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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1일 17시 15분 등록
놀이와 문화에 관한한 연구
호모 루덴스(Homo Ludens, Man the player 놀이하는 인간)
요한 호이징하 [김윤수 옮김] - 까치 출판사

1. 저자에 관하여

‘호모 루덴스’의 눈으로 인간행위를 관찰한다면 모든 것이 놀이에 불과하다. 사는 것도 한 갓 놀이요. 인간으로 던져진 자체가 놀이에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또 꼼짝없이 외눈박이가 된다. 니체가 흘겨본다. 6개의 눈이라도 가져라. 호이징하는 미리 경고했다. 우리 인간 행위의 내용을 인식의 저 밑바닥까지 캐어 들어가면, 모든 인간 행동이 단순한 놀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읽을 것이다.

호이징하는 1872년 12월7일 네들란드의 북쪽 대학도시인 흐로닝헨(Groningen)의 평범한 집안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대학의 생리학 교수였다. 흐로닝헨 대학에 입학한 호이징하는 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특히 동양의 언어인 히브리 어, 아라비아 어, 산스크리스트 어의 연구에 심취하였고 점차 비교 언어학으로 기울어졌다. 그리하여 1895­96년의 겨울 학기에는 라이프치히(Leipzig)에 유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비교 언어학에만 대학 생활을 전적으로 바쳤던 것은 아니었다. 「호모 루덴스」가 그 좋은 증거가 되겠지만 그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조예는 그가 이러한 분야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그는 1897년에 학위를 받은 뒤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하를렘(Haarlem) 고등학교에서 역사 교사로서 생계를 꾸렸다. 그 뒤 그로닝겐 대학에서 고대 인도 문화사와 종교사 연구로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그리고 역사학으로 기울어져서 연구 무대를 서구 중세사로 옮기게 되었다. 1905년에는 은사이며 역사학자인 블로크(P. J. Blok)의 도움으로 흐로닝헨 대학의 네덜란드 역사 교수가 되었다. 1915년에는 라이덴 대학의 일반 역사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1940년 독일군의 점령으로 그 대학이 문을 닫을 때까지 그곳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는 독일 점령 치하에서 독일을 비판함으로써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942년 석방되어 가족의 면허조차 금지된 채 겔데른(Geldern)의 작은 시골집에서 1945년 2월 1일에 72세로 영면했다.
그는 20세기의 부르크하르트라고 불리운다.

저서
- 1919 「중세의 가을―네덜란드의 14세기와 15세기의 생활양식과 정신 형태에 관한 연 구」
- 1924 「에라스무스」
- 1933 「17세기 네덜란드의 문화―사회적 토대와 국가적 특성」
- 1935 「내일의 그늘에서―우리 시대의 문화적 고민에 대한 진단」
- 1938 「호모 루덴스―문화의 놀이 요소의 규정에 대한 시도」
- 1945 「더럽혀진 세계―우리 문화의 치유 가망에 대한 고찰」
참고 : www.kachibooks.co.kr

▪ Burckhardt, Johann Ludwig (1818. 5.25 - 1897.8.8) 스위스의 역사가 미술사학자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바젤대학교와 뇌샤텔 대학에서 그리스어, 문헌학 및 역사 신학을 공부함 그는 1839-43년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했고 저명한 고대사 교수인 아우 구스트 뵈크와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에게 재능을 인정받음.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건 축에 매력을 느낌 그 뒤 예술사라는 새로운 학문을 정식으로 소개하여 낭만파 작가들로 부터 강한 흥미를 끔. 예술사 및 역사학 교수로 지냄

김윤수 :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미학과와 동대학원 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남대학교의 미학 및 미술사 담당교수로 재직함 저서 : 한국현대회화사


1. 문화 현상으로서의 놀이의 본질과 의미

[9]놀이는 하나의 의미 기능이다. 즉 놀이에는 뜻이 있다는 말이다. 놀이 속에는 생활의 직접적인 욕구를 초월하고 동시에 생활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놀고 있는 어떤 것이 있다. 놀이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역동적인 원칙을 단지 ’본능‘이라고 말해 버린다면, 아무런 설명도 되지 못한다. 반면 이것을 정신이나 의지라고 하는 것 역시 지나친 일이 된다. 하여간 놀이에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곧, 놀이가 그 자체의 본질 속에 어떤 비물질적인 성질을 가졌음을 함축하는 것이다.

