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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5일 13시 5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강영희

문화평론가.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국문학과 대학원, 동국대 영화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에는 문화평론집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1994)]와 인터뷰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다시 만난다(1998)]가 있다. 연극평론에서 시작해서 문화평론으로 영역을 넓혔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인터뷰에도 팔을 걷고 나섰다. 6년 전부터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한동안 무위도식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비롯해서,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대만 등지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문화평론가로서 세상의 모든 잡사에 대한 잡문을 써온 그녀는 이 책을 쓰면서 세상의 모든 잡학을 용감하게 돌파하여 그것들을 꿰뚫는 깨달음을 얻겠노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었다. 꿈의 주제는 물론 문화이며 인문이며 창조이며 성찰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을 다룬 이 책은 그 첫걸음이다.

2.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

16-한국인은 자신을 보존하는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모순된 상황으로 내몰렸다.

17-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따금 밖으로 향해 있는 안테나를 내리고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겸재의 진경산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또 다른 교훈이기도 하다. / 겸재의 진경산수를 기점으로 사대적인 감수성에서 자주적인 감수성으로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20-‘화려하지만 결코 화려하지만은 않은’ 아름다움이 있다./ ‘남을 흉내 내는 것’과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것’

22-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일찍 서구문물에 개명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순수성을 더 잘 보전한 고전인 이었던 것이다. / 손에 이끌려 뉴욕 시내 한복판을 걸어가던 나는, 어쩌면 그곳이 뉴욕의 한인들이 ‘토속적인 자기’를 지키기 위해 은밀히 마련해 놓은 정신적인 교두보일는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뉴욕이야말로 종교와 예술과 문화에 걸쳐 세계문화의 다원성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남을 흉내 내는 것’과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곳이 아닌가. 이같이 ‘토속적인 자기’들을 폭넓게 받아들인 것이야말로 이렇다 할 ‘토속적인 자기’를 지니지 못한 오늘의 미국문화로 하여금 세계문화의 리더로서 자신을 내세울 수 있게 한 비결은 아니었을 까. / 어쩌면 우리는 세계성의 부재를 토속성의 과장으로 얼버무리는 이상한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24-[대화] 박수근. 1963년. 캔버스에 유채, 박수근의 그림이 마애불과도 쇠라의 그림과도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창조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깨닫기 위한 첫걸음이다. 고유섭은 “인간의 실재 생활이란 무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요 일종의 변증법적 비약 의지 속에서 창조가 나오는 것인 만큼 절대 새로운 것에서의 창생이란 것은 없는 것이다. 이 뜻에서 ‘만유는 무에서 나오지 아니 한다’는 정언의 일종의 파라독스를 갖고 새로운 악시옴(公理)으로 다시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유는 무에서 나온 것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사물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라는 면에서 무에서 나온 것이다. 박수근은 전통을 씨줄 삼고 세계적인 당대성을 날줄 삼아 매혹적인 창조에 도달했다.

25-그간은 제로섬 게임을 벗어나 양자를 회통시킨 결과 도달한 창조의 열매다. 세계인이냐 한국인이냐가 아니라 세계인인 동시에 한국인 이어야 한다. 둘 가운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문제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회통이다. 반드시 백남준이거나 윤이상, 이응노여야 할 이유도 없다. 겸재난 박수근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장사꾼이면 어떻게 평범한 시민이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이 창조적이기를 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27-‘기억속의 심상’ : 그가 전통을 기억의 형태로 몸 속 가득히 저장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전통이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기억 속의 심상’이다.

28-인산의 삶을 관통하는 모든 비극은 인간이 시간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난다. 이같은 시간의 불가역성에 항거하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인간을 자신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가두어 놓는 시간의 질서에 거역함으로써,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가 된다.

29-산업혁명에서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근대의 심장인 욕망과 이에 따른 죄의식을 오히려 빛나는 자의식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32-반복하자면, 전통이란 ‘기억 속의 심상’이 지금 이 순간에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의 저력이란 문화 속에 덧쌓인 ‘기억 속의 심상’의 두께이며, ‘기억 속의 심상’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취향이야말로 미의식의 본질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전통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취향을 즐겁게 뛰놀도록 하는 ‘기억 속의 심상’이 ‘생애 지주’와도 같이 우리 안에 늘어서 있어야 한다. 취향의 뜨락인 ‘기억 속의 심상’의 상실이야말로 전통의 단절에서 창조의 불능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감옥이다.

37-딜레땅띠즘(dilettantism). 다이너미즘(dynamism)

38- 근대화. 서구화에 일본화를 겹쳐놓은것이었다. 성찰의 여백은 실종된 반면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데 급급한 조급함만이 넘쳐났다는 것이다.

40-전근대적 인간에서 근대적 인간으로의 정체성 변화를 경험하는데 순간 그들은 어김없이 ‘기차가 있는 풍경’ 속에 존재한다. 여기서 시차란 전신이나 전화, 잠수함이나 증기선 같은 문명의 이기들을 대표하며 이 같은 풍경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들은 곧바로 전근대적 인간에서 근대적 인간으로 변신한다.

