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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1일 10시 47분 등록


관중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한문이라면 몸서리를 치는 사람이라도 관교지교(管鮑之交)라는 말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법하다. 중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공부를 좀 한 사람이라면 진한 우정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이 한자성어의 배경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문 시간에 졸기 일쑤였던 나로서는 그 배경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관자』에도 실린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가 초년에 어려울 때 일찍이 포숙아와 장사를 하였다. 장사를 해서 생긴 이익을 나눔에 있어서 내가 많이 차지하였는데도 포숙아는 나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이해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포숙아를 위해 일을 꾸몄으나 도리어 더욱 어렵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숙아는 나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을 하다가 보면 유리한 경우도 있고 불리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차례나 벼슬길에 올랐으나 세 번 다 군주에게 쫓겨났다. 그러나 포숙아는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때를 못 만났다고 이해해 주었다. 나는 일찍이 세 번 전쟁에 나가 세 번 다 도주하였다. 그런데 포숙아는 나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가 있음을 이해해주었기 때문이다. 공자公子 규糾가 패하자 소홀召忽은 따라 죽었으되 나는 옥에 갇혀서 욕을 당했으나, 포숙아는 나를 염치 없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功名이 천하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사기』 「관안열전」)." (p. 10~11)

『관자』의 역자 서문을 보면 관중에 대한 간단한 약력을 찾을 수 있고, 책의 끝 부분엔 연대별 정리가 실려있다. 또 1000페이지가 넘는 『관자』 자체가 관중에 대해서 더할 수 없이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 그에 대한 별도의 저자 조사가 필요할까 싶었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 섭섭해서 인터넷을 뒤적이니 관중과 『관자』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그 중 일부를 옮긴다.

[관중(管仲: BC?? ~ BC 645)은 관경중(管敬仲)이라고도 하며 춘추시대 초기의 정치가이다.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이며, 영상(穎上: 지금의 안휘성 영상현) 사람이다. 관중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출신은 분명하지 않다.

BC 7세기 경 당시의 중국 주(周)나라 왕실은 이미 통제력을 잃고 있었으며, 이에 실력있는 제후가 패자(覇者)로서 천하를 호령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패자란 우선 주왕조의 종주권을 존중하면서 "제후 회의"를 소집하여 회맹(會盟)을 행하고 중원 제국을 위협하는 주변 소수민족의 격퇴와 중원의 질서 유지를 주된 임무로 삼고 있었다.

최초의 패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한 인물은 바로 제나라의 환공(桓公)이었다. 제나라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에 있었던 조그만 나라였으며, 환공도 그렇게 탁월한 인물을 아니었다. 그러한 그가 춘추오패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관중의 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자(孔子)는 이러한 관중의 공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환공이 비참한 수단에 호소하지 않고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관중은 환공을 보좌하여 제후의 맹주가 되게 하고 천하의 질서를 회복했으며, 그 은혜는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 만약 관중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랑캐의 풍속을 강요 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도 "관중 없이 환공의 패업이 없고 중원의 평화도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현재 관중에 대한 기록은 ≪사기≫ 「관안열전(管晏列傳)」을 통해서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관중은 친구 포숙아(鮑叔牙)와 죽마지우(竹馬之友)였다. 이 두사람의 우정에 대해서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를 통해서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일찍이 관중은 집이 가난하여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관중은 자주 포숙아를 속이기도 하였지만 포숙아는 관중의 인간성과 뛰어난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최후까지 우정을 버리지 않았다. 관중은 이러한 포숙아의 우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내가 옛날 가난했을 때,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한 일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 내가 더 많이 가져도 그는 나를 욕심장이라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에게 이름을 얻게 해 주려고 계획했던 일이 도리어 그를 궁지에 떨어뜨리는 결과가 되었지만 나를 바보라고 욕하지도 않았다. 그는 일에는 잘 될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나아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다."

당시 제나라의 왕은 이공(釐公)이었는데, 이공에게는 제아(諸兒)·규(糾)·소백(小白)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관중은 이 중 규의 스승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시기에 친구인 포숙아는 소백의 스승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관자(管子)≫ 「대광편(大匡篇)」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포숙아는 이 임명에 불만을 갖고 투덜댔다. 그는 막내인 소백(훗날의 환공)에게 계승할 자리가 돌아올 가능성이 없음을 짐작하고 그러한 사람의 선생에 취임하더라도 장래의 전망이 열릴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관중은 병을 칭탁하고 집에 틀어박혀 버린 포숙아를 찾아가 세 사람의 상속 후보자의 인물 비교를 시도하면서 소백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결국 장래의 제나라를 짊어지고 설 사람은 규와 소백일 것이다. 나는 소백의 재능을 인정한다. 그분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높은 견지에서 사물을 포착하는 스타일이다. 인물의 스케일이 남다르게 웅대함으로 여간해서 남에게 쉽게 이해되지를 않는다. 순서상으로 말하면 규가 먼저지만 불행히 장래 어쩌다가 우리 제나라가 하늘로부터 재난을 받을 경우 규로서는 좀체로 난국을 극복해 나가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숙아여! 그렇게 되었을 경우 국가 안태를 위해서는 자네 힘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라네."

포숙아는 관중의 설득을 듣고 비로소 소백의 소승이 될 것을 승낙했다고 한다. 그 후 이공이 죽고 장자인 제아가 뒤를 이어 제나라 14대 왕 양공(襄公)이 되었다. 그런데 양공은 도저히 군주의 그릇이 못되었다. 무도한 행동이 많아 결국 사촌인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피살되었다. 이때 규는 관중과 함께 이웃나라 노(魯)로 망명하고 소백도 포숙아와 함께 거(莒)로 달아나 난을 피했다. 그러나 공손무지도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자신에게 원을 품은 자에 의해 피살당했다.

이에 공석이 된 왕좌를 둘러싸고 급히 중신회의가 열리고 거에 있던 소백에게 사자가 파견되었으며, 이 때 노나라도 제나라에 친노(親魯)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곧바로 규를 제나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관중은 별동대를 이끌고 제나라의 도읍지 임치(臨淄)로 향하는 소백군을 요격했는데 직접 활을 쥐고 소백을 겨냥했다.

