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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6일 11시 18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 / 민음사.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조셉 캠벨은,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1904년 미국의 뉴욕에서 태어나, 평생을 비교신화학자로서, 서로 다른 문화권 신화와 종교의 공통되는 현상과 기능을 연구해왔다. 어린 시절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으며 맨허튼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자주 방문하였다. 캠벨은 그 박물관의 한 코너에 있는 토템 기둥에 특히 매료되었는데, 그 뒤로 1925년과 1927년에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 대학교와 뮌헨 대학교에서 중세 프랑스 어와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하며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하였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벡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며,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 또한 그는 프린스턴 대학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로도 유명하다.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큐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하기도 했다.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그는『신의 가면 the Masks of God』(전4권)을 펴냈다.『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그 역저의 서곡에 해당한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로도 유명하며,『신화의 힘』,『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신의 가면 1~4』,『신화와 함께 살기』,『신화의 세계』,『야생 수거위의 비행』,『신화 이미지』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쳤으며 1987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신화는 꿈과 동일한 문법을 갖는다. 가령 프로이트의 이른바 <꿈의 작업>, 즉 응축, 치환, 형상화 작업은 신화 형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거의 대부분의 영웅이 공유하는 경험인, 비정상적인 탄생, 어린 시절의 고난, 방황, 조력자와의 만남, 기적적인 권능의 획득, 귀한의 도식이 켐벨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켐벨은, 무대가 다르고 사선이 다르고 의상이 다르지만, 인간의 무의식이 투사된 영웅, 말하자면 인간의 집단이 그려낸 영웅 신화는 거의 일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캠벨은 서로 접촉이 없는 세계 각 문화권의 무수한 영웅 신화와 심층 심리학의 꿈 해석에서 재발견되는 영웅의 상징 체계를 분석,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들 가운데서 하나의 영웅, 그러니까 모든 영웅 신화의 본(원형)이 되는 하나의 영웅을 떠올린다.


옮긴이: 이윤기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머리말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종교 교의에 녹아 있는 진리는 대개가 변형된 데다 체계적으로 위장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진리로 알아보지 못한다.> p5

프롤로그
원질신화 The Monomyth
1 신화와 꿈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신화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p14

인간이 가진 심성 중에 가장 끈질기게 남는 성향은, 동물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p16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p23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의 저작에서 인간이 사는 삶의 순환 주기 중 전반부의 통과와 그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의 태양이 천정점(天頂點)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기인 유아기와 사춘기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C.G. 융은 후반부의 위기를 강조했다. 즉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 빛나는 태양이 마침내 그 고도를 떨어뜨리고 무덤이라고 하는 밤의 자궁 속으로 사라지기 위해 기를 꺾어야 하는 시기를 말한다. 우리의 욕망과 공포의 정상적인 상징이 인생의 오후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는 반대되는 것으로 전화轉化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시기에 도전해 오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인간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궁이 아니라 남근Phallus이다. 그렇지 않다면 삶의 염증이 이미 심장을 죄고 있었을 테고 한때 사랑의 유혹이었던 지복至福의 약속으로 부르는 것은 삶이 아니고 죽음일 터이다. 우리는 자궁이라는 이름의 무덤 tomb of the womb에서 무덤이라는 이름의 자궁 womb of the tomb까지 완전한 순환 주기를 산다. p25

전통적인 통과 제의가 개인에게 과거를 향해서는 죽고 미래를 향해서는 거듭 날 것을 가르쳤듯이, 저 왕위 서임 의식敍任儀式은 그의 개인적인 성격을 벗기고 신명神命이라는 망토를 입혀주었다. p27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p29