[12]자연은 긴장과 쾌락과 재미를 함께할 놀이를 주었다.

[19]우선 그리고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놀이가. 자발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이미 놀이가 아니다. 기껏해야 놀이의 억지 흉내일 뿐이다. 자유라는 본질에 의해서만 놀이는 자연의 진행과정과 구분 된다. 놀이는 삶을 가꾸어 주고 확대시켜 준다.
우리의 주제는 놀이와 문화와의 관계다.
놀이의 몇 가지 측면 : 자발적 행위 자유스러운 것 즉 자유다. 삶을 벗어나 일시적으로 아주 자유스러운 활동 장소와 지속성에 의해 일상적인 것과 구별 된다.

[39]진정한 놀이는 이것의 형식적 특성과 즐거운 분위기 이외에도 적어도 한 가지의 매우 본질적인 모습, 즉 비록 잠재적이기는 하지만, “단지 하는 척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의식은 헌신적으로 시행되는 제의와 어느 정도까지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70]우리는 아주 당연하게 음악은 놀이의 영역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발단부터가 놀이 고유의 형식적 특징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음악활동은 시간과 공간의 엄격한 한계 내에서 시작되고 끝나며 반복할 수 있고 그것의 본질은 질서, 율동, 변화로 구성 되어 있으며, 청중과 연주자를 동시에 “일상적인”생활을 벗어난 기쁨과 편안의 세계에 데려다 주고 따라서 그런 점 때문에 슬픈 음악 까지도 고상한 즐거움으로 바뀌게 된다.

[71]한 말의 개념적 가치는 항상 그것의 반대를 나타내는 말에 의해 규정된다. 우리에게 놀이의 반대말은 진지함이며 보다 특수한 의미에서는 일을 말한다. 반면에 진지함의 반대말은 놀이 혹은 농담, 장난 그 어느 것도 될 수 있다.

3. 문화를 창조하는 기능으로서의 놀이와 경기

놀이로써의 문화 - 놀이가 변하여 문화가 된 것은 아니다.

[77] 놀이의 일반적 성격 가운데 우리는 긴장과,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놀이할 때는 항상 “놀이가 잘될까?” 라는 의문이 생기는 법이다. 이러한 경우는 심지어 혼자서 하는 노이들인 카드 패떼기, 조각 그림 맞추기, 글자 수수께끼, 낱말 맞추기, 공중에서 팽이 돌리기 할 때도 나타난다. 긴장과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러 집단들 사이에 놀이에서 대립적 요소가 실제로 경쟁될 때 최고도에 이르게 된다. 이겨야 한다는 열정은 놀이 특유의 가벼운 기분을 말살해 버린다. 여기서 매우 중대한 구분이 생긴다. 순전이 운수에 승부를 건 놀이에서는 그 놀이를 하는 사람이 느끼는 긴장감이 그 구경꾼에게 전달되는 정도가 지극히 미약하다. 노름 그 자체로는 문화적 탐구에 주요한 주제가 되지만, 문화의 발전 그 자체를 위해서는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83]놀이하는 사람은 상금을 받고 장사하는 사람은 이득을 얻는다. 라틴 어의 vad라는 어근에서 나온 모든 파생어들에게 특유한 것은 열정, 기회, 감행 등의 의미인데, 그것은 경제 활동이나 놀이 활동에 동시에 관계되는 의미이다. 순전한 탐욕만으로는 무역도 놀이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내기가 되지 못한다. 감행, 모험 , 불확실성에 대한 감수, 긴장에 대한 인내 등이 놀이 정신의 본질이다. 긴장은 놀이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의식을 규정해 주며, 긴장이 고조되면 놀이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해 준다.

[96]이런 의식이(포들래치)이 이루어지는 정신세계는 명예와 과시, 허풍과 도전의 세계이다. 그 의식 수행자들은 기사도와 영웅적 행위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거기서는 찬란한 이름과 갑옷과 빛나는 혈통이 더욱 중요하게 보인다. 그 세계는 수고하고 걱정하며 이익을 계산하고 유용한 물건을 획득해야 하는 그러한 일상적인 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에서의 열망은 집단의 명예, 더 높은 지위, 우월성의 증거로 향한다.

