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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2일 11시 20분 등록

■ 신영복에 대하여

1. 신영복, 그의 흔적

신영복은 1941년 지주의 딸이었던 어머니와 행동으로 자신의 사상을 보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일본인 교장의 차별에 저항했고 한글 연구 서클에 가담했다가 해직되기도 하였다. 사회의 불의에 맞서 항거했던 아버지와 신영복은 어쩐지 닮아 있다. 그의 아버지가 행동으로서 항거했다면, 신영복은 글로써 항거하고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시절 6.25를 경험하며 삶의 고통 한 단면을 생생히 목격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자기 반성을 배웠다.
서울대와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동안 4.19와 5.16을 겪게 되었고, 그 후 비판적 지식인으로 서게 되었다. 숙명 여대 강사를 거쳐 육군 사관 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써 지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했다.
이 때 쓰여진 책이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출옥 후 클래식 담당 PD로 지내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지금은 고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다.
1989년 성공회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 사상사 등 강의하였고, 이 때 사면 복권 되었다.
2006년 8월에 정년 퇴직한 신영복은 현재 동 대학교 석좌 교수로 있다.

2. 가슴과 손발이 소통하게 되리라
子曰 三軍可奪帥, 匹夫不可奪志地.
대군의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한 사람의 뜻은 빼앗을 수가 없다.

그에게 공자의 이 말은 잘 어울린다. 신영복은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20년을 복역하였다. 1988년 8월 15일에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이 때 쓰여진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는 이념의 문제가 아닌 양심의 문제 때문에 감옥을 택했다고 말한다. “사상이나 논리보다는 그 것을 품성화하고 인격화하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와 가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요.”
가슴 속 양심으로 20여 년의 감옥 생활을 보낸 신영복. 공자의 말처럼, 대군의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한 사람의 뜻은 빼앗을 수가 없다. 나아가 그 뜻을 세상에 펼쳐내어 실천한다면, 뜻과 세상이 소통하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신영복은 그 길을 걷고 있노라 확신하는 모양이다. 실천과 이론(사상)은 이원론이 아닌 일원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천이 곧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의 이 말 한 마디가 소소한 즐거움에 만족해버리는 안이한 나를 흔들어 깨우는 듯 하다. “가슴에만 머물러 있지 말자, 가슴과 손발이 소통하게 하자”라고 나를 흔들어 깨우는 듯 하다.

3. 사색과 성찰은 삶 속에서 태동하고
신영복의 어린 시절은 오히려 넉넉한 편이었다. 넉넉함 속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사회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울까? 실제로 그는 어릴 적 다른 친구들이 그렇게 어렵게 사는지 몰랐다고 회고한다. 또한 그가 자라온 집안으로만 보자면, 좌익 사건에 연루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삶이 있었다. 삶은 신영복을 낳았고, 신영복은 삶에게서 배우고, 자랐다. 삶은 그에게 6.25를 허락했다. 초등학생의 나이에 말이다. 덕분에 ‘그 시대의 가난으로부터 깊은 충격을 받고 자기 반성을 배웠다.” 또 4.19 때는 대학 2학년이었고, 3학년 때 5.16이 일어났다. 그 시간들은 신영복에게 “우리 사회의 어떤 것들이 억압당하고 있었는지를 목격”하게 해주었다. 이런 시간들에 20년 옥살이가 더해져, 그는 사색과 성찰의 지식인으로 서게 된 것이다.

그의 삶을 주변인의 시각으로나마 주섬주섬 살피어 본다. 주인공이 아니니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삶과 더불어 성장해왔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삶 그리고 신영복. 다음에 이어질 그의 말은 나의 이런 생각을 더욱 확고히 해준다.

“저는 나무같이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나무란 자기의 자리를 선택하지 않아요. 저는 나무처럼 우리의 삶도 어느 지역, 어느 시공간에 던져졌다고 봅니다. 저는 자기가 던져진 시대와 사회와 여러 가지의 실존에 대하여 자기의 가치나 의지를 전면에 내세워 직선적 대결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생명으로서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나무처럼 자기가 던져진 곳의 바람과 물과 토양 속에서 자기를 키워갈 수밖에 없어요.”

