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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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3일 22시 14분 등록
#1. 프롤로그

1) 한자(漢子)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자가 그리도 싫었다. 중학교 때 내가 싫어했던 두 과목 중 하나가 바로 한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가. 나는 어떤 할아버지에게서 붓글씨를 배웠는데, 글쓰기가 어찌나 싫었던지 가끔 글을 쓰지 않고, 골목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흘려 보내기도 했다.

재미없는 붓글씨를 쓰다 고개 들어 창 밖을 내다 보면, 저 멀리 맞은 편 언덕에 커다란 고목 한 그루가 묵묵히 서 있었다. 내게 한자란 마치 그 고목 나무 같았다. 어딘가 엄숙하고 낡은 것, 별로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어렵기만 한 것… 어릴 때의 내게 한자는 그랬다.

그런 내가 동양고전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신영복 선생님은 동양고전은 마치 '태산준령'과 같아서 '우리의 강좌는 호미 한 자루로 그 앞에 서 있는 격'이라고 말씀했지만, 한자 실력이 일천한 나의 심정은 마치 호미 한 자루조차 없이 태산준령 앞에 서있는 듯 부끄럽고, 막막했다.

2) 무용(無用)

언젠가 북리뷰를 쓰다 이런 반성을 한 적이 있다. 이제껏 나는 '실용'을 주장하며 깊이 없이, 얕은 책들만 읽은 것은 아니었던가. 필요를 핑계로 입맛에 맞는 책들만 골라 읽은 것은 아니었던가.

그런데 연구원 과정을 진행하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얼핏 보기엔 무용(無用)해 보이는 책들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코끼리와 벼룩'을 쓴 찰스 핸디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영감을 얻어 기존의 경영서적들과는 전혀 다른 경영서를 써냈다. 무용의 유용(有用)함을 깨달은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말한다. "고전을 모르는 앎은 지식의 자격이 없다. 고전은 우리 삶의 두터운 기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격렬한 전환을 체험한다."



#2. 저자에 대하여




1) 그의 삶

감옥을 출소한 후, 아버님과 함께 산 동네의 이름을 따서 우이(牛耳) 또는 쇠귀라는 호를 쓰는 신영복 선생님은 1941년 8월, 아버지의 임지였던 경남 의령군 유곡국민학교의 교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작농의 맏이로 일제 때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한 교사였고, 어머니는 봉건지주의 막내 외동딸이었다. 태어난 후 고등학교 졸업까지 거의 전기간을 계속 사택에서 생활하며 '교장 선생님의 아들'로 성장한다. 그는 집 안에서보다는 밖에서 더 인기가 많은 3형제 중 둘째였고, 누나와 형을 따라 아버지의 장서을 읽는 '조숙한 독서'를 하는 소년이었다.

고향인 밀양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그는 부산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고, 1959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입학한 지 일년 만에 4.19 혁명을 겪게 된다. 그가 회상하는 대학시절, 1959년에서 1963년까지의 기간은 '혁명'과 '반혁명'의 시절이었다. 4.19 이후 짧은 기간 동안 시인 신동엽이 노래했던 '맑은 하늘'을 잠시 보았지만 5.19 쿠데타로 그 모든 희망은 좌절되었다.

4.19 이후 싹이 트기 시작했던 통일 운동, 노동 운동은 군부 세력에 의해 사정없이 짓밟혔고, 보다 장기적인 학생운동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독서 서클을 통해 모택동의 '모순론', 고리키의 '어머니'와 같은 책을 번역해서 돌려 읽곤 했다.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봉건제 사회의 해체에 관한 연구'란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청맥'이란 잡지의 예비필자 모임인 '새문화연구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청맥'은 통혁당 핵심들이 당의 합법 기관지로 설정한 잡지로, 이 모임을 통해 그는 같은 대학 6, 7년 선배인 김질락을 만나게 된다.

1965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에서 잠시 강의를 한 그는 1966년부터 68년까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원론과 근대경제사 강의를 한다. 그러던 1968년, 중앙정보부는 일명 '통일혁명당사건'을 발표한다. 북한에 연계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지하당 조직인 통일혁명당을 적발했다는 사건으로, 그는 통혁당에 가입한 적도, 김질락 이외의 다른 사람은 만난 적도 없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김종태, 이문교, 김질락 등이 사형당하고, 신영복 또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이후 정상참작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것이다. 1968년 구속된 그는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기까지 20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28살 푸른 젊음에 옥살이를 시작하여 쉰에 가까운 나이인 48세가 되어서야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사부님께선 "감빵이 그 분을 만들었다"고 하셨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정확히 20년 20일의 복역 기간, 그 서러운 시간을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 또 이겨냈을까? 그의 감옥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글 몇 개를 살펴본다.

“제 인생은 감옥 전과 감옥, 감옥 후로 나눌 수 있어요. 감옥 전은 엄밀한 의미에서 배우고 시키는 것 하는, 심부름 같은 삶이었습니다. 감옥은 혹독하게 우리 사회와 시대를 체험하는 시간이었지요. 감옥 후는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는 중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성장한 기간은 감옥인 셈이죠." - 동아일보 인터뷰 (2001. 9.28) 中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 여름징역은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 329)

"내가 본격적으로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감옥에 들어간 이후입니다.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옥의 독방이 그런 공간입니다. 우선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유년 시절에서부터 내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에 대해서 반성하게 됩니다." - 강의 (p. 16)

"제가 조금이나마 서도를 하게 된 것은 감옥에서 훌륭한 스승들을 만난 덕입니다. 교도소 당국에서 초빙했던 만당 성주표(晩堂 成周杓)선생, 정향 조병호(靜香 趙炳鎬)선생으로부터 옥중사사를 했고 한학자인 노촌 이구영(老村 李九榮)선생과 같은 방에서 지내는 행운이 주어져 동양고전을 익혔지요.” - 동아일보 인터뷰 (2001. 9.28) 中

