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해 송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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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 한국 최초 완역본, 소나무]
矛 : 세모진창 모
盾 : 방패 순
중국 전국시대의 초(楚)나라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이 창은 매우 예리하여 어떤 방패라도 꿰뚫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방패의 견고함은 어떤 창이나 칼로도 꿰뚫지 못한다.'고 자랑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네의 창으로써 자네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물었더니 상인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 내용은《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 난세편(難世篇)에 있는 고사(故事)로, 법지상주의자(法至上主義者)인 한비(韓非)가 유가(儒家)의 덕치주의를 비판한 우화이다.
논리학에서는 두 개의 개념 사이에 내용이 서로 상반되는 관계를 말한다. 현대인들은 많은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지금의 시대를 모순의 시대라고 까지 이야기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런 모순 속에서 상생의 길을 제시하는 옛 예화 한 가지를 살펴보자.
『장자가 제자들과 산길을 가다가 잎과 가지가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나무를 베지 않고 있는 나무꾼에게 그 까닭을 묻자 나무꾼은‘쓸모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장자가 말하기를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수를 다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장자 일행이 산에서 내려와 친구 집에 묵었는데 주인은 매우 반기며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거위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심부름하는 아이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한 놈은 잘 울고, 한 놈은 울지 못하는데 어느 놈을 잡을까요 하자 주인은 울지 못하는 놈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제자들이 장자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산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다할 수 있었는데, 오늘 이 집의 거위는 쓸모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장차 어디에 서겠습니까?”
장자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나는 쓸모 있음材과 쓸모없음不材의 중간에 처하겠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중간이란 도와 비슷하면서도 실은 참된 도가 아니기 때문에 화를 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재材와 부재不材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은 누구나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에 대한 해답으로 타협을 선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장자가 중간에 서겠다고 한 것은 중간 지점인 절충의 자리에 서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만약 개인과 조직, 국민과 국가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순에 대한 상생의 길을 『관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대답이 궁금하다면 비록 천 페이지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투자한 시간이상의 소득을 얻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해본다.
1. 저자에 대하여
『관자』는 중국 역사상 백미로 꼽히는 춘추전국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정치가 중의 하나인 관중(管仲)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관중(기원전 725년-645년)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사람이며, 공자보다 약 150년 전 사람이다. 관중은 지금의 안휘성 북부 영상에서 태어난 상인 출신 정치가다. 공자 맹자 순자가 현실정치를 못해본 것과는 달리, 그는 친구 포숙아의 도움으로 제나라 재상까지 올라 ‘환공’이라는 군주를 도와 40년 동안 국정을 맡아봤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제나라를 부강하게 했을 뿐 아니라 중원의 평화와 번영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양계초 같은 대학자는 중국 최고의 정치가로 관중을 꼽는다.
중국 역사에서 <관자>의 운명은 이중적이었다. 한대이래 국가철학의 지위를 확보한 유가가 도덕과 윤리에 입각한 이상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에 <관자>의 현실주의는 폄하의 대상이었다. 유가의 눈으로 보면 <관자>의 사상은 세속의 때가 너무 많이 묻어 있었다. <관자>는 경계 받고 외면당했다.
관중의 그릇이 작다. - 管仲之器小哉. 논어 팔일에서 관중을 평한 말이다. 헌문에서는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는데 군사를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다. 인이겠는가. 그만한 인이 있겠는가 "고 한다 -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如其仁 . 자로가 관중의 인을 얘기하자 대답한 말이다. 자공이 그는 인자가 아닐 것이다 라고 말하자 공자의 대답은 "관중이 없다면 나는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하였을 것이다 -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한다. - 微管仲, 吾其被髮左임矣.
한번은 내리 깍고 두번 치켜세웠다. 이는 논어를 정리한 학자들이 관중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관안열전에서 관중을 제의 명재상으로 이름 높았던 안자와 비교한다. 안영은 젊은 날의 공자로 하여금 씻은 쌀을 그대로 담아 제나라에서 뜨게 만든 인물이었을 것이다. 안자에서 공자는 대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맹자에서 비로소 공자가 관안을 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혁때 관중이 재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유교 사상을 이념적 기틀로 삼았던 조선 사회도 <관자>를 멀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중국인들처럼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사람들도 없다. 그들에게 <관자>의 가르침은 삶의 구체성을 제대로 반영한 현실 밀착형 사상이었다. 조선 후기 새로운 사상 기풍을 진작시킨 다산 정약용도 <관자>의 이런 현실주의에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다산의 대표작 <목민심서>의 제목은 <관자>의 첫 편 ‘목민’에서 따온 것이었다.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관자>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학습 대상으로 떠올랐다.
