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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9일 07시 14분 등록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의 생명이자 정점이다. - 시인 존 드라이든 -


일제 강점기, 8·15 해방, 6.25 전쟁, 4.19혁명, 5.16혁명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경험한 시인이 그린 이미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신동엽 선생님은 정작 시인과 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時란 바로 생명의 발현인 것이다. 시란 우리 인식의 전부이며 세계 인식의 통일적 표현이며 생명의 침투며 생명의 파괴며 생명의 조직인 것이다. 하여 그것은 항시 보다 광범위한 정신의 집단과 互惠的 통로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하나의 시가 논의될 때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이야기해 놓은 그 시인의 인간정신도와 시인혼이 문제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철학, 과학, 종교, 예술, 정치, 농사 등 현대에 와서 극분업화된 이러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인식을 전체적으로 한 몸에 구현한 하나의 생명이 있어, 그의 생명으로 털어 놓는 정신어린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가히 우리시대 최고의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란 인간의 원초적, 歸數性的 바로 그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시는 궁극에 가서 종교가 될 것이라고. 철학, 종교, 시는 궁극에 가서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과학적 발견-자연과학의 성과, 인문과학의 성과, 우주탐험의 실천 등은 시인에게 다만 풍성한 자양으로 섭취될 것이다.

하여 내일의 시인은 제왕을 실직케할 것이며, 제주를 실업케할 것이며 스스로 천기를 예보할 것이다. 그는 太虛를 인식하고 대지를 인식하고 인생을 인식할 뿐이며, 문명수 가지나무위에 난만히 피어난 次數 世界性 空中建築같은 것은 그 시인의 발밑에 다만 기름진 토비로써 썩혀질 뿐일 것이다. 次數性世界가 건축해 놓은 기성관념을 철저히 파괴하는 정신혁명을 수행해 놓지 않고서는 그의 이야기와 그의 정신이 대지 위에 깊숙이 기록될 순 없을 것이다. 지상에 얽혀 있는 모든 국경선은 그의 주위에서 걷혀져 나갈 것이다. 그는 인간의 모든 원초적 가능성과 귀수적 가능성을 한 몸에 지닌 全耕人임으로 해서 고도에 외로이 흘러 떨어져 살아가는 함이 있더라도 문명기구 속의 부속품들처럼 곤경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하여 시인은 선지자여야 하며 우주지인이어야 하며 인류발언의 선창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p 371 시인정신론 중에서)


1. 저자에 대하여

저자의 일생을 알아보기 전에 저자가 살고자 한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의 설계>

서둘고 싶지 않다.

내 故鄕 사람들은 봄이 오면 새파란 풀을 씹는다. 큰 가마솥에 자운영ㆍ毒蛇풀ㆍ말풀을 썰어 넣어 삶아가지고 거기다 소금, 기름을 쳐서 세 살짜리도, 七旬 할아버지도 콧물 흘리며 우그려 넣는다. 마침내 눈이 먼다. 그리고 洪水가 온다. 洪水는 장독, 상사발, 짚신짝, 네 기둥, 그리고 너무나 훌륭했던 人生諦念 으로 말미암아 抵抗하지 않았던 이 자연의 아들 딸을 실어 달아나 버린다. 이것이 人間들의 內質이다.
오늘 人類의 外皮는 너무나 극성을 부리고 있다. 키 겨룸, 속도 겨룸, 量 겨룸에 거의 모든 행복을 소모시키고 있다. 헛 것을 본 것이다. 그런 속에 내 인생, 내 인생 설계의 넌출을 뻗쳐 볼 순 없다. 내 거죽이며 발판은 이미 오래 전에 찢기워져 버렸다. 남은 것은 영혼.
“治大國, 若烹小鮮”
老子 五千言 속에 있는 말이다.
“大國을 다스림은 흡사 조그만 生鮮을 지짐과 같아야 한다.”
조그만 생선을 지지면서 저깔 수저 등을 총동원하여 이리 부치고 저리 부치고 뒤집고 젖히고 하다 보면 모두 부셔져서 가뜩이나 작은 생선살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수선피지 말고 살짝 구우라는 것이다.
나도 내 人生만은 조용히 다스려 보고 싶다. 큰소리 떠든다고 세상 정치가 잘 되는 것이 아니듯이 바삐 서둔다고 내 人生에 큰 떡이 돌아오진 않을 것이다. 그날이 와서 이 옷을 벗을 때까지 산과 들을 바람결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얼마 아니 지나면 가로수마다 윤기 짙은 새 잎이 화창하게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신록의 푸짐한 經營밑에 젊은 구둣소리가 또각또각 먼 꿈을 싣고 사라져 갈 것이다. 그 사라져 가는 언덕 너머 내 소년시절의 인생의 꿈은 사리고 있었다.
언제가 부우연 호밀이 팰 무렵 나는 사범학교 교복 교모로 錦江줄기 거슬러 올라가는 조그만 발동선 갑판 위에 서 있은 적이 있었다. 그때 배 옆을 지나가는 넓은 벌판과 먼 산들을 바라보며 <詩>와 <사랑>과 <革命>을 생각했다.
내 일생을 詩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일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일생을 革命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 (p 343)