그는 이처럼 감옥에서의 삶을 통해, 책이 아닌 사람을 알게 되었고, 서양의 책이 아닌 '동양고전'을 만나게 되었고, 이구영 선생과 같은 훌륭한 스승들을 만나게 되었다. 독서를 통해, 명상을 통해, 옥 중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20년 동안 한국이란 나라의 바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각할 틈도 없이 숨가쁘게 내달려야만 했지만, 그는 사색과 성찰을 통해 아주 낮은 곳에서 자신만의 시각과 사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제가 맡은 일이란 하루 10여 족의 갑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별 뼛심드는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 바른손 중지의 펜에 눌려 생긴 굳은 살이 사라지고 이제는 구두칼을 쓰느라 엄지 끝에 제법 단단한 못자리가 잡혀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견 손가락 끝의 작은 변화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고 흐뭇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 88)



"나와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가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서가(書架)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이었습니다." - 나무야 나무야 (p. 90)

20년의 징역살이를 통해 그가 다시 세운 사상은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 엘리트의 그것이 아니었다.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민중의 척박한 현실에서 일궈낸 '밑바닥 철학'이었다. 차가운 머리가 아닌 뜨거운 가슴과 튼튼한 두발로 일으켜 세운 깊고 견고한 토대 위에서의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 대한 각성'이었다. 그는 자신의 옥살이를 통해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고 말하며, 이렇게 회고한다.

"저는 20여 년의 수형 생활을 통하여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배운 바가 많습니다.

첫째는 해방 전후의 역사를 역사로서 이해해오던 관념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해방 전후의 격동 속에서 살아온 많은 분들과 함께 징역을 살면서 그 시대를 보다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구빨찌 신빨찌에서부터 만주땅 함경도 제주도에 이르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야말로 피가 통하고 숨결이 배어 있는 역사 그 자체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과 나눈 인간적 이해와 공감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그 모순구조 속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확실한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이해, 이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 사회와 사상, ­1989년 11월 통권 제15호 中

이러한 그의 경험과 각성은 서양의 '존재론'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고, 그의 사상의 기본이 되는 '자기자신에 대한 반성과 타인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관계론'에 대한 모색과 정립으로 이어진다.

"화和는 공존의 원리인 반면에 동同은 지배의 논리입니다. 화가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승인하는 평화의 원리임에 반하여, 동은 흡수와 통합의 패권주의 놀이입니다. 동同의 논리가 화和의 원리로 바뀌어야 비로소 문명의 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감 이후 1989년부터 그는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동양철학' 등을 강의해왔으며, 1989년 3월 13일 사면 복권되어,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정식임명되었다. 2006년 8월 정년퇴임한 그는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석좌 교수로 있다.

그는 학생들은 스스로 배운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에게서 배운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다만 희망을 이야기할 뿐이라며, 루이 아라공의 시구를 덧붙인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희망은 결국 사람에게 있다고 말씀한다.

“결국은 사람입니다. 서로를 일으켜 세워 ‘더불어’ 살려는 사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듯 ‘더불어’ 체온을 느끼고 함께 사람다운 삶을 애써 살아가려는 사람들, 그것이 희망 아니겠습니까. 모든 기쁨은 사람에게서 옵니다.”



2) 그의 책, 글, 그림

1988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하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그는 이후 '엽서'(1993),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1998), 그리고 이 책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2004)등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사람아 아! 사람아'(1991), '루쉰전'(1992) 등의 번역서 등을 내기도 했다.





그의 첫번째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부제 '신영복 옥중 서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출소한 후 감옥에서 보냈던 편지와 엽서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집필이 금지된 옥중에서 그가 쓸 수 있는 글이라곤 고작 가족과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와 엽서 뿐이었다. 검열의 여과를 거쳤을 글을 모은 이 책에는 그가 어떻게 기나긴 세월을 이겨냈는지, 또 어떻게 인고의 세월을 성찰의 순간들로 전환시켰는지, 그 20년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무야 나무야'에는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그의 첫 번째 책이 감옥에서 보낸 엽서를 모은 책이라면, 이 책은 우리 국토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독자들에게 띄우는 엽서이다. 감옥에서의 사색이 '실천'이 빠진 외로운 걸음이었다면, '독보권(獨步權)'을 획득한 자유로운 두 발로 우리의 땅을 걸으면서 하는 사색은 행복한 걸음이다. 그 행복한 여정에서 느낀 감격과 반성이 직접 그린 그림들과 함께 담겨있다.





'더불어 숲'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해외로 나간다. '새로운 세상, 신영복 교수가 보내온 삶과 사색의 엽서'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감옥과 국토를 넘어 해외에서 우리의 역사와 20세기를 되돌아보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전망한다.





우리가 북 리뷰를 통해 살펴볼 책, '강의'는 신영복 선생님의 동양고전 강독 강의를 엮은 것이다. 시경에서 시작된 그의 동양고전 강의는 주역, 논어, 맹자를 거쳐 불교, 대학, 중용까지 두루 아우른다. 이 때문에 혹 '깊이 없음'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일종의 길잡이므로, 궁금한 분야가 생겼다면 직접 파고 들어가면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책(강의)을 읽고, 이 (고전) 중에서 읽고 싶은 책 한 권이 생긴다면, 좋은 일이다."



또한 그는 글 뿐만 아니라, 소주 '처음처럼'을 통해 널리 알려졌듯이 시서화에도 능한데, 자신은 시서화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시서화의 정신은 무엇보다 상상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물이 맺고 있는 거대한 관계망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며 그것이 시서화의 정신입니다. 시서화로 대표되는 예술적 정서는 우리의 경직된 사고의 틀을 열어주고, 우리가 갇혀 있는 우물을 깨닫게 합니다." - 처음처럼 (p. 10)

*

신영복 선생님은 20년 동안의 감옥 생활을 통해 모든 것을 '근본'에서부터 꿰뚫어보는 '맑은 눈'을 얻었다. 그리고 다만 책으로 알던 지식을 버리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에 이르는 지혜를 깨쳤다. 그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분이다. 왜냐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분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을 통해 그의 깊고 다양한 삶의 면모를 모두 살펴볼 수는 없기에, 여기에서 저자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하려 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과 그림 중에 우리의 공부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작품이 있어 마지막으로 인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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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신영복 선생님 홈페이지(www.shinyoungbok.pe.kr),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등



#3.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1. 서론
 
(16) 내가 본격적으로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감옥에 들어간 이후입니다.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옥의 독방이 그런 공간입니다. 우선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유년 시절에서부터 내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에 대해서 반성하게 됩니다.
 