43-그것은 중국의 혁명이나 일본의 팽창처럼 현실에서 자신을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더한층 강렬하게 끓어오른, 관념적인 조급함이다. 비등점에 가깝도록 뜨거워진 관념적인 조급함의 열기야말로, ‘기차가 있는 풍경’ 안쪽에 자리 잡은 지난 세게 한국인의 내면 풍경이다.

47-조급함. 시간의 흐름보다 앞서고자 하는 조급함의 열기에 휩싸인 나머지 가끔씩 시간의 흐름에서 뒤돌아설 때만 확보되는 기억속의 심상을 상실한 근대 한국인은 마침내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가 흔들리는 비극에 직면했다. 이것이 바로 근대 한국인의 기억상실이다. / 취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찰나인 동시에, 어제의 나에 대한 기억이 깃들이는 영겁이다. 따라서 기억상실에 빠진 자들의 취향이란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와도 같이 무의미하고 심지어 추하기까지 하다.

48-기억의 상실은 취향의 상실로 이어졌고 취향의 상실은 다시 기억의 상실을 요지부동의것으로 만들었다./성찰을 토대로 한 자기 통제력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이것이 바로 한국병이라고 불리는 사회 심리적인 병페의 원인이다.

49-취향이란 무엇보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계기이기 때문이다.

50-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즉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삐에르 부르디외,<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저다움에 대한 자기부정을 의미한다. 형식의 후예인 우리 역시 자신의 취향을 혐오하고 타인의 취향을 선망하는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취향이란 ‘기억 속의 심상’ 이라는 영혼이 깃드는 육체와 같은 것이며 영혼과 육체는 하나로 통합되어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를 이룩한다./자신의 취향과 타인의 취향이라는 모순을 창조적으로 통합시킴으로써 새로운 결실을 수확하는 만고불변의 공식이 아니겠는가.

57-피카소에 의해 간택된 아프리카의 민예는 아프리카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카소의 영광을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이점,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조선의 민예가 그것의 발견자인 일본인의 놀라운 직관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듯이 말이다.

58-한국인들은 일본인의 눈으로 한국예술을 바라본 셈이다. 남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됨으로써 고유의 시선을 잃어버린 것이랄까.

59-중요한 것은 한국예술에 대한 사랑 자체가 아니라 그 같은 사랑 뒤에 숨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61-서양은 어디까지나 행위자이고 동양은 수동적인 반응자이다.
한국예술은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존재이기 때문에 일본인이라는 타인에 의해서만 존재의 장으로 초대된다는 것. /한국인의 무의식과 함께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던 한국예술은 혼자서는 어떤 이름으로도 불릴 수 없는 평범한 밥공기였으며, 일본인의 미의식의 세례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천하 명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다

62-일본인은 친절하게도 한국인에게 자신의 안경을 씌워주면서, 이것 보라고 이렇게 아름답지 않느냐고 한국예술의 아름다움은 일본인이 새롭게 창작한 것이라고 속삭였고 이에 대한 한국인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63-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의 산물. 인격을 상실하고 ‘사물적인 격’을 지닌 존재에게 미의식 대신 무의식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야나기의 조선 예술론의 핵심이다.
‘무의식의 미’ ‘무기교의 미’로 표현되는 야나기의 한국예술론의 핵심은 일본인의 미의식을 한국인의 미의식에 덮어씌우면서 그것을 미의식에 미달하는 무의식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이같은 격하의 이면에는 이것을 최고의 미로 격상시킴으로써 왜곡의 면죄부를 스스로 발행하는 교묘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장착되어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이것을 창작이라는 단어를 빌어 표현했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미의식이 한국예술을 새롭게 창작하거나 발견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과 일본 다인들의 사연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다인들은 한국 도자기를 새롭게 창작하거나 발견한 한국도자기의 어머니이며, 일본이야말로 한국 도자기의 진정한 고향이라는 것이다.

64-한국의 도자기는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의 아름다움은 일본인의 안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65-한국인에게는 단지 벌거벗은 임금님과도 같은 자기소외와 무의식이 주어질 따름이다.

67-미의식에도 위계질서가 적용되며 일본인에게는 윗자리의 미의식이, 한국인에게는 아랫자리의 무의식이라는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가 주어진다. 따라서 한국인은 감히 미의식을 넘보는 따위의 어줍 잖은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이 같은 미의식의 위계질서는 한국의 미를 ‘타력의 미’로 일본의 미를 ‘자력의 미’로 규정하는 논리를 통해 체계적인 틀거리를 갖춘다.

68-따라서 한국예술과 일본 예술이 하나로 합쳐지는 ‘미래의 동양문화’를 위해서는 한국의 타력의 미와 일본의 자력의 미의식이 만나야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예술을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말한 일본인 야나기가 미의식의 위계질서를 토대로 해서 그려낸, 한일문화의 아름다운 만남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이다.

70-조선 선비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성향. 비교되어야할 것은 일본다인의 안목과 조선 도공의 무지가 아니라 일본 다인의 미의식과 조선선비의 미의식이다.