삶이 던져준 시대 상황에서 사색과 성찰을 택한 신영복.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성찰적인 관점을 가지고 그의 역량과 객관적 조건이 허용된 범위 내에서 정직하게 살고 싶다”는 그를 떠올려 본다.

신영복은 20년 옥살이를 통해 “창백한 관념성을 통절”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성장배경과 학교에서의 배움이 감옥에서는 큰 도움이 못 되었다. 그가 지니고 있던 생각이나 정서들은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리라. “문자를 통해 사고 하고 있는 자신의 창백한 관념성을 통절하게” 깨달았다는 그의 말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의 나는 과연 무엇을 통해 사고 하고 있는가. 나를 사고하게 하는 그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가 20년 동안 독방에 있었던 기간을 다 합치니 5년쯤이 되었다. 그 때 면벽명상(面壁瞑想)을 참 많이 했단다. 단전 호흡을 하며 벽을 마주보고 앉아서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어야 하지만, 그에게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어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이나 경험을 명상했다. 그 경험이 그에겐 굉장히 의미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사사롭다 여겼던 사건 속에서 엄청난 정치적 성격이 들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신영복은 삶을 통해 사색이란 거대한 배움을 얻었다. 그를 성장하게 한 것은 팔 할이 사색이리라.

4. 책과 더불어
신영복의 대표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당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일 것이다. 전문가 100인이 선택한 1990년대의 책 100선에도 꼽힐 만큼 이 책은 많은 이들의 손에 들려졌다. 그 외 성찰과 사색이 깊이 있게 묻어난다는 평을 듣는 여러 책을 저술했다.

이 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나무야 나무야』『더불어 숲』은 서간문 형식으로 쓰여졌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경우, 감옥과 엽서라는 물리적 공간이 제재를 가했다. 반면『강의』의 경우는 대학 강의의 녹취를 풀어 쓴 것이기 때문에 전 저서들에 비교하여 저술 시 참 편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의 책은 어느 시기를 주축으로 문체나 서술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전범이 되는 글쓰기 형식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문장의 호흡이라든가 언어 선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신영복의 책 속엔 사회가 담겨 있다. 우리 현대사 60년의 성찰이 깊이 배어 있다.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현대사를 담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책은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눈물이 묻어 있다. 투쟁이 불러낸 피가 떨궈져 있다. 현재 그는 “정치 경제학과 사회과학개론을 오래 강의했고 한국사상사를 강의한 적도 있어서 이런 사회과학적 담론을 사람들의 삶과 정서에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 고민 중이다.

국내 출판된 책을 살펴보면 총 13권이며, 새해를 맞이하여 내 놓은 달력만 해도 6개이다.

<저서>
처음처럼(2007.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98.8)
더불어숲1, 2 (합본: 2003.4) (1998.6/1)
신영복의 엽서(2003.12)
신영복(2003.11)
강의(2003.12)
나무야 나무야(1996.9)
신영복 함께 읽기(2006.8)
여럿이 함께(2007.5)
신영복 글씨 달력(2003.11)
신영복 서화 달력(2003.11)
신영복 서예 달력(2003.11)
신영복 서화 달력(2004.12)
신영복 서화 달력(2006.12)
신영복 글씨 달력(2003.11)
나무가 나무에게(2001.6)
손잡고 더불어(1995.3)
딸들아 일어나라 노래하라(1990.6)

<역서>
루쉰전-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리라(1992)
사람아 아, 사람아!(2005)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
중국역대시가선집 전 4권 (1994.4)

[출처] 인물과 사상 11월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처음처럼,
http://www.shinyoungbok.pe.kr(신영복 홈페이지)

■ 내 마음에 들어온 글 귀

[6] 필자로서는 이 책이 고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1장 서론

[17] 요즈음 대학생이나 젊은 세대들은 근본적 성찰을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매우 감각적이고 단편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반성 자체가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까지 하지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근본적 담론 자체가 실종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 정작 중요한 것은 관점입니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예시한 문안도 그런 문제의식에 따라 선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 담론을 재구성하는 과제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특히 그것이 관철하고자 하는 세계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춘추전국시대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부국강병이 최고의 목표가 되고 있는 무한 경쟁 체제라는 점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시의 담론을 통하여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전망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24] 고전 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5] 고전 강독에서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고전으로부터 당대 사회의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성찰과 모색이 담론의 중심이 됩니다.