[101]고귀한 사람의 미덕은 그로 하여금 싸우고, 멸령하기에 적합하도록 하는 일단의 자질 속에 있다. 이러한 자질들 속에는 관대함, 지혜, 정의감이 높은 위치에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자질들 속에는 관대함, 지혜 정의감이 높은 위치에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많으 sals족에게는 미덕이라는 말이 “사나이다움”이라는 개념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103]귀족은 힘, 기술 용기, 지혜, 재산, 관용 등에 의해 그의 덕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런 것이 전혀 없어도 말(語)시합에서 상대방을 능가할 수 있다. 곧, 자신이 상대방을 능가하길 원하는 미덕을 자화자찬 할 수도 있고, 시인, 문장가로 하여금 상대방을 능가하길 원하는 미덕일 수도 있다. 이렇게 시합의 형태로소 자신의 미덕을 추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적수에 대한 모욕으로 어느덧 옮겨가고 ,그리하여 이번에는 저절로 하나의 시합으로 옮겨간다.

[107]자신의 우월성을 자화자찬할 때 그 상대방의 적수가 욕설과 조롱을 격렬히 퍼 붓는 것을 풍자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아주 지당한 말이다.

[115]그리스 경기는 그것이 존재했던 기간 내내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고, 후기에 가서 얼핏 보기에는 그 경기들이 순수하고 단순한 국민적인 경기의 외양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때에도 경기는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4. 놀이와 법률

[122]재판이 행해지는 곳은 어디든 하나의 성스러운 장소이며, 그것은 일상적인 세계와는 울타리 쳐진 격리된 장소이다.

[123]영국사회 특유의, 전통에 대한 경외감을 통해 법속에 간직되어 있는 예T 특색은 바로 그것뿐만 아니다. 즉 영구구법의 집행에서 그렇게도 뚜렷이 나타나는 경기적 요소와 유머는 고대 사회의 법이 가진 근본적인 특색의 하나인 것이다.

[125]고대인의 정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옳음과 그름의 추상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이김과 짐의 구체적인 문제다. 우리가 고대인의 법의식에 더욱 가까이 갈수록, 그러한 승리의 기대라는 요소가 점점 전면으로 나타난다.

[130]좀 더 진실하게 말하자면 판결의 선포와 신의 심판 즉, 시죄법에 의한 재판은 그 둘이 모두 투기적인 결정, 제비뽑기나 운수에 의한 경기든 혹은 힘이나 인내심 같은 종류의 시험에 의한 경기든 그 경기의 결과가 최후의 지시를 내리는 그러한 경쟁의 결정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말해야 되지 않을까? 승리를 위한 투쟁은 그 자체로써 성스럽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이 일단 옳고 그름이라는 명확한 개념에 의해 활력을 얻게 되면 그 투쟁은 법의 단계로 올라간다.

[132]재판과정의 내기 요소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소송의 당사자가 자기의 권리를 내기에 거는데, 다시 말하면 당사자가“담보”를 걸어 놓음으로써 자기의 권리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싸우자고 상대방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둘째는 소송 그 자체가 가진 내기적인 요소와는 상관없이 특별히 영국에서는 방청객들이나. 일반 대중들이 똑같이 한 소송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 내기를 거는 것이 통상적인 관습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36]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문화적 관습은 투기의 형태를 통해 재판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동시에 본래의 의미에 가장 가까운 놀이 그 자체로서 아직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폭소와 즐거움으로 끝나게 된다. 왜냐하면 구경꾼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133]둘째는 소송 그 자체가 가진 내기적인 요소와는 상관없이 특별히 영국에서는 방청객들이나 일반대중들이 똑같이 한 소송의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 내기를 거는 것이 통상적이 s관습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136]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문화적 관습은 투기적 형태를 통해 재판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동시에 본래의 의미에 가장 가까운 놀이 그 자체로서 아직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폭소와 즐거움으로 끝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경꾼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138]정치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은 대개 다른 사람을 중상모략하기위해 고소하는 일로써 정치적 경력의 첫발을 내딛곤 하였다. 로마에서도 역시 오랫동안, 소송에서 상대방을 꺽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합법적인 일로 여겨졌다.

5. 놀이와 전쟁

[141]우리가 전쟁을 문화적 기능으로서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전쟁의 양편이 서로를 똑같은 권리를 가진 동등자 혹은 경쟁자로의 문화적 기능은 그것의 놀이적 성격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동등한 경쟁자끼리의 범위 밖에서 행해질 때, 예를 들면 인간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따라서 인간적인 권리를 박탈당한 집단- 야만인, 악마, 이교도, 이단자, “법도 갖지 못한 열등한 종자들”-에 대적하여 수행될 때, 그러한 상태는 곧 변하게 된다. 그 경우 전쟁은 그 놀이 특성을 완전히 잃게 되고, 그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스스로의 명예를 위하여 어떠한 제한을 받아들일 때뿐이다.