73-박석. 이같은 ‘다름’의 틈새에서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토속적인 자기’로서의 미의식이다.

74-‘자연스러운 인정’

76-일본의 국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질서에 동참하는 ‘세계인’이기를 거부하고 ‘일본인’이기만을 고집한, 이를테면 동북아시아 세계의 왕따를 자처한 일본의 독자적인 사상이다. 물론 일본이 이런 길을 밟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의 주관적 선택 때문이 아니라 외따로 떨어진 섬나라라는 그들의 지리적 환경, 객관적 조건 때문이다.

77-작은 감정 (모노노아와레). 마르코로. 카라고코로. 야나기식 말투에 따르면 마고코로란 ‘자연스런 인정’과 같으며 카라고코로란 ‘이지를 위한 이지’ 라든가 ‘지적 근거’와 같다.

78-따라서 국학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일본인이 조선을 비롯한 이웃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예외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거기서 ‘일본적인 것’을 발견했을 경우에 한정된다.

87-시부사. ‘조작을 떠난 고요함’ ‘자연스러움의 정취’

94-야나기가 말하는 한국 예술의 ‘선의 아름다움’이란 일본인 야나기의 미의식에 의해 새롭게 창작된 것이며, 그것의 배후에는 일본인의 미의식을 한국예술에 덮어씌우는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이 자리 잡고 있다./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국예술의 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며, 자유곡선이 아니라 자연곡선이라는 것이다.

95-사람이 살아가는 집과 몸이 사는 집안 옷이 닮은꼴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육십 성상의 세월을 보낸 끝에 처음으로 되돌아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환갑노인의 ‘살짝 숨을 죽인’ 즐거움과 장수불인 무량수불(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의 ‘살짝 빛을 바랜’ 아름다움의 내면 역시 닮은꼴이다.

97-만유인력에 의해 처진 평고대의 곡선. 처마와 양곡과 안허리곡
빗물을 빨리 배수하기위한 이유

100-자웅이 합체되고 음양이 하나 되어 마치 태초에 내딛는 첫발자국과도 같이 고도로 응축된 힘을 발산하고 있다는 것. 그것들은 근엄하게 팔장을 낀 듯한 정지태에서 벗어나, 살아 숨 쉬며 꿈틀거리며 심지어는 슬쩍 말까지 걸어오는 듯한 움직임의 기미를 드러낸다.

105-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가 발견된다. 한국인의 미의식속에는 야나기의 말 맞다나 일본적인 기교에 해당하는 ‘꼼꼼한’ 무엇을 발견할 수 없으며, 그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분방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흔히 격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빈틈없이 맞추어야하는 눈앞의 실선 같은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의식되는 머릿속의 점선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의 기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인 반면, 한국의 격은 ‘때에 따라 넘나드는 틀거리’라고나 할까.

107-한국의 격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를 어림하기위한 가상의 척도 같은 것이다/멋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 바꿔 말하면 격이 맞는 변격, 변격이면서 격에 제대로 맞을 때 거기서 멋을 느낀다는 말이다.

108-그것은 형의 격, 육체의 격을 멀리하고 상의격, 정신의 격을 가까이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진선미를 종합한 정신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110-마고코로라고 불리는 일본적 인욕

112-기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형태를 불균제 부정비한 채로 두는 것으로, 요컨대 파형은 불균등과 상통한다.

115-조테모노와 게테모노

118-야나기가 한국예술에서 민예성을 발견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일본인의 눈으로 한국 예술을, 형식의 기교로 정신의 격을 바라봄으로써 생겨난 발견이자 창작이다. 난쟁이의 잣대로 거인의 키를 잰 것이라고 할까. 그것은 한국 예술의 상의 미의식을 일본인의 형의 미의식으로 바라봄으로써 생겨난 발견이다. 본래 상과 형은 한테 어우러져 사물의 형상을 이루되, 근본적으로 양자는 서로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 한동석.<우주변화의 원리>

120-난행을 무릅쓰고 자력의 일문을 바져나가는 일본인의 근대적 미의식과, 자유나 의식이니 하는것 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 채 타력의 성불에만 의존하는 한국인의 전근대적 무의식의 선명한 대비. 그같은 선명함을 한층 도드라지게 만들어준 근대의 눈부신 태양 앞에서 아득히 자신을 놓아버린 사람들. 야나기가 마련해준 조선예술의 천진한 민예성, 조선 도공의 순박한 무지 따위로 자신의 누추함을 가까스로 가리운 근데 한국인의 슬픈 자화상. 이제는 이같은 식민의 담론과 결별할 때가 되었다.

129-이것은 창조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다시 성찰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그것은 백인백색의 취향에서 비롯된다. 한국어에서 아름다움의 고어인 ‘아ㄹ다옴’의 본뜻이 사호 즉 ‘제 마음에 어울 린다’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132-예로부터 한국인은 형과 상이 하나로 어우러져 사물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생겨나는 것이 사물의 형상이다.