영웅이 첫 단계에서 하는 일은, 하찮은 세상이라는 무대로부터 진정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심성의 인과因果가 시작되는 곳으로 물러앉는 일이다. 그리고 영웅은 난관을 헤쳐나가되 자기 식으로 그 난관의 뿌리를 뽑고(즉 자기가 속한 문화권의 유아기 악마에게 싸움을 걸고) 한달음에 쳐들어가 C.G. 융의 소위 <원형심상 (元型心象, Archetypal images)> 과의 동화 작용을 시도한다. 힌두와 불교 철학에서는 이 과정을 <비베카(寂然, viveka)>, 즉 분리 discrimination의 과정이라고 한다. p32

사소한 것일수록 손쉬운 법이다. 재미있는 것은 죄 많은 왕을 섬기는 바로 이 장인이, 미궁의 공표를 연출한 장본인인 동시에 자유라는 이름의 목적을 달성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영웅은 우리로부터 먼 데 있지는 않은 것 같다. p38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p39

2 비극과 희극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p39

4 세계의 배꼽
가정의 난로, 신전의 제단은 땅이라는 바퀴의 중심이며, 만유의 어머니의 자궁인바, 이 어머니의 불이 곧 생명의 불이다.

이렇게 보면, 태양은 희생 제물로 풍성한, 끊임없이 새 음식으로 가득 차는 신의 쟁반이고, 신의 살은 고기며, 신의 피는 마실 것이다. 동시에 신은 인간에 대한 자양의 공급자다. 난로를 점화하는 햇빛은 신적 에너지와 세계의 자궁과의 교합을 상징한다. - 축과 축이 만나면 두 바퀴는 회전한다. 태양문을 통한 에너지의 순환은 연속적이다. 신은 이 태양문을 통하여 하강하고 인간은 이를 통하여 상승한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p60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 p62

또 시인 블레이크 Blake도 비슷한 말을 한다.
사자의 포효, 이리의 울부짖음, 성난 바다의 광란, 그리고 피를 부르는 칼은 인간의 눈에는 과분한 영원의 편린들이다. p63

제 1부 영웅의 모험
1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이 주름의 골은 매우 깊다. 영혼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이 동화에서 황금 공이 사라진 사건은, 공주에게 닥칠 어떤 운명의 첫 번째 조짐이고 개구리는 두 번째, 무심결에 한 약속은 세 번째 조짐이다. p71

프로이트는, 불안한 순간은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때의 고통(탄생하는 순간의 숨이 막히고, 피가 응어리지는 등의)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거꾸로 말하면, 분리와 탄생의 순간은 불안을 야기시킨다. p73

다산성多産性의 상징인 야수(동화에서처럼), 또는 미지의 베일에 가려진 신비스러운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p75

2 소명의 거부
현실 생활에서는 자주, 신화나 민간전승에서도 드물지 않게 소명에 응하지 않는, 조금은 답답한 경우를 우리는 만난다. 다른 데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소명에 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타성이나 힘에 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 p81

3 초자연적인 조력
영웅의 행동이 그 사회가 예비하고 있는 것과 일치될 때, 그는 흡사 역사적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러시아 원정에 즈음해서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미지의 종국으로 떠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다. 내가 그곳에 이르는 순간, 내가 불필요하게 되는 순간, 나를 갈가리 찢는 데는 한 입자의 원자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인류가 힘을 모두 합치더라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p97

4 첫 관문의 통과
미지의 땅(황야, 밀림, 심해, 타향 등)은 무의식의 내용물이 자유롭게 투사되는 무대다. p107

살아서든 죽어서든 새로운 경험역을 지나서면 같은 세력의 파괴적 측면을 극복하고 이 특정 구역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안다만 제도의 피그미 족 언어에서 <으코주무okojumu(<꿈꾸는 자, 꿈을 통해서 말하는 자>)라는 단어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동류들과는 달리 대단한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를 일컫는다. 이들이 가진 초자연적인 능력은 정글에서나 꿈속에서 정령을 만나거나 죽음과 재생의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어느 시대든 마찬가지다. 이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의 수호자는 극히 위험한 존재다. 그들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안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과 용기를 갖춘 사람 앞에서는 위험은 그 꼬리를 감추고 만다. p113

써니: 초아선생님의 말씀 생각난다. 초아선생님은 늘 사부님과 같은 사람을 기제자라 하셨고 우리와 같은 일반인은 미제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경계가 위험부담을 잔뜩 안은 모험을 단행하여 그 용기와 능력으로 이루어짐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된다.