화살은 소백에게 명중하여 소백은 쓰러지고 관중은 돌아가서 그 사실을 규의 본대에 보고했다. 이미 경쟁 상대가 없어진 상태에서 안심한 규는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유유히 임치로 향했다. 그런데 관중은 여기에서 중대한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소백을 명중시켰다고 생각했던 화살은 소백의 혁대 바클에 맞았으며, 현명하게도 소백은 그 자리에서 죽은 시늉을 함으로써 위기를 넘기고, 관중이 물러간 뒤를 틈타 곧장 임치를 향해 달렸던 것이다. 이리하여 규를 옹호하는 노나라 군이 제나라 영내에 들어섰을 때에는 소백은 이미 제왕에 옹립되어 있었다. 노나라는 전후를 돌봄이 없이 일전을 시도했으나 어이없이 패하고 제나라의 요구에 굴하여 그들이 옹립해 오던 규를 스스로의 손으로 살해해야만 하는 파국에 몰렸다. 제나라의 왕위를 둘러싼 골육상쟁은 이리하여 소백 진영의 승리로 끝났던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관중의 처분이었다. 소백은 자신에게 활시위를 당겼던 관중을 가차없이 죽이려 하였지만, 관중의 절친한 친구인 포숙아는 소백에게 관중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

"신은 다행스럽게도 처음부터 전하를 따랐기에 오늘 이렇게 전하께서 왕좌에 앉는 영광을 함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신에게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전하께서 제나라 일국만을 통치하실 생각이라면 고혜(高혜, 혜=人+奚)와 저 둘만의 보좌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천하의 패자를 바라신다면 관중 외에는 적임자가 없습니다. 관중을 쓰는 나라는 반드시 천하에 중시될 것입니다. 어떻게든지 관중을 데려와야 합니다."

환공은 자신이 신뢰하고 있던 포숙아의 말을 믿기로 하고 곧장 노나라에 관중의 인도를 요구하였다. 이에 관중을 접견한 환공은 관중의 뛰어난 식견에 감복하고 그를 재상에 임명하여 국정을 모두 맡겼다. 관중은 40년간 제나라를 다스리면서 대내외적으로 개혁정책을 단행하여 정치·군사·경제적인 면에서 모두 제나라를 춘추오패의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즉, 관중은 대외적으로는 패자로서 제나라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대내적으로는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정책에 힘을 경주했던 것이다. '농업의 보호 장려', '소금과 철, 금 등 중요산업의 생산관리', '균형재정의 유지', '물자의 유통 및 물가의 조정', '세제 및 병역의 정비', '인재등용' 등은 바로 그가 시행한 주요 정책들이다.

관중은 나라를 유지하는 정신적 지주를 '사유(四維)', 즉,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 보았다. '예'는 절도를 지키는 것, '의'는 자기선전을 하지 않는 것, '염'이란 자기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 '치'란 남의 악행에 끌려 들어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 '사유' 중에서 하나가 없으면 안정이 무너지고, 두 개가 없으면 위기에 빠지며, 세 개가 없으면 전복되고, 네 개가 없으면 멸망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관중이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후세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총결하여 쓴 ≪관자(管子)≫라는 책 때문이다. ≪관자≫는 선진시대의 전적 중에서 중국의 고대 경제사상자료가 가장 풍부하게 보존되어 있는 저작이다. 현존하는 ≪관자≫는 서한 말기에 유향(劉向)이 그가 수집한 564편 중에서 중복되는 것을 삭제하고 편집한 것인데, 후에 다시 10편이 소실되어 실제로는 76편만 남아 있다.

≪관자≫는 정치, 경제로부터 의식형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국가관리와 인민통치를 위한 이론과 원칙을 제시한 책이다. "창고가 풍족하면 백성이 예절을 알고, 의식(衣食)이 풍족하면 명예와 치욕을 안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관자≫에서 제시한 경제사상의 이론 기초이다. ≪관자≫는 재정, 금융, 화폐, 무역, 세제 등의 경제 각 분야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논술한 책으로, 고대 전적 중에서 이보다 상세하게 경제분야를 논한 저작은 없을 정도이며, ≪관자≫에서 확립된 경제사상은 몇천년간 중국의 봉건경제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 길이 멀다. 『관자』 속으로 들어가보자.




『관자』가 왜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것은 유교의 국교화와 관련이 깊다. 유교가 중국이나 한국의 지성사에서 사상적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유교적 가치관으로 모든 인물, 사상, 문헌을 평가하게 됐다. 도덕과 예의를 절대시하는 유교의 시각에서 보면 관중이라는 인물과 『관자』라는 고전은 세속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 순수하고 성스러운 가치를 추구하는 선비의 눈에 관중은 때로는 예의 없는 인간으로 비쳐지기도 하고, 세속적 공명을 추구하는 인물로 비판되기도 한다. (p. 8)

"내가 초년에 어려울 때 일찍이 포숙아와 장사를 하였다. 장사를 해서 생긴 이익을 나눔에 있어서 내가 많이 차지하였는데도 포숙아는 나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이해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포숙아를 위해 일을 꾸몄으나 도리어 더욱 어렵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숙아는 나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을 하다가 보면 유리한 경우도 있고 불리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차례나 벼슬길에 올랐으나 세 번 다 군주에게 쫓겨났다. 그러나 포숙아는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때를 못 만났다고 이해해 주었다. 나는 일찍이 세 번 전쟁에 나가 세 번 다 도주하였다. 그런데 포숙아는 나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가 있음을 이해해주었기 때문이다. 공자公子 규糾가 패하자 소홀召忽은 따라 죽었으되 나는 옥에 갇혀서 욕을 당했으나, 포숙아는 나를 염치 없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功名이 천하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사기』 「관안열전」)." (p. 10~11)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 데 있고, 정치가 피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데 있다." (p. 19)

관자 철학 사상의 중심 관념은 '도'다. 도는 비어 있고 형상이 없다고 하였다. "허무와 무형을 도라 한다."
도는 공간적으로 무한히 크기도 하고 동시에 무한히 작기도 하다. "도가 천지의 사이에 있으면 그보다 큰 것이 없고, 그보다 작은 것이 없다." 도는 천지 사이에 없는 곳이 없지만 형상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덕이란 만물을 화육하는 것이며 덕은 도가 머무는 곳이다. 그러므로 도와 덕은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였다.
의는 각기 그 마땅함에 처하는 것이며, 예란 사람의 정과 의로운 이치에 기초하여 만든 구체적 규범이다. 이는 본분을 명확히 함으로써 의의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의에서 나오고, 의는 이에서 나오고, 이는 마땅함에 근거한다고 하였다. 또한 일은 법의 감독을 받아야 하고, 법은 권에서 나오지만, 권은 또한 도에서 나와야 한다고 하였다. (p. 21)