(17) 나 자신의 정신적 영역을 간추려보는 지점에 동양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말하자면 나의 사고와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 의식을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성은 동시에 우리 시대에 대한 반성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19) 한 개인의 삶에 그 시대의 양量이 얼마만큼 들어가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삶의 정직성을 판별하는 기준이라고 한다면 노촌 선생님은 참으로 정직한 삶을 사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1)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관점입니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예시한 문안도 그런 문제의식에 따라 선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4) 미래로 가는 길은 오히려 오래된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 과거는 그것이 잘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우리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지요. 

(24) 관계론적 구성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에 존재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27)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기하는 것이지요.
 
(27) 과거의 사상과 현대의 사상이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래는 오래된 과거라 했습니다. 이것은 이를 테면 사상의 시간적인 존재 형식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상은 시간적인 존재 형식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존재 형식도 갖습니다.
 
(29)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時空으로 열려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關係網입니다.
 
(34) 동양적 사고는 현실주의적이라고 합니다. 현실주의적이라는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만 대체로 우리들의 삶이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모질게 해서는 안 되며(不忍人之心),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것(溫故知新)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에 소용이 없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현실주의란 한마디로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진실입니다.
 
(36) 서양에서는 철학을 Philosophy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知에 대한 애愛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양의 도道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길은 삶의 가운데에 있고 길은 여러 사람들이 밟아서 다져진 통로(beaten pass)입니다. 도道 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착辵과 수首의 회의문자 會意文字입니다. 착辵은 머리카락 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입니다. 수首는 물론 사람의 머리 즉 생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도란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37)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임에 반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도재이 道在邇, 즉 도는 가까운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고는 삶의 결과를 간추리고 정리한 경험의 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8) 우주宇宙라는 개념도 우宇와 주宙의 복합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는 물론 공간개념입니다. 상하사방이 있는 유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습니다. 주는 고금왕래의 의미입니다. 시간적 개념입니다. 무궁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39) 진흙(空)이 그릇(色)이 되고 그릇은 다시 진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그릇이 그릇이기를 계속 고집한다면 즉 자기(主我)를 고집한다면 생성 체계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41)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인성이란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아가는 어떤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의 의미라는 것이 동양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성이란 개념은 어떤 개체나 존재의 속성으로 환원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인이 더불어 만들어내는 장場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43) 동양적 구성 원리에서는 그러한 모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화와 균형에 대하여 대단히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중용中庸이 그것입니다.

(45) 동양 사상은 과거의 사상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사상입니다.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뛰어난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47)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2. 오래된 시詩와 언言

(52) 시의 정수는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정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성과 진정성의 문제는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소위 상품미학은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CF가 보여주고 약속하는 이미지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광고 카피는 허구입니다.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이버 세계 역시 허상입니다. 가상공간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는 본질에 있어서 허구입니다.

(55)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비 개인 긴 강둑에 풀빛 더욱 새로운데
남포에는 이별의 슬픈 노래 그칠 날 없구나.
대동강물 언제나 마르랴
해마다 이별의 눈물 물결 위에 뿌리는데.

- 정지상의 '송인'送人

(56) 거짓 없는 생각이 시의 정신입니다.
 
(56) 문학의 길에 뜻을 두는 사람을 두고 그의 문학적 재능에 주목하는 것은 지엽적인 것에 갇히는 것입니다. 반짝 빛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문학 본령에 들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역사적 관점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 시대와 그 사회의 애환이 자기의 정서 속에 깊숙이 침투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58) 공자는 『시경』의 시를 한마디로 평하여 ‘사무사’思無邪라 하였습니다(詩三百篇 一言以蔽之思無邪). ‘사무사’는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특함이 없다는 뜻은 물론 거짓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생각에 거짓이 없는 것으로 읽기도 하고 시를 읽는 독자의 생각에 거짓이 없어진다는 뜻으로도 읽습니다. 우리가 거짓없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지요.
 
(61-62) 어쩌면 사실보다 전설 쪽이 더 진실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의 내면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어떤 혼魂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
사실이란 결국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의 조합에 의하여 바로 진실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문학의 세계이고 시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4)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은 우리 자신의 삶과 정서를 분절시켜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품미학, 가상 세계, 교환가치 등 현대 사회가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한마디로 허위의식입니다. 이러한 허위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한 우리의 정서와 의식은 정직한 삶으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소외되고 분열된 우리들의 정서를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유력한 관점이 바로 시적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시적 관점은 왜곡된 삶의 실상을 드러내고 우리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적 관점은 우선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동서남북의 각각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춘하추동의 각각 다른 시간에서 그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결코 즉물적卽物的이지 않습니다. 시적 관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자유로운 관점은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한 관계망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를 읽고 시적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65) 물론 오늘의 현대시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지요. 시인이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을 기초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감수성이 주로 도시 정서에 국한되어 있는 협소한 것이라는 것도 문제이지요. 시인은 마땅히 당대 감수성의 절정에 도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개인적 경험 세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6-67) 『시경』의 정신은 이처럼 땅을 밟고 걸어가듯 확실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땅을 밟고 있는 확실함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되찾아야 할 우리 삶의 진정성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발이 땅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확실한 보행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지향해야 할 확실한 방향을 잃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경』에 담겨 있는 사무사思無邪의 정서가 절실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72) 한마디로 무일無逸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일 뿐이지요.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75) 고전 독법은 물론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당대 사회의 문제의식으로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떠한 시대나 어떠한 곳에서도 변함없이 관철되고 있는 인간과 사회의 근본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일」이 바로 그러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나는 이 「무일」편이 무엇보다 먼저 효율성과 소비문화를 반성하는 화두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능력 있고 편안한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반성하는 경구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노르웨이의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저장하는 탱크 속에 반드시 천적인 메기를 넣는 것이 관습이라고 합니다. 천적을 만난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무일」편을 통해 불편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씹어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77)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81)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82)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이 오래된 주제에 대한 굴원의 결론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가장 정갈하게 간수해야 하는 갓끈을 씻고 반대로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 것입니다. 비타협적 엘리트주의와 현실 타협주의를 다같이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대중노선을 지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감옥에서 만난 노선배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좌경적이라는 의미는 ‘신목자 필탄관新沐者必彈冠 신욕자 필진의新浴者必振衣’처럼 비타협적인 원칙의 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경적이라는 의미는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는 현실주의와 대중노선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84) 남방과 낭만주의와 창조적 정신 영역이 서로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입니다.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이 곧 낭만주의의 일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3. 『주역』의 관계론
 
