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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2일 02시 10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신영복은 1941년 경남 밀양 출생했다. 1959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입학하였으며 입학한지 꼭 1년 만에 4·19를 겪었다. 그리고 곧 5·16 반동이 왔다. 4·19이후 돋아나기 시작한 통일 운동, 노동운동 등이 군부세력에 의해 짓밟혔다. 장기적인 학생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신영복은 서울대상대에서 본격적인 독서 서클을 만들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는 주로 다른 대학이나 연합서클 지도에 주력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1965년 2학기와 1966년 초에 <청맥>이란 잡지의 예비필자 모임인 ‘새문화연구회’ 모임에 참석했다. <청맥>은 통혁당 핵심들이 당의 합법 기관지로 설정한 잡지로, 반미적인 논설이 종종 실렸다. 이들 모임은 나중에 통일혁명당 산하의 민족해방전선으로 발표되었다.

1968년 8월 24일 악명 높았던 김형욱의 중앙정보부는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을 발표했다. 북한에 연계된 한국전행 이후 최대의 지하당 조직인 통일혁명당이 적발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종태, 김문규, 김질락 등이 사형 당했고, 신영복은 보통군법회의와 고등군법회의에서 모두 여섯 번이나 사형이란 무거운 꼬리표가 붙은 뒤 정상참작으로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신영복은 통일혁명당에는 가입한 적도 없고, 김질락 이외에는 통일혁명당 지도부인 김종태나 이문규를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 그가 통일혁명당 지도간부이며 무기수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었다.

신영복은 20년 감옥생활에서 육군교도소 시절이나 독방생활만 한 안양시절 등을 빼고는 꼬박 15년을 대전교도소에서 보냈다. 대전은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좌익 사상범이 많았다. 한국전쟁 당시의 부역사건으로 들어온 사람도 많았고, 빨치산 출신들도 있었다.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 안내원도 있었다. 신영복은 해방 전후의 분단현실을 온몸으로 담아내고 있는 이들과 일상을 같이했다. 구혁명가들을 만나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과 인간적 이해와 공감을 갖게 되면서 역사를 대면하게 되었다. 특히 한문 스승이었던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과의 4년간에 걸친 생활은 그의 역사인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88년 8월 15일, 잡혀 간지 20년만에 출옥했다. 처녀작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판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1989년 3월부터 성공회대학에서 경제원론을 가르치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경제원론 이외에 ‘한국사상사’와 ‘중국고전강독’도 강의했다. 감옥에서 서구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준거를 동양고전의 지혜와 가치에서 찾고자 탐색한 것이 강의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그는 비정규직 이었고, 근 10년이 지나 사면·복권된 뒤인 1998년 5월에 정규직 교수가 된다.

1996년 신영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후속편으로 <나무야 나무야>를 세상에 내놓았다. ‘국토의 역사의 뒤안길에서 보내는 엽서’라고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문자 그대로 신영복이 ‘독보권’을 행사한 첫 여행기이다. <나무야 나무야>가 나온지 2년 뒤인 1998년, 신영복은 생애 첫 해외여행 길에 올랐다. 그가 처음 여정에 오늘 날은 공교롭게도 그때로부터 28년전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내려지던 바로 그 날이었다. 1심과2심에서 이미 사형언도를 받았던 그로서는 생사의 갈림길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런 28년 후의 그 날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빠져나와 세계로 출국한 날이다. 한 날을 두고 28년전의 전과 후가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새로운 세기에의 길목에서 띄운 신영복의 해외엽서는 그 후 <더불어 숲>으로 엮어져 나왔다. 그 후 2004년 12월에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하던 동양 고전 독법을 책으로 펴냈다.