『관자』는 혼란스런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지혜를 집성한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와 번영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혜와 노력과 의지로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 본성과 권력의 본질과 사회생활에 대한 날카로운 사실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간 사회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관자』는 순수한 도덕으로 모든 것을 규제하려는 낭만적 이상주의도 아니고, 약육강식의 비정한 권력투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차가운 현실주의만도 아니다. 법의 현실성과 예의 인간성을 함께 아우르면서 개인과 조직과 사회가 함께 번영하고 성공하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유용한 노하우와 깊이 있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p. 22)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풍족하면 영광과 치욕을 안다. (p. 30)

기우는 것은 바로 잡을 수 있고,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킬 수 있고, 뒤집어지는 것은 일으켜 세울 수 있으나 망한 것은 다시 일으킬 수 없다. (p. 32)

장수하거나 단명하는 것, 가난하거나 부유한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p. 38)

먼 곳에 있는 인재를 불러들이려는 군주는 사신만 보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친화하려는 군주도 좋은 말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보이지 않는 덕행이나 음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p. 39~40)

게으른 사람은 일을 이루지 못하나, 빈틈없이 일을 크게 꾸미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산에 비길 만하다. 신에 견줄 수 있는 경지도 알고 보면 그 사람의 안에 축적된 역량인 것이다. 게을러서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다른 사람의 도움만 기다린다. 안에 힘을 지닌 사람은 자신 있고 여유롭게 일을 처리하지만, 다른 이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은 (항상 불안하고 수고롭게) 바깥의 도움을 기다리게 마련이다. (p. 41)

오늘의 일을 잘 모르면 옛날을 비추어 보고,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겠거든 과거를 살펴보아라. 만사가 발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귀결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p. 43~44)

인재를 등용하지 않고 독재하는 군주의 나라는 고생스럽고 재앙과 불행도 많으며, 고립무원한 군주는 (나라 사이에)) 지위가 낮고 위엄도 없다. 마치 스스로 중매하고 나서는 여자가 추하고 믿을 수 없는 것과 같다. (p. 45)

군주는 말을 하되 두 번 다시 못할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군주는 드 번 다시 행하지 못할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무릇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가장 큰 금기다. (p. 45)

옳은 것을 보면 기뻐하되 분명한 표창이 있어야 하고, 옳지 않은 것을 보면 미워하되 실질적인 제재가 있어야 한다. 상벌이 보이는 곳에서 실행되면 보이지 않는 곳이라 해도 어찌 감히 함부로 행동하겠는가. 옳은 것을 보고서도 기뻐만 하고 분명한 표창이 없거나, 옳지 않은 것을 보고서도 미워만 하고 눈에 보이는 제재가 없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감화되기를 바랄 수 없다. (p. 49)

군주가 농업을 좋아하지 않으면, 상업을 제한하지 않는다. 상업에 제한이 없으면 (농사에는 힘쓰지 않고 장사만 하려 해서) 백성이 농사를 등한시하고 농업 생산을 경시한다. 농업 생산을 경시하고서, 농토가 개간되고 창고가 가득 차기를 바랄 수 없다. (p. 52)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십 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p. 53~54)

무릇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되 알맞은 등급을 넘지 않게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부리되 관직을 겸임하지 않게 하고, 범죄자를 벌 주되 (연대책임을 물어 본인) 한 사람에게만 미치지 않게 하고, 공로자에게 상을 주되 (연대 포상하여 본인) 한 사람에게만 주지 않는다. (p. 64)

지혜로운 사람만 그것을 알게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게 하면 백성을 부릴 수 없다. 재능 있는 사람만 할 수 있게 하고, 재능 없는 사람은 할 수 없게 하면 백성을 부릴 수 없다. (p. 82)

윗사람이 옳은 일을 한 번 하면 아랫사람은 옳은 일을 두 번 한다. (p. 84)

법칙, 현상, 법도, 교화, 결정, 마음씀, 계산이 이른바 칠법이다. (p. 89)

천하의 양질의 자원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각종 병기를 제조하는 기술을 향상시키고, 봄가을로 기술자들을 서로 경쟁시키며 점검해 좋은 것을 선발하면 정밀한 병기를 제조하는 기술이 으뜸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만든 무기는 점검해도 안 되고, 사용해도 안 되고, 시험해도 안 되고, 무기고에 넣어도 안 된다. (p. 97)

도로 (백성)을 통하게 하고, 은혜로 기르고, 인으로 친하게 하고, 의로 기르고, 덕으로 보답하게 하고, 믿음으로 맺게 하고, 예로 사귀게 하고, 음악으로 화목하게 하고, 일로 기약하게 하고, 말로 (민심을) 고찰하고, 힘으로 (백성을) 분발시키고, 정성으로 감화시켜야 한다.
(이렇게 정치를 하면) 1년 뒤에는 위아래가 모두 결실이 있고, 2년 뒤에는 따르지 않는 백성이 없고, 3년 뒤에는 토지가 개간되고 오곡이 익으며, 4년 뒤에는 농부들이 즐거워하고 곡식이 풍족해지며, 5년 뒤에는 부역이 줄고 나라의 재산이 가득 차며, 6년 뒤에는 군주가 일의 변화를 미리 알 수 있고, 7년 뒤에는 조정의 안팎이 쓰이고, 8년 뒤에는 군주에 대한 믿음이 행해져서 위엄이 서고, 9년 뒤에는 제업이 완성된다. (p. 108)

전쟁이 빈번하면 군사들이 피로하고, 승리가 반복되면 군주는 교만해진다. 교만한 군주가 피로한 백성을 부리면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가장 좋은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요, 그 다음은 단 한 번 싸워서 이기는 것이다. 대승이란 여러 번 이긴 것을 모은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이 의로운 전쟁 아닌 거시 없어야 대승이라고 할 만하다. 대승이란 이기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p. 123)