[27] 한문공부에 대한 조언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기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원문을 해독하고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면 금상첨화지요.

[28] 어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제2장 오래된 시와 언

[52] 『시경』은 동양고전의 입문입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52] 우리가 『시경』의 국풍 부분을 읽는 이유는 시의 정수는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정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1] 상품미학은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53] 『시경』독법은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되기보다는 정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56] 문학의 길에 뜻을 두는 사람을 두고 그의 문학적 재능에 주목하는 것은 지엽적인 것에 갇히는 것입니다. 반짝 빛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문학 본령에 들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역사적 관점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 시대와 그 사회의 애환이 자기의 정서 속에 깊숙이 침투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58] 우리가 거짓 없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지요.

[64] 『시경』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삶과 정서의 공감을 기초로 하는 진정성에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시와 『시경』에 대한 재조명은 당연히 이러한 사실성과 진정성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성을 통하여 현대 사회의 분열된 정서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은 우리 자신의 삶과 정서를 분절시켜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품미학, 가상 세계, 교환가치 등 현대 사회가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한마디로 허위의식입니다. 이러한 허위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한 우리의 정서와 의식은 정직한 삶으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소외도고 분열된 우리들의 정서를 직시할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유력한 과점이 바로 시적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시적 관점은 왜곡된 삶의 실상을 드러내고 우리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72]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75] 고전독법은 물론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당대 사회의 문제의식으로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떠한 시대나 어떠한 곳에서도 변함없이 관철되고 있는 인간과 사회의 근본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76] 개인의 정체성이 그 사람의 고뇌와 무관한 소비 행위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를 반성하는 관점에서 재조명되기를 바랍니다.

[77] 인류의 정신사는 어느 시대에나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모색해가게 마련입니다.

[77]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82]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제3장 『주역』의 관계론

[88] 『주역』은 동양 사상의 이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91] 공자 이전 2,500년은 점복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 이후의 시기는 『주역』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시대입니다. 경은 원본 텍스트이고, 전은 그것의 해설입니다. 예를 들어 『춘추좌씨전』이란 책은 『춘추』라는 텍스트를 좌씨가 해설한 책이란 의미입니다.

[92] 춘추전국시대 550년은 기존의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모든 국가들은 부국강병이라는 유일한 국정 목표를 위하여 사활을 건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신자유주의 시기였습니다.

[92]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할수록 불변의 진리에 대한 탐구가 절실해지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시기(춘추전국시대)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 이론에 대한 근본적 담론이 가장 왕성하게 개진되었던 시기였음은 전에 이야기했습니다. 한마디로 『주역』은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시기의 시대적 산물이었던 것이지요.

[129] 목표의 올바름을 선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130]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易)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를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1] 『주역』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사전에 읽어냄으로써 대응할 수 있고, 또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절제란 바로 이 변화의 조직, 구성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2] 『주역』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절제와 겸손이란 것이 곧 관계론의 대단히 높은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배려하는 겸손함 그것이 바로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는 것입니다.

제4장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138~139] 춘추전국시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춘추전국시대는 철기의 발명으로 특징지어지는 기원전 5세기 제2의 ‘농업혁명기’에 해당됩니다.
둘째,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구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사회 변동기입니다.
셋째,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의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입니다.

[140] 사회 경제적 배경은 사상사의 이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상도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1]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144] 배운 것, 자기가 옳다고 공감하는 것을 실천할 때 기쁜 것이지요.

[145] 사회에 대한 이 모든 개념은 제도와 인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제도와 인간이라는 두 개의 범주가 인간관계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사회는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 할 수 있으며, 이 인간관계의 사회적 존재 형태가 사회 구성체의 본질을 규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가 바로 인간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지요.
사회 변화 역시 그것의 핵심은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인간관계의 변화야말로 사회 변화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준거입니다. 『논어』에서 우리가 귀중하게 읽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입니다.