지난 2006년 6월 8일 성공회대학교 성당에서는 신영복 교수의 고별강의가 있었다고 한다. 17년간의 교수생활을 마감하면서 ‘박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겨울을 지나 씨앗을 뿌리고 새로운 싹과 열매는 맺는 나무처럼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면서 “나무는 짧고 숲은 길다. 숲은 전체로서의 완성을 뜻하며, 나무(개인)의 결함까지도 품는다는 점에서 나무의 완성”을 일개웠다고 한다. 이제 60대 후반의 나이로제 2의 인생을 맞이한 신영복 교수. 앞으로의 그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많은 울림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2. 마음으로 다가오는 글귀

18-나의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은 이처럼 감옥에서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또 교도소의 현실적 제약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21-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24-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 이 모순된 표현 속에 대단히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미래로 가는 길은 오히려 오래된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연과의 조화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라다크의 오래된 삶의 방식에서 바로 오염과 낭비가 없는 비산업주의적 사회 발전의 길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그것이 잘된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우리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지요.

25-당대 사회의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성찰과 모색이 담론의 중심이 됩니다.

27-과거의 사상과 현대의 사상이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래는 오래된 과거라고 했습니다. 사상은 시간적인 존재 형식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존재 형식도 갖습니다. 동양이라는 어휘 그 자체가 공간적 의미입니다.

28-그뿐만 아니라 무엇과 무엇의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의 접근 방법을 나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시각 즉 비교하고 그 차이를 드러내는 관점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러한 관점은 가장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 우리가 어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대등한 비교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교나 차이는 원칙적으로 비대칭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차이를 보려는 시각은 결국 한쪽을 부당하게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으며, 기껏해야 지엽적인 것이나 표면에 국한된 것을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지요.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결국 차별화로 귀착되는 것이지요. 반대의 논리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차이를 인식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통합과 공존을 모색한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공존은 차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는 것이지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존이 필요한 것이지요. 어떠한 경우든 차별화는 본질을 왜곡하게 마련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요.

34-동양적 사고는 현실주의적이라고 합니다. 현실주의적이라는 의미는 매우 다양합니다만 대체로 우리들의 삶이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모질게 해서는 안 되며,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에 소용이 없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현실주의란 한마디로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진실입니다.

35-체면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관계를 내용으로 합니다. 그런 점에서 체면은 사회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형식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를 일정하게 사회화해야 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일정한 형식이 요구됩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형식은 불가피하게도 어느 정도의 부정적이고 경직된 측면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 도道 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착辵은 머리카락 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입니다. 수首는 물론 사람의 머리 즉 생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도란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37-도는 길처럼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도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도재이道在邇, 즉 도는 가까운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고는 삶의 결과를 간추리고 정리한 경험 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8-자연이란 본디부터 있는 것이며 어떠한 지시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자연이며 그런 점에서 최고의 질서입니다.

39-자연이란 공간과 시간의 통일, 유한과 무한의 통일체로서 최고, 최대의 개념을 구성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을 ‘생기生氣의 장場’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생성과 소멸이 통일되어 있는 질서입니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조화 통일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생주이멸生住移滅의 순환 과정 속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 어떤 존재가 특별히 자기를 고집하거나, 비대하게 되면 생성 과정이 무너집니다. 생기의 장이 못 되는 것이지요. 자연의 개념과 특히 자연을 생기의 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동양적 체계에서 과잉 생산과 과잉 축적의 문제는 바로 생성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41-인성은 개인이 자기의 개체 속에 쌓아놓은 어떤 능력, 즉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여 나가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빈다. 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 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 인仁은 기본적으로 인人+인人 즉 이인二人의 의미입니다. 즉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을 인간人間, 즉 인人과 인人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 동양적 구성 원리로서의 관계론에서는 ‘관계가 존재’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사이존재’와 ‘관계’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지요.

42-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自己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론이 확대되면 그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 됩니다. 동양 사상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거론되는 화해의 사상 역시 그렇습니다. 화和는 쌀을 함께 먹는 공동체의 의미이며, 해諧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민주주의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성의 고양이 곧 사회성의 고양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43-모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 / 조화와 균형에 대하여 대단히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중용中庸이 그것입니다. 대립과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순 대립의 두 측면이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44-그래서 노자는 자연을 최고의 자리에 두는 것이지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것이지요.