137-박수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림 속 사람의 마음이 그림 밖 사람의 마음으로 다가오는 듯이 느껴진다. 그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마음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닐까.

139-‘눈에 보이는’ 형 너머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이 때문에 흔히 멋이라고 불리는 한국인의 미의식은 형태미를 넘어서는 정신미의 성격을 지닌다./사상이 일상의 척도로 작용할 경우 취향의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 취향으로부터 형성된 사상은, 다시 취향을 통해 전승되며, 취향을 통해 퍼져나간다. 따라서 취향으로서의 한국인의 미의식에는 음양오행사상으로 체계화된, 상에 주목하는 한국인의 사상이 담겨있다. 특히 상이란 형상에서부터 심상에까지 걸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속에는 미의 문제뿐 아니라 진과 선의 문제까지 포함된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미의식을 돌아보는 것은 한국인의 가치관 전반을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141-가까이서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이 만져지고, 멀리서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마음이 만져진다.

142-그것을 조용히 바라보되, 그로부터 적어도 몇 걸음이나 몇 마장 떨어진 자리에서, 육체의 눈을 가늘게 뜬 대신 영혼의 눈을 크게 뜨고, 근경의 미학이 아닌 원경의 미학으로 바라보라.
144-병산서원

145-‘뜯어 보믄 잘 못 생겨서 잘 생긴 것도 있어라우’ 라는 도공의 말이 여기에 들어맞는다. ‘잘 못 생긴 것’은 형이요 ‘잘 생긴 것’은 상이다.

146-‘형의 어눌함’의 후광에 해당하는 ‘상의 세련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상의 세련됨’을 머금은 ‘형의 어눌함’이 되는데, 바로 이것이 한국문화를 마음으로 겪은 이들이 한결 같이 이야기하는 고무줄이나 아졸, 무관심성이나 비균제성의 본질이다. / 상의 아름다움은 형의 어눌함을 수반하며, 높은 경지의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성격을 지닌 형상을 가리켜 아졸하거나 고졸하다고 하는데, 한국 문화는 이렇게 상의 세련됨과 형의 어눌함이 어우러진 아졸함이나 고졸함의 형상으로 넘쳐난다.

149-그러니까 창상무늬의 화사함속에는 상의 미의식에 따른 고졸함이 들어있음으로 해서, 그같은 창상무늬의 고졸함이 가옥 전반의 고졸함과 어우러져 헐렁한 통일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51-자연을 신이나 인간처럼 존중하는, 그렇다고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 천지인 상관적 사고관념을 보다 투철히 함으로써 자연의 이용에 있어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을 소외시키는 온갖 요소들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는 자세를 견지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최창조, <한국 충수사상의 이해를 위하여>)

153-기운생동/서양회화에 비해 일견 싱겁고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동양회화에 정신적인 깊이를 더해주는 동북아 특유의 예술적인 화두다.

156-그 음상, 그 어감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관념이 생김으로써 멋이란 말이 맛에서 파생했고....또 하나 멋이란 말이 맛에서 발생된 계기는 우리 민족어가 지닌 바 미의식은 미각적 표현으로써 그 바탕을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162-이처럼 발효음식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음식문화는 발효 맛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맛을 낳았고, 이것은 어느 순간 물질에너지에서 ‘얼에너지’로 승화됨으로써, 잘 삭힌, 시원하고 칼칼한 생기의 미감을 탄생시켰다.

163-따라서 우리는 먼저 발효 맛의 취향과 화해하고 그것을 일상에서 되살려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억상실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허기에 따른 마구잡이식 뷔페에서 벗어나 ‘기억 속의 심상’과 알뜰하게 손잡은 입맛을 살리는 정갈한 밥상으로 돌아 가야한다.

164-한마디로 음양과 오행의 상생적인 조화다./그것은 말 그대로 서로 상 자와 살릴 생자자가 합쳐져서 서로가 서로를 살린다는 뜻을 나타내며, 이것을 달리 말하면 서로를 돕고 이해하며 서로 생각해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봄이 되면 대지로부터 상생의 기운을 받아 성장하던 나무가 가을이 되면 상극의 원리에 따라 성장의 기세를 억제당하면서 열매를 맺는 이치와도 같이, 상극의 원리 역시 만물의 생성과 변화에 필수적이다.
165-이처럼 상극을 나를 죽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련을 주어 나를 다듬어 주는 고마운 힘입니다. /그것은 상극관계를 고스란히 껴안은 채 그것을 가능한 한 상생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167-‘썩지 않으며, 처음 그대로 유지되지도 않은 은근한 곰삭음’/따라서 그것은 부패미생물의 활동에 따라 음식물이 썩거나 열을 가하는 등의 살균처리로 모든 미생물을 죽이거나 하는 상극적인 변화의 과정과는 달리, 인간에게 유해한 미생물의 발육과 번식을 저지하여 그것들을 선택적으로 배제하고 인간에게 유익한 미생물과 효소가 작용하도록 함으로써 이것들을 선택적으로 북돋우는 상생적인 변용의 과정이다.