[146]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회 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으로 본질적인 재편 과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정치 혁명 또는 경제 혁명이나 제도 혁명 같은 단기적이고 선형적인 방법론을 반성하고 불가역적 구조 변혁의 과제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49]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구절은 어디까지나 진보적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통일체로 인식하고 온고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지향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150] 지신의 방법으로서의 온은 생환(生還)과 척결(剔抉)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151] 오늘날도 전문성을 강조하기는 막스 베버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성은 바로 효율성 논리이며 경쟁 논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효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가는 전문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전문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자본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는 것이지요. 자본가는 어느 한 분야에 스스로 옥죄이기를 철저하게 거부해왔던 것이지요.

[152]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입니다. 결코 인간적 논리가 못되는 것이지요.

[152] 따라서 『논어』의 이 구절을 신자유주의적 자본 논리의 비인간적 성격을 드러내는 구절로 읽는 것이 바로 오늘의 독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제5장 맹자의 의

[213]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9] 오늘날 행복의 조건 즉 樂의 조건은 기본적으로 독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하여 무심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일반적 정서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과 닮는 것을 피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에 가치를 두려고 하지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개인적 정서의 만족을 낙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이 얼마나 한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237] 한마디로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마차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이유가 바로 이 ‘만남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만남이 없는 사회에 ‘불인인지심’이 있을 리 없는 것이지요.

[242]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248] 자기는 하지 않고 시키기만 하는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환경만을 만들어 주는 맹모에 비해서도 훨씬 뛰어난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직접 자신의 일면을 자식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 교육적 효과는 차치하고라도 참된 스승의 모습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250]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

제6장 노자의 도와 자연

[253] 유가 사상은 서구사상과 마찬가지로 진의 사상입니다. 그에 비하여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255] 자연을 카오스로 인식하는 여타 제자백가들과는 반대로 자연을 최고의 질서 즉 코스모스로 인식합니다.

[261] 간단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정리한다.

[269] 도란 어떤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법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70] 무와 유는 그것에 접근하는 접근로에 따라서 구분될 수 있는 개념상의 차이일 뿐입니다.

[271] 노자 철학을 물의 철학이라고 하는 까닭은 보이는 것 중에서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물이기 때문에 물의 비유로써 도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273] 세상 만물은 상대적인 것이며 상호 전화하는 것입니다. 존재론적 체계가 아니라 관계론적 체계입니다.

[281] 지식의 도구인 언어 그 자체가 가장 이윤 폭이 큰 첨단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지식을 위한 지식’도 생산되고 유통됩니다. 도무지 무욕할 수도 없고 무지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282] 노자 정치학의 압권이 바로 ‘생선 굽는’ 이야기입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 는 것이지요. 생선을 구울 때 생선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부스러뜨리는 것이 우리들의 고질입니다. 생선의 비유는 일상 생활의 비근한 예를 들어서 친근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285] 주체적 역량이 미흡하거나 객관적 조건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과도한 목표를 추구하는 경우에는 그 진행과정이 순조롭지 못하고 당연히 다투는 형식이 됩니다.

[285] 물은 결코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산이 가로막으면 멀리 돌아서 갑니다.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비켜갑니다. 곡류하기도 할수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가파른 계곡을 만나 숨 가쁘게 달리기도 하고 아스라한 절벽을 만나면 용사처럼 뛰어내리기도 합니다. 깊은 분지를 만나면 그 큰 공간을 차곡차곡 남김없이 채운 다음 뒷물을 기다려 비로소 나아갑니다. 너른 평지를 만나면 거울 같은 수평을 이루어 유유히 하늘을 담고 구름을 보내기도 합니다.

[289] 약한 사람이 이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다수이기 때문이며 다수가 바로 현실이며 정의라는 것이지요.

[290] 하방 연대에는 보다 진보적인 역량이 덜 진보적인 역량과 연대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덜 진보적인 역량은 더 내놓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292] 빔이 쓰임이 됩니다. 누구나 수레를 타고 그릇을 사용하고, 방에서 생활하지만 그것은 수레나 그릇이나 방의 있음에만 눈을 앗기어 그 있음의 배후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293] 한 개의 상품의 있음 즉 그 효용에 주목하기 보다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노동을 생각하는 화두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기쁨이 누군가의 아픔의 대가라면 그 기쁨만을 취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는 것이지요.

