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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0일 16시 22분 등록

“예수, 브뤼셀 시내를 방문하다”
가치 중심 리더십에 관하여

이 책의 겉 표지에 실려 있는 19세기 때 그려진 그림 한 편을 보면, 오늘날의 상당히 복잡한 리더십의 문제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누구나 1889년에 예수가 브뤼셀 시내 입구를 지나가는 이 장면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림에서 사용한 색깔들이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며져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은 초현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캘리포니아 말리부에 위치한 게티 박물관의 큰 벽을 차지하기에 매우 대범하고 적절하게 큰 그림이다. 벨기에 화가 제임스 엔소가 1880년에 그린 이 그림은 스케치와 색감, 그리고 내용 면에서는 훌륭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은 결코 아니다. 인상파 화가들이 한창 파스텔 풍의 분홍색과 하늘색을 주로 사용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당시, 엔소는 이 그림에서 그 후 20년 뒤에 생성됐던 화려한 표현주의 화가들의 등장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림의 주된 소재는 소란스런 군중들이 거리에 나와 퍼레이드를 이루는 것으로, 19세기 판 ‘뉴욕의 돌아온 영웅’을 연상케 한다. 그림 속의 열광하는 군중은 하나 같이 들뜬 마음으로 자신의 감정에 몰입해 있다. 그림의 중간 부분에 보면, 드럼 치는 군악대를 인도하는 병사가 있는데 아무도 그의 비트에 따라 행진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마치 혼란스런 파티처럼 보인다-다채롭고, 영광스럽고, 소란스러운, 그리고 엔소의 표현대로라면 명백하게 민주주의적이다. 엔소는 시민들을 각자의 개성대로 다양하게 표현했는데, 시민들의, 시민들에 의한, 그리고 시민들을 위한 이 퍼레이드 속에서 브뤼셀 거리를 메우는 떠들썩한 인파의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복잡한 군중 속에 예수는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이 그림의 제목을 제대로 읽었는지 재확인하게 된다. 제대로 읽은 것은 맞는데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예수가 앞장 서서 퍼레이드를 인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예수가 이 그림의 시각적 포커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그림을 찬찬히 감상하고 있노라니, 마치 ‘월리를 찾아라’ 놀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한참을 들여다 보면 예수는 왼쪽 뒤쪽 배경에 그를 뒤덮을 것만 같은 군중들 속에서 발견된다.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이것은 서양 예술을 접하며 자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조금 심란스러운 그림이다. 2천 년 가까이 예수는 모든 예술 작품 속에서 그림의 가장 중심, 또는 가장 핵심이 되는 소재로 그려져 왔다. 그런 전통적인 표현 기법을 다시금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엔소는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 탔었다는 야생 당나귀를 탄 예수를 그리고 있다. 거의 모든 성경적 미술 작품에서 예수는 주인공이었다. 단순히 가장 눈에 띄는 소재일 뿐만 아니라, 퍼레이드를 앞장 서서 인도하는 주인공이었다. 우리의 종교가 무엇이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엔소의 작품이 종교적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예수가 왕의 위치에 서 있을 때나 죽음의 언덕 위에 있을 때나 그가 꿋꿋이 버티고 있는 장면들에 익숙하다.

엔소는 그 전통을 깨트렸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예수 재림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냉소적인 해석에 동조하려는 게 아니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부활한 예수를 스페인의 종교 재판 가운데 그려 넣었고, 자유를 향한 힘겨운 여정을 헤쳐나가는 리더보다는 시민들에게 비젼을 제시해 줄 강력한 독재자를 갈망하는 시민들에게서 불명예스러울 정도로 조롱 당하는 예수를 그려낸다.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다르게 엔소는 러시아의 독재자의 어두운 그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엔소가 그리고 있는 예수의 적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짜르도 신약 성서에 나오는 카이자도 아니다. 대신, 브뤼셀을 방문한 예수는 현대의 문명이 가져오는 그 산만함과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엔소의 그림에서 군중의 어느 한 사람도 그들을 구원해 줄 예수에게 주목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 사회와 조직 속에서 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변화하기 위해 최초로 직면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엔소의 그림은 오늘날까지 중요한 질문으로 남아 있는 의문점을 제시하고 있다. 현대의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과연 리더십이란 실현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민주주의적 리더십’이 단순한 아이러니에 불과한 것일까?

엔소는 사회적 혼란이 그 당시 유럽에서 출현하고 있던 세속적인 민주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미 100년 전에 그는 오늘날 76개의 케이블 채널과 같은, 전통을 파괴하는 문화적 공포물의 등장을 예견한 것이다. 엔소의 다소 광적인 분위기의 이 브뤼셀 그림은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더 혼란스러운 오늘날, 효과적인 리더십을 저해하는 새롭게 등장한 방해요인들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 그림 속에 나타난 시대는 아무리 혼란스러웠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만큼 각박하고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는 전 세계가 아닌 지역 공동체에 의해 도시가 운영되었고, 오늘날처럼 몇 초가 아닌 바다를 사이에 두고 몇 주씩 걸려 상호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으며, 그 어느 누구도 환경주의라든가, 마이크로 칩이라든가, 문화적 다양성이란 용어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19세기 말 유럽에서 거론되었던 리더십이 오늘날보다 다루기 쉬웠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아마 A.D. 33년 때의 리더십조차도 누워서 떡 먹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급진적으로 변화한 현대사회의 여러 영역과 범위, 그리고 그 속도가 리더십이라는 주제에 대한 도전을 이전보다 더욱 어렵게 만들어 놓았음 에는 틀림없다. 특히, 리더십에 대항하는 근본적 요인들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현대의 다원주의적 민주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관점에서, 엔소는 현대를 사는 리더들은 앞으로 전통주의 적인 권위와 처벌, 또는 억압과 협박이라는 무기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대신에,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동을 자아내는 리더가 되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엔소는 각자가 한 명의 평등한 정치적, 사회적 객체인 개인들을 모아둔 군중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잘 리드할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가져오는 일에 예외 없이 크고 작은 적대감이나 반항심을 보이는데, 현대 사회는 리드 당하는 것 자체를 아예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엔소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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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10.30 16:23:58 *.6.5.207
지금 나가봐야 하는데... 저장해 놓은 다른 파일들이 안 열려서
여기까지만 올리고 이따가 들어와서 나머지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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