52-[시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의 사실성에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지만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이지요. /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5-정의情義가 언言이 되고 언言이 부족하여 가歌가 되고 가歌가 부족하여 무無가 더해진다고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말로도 부족하고 노래로도 부족해서 춤까지 더해 그 깊은 정한의 일단이나마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56-문학의 길에 뜻을 두는 사람을 두고 그의 문학적 재능에 주목하는 것은 지엽적인 것에 갇히는 것입니다. 반짝 빛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문학 본령에 들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역사적 관점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58-공자는 [시경]의 시를 한마디로 평하여 ‘사무사思無邪'라 하였습니다. '사무사’는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특함이 없다는 뜻은 물론 거짓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생각에 거짓이 없는 것으로 읽기도 하고 시를 읽는 독자의 생각에 거짓이 없어진다는 뜻으로도 읽습니다. 우리가 거짓 없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지요.

62-공자도 그 나라의 노래를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하였지요. ‘악여정통樂與政通’이라는 것이지요. 음악과 정치는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64-시적 관점은 우선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동서남북의 각각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춘하추동의 각각 다른 시간에서 그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결코 즉물적卽物的이지 않습니다. 시적 관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자유로운 관점은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한 관계망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를 읽고 시적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65-시인은 마땅히 당대 감수성의 절정에 도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개인적 경험 세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6-자기의 좁은 체험의 세계를 부단히 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 매몰되고 있는 허구성입니다. 미적 정서의 허구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67-땅을 밟고 있는 확실함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되찾아야 할 우리 삶의 진정성이기도 합니다.

68-농경민족은 유한 공간에서 반복적 경험을 쌓아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땅이라는 유한한 공간에서 무궁한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과거의 경험이 다시 반복되는 구조를 터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과거에 대한 기록은 매우 중요한 문화적 내용이 됩니다.

72-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은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77-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84-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이 곧 낭만주의의 일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87-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이란 쉽게 이야기한다면 물을 긷는 그릇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주역]에 담겨 있는 사상이란 말하자면 손때 묻은 오래된 그릇입니다.

88-점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을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부류의 의기意氣 방자放恣한 사람에 비하면 훨씬 좋은 사람이지요.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못 되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있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89-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101-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102-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103-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 중간은 그물코처럼 앞뒤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고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 그러나 그곳이 비록 편안하고 한적한 달관의 공간이긴 하지만 그곳은 무엇을 도모하거나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후미진 공간이라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관계 맺기가 어려운 매우 적막한 처소處所가 아닐 수 없습니다.

109-하늘의 기운은 위로 향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만난다는 이치입니다. 서로 다가가는 마음입니다.

110-혁명은 한 사회의 억압 구조를 철폐하는 것입니다. 억압당한 역량을 해방하고 재갈 물린 목소리를 열어줍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잠재적인 역량을 해방하는 일입니다.

112-멀리 있는 사람도 포용하고 맨발로 황하를 건너는 사람도 포용하고, 멀리하거나 버리지 않으며 붕당이 없으면 중도를 행함에 짝을 얻으리라.

113-평탄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지나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어렵지만 마음을 곧게 가지고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마라. 식복이 있으리라. / 될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이것이 천지의 법칙이다.

119-관계란 다른 것을 향하여 열려 있는 상태이며 다른 것과 소통되고 있는 상태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123-희망은 고난의 언어이며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고난 이후의 가능성을 경작하는 방법이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4-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잎사귀를 떨고 나목으로 서는 일입니다. 그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품을 걷어내고 화려한 의상을 벗었을 때 드러나는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어쨌든 희망은 현실을 직시하는 일에서부터 키워내는 것임을 박괘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을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추풍속에 서듯이 우리 시대의 모든 허위의식을 떨어내고 우리의 실상을 대면하는 것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27-우리의 모든 행동은 실수와 실수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러한 실수가 있기에 그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무엇하나 끝나는 것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든 강물이든 생명이든 밤낮이든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마칠 수가 없는것이지요. 세상에 완성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지요.