관중은 사상가로서 훌륭한 분이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 있어서는 세 가지 점에서 부러운 사람이다.
첫째로 좋은 친구를 두었다는 점이다. 관중은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하다. 자기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자기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라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내가 초년에 어려울 때 일찍이 포숙아와 장사를 하였다. 장사를 해서 생긴 이익을 나눔에 있어서 내가 많이 차지하였는데도 포숙아는 나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포숙아를 위해 일을 꾸몄으나 도리어 더욱 어렵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숙아는 나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을 하다가 보면 유리한 경우도 있고 불리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차례나 벼슬길에 올랐으나 세 번 다 군주에게 쫓겨났다. 그러나 포숙아는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때를 못 만났다고 이해해 주었다. 나는 일찍이 세 번 다 도주하였다. 그런데 포숙아는 나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가 있음을 이해해주었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하자 소홀은 따라 죽었으되 나는 옥에 갇혀서 욕을 당했으나, 포숙아는 나를 염치없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이 천하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좋은 상사를 두었다는 점이다. 관중과 포숙아는 장사를 하면서 벼슬의 기회를 엿보던 관중과 포숙아는 여러 번 실패한 끝에 마침내 제 희공의 인정을 받아 관중은 공자 규의 스승이 되고, 포숙아는 공자 소백의 스승이 된다. 제나라 희공의 뒤를 이어 양공이 군주에 오르면서 폭정을 피해 각자 공자를 모시고 외국에 도피하게 된다. 각자 모시고 있는 공자를 군주에 앉히기 위해 경쟁하다 공자 소백이 먼저 제나라의 군주 자리에 오르고 환공이 되었다.
관중은 공자 규를 모시고 노나라 군대의 지원을 받아 환공의 제나라와 싸우게 되었다. 그래서 환공을 향해 활을 쏘았다. 그러나 환공은 운 좋게도 혁대에 화살이 맞아 죽지 않았고, 싸움은 환공의 승리로 끝났다. 공자 규는 죽임을 당했고, 그를 모시던 소홀도 따라 죽었다. 그러나 관중은 따라 죽지 않았다. 이 때 환공은 포숙아의 적극적인 천거에 힘입어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큰 야망 때문에 모시던 군주를 따라 죽지 않은 사람을 자신의 신하 말만을 믿고 한 나라의 재상으로 입명하였다면 그 누가 자신을 끌어준 사람을 위해 충성을 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온 힘을 다한 것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현실에서 일생동안 어떻게 살고 무엇을 지켜야 하며 무엇을 위해 혼신의 열정을 바칠 것인가는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있다고 구본형 선생님은 말한다.
셋째는 좋은 제자를 두었다는 점이다. <논어>가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언행을 모아서 기록한 것처럼 <관자>는 제나라 직하학궁의 학자들 가운데 관중을 따르는 제자들이 관중의 언행과 사상을 담은 것이다.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십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관자, 권수(權修), p 54)
관중 스스로도 인재를 키우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였다. 하물며 자신의 제자들이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이 중에 한 가지만을 가지더라도 행복할 텐데 세 가지 모두를 가졌으니 모든 세상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관중에 대한 자세한 연표는 책 뒤편에 나와 있는 것으로 대신한다.
2.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들
[7] 오늘날 관중이 새롭게 부상하는 것은 그의 지도력이 우리 시대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를 중시하고 국제 외교에도 능숙했던 대단히 실용주의적 정치인이었다.
[7] 실리를 최고로 여기는 중국인들의 사상과 행동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자>라는 고전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
[8] 관중은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을 도덕의 이름 아래 거스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이익 추구 본성에 기초하여 정치, 경제, 사회를 이끌어갈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8] 춘추 전국의 오랜 전쟁과 혼란 속에서 터득한 시스템 경영의 최고 노하우를 <관자>는 보여주고 있다.
[8] 도덕과 예의를 절대시하는 유교의 시각에서 보면 관중이라는 인물과 <관자>라는 고전은 세속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
[9] 정약용과 같은 실용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실학자는 관중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관자>를 많이 참고하였다. 정약용의 저서 가운데 유명한 <목민심서>의 ‘목민’이란 말고 사실은 <관자>의 첫 번째 편명에서 나온 것이다.
[9] 조선시대 500년 동안 선비들은 노나라의 전통을 이은 <논어>와 반 관자적인 <맹자>를 정치학의 교과서로 삼았다. 만약 조선조에서 지식인들의 실용주의적 기풍의 제나라에서 나온 <관자>를 정치학의 교과서로 채택하였다면 우리나라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14] 관자는 인치가 아니라 설정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한 법과 확고한 상벌 체제를 구축하고 시스템으로 조직을 이끌어 간 시스템식 경영의 지도자였다.