도깨비는 감히 잡아먹을 생각은 못하고 태자에게 물어보았다.
「젊은이여, 왜 두려워하지 않는가? 죽음이 목전에 이르렀는데 어찌해서 겁을 먹지 않는 것인가? 」
태자가 이 물음에 대답했다.
「 도깨비여, 왜 내가 두려워하겠는가? 태어나면 어차피 한번은 죽게 되어 있는데 두려워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더구나 내 뱃속에는 벼락이라는 무기가 하나 더 있다. 그대가 나를 먹는다고 하더라도 벼락은 삭이지 못할 것이다. 이 벼락은 그대 뱃속에서 그대를 갈가리 찢어 필경은 그대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결국 그대가 나를 먹으면 우리는 둘 다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이제 독자들도, 다섯 가지 무기를 지닌 태자의 말 뜻을 헤아렸으리라 그가 자기 뱃속에 있다고 한 무기는 다름 아닌 <지혜>라는 무기였다. 실제로 이 젊은 영웅은 전생의 부처, 바로 그분이었다.

벼락vajra은, 속세의 허망한 현실을 분쇄하는 부처의 영적인 힘(불멸의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화佛畵에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상징의 하나다. p118

질겁을 한 도깨비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젊은이가 하는 말이 사실이구나. 이 사자 같은 사내의 몸이라면, 내 위장이 아무리 튼튼하다고는 하나 강낭콩만한 살 한 점도 삭이지 못할 터 . 그러니 보내주어야겠다.)

써니: 사부님의 <사자 같이 젊은 놈들>이라는 책이름이 떠오른다.

그는 오무기 태자를 보내주었다. 미래의 부처는 그에게 법을 가르쳐 조복調伏시키고, 스스로를 부정하게 한 다음, 숲에서 보시를 받는 정령으로 화신케 했다. 도깨비를 깨우친 태자는 숲을 빠져나와 숲 어귀의 인간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가던 길로 걸음을 재촉했다. p119

태양문을 통하여 번제의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p120

5 고래의 배
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곧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관념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래의 배라는 자궁이 미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웅은, 그 관문을 지키는 세력을 정복하거나, 그 세력과 화해하는 대신, 그 미지의 힘에 빨려들어, 겉보기엔 죽은 것으로 나타나고는 한다. p121

2 입문 Initiation
1 시련의 길
<어려운 임무>라는 모티프의 실례 가운데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가장 매력적인 것은 잃어버린 애인 쿠피도(에로스)를 찾는 푸시케의 경우일 것이다. p129

써니: 시기심 많은 시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방해 공작에 대하여 찾아보고 의미를 파악할 것.

꿈꾸는 사람은 철저하게 유리되어 깊은 지하 감방에 홀로 방치 되어 있다. 그 방의 벽과 벽 사이가 점점 좁아지다가 이윽고 꿈꾸는 사람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머니의 자궁, 감옥 그리고 무덤의 이미지에 관련되어 있다. p138

2 여신과의 만남
그러나 우리의 심상이 기억해 낸 어머니가 항상 자비로운 것만은 아니다.
1) 우리가 공격적인 환상을 투사하고 그러면서도 반격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무심하거나, 이르기 어려운 어머니도 있고,
2) 구속하고, 금지하고, 벌주는 어머니도 있으며,
3) 자기에게 묶어두기 위해 아이의 성장을 싫어하는 어머니도 있고,
4)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위험한 욕망을 일으키게 하는 (거세콤플렉스) 바라던 어머니이긴 하나 가까이해서는 안 될 어머니도 있다(오이디프스 콤플렉스).
따라서 어머니 중에는, 성인의 유아기 기억이라는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가 때로는 엄청난 힘을 행사하는 <나쁜>어머니도 있다. 이런 어머니는 아르테미스처럼 우아하면서도 고약한 여신으로 존재한다. 아르테미스(디아나)가 젊은 사냥꾼 악타이온을 철저하게 파멸시킨 예는 정신과 육체의 차단된 욕망의 상징 안에 얼마나 엄청난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지 확연히 보여준다. p148