128-최후의 괘가 완성 쾌가 아니라 미완성 괘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변화와 모든 운동의 완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역사와 삶의 궁극적 완성이란 무엇이며 그러한 완성태完成態가 과연 존재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 실패가 있는 미완성은 반성이며, 새로운 출발이며, 가능성이며,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완성이 보편적 상황이라면 완성이나 달성이란 개념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이나 목표가 관념적인 것이라면 남는 것은 결국 과정이며 과정의 연속일 뿐입니다.

129-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자본의 논리일 뿐입니다. / ‘길’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은 서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선하지 않으면 진미할 수 없고 진미하지 않고 진설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목적은 높은 단계의 수단이며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적입니다. / 생산 과정 그 자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131-앞에서 [주역]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사전에 읽어냄으로써 대응 할 수 있고, 또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절제란 바로 이 변화의 조직, 구성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택된 여러 부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 이론도 다르지 않습니다. 객관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선별적으로 추출하여 구성한 세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삶은 천지인을 망라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중심의 주관적 공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매트릭스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3-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144-‘습’의 뜻은 글자의 모양이 나타내고 있듯이 ‘실천實踐’의 의미이빈다. 배운것, 자기가 올핟고 공감하는 것을 실천할 때 기쁜 것이지요. / “전傳하기만 하고 행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언言 행行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 당시에도 하나의 사회적 유형으로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45-그런 점에서 사회는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 할 수 있으며, 이 인간관계의 사회적 존재 형태가 사회 구성체의 본질을 규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사회 변화 역시 핵심은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인간관계의 변화야말로 사회 변화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준거입니다.

146-계급 관계는 생산관계이기 이전에 인간관계입니다.

147-해가 뜨고 지는 것마저도 변화가 아니라 반복이다.

148-첫째, 미래의 어떤 실체가 현재를 향하여 다가오는 구도이다. 그리고 둘째, 글 미래는 현재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야말로 새로운 것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 물질의 존재 형식인 시간이 실체로 등장하고, 그 실체는 현재와 상관없는 전혀 새로운 것이며, 그것도 미래로부터 다가온다는 사실은 참으로 엄청난 허구이다.

149-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과거 현재 미래가 각각 단절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사유思惟의 차원에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50-스승이란 단지 정보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더구나 과거지사를 전하는 것만으로 스승이 될 수는 없지요. 스승이란 비판적 창조자여야 하는 것이지요.

154-형은 인간관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두는 것이며 반대로 예는 인간관계를 열어놓음으로써 그것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구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68-배려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착하다는 것은 이처럼 관계에 대란 배려를 감성적 차원에서 완성해놓고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하거나 좌우명으로 걸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무의식 속에 녹아들어 있는 그러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1-개인의 능력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있으며 이 인간관계는 신뢰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지요. 신信은 그 글자의 구성에서 보듯이 ‘인人+언言’의 회의會意로서 그 말을 신뢰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72-정正은 정整이며 정整은 정근整槿입니다. 뿌리를 바르게 하여 나무가 잘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치의 근원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란 그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잠재력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적 잠재력을 극대화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 잠재력의 극대화는 ‘인간성의 최대한의 실현’이 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 잠재력과 인간성이 바로 인간관계의 소산인 것은 다시 부연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역량의 결집이라는 사실입니다.