[143] 결론적으로 말해서, 모든 결정에는 이러한 종교적 의미가 덧붙여진 까닭에, 우리는 전쟁그 자체를 점 혹은 예언의 한 형태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144] 전투는 운명의 시합이다. 첫 조우는 전투의 성패를 예견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단신 결투가 전투 그 자체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148]일반인들의 사사로운 결투가 재판을 위한 결투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 못된다. 본질적으로 이 둘은 똑 같은 것이다. 즉 이것들은 위신을 위한 계속되는 투쟁이다. 위신이란 정의와 힘을 동시에 포함하는 근본적인가치다. 복수란 명예감의 충족이며 명예는 그것이 아무리 사악하고 범죄적이고 또 병적인 것일지라도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150]전쟁 속에 내포된 투기적 또는 놀이적 요소는 각 문명 및 시대에서 무작위로 택한 여러 예에서 잘 예시될 수 있다.

[155] 중세의 군사 관습에는 전투의 시간과 장소를 제의하는 것과 같은 레벨의 다른 관습들이 있다. 전열에서의 ‘명예의 자리’에 대한 요구와 승자는 전쟁터에 사흘 동안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요구 등이 그러한 예이다.

[156]세계 도처의 전설에 나타나는 이 모든 제의적 ,의식적 관행에서 우리는 전쟁놀이, 전투, 법률, 운명, 우연이 서로 밀접하게 뒤엉킨 그 지속적이고 열렬한 시합의 원초적 영역에서 유래하였음을 똑똑히 볼 수가 있다.

6.놀이와 지식

모든 문화에서 트기적인 관습으로 특징지어지는 놀라운 유사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바로 인간 정신의 영역, 즉 지식과 지혜의 분야이다. 고대인에게는 행동과 용기가 바로 힘이였다. 그러나 지식(안다는 것)은 마술적인 힘이었다. 고대인에게는 모든 특수한 지식은 성스러운 지식이었고 비교적이고 경이로운 지혜였다. 왜냐하면 어떠한 짓기이든 우주의 질서 그 자체와 직접 관계되기 때문이다.

[168] 수수께끼는 비밀스러운 힘으로 충만된 성스러운 것이며 따라서 위험한 것이다. 신화적이고 제의적인 문맥에서 볼 때 그것은 거의예외 없이 독일의 언어학자들이 모가지 수수께끼로서 알고 있는 것에 해당된다. 이 수수께끼는 풀든가 아니면 머리를 내놓아야 하는 중대한 것이다.

[171]수수께끼는 원초적으로 성스러운 게임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따라서 수수께끼는 가장 성스러운 중요성을 지닌 의식의 요소이면서 동시에 본질적인 놀이였다. 따라서 수수께끼는 놀이와 진지함 사이에 어떤 가능한 경계선이라도 무너뜨리고 만다. 수수께끼는 한꺼번에 그 둘을 겸하고 있었다. 즉 수수께끼는 가장 성스러운 중요성을 지닌 의식의 요소이면서 동시에 본질적으로 놀이였다.

[173] 수수께끼의 문학적 파생물 중 하나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성스러운 것과 놀이적인 것 사이의 연관성을 매우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철학 또는 신학적 내용의 문답론이다.

[176]사물의 기원에 관한 성스러운 수수께끼 시합은 서서히 변해서 명예, 소유물 , 심지어는 귀중한 생명까지 걸고 하는 함정이 있는 질문 시합으로 변모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논쟁으로 발전했다.

7. 놀이와 시

[183]시를 짓는 것은 사실상 놀이 기능이다. 그것은 정신의 놀이터 즉 정신이 그것을 위해 창조해 주는 그 독자의 세계 속에서 진행된다. 이 속에서 사물은 “일상의 생활”에서 갖는 외관과는 다른 유대로 상호 연관된다. 만약 진지한 말을 생활을 일깨우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정의한다면 시는 결코 진지함의 수준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시는 진지함 너머에, 즉 어린이, 동물, 미개인, 예언자가 속하는 보다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수준, 꿈, 매혹, 엑스터시, 웃음의 영역에 존재한다.