169-비보의 원리란 상극의 원리가 관철되는 무정한 자연을 상생의 원리가 숨 쉬는 유정한 자연으로 바꾸려는 인문적인 자의식의 소산이다. /허전한 곳을 메우고 험악한 곳을 달래는 보완과 화해를 통해 상극적인 것을 생상적인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이다.

170-사기와 싸워 이기는 대신, 상생적인 조화를 이룩하여 생기를 북돋움으로써 벽사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적 비보의 원리이자 한국적 미의식의 원리이다.

171-풍수뭄전미라는 말이 있다. 완전한 땅이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건 땅이건 결함이 없는 것은 없다. 일부러 결함을 취하여 그를 고치고자 함이 도선풍수의 근본이다.

176-움직이고 있으되 멈춰 있으며, 멈춰 있으되 움직이고 있는 것. 그런데 바로 그 멈춰있음 때문에 움직임 이상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같은 멈춤의 그늘, 울음의 그늘은 한국인이 오랜 세월 온몸으로 부딪혀온 ‘상극적인 것’의 살아 있는 과거이며, 이 같은 그늘을 슬며시 드리운 웃음 이상의 웃음, 움직임 이상의 움직임은 한국인이 오랜 세월 온 마음으로 삭혀온 ‘상생적인 것’의 살아있는 미래다./그러니까 하나로 어우러질 때 나타나는 지경이 조선미의 핵심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환한 과 침침한 ,즉 ‘빛’과 ‘검은’이 어우러진 것이 그늘인데 이것을 조선미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나는 이것을 다시 흰 그늘이라고 불러 봅니다.

177-흐름과 율동, 곧 멋/가동적인 미/선은 형체를 나타내는 경우에도 색과 같이 정지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형태를 가동적 상태에서 표현한다.

178-한국인 자화상의 울음이란 웃음으로 승화되어 가는 전단계이며, 한이란 신명으로 승화되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179-문제는 각자가 간직한 바 자기 몫의 한을 어떻게 초극하느냐 하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적 한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다고 할 때, 이는 한민족에게만 한이 있다거나, 한민족의 한이 유달리 넓고, 깊고, 짙다거나, 그러한 이유에서가 아니고, 그것을 초극해가는 삶의 양식 자체가 다른 민족의 그것과 다르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185-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시간적 파악이 역사라면, 그 공간적 인식이 지리와 지도이다./지도에는 땅의 측령과 관계되는 과학적 영역이 있고, 땅을 생명체로 인식해온 우리 조 상들의 독특한 지리관, 우주관이 있으며, 땅을 채색 그림으로 묘사한 화원들의 예술이 담겨있다.

186-결구구 윤두서의 자화상과 지도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정체성에서 공간의식이 차지하는 비중의 무거움을 짐작할 수 있다./위치와 장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사람은 l시간에 대한 사유보다 공간에 대한 사유를 더 절실해 한다./여기서 우리는 지난 세기의 한국인이 서구적 근대를 향한 ‘시간과의 경쟁’에 빠져든 결과 공간 의식과 공간 취향을 상실해 버린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의 공간취향이 발붙일 자리를 상실해 버린 것이다./공간 의식과 공간 취향이 인간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미의식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조차 없다./무엇보다도 공간 의식이란 인간의 정체성을 속절없이 떠도는 천상의 것으로부터 든든하게 뿌리내린 지상의 것으로 잡아 내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87-고지도는 삶터로 넘쳐나며, 삶터는 삶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오늘날의 지도에는 더 이상 삶터도, 삶의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다./인간사의 우연과 의무와 추억과 정서가 만나는 곳이다. 삶터는 소속을 내포한다. 삶터는 정체성을 정립하고 소속감을 규정하며 운명을 가늠한다. 람터는 뿌리와 방향을 제공하는 삶의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189-그것은 땅을 인체와 마찬가지로 뼈대(산줄기)와 핏줄(물줄기)을 갖춘 살아있는 유기체로 본 것이다. / 이에 따라 지도를 그릴 때에도 땅이 살아있다고 보아 생명체적 요소를 강조해서 그렸고, 산과 강은 뼈와 혈관으로 이해하여 맥을 강조해서 그렸다.

193-풍수사상은 모든 지리적 요소들에 매우 인간적인 실존성을 부여한다.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공간을 구체적인 삶과 관련된, 상호유기적 관계의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인간적 의미가 없는 공간은 사실상 죽은 공간이다. 땅에 인간적 의미를 주어, 이용과 소유의 대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삶터로 환원시키는 것이 풍수사상이다. 모든 토지적 요소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데, 이것이 바로 땅 속의 생기, 즉 지기이다. 이때 땅은 그리고 자연은 존귀한 삶의 실체가 된다.