[19] 국가의 부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백성의 부를 중시하느냐하는 부국, 부민의 문제는 유가와 법가 사이의 중요한 논점이다. 대체로 법가에서는 부국을 유가에서는 부민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관자>는 양자를 모순 관계로 보지 않고 부민을 통한 부국을 추구한다.
[33] 형벌은 백성이 두려워하도록 하기에 부족하고, 죽이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복종시키기에 부족하다.
[37] 천하에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를 적절히 쓰는 군주가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천하에 재물이 모자람을 걱정하지 말고, 재물을 (공평하게) 분배할 인물이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힘써 할 일‘을 아는 사람은 관리로 세울 수 있고, 사심이 없는 사람은 장관을 맡길 수 있다. 때에 따라 힘써 할 일을 깊이 알고 인물 등용에 밝으며 관리를 적재적소에 잘 기용할 수 있는 사람은 군주로 받들 수 있다.
[40] 사람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려면 반드시 덕으로 복종시키고 싫증내지 않아야 한다.
[41] 게을러서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다른 사람의 도움만 기다린다. 안에 힘을 지닌 사람은 자신 있고 여유롭게 일을 처리하지만, 다른 이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은 (항상 불안하고 수고롭게) 바깥의 도움을 기다리게 마련이다.
[42] 아침부터 자기의 할 일을 잊으면 결국 저녁에 그 공을 잃어버린다.
[43]도가 말하는 바는 하나지만 쓰임새는 다양하다. 도를 듣고서 집안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한 집안의 가장이라 할 수 있다. 도를 듣고서 고을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한 고을의 장 이라 할 수 있다. 도를 듣고서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한 나라의 군주라 할 수 있다. 도들 듣고서 천하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천자라 할 수 있다. 도들 듣고서 온갖 만물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사람은 천지와 나란히 짝할 수 있는 사람이다.
[44] 하늘을 따르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주고, 하늘을 거스르는 사람은 하늘이 버린다. 하늘이 돕는 것은 작은 것 같으나 결국은 큰 것이다.
[45] 새나 까마귀들은 잘 모이기는 하나 서로 아낄 줄은 모른다. 신중하지 않은 결의는 굳게 맺었다 해도 반드시 풀리고 만다. 도의 운용은 신중함을 중시한다.
[48] 국토가 개발되었는데도 나라가 가난한 것은 군주의 배나 수레를 화려하게 꾸미고, 누대나 정자를 크게 지었기 때문이다.
[49] 옳은 것을 보고서도 기뻐만 하고 분명한 표창이 없거나, 옳지 않은 것을 보고서도 미워만 하고 눈에 보이는 제재가 없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감화되기를 바랄 수 없다.
[49] 땅의 생산물은 계절의 제한이 있고, 백성의 노동력은 피곤함의 한계가 있는데, 군주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계절의 제한과 피곤함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군주가 끝없는 욕심을 끝없이 채우려 하면, 위아래가 서로 질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하가 군주를 죽이고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경우가 생긴다.
[50] 능력에 따라 관직을 주고 등급에 따라 녹을 주는 것이 백성을 다스리는 관건이다.
[51] 그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살피면 그 장점과 단점을 알 수 있으며, 그들의 교유관계를 관찰하면 현명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52] 상인이 조정에 있으면 재화가 위(궁중)에만 흘러넘친다. (풍부한 재화를 사용하는 부인들의 발언권이 강해져) 부인들이 정사를 논하면, 상벌이 공정하지 않다.
[54] 한 번 심어서 한번 거두는 것은 곡식이고, 한 번 심어서 열 배를 얻는 것은 나무이며, 한 번 키워서 백배를 얻은 것은 사람이다. 무릇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자는 사악하고 치우친 행동이 없게 하고, 여자는 음란한 일이 없게 해야 한다. 남자가 사악하고 치우치지 않게 하는 것은 교육이고, 여자가 음란하지 않게 하는 것은(가정의) 훈도다.
[55] 백성이 작은 예절도 닦고, 작은 의리도 행하고, 작은 청렴도 갖추고, 작은 수치심도 지키고, 아주 작은 속임수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다.
[58] 군주가 살필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대신의)덕이 그 지위에 맞는지 아닌지, 둘째 공적이 그 녹봉에 맞는지 아닌지, 셋째 능력이 그 관직에 맞는지 아닌지 살피는 것이다.