[293] 자본주의적 가치란 소유와 소비라는 유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유지되는가, 이 유의 세계가 어떠한 것을 축적하고 어떠한 것을 파괴하고 있는가를 주목하는 실천적 관점이 바로 노자의 현대적 독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93] 보통 사람들은 소유없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노스님의 무소유는 사찰 종단의 거대한 소유 구조 위에서 가능한 것이지요. 그 자체가 역설입니다. 무소유가 가능한 것은 소유가 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295] 최고의 정치는 무치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이 백성들이 친애하고 칭송하는 임금입니다. 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임금이 백성들을 자상하게 보살피기 때문에 백성들이 친애하고 칭송하겠지만 이러한 임금은 없는 듯이 존재하는 임금만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이 두려운 임금입니다. 권력을 행사하고 형벌로 다스리는 패권정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운 임금보다 못한 임금이 바로 백성들이 업신여기는 임금입니다. 멸시의 대상이 되는 임금이지요.

[296] 공성사수, 즉 일이 성취되더라도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이룩한 일을 생색내지 않는 것입니다.

[296] 백성들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임금을 믿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이지요.

제7장 장자의 소요

[309]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310] 장자는 문제의식에 있어서 제자백가들과 분명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자가 추구하는 문제는 더 근원적인 문제였습니다. 제도 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이른바 장자의 자유주의 철학입니다. 개인을 지도, 감독, 보호하려는 일체의 행정적 또는 이념적 규제를 ‘인위적 재앙’으로 파악하였습니다.

[310] 문제는 우리의 『장자』독법입니다. 2천 년을 격한 오늘의 현실 속에서 『장자』를 어떤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한다면 혹시 나 자신도 우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반성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과도기는 언제나 백화제방의 시대입니다. 오늘날도 예외는 아닙니다. 수많은 담론의 와중에서 우리가 골몰하공 있는 것이 결국은 패권 경재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장자』 독법의 핵심적 과제라고 생각하지요.

[311] 무한한 소요유의 추구를 표방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라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장자의 철학과 사회학의 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13]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겠다”는 것이 바로 장자입니다. 부정적이기는커녕 대단히 낙천적인 세계관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317] 『장자』는 그 전편에 흐르는 유유자적하고 광활한 관점을 높이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론과 사상뿐만 아니라 모든 현실적 존재도 그것은 드높은 차원에서 조감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조감자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는 우물 속의 개구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부분이고 찰나라는 것을 드러내는 근본주의적 관점이 장자 사상의 본령입니다. 바로 이 점에 『장자』에 대한 올바른 독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19] 『장자가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자』가 우리들에게 펼쳐 보이는 드넓은 스케일과 드높은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스케일과 관점을 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깨달음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창조적 공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보는 것이지요.

[321] 내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장자 사상의 정수입니다.

[335] 자기를 기준으로 남에게 잣대를 갖다 대는 한 자기반성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미혹을 반성할 여지가 원천적으로 없어지는 것이지요. 한 사회, 한 시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회, 그 시대의 일그러진 모습을 정확히 직시하고 그것을 답습할까 봐 부단히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회 발전은 그러한 경로를 거치는 것이지요.
자기의 문화, 자기의 생산물, 자기의 언어, 자기의 신을 강요하는 제국과 패권의 논리가 반성되지 않는 한 참다운 문명의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8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363]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되듯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침투합니다.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과제를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각 학파가 전개하는 논리적 정합성은 당대 사회가 공유하는 지적 수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학파간의 차이는 접근로와 강조점이 조금씩 다를 뿐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374]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376] 묵자가 중국에서 자취를 감춘 때가 기원전 100년경이었기 때문에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 찾아온 동방박사가 망명 묵가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380] 제나라와 진나라가 처음에는 작은 제후국이었으나 전쟁을 통하여 영토가 확장되고 백성이 많은 강대국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공전을 예찬하는 논리가 있지만 묵자는 단호하게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논박합니다. “만 명에게 약을 써서 서너명만 효험을 보았다면 그는 양의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약이 아니다. 그러한 약을 부모님께 드리겠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382]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83] 마치 소비가 미덕이듯이 전쟁이 미덕이 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자본주의 발전과정은 제국주의적 팽창과정이었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소하는 방식이 냉전이든 열전이든 항상 전쟁에 의존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10년 주기로 경제공항이 반복되어왔으며 대규모 전쟁 역시 10년을 주기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의 전쟁사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386]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셈이지요. 개선장군에 대한 환호가 그러한 것입니다.