지금 공인이 매우 정교하지만 백성의 일용품이 부족한 것은 군주의 기뻐함이 완구품에 있기 때문이다. 농부가 매우 노력하지만 천하의 사람이 굶주리는 것은 군주의 기뻐함이 진기한 물건에 있기 때문이다 (베 짜는) 여인이 매우 정교하되 천하 사람이 추위에 떠는 것은 군주의 기뻐함이 수놓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넓은 띠를 좁게 하고, 큰 소매를 가르고, 수놓은 옷을 물들이고, 조각한 것을 깎아내고, 아로새긴 것을 펀펀히 해야 한다. (p. 155)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 있어도 성을 내서는 안 되고, 원망하는 것이 있어도 말해서는 안 되며, 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계획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p. 159)

새들이 나는 형상을 법칙으로 삼아서 일을 처리함에 있어 큰 방향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p. 160)

얕을 수도 있고 깊을 수도 있으며, 뜰 수도 있고 가라앉을 수도 있으며, 굽을 수도 있고 곧을 수도 있으며,
뜰 수도 있고 가라앉을 수도 있으며, 굽을 수도 있고 곧을 수도 있으며, 말할 수도 있고 침묵할 수도 있다. 하늘은 한때에만 머물지 않고, 땅은 한 가지 이로움에만 그치지 않으며, 인간은 한 가지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p. 161)

"봄에는 새로 나온 채소를 먹고, 가을에는 잘 익은 과실을 먹으며, 여름에는 서늘한 곳에 살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 머문다." (p. 165)

"천리 길은 승繩으로 곧게 할 수 없고, 만호의 큰 도읍은 수준기水準器로 평평하게 할 수 없다"rh 했다. 위대한 사람의 행위는 반드시 선례와 변하지 않는 규칙을 표준으로 하지는 않으니, 의리를 확립할 수 있어야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p. 171)

"도가 하늘에 있는 것이 태양이고, 도가 사람에게 있는 것이 마음이다." (p. 179)

(지위가) 낮은 사람은 본래 존귀한 사람을 섬기고, 현명하지 못한 삶은 본래 현명한 사람을 섬긴다. 존귀한 사람이 존귀할 수 있는 까닭은 존귀함으로 천한 사람을 섬겼기 때문이고, 현명한 사람이 현명할 수 있는 까닭은 현명함으로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섬겼기 때문이다. 추함은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해주는 바탕이고, 천함은 존귀함을 가능하게 해주는 바탕이며, 미천함은 고귀함을 가능하게 해주는 바탕이다. (p. 187)

무릇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 나라의 장점 때문이며, 사람이 스스로 실수하는 것은 그가 잘하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못에 빠져 죽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은 황야에서 사냥하거나 싸우다가 죽는다. (p. 189)

생명은 먹을거리에 달려 있고, 다스림은 일처리에 달려 있다. 일처리를 잘하지 않고서 잘 다스리는 사람은 예부터 지금까지 아직 없었다. (p. 189)

보통 사람은 마음을 씀에 있어 아낌이 미움의 발단이 되고, 은혜가 원망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어버이를 잘 섬기다가 처자식이 생기면 효심이 줄어든다. 군주를 잘 섬기다가 산업이 잘되어 집안이 풍족해지면 (신하로서) 덕행이 줄어든다. 작위와 복록이 가득 차면 충성심이 줄어든다. 그러나 오직 현인만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선왕은 (무엇이든지) 가득 채우지 않는다. 군주는 안일함을 좋아하고 수고하기를 싫어하는 본성을 이기며 열심히 일하도록 명령하고, 신하들은 군주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p. 192)

"금령이 군주 자신을 제약할 수 있으면 명령이 백성에게 시행된다." (p. 230)

백성은 함께 시작을 도모할 수는 없으나, 함께 성공을 즐길 수 있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과 도가 있는 사람은 대중과는 시작을 도모하지 않는다. (p. 240)

남에게 교만한 사람 가운데 큰 선비가 없다. 교만한 사람은 자만하기 때문이다. 자만하는 사람은 반드시 공허하다. 자만하거나 공허한 것은 상대에게 있으니, (이런 사람은) 상대에게 제어된다. 교만한 사람은 소인의 무리다. 무릇 사람을 평가함에 옛날과 어긋나는 사람 가운데 높은 선비가 없다. 옛날을 알지 못하고 그 공을 소홀히 하는 사람 가운데 지혜로운 선비가 없다. 덕행을 아직 스스로 이루지 못했는데 옛 것을 어기는 사람은 비천한 사람이다. 일을 의뢰할 것이 없고, 때를 만나도 그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명예를 구하는 사람 가운데 현명한 선비가 없고, 이익을 구하는 군주 가운데 왕업을 이루는 군주가 없다. 현명한 사람이 몸소 행함에는 명예가 있음을 잊고, 왕업을 이루는 군주가 도를 행함에는 공을 잊는다. 현명한 사람의 행실과 왕업을 이루는 군주의 도는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p. 247)

"신이 듣건대, 젊은이는 나태하지 않고 늙은이는 구차하게 안락을 탐하지 않아야 하늘의 도를 따라서 선종을 얻는다고 합니다. 하나 걸왕, 은나라 주와, 주나라 유왕이 정권을 잃어버린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군주께서 어찌 안락함을 탐할 수 있겠습니까?"

관중은 재상이 된 지 3개월 만에 백관을 평가하기를 청했다. 환공이 말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관중이 말했다.
"오르고 내리며 읍하고 사양하는 것이 예절에 맞고, 조정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모두 의례에 익숙하고, 때에 따라 강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것은 신이 습붕만 못합니다. 청컨대, 그를 대행으로 삼으십시오.
황무지를 개간하고 읍을 늘리고, 토지를 개척하여 곡식을 증산하고, 백성을 늘려 땅의 이로움을 다하는 것은 신이 영척만 못합니다. 청컨대, 그를 대사전으로 삼으십시오.
평원의 넓은 들판에서 전차가 혼란하지 않게 지휘하고, 사졸들이 물러서지 않게 하고, 진군의 북을 쳐서 삼군의 군사가 죽는 것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게 하는 것은 신이 왕자 성보만 못합니다. 청컨대, 그를 대사마로 삼으십시오.
공정하게 옥사를 판결하여 허물없는 이를 죽이지 않고, 죄 없는 이를 억울하게 하지 않는 것은 신이 빈서무만 못합니다. 청컨대, 그를 대사리로 삼으십시오.
군주의 안색을 거스르면서 나아가 간할 때는 반드시 충성을 다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부귀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신이 동곽아만 못합니다. 청컨대, 그를 대간의 벼슬에 임명하십시오.
이 다섯 사람의 장점은 저로서는 한 가지도 그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것을 하라고 하시면 저는 결코 하지 못할 것입니다. 군주께서 만약 나라를 다스리고 군대를 강하게 하고자 하시면 다섯 사람이 있고, 만약 패왕이 되고자 하시면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좋습니다." (p. 351)