[60] 군주가 신중히 할 바는 네 가지다. 첫째, 덕만 제창하고 인을 시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라의 권력을 주면 안 된다. 둘째, 현명한 이를 보고도 양보하지 않는 사람에게 높은 지위를 주면 안 된다. 셋째, 형벌을 행함에서 (군주의) 종친, 귀척을 피하는 사람에게 병권을 주장하게 하면 안 된다. 넷째, 농사를 좋아하지 않고 땅의 이로움을 개발하는 데 힘쓰지 않으며 부렴을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 도읍을 맡기면 안 된다.
[61] 군주가 힘쓸 일은 다섯 가지다. 첫째, 산야에 불을 막고 초목을 심어 기르지 않으면, 나라는 가난해진다. 둘째, 궁벽한 곳까지 수로를 뚫고 물을 막아 저수지를 채우지 않으면, 나라는 가난해진다. 셋째, 뽕나무와 삼을 들에 심지 않고, 그 땅의 성질에 맞지 않는 오곡을 심으면, 나라는 가난해진다. 넷째, 가정에서 가축을 키우지 않고, 오이, 박, 훈채, 과일을 기르지 않으면, 나라는 가난해진다.
[73] 스스로를 존귀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은 군주의 도리고, 벼슬이 높아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 것은 산하의 도리다.
[75] 시장은 재화 유통의 중심지다. 따라서 모든 재화가 저렴하면 부당한 이득이 생기지 않고 부당한 이득이 생기지 않으면 온갖 일이 잘되며, 온갖 일이 잘되면 모든 물자의 쓰임이 절도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시장의 일이란 사려 깊은 생각에서 생산되고, 노력을 다함에서 성취하며, 오만함에서 실패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재화를 생산하지 못하고,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성취하지 못하며, 오만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장은 (그 나라의) 치란을 알 수 있는 곳이고, 물자의 많고 적음을 알 수 있는 곳이지만, 많고 적은 물자를 생산하는 곳은 아니다”하는 것이다. 이를 시행하는 데는 법도가 있다.
[89]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군비를 갖추어야 하고, 군사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책략이 있어야 하고, 적국을 이기기 위해서는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천하를 바로잡아 통일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92] (군주의) 권위가 상하면 권력의 중심이 아래로 가고, 나라의 법률이 상하면 재화가 위로 몰려든다.
[102] 관중은 정치의 요체를 크게 세 가지, (1) 사사로움이 없고, (2) 때를 어기지 말고, (3) 민심에 합치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정치의 요체를 가려 뽑아서 이를 목판에 기록하여 항상 지켜야 할 법으로 삼은 것이라 하여 <판법>이라 한 것이다.
[102] 사욕을 버리고 자연의 도리에 순응하는 마음을 따르면, 사람이 한가해 진다.
[104] 미세한 것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도 들을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형체도 볼 수 있고, 깊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하지 않은 것도 알 수 있다.
[126] 느리게 해야 할 일과 급하게 해야 할 일을 따질 수 있으면, 위태로워도 어려움이 없다.
[146] 민심을 얻는 방법은 (백성을) 이롭게 해주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백성을) 이롭게 해주는 방법은 가르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밭을 개간하여 나라를 알차게 하고, 조정을 안정시켜 관청을 다스리며, 공정한 법을 실행하여 사사로운 곡절을 금지하고, 창고를 가득 채우고 감옥을 텅 비게 하며,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여 간사한 사람을 물러나게 한다.
[152] 삼도란 무엇인가? (1) 위로는 하늘의 상서로움을 법도로 삼고, (2) 아래로는 땅의 마땅함을 법도로 삼고, (3) 중간으로는 사람의 순응함을 법도로 삼는다.
[157] 봄에는 새로 나온 채소를 먹고, 가을에는 잘 익은 과실을 먹으며, 여름에는 서늘한 곳에 살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 머무니, 위대한 현인의 덕은 오래가는 것이다.
[158] 군주가 명령을 내리는 것은 오음을 조절하는 것과 같고, 신하가 능력을 다하는 것은 오미를 조절하는 것과 같다.
[159]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 있어도 성을 내서는 안 되고, 원망하는 것이 있어도 말해서는 안 되며, 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계획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161] 얕을 수도 있고 깊을 수도 있으며, 뜰 수도 있고 가라앉을 수도 있으며, 굽을 수도 있고 곧을 수도 있으며, 말할 수도 있고 침묵할 수 도 있다. 하늘은 한때에만 머물지 않고, 땅은 한 가지 이로움에만 그치지 않으며, 인간은 한 가지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75] 일 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한 달에는 상순, 중순, 하순이 있고, 하루에는 아침, 저녁이 있고, 밤에는 저녁과 새벽이 있고, 중성에는 별의 차례가 있어 제각기 맡음이 있다. 그러므로 하늘은 한때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한다.
