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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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管子)
김필수, 고대혁, 장승구,
신창호 역, 소나무
1. 저자에 대하여

관중(管仲: BC?? ~ BC 645)은 관경중(管敬仲)이라고도 하며 춘추시대 초기의 정치가이다.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이며, 영상(穎上: 지금의 안휘성 영상현) 사람이다. 관중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출신은 분명하지 않다.
BC 7세기 경 당시의 중국 주(周)나라 왕실은 이미 통제력을 잃고 있었으며, 이에 실력있는 제후가 패자(覇者)로서 천하를 호령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패자란 우선 주왕조의 종주권을 존중하면서 "제후 회의"를 소집하여 회맹(會盟)을 행하고 중원 제국을 위협하는 주변 소수민족의 격퇴와 중원의 질서 유지를 주된 임무로 삼고 있었다.
최초의 패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한 인물은 바로 제나라의 환공(桓公)이었다. 제나라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에 있었던 조그만 나라였으며, 환공도 그렇게 탁월한 인물을 아니었다. 그러한 그가 춘추오패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관중의 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자(孔子)는 이러한 관중의 공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환공이 비참한 수단에 호소하지 않고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관중은 환공을 보좌하여 제후의 맹주가 되게 하고 천하의 질서를 회복했으며, 그 은혜는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 만약 관중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랑캐의 풍속을 강요 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관중 없이 환공의 패업이 없고 중원의 평화도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현재 관중에 대한 기록은 ≪사기≫ 「관안열전(管晏列傳)」을 통해서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관중은 친구 포숙아(鮑叔牙)와 죽마지우(竹馬之友)였다. 이 두사람의 우정에 대해서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를 통해서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일찍이 관중은 집이 가난하여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관중은 자주 포숙아를 속이기도 하였지만 포숙아는 관중의 인간성과 뛰어난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최후까지 우정을 버리지 않았다.
당시 제나라의 왕은 이공(釐公)이었는데, 이공에게는 제아(諸兒)•규(糾)•소백(小白)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관중은 이 중 규의 스승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시기에 친구인 포숙아는 소백의 스승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관자(管子)≫ 「대광편(大匡篇)」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포숙아는 이 임명에 불만을 갖고 투덜댔다. 그는 막내인 소백(훗날의 환공)에게 계승할 자리가 돌아올 가능성이 없음을 짐작하고 그러한 사람의 선생에 취임하더라도 장래의 전망이 열릴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관중은 병을 칭탁하고 집에 틀어박혀 버린 포숙아를 찾아가 세 사람의 상속 후보자의 인물 비교를 시도하면서 소백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결국 장래의 제나라를 짊어지고 설 사람은 규와 소백일 것이다. 나는 소백의 재능을 인정한다. 그분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높은 견지에서 사물을 포착하는 스타일이다. 인물의 스케일이 남다르게 웅대함으로 여간해서 남에게 쉽게 이해되지를 않는다. 순서상으로 말하면 규가 먼저지만 불행히 장래 어쩌다가 우리 제나라가 하늘로부터 재난을 받을 경우 규로서는 좀체로 난국을 극복해 나가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숙아여! 그렇게 되었을 경우 국가 안태를 위해서는 자네 힘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라네."
포숙아는 관중의 설득을 듣고 비로소 소백의 소승이 될 것을 승낙했다고 한다. 그 후 이공이 죽고 장자인 제아가 뒤를 이어 제나라 14대 왕 양공(襄公)이 되었다. 그런데 양공은 도저히 군주의 그릇이 못되었다. 무도한 행동이 많아 결국 사촌인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피살되었다. 이때 규는 관중과 함께 이웃나라 노(魯)로 망명하고 소백도 포숙아와 함께 거(莒)로 달아나 난을 피했다. 그러나 공손무지도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자신에게 원을 품은 자에 의해 피살당했다.

이에 공석이 된 왕좌를 둘러싸고 급히 중신회의가 열리고 거에 있던 소백에게 사자가 파견되었으며, 이 때 노나라도 제나라에 친노(親魯)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곧바로 규를 제나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관중은 별동대를 이끌고 제나라의 도읍지 임치(臨淄)로 향하는 소백군을 요격했는데 직접 활을 쥐고 소백을 겨냥했다.
화살은 소백에게 명중하여 소백은 쓰러지고 관중은 돌아가서 그 사실을 규의 본대에 보고했다. 이미 경쟁 상대가 없어진 상태에서 안심한 규는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유유히 임치로 향했다. 그런데 관중은 여기에서 중대한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소백을 명중시켰다고 생각했던 화살은 소백의 혁대 바클에 맞았으며, 현명하게도 소백은 그 자리에서 죽은 시늉을 함으로써 위기를 넘기고, 관중이 물러간 뒤를 틈타 곧장 임치를 향해 달렸던 것이다. 이리하여 규를 옹호하는 노나라 군이 제나라 영내에 들어섰을 때에는 소백은 이미 제왕에 옹립되어 있었다. 노나라는 전후를 돌봄이 없이 일전을 시도했으나 어이없이 패하고 제나라의 요구에 굴하여 그들이 옹립해 오던 규를 스스로의 손으로 살해해야만 하는 파국에 몰렸다. 제나라의 왕위를 둘러싼 골육상쟁은 이리하여 소백 진영의 승리로 끝났던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관중의 처분이었다. 소백은 자신에게 활시위를 당겼던 관중을 가차없이 죽이려 하였지만, 관중의 절친한 친구인 포숙아는 소백에게 관중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

"신은 다행스럽게도 처음부터 전하를 따랐기에 오늘 이렇게 전하께서 왕좌에 앉는 영광을 함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신에게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전하께서 제나라 일국만을 통치하실 생각이라면 고혜(高혜, 혜=人+奚)와 저 둘만의 보좌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천하의 패자를 바라신다면 관중 외에는 적임자가 없습니다. 관중을 쓰는 나라는 반드시 천하에 중시될 것입니다. 어떻게든지 관중을 데려와야 합니다."
환공은 자신이 신뢰하고 있던 포숙아의 말을 믿기로 하고 곧장 노나라에 관중의 인도를 요구하였다. 이에 관중을 접견한 환공은 관중의 뛰어난 식견에 감복하고 그를 재상에 임명하여 국정을 모두 맡겼다. 관중은 40년간 제나라를 다스리면서 대내외적으로 개혁정책을 단행하여 정치•군사•경제적인 면에서 모두 제나라를 춘추오패의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즉, 관중은 대외적으로는 패자로서 제나라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대내적으로는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정책에 힘을 경주했던 것이다. '농업의 보호 장려', '소금과 철, 금 등 중요산업의 생산관리', '균형재정의 유지', '물자의 유통 및 물가의 조정', '세제 및 병역의 정비', '인재등용' 등은 바로 그가 시행한 주요 정책들이다.

- 관중의 묘 -
관중은 나라를 유지하는 정신적 지주를 '사유(四維)', 즉,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 보았다. '예'는 절도를 지키는 것, '의'는 자기선전을 하지 않는 것, '염'이란 자기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 '치'란 남의 악행에 끌려 들어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 '사유' 중에서 하나가 없으면 안정이 무너지고, 두 개가 없으면 위기에 빠지며, 세 개가 없으면 전복되고, 네 개가 없으면 멸망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관중이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후세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총결하여 쓴 ≪관자(管子)≫라는 책 때문이다. ≪관자≫는 선진시대의 전적 중에서 중국의 고대 경제사상자료가 가장 풍부하게 보존되어 있는 저작이다. 현존하는 ≪관자≫는 서한 말기에 유향(劉向)이 그가 수집한 564편 중에서 중복되는 것을 삭제하고 편집한 것인데, 후에 다시 10편이 소실되어 실제로는 76편만 남아 있다.