중세와 현대 인도의 탄트라 경전에서는 여신의 거처를 마니-드비파 Mani dvipa, 즉 보석의 섬이라고 부른다. 여신의 침상 겸 보좌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숲속에 놓여 있다. 섬의 해변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다. 이 해변의 금모래를 불사 영약의 바닷물이 조용히 쓰다듬는다. 여신은 생의 불길로 늘 붉다. 지구, 태양계, 먼 우주의 은하까지 이 여신의 자궁 안에서 팽창한다. 왜냐하면 이 여신이 세계의 창조자, 영원한 어머니, 영원한 처녀이기 때문이다. 이 여신은 포옹하는 것을 포옹하고, 자양하는 것을 살지게 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생명이다. p151

신화의 심상 언어에서 여자는, 알려질 수 있는 것들의 전체성으로 표상된다. 알게 되는 존재가 곧 영웅이다. 영웅이 삶의 다른 형태인 입문의 과정을 진행함에 따라 여신의 형상은 그에게 일련의 변형 과정을 체험하게 한다. 여신은 항상 영웅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약속할 수 있지만 영웅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 여신은 그를 유혹하고, 인도하고, 그의 발목에 체인 족쇄를 깨뜨리게 한다. 그리고 만일 영웅의 능력이 여신에 미치면 이 양자, 즉 아는 존재와 알려지는 존재는 갖가지 제약에서 해방된다. 여성은 감각적인 모험의 정점으로 영웅을 인도하는 안내자다. 열등한 눈으로 보면 여신은 열등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무식한 눈으로 보면 범용하고 추악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가 아닌,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신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p154

왕의 그릇은, 무슨 일이 있든지 이를 이기고 왕도를 가는 것입니다. p156

새들이 초록빛 숲 그늘에 깃들이듯
사랑은 온유한 마음속에 깃들인다.
이치로 보면
사랑 이전에 온유한 마음이 없었고
온유한 마음 이전에 사랑도 없었다.

태양이 솟을 때 빛도 발할지니
태양에 앞서 빛은 있을 수 없다.
불길 속이 가장 뜨겁듯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서만 뜨겁게 타오른다.

여신(모든 여성에게 현현되는)과의 만남은 사랑의 은혜(자비, 즉 운명에의 사랑)를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 단계다. 이 사랑의 은혜는 바로 우리 삶이 누리는 영원성의 그릇과 같은 것이다. p157

5 신격화 Apotheosis
티베트, 중국, 일본의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가장 영험이 있는 분으로 믿어지고 또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보살은 연꽃을 들고 다니는 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 Avalkiteshvara이다. 이분은 존재의 구렁텅이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을 가엽게 여긴다고 해서 관세음보살, 즉 <대자대비로 굽어보시는 주(主)>라고 불린다. 티베트의 <기도구(祈禱具, prayer wheel)>와 징소리에 맞추어 수백만 번이나, 되풀이되는 기도인 <옴 마니 밧메 홈(妙法蓮花, 즉 연화 속에 보석이 있다)>도 그 보살을 향한 것이다. 인간에게 알려진 신들 가운데 관세음보살만큼 많은 기도를 가납嘉納 하는 신도 없을 것이다. p196