책임이 막중함은 신체에 미침보다 더한 것이 없고, 어렵고 두려운 것은 입에서 나온 말보다 더한 것이 없고, 기한을 멀리 잡는 데는 나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책임이 중한 일을 맡고, 두렵고 어려운 일을 행하면서 그 약속 기한을 멀리 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군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p. 393)

상대방과 교류는 적게 하면서 많은 사람과 친한 것을 사람을 안다고 합니다. 일을 적게 벌이면서 일을 성공시키는 것을 일을 잘한다고 합니다. 한마디 말만 듣고서 만물을 꿰뚫어 아는 것을 도를 안다고 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데 온당치 못한 말이 있으면 말을 적게 하는 것만 같지 않고, 많이 배우고서도 스스로를 돌이켜 볼 줄 모르면 반드시 사악한 행위가 있게 마련입니다. (p. 394)

"포숙은 군자입니다. 천승의 나라라도 도에 어긋나면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정치를 담당할 수 없습니다. 그의 사람됨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심하기 때문에 한 가지 악한 일을 보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습니다." (p. 400)

백이와 숙제는 죽은 뒤 이름난 것이 아니라 생전의 행적에 많은 수행이 있었던 것이고, 무왕이 갑자기 갑자일 아침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훌륭한 정책이 많았던 것이다. (p. 414)

소규모 정벌에서는 천 리 안의 정세를 두루 알아야 한다. 한 겹의 담장을 쌓을 때 열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하더라도 주인은 날마다 여러 번 살펴야 하는 것과 같다. (p. 415)

군주가 아래로 관직의 세세한 부분까지 살피면 관리들이 책임질 수 없고, 신하가 위로 군주의 권한을 나누어 가지면 군주가 권위를 잃는다. 그러므로 도가 있는 군주는 그 덕행을 단정히 하여 백성에게 임할 뿐 지능과 총명을 강구하지 않는다. 지능과 총명은 신하가 갖추어야 한다. 지능과 총명을 활용하는 것이 군주의 도다. 군주는 그 도를 밝히고 신하는 그 직분을 지키면, 군주와 신하의 일이 서로 같지 않지만 다시 합하여 하나가 된다. (p. 423)

다른 사람의 선함을 아는 것이 군주다. 자신의 선행에만 집중하면 남의 부림을 받는다. (p. 423)

현명한 군주라도 백 보 밖은 들으려고 해도 들을 수 없고, 담 너머는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현명한 군주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신하를 잘 등용하여 신하가 충성을 다 바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믿음을 잇고, 선함으로 선함을 전하므로 천하가 다스려진다. (p. 431)

"담벼락에 귀가 있고, 도덕이 자기 곁에 숨어 있다." (p. 440)

군자는 치국의 도로 먹고 살고, 소인은 힘으로 일해서 먹고 사는 것이 각자의 본분이다. (p. 444)

"자기가 착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 단청은 산속에 묻혀 있어도 사람들이 알고서 캐내려 들고, 아름다운 구슬은 깊은 물속에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든다. 그러므로 내가 과오를 저지를 수 있지만, 백성이 잘못된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p. 451)

길면 자르고 짧으면 이어주며, 넘치면 덜고 비면 채워 넣어야 한다. (p. 452)

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채색으로 채색을 꾸미면, 내가 어찌 그것의 아름다움을 알겠습니까? 흰 색으로 흰 색을 꾸미면, 내가 어찌 그것의 좋음을 알겠습니까? 중보께서 나에게 선한 것을 말하고 악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내가 어찌 선한 것이 선한지 알겠습니까?" (p. 462)

너무 부유한 사람은 부릴 수 없고, 너무 가난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물은 평평하면 흐르지 않고, 근원이 없으면 빨리 마릅니다. 구름은 평평하면 많은 비가 내리지 않고, 짙은 구름이 없으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되 친함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흐르고, 친근한 신하가 쓰여야지 쓰이지 않으면, 비유하건대 서로 피하며 원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단점이 있는 이를 윗자리에 두고 장점이 asg은 이를 아래 자리에 두어서, 헤아림 없이 쓰면 근본을 위태롭게 합니다." (p. 474)

"뿌리가 깊은 나무는 베지 말고, 굳어진 일에는 들어가지 말고, 깊이 관찰한 일은 가리지 말고, 착하지 않은 행실은 돕지 말고, 빛나고 밝은 일은 없애지 말고, (야심이) 생겨서 번성하는 것을 제지하라면 때를 잃지 마십시오. 열 마디 말이 이 한 마디 말을 이기지 못합니다. 비록 흉해도 반드시 길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화평하고 원만해집니다." (p. 481)

도는 멀리 있지 않지만 도달하기 어렵고,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만 터득하기 어렵다. 그 욕심을 비우면 신이 들어와 자리하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이 머문다. 사람은 모두 지혜롭고자 하지만 아무도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지혜여, 지혜여, 바다 밖으로 던져서 억지로 빼앗지 말아야 한다. (바깥에서 속된)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땅한 자리를 얻지 못한다. 무릇 바른 사람은 (바깥에서 속된) 지혜를 구하지 않으므로 허무에 처할 수 있다. (p. 507)

사람이 싫어하는 것에 억눌리면 좋아하는 것을 잃고, 좋아하는 것에 유혹되면 싫어하는 것을 잊으니,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것에 유혹 당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에 억눌리지 않는다"고 한다. 싫어하되 그 원리를 잃지 않고, 좋아하되 그 실정에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군자'라고 한다. (p. 514)

겉모습이 바르지 않은 사람은 덕이 오지 않고, 마음 속에 정성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겉모습을 바르게 하고 덕을 수양하면 만물에 잘 들어맞는다. (p. 516)

뜻이 전일하고, 마음이 한결같고, 눈과 귀가 정확하면 멀리 떨어진 증험을 안다. 전일할 수 있는가? 한결같을 수 있는가? 복서를 쓰지 않고서도 길흉을 알 수 있는가? 그칠 수 있는가? 그만둘 수 있는가? 남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깊이 생각하라. 깊이 생각해도 터득하지 못하면 귀신이 가르쳐준다"고 한다.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그 정성스런 기운이 온 것이다. (p. 517)