- 관중 기념관 -
≪관자≫는 정치, 경제로부터 의식형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국가관리와 인민통치를 위한 이론과 원칙을 제시한 책이다. "창고가 풍족하면 백성이 예절을 알고, 의식(衣食)이 풍족하면 명예와 치욕을 안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관자≫에서 제시한 경제사상의 이론 기초이다. ≪관자≫는 재정, 금융, 화폐, 무역, 세제 등의 경제 각 분야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논술한 책으로, 고대 전적 중에서 이보다 상세하게 경제분야를 논한 저작은 없을 정도이며, ≪관자≫에서 확립된 경제사상은 몇천년간 중국의 봉건경제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관중의 동상 -
관포지교(管鮑之交) – 관중과 포숙아

- 포숙아의 초상 -
관중은 가난하였고 포숙아는 비교적 부유하였지만 그들은 서로 이해하고 서로 믿으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그들이 함께 장사를 할때 가난한 관중은 출자금을 조금냈지만 포숙아는 이익을 똑같이 나누면서 관중은 집이 가난해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이해하였다. 오히려 “돈이 이만하면 모자라지 않겠느냐”고 묻기까지 하였다.
관중의 말을 듣고 일을 시작했다가 일을 망친적도 여러번이였다. 그래도 포숙은 성내지 않고 “일이 꼬이는 것은 자네 탓이 아니라 운이 따라 주지 않아서 그런거니까 너무 미안해 하지 말게나>라고 하면서 관중을 위안하였다. 관중은 선후로 3차례 관직에 오른적 있는데 번마다 파직되였다. 그럴 때마다 포숙아는 “관중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아직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관중이 참군한 후 작전 도중 그가 도망을 쳤는데 포숙아는 관중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감싸주었다.
세월이 흘러 관중이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는데, 환공이 찾아와 관중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푸속에게 정사를 맡기는 것이 어떨지를 물었다. 관중이 대답했다.
“포숙은 군자입니다. 아무리 큰 나라라고 하더라도 정당하게 주는 것이 아니면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사를 맡기기에는 적당치 않습니다. 그 성격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정도가 지나칩니다. 그래서 하나의 악을 보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합니다.”
평생 포숙의 도움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 뜻을 펼치게 되었지만 정작 기회가 되어 포숙을 추천해야 할 자리에서 관중은 포숙을 추천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관중을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관중은 포숙이 그 자리와 지위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중은 ‘그 사람에게 맞는 적절한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있었고, 적합한 사람이 적합한 자리에 있지 못하면, 결국 개인은 몸을 망치고 조직은 일을 망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포숙아가 죽은 후 관중은 그의 묘앞에서 울음을 그칠수 없었다. 관중은 포숙아에 대한 고마움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전한다.
“내가 가난했을 때, 포숙과 같이 장사를 하였다. 이익을 나눌 때, 내가 항상 많이 가져갔으나, 포숙은 내가 재물을 탐한다고 탓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포숙을 대신해 일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여 그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으나, 그는 내가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는 어떤 때는 운이 좋지만, 어떤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3번 관리가 되었으나, 3번 모두 왕에게 쫓겨났다. 포숙은 나의 행실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고, 다만 좋은 시기를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여겼다.
나는 예전에 3번 전쟁하여 3번 모두 패하여 도망쳤다. 포숙은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지 않고, 나에게 모셔야 할 노모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규왕자가 패하여 죽을 위기에 처해, 감옥에 갇혀 굴욕을 받을 때, 포숙은 내가 부끄러움이 없다고 여기지 않고, 내가 작은 일로 부끄럼움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공명을 천하에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고 있었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이다.”

- 포숙아 기념관 -
관중의 사상 - 지금 왜 ‘관자’를 읽어야 하는가?
오늘날 관중이 새롭게 부상하는 것은 그의 지도력이 우리 시대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를 중시하고 국제 외교에도 능숙했던 대단히 실용주의적 정치인이었다. 그는 경제 정책의 성공을 기초로 제나라의 국력을 키워서 국제 외교에서도 주도권을 장악하고, 중국을 이미족의 침입에서 구출한 성겅한 정치인이자 유능한 경영자였다.
지금 중국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실용주의 노선 아래 커다란 번영과 발전을 이로구 있다. 관중의 실용주의적 부국강병 사상은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새롭게 중국을 바꾸고 있다.
우리는 중국을 공자, 맹자의 나라, 유교 국가로만 보아서는 중국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현대 중국의 현실 속에 공자와 맹자의 이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인들은 철저하게 실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인과 의는 그들의 대외적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명분에 만족하지 않고 실리를 매우 중시한다. 실리를 최고로 여기는 중국인들의 사상과 행동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자라는 고전을 읽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중국 사상이라 하면 4서 5경과 같은 유가 경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껏 벗어난다고 해도 노자와 장자의 도가 사상이 고작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나라와 중국인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중의 사상을 담은 관자라는 고전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은 공자와 맹자의 유가 경전에 나오는 것과 같은 도덕의 왕국이 아니라, 실리를 위해서는 어떤 행동도 불사하는 아주 실용적인 국가다.
관중은 춘추전국 시대의 대혼란 소게어 난세를 극복하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실용적인 대안을 모색하였다. 관중이 추구한 것은 이상주의자의 공허한 유토피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비자의 법가와 같이 무자비하고 냉혹한 현실주의도 아니다. 이상을 간직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대안을 모색하였다. 관중은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에 기초하여 정치, 경제, 사회를 이끌어갈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시장 경제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시장 법칙에 기초한 경제 번영을 추구하였다. 도덕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사회 질서와 번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관자의 최고 이념은 ‘질서’와 ‘부강’이다. 군주가 어떻게 국가를 잘 유지 발전시킬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서은 비단 정치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의 실용주의적 태도는 춘추전국시대의 대혼란 속에서 난세를 극복하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였다. 그는 포숙아의 천거로 제(齊)나라의 재상에 오른 뒤 나라를 제후국 가운데 최강국으로 만들고 중국 천하를 움직였다.
그러나 도덕과 예의를 절대시하는 유교적 눈으로 볼 때 관중은 세속적 인물에 불과할 수 있다. 성리학을 추종한 조선 유학자들도 그를 정당하게 평가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 관중은 고사 속 존재에 그쳤다.
경제적 번영에 매달리는 중국에서는 지금 그에 대한 평가가 매우 후하다. 중국 인민일보 웹사이트는 2005년 ‘공자를 중시하고 관자를 경시한 것이 중국 역사의 최대 비극’이라고까지 했다.
2.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7) 우리는 중국을 공자, 맹자, 유교의 나라, 유교 구가로만 보아서는 중국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현대 중국의 현실 속에 공자와 맹자의 이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인들은 철저하게 실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仁과 義는 그들의 대외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명분에 만족하지 않고 실리를 매우 중요시 한다. 실리를 최고로 여기는 중국인들의 사상과 행동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자’라는 고전 양식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
(8) 관자의 최고 이념은 질서와 부강이다. 군주가 어떻게 국가를 잘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것은 비단 정치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이 어떻게 조직과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춘추전국의 오랜 전쟁과 혼란 속에서 터득한 시스템 경영의 최고 노하우를 관자는 보여주고 있다.