[184]“시는 철학적 사랑의 꿈과 같다”고 사상가 프란시스 베이컨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자연의 아이들인 미개인들의 존재의 기원에 관한 신화적 상상 속에는 흔히, 후대에는 논리적이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지혜의 씨앗이 포함되어 있다.

[191]미적 의도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사교적 놀이로써의 시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며 그 형식도 매우 다양하다. 대개의 경우 거기에는 투기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요소는 교창, 노쟁적인 시, 노래 시합 등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며 마법을 풀기위한 목적의 주문 같은 즉흥적인 시에도 은연중에 함축되어 있다.

[194] 세계 어디서나 시사 산문에 선행한다. 진지한 것, 성스러운 것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은 시 뿐이다. 찬송, 기도문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의 종교적 교서인 ‘수트라’ 나 ‘샤스트라. 나 그리이스 철학의 초기 저작 같은 긴 논문까지도 시의 형식을 취한다.

[197]모든 시는 놀이에서 태어난다. 신앙에 기초한 성스러운 놀이, 구애라는 축제적 놀이, 임기응변과 재치의 날랜 놀이........ 이런 놀이들이 시가 태어나는 모태이다. 그러나 문명이 보다 복잡해질 때 시의 놀이적 특질은 어느 정도 보존되는가?

[199] 신화를 믿던 단계는 호마 시대에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신화는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의 적절한 상징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난 후에도 시적인 언어로 신성한 것을 표현하는 기능을 아직 보유하고 있다. 이 기능은 미적 기능 이상의 기능으로서 사실상 예배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들의 철학의 핵심을 가장 힘차게 표현하고자 할 E대, 그들은 신화형식을 사용한다. 플라톤에게 그것은 영혼이라는 신화이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것은 만물이 세계를 움직이지 않는 동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신화다.

[206]보통 사람들이 근접할 수 없는 영역에서 노닐며 그 의미를 수수께끼 같은 단어로 감싸기를 즐기는 현대 서정시들은 그들의 예술의 정수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서정시들의 특별한 언어를 d해하거나 또는 최소한 그 언어에 낯익은 제한된 범위의 독자들과 더불어서, 그들은 아주 유래깊은 폐쇄된 문화 글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귿르을 둘러싸고 있는 문명이 그들의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여 오늘날 까지 중요한 기능의 수행을 그 존재 이유로 하고 있는 한 예술을 양육시킬 수 있을까는 의심스럽다.

8. 신화적 시의 요소

[213]성자와 신비주의의 놀이터는 보통 사람들의 영역을 멀리 벗어나 있었으며 또한 논리에 얽매이는 이성적 사고로부터 훨씬 더 멀리 벗어나 있다. 신성함과 놀이는 언제나 하나로겹친다. 시적 상상과 믿음도 마찬가지다.

[216]신화의 요소뿐만 아니라 시의 요소들 역시 놀이 기능으로서 가장 잘 이해된다. 왜 사람들은 언어를 운율, 억양과 리듬에 종속시키는가? 아름다움이나 심원한 감정 때문이라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놀이의 요구를 느끼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를 쓴다면 좀 더 이해가 간다.

9. 철학에서의 놀이의 형식

[222]소피스트는 보다 고대적 형태의 문화적 교사들과 같이,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그의 업무는 그의 놀라운 지식과 신비한 기술을 공개하고 또 동시에 공개 시합에서 경쟁자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사회에서의 사회적 놀이의 두 중요한 요소가 그에게 존재한다.

[230]철학은 아득한 옛날 수수께끼 놀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수수께끼 놀이는 제의나 축제에 따르는 여흥이었다.

10.예술에서의 놀이 형식

[243]요즈음 대개 의 사람들은 즐거움을 위해서 음악을 즐기지만 옛사람들은 음악을 교육을 위해서도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자연은 우리가 일을 잘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빈둥거리기도 잘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50]무용은 순수한 놀이다. 놀이와 무용사이의 관계는 직접적인 참여의 관계이며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춤은 특수한 형식의 놀이이며, 특별히 완벽한 형식의 놀이인 것이다.

[260]예술사와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이 플로랜스의 탑들이 진지한 방위 목적의 건조물이라기보다는 “자랑하기 위한 탑”이었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 중세의 도시는 놀이의 개념을 장엄한 경관으로 보여 준 것이다.