재화는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의 말단이고, 형벌은 미움을 표현하는 수단의 말단이다. (p. 519)

"누가 명예와 공로를 버리고 보통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가? 누가 공로와 명예를 버리고 성취함이 없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성취함이 없을 때는 그 성취를 귀히 여기지만, 성취함이 있을 때는 성취함이 없는 상태가 귀하다. 해는 꼭대기에 오르면 지고, 달은 가득 차면 이지러진다. 꼭대기에 오르면 질 뿐이고, 가득 차면 이지러질 뿐이며, 커지면 멸망할 뿐이다. 누가 스스로 자신을 잊어 없앨 수 있는가? 저 천의 법칙을 본받으라. (p. 526)

지금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믿어 적의 정황을 알려고 하고, 지키지 않으려는 백성을 동원하여 견고하게 지키고자 하며, 싸우려 하지 않는 병사를 거느리고 승리를 바라면, 이는 용병의 세 가지 우매함이다. (p. 573)

모든 사물에 대응하여 오로지 하나를 굳게 지녀 사물을 발전시키는 것을 신이라 하고, 모든 일에 대응하여 오로지 하나를 굳게 지녀 일의 변화를 촉진하는 것을 지라고 한다. 모든 사물을 발전시키되 자기의 기는 바뀌지 않고, 모든 일의 변화를 촉진하되 자기의 지혜를 바꾸지 않으니, 오직 하나를 굳게 지닌 군자만이 이를 해낼 수 있도다. 하나를 굳게 지니고 잃지 않으면 만물에 군림하여 부릴 수 있다. 군자가 만물을 부리기는 하나 만물에게 부림을 당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나를 굳게 지닌 원칙 때문이다. 가지런한 생각이 가슴 속에 있고, 가지런한 말이 입에서 나오며, 가지런한 조치가 사람에게 베풀어지면, 천하가 가지런해질 것이다. 한 번 말하여 마땅함을 얻어 천하가 복종하고, 한 번 말하여 올바르게 결정하여 천하가 듣고 따르니, 이를 공정함이라고 한다. (p. 608)

무릇 음식을 먹는 도는 너무 배불리 먹으면 손상되어 몸에 좋지 않고, 너무 굶주리면 뼈가 마르고 피가 마른다. 배불리 먹거나 굶주림의 사이, 이를 혈기가 조화롭고 몸이 건강하여 정기가 의지하는 곳이라 하니, 지혜가 생기는 곳이다. 굶주리거나 배불리 먹어 절도를 잃으면 죽음에 이른다. (p. 614)

비목어比目魚, 비익조比翼鳥 (p. 618)

"천하의 우수한 자재를 끌어 모으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환자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다섯을 주면 나는 여섯으로 계산하여 주고, 다른 사람이 아홉을 주면 나는 열로 계산하여 주어, 정해진 값에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p. 622)

눈은 밝게 보는 것이 중요하고, 귀는 밝게 듣는 것이 중요하고, 마음은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지 못함이 없다. 세상 사람의 귀로 들으면 듣지 못함이 없다. 세상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알지 못함이 없다. 수레의 바퀴통 같이 각 방면의 힘을 모아 함께 나아가면 밝음이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이상은 군주가 밝게 살피는 문제다. (p. 675~676)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 (p. 684)

산이란 사물 가운데 숭고한 것이다. 은혜란 군주의 숭고한 행위다. 사랑이란 부모의 숭고한 행위다. 충성이란 신하의 숭고한 행위다. 효란 자식과 며느리의 숭고한 행위다. 그러므로 산이 높고 무너지지 않으면, 양을 바쳐 복을 구하려는 사람이 모인다. 군주가 은혜 베풀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백성이 받들어 모신다. 부모가 사랑 베풀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백성이 받들어 모신다. 부모가 사랑 베풀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자식과 며느리가 효성스럽게 따른다. 신하가 충성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작위와 녹봉이 찾아온다. 자식과 며느리가 효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명성이 따른다. 그러므로 높은 절개를 가지고 게을리 하지 않으면 하고자 하는 바를 얻을 것이다. 게을리 하면 얻을 수 없다. (p. 726)

"연못이 깊고 물이 마르지 않으면 (그곳에 신이 있다고 여겨서) 옥을 빠트리는 제사를 드린다." (p. 727)

"교룡은 물을 얻어야 신령함을 세울 수 있고, 범과 표범도 심산유곡에 있어야 비로소 위엄을 떨칠 수 있다." (p. 731)

"비바람은 일정한 방향이 없어 (무심한 까닭에 그것을 맞은 사람이) 원망과 노여움을 갖지 않는다" (p. 732)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얻고자 하는 일은 믿을 수가 없다." (p. 745)

현명한 군주는 사람을 임관할 때 그 장점만 고려할 뿐 단점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고, 세우지 못하는 공이 없다. (p. 747)

"들판에 나다니지 않는다 해도 말을 버리지 말고, 후일을 위해 잘 키우고 간직해야 한다." (p. 749)

도란 뭇 사물을 도와서 생장 발육하게 하고, 각자 그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고을을 다스릴 수도 있고, 나라를 다스릴 수도 있고, 천하를 다스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도가 말하는 바는 하나지만 쓰임새는 다양하다"고 한다. (p. 754)

"하늘을 따르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주고, 하늘을 거스르는 사람은 하늘이 버린다." (p. 760)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지혜를 쓰지 않고, 성인의 지혜에 맡긴다. 자신의 능력을 쓰지 않고, 뭇사람의 능력에 맡긴다. 그러므로 성인의 지혜로 생각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뭇사람의 능력으로 일을 하여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자신을 버리고 천하의 지혜와 능력으로 (나랏일을) 일으키면 자신이 편안하고 복이 많다. 어리석은 군주는 홀로 자신의 지혜를 쓰고, 성인의 지혜에 맡기지 않고, 홀로 자신의 능력을 쓰고 뭇사람의 능력에 맡기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괴롭고 화가 많다. 그러므로 "인재를 등용하지 않고 독재하는 군주의 나라는 고생스럽고 재앙과 불행도 많다"고 한다. (p. 764)

"스스로 중매하고 나서는 여자가 추하고 믿을 수 없는 것과 같다." (p. 765)