174-5-더구나 지인이란 타인에 대한 이해일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 문제는 타인에 대한 이해입니다. 여러분도 어떤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한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알려고 하는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쌍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나와 관계가 있어야 하고 나를 사랑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182-이론과 실천의 통일입니다.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며 동시에 특수한 경험에 매몰되지 않은 이론적 사고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연과 필연의 변증법적 통일에 관한 인식이기도 합니다. / 학이란 하나의 사물이나 하나의 현상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크게 생각하면 공부란 것이 바로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3-우리는 그 작은 것의 시공적 관계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빙산의 몸체를 깨달아야 하고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전 과정 속에 그것을 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온고溫故와 지신知新을 아울러야 하는 것이지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은 것을 탓하는 것이 이를 테면 존재론적 사고라 한다면, 관계론적 사고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 그가 주장하는 바는 요컨대 이론은 주관적이고 실천은 결코 주관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관념적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187-세상 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8-어쨌든 자기의 공을 숨기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 /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과功過를 불문하고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그것을 치장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192-대립과 모순이 있으며 사랑과 증오가 함께 존재하는 세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실상을 최소한 미화하거나 은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195-여기서 문文은 형식을 의미하고 질質은 내용을 의미합니다. 핵심은 내용과 형식의 통일에 관한 것입니다. 내용이 형식을 잃어버리면 거칠게 되고 형식이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면 공동화 될 수 없습니다.

199-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200-낙은 어떤 판단 형식이라기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 전체와 부분이 혼연한 일체를 이룬 어떤 질서와 장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낙은 관계의 최고 형태”인 셈입니다. 그 낙의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어떤 터득이 가능한 것이지요.

202-“하늘을 망라하는 그물은 성글기 그지 없지만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213-인과 의의 차이가 곧 공자와 맹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 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9-"현자라야 즐길 수 있다" 현자는 여민동락(與民同樂)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즐거움이란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234-자기반성(自己反省)이 자기 합리화나 자위(自慰)보다는 차원이 높은 생명 운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242-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 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243-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깊은 물은 높은 물결을, 얕은 물은 낮은 물결을 일으키는 법이다) 일월(日月)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250-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길이 없구나.

269-개념이라는 그릇은 작은 것이지요. 그릇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은 이미 바다가 아닙니다.

289-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300-가장 중요한 원칙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304-간디는 "진보란 단순화이다"라고 했지요.

311-'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는 보행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328-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해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정서적 공감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상태입니다. 장자의 이리화정(以理化情)은 머리와 가슴의 합일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29-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機心),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純白不備).

347-달이든 별이든 북극성이든 은하계든 그리고 작은 풀 한 포기든 돌멩이 한 개에 이르기까지 별의 부스러기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351-지식과 진리성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 입니다

355-말은 뜻을 전하는 것인데, 뜻을 얻으면 말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376-겸애하면 평화롭고 차별하면 어지러워진다.

382-'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86-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드러내놓고 싸우는 사람은 알아준다.

409-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것.

421-예란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物)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있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443-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그 인간 전체를 범죄시 하여 범죄인으로 단죄하는데 반하여,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 그 행위를 분리하여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만 불법성을 인정하는 정도입니다.

474-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큰 것이고 충분히 넓은 것입니다.

478-인과 과는 하나가 아니면서 서로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인 것입니다. 그것을 불이무이(不二無異)라 합니다.

505-과거는 흘러가고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 같이 그 자리에서 피고지는 꽃일 따름입니다.

506-인성의 고양은 '바다로 가는 여행'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바다로 가는 겸손한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가장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人性)의 고양(高揚)’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인성의 내용이 바로 인간관계이며 인성을 고양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508-그 사람의 생각을 결정하는 것이 머리(head)가 아니라 가슴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조용히 반성하라고 해왔던 것이지요. 가슴을 강조하는 것은 가슴이 바로 관계론(關係論)의 장(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거대한 장(場)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가슴이기 때문입니다. / 창의적 사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 입니다. 갖히지 않고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입니다.

510-상상력은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단지 작게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상상력입니다.

511-'그림'은 '그리워함'입니다. 그리움이 있어야 그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림은 우리 사회가 그리워하는 것, 우리 시대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515-심기는 자식처럼 하고 두기는 버린 듯이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나무의 천성이 온전하게 되고 그 본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며 감히 자라게 하거나 무성하게 할 수가 없다.