[392] 무엇을 삼표하고 하는가. 본(本), 원(原), 용(用)이 그것이다. 어디에다 본할 것인가? 위로 옛 성왕의 일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어디에다 원할 것인가? 아래로 백성들의 이목(현실)을 살펴야 한다. 어디에다 용할 것인가? 나라의 법과 행정이 시행되어 그것이 국가, 백성, 인민의 이익에 합치하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394] 묵자의 사상은 하느님이외의 어떤 것도 표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9장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407] 물리적 천관에 의거하여 순자는 인간의 적극 의지를 주장합니다.

[410] 뛰어난 장인은 손대지 않고 남겨두는 데서 그 진가를 발휘하며, 뛰어난 지자는 생각을 남겨두는 데 그 진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413] 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414]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에 의하면 본성은 선악 판단의 대상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DNA의 운동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 DNA운동은 자기의 존속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라는 질문에 대하여 명쾌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단연 계란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닭은 계란 속의 DNA가 자기의 존속을 위하여 만들어낸 생존 기계일 뿐입니다.

[417] 순자는 모든 가치 있는 문화적 소산은 인간 노력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인문 철학자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421] 이 법과 제도가 안정적으로 작동케 하기 위해서 교육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423] 순자의 체계에 있어서 인간 사회의 문화적 소산은 사회 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회의 조직이 바로 예입니다.

[426] 순자는 법이란 무엇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의 잠재력을 길러내는 것이며, 법이란 글자 그대로 물이 잘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427] 사회의 질서가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공감과 동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순자를 계승한 법가의 이론이 바로 이 점을 간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가가 단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10장 법가와 천하 통일

[432] 법가는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대응방식을 모색해갑니다. 법가의 사관을 미래사관 또는 변화사관이라 하는 이유입니다.

[439] 법의 공개성이야말로 법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46] 호랑이가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발톱과 이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발톱과 이빨을 개에게 내어주어 그것을 쓰게하면 호랑이는 반대로 개에게 굴복당할 것이다.

[451] 정나라에 차치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기의 발을 본뜨고 그것을 그 자리에 두었다. 시장에 갈 때 탁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었다. (시장의 신발 가게에 와서) 신발을 손에 들고는 탁을 가지고 오는 것을 깜박 잊었구나 하고 탁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다시 시장에 왔을 때는 장은 이미 파하고 신발은 살 수 없었다. (그 사정을 듣고) 사람들이 말했다. “어째서 발로 신어보지 않았소?” (차치리의 답변은) “탁은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은 믿을 수 없지요.”

[457] 교사가 졸성보다 못하다는 이 말의 뜻은 나는 세상 사람들 중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의미로 읽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묘하게 꾸미더라도 결국 본색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460] 모든 사상이 갖는 한계란 실상 완성된 체계에 도달할 수 있는 조건이 역사적으로 제약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자면 절대적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언제나 상대적 진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역사적 제약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제11장 강의를 마치며

[474]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 시간과 무변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작은 미물이라고 찬란한 꽃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475]개인이 갇혀있는 분별지를 깨달아야 함은 물론이며 한 시대가 갇혀있는 집합표상, 즉 업을 깨닫는 일입니다.

[486] 불교와 신유학은 도전과 응전이라는 역사의 어떤 전형을 엿보게 합니다. 역사의 매단 계에는 이러한 구도가 중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이러한 중층적 구도를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이 역사 이해의 본령이라고 생각합니다.