(33) ‘(백성에게) 주는 것이 도리어 받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다.
(37) 천하에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를 적절히 쓰는 군주가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천하에 재물이 모자람을 걱정하지 말고, 재물을 분배할 인물이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힘써 할 일을 아는 사람은 관리를 세울 수 있고, 사심이 없는 사람은 장관을 맡길 수 있다. 때에 따라 힘써 할 일을 깊이 알고 인물등용에 밝으며 관리를 적재적소에 잘 기용할 수 있는 사람은 군주로 받들 수 있다.
(41) 게으른 사람은 일을 이루지 못하나, 빈틈없이 일을 크게 꾸미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신에 비길 만하다. 신에 견줄 수 있는 경지도 알고 보면 그 사람의 안에 축적된 역량인 것이다. 게을러서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다른 사람의 도움만 기다린다. 안에 힘을 지닌 사람은 자신 잇고 여유롭게 일을 처리하지만, 다른이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은 (항상 불안하고 수고롭게) 바깥의 도움을 기다리게 마련이다.
(42) 아침부터 자기의 할 일을 잊으면 결국 저녁에 그 공(功)을 잃어버린다. 사악한 기운이 몸 안에 들어오면 반듯하던 안색도 초췌해진다.
(43) 오늘의 일을 잘 모르면 옛날을 비추어 보고,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겠거든 과거를 살펴보아라. 만사의 발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귀결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45) 능력이 마땅하지 않은 사람과 일을 하지 말고, 불가능한 일을 감행하지 말고,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몹쓸 일을 하거나, 안될 일을 강행하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결국 고생스럽기만 하고 보람이 없다.
(48) 옳은 것을 보면 기뻐하되 분명한 표창이 있어야 하고, 옳지 않은 것을 보면 미워하되 실직적인 제재(刑)d 있어야 한다. 상벌이 보이는 곳에서 실행되면 보이지 않는 곳이라 해도 어찌 감히 함부로 행동하겠는가.
(53)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고 , 십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서 한 번 거두는 것은 곡식이고, 한 번 심어서 열을 얻는 것은 나무이며, 한 번 키워서 백배를 얻는 것은 사람이다. 인재를 키우면서 귀신같이 마음대로 그를 쓸 수 있을 것이니, 나라 다스리기를 귀신같이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군주의 자격이 있다.
(59) 덕은 높은데 지위가 낮은 사람의 경우는 신중함이 지나친 경우라 하고, 덕은 낮은데 지위가 높은 이의 경우는 경솔함이 잘못된 것이라 한다. 차라리 군자처럼 신중함에 지나침이 있을지 언 정, 소인처럼 경솔함 때문에 잘못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군자처럼 지나침에 대해서는 그 원망이 적으나 소인같이 경솔함이 잘 못되면 그 재앙이 크다.
(82) 지혜로운 사람만 그것을 알게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게 하면 백성을 부릴(敎) 수 없다. 재능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게 하고, 재능 없는 사람은 할 수 없게 하면 백성을 부릴 수 없다. 한 번 명령하여 백성이 복종하지 않으면 위대한 정치(大善)를 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없으면 큰 업적을 이룰 수 없다.
(88) 옳은 말이면 반드시 받아들이고 , 그른 말이면 반드시 폐기하고 공이 있으면 ,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을 하면 어찌 다스릴 수 없겠는가? 아직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는 아직 형세와 장비를 갖추지 못하여 다스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94) 사람 다스리기를 물을 다스리듯이 하고, 인재 기르기를 육축을 기르듯이 하며, 인재쓰기를 초목을 쓰듯이 한다. 군주 스스로 도에 따라 법을 행하면 여러 신하들이 법령에 복종하며, 관리들은 기강이 엄정하여 감히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지 못한다.
(104) 하늘을 본받아 덕에 함께하고, 땅을 본받아 공정하게 편애하지 않는다. 해와 달고 더불어 짝을 이루어 셋이 되고, 춘하추동 사시와 더불어 다섯이 된다. 백성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이익을 베풀어야 하고, 백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편애를 버려야 한다.멀리 있는 군주를 불러 귀부하게 하려면 가까운 국내 정사부터 잘 다스려야 하고, 화란을 막기 위해서는 원한이 없도록 한다. 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고, 군주의 높은 자리를 안정되게 하기 위해서는 백성과 이익을 함께한다.
(118) 군주는 반드시 글에 재능이 있고 무에 위엄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맡은 직책을 익히는 것은 승리의 조건이고, 때를 따르는 것은 승리의 총책이고, 방책이 변화무쌍함은 승리의 징조다. 의(義) 를 실천하는 것은 승리의 도리이고, 명분과 실적은 승리하기 위해 급히 해야 할 바고, 공격의 시기를 선택하는 것은 승리하기 위해 할 일이다. 공격할 곳을 밝게 살피는 것은 승리를 이룰 수 있는 것이고, 병장기를 온전히 갖추는 것은 승리의 근원이 되고, 행동을 은폐하는 것은 승리의 근본이 된다.
(125) 가장 좋은 전쟁은 이웃나라의 땅을 얻는 것이 아니라, 폭군을 벌하는 것이다.
(137) 가장 좋은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요, 그 다음은 단 한 번 싸워서 이기는 것이다. 대승이란 여러 번 이긴 것을 모은 것이지만, 그 모은 것이 의로운 전쟁 아닌 것이 없어야 대승이라고 할 만하다. 대승이란 이기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146) 민심을 얻는 방법은 (백성을) 이롭게 해주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백성을) 이롭게 해주는 방법은 가르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165) 현명한 사람은 난세에 처하여 도가 행할 수 없음을 잘 알아서 숨고, 겸손히 낮추는 방법으로 형벌을 피하고, 고요히 침묵하는 방식으로 화를 면한다. 그것을 피하는 것이 마치 여름에 그늘에 나아가는 것과 같으며, 겨울에 따뜻한 곳에 나아가는 것과 같아, 추위와 더위의 재난이 미치지 않는다.
(166) 현명함은 바로 지혜로움이고, 지혜로움은 발로 현명함이다. 흥성한 뒤에는 곧 쇠락이니, 현명하고 지혜로움으로 크게 행하여야 한다.
(171) 새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가려고 하면 남쪽에 도달하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날아가려고 하면 북쪽에 도달한다. 큰 방향이 올바르면 조그마한 문제에 방해받지 않는다.
(172) 중정(中正)은 다스림의 근본이다. 귀는 듣는 것인데, 들을 때는 반드시 사실을 들어야 한다. 들음이 자세한 것을 ‘귀밟음’이라고 하다. 눈은 보는 것인데, 볼 때는 반드시 사실대로 보아야 한다. 보는 것이 자세한 것을 ‘밝음’이라고 한다. 마음은 생각하는 것인데, 생각은 반드시 법칙에 맞아야 하며, 언어가 올바름을 얻은 것을 ‘지혜’라고 한다. 총명함과 지혜로 오롯이 하고, 오롯이 하여 어둡지 않으면 잘 다스릴 수 있다.
(177) 흩어져 무한에 이르기에 언어로 형언할 수 없다. 크게는 주합, 즉 우주 밖에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광대하고, 작게는 그 안에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것까지 포함한다. 그러므로 천지를 포용하는 주머니라고 말한 것이다. 그 이치는 지금 전하지 않고, 하나로 정리되어 책으로 다하지 못하니, 정리하여 다스릴 수 없다. 받아들이는 것이 많으면 풍부하고, 때에 맞으면 마땅하다. 그래서 성이의 도는 광대하고 마땅함을 얻을 것을 귀하게 여긴다.
