을 택하는 것이 쉬우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고 악을 쫓게 되었다.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신의 잘못이고 인간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고. 이에 나는 되묻고 싶다. 그럼 걸음마를 조금 늦게 시작하거나 엉거주춤 힘들어하는 아이가 자신이 걷지 못하는 것을 두고 자기 부모를 원망하더냐고.

이 세상에 선과 악이 이렇게 공존하는 이유는 선한 씨앗과 악한 씨앗이 세상이라는 밭에서 함께 엉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선한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악한 씨앗을 함부로 제거하지 못하고 스스로 돌이켜 돌아오기만을 한없이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기다린 나머지 더 이상은 악한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을 보지 못하시고 예수를 보낸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걷지 못하는 아이를 보다 못한 부모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예수도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정결한 피로 세상을 악의 손아귀에서 구원하고자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그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누가 그를 죽였는가?”

물론, 역사적으로는 그가 심판의 법정에 서서 사람들의 정당한 판결에 의해 죽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다름 아닌 예수 자신이다. 그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로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로 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이란 참으로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주소서’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던 것이고,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다.

이에 나는 덧붙이고 싶다.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형제간의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중에 제일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니체는 신은 결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신이 인간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인격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깊이 묵상하다 보면, 인간을 만드신 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사실은 참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사실, 인간으로부터 사랑 받기 원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인생을 사는 방식에는 정해져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마도 니체는 그런 의미에서 천 개의 눈이 있고 천 개의 길이 있다는 책 제목과 잘 어울리는 철학자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단순한 것들이다. 진리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바로 사랑이다. 모든 것은 사랑에서부터 싹트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방식도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과 참으로 많이 닮아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IP *.6.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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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2007.10.16 18:39:49 *.128.229.81
리뷰의 format을 바꾸지 마라. 그 안에서 자유로워 져라.
훈련의 과정을 건너 뛰려하지 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 신앙이 다른 사람들, 그들을 견디는 것이 책 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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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10.16 19:00:13 *.253.249.123
"너무 읽찍 빠진 스콜라주의"
서양의 사상을 크게 나누면 스콜라주의와 반스콜라주의일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상도 나쁘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 신학에 빠져들면 주옥같은 서약의 철학자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니체의 철학은 구본형선생님의 지향하는 사상과 일치함을 간혹 보아 왔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종교는 캐도릭입니다. 그러면서도 서양의 많은 철학을 답습하고 자기이론을 펼쳐 왔습니다.

왜 유대인은 신교(계신교)를 인정치 않고 오직 모세오경만을 신봉하는 걸까요? 나는 대학시절 신학교에 3년을 다녔습니다. 그렇타고 절대 신봉자도 절대 반대자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사상의 필요성을 공감하여 살아왔지요.

난 쭉~ 오윤양의 글을 읽어 왓습니다. 멋진 센스 뛰어난 눈과 들을줄 아는 귀를가진 고독한 미인이였습니다. 그리고 훗날 큰작가가 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부탁이 있습니다. 니체도 스피노자도 많은 반스콜라주의나 공산사상도 공부하여 자기의 길을 찾는 지혜를 부탁합니다. 위의 방식되로라면 목사나 신학자의 글과 같지요.

뒷날 훌륭한 신앙의 길속에 살더라도 지금은 불교의 금강경도 코오란도 니체의 심호한 인간주의 사상도 배워 보았으면 합니다.

난 될수 있는데로 연구원의 글은 덧글을 달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맘이 손꾸락을 자판에 닫게 하네요...

좋은 글 잘 읽고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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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10.17 11:04:48 *.6.5.193
^^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저한테는 이 책이 가장 어려웠나봅니다.
기존에 해 오던 방식대로 리뷰를 적을라니 능력이 안 되어 이렇게
밖에는 쓸 수가 없었는데 본의 아니게 훈련의 과정을 뛰어넘은 것처럼
되어버렸네요.... 명심할께요! ^^

초아 선생님.... 이런 글을 쓰니 초아선생님의 댓글을 만나게 되네요^^
좋은 말씀 감사해요~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용납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가 넓어지는 거라 주장하면서 살아왔는데 아직 나이를 덜
먹었나봐요 ^^ 근데 저 '고독한' 미인 말고, '행복한' 미인 할래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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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10.17 20:21:19 *.253.249.123
사실 신학에 매료되면 어떤 철학도 수용치 못하는 것이 현재의 종교적인 절대성입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 갈 때에는 신앙생활이 중심이 되는것이 평온한 가정을 이루는데는 매우 좋지요.
그러나 그대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가 될려하는 큰꿈의 도전자입니다. 그렇기에 현재의 주류를 이루는 철학적 사조에 눈을 떠야하고 타종교의 깊은 경지도 익혀 허실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는 철학의 흐름이 실존주의 에서 정체되어 있는 현상입니다. 싸르트르의 실존적 사고에서 새로운 리즘을 모두 갈구하고 있지만 현재는 답보 상태입니다. 이를 일깨우고 개척해야 하는것이 현작가의 임무일 것입니다.