[504]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창신의 자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지적 관심은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실천적 과제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506] 바로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전강독 강의를 재조명하는 것이지요.

[509] 이성보다는 감성을, 논리보다는 관계를 우위에 두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가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509] 시와 산문을 더 많이 읽으라는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시와 산문을 읽는 것은 바로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가슴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510] 시서화의 정신은 무엇보다 상상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단지 작게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상상력입니다. 하나의 사물이 맺고 있는 거대한 관계망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며 그것이 바로 시서화의 정신입니다.

■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읽고 & 내가 저자라면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영롱하다. 맑은 정신을 전수해 준다. 『처음처럼』이 그랬고, 『더불어숲』이 그랬다. 신영복 선생님은 열심히 공부하시면서도 공부의 내용에 ‘실용성’이라는 생명을 불어넣으신다. 『강의』도 그러한 책이다. 책을 내면서 이 책이 고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이 책에서 소개된 모든 고전은 선생님의 '독법‘에 의하여 시공간을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이 귀담아 들어야 할 의미 있는 메시지로 재탄생했다. 2,500여년 전의 옛날이야기가 21세기의 사회적 비전이 되었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고전을 읽는 독법을 제시한다.
“『논어』의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구절을 신자유주의적 자본 논리의 비인간적 성격을 드러내는 구절로 읽는 것이 바로 오늘의 독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p.152)

우리 사회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 온 분이 아니라면 동양 고전을 통해 텍스트 자체의 의미를 깊이 있게 해석할 수 있을지라도, 사회적 비전을 제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여기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힘이 생겨난다. 선생님은 고전 해설서가 아닌 사회적 비전을 담은 책을 쓰신 것이다. 다만, 그 매개체로 동양 고전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모든 고전을 현대적 메시지로 읽는 독법을 밝히신 까닭이다.

『장자』 독법은 다음과 같이 제시하셨다.
“『장자가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자』가 우리들에게 펼쳐 보이는 드넓은 스케일과 드높은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스케일과 관점을 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깨달음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창조적 공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보는 것이지요.”
우리가 우물 안에 빠진 개구리가 아닌지 성찰하는 태도를 강조하신 것이다.

『강의』는 나에게 무척 의미 있는 책이다. 나와 비슷한 사회적 비전을 가진 분의 시각을 배울 수 있는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고전은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언젠가 동양 고전을 읽어보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의』는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좋은 나침반이 되어 준 것이다.

또 한 가지 크게 도움이 된 것은 신자유주의와 비교하여 해석할 역사적 자료를 얻었다는 것이다. 책의 곳곳에는 춘추전국시대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신영복 선생님은 패권 경쟁이 난무한 춘추전국시대를 지금의 신자유주의시대와 연결하였다. “춘추전국시대 550년은 기존의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모든 국가들은 부국강병이라는 유일한 국정 목표를 위하여 사활을 건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신자유주의 시기였습니다.”(p.92)
자유주의가 근대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 등장한 사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창의적인 생각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견해를 빌리어 춘추전국시대를 한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추전국시대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였다. 이것은 사상적으로는 축복의 시기였다. 또한 ‘구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사회 변동기’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위험과 기회가 동시에 숨어 있을 것이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어떤 기회가 있을지에 대한 연구는 내가 공부할 일이다.

이 책은 출간되었던 2005년 당시, 각종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거듭 선정된 바 있다. 동양 고전에 관심이 있든, 현실 사회에 관심이 있든 의미 있는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두 가지 모두에 관심이 있으니 퍽이나 즐겁고 동시에 많은 유익을 얻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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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11.12 13:25:05 *.128.229.81
선생은 아주 작은 체격에 온화한 미소를 띄고 있다. 어디에 어둡고 추운 시절에 그렇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들어 있는 지 잘 모르겠다. 아마 자신이 어떤 씨앗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 모양이다. 희석이는 멀대처럼 키가 크고 가는데 아마 long grain 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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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7.11.13 00:21:00 *.70.72.121
나무의 숙명을 받아 들일 줄 아는 희석의 묵묵한 나아감이 늘 자랑스럽다. 나머지 수업에서는 빠지지 말고 우리 함께하자. 얼굴 본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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