산과 언덕은 고개가 험하고, 연목과 샘은 넓은 물을 이루고, 샘은 넘쳐흘러 마르지 않고, 얕은 물은 계속 흘러도 차지 않으며, 땅은 높거나 낮고 비옥하거나 척박하여 사물마다 맞는 곳이 있다. 그러므로 “땅은 한 가지 이로움에만 그치지 않는다.”고한다.
고을마다 풍속이 있고 나라마다 법도가 있으며, 음식은 맛이 같지 않고 의복은 색이 다르며, 세상에 쓰는 기물은 규구승준으로 양을 저울질하고 수를 헤아려 물건의 품별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인간은 한 가지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각각의 일에는 마땅함이 있어 그 자세함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179] “도가 하늘에 있는 것이 태양이고, 도가 사람에게 있는 것이 마음이다.” 그래서 기가 모이면 살고, 기가 흩어지면 죽으니, 생명이란 기에 의존하는 것이다. 명분이 맞으면 다스려지고, 명분이 없으면 어지러워지니, 다스림이란 명분에 달려있다 한다.
[180] 한 나라에는 보물과 그릇과 재물이 있다. 성곽과 방어하기 좋은 험난한 지형과 저장된 양식은 나라의 보물이고, 뛰어난 인재는 그릇이며, 주옥은 가장 뒤지는 재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선왕은 (나라 유지에 이익이 되는)보물과 그릇을 중시하고, (구슬 같은)재물을 경시했기 때문에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었다.
[181] “빨리 해라, 빨리 해라”하는 것은 세상에 사물이 많기 때문이요, “노력하라, 노력하라”하는 것은 세상의 사물이 때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요, “(연구를) 힘차게 하라, 힘차게 하라”하는 것은 세상 사물의 속뜻이 정미하기 때문이다.
[184]관직도 이와 같다. 때에 맞으면 하늘의 도움을 얻고, 의리에 맞으면 사람의 지지를 얻는다. 때에 맞고 의리에도 맞아 두 가지가 어울리면 하늘의 도움과 사람의 지지를 함께 얻을 수 있다.
[187] 남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어짊이라 하고, 남을 속이지 못하는 것은 지혜라 한다. 이미 지혜롭고 또 어질면 이를 일러 완전한 사람이라 한다.
[188] (사람을 대할 때는) 많고 적음만으로 계산하지 말고, 무겁고 가벼움만으로 저울질 하지 말며, 길고 짧은 것만으로 측정하지 말라. 이 세 가지에 밝지 않으면 대업을 이룰 수 없다.
[189] 무릇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 나라의 장점 때문이며, 사람이 스스로 실수하는 것은 그가 잘하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못에 빠져 죽고, 활을 잘 쏘는 사람은 황야에서 사냥하거나 싸우다가 죽는다.
[190] 무릇 사람에게는 세 가지 명분이 있는데, 잘 다스리고자 함과 (뒤지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일하고자 함이 그것이다. 일에는 두 가지 명분이 있는데, 바르게 함과 잘 살피는 것이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에 능하면 천하를 다스린다.
[192] 보통 사람은 마음을 씀에 있어 아낌이 미움의 발단이 되고, 은혜가 원망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어버이를 잘 섬기다가 처자식이 생기면 효심이 줄어든다. 군주를 잘 섬기다가 산업이 잘되어 집안이 풍족해지면 (신하로서) 덕행이 줄어든다. 작위와 복록이 가득차면 충성심이 줄어든다. 그러나 오직 현인만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선왕은 (무엇이든지) 가득 채우지 않는다. 군주는 안일함을 좋아하고 수고하기를 싫어하는 본성을 이기며 열심히 일하도록 명령하고, 신하들은 군주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195] 나라를 통치하는 방법 가운데 명령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명령이 중시되면 군주가 존엄하고, 군주가 존엄하면 나라가 안정된다. 그러나 명령이 경시되면 군주가 미약하고, 군주가 미약하면 나라가 위태롭다.
[222] 무엇을 백성의 법이 되는 산업이라 하는가? 가축을 기르고 나무를 심으며, 농사짓는 때를 중시하고 곡식을 재배하며, 농업에 힘을 다하여 황무지를 개간하고, 사치품 생산을 금지하는 것이 백성의 법이 되는 산업이다.
[229] 지금 걸어다니는 사람은 하루에 백리의 정황을 아는데, 당상에 일이 있어도 열흘이 되도록 군주가 듣지 못하면 이것이 이른바 백 리보다 멀다는 것이다. 걸어다니는 사람은 열흘에 천리의 정황을 아는데, 당황에 일이 있어도 한 달이 되도록 군주가 듣지 못하면 이것이 이른바 천리보다 멀다는 것이다. 걸어다니는 사람은 백 일에 만리의 정황을 아는데, 문간에 일이 있어도 일 년이 되도록 군주가 듣지 못하면 이것이 이른바 만리보다 멀다는 것이다.