오윤양은 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더 크게 눈을 뜨시고 나의 종교에 위배되거나 침범하면 싸우려는 절대적 신앙을 재고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은 그래야 그대가 참다운 리더의 작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처럼 마지막까지 연구원 생활을 이루어 나가시길 바람니다. 서양에서 풀라톤을 모르는 지식인은 없을 것입니다. 철학을 공부하시고 그 속에서 신앙의 길을 개척하시면 많은 사람들이 그댈 따를 것입니다. 철학은 사람의 중심이고 신앙은 신의 중심세계입니다. 현상의 세계 사람들이 그대의 책을 읽고 그대의 재미나는 애길 들어며서 행복해지고 슬퍼져서 울고 하겠지요. 같은 신앙의 독자만 고집할수도 없는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그대의 총명함으로 매사를 넓게보고 큰작가의 길을 걸어가시길 기원합니다. 열심히 그리고 성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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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1 17:17:56 *.37.251.50
두 분 스승님의 충언과 님의 생각이 다르지 않음을 언젠가 발견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오래묵은 장맛처럼 그 세월과 비바람을 충분히 쐬어야 제맛을 냅니다.
스승님의 배려와 충고, 초아님의 넓고 깊은 시야, 모두 님을 아끼는 마음이라는 것이 저같이 아무도 뵌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읽히네요.
젊은 나이에 두 분 스승님이 계시니, 님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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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10.22 00:23:14 *.131.127.35
인본주의 심리학은 현상에 대해 개인의 주체적 의지를 (자유의지)
기본으로 합니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따지면 보여지는 것은 객관적인
사물이 아니라 경험과 학습에 의한 개념적인 표상이라는 것입니다.

일인 일과(一因一果)가 아닌 다인일과(多因一果)라는게 있는데
하나의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개의 원인들이 어떤 하나의 일관성에 의해 결과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례로서 득도나 해탈 같은 수준도 있겠지만 일상이나 사유의 깨달음이나 통찰같은 소소한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추론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은 학습과 경험에 기초한 것이고 개념화한 언어젹 사유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니체에 관한 글은 니체 본인이나 그걸 해석해서 쓴 사람에게는 진실이지만 타인에게는 아닐 수도 있고 때로는 충격적일수도 있겠죠...

님의 신앙심에 경의를 표하며 쬐끔 덧붙이고 싶다면
예수님의 '(절대라고) 맹세하지 말라'라는 말을 생각해보심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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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곰
2008.02.26 14:06:10 *.184.19.94
"초아" 님의 글이 정말 좋네요. 저도 배웠습니다.
과거의 종교철학은 현대인식에 의해 많은 부분들이 깨지고 있습니다.
이를 거부하고 기존의 인식을 재 정립하지 못하고 고집스레 종교의
어느 한 부분도 신성 불가침으로 거스릴수 없다고 판단하는것이
외려 종교적 기능을 현대 사회에서 더 악화시킨다고 봅니다.
니체의 시대에는 종교가 모든 전쟁의 원인과 이유,핑계이기도 했습니다.

구본형 선생님의 "사람에게서 구하라" 이말이 정답인거 같네요..
절대성 보단 다양성에서 나오는 모든 긍정적임을 바라보셨으면 합니다.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 하는 종교가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는 어의없는
일들은 그들이 지나치게 절대성으로 상대성과 다양성을 폄하하기 때문
이라 생각됩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거부할수 없는 절대성일것입니다.
서구 크리스챤의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양보할수 없는 신에 대한
절대성 때문에 두 문명중 하나는 성전 이라는 이름으로 파괴시켜야
끝이 날것입니다.

지구 ..정말 신기할정도로 아름답고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치밀한듯도 합니다..

예전에 절실한 크리스챤인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지 다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한 일이기 때문에 실수도 있고, 모순도 존재 할수 있습니다. "

그 모순을 정화시키고 진정한 종교의 "본질"을 밝히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현대 종교는 그런점들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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