신동엽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 신연순과 모친 김영희 사이에서 1남 4녀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신동엽의 유년 시기는 일제의 군국주의가 수탈정책을 극도로 강화하여 헐벗고 굶주림이 지배하는 절대적 빈곤의 시대였다.

부여초등학교 시절에 신동엽은 과묵하고 내향적 성격이었다. 곧잘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고, 6년간 내리 우등상을 탈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다. 6학년 때 '내지성지참배단'의 그 학교 대표로 뽑혀 보름간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1943년 그 절대적 빈곤의 시대에 가난한 수재들이 열망하는, 또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사범학교다. 학비가 훨씬 적게 들고 의무적이지만 초등학교에 발령이 나기 때문이다. 신동엽은 학우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문학, 종교, 사상서에 파묻혀 살았다. 일제의 무리한 근로봉사와 굶주림으로 건강을 잃어가던 이 시기가 비로소 민족의식에 눈뜬 시기라고 추정해 봄직하다. 재학 중에 8·15 해방을 맞았다. 그 당시 그의 반응은 알 수 없으나 그 후, 1948년 남한 총선을 반대한 동맹 휴학 가담으로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또, 그는 우익뿐만 아니라 좌익 학생들에게도 끌려가 심한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좌·우익에게는 '중립'으로 여겨지는 그의 소박한 '민족주의'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이데올로기보다 민중 자체가 더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범적인 식민지 학생이나 혼자만의 문학세계에 빠져있던 모습과는 다른 내면의 변화를 나타낸다.

1949년 단국대학교 사학과 입학하였다. 그는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진정한 민족주의가 좌절된 정치적 현실에 대한 좌절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한(恨)의 서정으로 표현한 <나의 나>를 쓴 것이 이 때이다. (발표는 1962년 6월)

6.25 전쟁은 신동엽의 정신과 육체에 치명적 손상을 입혔다. 7월부터 9월까지 부여에서 인민군의 강제부역을 함으로써 수복 후 부산으로 도피, 12월 방위군으로 징집되었다. 군간부들의 부정부패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다 이듬해 2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귀향한다. 오랜 요양을 필요로 한 이 귀향길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여 민물의 게를 잡아 날로 먹는 바람에 뒷날 간디스토마로 고생하다 간암으로 요절하게 된다.

대전 전시연합대학에 재적하던 중 백제 사적과 갑오농민전쟁 전적지를 답사한다. 이는 그가 1960년대 대표적 참여 시인이 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반봉건·반외세의 갑오농민전쟁에서 그는 '적'을 인식하게 되는 확실한 역사의식을 가진다.

1953년 졸업 후 서울에서 친구의 헌책방 일을 하며 자취를 했다. 여기서 소설가 현재훈과 아내 인병선을 만난다. 열렬한 연애 끝에 1956년 결혼하여 부여에서 신혼집을 차렸으나 가난은 여전했다. 아내의 양장점 개업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되자 구상회 등 문학지망생들과 어울려 시인이 될 꿈을 키운다.

그 후 보령농고에 취직하였으나 디스토마가 발병해 각혈과 고열에 시달리게 되면서 가족과 헤어져 본가에서 요양한다(폐결핵으로 오인하여). 이때 시쓰기에 몰두해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를 썼고(1959년 조선일보에 20여행이 삭제되어 실림), 이 시로 인해 시인 박봉우와 만나 참여시인으로서 둘도 없는 지기가 되었다.

교육평론사에 재직하면서 본격적인 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1960년 [교육평론]에 <싱싱한 瞳子를 위하여>를 발표, 미래 지향적 태도를 보인다.

4.19의 체험은 그로 하여금 1960년대 대표적 참여시인이 되게 했다. <학생혁명시집>엮어 4.19의 정신을 자유와 정의로 읽고, 승리와 그 감격을 노래했다. 그러나 미완의 혁명은 쓰라린 좌절도 함께 가져다 주었다.