[239] 군주가 백성을 아끼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들을 쓰기 위해서 아끼는 것이다. 백성을 아끼기 때문에 법이 무너지고 명령이 훼손되는 것을 처벌하지 않으면, 이른바 백성을 아낀다고 하는 목적을 잃는 것이다.
[247] 무릇 사람을 평가하는 데는 요령이 있다. 남에게 교만한 사람 가운데 큰 선비가 없다. 교만한 사람은 자만하기 때문이다. 일을 의뢰할 것이 없고, 때를 만나도 그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명예를 구하는 사람 가운데 현명한 선비가 없고, 이익을 구하는 군주 가운데 왕업을 이루는 군주가 없다. 현명한 사람이 몸소 행함에는 명예가 있음을 잊고, 왕업을 이루는 군주가 도를 행함에는 공을 잊는다. 현명한 사람의 행실과 왕업을 이루는 군주의 도는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263] 제후국의 군주는 다른 나라의 땅을 탐내서는 안됩니다. 땅을 탐내려면 반드시 군사에 힘써야 하는데, 군사에만 힘쓰다 보면 반드시 백성이 궁핍해지고, 백성이 궁핍해지면 백성을 자주 속여야만 합니다. 속이는 일을 그쳐야만 용병을 늦게 해도 승리할 수 있지, 속이면 백성의 믿음을 잃게 됩니다. 백성이 불신으로 가득차면 난동이 일어나고, 안에서 난동이 일어나면 군주에게 위험이 닥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옛날에 선왕의 도를 들은 사람은 군비 경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303] 사농공상 네 부류는 나라의 기둥이 되는 백성이니, 이들이 섞여서 살게 하면 안됩니다. 섞여서 살게 하면 말이 어지러워지고, 일이 어지러워집니다. 그러므로 성왕들은 선비는 한가하고 조용한 곳에 거처하게 하고, 농민들은 밭과 들판에 거처하게 하고, 장인들은 반드시 관청에 거처하게 하고, 상인들은 반드시 시장에 거처하게 했습니다.
[307] 환공이 물었다.
“옛날에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어떤 잘못 때문입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땅과 보물을 얻을 것만 계산하고 제후를 잃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재부와 저축만 계산하고 백성의 마음을 잃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친하게 여기는 것만 생각하고 버림받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위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으로도 나라가 쇠약해지고, 세 가지 모두 그러하면 멸망합니다. 옛날에 나라를 무너뜨리고 사직을 무너지게 한 것은 (임금이)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잠시 환락을 즐기다가 죄악에 빠지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10] 환공이 말했다.
“좋습니다. 청하여 묻건대, 믿음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자기 몸을 다스리는 데서 시작하고, 그 다음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며, 천하를 다스리는 데서 완성됩니다.”
환공이 말했다.
“몸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묻습니다.”
관중이 대답했다.
“혈기를 잘 이끌어 오래 살기를 구하고, 사려가 심원하고, 덕택을 장구하게 하는 것이 몸을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묻습니다.”
관중이 대답했다.
“널리 현인을 등용하고, 백성을 자애롭게 보살피고, 멸망한 나라를 보존하고, 녹이 끊어진 세가를 다시 이어주고,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의 자식을 채용하고, 세금을 가볍게 하고, 형벌을 가볍게 하니,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큰 원칙입니다. 법령을 시행하되 가혹하지 않고, 형벌이 관대하되 함부로 사면하지 않고, 관리들이 너그럽되 법 집행을 어기지 않고, 어떤 곤경에 처해도 천하를 다스림에 법도를 잃지 않으면, (백성이 삶의 터전에 안주하여)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백성이 치세를 향유하니, 이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325] 환공이 또 물었다.
“과인이 정사를 닦아서 천하 제후의 칭송을 듣고자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공이 말했다.
“무엇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공이 말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방법은 어떠한 것입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공께서는 공족을 다스리고, 대부는 그의 동족을 다스려서 서로 국사로 이어지고, 서로 녹봉으로 함께 하면, 사람이 서로 친해질 것입니다. 옛날의 죄를 용서하고, 옛날의 종친을 부흥시키고, 후사가 없는 이에게 양자를 세워주면 백성이 늘어날 것입니다.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박하게 하면 백성이 부유해질 것입니다. 향에는 현사를 두어서 그들에게 교화하게 하면 백성이 예의바르게 될 것입니다. 명령을 내리고 번복하지 않으면 백성이 바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353] 현명한 군주가 가볍게 여기는 것은 준마와 주옥이요,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정권과 군권이다. 나라를 잃는 군주는 그렇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정권 주기를 가볍게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준마주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다른 사람에게 군권주기를 가볍게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주옥주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372] 무릇 땅이 없으면서 부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우환이 있고, 덕이 없으면서 왕업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위태롭고, 조금 베풀면서 많이 얻고자 하는 사람은 고립된다.