11. 놀이의 아종으로서의 서구 문명

[261]놀이적 경쟁적의 정신은 문화 그 자체보다도 더 오래된 사회적 충동이며 마치 효소처럼 모든 생활에 스며있다. 의식은 봉헌 놀이에서 자라났으며 시 역시 놀이 속에서 탄생해서 놀이에서 자양을 얻으면서 자랐다. 음악과 춤은 순수한 놀이었다. 지혜와 철학은 종교적인 시합에서 유래된 언어와 형식에서 그 표현을 찾았다. 전쟁의 규칙, 귀족 생활의 관습은 놀이 패턴 위에서 구축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문명은 애초에는 “놀이 되어진 것”이라는 결론이 이른다. 문명은 아기가 자궁에서 떨어져 나오듯이 놀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문명은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생기며 떠나는 법이 전혀 없다.

[271]르네상스의 정신은 장난과는 거리가 전혀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정신보다 더 진지한 정신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전반적인 정신적 태도는 놀이였다.

[281]음악은 놀이기능의 가장 높고 순수한 표현이다. 18세기 음악의 중요성은 그 놀이 내용과 심미적인 내용의 완전한 조화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순수한 청각적 현상으로서 음악은 이미 여러 면에서 세련되고 풍요로웠다.

12. 현대 문명에서의 놀이 요소

[294]경기가 더 이상 놀이가 아닌 그들을 분리시켜 그들에게 경기 능력으로는 우수하지만 그 지위로는 진정한 놀이꾼보다. 낮은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프로패셔널의 정신은 이제 진정한 놀이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움과 내키는 대로 하는 태평스러움을 상실하고 있다.

[298]일부 대기업에서는 생산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의도적으로 놀이 정신을 주입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되면 사정이 뒤바뀌어 놀이가 일이 된다.

[301]사람들은 과거에 예술 그 자체의 높은 목적과 그것이 창조하는 아름다움을 대체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예술이 스스로를 의식할 때, 다시 말해서 자신의 장점을 의식할 때 예술은 그 영원한 어린애 같은 무구성의 일부를 상실하기도 한다.

[325]문명은 놀이 속에서 놀이로 생겨나며 놀이를 떠나는 법이 없다. 곧 인간은 놀이를 통하여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놀이정신이 없을 때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3. 내가 저자라면

[319]“부족함이 활동의 본능 동기 일 때는 동물은 일을 하고, 힘의 풍족함이 본능 동기일때는 놀이를 한다.” 과잉된 생명은 스스로 활동을 충동한다. -실러-[인간의 미적 교육}

실러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호이징하는 즐겁고 유쾌한 작업을 했다. 그 놀이 이름은 ‘호모루덴스’다
저자는 인류 역사의 특징을 ‘놀이’ 라는 인간 행동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문화의 하위개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가 문화 그 자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놀이의 특징을 고대사를 시작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화 양식에서 놀이의 특징을 찾아낸다. 문명은 놀이 속에서 생겼으며 삶이 놀이와 유리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삶은 놀이의 연속이다. 그의 삶도 놀이와 같았으리라.
그는 놀이의 특징과 조건을 몇 가지로 내세웠다.
- 자유로운 행위
- 물질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순수함
- 강렬하게 사로잡을 만한 재미있는 거리 (흥미로운 일)
- 승패가 있고
- 놀이에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이 지켜질 때 일시적인 효과가 있으며
- 격리되어 있으며 ‘척’하는 요소들


인간 본질을 ‘놀이’라는 양식으로 바라본 호이징하의 의견에 동의를 하는 순간부터 삶이 놀이로 다가왔다. 그 역시 나를 우려했음인지 나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입장에 서려면 처음부터 이 책을 읽지 말라는 경고를 했었다. 그러나 협박, 경고는 더 큰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의 이야기를 비판의 눈길로 하나하나 더듬어 나갔다. 처음부터 그의 인정을 받지 못한 독자라 그의 이론에 동정의 눈길을 줄 필요도 없었고 그의 노고에 경탄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10개의 눈으로 그를 감시했다.

그의 출발선은 ‘무엇 때문에 놀이를 하는가?’가 아니라 ‘놀이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문화 현상으로써의 놀이의 본질과 의미'라는 chapter로 출발했다.