보살에 대한 첫 번째 경이로움은 바로 이것, 즉 보살이라는 존재의 양성구유적 성격이다. 이 보살과 만남으로써 분명히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 서로 만난다.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란 여신과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다. 여신과의 만남의 과정에서 입문자는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에서 이르고 있듯이 남성과 여성은 둘이 아니라 <쪼개진 완두의 두 쪽>임을 깨닫고, 아버지와의 화해 과정에서는, 아버지의 성性을 선행하며, <그>라는 대명사는 말의 방편이고, 지도적 원리로 확립된 부자관계의 신화는 말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살 신화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경이로움은, 보살의 삶과 삶으로부터 해탈의 차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보살이 열반 Nirvana을 단념한다는 사실로 상징되고 있다. 열반이란 말은,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 탐진치貪賑癡이라는 세 겹의 불(三毒)을 끈다>는 뜻이다. p213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적으로 빗나간 욕망과 적의 때문에 비현실적인 공포와 애증의 이중 감정에 시달리는 환자를 치료해 주는 기술이다. p214

마지막 <미망과 욕망과 적의의 적멸寂滅>(즉 열반)과 더불어 마음은, 생각이 실체가 이님을 깨닫는다.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참된 경지에 들어간 마음은 안식을 얻는다. 상태는 육체가 사윌 때까지 계속된다.

별, 어둠, 등잔, 환영, 이슬, 거품, 섬광, 그리고 구름.
이런 것들을 마땅히 보이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p215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Myth and society
1 변신 자재자
신화의 체계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고 했고, 뮐러는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Durkheim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라고 했고,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이라고 했으며,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이라고 했고,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 갖가지 판단은 판단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된다. 신화가 무엇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게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해 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부응하듯,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p478

2 신화, 제의 , 명상의 기능
삶의 양태에서 개인은 인간의 전체 이미지의 단편이며 일그러진 형상일 수밖에 없다. 개인은 이 모두 일 수가 없다. 따라서 개인의 전체성은 개별적인 구성인자로서가 아닌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개인은 한 구성요소일 수 있을 뿐이다. p479

목표는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즉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p482

사회적 참여가 결국에는 개인의 내부에 있는 전체를 깨닫게 하듯이 추방으로 인한 유랑이 영웅을 전체에 내재하는 자아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 표적의 중심에 이르면, 이기주의나 이타주의의 문제는 사라진다. 개인은 율법 안에서 자기를 잃고, 우주의 전적인 의미와 동일하게 재생한 것이다. 세계는 그를 위해, 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신은 이렇게 말했다.
<오 모하메드여, 네가 없었으면, 내 저하늘도 만들지 않았으리라> p483

3 오늘날의 영웅의 업적은, 갈릴레오의 세기에 이루어졌던 업적이 아니다. 그때는 암흑 시대였지만 지금은 광명의 시대다. 그러나 빛이 있었던 곳이 지금은 어둠에 싸여 있다. 현대 영웅의 위업은 영혼이 균형응ㄹ 이루고 있던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대륙의 불을 다시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p484

오늘날의 사회는 지구지, 경계선에 갇힌 국가가 아니다.

오늘날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세계적 종교도 일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 이러한 종교들도, 선전과 자화자찬의 도구로서, 갖가지 도당짖기의 요인과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p485

가짜 신앙은 제대로 기능하는 세계에는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보다 필요한 것은 전체 사회질서의 진화다. 그래야 세속적인 삶의 의무와 행위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실제로 내재하고 또 그만큼 효과적인, 보편적인 신인의 이미지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이를 의식화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p486