(87)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이란 쉽게 이야기한다면 물을 긷는 그릇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88) 나는 점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점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을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부류의 의기義氣방자放恣한 사람에 비하면 훨씬 좋은 사람이지요.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못 되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있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은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약한 사람으로 느기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89)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인간의지혜와 도리를 다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2)『주역』은 춘추전국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합니다. 춘추전국시대 550년은 기존의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모든 국가들은 부국강병이라는 유일한 국정 목표를 위하여 사활을 건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신자유주의 시기였습니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수립되기 이전의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할수록 불변의 진리에 대한 탐구가 절실해지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시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 이론에 대한 근본적 담론이 가장 왕성하게 개진되었던 시기였음은 전에 이야기했습니다. 한마디로 『주역』은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시기의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94) 주관적 판단 형식은 근본에 있어서 객관적 세계를 인식하는 철학적 사유에 기초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서구적 판단 형식과 주역의 판단 형식의 차이는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과 관계론적 인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97)


(101) 어쨌든 개인이게 있어서 그 자리(位)가 갖는 의미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됩니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101)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 밖에 없습니다.
 
(104) 이를테면 ‘위’의 개념이 개체 단위의 관계론이라면 ‘응’의 개념은 개체와 개체가 이루어내는 관계론입니다. 이를테면 개체 간의 관계론이지요. 그런 점에서 위가 개인적 관점이라면 응은 사회적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보다는 상위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위失位도 구咎요 불응不應도 구咎이다. 그러나 실위이더라도 응이면 무구無咎이다”라고 합니다. 실위도 허물이고 불응도 허물이어서 좋을 것이 없지만 설령 어느 효가 득위를 못했더라도 응을 이루고 있다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지요.

(105) 집이 좋은 것보다 이웃이 좋은 것이 훨씬 더 큰 복이라 하지요. 산다는 것은 곧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보면 응의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위가 소유의 개념이라면, 응은 덕德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저변에서 지탱하는 인간관계와 신뢰가 바로 응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천태地天泰

(109) 태괘는 주역 64괘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괘라고 합니다. 하늘의 마음과 땅의 마음이 화합하여 서로 교통하는 괘입니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모양은 물론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자연의 형상과는 역전된 모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태화泰和의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하늘의 기운은 위로 향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만난다는 이치입니다. 서로 다가가는 마음입니다.
 
(110) 혁명은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태화의 근본임에 틀림없습니다. 혁명은 한 사회의 억압 구조를 철폐하는 것입니다. 억압당한 역량을 해방하고 재갈 물린 목소리를 열어줍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잠재적인 역량을 해방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혁명은 흔히 혼란과 파괴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여러분은 지천태라는 뒤집힌 형국, 즉 혁명의 의미가 어떻게 태화의 근본일 수 있을까 다소 납득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혁명을 치르지 않은 나라가 진정한 발전을 이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혁명을 치르지 않은 사회가 두고두고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는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바로 그 현장이기도 하지요.

(113) ‘무평불피无平不陂 무왕불복无往不復’은 어려움은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한번 겪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그에 따른 어려움이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그럴수록 마음을 곧게 가지고 최초의 뜻, 즉 믿음(孚)을 회의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지비天地否

(117)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형상입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괘를 비괘否卦라 이름 하고 그 뜻을 “막힌 것”으로 풀이합니다. 비색否塞, 즉 소통되지 않고 막혀 있는 상태로 풀이합니다. 천지폐색天地閉塞의 괘입니다. 하늘의 기운은 올라가고 땅의 기운은 내려가기 때문에 천지가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저 혼자 높고 땅은 하늘과 아무 상관없이 저 혼자 아래로 향한다는 것이지요.

(119) 관계란 다른 것을 향하여 열려 있는 상태이며 다른 것과 소통되고 있는 상태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그것이 태泰인 까닭, 그것이 비否인 까닭이 오로지 열려 있는가 그리고 소통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의하여 판단되고 있는 것이지요.

(120)


태괘는 선길후흉先吉後凶임에 비하여 비괘는 선흉후길先凶後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지박山地剝

(122)
上九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象曰 君子得輿 民所載也 小人剝廬 終不可用也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 군자는 가마를 얻고 소인은 거처를 앗긴다.
군자는 가마를 얻고 백성의 추대를 받게 되고, 소인은 거처를 앗기고 종내 쓰일 데가 없어진다.

(122) 상구의 양효는 관어貫魚의 꿰미 또는 ‘씨 과실’ 혹은 최후의 이상으로 읽습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내가 좋아하는 글입니다. 붓글씨로 쓰기도 했습니다. 왕필 주에서는 이 석과불식을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독전불락獨全不落 고과지우석故果至于碩 이불견식而不見食”, 즉 떨어지지 않고 홀로 남아 씨 과실로 영글고 먹히지 않는다고 풀이합니다. ‘먹지 않는다’보다는 ‘먹히지 않는다’(不見食),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괘의 상황은 흔히 늦가을에 가지 끝에 남아 있는 감(紅)을 연상하게 합니다. 까마귀밥으로 남겨두는 크고 잘생긴 감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비단 감뿐만 아니라 모든 과일은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을 먹지 않고 씨 과실로 남기지요.