(181) 살아 있으면서 사멸하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고, 군주기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도 그것을 오래 유지하게 못하게 하는 것이 네 가지 있다. 글기는 것(喜), 노여워 하는 것(怒), 미워하는 것(惡), 하고 싶은 일에 푹 빠지는 것(欲)은 나라를 패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이것을 보배로운 교훈으로 삼는다.
(183) 어떤 사람을 아주 좋아해도 사사로이 이롭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을 아주 미워해도 사사로이 해롭게 해서는 안 된다.(통달한 선비는 남의 권세에 의존하지 않는다.)
(187) 고귀함을 얻고자 할 때 내가 고귀하게 해 주니, 사라들은 나를 예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이익을 얻고자 할 때 내가 이익을 주니 사람들은 나를 어질다고 말하며, 알고자 할 때 내가 알려주니 사람들은 나를 총명하다고 말하다.
(189) 무릇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 나라의 장점 때문이며, 사람이 스스로 실수하는 것은 그가 잘하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못에 빠져 죽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은 황야에서 사냥하거나 싸우다가 죽는다.
(191) 신하된 사람이 나라에는 아무 공로도 없으면서 자기 집은 부유하고 나라가 가난하면, 이는 신하 된 사람의 큰 죄다. - 「추언」
(198) “토지를 가지고 한 나라의 군주 노릇을 하면서 경작하고 김매는 일을 힘쓰지 않으면 (남에게) 생명을 맡긴 군주다.”
(216) 성왕이 직접 세상을 다스릴 때, 덕행은 반드시 옳은 바가 있고, 도의는 반드시 밝은 바가 있다. 그러므로 선비는 감히 풍속을 속이고 예법을 달리함으로서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
(223) 나라는 저절로 존중되지 않고, 군대는 저절로 승리하지 않고, 백성은 저절로 부리지 못하고, 명령은 저절로 실행되지 않는다.
(225) 천도의 변화란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가고, 성하면 다시 쇠퇴하는 것이다.
(231) 군주가 고립되어 친밀한 사람이 없으면 신하들이 편당하여 패거리를 이루는 것은, 죄가 아니라 군주의 과실이다.
(232) 군주는 백성에게 3가지 바람이 있는데 그것을 절제하지 않으면 군주의 자리가 위태롭다. 첫째는 요구하는 것, 둘째는 금지하는 것, 셋째 호령하는 것이다.ㅜ요구하면 반드시 얻으려 하고, 금지는 반드시 그치게 하려하고, 호령은 반드시 시행하려 한다.
(233) 이미 호령을 내리고서 다시 바꾸고, 이미 예의를 시행하고서 다시 폐지하고, 이미 도량형을 제정하고서 다시 바꾸고, 이미 형법을 정하고서 다시 바꾸면, 포상이 후해도 백성을 권면하기 어렵고, 사형이 많아져도 백성들이 겁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주에게 굳건한 의지가 없으면 백성에게 의심이 있고, 나라에 일정한 법이 없으면 백성의 힘이 반드시 고갈된다.” 하니 이런 이치다.
(237) 아직 명령을 반포하지 않았는데 백성이 어쩌다 그것을 했다고 포상하면, 이는 군주가 허망하게 준 것이다.
(241) 무릇 군주가 권세가 있는 까닭은 권세에 있다. 그래서 군주가 권세를 잃으면 신하가 그를 제어한다. 권세가 아래에 있으면 신하가 군주를 제어하고, 권세가 위에 있으면 군주가 신하를 제어한다. 그러므로 군주와 신하의 위치가 바뀌는 것은 권세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권세가 신하에게 넘어간 지 일 년이 지나면 신하가 충성하지 않아도 군주가 권세를 빼앗을 수 없고 이들에게 넘어간 지 일 년이 되면 아들이 효도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바로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춘추의 기록에 그 아버지를 죽이는 아들이 있다 했다.
(243) 정치(政)는 바로잡음(正)이다. 정(正)은 만물의 명칭(令)을 바로잡아 정하는 것이다.
(251) 현명한 군주는 친척 때문에 사직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니, 사직이 친족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군주는 자신 때문에 명령을 바꾸려 하지 않으니, 명령이 군주보다. 높기 때문이다. 현명한 군주는 소중한 보배 때문에 그 위엄을 나누지 않으니, 위엄이 보배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군주는 백성을 아낀다며 그 법을 훼손하지 않으니, 법이 백성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259) 자주 전투하면 피로하고, 자주 승리하면 군주가 교만해진다. 교만한 군주가 피곤한 백성을 부리면, 나라에 어찌 원망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극한 선을 싸우지 않는 것이고, 차선책은 한 번 싸워서 대국을 만드는 것이다. 대국을 격파하고 강적을 이기는 것이, 한 번 싸워서 대국을 만드는 극치다. 적을 권변으로 어지럽히지 않고, 적을 괴이함으로 이간질하지 않고, (적에게) 속임수로 승리하지 않는 것이, 한번 싸워서 대국을 만드는 실제의 내용이다
(266) “신하가 군주에게 힘을 다하지 않으면 믿어주지 않을 것이고, 믿지 않으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사직은 안정될 수 없을 것이네. 군주를 섬기는 사람은 두 가지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네.
(301) “무릇 귀천의 의리는 집에서는 부형에게 갖추고, 밖에서는 스승에게 갖추며, 위로는 나라의 군주에게 갖추어야 합니다. 만약 부형과 스승과 군주가 도적을 만났는데 사력을 다해 구하지 않고, 또한 도덕이 간 곳을 모르면 죄로 다스리고 사면하면 안 됩니다.”
(310)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묻습니다.” “널리 현인을 등용하고, 백성을 자애롭게 보살피고, 멸망한 나라를 보존하고, 녹이 끊어진 세가를 다시 이어주고, 형벌을 가렵게 하니,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큰 원칙입니다. 법령을 시행하되 가혹하지 않고, 형벌이 관대하되 함부로 사면하지 않고, 관리들이 너그럽되 법 집행을 어기지 않고, 어떤 곤경에 처해도 천하를 다스림에 법도를 잃지 않으면, (백성이 삶의 터전에 안주하여)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백성이 치세를 향유하니, 이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310) “청하여 묻건대, 믿음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습니까?” “자기 몸을 다스리는 데서 시작하고, 그 다음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며, 천하는 다스리는 데서 완성됩니다.”
(312) 환공이 거에서 제나라로 돌아와 포숙아를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포숙이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군주의 용렬한 신하입니다. 군주께서 신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신은 춥거나 굶주리지 않게 해주시니, 이는 군주의 혜택입니다. 만약 꼭 국가를 다스리려 하시면, 그 적임자는 신이 아니라 오직 관이오뿐입니다. 제가 관이오만 못한 것이 다섯 가지니, 곤대하고 은혜를 베풀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그보다 못하고, 국사를 다스리는 기강을 잡는 것이 그보다 못하고, 충성과 신으로 제후와 동맹을 맺는 것이 그보다 못하고, 예의를 제정하여 사방에서 본받게 하는 것이 그보다 못하고, 투구를 쓰고 북채를 잡고 군문에 서서 백성들 모두 용맹하게 하는 것이 그보다 못합니다. 관중은 백성의 부모입니다. 장차 자식을 다스리고자 하면 부모를 버릴 수 없습니다.”