1961년 명성여고 교사로 재직하면서 사망할 때까지 8년 동안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다. 혁명의 좌절로 인한 정신주의에 몰두한 시기로 정신사적 시론 <時人精神論>을 발표(1961년 2월), 무정부주의·동양적 정신주의·민족주의를 나타낸 시관을 보여준다.

4.19의 좌절로 더욱 정신주의에 침잠한다. 정지적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1962년 건국대학원에 입학, 정신주의로 도피해 버티고자 한다. 이 때 쓴 시는 참여시 성격이 강한 작품에 동양적 형이상학으로서의 정신주의가 지배하고 있다(시집<阿欺女>).

그 후 <주린 땅의 指導原理>(1963년 11월)에서야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정신주의 우세로부터 돌아와, 현실 참여적 성격을 더 강하게 띠게 된다.

1964년 굴욕적 외교인 한일회담 일정합의와 정보기관의 학원사찰로 인한 학생 시위. 그러나 계엄 선포와 많은 학생들, 정치인, 언론인이 구속되는 결과를 낳고 좌절한다. 이로써 신동엽은 정신주의의 안주에서 현실로 뛰쳐나오게 된다. (한일 협정 비준반대 서명참여). 적극적 현실 참여로 나온 <발>,<4월은 갈아엎는 달>등이 발표된다.


1967년부터 1968년까지의 시절은 개인 시사에서 절정기를 이룬다.

1967년에는 참여시의 극점인 <껍데기는 가라>(1월), 대작 <錦江>(12월)을 발표, 1960년대 참여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1968년에는 시인으로서의 삶이 절정에 이른 시기이다. 세상을 하직하기 직전의 한 해 동안 가장 왕성하게 창작을 했다. <봄은>(2월), 오페레타<석가탑>, <술을 많이 마시고 난 어제밤은>(6월), <여름고개>(8월), <散文詩1>(11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 많은 유작을 창작하였다.

이 해 그를 확고한 참여시인으로 평가했던 김수영의 죽음을 체험한다. 이듬해인 1969년 4월 7일 간암으로 사망한다. 3월 간암 진단을 받은 후, 퇴원하여 한약으로 버티면서 신체가 망가지고 혼수상태의 사경을 헤메이며 투병하다 문병 온 남정현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2.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들


<진달래 山川>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뻣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果樹園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 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엔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지요. (p 8)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그렇지요, 좁기 때문이에요. 높아만 지세요. 온 누리 보일 거에요. 雜踏 속 있으면 보이는 건 그것뿐이에요. 하늘 푸르러도 넌출 뿌리속 헤어나기란 두 눈 먼 개미처럼 어려운 일일 거에요.

보세요. 이마끼리 맞부딪다 죽어가는 거야요. 여름날 洪水 쓸려 罪없는 百姓들은 발버둥쳐 갔어요. 높아만 보세요. 온 歷史 보일꺼에요. 이 빠진 古木 몇 그루 거미집 쳐 있을 거구요.
하면 당신 살던 고장은 지저분한 雜草밭, 아랫도리 붙어 살던 씁쓸한 그늘밭이었음을 눈뜰 거에요.

그렇지요, 좀만 더 높아 보세요. 쏟아지는 햇빛 검깊은 하늘밭 부딪칠 거에요. 하면 嶺너머 들길 보세요. 전혀 잊혀진 그쪽 황무지에서 노래치며 돋아나고 있을 싻수 좋은 둥구나무 새끼들을 발견할 거에요. 힘이 나거든 그리로 가세요. 늦지 않아요. 이슬 열린 아직 새벽 벌판이에요. (p 21)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매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는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漢羅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p67)


<봄 은>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p 72)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一生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p 85)


<좋은 言語>


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 버려요.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그리구 기다려 보세요.
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
가슴으로 머리로
속속들이 굽이돌아 적셔보세요.



허잘것 없는 일로 지난날
言語들을 고되게
부려만 먹었군요.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허지만
그때까진
좋은 言語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p 92)


<마려운 사람들>

마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무서워 보이는 것이리

구름도 마려워서
저기 저 고개턱에 걸려 있나
고달픈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고요한 전날 밤
역사도 마려워서
내 금 그어진 가슴 위에 종종걸음 치나

구름을 쏟아라
역사의 하늘
벗겨져라

오줌을
미국 땅 살 만큼의 돈만큼만
깔겨 봤으면
너도 사랑스런 얼굴이 (p 93)


- 知의 最高 最廣의 形態는 공기와 같은 투명체이다. 知란 존재하지 않는 것의 世界이다. 그러나 예술은 존재하는 것의 世界다.