(123-124) 희망은 고난의 언어이며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고난 이후의 가능성을 경작하는 방법이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4) 박괘는 늦가을에 잎이 모두 져버린 감나무 끝에 빨간 감 한 개가 남아 있는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모든 잎사귀를 떨어버리고 있는 나목裸木입니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잎사귀를 떨고 나목으로 서는 일입니다. 그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품을 걷어내고 화려한 의상을 벗었을 때 드러나는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124-125) 어쨌든 희망은 현실을 직시하는 일에서부터 키워내는 것임을 박괘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을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추풍 속에 서듯이 우리 시대의 모든 허위허식을 떨어내고 우리의 실상을 대면하는 것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엽락이분본’葉落而糞本, 잎은 떨어져 뿌리의 거름이 됩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를 튼튼히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자립성, 정치적 주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수미제火水未濟

(125)
未濟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미제괘는 형통하다. 어린 여우가 강을 거의 다 건넜을 즈음 그 꼬리를 적신다. 이로울 바가 없다.

(127) 우리의 모든 행동은 실수와 실수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러한 실수가 있기에 그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든 강물이든 생명이든 밤낮이든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마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세상에 완성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64개의 괘 중에서 제일 마지막에 이 미완성의 괘를 배치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128) 최후의 괘가 완성 괘가 아니라 미완성 괘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변화와 모든 운동의 완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역사와 삶의 궁극적 완성이란 무엇이며 그러한 완성태完成態가 과연 존재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태백산 줄기를 흘러내린 물이 남한강과 북한강으로 나뉘어 흐르다가 다시 만나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은 무엇을 완성하기 위하여 서해로 흘러드는지,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무엇을 완성하려고 바람 서리 견디며 서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실패로 끝나는 미완성과 실패가 없는 완성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보편적 상황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실패가 있는 미완성은 반성이며, 새로운 출발이며, 가능성이며,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완성이 보편적 상황이라면 완성이나 달성이란 개념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이나 목표가 관념적인 것이라면 남는 것은 결국 과정이며 과정의 연속일 뿐입니다.
 
(129) 그래서 나는 도로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로는 고속일수록 좋습니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도로의 개념입니다. 짧을수록 좋고, 궁극적으로는 제로(0)가 되면 자기 목적성에 최적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순입니다. ‘길’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129)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은 서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선盡善하지 않으면 진미盡美할 수 없고 진미하지 않고 진선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목적은 높은 단계의 수단이며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적입니다.

(130) 『주역』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易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進新)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입니다.

(131) 우리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택된 여러 부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우리의 삶은 천지인을 망라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중심의 주관적 공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매트릭스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2)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 서산대사가 자신의 영정에 쓴 시

 
4.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141)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라는 사실입니다.

(142)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學而」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144) “전傳하기만 하고 행하지 않고(不習)있지는 않은가?
 
(144-145) 어쨌든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의 습은 실천의 의미로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時의 의미도 ‘때때로’가 아니라 여러 조건이 성숙한 ‘적절한 시기’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그 실천의 시점이 적절한 때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時는 often이 아니라 timely의 의미입니다.
 
(145) 사회 변화 역시 그것의 핵심은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인간관계의 변화야말로 사회 변화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준거입니다.

(146) 그런 점에서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회 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재편 과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정치 혁명 또는 경제 혁명이나 제도 혁명 같은 단기적이고 선형적線型的인 방법론을 반성하고 불가역적不可逆的 구조 변혁의 과제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49)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단절된 형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사유思惟의 차원에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는 것은 결코 객관적 실체에 의한 구분일 수가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의 통일체입니다.

(149)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구절은 어디까지나 진보적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통일체로 인식하고 온고溫故함으로써 새로운 미래(新)를 지향(知)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150) 스승이란 단지 정보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더구나 과거지사過去之事를 전하는 것만으로 스승이 될 수는 없지요. 스승이란 비판적 창조자여야 하는 것이지요.

(150)
君子不器  ―「爲政」

(152) 귀족은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육예六藝를 두루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모두 익혀야 했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들은 시도 읊고 말도 타고 활도 쏘고 창칼도 다루었습니다. 문사철文史哲 시서화詩書畵를 두루 익혀야 했습니다. 고전, 역사, 철학이라는 이성理性뿐만 아니라 시서화와 같은 감성感性에 이르기까지 두루 함양했던 것이지요.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입니다. 결코 인간적 논리가 못 되는 것이지요.

(154) 형은 최소한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에 비하여 예는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세우려는 우회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관계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는 입장이지요. 사회적 질서는 이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6) 사회의 본질에 대하여 수많은 논의가 있습니다만 나는 사회의 본질은 부끄러움이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성 자체가 붕괴된 상태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159)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熟知性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이 아름다움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오늘의 미의식입니다. 이것은 전에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소위 상품미학의 특징입니다. 오로지 팔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상품이고 팔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상품입니다. 따라서 광고 카피가 약속하는 그 상품의 유용성이 소비 단계에서 허구로 드러납니다. 바로 이 허구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디자인이 바뀌는 것이지요. 그리고 디자인의 부단한 변화로서의 패션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결국 변화 그 자체에 탐닉하는 것이 상품미학의 핵심이 되는 것이지요. 아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아니라 모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되어버리는 거꾸로 된 의식이 자리 잡는 것이지요. 이것은 비단 상품미학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주변부의 종속 문화가 갖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중심부로부터 문화가 이식되는 주변부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미의 문제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160)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子路」