무릇 사람이란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지 않음이 없다. 이 때문에 천하와 함께 이익을 같이 하는 사람은 천하의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고, 천하의 이익을 독점하려는 사람은 천하의 사람들이 그를 없애려고 도모한다. 천하의 사람들이 없애려고 도모하면, 군주의 자리에 있어도 반드시 멸망한다. (p. 790)

계획에 의하여 경제 관리를 하지 않는 군주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가운데 어느 때 시작하고 어느 때 마칠지 모르고 공사를 벌여 백성을 동원하여 궁실과 대사를 짓습니다. 백성이 농사철을 놓쳐도 군주는 그 봄철의 (경제) 정책을 잃어버린 것을 알지 못하고, 또 여름철과 가을철의 (경제) 정책을 잃어버린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 결과) 백성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식을 파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용맹하고 성질 급한 사람은 포악함이 드러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은 빌어먹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주가 법률을 시행하면, 백성은 (형벌에 의한) 죽음을 피할 수 없어서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계획에 의하여 경제를 관리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p. 827)

백성은 빼앗기면 분노하고 주면 기뻐하니 사람의 마음이 본래 그러합니다. 선왕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주는 모습을 보이고 빼앗는 흔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p. 972)

지혜로운 사람은 귀신을 부리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믿는다. (p. 998)




'엄마, 아빠가 없다.'

만화 영화가 끝나면 틀림없이 극장 앞에 서있겠다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 꼬마만을 극장으로 들여보내며 엄마는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을 했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됐던지, 혹은 미리 길이 어긋날 것을 알고 있었던 탓인지 엄마는 한 가지를 덧붙였다.

"만화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아도 어디 가면 안돼. 꼭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

둘은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겨울 추위와 바람은 조그만 두 아이를 그냥 세워두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끝부터 얼어 들어왔다. 그때 꽃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다. 동생을 보호하는 형으로서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래서 여덟 살 짜리 형은 다섯 살 짜리 동생의 손을 꼭 쥐고 걷기 시작했다.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극장에서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우리 집까지는 대략 십여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어른의 잰 걸음으로 두어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고, 차로는 십여 분이면 족할 거리인데. 땡전 한푼 없는 두 꼬마에게 그 길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지가 않았다. 어렴풋이 집이라고 생각되는 쪽으로 두 꼬마는 걷고 또 걸었다.

집으로 오는 길의 백미는 한강이었다. 나는 울먹이는 동생을 등에 업고 거짓말처럼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다리 위를 걸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까마득히 앞을 가린 눈 덕분에 다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2킬로 정도나 될까 싶은 다리가 꼬마들에게는 영원처럼 길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리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조금씩 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네 시간 넘게 쉬지 않고 걸어서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멀리로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눈물보가 터져버렸다. 뛰듯이 집으로 들어서자 집안의 온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두 아이를 잃어버리고 혼이 빠질 만큼 놀랐던 엄마와 아빠는 들어서는 두 꼬마를 보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두 꼬마의 무용담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모험은 그렇게 끝이 났다.

'휴~'

『관자』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그리고는 그 날이 떠올랐다. 걷고 또 걸어도 끝날 것 같지 않던 눈보라 속의 그 길이 되살아났다. 『관자』의 무엇이 삼십 년 가까이 흘러버린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의 그 막막하고 가슴 뛰던 모험을 불러온 것일까? 둘 사이의 무엇이 닮아 있었던 것일까?

그는 쉽게 볼 사람이 아니다. 후에 『관자』를 읽게 될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 어떤 놈이 그를 소인이라 부른 적이 있다. 공자가 그 놈에게 그런 말을 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 그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아직 오랑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갔지만 모두 서로의 길 속에서 고뇌하고 갈등하고 조화시키려고 애썼을 것이다.

잭 웰치의 '위대한 승리'를 읽고 쓴 내 북리뷰 꼬리에 사부님의 댓글이 달렸다. 무자비한 기업가로 명성을 날린 20세기말의 경영자와 2700여 년 전, 중국 대륙을 다스렸던 관중은 도대체 어떻게 닮아 있었던 것일까? 나는 관중이 궁금해졌다. 『관자』가 읽고 싶어졌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 나는 그렇게 끌리기 시작했다. 나의 『관자』읽기는 그렇게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

『관자』를 읽어나가는 것은 눈보라를 뚫고 한강을 건너던 그 길과도 같았다. 어떤 속도로 몇 시간을 읽으면 끝장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어림짐작이나마 할 수 있었던 그 동안의 책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넘치는 회사일과 부족한 시간 사이에서 나는 쫓기듯이 『관자』를 읽었다. 덕분에 때때로 비슷한 내용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처음 마음과는 달리 그냥 몇 페이지쯤 뛰어넘어 버리고픈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것은 곳곳에 감탄을 자아내는 금언을 품고 있는 책의 매력 때문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연구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내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더듬더듬 책을 읽었다.

'모든 지식은 단지 회상일 뿐'이라는 플라톤의 말은 옳았다. 하늘 아래 새 것은 없고 새로운 편집만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관자』가 증명하고 있었다. 21세기를 관통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도(道)가 온전히 그 속에 녹아 흐르고 있었다. 처세와 관계의 진수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제 1편 목민(牧民)으로 시작해서 제 86편 경중(經重) 경(庚)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저술은 정치, 문화, 경제, 사회, 인간관계와 자기계발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 데 있고, 정치가 피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데 있다." (p. 19)

2700년이라는 시간차는 정치의 중심을 관통하는 한마디로 의미를 잃어버렸다.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풍족하면 영광과 치욕을 안다.'는 솔직한 관중의 이야기는 이제 겨우 생존을 넘어 그 다음을 생각하는 우리에게도 낯설지가 않았다. 관중은 끊임없이 백성이 정치의 근본이며, 백성을 근본으로 삼지 않는 왕업과 패업은 불가능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수직적인 구조의 군신 관계와 교화의 대상으로만 모습을 드러내는 우매한 백성에 대한 관중의 견해는 양말 속의 작은 모래알처럼 끊임없이 불편한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은 지난 주의 책, '강의'를 통해 신영복 교수님께서 들려주신 '시제'에 대한 합의를 통해 다소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西周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의 인권 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관을 이유로 들어 그를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사상가로 매도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전 독법은 그 시제를 혼동하지 않음으로써 인(人)에 대한 담론이든 민(民)에 대한 담론이든 그것을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이 고전의 담론을 오늘의 현장으로 생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 141)

또한 관중이 들려주는 군주와 백성의 도가 결코 일방적인 강요가 아니라는 것은 솔선수범하는 군주의 도(道)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관중이 말하는 군주와 백성은 어느 한 쪽만으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비목어(比目魚), 비익조(比翼鳥)의 관계인 셈이다.