[373] 패업과 왕업이 시작되는 곳은 사람을 근본으로 한다. 근본이 다스려지면 나라가 굳건하고, 근본이 어지러우면 나라가 위태롭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명철하면 아랫사람이 공경하고, 정치가 평정되면 사람이 편안하고, 병졸들이 훈련받고 화합하면 군대가 적을 이기고, 유능한 사람을 부리면 온갖 일이 다스려지고, 어진 사람과 친하면 윗사람이 위태롭지 않고, 현명한 사람을 신임하면 제후들이 복종한다.
[381] 정사를 자문하는 일은 큰 공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해야 하고, 정책을 베푸는 일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389] 작은 이익을 탐하는 것은 믿음을 잃게 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것은 의를 상하게 하고, 어느 한쪽만 믿는 것은 덕을 상하게 하니, 돈독히 화목하여 사방의 제후들과 조약을 맺어서 온전한 덕을 순조롭게 하여 천하의 변방도 후하게 대접하라.
[393] 음식을 먹고 숨을 쉬는 것은 생명을 기르는 것이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삶의 변화며, 사물을 지혜롭게 판단하는 것은 삶의 덕행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음식을 적당하게 조절하고, 일하고 쉬는 것을 때에 맞추어 행하여서 육기의 변화를 바르게 조절하고 성색의 음탕함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했습니다.
[394] 인은 마음속에서 나온 것이고, 의는 밖에서 만들어져 온 것입니다. 인하면 천하를 이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의로우면 자기의 명성을 위해 천하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인하면 자기가 천하를 대신하여 왕이 되려 하지 않고, 의로우면 70세가 되면 정치에서 물러납니다.
[394] 덕이 있다고 불리는 까닭은 서둘지 않아도 맡은바 일에 힘쓰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처리를 잘하고, 행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이 성사되고, 부르지 않아도 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덕입니다.
[394] 상대방과 교류는 적게 하면서 많은 사람과 친한 것을 사람을 안다고 합니다. 일은 적게 벌이면서 일을 성공시키는 것을 일을 잘한다고 합니다. 한마디 말만 듣고서 만물을 꿰뚫어 아는 것을 도를 안다고 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데 온당치 못한 말이 있으면 말을 적게 하는 것만 같지 않고, 많이 배우고서도 스스로를 돌이켜 볼 줄 모르면 반드시 사악한 행위가 있게 마련입니다.
효재는 인의 근원이 되며, 충신은 교제의 근거가 됩니다. 안에서는 효제를 돌아보지 않고, 밖에서는 충신을 바로 하지 않아, 이 네 개의 벼리를 저버리고 입으로만 외워 대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 몸을 망칩니다.
[402] 하늘이 습붕을 낳아 이 이오의 혓바닥으로 삼았는데, 몸이 죽으면 혓바닥이 어찌 살 수 있을까!
[416] 승리는 세상을 제어하기를 도모하는 것이나 승리한다고 반드시 제어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제어할 수 있는 명분을 알아야만 제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군대가 있어야 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데는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하고, 나라를 강하게 하는 데는 계책이 있어야 하고, 적국을 이기는 데는 방법이 있어야 하고, 천하를 제어하는 데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441] 군주가 여러 신하들을 통제하고 만백성을 통섭하려면 반드시 국가의 중앙에 있는 측근과 지위 높은 대신들의 화합된 협조가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중앙의 좌우 대신들과 군주의 관계는 하나의 테두리로 묶여 있다.
[448]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은 네 가지가 있고, 망하게 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궁중에 본처를 의심하는 첩이 있으면 이는 궁중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서손이 적손을 의심하면 이것은 가정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조정에 재상을 의심하는 신하가 있으면 이것은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재능이 없는 사람을 관직에 임용하면 이는 여러 관리들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군주가) 이 네 가지를 식별하지 못하면 그 체제를 잃을 수밖에 없다. 여러 관리들이 패거리를 만들어 각각 사심을 품으면, (군주는) 자기 종족의 옹호를 잃는다. 나라의 측근 신하들이 보이지 않게 조직을 만들어 남몰래 일을 도모하며 시기를 기다리면, (군주는) 바깥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안으로 종족의 지지를 잃고, 밖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것이 망하게 하는 두 가지이다.