3. 내가 저자라면


하나, 저자 조셉 켐벨이 말하는 어려운 이 책의 목적

“이 책의 목적은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고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옛 현자들의 말에는 언외의 뜻이 상징적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고문집 편집자의 재능을 능가하거나 상징의 문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문을 여는 열쇠로 정신분석학을 현대의 길잡이로 삼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방법으로는 세계 각처에서 채집된 신화와 민간 전설을 한곳에 모아놓고 상징으로 하여금 스스로 입을 열게 하도록 하여 그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러한 가운데에서 일정한 상태로 보존되어 바탕이 되는 진리와 다시 만나게 되는 점 등에 놀라워하며 시간을 초월한 이 환상의 비밀의 정체가 무엇인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를 화두로 삼아 풀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많은 신화나 인류의 종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상사성이지 상이성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바람은 저자 조셉 켐벨의 비교 해석이 이 세계의 통합을 결실시키려는 작품의 경향에 대해, 인류의 상호 이해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베다 경의 예를 들어 <진리는 하나이되, 현자는 여러 이름이로 이를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두울, 영웅의 조건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p29

『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p111
이 두 구절에 이르러 문득 늘 초아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미제자와 기제자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초아선생님께서는 사부님과 같은 분을 기제자라 하시고 우리와 같은 사람을 미제자라 하셨는데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잘 새길 줄 몰랐으나, 모험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완성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한계를 분명히 하시는 말씀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엣, 모험을 부정적이게 하는 소명의 거부

나는 유아세례교인이다. 그러고 나서 가족과 함께 자연스레 냉담하다가 이십대 중반에 다시 홀로 나가기 시작 했었다. 그리고 얼마못가서 또 냉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늘 마음에서는 내가 천주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불교도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님을 본적이 없다. 느낀 적이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믿음이 약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솔직히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도마사제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와 같지도 못하다. 의문을 품고 노력한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밝혀내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치열하지 못했다. 또 사실은 겁을 내거나 요령을 피우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어렴풋이나마 체험한 신은 내 눈의 잣대에서는 공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짐을 맡으려는 사람에게는 더 달려드는 것 같았다. 일테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신도 집착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내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새벽기도를 가기위해 나갔던 친구가 자동차에 치여 죽는 일 등, 위정자들이 버젓이 종교인으로 행세를 하며 국민을 우롱하기를 당연지사로 하는 일 등을 볼 때면, 아무리 그런 것에 상관하지 말라고 하더라도 신경이 쓰이고 거부감이 일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천주교회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은 질투의 신이기 때문에 다른 신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다는 설정 자체를 나는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할 때에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세계, 내가 살아봐도 그렇고 사랑과 정성으로 지극하면 당연히 그 자식은 부모를 이해하고 그의 말에 순종하고 따른다. 그런데 자신과 다른 사상이라고 해서 무조건적 배타적이고 억압의 정서를 강요하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물론 교리가 단순해서 따르기는 쉽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판단의 자세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단편적으로 분열에 이르는 조작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잣대는 선악을 조장하고 오히려 분열을 일으킬 소지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보다는 더 넓고 깊은 범위에서 사유해 볼 수도 있고 그것이 또한 다름이 아니라 다른 방식일 수 있다는 의식의 확대와 사유의 확장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너무나 어렵지만 불교의 교리가 배우면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공부하기가 너무 어렵다. 지금 이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심오하고 막힘이 있다.

소명을 알고 한걸음에 바르게 곧장 잘 나아갈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또한 소명을 거부 하거나 알지 못하기도 한다. 이것의 앎이란 무엇일까. 단순한 것 같으면서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깊은 자신에 대한 모색과 노력이라고 해야 할까.

네엣, 헤라클레이 토스와 시인 블레이크 Blake 주장

『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p62

『사자의 표호, 이리의 울부짖음, 성난 바다의 광란, 그리고 피를 부르는 칼은 인간의 눈에 는 과분한 영원한 편린들이다.』p63

이 부분에서 변.경.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좋은 의미로 지칭하는 창조적 부적응자란 말이 생각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과 불확실성에 대한 모호함을 용기와 지혜와 불굴의 의지로서 맞서가는 자기극복과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영웅의 이야기” 바로 우리들의 신화가 말이다.

다섯, 한마디로 읽기에 난해하고 벅찬 책이었다. 그러나 의미를 되새기면 재미나기도 했다.


......................

몸살로 인해서 잘 읽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거지로 올려 죄송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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