- 幸ㆍ不幸은 마음 먹기에 좌우되지만 아픔과 기쁨은 마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 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 詩業家는 많아도 詩人은 드물다.

- 내가 야윈 건 마음이 착해서, 내 祖國이 야윈 건 내 조국의 마음이 착해서이다.

- 짐승은 예술과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생명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民衆 속에서 흙탕물을 마시고 民衆 속에서 서러움을 숨쉬고 民衆의 정열과 지성을 織造 救濟할 수 있는 民族의 豫言者, 백성의 詩人이 祖國心性의 본질적 前列에 나서서 차근차근한 發言을 해야 할 時機가 이미 오래 전에 우리 앞에 익어 있었던 것이다.

- 感覺은 知能을 앞서 간다.
감각은 理想을 거두어 간다.
體系는 煩雜의 새끼들
閑暇 속에선 목숨이 목숨 속에 녹아든다.

- 현실은 찌꺼기이다. 맑은 흐름이 밑 깊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솟아서 태양볕에 發效醇化받아 原淸에로 되돌아가기 위한 순환작용이다.

- 사람과 사람사이의 표현 중에 가장 진실된 것은 눈감고 이루어지는 육신의 교접이다. 그 다음으로 진실된 표현은 눈동자끼리의 熱氣이다. 여기까지는 진국끼리의 왕래다. 그러나 다음 단계부터는 조작이다.

- 옛날사람들은 주어가 인생이었지만 요새 사람들은 주어는 인생이 아니고 보석이요, 인생은 은 수식어이다.

- 夫婦 너와 나는 땜장이, 일감이 없으면 일감을 만들고.

- 요새 사람들이 詩라고 우기는 그 言語細工品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앞선다. 美辭的句는 브로찌文化, 기생하고 있는 또 더 작은 장식 문하에 지나지 않는다.

- 인생을 시는 構成하고, 그것을 무용은 즐겁게 한다.

-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릴 때 나는 哲人이 될 것이다. 세상만인이 나를 따를 때 나는 詩人이 될 것이다. 歷史 속에 이름을 남긴 큰 수도자는 보다 이 두 길을 함께 지닌 者들이었다.

- 인간에 충실하려는 사람은 체계를 싫어한다. 체계란 철갑옷이다.



3. 내가 저자라면


“과학자, 화가, 시인들은 모두 복잡한 체계에서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변수를 제거함으로써 핵심적 의미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현실이란 모든 추상의 종합이며, 이 가능성을 알아냄으로써 우리는 현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추상화란 현실에서 출발하되,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가면서 사물의 놀라운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할 일은 추상화 자체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p 111 생각의 탄생)

추상화는 다른 모든 분야의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특히 시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어떤 이는 길게 쓰는 것을 선호하고, 어떤 이는 반대로 짧게 쓰는 것을 선호한다.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고 한다. 더구나 시는 짧은 문장 속에 함축된 의미를 담고 있어 단순한 단어의 의미만으로 그 알맹이를 알기는 매우 어렵다. 단단한 호두껍질 속에 담겨있는 알맹이와 같다고 하겠다. 특히 신동엽 선생님의 시는 민족의 시대적 아픔을 담고 있기에 그 호두까는 방법을 알지를 못하면 제대로 그 의미를 느끼기가 매우 어렵다.

신동엽전집을 보면서 <코드명 J>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인 키에누 리브스는 실리콘 칩 메모리 확장 장치를 뇌에 이식해 놓고 그 속에 비밀정보를 입력한 후 의뢰인에게 전달하는 스페셜리스트이다. 이번 일은 한 회사에서 빼낸 NAS 치료방법이 담긴 귀중한 데이터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입력된 데이터는 조니의 용량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최대한 빨리 다운로드 하지 않으면 그는 곧 죽게 된다. 왜 이 장면이 떠오른 것일까? 시대적으로나 상황을 놓고 보더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교차되어 나타난 것일까? 아마 시를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고 머리에 억지로 입력하려하니 이런 느낌이 든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보다는 시인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신동엽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시란 무엇이며, 시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진정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았으면 좋겠다. 내게 많은 논쟁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많은 시간동안 생각해봐야 하는 또 다른 질문을 얻은 느낌이다. 가슴 속에 남아있는 말을 떠올리며 그 시간을 다시 되새겨본다.

“ 내 일생을 詩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일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일생을 革命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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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이외수 &lt;날다타조&gt; [1] gina 2007.10.22 2335
1114 [독서29]호모 루덴스/호이징하 素田 최영훈 2007.10.22 2246
1113 [29] 호모 루덴스/ 요한 호이징하 [8] [3] 써니 2007.10.22 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