(313) “관이오는 직접 과인에게 활을 쏘아 과인의 허리띠를 맞혀서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를 등용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 사람은 (자신의) 주군을 위해 한 행동이니, 만일 군주께서 용서하시어 그를 돌아오게 하면 그는 군주를 위해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321) 사농공상 네 부류는 나라의 기둥이 되는 백성이니 서로 섞어 살게 하면 안 됩니다. 섞어서 살게 하면, 말이 어지러워지고, 일이 어지러워집니다. 그러므로 선와들은 선비는 한가하고 조용한 곳에 거처하게 하고, 농민들은 밭과 들판에 거처하게 하며, 장인들은 반드시 관청에서 거처하게 하고, 상인들은 반드시 시장에 거처하게 하였습니다.
(349) 인군께서 오직 우유부단하고 힘써 근면하지 않음이 안 되는 일입니다. 우유부단하면 백성을 지킬 수 없고, 힘써 근면치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371) 군주가 현명한 것 같은데 현명하지 않고, 장수가 현명한 것 같은데 현명한 것 같은데 현명하지 않으며, 그 백성이 농사짓는 것 같은데 농사짓지 않으면, 세 가지 지킬 것을 다 잃어 나라는 망한다. 땅이 널어 농사짓지 않는 것을 토만 이라 하고 군대가 강하지만 옳바르지 않는 것을 인만이라고 하고, 군대가 강하지만 올바르지 않는 것을 무만 이라 한다.
(372) 무릇 땅이 없으면서 부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우환이 있고, 덕이 없으면서 왕업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위태롭고, 조금 베풀면서 많이 얻고자 하는 사람은 고립된다.
(380) 조정에서 자문을 할 때에는 기본 원칙이 있다. 덕이 있는 사람에게 작위를 주면 대신들이 의를 지킬 것이고, 공이 있는 사람에게 녹봉을 주면 구사들이 절개를 지켜서 목숨을 가볍게 여길 것이다. 아랫사람이 추대하는 사람을 장군으로 삼아 병사들을 통솔하면 장수와 병사들이 인화 할 것이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사람들이 공을 숭상할 것이다.
(394) 상대방과 교류는 적게 하면서 많은 사람과 친한 것을 사람을 안다고 합니다. 이은 적게 벌이면서 일을 성공시키는 것을 일을 잘한다고 합니다. 한마디 말만 듣고서 만물을 꿰뜷어 아는 것을 도를 안다고 합니다.
(400) 습붕이 좋습니다. 그의 사라됨은 맣이 알면서도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좋아합니다. 신은 사람에게 덕을 베푸는 것을 어질다 하고, 사람에게 재산을 베푸는 것을 선량하다 한다고 들었습니다. 선으로 남을 이기는 사람은 복종시킬 수 없고, 선으로 남을 기르는 사람에게는 알지 못하는 가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반드시 해낼 사람은 습붕입니다.
(402) “포숙의 사람됨은 정직함을 좋아하나 나라에서 바르지 못한 일을 당하면 굽힐 줄 모르고, 빈서무의 사람됨은 선량함을 좋아하나 나라에서 온당치 못한 대접을 받으면 굽힐 줄 모르고, 영척의 사람됨은 업무에는 능하나 만족할 줄 모르고, 손숙의 사람됨은 말을 잘하나입을 무겁게 하여 침묵할 줄 모릅니다. 신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융통성 있게 굽힐 때 굽히고, 주장할 때는 주장할 줄 알아야 나라의 편안함이 그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습붕이야 말로 그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습붕의 사람됨은 행동할 때는 반드시 그 역량을 헤아려 보고, 일할 때는 반드시 그 재능을 고려합니다.
(414) 군사정책에 우선 힘써야 할 것은 성인과 현자에게 높은 작위를 아끼지 않는 일이다. 지략과 지모와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관직을 아끼지 않고, 기교와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 후한 녹을 아끼지 않으며, 귀와 눈이 총명한 사람에게 재물을 아끼지 않는 일이다. 그러므로 백이와 숙제는 죽은 뒤 이름난 것이 아니라 생전의 행적에 수많은 수행이 있었던 것이고, 무왕이 갑자기 갑자일 아침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훌륭한 많았던 것이다.
(431) 현명한 군주가 그 신하를 등용함은 그 장단점을 모두 알고, 그의 한계를 알아야만 직책을 임명한다. 현인이 그 군주의 신하가 됨은, (신하가 자신의) 장단점과 그의 역량이 이르지 못하는 부분까지 모두 알고서 그 능력을 헤아려 관직을 받는다. 윗사람이 이런 원칙으로 아랫사람을 기르고, 아랫사람이 이런 원칙으로 윗사람을 섬겨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올바름을 기약하면 남녀 백성 모두가 잘 다스려진다.
(437) 군주가 도를 어기고 법도를 지키지 않으면 사사로운 행위를 좋아하면 이를 혼란이라고 한다. 신하가 옛 법을 멋대로 고치고 정해진 규칙을 쉽게 바꾸며 교묘한 말로 군주에게 아첨하면 이를 기어오름이라고 한다. 군주가 혼란하면 포악하고, 신하가 윗사람에게 기어오르면 배반하다. 이러한 혼란, 기어오름, 포악함, 배반 네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의 체제가 무너지고, 외적이 침략한다.
(447) 군주가 인재를 발탁할 때, 덕망있는 사람을 조정에 세우되 덕이 없는 사람과 동렬에 두지 않는다. 재능을 평가하여 관직에 앉히되 재능이 모자란 사람과 동렬에 두지 않는다. 덕이 있는 사람은 공로 있는 사람 앞에 세워 비교해 볼 때는 덕이 있는 사람이 연력이나 경력 때문에 손해 보지 않게 한다. 이와 같으면 군주는 어려움에 빠지지 않고, 백성에게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451) “자기가 착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 단청은 산속에 묻혀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들고, 아름다운 구슬은 깊은 물속에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든다. 그러므로 내가 과오를 저지를 수 있지만, 백성이 잘못된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백성의 관찰은 철저해서 착하지 않은 짓을 하고 도망갈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착한 일을 하면 나를 명예롭게 하고, 나에게 잘못이 있으면 나를 깍아 내린다. 백성에게 칭찬 듣거나 비난 듣는 것을 집에 가서 물어볼 필요가 없다.”
(479) 성인은 음양을 다싀기 때문에 겉은 평정하고 마음속은 고요합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은 정신을 상하고, 바탕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은 문채를 상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명분에 응하고, 아름다운 것을 변혁하는 사람은 때에 응합니다.
(488) 지극히 살피면, 군주가 스스로 현명해 집니다. 그러므로 군신이 함께 일을 관장합니다. 군신이 함께 일을 관장하면 군신의 지위가 균등하여, 이로써 군주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신하면 이일기 없어서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군주가 현명하다고 자신하면 패망하고, 현명한 신하를 두면 창성합니다.
(497) 이익을 폐지할 수 없기 때문에 백성이 유통합니다. 신을 폐지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섬김니다. 천지는 머무를 수 엇기 때문에 움직이고 변화하여, 그러므로 새로움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천도를 얻은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어도 무너지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얻은 사람은 낮은 자리에 있어도 이길 수 없습니다.