194-결국 풍수사상이란 한국인의 의식 뒤편에서 후광처럼 빛을 발함으로써, 의식의 수면 위로 떠다니는 공간 심상들로 하여금 실용적인 기호의 성격을 넘어 예술적인 도상의 성격을 아울러 지니도록 만드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인에게 있어 풍수란 주변의 공간을 살아있는 ‘기억 속 심상’으로 자리 잡게 만드는 비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6-내용을 정리하면, 명당이란 ‘상생적인 조화로움에 따른 유정함을 지닌 곳’이나 ‘속기가 없는 유토피아’가 된다./공간이란 시간과 함께 객관적 대상일 수 밖에 없지만, 경관이란 공간이 주체인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와 재구성된 주관적 공간이라 볼 수 있다.

197-한국인에게 풍경이란 자연적인 것인 동시에 인문적인 것이다. 인문적인 예찬이 덧붙고 나서야 비로소 자연과 인간은 하나가 되어 풍경으로 완성된다.
200-공간 취향이라는 말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당신의 마음 속에 돈 가치, 효율성, 편리성과 무관한 동기에 따라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공간적 심상이 있다면, 그같은 공간적 심상으로부터 문화적인 인식과 실천에 대한 통찰을 제공받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공간취향이며 저다움의 미의식의 교두보라고 말이다. 옛집이라는 것, 고향이라는 것, 낯익은 등산로,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라 눈앞을 가로막는 ‘그때 그곳’이나 미지의 ‘어느 곳’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201-색이란 보편 너머의 특수가 자신의 ‘저다움’을 드러내는 눈빛과도 같은 것이다./한국인의 기질을 가리킨다./한국인이 좋아하는 색은 무엇보다 ‘밝고 맑은’색, 즉 명도와 채도가 아울러 높은 색이다.

206-소색이란 무엇인가. 바탕 소자에 색 색자, 옥양목이나 비단, 광목의 색처럼 재질에 따라 다양한 뉘앙스의 색감을 드러내는 자연의 바탕색이다.

207-재질의 소색인 백색은 광선을 반사하여 번쩍거리는 백색이 아니고 빛을 흡수하는 듯한 은은한 빛깔이다.

210-여백은 문자 그대로 비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인가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의 눈에 쉽사리 확인되지 않는 그 어떤 심오한 상태인 것이다./색들을 지우고 배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변의 색들을 생생하게 살려내고 풍성하게 싸안는 것이다.

211-오방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색을 청, 적, 황, 백, 흑의 다섯 계열/순수한 우리말로 된 명칭은 하양, 까망, 빨강, 노랑, 파랑의 다섯 가지 뿐인데, 이것이 바로 오방색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오방색이란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색에 관한 현실 자체이기도 하다./그것은 제각기 시간과 공간, 그리고 윤리에 관한 의미체계를 갖추고 있다.

212-특히 상극적인 배열보다 상생적인 배열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215-어쨌거나 색이 빈약하다는 것은 생활에서 즐거움을 잃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219-이데올로기란 본질적으로 사물을 다면적이 아니라 일면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고, 이같은 일면성은 한 측면에서의 설득력을 발휘하는 대신 다른 측면들에서 터무니없음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처럼 일면적이며 배제적인 성격을 지닌 이데올로기의 한 자락을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의 일부로 삼아서는 안 된다.

221-우리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는 단순히 자기관철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뒷바퀴에 그치지 않으려면 탈민족주의시대를 내다보면서 자기를 극복하는 민족주의라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22-백의민족의 이미지는 풍요로운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취향을 빼앗은 대신, 척박한 강박의 틀거리를 덮어씌우는 이데올로기를 떠안겼다. 다라서 취향의 해방을 위해서는 풍요로운 성찰을 토대로 한 진정한 저다움을 위해서는, 먼저 백의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표상과 결별해야한다.

224-공간의 치마폭에 싸인 인간은 반성적인 성찰의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걸어간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시간좌표에 지나치게 강박된 반면, 공간 좌표에는 무감각해졌다.

225-마음의 색이 풍경의 색과 하나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기억 속의 심상이 현실의 풍경과 색과 하나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기억 속의 심상이 현실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일상을 꾸리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미의식의 행복한 주인공들이다.

231-적어도 미의 문제에 관한 한, 이데올로기적인 표상보다는 취향적인 심상이 사물의 본질에 입체적으로 다가서는 쿨한 프리즘이다. 취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끌리며 좋아하는 것이다./사회학이란 인간의 집단적 삶을 반듯하게 그려내기 위한 모눈종이와 같은 것이다./아름다움의 향기가 사회학적인 눈금 너머로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인문학적인 여백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반듯한 이데올로기보다는 갈짓자의 취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리하여 개성있는 미의 취향을 자유롭게 꽃피우는 백화제방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미의 절정이다.

232-개성 있는 취향은 정신의 여백에서 자라난다./정신의 여백을 간직한 사람만이 시시때때로 튀어 오르는 정신의 자투리들로 아름다운 성찰의 조각이불을 꾸며낼 수 있다./출발점에서는 ‘제멋대로의 것’으로 작용하던 취향도 반환점을 돌고나서부터는 시나브로 ‘자기를 돌아보는 것’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취향이 지닌 성찰의 가능성이다.

233-그것들에 이끌리는 한국인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취향에 대한 담론은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말하는 동어 반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ㅇ르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로서 작용한다.