(160) 소위 독특獨特의 의미는 그 독특한 의미를 읽는 것과 동시에 그와 다른 것을 함께 읽기 때문에 그것이 독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과의 차이에 대한 인식입니다. 정체성(identity) 역시 결과적으로는 타자他者와의 차이를 부각시킴으로써 비로소 드러나는 것입니다. 데리다J. Derrida의 표현에 의하면 관계 맺기와 차이 짓기, 즉 디페랑스differance(差延)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쉬르F. Saussure의 언어학이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차이란 두 실체 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차이를 형성하는 두 개의 독립 항목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의 경우에는 이러한 독립 항목이 전제되지 않는 것이지요. 모든 것에 대한 차이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 언어입니다. 언어는 차이가 본질이 되는 역설을 낳게 되는 것이지요. 동양적 표현 방식에 있어서의 대비의 방식은 이러한 언어와 개념의 한계를 우회하고 뛰어넘는 탁월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2)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 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164) “극좌極左와 극우極右는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 나는 극좌와 극우가 다 같이 동同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라는 극우 논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극좌 논리는 둘 다 강철의 논리이며 존재론적 구조이며 결국 동의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극좌와 극우는 그 근본적인 구성 원리에 있어서 상통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새로운 문명은 이 동의 논리와 결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화和의 논리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합니다. 타자를 흡수하고 지배함으로써 자기를 강화하려는 존재론적 의지를 갖지 않습니다. 타자란 없으며 모든 타자와 대상은 사실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입니다.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됨으로써 비로소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며 나아가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바로 이러한 논리라고 생각하지요.

(166) 도대체 자기 흉내를 내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지요.

(168) 마음(心) 좋다는 것은 마음이 착하다는 뜻입니다.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 배려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착하다는 것은 이처럼 관계에 대한 배려를 감성적 차원에서 완성해놓고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하거나 좌우명으로 걸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무의식 속에 녹아 들어 있는 그러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9) 운동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중과의 접촉 국면을 확대하는 것, 그 과정을 민주적으로 이끌어가는 것 그리고 주민과의 정치 목적에 대한 합의를 모든 실천의 바탕으로 삼는 것, 이러한 것들이 모두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의 원리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관계로서의 덕이 사업 수행에 뛰어난 방법론으로서 검증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며 가치이기 때문에 귀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172) 정正은 정整이며 정整은 정근整根입니다. 뿌리를 바르게 하여 나무가 잘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치의 근원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란 그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잠재력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적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 잠재력의 극대화는 ‘인간성의 최대한의 실현’이 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 잠재력과 인간성이 바로 인간관계의 소산인 것은 다시 부연할 필요가 없지요.

(172)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顔淵」
번지가 인仁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인이란 애인愛人이다.” 이어서 지知에 대해 질문하였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지知란 지인知人이다.”

(174)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알려고 하는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175) 지知와 애愛는 함께 이야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175) 상품 가치와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체제에서 추구하는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는 한 점의 인연도 없습니다. 지知는 지인知人이라는 의미를 칼같이 읽는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무지無智한 사회입니다.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사회일 뿐입니다.

(178) 사회의 관계망과 역사의 관계망, 즉 시공時空을 관통하는 관계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러한 망網을 뜨개질하는 것이 근본적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들은 우리들의 천민 의식賤民意識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지 않는 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179)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爲政」

“학學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학學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179) 글자의 구성도 ‘전田+심心’입니다. 밭의 마음입니다. 밭의 마음이 곧 사思입니다. 밭이란 노동하는 곳입니다. 실천의 현장입니다.

(181) 경험과 실천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현장성現場性입니다. 그리고 모든 현장은 구체적이고 조건적이고 우연적입니다. 한마디로 특수한 것입니다. 따라서 경험지經驗知는 보편적인 것이 아닙니다. 학學이 보편적인 것(generalism)임에 비하여 사思는 특수한 것(specialism)입니다. 따라서 ‘학이불사즉망’의 의미는 현실적 조건이 사상捨象된 보편주의적 이론은 현실에 어둡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사이불학즉태’ 思而不學則殆는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 됩니다.
 
(182-183) 우리는 주관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이란 참으로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동大同은 멀고 소이小異는 가깝지요. 자기의 처지에 눈이 달려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시각과 이해관계에 매몰되기 쉽지요. 따라서 사회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학學과 사思를 적절히 배합하는 자세를 키워가야 합니다.

공자가 이 구절에서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입니다.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며 동시에 특수한 경험에 매몰되지 않는 이론적 사고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연과 필연의 변증법적 통일에 관한 인식이기도 합니다. 「학이」편에 ‘학즉불고’學則不固란 구절이 바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배우면 완고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학學이 협소한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학이란 하나의 사물이나 하나의 현상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에 갇혀서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읽지 못할 때 완고해지는 것입니다

크게 생각하면 공부란 것이 바로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만 작은 것은 큰 것이 단지 작게 나타난 것일 뿐임을 깨닫는 것이 학이고 배움이고 교육이지요. 우리는 그 작은 것의 시공적 관계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빙산의 몸체를 깨달아야 하고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전 과정 속에 그것을 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온고溫故와 지신知新을 아울러야 하는 것이지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이 이를 테면 존재론적 사고라고 한다면, 관계론적 사고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는 것(不患人之不知己 患不知人也)이라 할 것입니다.

(184)
“머리는 하나지만 손은 손가락이 열 개나 되잖아요.”
내가 반론을 폈지요.
“머리는 하나지만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의 대답은 칼로 자르듯 명쾌했습니다.
“머리카락이요? 그건 아무 소용없어요. 모양이지요. 귀찮기만 하지요.”
 
(187) 세상에 영합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법이지요. 그나마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은 세상을 우리에게 맞추려는 우직한 노력 때문입니다.

(189) 모든 타인은 그러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집단적 타자인 대중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중은 현명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대중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겸허해야 되는 이유입니다.

(190)
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子路」
자공이 질문하였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192)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사랑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194)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 君子 ―「雍也」
바탕이 문채文彩보다 승勝하면 거칠고 문채가 바탕보다 승하면 사치스럽다. 형식과 내용이 고루어울린 후라야 군자이다.