출발부터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는 ‘외눈박이가 아닐까?’
그는 해답을 가지고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즉 귀납법으로 전개해 나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한 문화〉놀이 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화 = 놀이 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놀이 자체가 문화’라는 해답을 가지고 수많은 곳에서 그 답을 지지하는 근거자료를 가지고 온다. 나아가서 해답은 간결하게 써놓고 답의 특징을 애써 연결하려고 노력한다. 신화를 비롯한 축제, 경기 전쟁, 제도, 지적활동 등 인간생활 전반적인 부분으로부터 놀이의 요소를 뽑아내며 그들을 특징지어 세운다. 백 번 양보하여 그가 제시한 것들이 해석상 진실로 사실이라고 가정 짓자. 그러나 고대를 거슬러 올라가 신화적인 측면까지 그 넓은 역사적 기록, 비 기록들의 신빙성에 앞서 예시한 자료들이 무수히 많은 역사적 이야기들 중 얼마만큼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을까? 표준편차에 대한 의의제기다.

책을 읽어갈 수록 내가 가진 눈의 숫자는 줄어든다. 적절한 실례가 될지는 의문이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다.’ 그는 지루 하리 만큼 수많은 자료로 나를 끌어들인다. 즐기지 않고서는 찾아내기 힘든 자료들을 코앞에 들이민다. 나에게 항복을 권한다. 나는 결국 항복이 아닌 감복, 감탄에 그에게 동의표를 던진다. 놀이는 문화 그자체임에도, 놀이의 특징적인 면에서도 그의 체면 술이 걸려들었다. 그러나 한편은 나의 눈을 잃고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다. 그의 눈으로 본 세상은 생활이 놀이고 내가 하는 놀이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어린아이들의 놀이에 내가 빠져있다. 그러나 위안을 얻는 것은 그는 ‘놀이는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게 놀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순진에 무구 까지 한지는 확신하지 못하나 형편없는 놀이를 하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기에 즐겁다.

호이징아가 말한 놀이의 눈으로 인간 인식을 기웃거리는 순간 너무도 흥미로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혹시 신이 이 세상을 만들면서 인간을 흥미롭게, 또는 한눈팔지 않게 곳곳에 수수께끼를 숨겨 놓지는 않았나 하는 것이다. 편을 갈라서 즐겁게 놀이할 수 있도록 ‘꺼리’를제공 해 놓았다는 생각이다. 내가 호이징하의 ‘호모 루덴스‘적 인간 고찰을 외눈박이 해설이라고 했지만 내가 외눈박이가 되어 가는 것에는 너그럽다.

신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놀 ‘꺼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삶은 한바탕 놀이판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었다.

-- 신이 우리들에게 제공한 장난감 목록 --
1. 암컷과 수컷
2. 밤과 낮
3. 물과 불
4. 땅과 하늘
5. 웃음과 울음
6. 소리와 침묵
7. 높음과 낮음
8. 빛과 그림자
9. 앎과 모름
10. 공책과 연필
----------------------. and so on.
인간은 신이 던져준 놀잇감을 잘도 찾아 놀았다. 적어도 근대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19세기를 지나 현대에 이르는 역사는 놀이할 의욕을 상실했다. 자연히 그 좋던 눈의 시력은 안경을 착용해야 사물을 볼 수 있는 지경이다. 고양기가 주인이 주는 풍부한 먹잇감에 사냥할 능력을 상실함과 같은 이치라고 나 할까? 현대 놀이는 ‘놀이인 척’ 겉모양만 갖추었지 진정한 놀이는 아니다. 미성숙한 놀이 정신은 규칙을 어지럽히고 놀이 자체를 망쳐서 문명을 파괴시킨다. 인간이 너무도 잘 놀기에 어쩜 신이 인간의 놀이에 잠깐 미끼를 던져놓은 것은 아닐까? 텔레비전이 그렇고 수동적 모든 놀이가 그렇다. 현대 물질문명에 휩싸여 온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건넨다.
책을 덮을 무렵엔 자의적으로 호이징하 편으로 돌아선다. 단지 그가 말한 본질적인 인간행위로써의 ‘놀이’에 동의함이다. 동의했으면 그를 따를 일이다. 그가 염려한 현대 사회의 ‘놀이의 상실’의 치유책을 찾아낼 일이다. 그가 일생을 받쳐 우리의 삶이 놀이 중심이었다는 것을 찾아내려고 한 것은 단지 인간 문명의 상실을 염려한 것에서 벗어나 인간을 지극히 사랑함에서 온 것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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