(507) 도는 멀리 있지 않지만 도달하기 어렵고,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만 터득하기 어렵다. 그 욕심을 비우면 신이 들어와 자리하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이 머문다. 사람은 모두 지혜롭고자 하지만 아무도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허무와 무형을 도라고 한다. 만물을 기르는 것을 덕이라고 한다. 군신, 부자, 사람 사이의 일을 의라고 한다. 오르고 내림 읍과 양, 귀천의 등급, 친소의 체제를 예라고 한다. 사람일의 대소, 본말을 하나의 원칙으로 헤아리고, 죽이고 금하고 베는 벌을 규정하는 것을 법이라고 한다.
(509) ‘말을 대신하여 달리지 말라’ ‘새를 대신하여 날지 말라’ 는 것은 능력 있는 사람의 능력을 빼앗지 말며, 아랫사람의 실질적인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물에 앞서 움직이지 말라는 것은 흔들리는 마음은 고요하지 않으니, 움직이면서 살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군주란 음에 서 있는데, 음이란 고요함이기 때문에 “움직이면 지위를 잃는다고 말한 것이다.” 음은 양을 제어할 수 있고, 고요함은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요하면 저절로 얻는다는 것이다.
(514) 사람이 싫어하는 것에 억눌리면 좋아하는 것을 잃고, 좋아하는 것에 유혹되면 싫어하는 것을 잊으니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것에 유혹당하지 않고 싫어하는것에 억눌리지 않는다고 한다. 싫어하되 그 우너리를 잃지 않고, 좋아하되 그 실정에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군자’라고 한다.
(516) 겉모습이 바르지 않는 사람은 덕이 오지 않고, 마음속에 정성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겉모습을 바르게 하고 덕을 수양하면 만물에 잘 들어맞는다. 새가 스스로 날아오는 것처럼, 신령이 어디서 오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517) “깊이 생각하라 깊이 생각해도 터득하지 못하면 귀신이 가르쳐준다.”고 한다.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그 정성스런 기운이 온 것이다.
(524) 도란 한 사람이 써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고, 천하에 시행하여도 부족하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525) 누가 공로와 명예를 버리고 보통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가? 누가 공로와 명예를 버리고 성취함이 없는 상태로 돌아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성취함이 없을 때는 그 성취를 귀히 여기지만 성취함이 있을 때에는 그 성취 없음이 귀하다. 해는 꼭대기에 오르면 지고, 달은 가득 차면 이지러진다.
(536) 사람은 물이다. 남녀의 정기가 합하고 물이 흘러서 태아가 형성된다. 석 달을 머물며 머금는데, 머금음이란 무엇인가? 오미라고 말한다. 오미란 무엇인가? 오장이라 말한다. 신맛은 비장을 주관하고, 짠맛은 폐를 주관하고, 매운맛은 신장을 주관하고, 단맛은 심장을 주관한다. 오장을 이미 갖추고 난 뒤 오내가 생긴다. 비장은 횡격막을 만들고 위는 골수를 만들고, 간은피부를 만들고, 심장은 살을 만든다. 태아의 모든 기관이 5개월이면 만들어지고 10개월이면 태어난다.
(541) 그러므로 물이 순일하면 백성의 마음도 바르고, 물이 맑으면 백성의 마음도 단순하다. 순일하면 더러워지지 않으려 하고, 백성의 마음도 단순하고 행위에 사악함이 없다. 이 때문에 성인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백성을 깨우치려 들것도 없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달랠 필요도 없다. 해결의 열쇠는 물을 살피는데 있다.
(566) 성공하는 방법은 굽히고 펴는 것이 보배다. 하늘의 지극함을 잊지 말고, 법칙을 끝까지 탐구하고 그친다. 일을 이루지 못하여도 평소의 마음을 바꾸지 말고, 첫 마음을 잃지 말며,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때를 살피며, 하늘의 명령을 기다려서 일어나야 한다.
(569) “먼저 그 몸을 바르게 하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지고, 그 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
(577) 현명한 군주는 변치 않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하나는 법을 밝혀서 그것을 지키게 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백성을 사사로이 하여 재물을 거두고 부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군주의 변치 않는 원칙이다.
(579) 무릇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사로이 상을 주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사사로이 벌을 주지 않는다. 예의를 두고 법을 설치하여 법도를 헤아려 판단하는 사람은 최고의 군주다.
(597)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지만, 백성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 백성이 부유하면 고향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가정을 중시 여긴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죄를 두려워한다.
(605) 무릇 마음의 모습은 저절로 가득차고 저절로 넘치며, 저절로 생기고 저절로 이룬다. 그 본심을 잃는 까닭은 반드시 근심, 즐거움, 노여움, 욕심, 이기심 때문이다. 근심, 즐거움, 이기심, 을 없앨 수 있으면 마음이 평정하게 돌아온다. 저 마음의 특성을 안녕하여 평안해야 이롭다. 번거롭지 말고, 어지럽지 말며, 화합해야 저저로 이룬다. 밝아서 마치 곁에 있듯이 하고, 황홀하여 마치 잡히지 않는 듯이 하며, 아득하여 마치 끝없이 찾아 헤매는 듯이 하다.
(612) 생각이 지혜를 낳고, 게으르고 경솔함이 근심을 낳고, 포악하고 오만함이 원망을 낳고, 우울함이 병을 낳으니, 이런 병이 오래되면 죽는다. 사념을 버리지 않고, 안으로 괴롭고 밖으로 협박이 있으면 오래지 않아 병이 들 테니, 생기가 장차 몸에서 떠난다. 먹는 것을 배우르게 하지 말고, 사념을 적절하게 하라. 절제하고 조절함이 알맞으면, 생기는 장차 저절로 온다.
(630) “마구간에서 어떤 일이 가장 어려운가?” “저는 일찍이 말을 길러 본 적이 있는데, 우리를 짜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말 우리를 짤 때 나무 막대를 엮으며 짜는데, 먼저 굽은 나무를 쓰면 이어서 굽은 나무를 써야 하고, 굽은 나무를 쓰면 곧은 나무를 써서 엮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곧은 나무를 쓰면 이어서 곧은 나무를 써야 하고, 곧은 나무를 쓰면 굽은 나무를 써서 엮을 수가 없습니다.”
(655) 무릇 쉬운 것이 앞에 오면 어려움이 따르고, 어려운 것이 앞에 오면 쉬운 것이 뒤따르니, 모든 일이 다 그렇다. 현명한 군주는 그러함을 알기에 반드시 형벌을 내리고서 용서하지 않고, 반드시 상을 주고서 이 원칙을 바꾸지 않는 것은, 상 주는 것을 좋아하고 죽이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 아니라 이익을 이루고 해로움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655) 백성을 그들이 좋아하는 곳에 거주하게 하고, 그들이 이롭게 여기는 바에 종사하게 하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상주고, 그들이 싫어하는 바를 벌주고, 그들이 사용하고 남은 것을 위에서 빼앗지 않고, 그들이 법을 어기지 않는 것을 공으로 기록해 주어야 한다.
(670) 관중이 제나라에 들어와 40일째 되는 날까지 아홉 가지 시혜 정책을 다섯 번 행한다. 첫째는 노인을 모시는 일, 둘째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일, 셋째는 고아들을 구휼하는 일, 넷째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돌보는 일, 다섯째는 호롤 된 사람을 결혼 시키는 일, 여섯째는 병든 사람을 위문하는 일, 일곱째는 곤궁한 사람을 살피는 일, 여덟째는 흉년 때 고용인들을 보살펴 도와주는 일, 아홉째는 유공자들에 대한 보훈이다.