(196-197) 상품미학이란 상품의 표현형식입니다. 상품이 잘 팔릴 수 있도록 디자인된 형식미입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상품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통일물로 설명하고 이를 상품의 이중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상품은 교환가치가 본질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에 종속되는 것이지요. 상품은 한마디로 말해서 팔리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합니다. 상품미학은 광고카피처럼 문文, 즉 형식이 승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감성이 상품미학에 포섭된다는 것은 의상과 언어가 지배하는 문화적 상황으로 전락한다는 것이지요.

형식미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미의 끊임없는 변화에 열중하게 되고 급기야는 변화 그 자체에 탐닉하게 되는 것이 상품 사회의 문화적 상황입니다. 상품의 구매 행위는 소비 이전에 일어납니다. 상품의 브랜드, 디자인, 컬러, 포장 등 외관 즉 형식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광고 카피 역시 소비자가 상품이나 상품의 소비보다 먼저 만나는 약속입니다. 광고는 그 상품에 담겨 있는 사용가치에 대하여 약속합니다. 이 약속은 소비 단계에서 그 허위가 드러납니다. 이 약속이 배반당하는 지점, 즉 그 형식의 허위성이 드러나는 지점이 패션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197-198) 바로 그러한 이유로 패션의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그러다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오기도 하지요. 어쨌든 패션은 결국 ‘변화 그 자체’가 됩니다. 상품 문화와 상품미학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새로운 것에 대한 가치, 그리고 변화의 신선함이라는 메시지는 실상 환상이고 착각이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상품 사회에서 도달할 수 있는 미학과 예술성의 본질이 이러한 것이지요. 상품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세포라고 합니다. 세포의 본질이 사회체제에 그대로 전이되고 구조화되는 것이지요. 형식을 먼저 대면하고 내용은 결국 만나지 못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도 이러합니다. 속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그저 거죽만을 스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표면만을 상대하면서 살아가지요.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를 ‘당구공과 당구공의 만남’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짧은 만남 그리고 한 점에서의 만남입니다. 만남이라고 하기 어려운 만남입니다. 부딪침입니다.

(199)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雍也」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199-200)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이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며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
 
 
5. 맹자의 의義
 
(219) 공감이 감동의 절정은 못 된다고 하더라도 동류同類라는 안도감과 동감同感이라는 편안함은 그 정서의 구원久遠함에 있어서 순간의 감동보다는 훨씬 오래가는 것이지요. 마치 잉걸불처럼 서로가 서로를 상승시켜주는 것이지요.

(229-230) 맹자가 말하였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여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불인不仁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만 화살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화살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갑옷이 화살에 뚫려서) 사람이 상할까 봐 걱정한다. 무당巫堂과 장인匠人도 역시 그러하다(무당은 당시 의사였기 때문에 사람의 병이 낫지 않을까 걱정하고, 장인은 관棺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아서 관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므로 기술(職業)의 선택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에 거居하는 것이 아름답다. 스스로 택해서 인에 거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을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231) 인이라는 것은 활 쏘는 것과 같다. 활을 쏠 때는 자세를 바르게 한 후에 쏘는 법이다.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과녁에 맞지 않은 까닭을)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232) 궁술弓術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활 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두 발을 딛는 자세와 어깨와 팔의 각도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흉허복실胸虛腹實이라 하여 가슴은 비우고 배는 든든히 힘을 채워야 하는 것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활을 쏘는 동작 전체에 일관된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동작과 동작 사이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으며 그 하나하나의 동작이 끊어지지 않고 서로 휴지休止 없이 정靜과 동動으로 유연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종횡십자縱橫十字를 이루면서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궁도弓道에서 이러한 것들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은 궁도란 것이 살을 과녁에 적중시키는 단순한 궁술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과정과 자세의 정진正眞 여부가 중中, 부중不中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32-233) 부중했을 경우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반구제기反求諸己의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삶의 자세와 철학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실패에 직면하여 그 실패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외부에서 찾는가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이넋은 모든 운동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내부에서 찾는가 하는 세계관의 차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세계는 끊임없는 운동의 실체이며, 그 운동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 문제입니다. 반대로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결국 초월적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초월적 존재를 만든 어떤 존재를 또다시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242)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는 종횡으로 단절되어 있습니다.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황폐화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것은 그 뼈대가 인간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 사회의 본질이지요.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恥)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지속적 관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고 스스로 삼가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남에게 모질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243)
孟子曰 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 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 難爲言
觀水有術 必觀其瀾 日月有明 容光必照焉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   ―「盡心 上」

맹자가 말하기를, 공자께서 동산에 오르시어 노魯나라가 작다고 하시고 태산太山에 오르시어 천하가 작다고 하셨다. 바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물(水)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聖人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은 언言에 대하여 말하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깊은 물은 높은 물결을, 얕은 물은 낮은 물결을 일으키는 법이다). 일월日月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군자는 도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6. 노자의 도와 자연
 
(253-254)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進)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歸)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自然입니다. 노자의 귀歸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이란 문명에 대한 야만의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고 산천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天地人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4) 자연을 카오스로 인식하는 여타 제자백가들과는 반대로 자연을 최고의 질서 즉 코스모스로 인식합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는 근본적으로 반문화적反文化的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 의지建築意志에 대한 비판입니다. 계몽주의든 합리주의든, 기존의 인위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일체의 건축적 의지를 해체해야 한다는 해체론이며 바로 이 점이 노자의 현대적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262)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제1장

도道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 무無는 천지의 시작을 일컫는 것이고, 유有는 만물의 어미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로서는 항상 그 신묘함을 보아야 하고, 유로서는 그 드러난 것을 보아야 한다. 이 둘은 하나에서 나왔으되 이름이 다르다. 다 같이 현玄이라고 부르니 현묘하고 현묘하여 모든 신묘함의 문이 된다.

(270) "도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없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 이것이 서양의 사유입니다.

(271) 결론적으로 무의 세계든 유의 세계든 그것은 같은 것이며, 현묘한 세계입니다. 유의 세계가 가시적이기 때문에 현묘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무의 작용이며, 현상 형태이며, 그것의 통일체이기 때문에 현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아이는 단순할지 모르지만 그 어머니 때문에 복잡한 경우와 같은 것이지요
 
(272-273) 무위란 작위作爲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개입하거나 자연적인 질서를 깨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주의는 가치판단의 상대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판단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위이고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지요.
 