234-1961년. 에셔 작. 이데올로기적인 사고에서 취향적인 사고로 옮아가고, 다시 취향적인 사고에 기대어 상찰적인 사고로 펼치기 위해서는, 이차원적인 사고를 넘어서는 위상기하학적 상상력이 필수적이다./이제 우리는 이 같은 근대적 합리주의의 사고, 이데올로기적 사고를 넘어, 앞뒤가 따로 없는 ‘뫼비우스의 띠’나 안팎이 따로 없는 ‘클라인 씨의 병’에 비유될 수 있는 한차원 높은 사고로 모색해야 한다. 나는 이 같은 사고를 취향적 사고라고 부를 것을 새롭게 제안한다.

236-‘나를 살리면서 남을 참고한’대신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 내는’데 몰두 했으니 결과가 신통할리 없다.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 내는’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239-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의 테두리 안으로 수렴시키는 것. 이것은 천지인이 하나라는 사상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한 한국인의 가치관으로부터 비롯된다.

242-자화상이란 흘러넘치는 인간적인 자의식을 가만히 눌러 담은 것인데

246-속세를 넘어 탈속의 경지로 들어서는 존재의 역동성이,‘가동적 정지태’의 미학 끄트머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해학적인 즐거움을 통해 표출된 것이다.

252-그들이 탁월한 예술가인 까닭은 그곳의 낯익음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돌아보게 만든 데서 시작된 것이었다.

259-어쩔 수 없이 맞대면하게 되는 인간적인 상극의 질서에 대해 어설픈 화해의 태도를 취하거나(샤머니즘) 운명적으로 몸을 맡기는데 도를 취하는 것(허무주의)이 그것이다.

260-인간의 질서인 상극보다는 자연의 질서인 상생을 추구한 나머지, 정신적인 내용을 착안하는 데는 탁월한 반면, 육체적인 형식을 완성하는 데는 허술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61-한에서 흥으로, 울음에서 웃음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전자를 지워버리고 후자로 날아오르는 초월의 몸짓이 아니라 전자를 등에 지고 후자를 향해 기어가는 포월의 몸짓이 되어야한다. 상극의 과정을 과거의 삶의 흔적으로만 남겨두는 정태적인 상생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삶의 에너지로 확보하는 역동적인 상생 쪽으로 우리의 취향을 자꾸만 밀어내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62-창조의 빛은 세계성이라는 ‘큰 나’안에서 토속성이라는 ‘작은 나’들이 부싯돌과 같이 부딪힐 때, 그 부딪힘의 섬광 속에서 피어난다.

263-대립을 위한 모순이나 모순을 위한 대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과 통일을 위한 모순대립인 것이다.

264-민족예술운동/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신명이나 해학 같은 미적 범주를 통해 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로 승화시키는 한국인의 미의식을 토대로 하면서도, 다시 한 번 이 같은 상생적인 조화 위에 상극적인 부조화를(사회 개혁의 관점에서)겹쳐놓은 예술운동이었다. 따라서 부조화에서 조화로, 다시 부조화로 꿈틀거리며 전진하는 그것은 변혁의 전망으로 가득 차 살아있는 움직임이었다./개방적인 유토피아를 향해 한발 내딛는 것/예술사적인 관점 위에 사회적인 관점

267-개인적인 창조의 에너지가 집단적인 이데올로기의 껍질을 뚫고 개성적인 취향의 속살을 드러냄으로써, 상극의 인간 질서 너머에 존재하는 상생의 우주 질서를 향해 손을 뻗친 경우와 마주친다.

268-기쁨. 신다는 것의 기쁨.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찬란한 것. 살아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의 느낌.

271-‘밖으로 향해 있는 안테나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돌아본’ 것이랄까. 이것이 바로 김정희의 창작방법론으로 거론되는 법고창신의 올바른 해석이다.

274-국제적인 안목과 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토속적인 안목과 감각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양자는 창조의 주체 속에서 하나가 되어야한다. 추사는 ‘토속적인 자기’를 지키는 것과 ‘남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을 창조적으로 회통시켰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세계인인 동시에 한국인이었다.

278-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공존을 혹은 옛것 쪽으로 되돌리거나 혹은 새것 쪽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그것들을 하나로 버무려내는 모순적인 공존을 통해 창조의 길로 나아가는 유연하고도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할 것이다. 새것의 프리즘을 통과하여 ‘지금 이 순간’에 살아남은 옛것의 존재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279-한국인이니 세계인이니 하는 구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자신을 한국인인 동시에 세계인으로 여겼으며, 이같은 회통적인 사고야말로 그들로 하여근 창조의 주체로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3. 내가 저자라면