3. 내가 저자라면

나는 서양문화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정말 오랜만에 서양과 동양에 대한 생각에 빠져드는 일주일 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문화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드리기에 정신이 없던 역사 속에서, 나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문화의 짧은 역사와 철학을 바탕으로, 특히 여성주의 철학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동양의 문학과 철학을 진부하고 남성중심적인 문학과 철학으로 치부해 버린 시간이 많았다.

내가 다시 동양고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은 명상을 시작하면서이다. 공부를 시작하고자 했을 때,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체계화된 학문을 배울 수 있는 학교와 교수를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유학을 가서 서양이 체계화시킨 학문을 배워 와야 한다고 했다. 내가 치부하던 학문을 서양으로부터 다시 배워 와야 하는 것, 참 묘한 아이러니였다. 그 씁쓸함을 안고 있던 나에게 책은 조용하게 찾아와 말을 걸어 준다. 동양 고전과 과거를 통해 인간을 읽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지혜를 엿보라고.

‘강의’는 신영복 선생이 성공회대에서 고전 강독이라는 강좌로 개설한 교양 과목의 강의를 정리한 것이다. 대학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강좌를 풀어 쓴 것이라 한다. 읽으면서 이해되지 않는 많은 한자와 내용들이 있어, 약간의 부끄러움을 안고 읽어나갔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주옥같은 구절과 철학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서문에 큰 힘을 실어주었던 저자의 배려 때문이다. 서문에는 저자가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수로 수감 중일 때 노촌 이구영 선생과 함께 다시 읽은 동양 고전이 <강의>의 모태가 되었다는 솔직한 내용을 시작으로, 자신을 세운 확고한 신념을 들을 수 있는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가 편안하게 담겨져 있다.

또한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은 편안함에서 우러나오는 저자의 문투이다. 책의 작가인 화자와, 편안하게 마주앉아 이야기하듯 편안함과 몰입을 준다. 또한 그 편안함 속에서 독자에게 강요함이 없이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다. 어느새 저자의 주장이 마음에 스며들어 있음을 느낀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철학을 강의하듯 구어체로 쉽고 편안하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 이 책을 더욱 마음을 열고 읽게 했다.

처음에는 나의 얄팍한 지식 때문인지 책을 받아들고 고전의 입문서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시경, 서경,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법가 등의 중국 고전들을 고전연구 전문가들이 해석해온 방식과는 다른 저자만의 관점으로 읽어낸 것이 더욱 책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부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저자 자신의 독법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각 고전의 문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유의 깊은 사색에서 나오는 독특한 각주를 붙이고, 동양 성현들의 말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으면서, 다양하고 방대한 동양사상을 ‘관계론’이라는 통찰로 이끌어낸다. 존재론이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관계론은 개인에서 인식의 대상을 확장하여 “우리”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서양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개인의 내부에서 찾았다면 동양에서는 삶의 의미를 개인이 속한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의 관계에서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대상의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한 그의 고전 독법은 이미 알고 있었던 문장과 사상가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특히 동양 고전을 통해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미래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 것.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창신(創新)을 당부하고 있는 것. 상상력을 키워서 작은 것을 보고 큰 것을 깨닫는 관계망을 보는 눈을 키우라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한쪽에 치우쳐 우물 속에 갇혀 있는 나의 사고들로부터 나와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에 너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론'을 중심으로 한다면 다양한 인권의 문제 들도 다루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벅차게 읽느라 깊은 사고를 해내지 못했지만, 동양 고전 독법을 통해 동양 철학에 근거한 여성주의 이론을 펼쳐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 아닌 욕심들을 가져보기도 했다.

IP *.73.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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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11.12 07:53:54 *.128.229.81
또깽아, 맹자와 노장 그리고 그 이후가 지리멸렬이다. 별로더냐 ?
나는 네가 맹자의 의에 관심을 가질 줄 알았구나.
노장을 모르면 명상을 어찌하려 하느냐.

여성과 명상그리고 우화와 일화를 동양고전과 연결해 보면 훌륭한 독법이 나올 것 같은데.....너의 생각은 어떠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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