(273) 노자의 사상 체계에 있어서 대립적인 것은 없습니다. 상호 전화轉化될 수 없는 고정 불변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 만물은 상대적인 것이며 상호 전화하는 것입니다. 존재론적 체계가 아니라 관계론적인 체계입니다.
 
(281) 상품 이외의 소통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상품 형태를 취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시장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설자리가 없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상품화된 거대한 시장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281) 현賢을 숭상하고, 난득지화難得之貨를 귀하게 여기게 하고, 욕망 그 자체를 생산해내고, 심지心志를 날카롭게 하는 등 작위적인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지자들이지요. 자본주의 체제하의 지자들은 특히 그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지요. 노자는 바로 이러한 일련의 작위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282-283)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治大國若烹小鮮: 제60장)는 것이지요. 생선을 구울 때 생선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부스러뜨리는 것이 우리들의 고질입니다.
 
(283) 무위는 무행無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나 가치가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실천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난세의 극복’(無不治)입니다. 혼란(不治)이 없는(無)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284)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제8장

(284) 노자가 물을 최고의 선과 같다고 하는 까닭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 둘째는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셋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287) 춘추전국시대는 무한 경쟁의 시대입니다. 부국강병의 방법론을 두고 수많은 이론이 속출하게 됩니다. 직접 일하지 않고 패자覇者에게 기생하여 지식을 팔고,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사사로운 이해를 도모하는 지식인 계층이 사회적으로 확대됩니다.
 
(287-288) 물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뜻이며, 또 가장 약한 존재임을 뜻합니다. 가장 약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물입니다. 민초가 그렇습니다. 천하에 물보다 약한 것이 없지만 강한 것을 공격하기에 이보다 나은 것은 없으며 이를 대신할 다른 것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288) 강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지배하는 약한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강자의 힘은 그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地位)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힘은 원래 약자의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강자가 지배하는 구도에 있어서 약자의 수가 항상 다수라는 사실입니다. 강자가 다수일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이 핵심입니다
 
(289)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입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큰 강이든 작은 실개천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임으로써 그 큼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292)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제11장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통은 그 속이 ‘비어 있음’(無)으로 해서 수레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 있음’(無)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문과 창문을 내어 방을 만드는데 그 ‘비어 있음’(無)으로 해서 방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따라서 유有가 이로운 것은 무無가 용用이 되기 때문이다.

(292-293) 누구나 수레를 타고, 그릇을 사용하고, 방에서 생활하지만 그것은 수레나 그릇이나 방의 있음(有)에만 눈을 앗기어 막상 그 있음의 배후(無)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숨어 있는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즉 유有의 배후로서의 무無를 드러내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고 이 장의 의미입니다. 현상을 있게 하는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상과 본질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297) 분명히 변화합니다. 변화하는 이유는 “생활이 그대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삶의 골목에서 이러저러한 충돌을 통해서 현실의 벽을 몸으로 터득해가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집단적으로 터득해갑니다. 그래서 나는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강의도 하나의 골목이기를 바라지요. 여러분이 걸어가는 여러 골목 중의 하나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언젠가 여러분이 자신의 사상을 정돈하는 작은 계기로서 추체험追體驗되기 바라는 것이지요.
 
(298) 자연은 그 자체로서 완성된 것이며 다른 외부를 가지지 않은 존재입니다. 독립적 존재입니다.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상정할 수 없는 그야말로 항상적 존재입니다. 최후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최초의 존재입니다. 한마디로 최대한의 개념이며 가장 안정적인 질서가 바로 노자의 자연입니다.

(299)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靜勝躁 寒勝熱 淸靜爲天下正        ―제45장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이지러진 것 같다. 그래서 사용하더라도 해지지 않는다.
가득 찬 것은 마치 비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퍼내더라도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는 더위를 이기는 법이다.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름이다.
 
(300) 가장 중요한 원칙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매달리고 그 곧음을 겉으로 드러내게 마련이지요. 어떤 분야든 최고 단계는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좁은 틀을 시원하게 벗어나 있게 마련이지요.
 
(301-302) 언어는 소통의 수단입니다. 소통은 화자와 청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맷돌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경험 세계의 소통 없이는 결코 전달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자의 연상 세계와 청자의 그것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 정확한 의미의 소통은 차질을 빚게 됩니다.
 
(305)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제25장)
 
7. 장자의 소요
 
(309)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310)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한다면 혹시 나 자신도 우물 소게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반성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311)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逍遙는 보행步行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는 오히려 무도舞蹈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춤이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동작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313)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겠다”(寧生曳尾塗中)
 
(317) 모든 이론과 사상뿐만 아니라 모든 현실적 존재도 그것은 드높은 차원에서 조감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조감자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는 우물 속의 개구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부분이고 찰나라는 것을 드러내는 근본주의적 관점이 장자 사상의 본령입니다.
 
(319)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중하위권에 편입되어 있으며, 자본주의적 가치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인식을 조감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과제이지요. 모든 투쟁은 사상 투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사상 투쟁으로 끝나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우리들이 갇혀 있는 ‘우물’을 깨닫는 것이 모든 실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321)
物無非彼 物無非是 自彼則不見 自知則知之
故曰 彼出於是 是亦因彼 彼是方生之說也
雖然 方生方死 方死方生 方可方不可 方不可方可
因是因非 因非因是
是以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  ―「齊物論」
사물은 어느 것이나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적 관점(自彼)에 서면 보지 못하고 주관적 관점(自知)에서만 본다. 그래서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저것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하여 이것을 (혜시惠施는) ‘저것과 이것의 모순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생生과 사死, 사와 생 그리고 가可와 불가不可, 불가와 가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되는) 모순 관계에 있다. 가가 있기에 불가가 있고 불가가 있기에
가가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성인은 특정한 입장에 서지 않고(不由) 하늘에 비추어 본다고 하는 것도 역시 이 때문이다(亦因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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