(715) 겉으로 드러나는 안색은 정숙하고 정중해야 하고, 마음은 반드시 가지런해 해야 한다. 아침에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저녁에는 배운 것을 익히며, 매우 조심하고 삼가 익힌다. 이를 한결 같이하고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이것을 배움의 법도라 한다.
(728) 떳떳함에 따라 일처리를 하면 다스리고, 떳떳함을 잃고 일처리를 하면 어지럽다. 하늘은 떳떳함이 변하지 않음이 다스림의 원인이다. 그르므로 “하늘은 그 법칙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731) 범과 표범은 동물 가운데 맹수다. 깊은 숲과 넓은 물에 살면 사람이 그 위력을 두려워하여 존중한다. 군주는 천하에 위세를 가진 사람이다. 조정에 깊이 살면 사람이 그 위세를 두려워한다. 범과 표범이 심산유곡을 떠나 사람이 사는 근처에 오면 사람이 잡아 죽여 위풍을 보지 못한다.
(737) 현명한 군주는 동정의 의리에 맞고, 호령은 민심에 순응하고, 처형함은 그 죄에 마땅하고, 상을 내림은 그 공적에 마땅하다. 그러므로 희생과 규벽을 사용하여 귀신에게 기도하지 않아도, 귀신이 그를 돕고, 천지가 그를 돌보며, 일을 함에 복을 얻는다.
(746) 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광대해질 수 있다. 산은 흙과 돌로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높아질 수 있다.
(755) 도란 자기를 변화시켜서 바른 이치로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 몸에 있으면 말이 저절로 순조롭고, 행동이 저절로 바르며, 군주를 섬김에 충성하고, 부모를 섬김에 효도하고, 사람을 만남에 이치에 맞다. 그러므로 “도가 베풀어지는 곳에서는 몸이 변화한다”고 한다.
(782) 다스림의 근본은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고, 둘째는 일을 다스리는 것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쓰임을 구해야 하고 일을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치밀하게 이루도록 해야 한다. 사람에는 뜻을 거스르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있고 일에는 정확하게 측정하는 측량이 있다.
(785) 안정된 나라에는 삼기(三器)가 있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육공(六攻)이 있다. 삼기란 무엇인가? 법령, 형벌의 도끼, 녹과 상이다. 육공이란 무엇인가? 친근한 사람, 귀한 사람, 재화, 여색, 아첨하는 무리, 즐기는 물건이다.
(793) 현명한 군주는 술수에 밝으면서도 속이지 않고, 법도를 잘 헤아리면서도 그 빈틈을 이용하여 법도를 어기지 않고, 직책의 능력을 잘 알면서도 이를 만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밑에 있는 여러 신하들도 감히 공권력을 사사로이 이요하지 않고 높은 지위의 괸리들은 그들의 천했던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799) 현명한 군주는 두루 의견을 청취하고, 홀로 결단하는데, 많은 청취 방법이 있다. 여러 신하들을 관리하는 방법은, 아래 신하들은 상급 관리들에게 스스럼없이 자기 속내를 낱낱이 밝힐 수 있게 하고 천한 사람의 말이라도 고귀한 지위의 관리들이 귀담아 듣기 하기 때문에 간신들이 감히 속이려 들지 못한다.
(844) 나라에는 반드시 재물을 축적해 주어야 하고, 화폐 발행을 장악해야 하며, 풍년과 흉년에는 물건의 가격 차이가 크므로 물가 조절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의 기본 원리가 경제•재정 청객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853) 백승의 나라로서 사방에 적을 마주한다는 것은 천승•만승의 나라 사이에 포위도어
막힌 것이다. 큰 나라의 군주가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거병하여 서로 공격하면, 반드시 이 나라로 진공하거나 방어하는 거점으로 활용한다. 큰 나라가 싸우면 공도 있고, 이익도 있지만, 이 작은 나라는 나뉘고 고향을 잃고 (백성들은) 흩어지고 만다.
(873) 군주께서 좁은 것으로 넓은 것에 미치는 방책에 통달하면, 땅이 좁다고 땅이 넓은 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격을 조절하는 방책에 통달하면, 재물이 적다고 재물이 많은 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를 경영하는 방책의 원칙입니다.
(882) “만승의 나라는 만금의 가치가 있는 보재를 축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승의 나라는 천금의 가치가 있는 보배를 축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승의 나라 백금의 가치가 있는 보배를 축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보배를 써서 정령의 진퇴와 완급을 함께하면, 이를 때에 맞춰 시장의 물가를 조절한다고 합니다.”
(905) 만약 산이 그 자원들을 드러내 보이면, 군주께서는 엄격히 봉금하시고 제사를 지내십시오. 봉금한 산의 십 리마다 제단 하나를 만들고, 명령하기를 수레와 말을 타는 사람은 내려서 지나다니고, 걸어다니는 사람은 빨리 그 앞을 지나가라고 합니다. 만일 명령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사형에 처하십시오, 그러하면 그것을 채취하려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913) 제나라는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있어서 생산물이 사방팔방으로 오고갈 수 있고, 유람객과 외국 상인들이 반드시 지나다니는 길목입니다. ....(우리가 때에 따라) 정령의 완급을 조절하여 물가의 높낮이를 조절한 뒤에야, 천하의 보배가 모두 우리를 위해 쓰일 것입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군주는 자기 나라 재물이 아닌 것을 쓰고,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닌 이를 부립니다.
(933) 숲을 불태우고, 가시덤불을 파헤치고, 늪과 연못을 불태운 것은, 금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산을 깍고 연못을 말린 것은 , 군주의 관리(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가시덤불을 불태우고, 웅덩이 주변을 불사르고, 부유한 백성이 이익을 늘리지 못하도록 하며, (민간의) 기구 제작을 제한하고, 백성의 지혜와 능력을 가로 막은 것은 자기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제후들이 목축을 하지 못하게 하고, 그 가죽을 이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음란한 기물을 막고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하기 위함입니다. 관리를 파견하여 전문 인력을 관리하고, (민간에서) 창과 칼을 주조하지 못하게 하고, 인의를 숭상하게 교화한 것은, 천연지세를 이용하여 자기의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함입니다. 오가의 방법은 차이가 있지만 쓰임은 똑같습니다.
(953) 만승의 나라에는 만금을 쌓아 놓은 상인이 있고, 천승의 나라에는 천금을 쌓아 놓은 상인이 있고 백승의 나라에는 백금을 만지는 상인이 있으니, (그들은) 군주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군주가 박탈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군주 된 사람이 호령을 행사하는 데 삼가지 않으면, 한 나라에 두 군주나 두 왕이 있는 것입니다.
(1028) 정신은 생각을 생성하고, 생각은 법규를 생성하고, 법규는 곱자를 생성하고, 곱자는네모를 생성하고, 사계절은 바름을 생성한다. 성인은 이러한 원칙에 의거하여 사물을 다스리니, 세상을 다스리는 도가 두루 갖추어진다.
3. 내가 저자라면
휴, 드디어 끝났다. ㅎㅎ 결코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던, 길고 단조로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느낌이 이런 것일까? 그래도 항상 책을 덮고 나면 다 읽었다는 성취감 이상의 묘한 기분이 드는데, 이 책은 그 두께 때문에 그 기분이 더하다.