세계화라는 화두 속에 파묻혀 너무 많을 것을 잊고 살아왔던가. 한국으로서의 ‘나’의 미의식에 대한 좌표를 다시 묻게 한다. 나 또한 한국의 미학에 대해서 ‘한(恨)의 미학’으로 덧칠되어진 좌표를 그려왔다. 민족주의에 근거한 아픈 과거를 덮어쓴 ‘한(恨)의 미학’을 더 이상 바라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국인’이라는 화두를 잊고 지내온 긴 시간, 긴 겨울잠을 잔 기억의 심상이 눈을 비비고 깨어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사라진 기억 저편의 그리움이 애잔하게 마음을 스치고, 부끄러움을 지나 금빛 기쁨으로 거듭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금빛 기억의 심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4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기억상실과 어제의 한국인’을 주제로 공간성과 시간성에 대한 인식을 다루고 있다. 2부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예술론’을 주제로 그의 미론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3부 ‘한국인의 미의식’에서는 우리 예술에 나타나는 고졸미와 생기, 상생의 생활감정 및 해학과 신명, 음양오행의 우주관을 전제로 한 색채감정 등에 대하여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고, 4부에서는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이라는 주제 하에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일련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미의식’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6년간 원고를 집필하였고, 편집하는 동안 보름이 넘게 출판사로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교열과 수록될 사진을 직접 구해오는 등, 오랜 시간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 수록된 참고도서와 다양한 그림과 문화재들만 보더라도 그의 열정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장 여유 있게 다양한 음미를 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 이었다. 첫 번째는 연결을 통한 문화 저변을 관통하는 통찰력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의 핵심으로서 ‘음양오행과 상(象)의 미의식’, 아졸미와 고졸미, 상생과 비보의 원리, 생기의 미감, 해학과 신명, 천지인의 조화와 풍수사상, 그리고 소색(素色)의 미감 및 오방색에 대한 선호 등에 대한 서술들은 끊임없는 연결과 연결을 통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화 저변을 관통하고 특성을 통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많은 학자들이 언급해온 기초개념들을 재구성하여 ‘한국인의 미의식’의 정체성을 확인해가는, 구슬과 구슬을 하나의 실과 바늘로 꿰어내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는 내가 앞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미지가 나아갈 길에 대한 구체적인 언어와 창조에 대한 선명한 성찰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진을 바라보는 저자의 빛나는 시선에 따른 서술들은 통찰력에 힘을 실어줄 뿐 아니라, 내가 앞으로 창조하고 싶은 다양한 이미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내가 사진에서 표현해보고자 하는 여백, 그림에서 자주 사용하는 색과 배열, 모든 표현에서 곡선의 미와 느낌을 가장 편안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글에서 들어내고자 했던 공존하는 삶에 대한 가치등, 그것들이 어디에 와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 수 있는지, 힌트들을 발견하고 길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선물 받은 느낌이다.

저자가 말대로 영혼의 눈을 크게 뜨고, 근경(近景)의 미학이 아닌 원경(遠景)의 미학으로 내 미의식의 좌표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밖으로만 향해 있는 안테나를 내리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내 안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찾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공존을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로 버무려 내는 모순적인 공존을 통해, 창조의 길로 나아가는 유연하고도 열린 사고를 반드시 내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것의 프리즘을 통과하여 ‘지금 이 순간’에 살아 남은 옛것의 존재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278)”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저자가 한국의 미의식을 설명해 내는 방식이다. 일관되게 야나기를 비판하면서 한국의 미의식을 재해석하고자 했던 저자의 방식이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것만 빼고는 야나기의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부하면서 전혀 창조적이지 않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많은 학자들을 언급하여 연결을 통한 재구성한 것은 좋았지만, 과도한 인용문은 독자의 사고의 흐름을 끊거나, 단편적인 짜깁기식, 혹은 동어반복의 서술 느낌이 들때는 아쉬움이 남았다.

4.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유홍준, [화인열전]
황규호, [한국인 얼굴 이야기]
최창조, [땅의 눈물 땅의 희망], [한국 풍수사상의 이해를 위하여]
한동석, [우주 변화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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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11.05 02:52:23 *.73.2.112
이 책이 너무 읽고 싶었던건지..
철석같이 이번주의 책이라고 믿고 읽었지 뭐에요.
물론 나중에 종윤오빠덕에 뒤늦게 알게됐지만요. ^^
혼선이 생겨 죄송하네요.
이번주 책은 다음에 읽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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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11.05 07:24:00 *.128.229.81
이 책은 좋은 책이 될 뻔 했다. 이 분야에 문외한이었던 나에게도 흥미있는 입문서였다. 코리아니티 책을 쓸때 나를 많이 도와 주었고, 후기에 이 책에 대한 고마움을 써 두었다. 그러나 이 책은 결국 본인의 예언대로 잡문에 그치고 말았다. 책으로서의 완성도가 끝으로 가면서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책 전체를 망쳐 놓았다. 뛰다 중간에 포기하다시피한 책으로 기억된다.

내가 자세히 쓴 이유는 너도 비슷한 실수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알았느냐. 토깽아. 인도로 가기전에 이불 밟는 버릇을 고치고 자고 난 이불은 잘 개어 두어라. 모든 곳이 다 명상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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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11.05 13:34:45 *.231.50.64
연구원 활동의 저의 현재의 좌표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알겠습니다. 변화샘.
깨어있기 위해 좀더 저의 일상을 잘 다음어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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