"금령이 군주 자신을 제약할 수 있으면 명령이 백성에게 시행된다."

관중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나는 책의 앞 부분을 겨우 지날 무렵 무작정 책을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어진 짧은 시간에 『관자』의 이야기를 적절히 걸러낼, 너무 조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성기지도 않은 나만의 필터가 필요했다. '강의'에서 신영복 교수가 고전을 읽는 중심으로 '관계'를 품었던 것처럼 내게도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비교적 쉽게 '수신(修身)'이라는 기준을 마음에 품었다. 그리고 대신 다른 것을 조금 놓아주었다.

나는 군주가 되어보기도 하고, 때로 신하가 되어보기도 했으며, 또 때로는 백성이 되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다스리는 사람과 조언하는 사람 그리고 섬기는 사람의 입장을 수시로 옮겨 다니며 조금씩 나아갔다. 관중은 내게 사치하지 말라고 이르고, 지혜롭게 행하라고 권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라고 다독였다. 그렇게 숨가쁘게 관중의 꽁무니를 쫓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얼어붙은 듯이 멈추어 섰다.

길면 자르고 짧으면 이어주며, 넘치면 덜고 비면 채워 넣어야 한다. (p. 452)

나는 이 짧은 글 앞에서 잭 웰치를 떠올렸다. '매일매일 베스트 프랙티스를 찾아내고 이를 발전 시키면서 미친 듯이 일하라'고 말하던 그가 이제는 관중의 입을 빌어 나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속삭였다. 행하라고 재촉했다. 재고 따지는데 온 힘을 다 쏟아 탈진하지 말고 움직이라고 다독였다. 책의 후반에 이르러서야 나는 혹시 이 책의 주인공은 환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활을 겨눈 이를 재상으로 삼아 끊임없이 묻고 길을 찾아 행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환공이야말로 진정한 군자가 아니었을까.

『관자』는 수많은 생각과 연상을 불러일으키며 뭉치고 연결되고 끊기고 흩어지기를 거듭했다. 어떤 것은 내게 남았고, 어떤 것은 내 그릇을 넘쳐 흘러내렸다. 그래서 책을 덮은 지금도 『관자』는 진행형이다. 언제고 다시 수신(修身)이라는 기준 대신 치국(治國)이나 평천하(平天下)를 가슴에 품고 다시 『관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동생을 등에 업은 채 눈보라를 뚫고 한강 다리를 거의 다 건넜을 즈음, 나는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보았다. 청소부 아저씨들이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장작을 태우던 드럼통 앞에 서서 난 꽁꽁 곱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녹이고 다시 집을 향할 용기를 충전했다. 긴 터널을 지나는 것과도 같았던 힘겨운 『관자』읽기의 중간에 나는 여러 개의 불타는 드럼통을 만났다. 덕분에 멈추지 않을 수 있었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었다. 힘겨웠던 『관자』읽기의 작은 끝에서 당분간 무용담은 계속될 듯 하다.

'완역본'에 대해서

지난 6월에 난중일기 완역본을 읽고 나는 이렇게 써두었다.

난중일기 완역본은 완벽에 가까운 반쪽 짜리 책이다. 노승석씨는 8500자를 새롭게 해석하고 100여곳에서 150자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고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자랑하지만 그것은 독자가 '인간' 이순신을 좀더 깊이 가슴으로 이해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완벽에 가까운 반쪽 짜리 책'이라는 표현 덕분에 저자인 노승석씨의 항의 전화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아마도 저자는 꽤나 속이 상했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하소연을 늘어놓은 그는 표현을 좀 다듬거나 삭제해주기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생각과 핑계로 그러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관자』를 읽고 보니 '완역본'의 의미에 대해서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완역본'은 그 자체가 지니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 이후를 위한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해석하고 정리했을 그 노력에 감탄과 감사를 보낸다. 『관자』의 각 장은 따로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넓고 깊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피를 토하는 노력으로 완성된 완역본의 토대 위에 좋은 연구가 이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을 빌어 난중일기 완역본의 저자 노승석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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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11.21 18:37:06 *.253.249.10
"香山에게 보내는 편지"
사실 나도 고전을 읽으면 좀 아니 많이 촌스럽다. 나이든 내가 촌스러움을 느끼는데 젊은 이는 정말 정말 꼬리타분함을 맛볼 것이다. 그리고는 영영 고전과 이별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향산!
자네의 실력으로 고전을 새로이써서 서양의 아이스크림 향기가 나게 할수는 없을 까?
사실 구본형선생님의 "사람에서 구하라"하는 책이 그래도 진보적인데 자넨 더욱 더 고전문학을 발전된 경영서, 청치서로 발전 시킬수 있으리라 믿는다. 생각해 보지 않겠나...

째즈음악과 옛이야기의 만남을 시도해 보았으면,

내가 좀 과했나~~~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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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1.22 07:46:09 *.72.153.12
향산, 재미나게 잘봤어. 고마워.
책 번역하게 된 거 다시 한번 축하한다.

비익조, 비목어의 의미를 여기서 배우네... 관자를 읽을 때는 사랑이야기에나 나오는 비익조가 왜 여기에 나오나 했었다.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는 새, 비익조. 군주와 백성이 나란히 날개짓을 해야 날아간다. 왕업, 패업을 이룬다는 말을 비익조, 비목어 상징 하나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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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11.22 15:52:22 *.223.85.195
초아선생님~ 하하~ 제가 '관교지교'라고 써놓았군요. 창피한 마음에 얼른 고칠까 하다가 증거를 지우는 것 같아서 그냥 두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고치겠습니다.

항상 좋은 말씀으로 격려해주셔서 어떻게 감사하단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고전이 조금 좋아졌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책을 쓰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 지 잘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고전의 현대적 해석과 적용이라는 주제를 마음에 품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정화야~ 매번 읽어주고 댓글도 써주고... 많이 고맙네. 그리고 번역... 열심히 해볼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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