이 책이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인 2500년 전에 쓰여졌음이 놀랍다. 참으로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관자의 사상에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목민(牧民)으로 대변되는 그의 정치사상이었다. 그는 정치란 첫째도 백성의 풍요, 둘째도 백성의 풍요임을 거듭, 거듭 강조한다. 특히 7권 18편의 ‘대광’편에서 환공은 군비를 기르는 것을 계속 주장하고 관자는 끊임없이 “안된다. 먼저 백성을 먼저 후하게 해야한다”고 옥신각신하는 대화가 눈길을 끈다. 군주 집중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바람직한 정치는 민심을 따르는 것에 있다는 그의 확고부동한 정치적 신념이 이 책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점이다.
개인적으로 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상벌(賞罰)’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상을 분명히 주되 쓸데없이 주지 않고, 형벌을 정확히 내리되 함부로 집행하지 않는다. 상과 벌을 명확하게 하면 덕의 지극함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인재의 적합한 등용과 상벌의 적절한 적용이 관리의 핵심임을 강조한다. 이 부분이 특히 좋았던 것은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조직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공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늘 가벼운 말로 직원들을 비난하긴 하나 특별한 벌이 없는, 그러나 사심없이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개별적인 보상도 없는 구조, 아마도 이것은 우리 조직만이 안고 있는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또한 “선왕이 천하를 얻을 때 먼나라는 예(禮)로 대하고, 가까운 나라는 친근함으로 대했다”는 구절은 나의 인간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때로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그 관계가 어색하여 지나치게 빨리 친근한척 대할 때도 많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지나친 격식으로 멀리 둔 적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도는 멀리 있지 않지만 도달하기 어렵고,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만 터득하기 어렵다. 그 욕심을 비우면 신이 들어와 자리하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이 머문다.”고 한 그의 표현보다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문장은 없었다. 뜻이 언어보다 앞서고, 뜻이 있은 뒤에야 마음이 드러나고, 마음이 드러난 뒤에야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야 안다. “마음의 특징은 앎이 지나치면 본성을 상실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귀에 울리는 듯 하다.
사상과 학술의 백과전서
책을 덮은 순간 1000페이지를 벗어난 해방감과 함께 처음 든 생각은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어찌 이리도 많은 분야를 폭넓으면서도 깊이있고 상세하게 다룰 수 있었을까? 대개는 여러 분야에 폭이 널은 사람은 깊이가 얕고, 한 분야에 깊이있는 사람은 다양한 지식을 얻기 어려운 법인데 말이다. 관자의 정치, 행정, 법, 경제 뿐만 아니라 철학, 군사, 자연과학, 철학을 포괄하는 지식이 놀랍다.
관자를 보며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다시금 와 닿는다. 군자는 특정한 기능만을 가진 그릇이 되어서는 않되며, 여러 분야의 통합적인 지식을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실제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것과는 달리 효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가는 전문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전문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자본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좋은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전문분야의 집착을 버리고, 시각의 편협함을 버리고 골고루 읽어야 한다. 고전, 역사 ,철학이라는 이성뿐만 아니라 시서화와 같은 감성에 이르기 까지 두루 함양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도(道)란 ‘비우는 것’
"도는 멀리 있지 않지만 도달하기 어렵고,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만 터득하기 어렵다. 그 욕심을 비우면 신이 들어와 자리하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이 머문다. 사람은 모두 지혜롭고자 하지만 아무도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지혜여, 지혜여, 바다 밖으로 던져서 억지로 빼앗지 말아야 한다. (바깥에서 속된)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땅한 자리를 얻지 못한다. 무릇 바른 사람은 (바깥에서 속된) 지혜를 구하지 않으므로 허무(虛無)에 처할 수 있다."
관자는 마음을 비우고, 평정심을 유지 하는 것 – 이것을 도(道)라 하며, 도를 얻어야 비로소 사물에 대해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요즘 나의 글쓰기의 어려움을 돌아보게 했다. 마음이 번잡하니 깨끗한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얼마전 승완형이 술자리에서 “이제 머리로 그만 쓰지 그래?”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실이다. 연구원 초기의 글이 더 마음에 드는 이유도 당시의 글은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고, 그저 가슴에서 나오는 글을 쓰려고 했기 때문이었음을 알겠다. 우리 모두는 내면에 신을 품고 있으며, 신은 마음을 텅 비우고, 바르고 고요히 할 때에 비로소 조용히 거한다. 잊지 말자.
단계적 논리 전개 – 독자가 연속하여 “yes, yes, yes”라고 하게 하라
책 전체를 흐르는 일관된 문체가 있다. "무릇 A하면 B하고, B하면 C한다. C하면 D할 수 있고, D하면 E할 수 있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F하지 않을 수 없다" 는 식, 또는 “무릇 A는 B하고, C(A와 대조)는 D하다. A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를 하고, F를 해야 한다.” 는 식이다.
처음에는 그 구성이 너무 반복적이고, 진부하며, 재미없게 느껴졌으나 이것이 관중의 시스템식 논리전개임을 알고는 흥미를 갖게 되었다. A-B-C-D-E-F로 이어지는 논리는 이해하기 쉽고, 호흡이 자연스러워 가독성이 높다. 게다가 자연스레 독자로 하여금 “yes, yes, yes”하도록 하게 하여 설득력이 높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판매하는 전 세계의 세일즈맨들은 실제로 입사 초기에 “네(yes)”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목록을 500여가지 암기하도록 한다. 예컨대 벨을 누르고 사람이 나오면 “이 집에 사시나요?(그러니까 나왔지)”- “네”, (나이를 대충 보고) “자녀분이 있으세요?” – “네”, “자녀들 교육에 고민이 많으시죠?” – “네” 로 이어지는 질문들이다. 마지막에 “주문하시겠어요?” 라고 물으면,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여 “네”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세일즈는 결국 설득의 과정이며, 글쓰기 대부분은 ‘설득’을 목적으로 한다. 관자의 이러한 단계적 논리전개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한다. 물론 당연한 듯 보이지만 사실 각 항목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데 대단히 고민했을터이다.
훌륭한 번역과 설명
번역에 대해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관자는 번역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책으로 알려지는데, 역자들이 이것을 위해 2000년부터 일주일에한 번씩 금요일 오후에 모여 각자의 번역 원고를 발표했다 하니, 6년간 그 작업을 한 것이다. 6년에 책 한권, 넷이서 인세를 나누어도 많이 팔릴 책이 아니기에 돈이 되었을리 없다. 그들은 마지막 후기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흔쾌히 출판을 맡아서 힘써 준" 출판사에 감사하다 했으나, 필요한 시기에 적합한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 역자들이 감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여기저기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노력이 돋보이는데 첫째가 처음의 관자와 그의 사상에 대한 쉽고 자세한 소개이다. 특별히 저자 조사를 많이 하지 않아도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며, 요즈음의 시대에 왜 '관자'를 읽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소개해놓은 부분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둘째는 각 편의 앞부분의 개략적인 내용과 전체의 흐름에 대한 설명 '제해'이다. '관자'는 여러 분야에 대해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반복되는 내용도 많고 중간중간 빠져있는 부분도 많아 이해가 어려운데 그것을 잘 요약하고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기어렵지 않았다. 셋째는 마치 한 사람이 쓴 듯 매끄러운 톤 셋팅이다. 이것은 후기에 말했듯 '표현과 의미가 매끄럽지 모슈한 부분은 서로 질정'하며 진행했기 때문이리라. 우선 자주 만났다는 이야기이다. '강점' 책을 쓰면서 공저의 어려움에 대해 실감했다. 그 중 가장 큰 어려움이 모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인데 역자들은 훌륭히 그것을 해낸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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