[451] 자기가 착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 단청은 산속에 묻혀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들고, 아름다운 구슬은 깊은 물속에 있어도 사람이 알고서 캐내려 든다. 그러므로 내가 과오를 저지를 수 있지만, 백성이 잘못된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453] 자신에게 죄를 돌리는 사람은 백성에게 죄를 얻지 않고, 자신에게 죄를 돌리지 않는 사람은 백성이 죄를 준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은 강하고, 자신의 절도를 다스리는 사람은 지혜로우며, 다른 사람에게 불선하지 않는 사람은 어질다.
[458] 환공, 관중, 포숙아, 영척 네 사람이 함께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환공이 포숙아에게 말했다.
“왜 과인을 위해 축복의 건배를 하지 않습니까?”
포숙아가 잔을 높이 들고 일어나 말했다.
“공께서는 거나라에 도망가 계실 때를 잊지 마시고, 관중은 노나라에 붙잡혀 있을 때를 잊지 마시며, 영척은 수레 아래에서 소 먹이던 일을 잊지 마십시오.”
환공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번 절하며 말했다.
“과인이 두 분의 대부와 더불어 선생의 말씀을 잊지 않으면, 나라의 사직은 반드시 위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462] 환공이 말했다.
“증보께서는 이미 나에게 옛날 도가 있던 군주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나에게 옛날 무도했던 군주에 대해서도 마땅히 말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거울로 삼겠습니다.”
관자가 대답했다.
“지금 군주께서도 아름답고 현명하여 통달했습니다. 이미 선한 도리에 밝으신데, 무엇 때문에 나쁜 행도에 대해 듣고자 하십니까?”
환공이 말했다.
“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채색으로 꾸미면, 내가 어찌 그것의 아름다움을 알겠습니까? 흰 색으로 흰 색을 꾸미면, 내가 어찌 그것의 좋음을 알겠습니까? 증보께서 나에게 선한 것을 말하고 악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내가 어찌 선한 것이 선한지 알겠습니까?”
[499] 환공이 물었다.
“많은 현명한 이와 어떻게 해야 친근해질 수 있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낚시 밥을 먹지 않는 어별은 그 못에서 나오게 하지 못하고, 서리와 눈을 이기는 수목은 날씨를 따르게 할 수 없으며,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선비는 군주를 좇지 않습니다. 어찌 친근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듣건대, 원하지 않는 사람은 억지로 복종시킬 수 없고, 지혜로도 제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달이 한 달을 주기로 차고 비어 밝기에 차이가 있는 것과 같으니, 그러하면 서서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도를 곤궁하게 하고, 그 주는 것을 박하게 하면 선비들과 친근해질 것입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주는 것을 호인이라 하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취하는 것을 호리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살펴서 처하고 행하는 원칙을 삼으면 친근해질 것입니다.”
[501] 환공이 물었다.
“청하여 묻건대, 일에는 때에 따라 나타나는 우연한 재변이 있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음양이 배합하여 분량이 정해지면, 달고 쓴 풀이 자랍니다. 그 마땅함을 시고 짠맛이 화합하고, 형색이 정해지고, 소리가 화합하여 기쁘게 합니다. 무릇 음양이 나아가고 물러나며, 아무 때나 차고 비며, 그 흩어지고 합하는 상황을 따라서 그 해의 풍흉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성인만이 그 해의 수확에 국한되지 않고 차고 빈 것을 알 수 있어서, 남고 찬 것을 빼앗아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정사에 통하고, 백성의 생업을 넉넉하게 합니다. 땅의 재변 기상은 그것이 나오는 곳에 응합니다. 물의 재변 기상은 정성으로 응하여 미리 대비합니다. 하늘의 재변 기상은 정도로 응합니다. 또 무릇 천지의 정기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운행은 반드시 그치지 않고, 그것이 극에 달하면 되돌아옵니다. 그 기운의 통하고 막힘, 형체가 일어나고 소멸함, 사라지고 자라남, 곧 이러한 법칙은 알기 어려우니, 이것이 형체가 때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503] 환공이 물었다.
“국운이 흩어졌다가 합하고, 비었다가 차는 이치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20년 안에 권세가 커지고, 12년 뒤에 섭정하는 권세가 커지며, 100년이 지나면 제사가 끊어질 것입니다. 주 때의 예악이 변하면 주의 법률이 페지될 것이니, 중국의 문화가 낙후된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러하면 군주의 음악과 복식이 변할 것이고, 신하는 천사의 큰 녹봉에 의지합니다. 부인이 정사를 하면 철이 중한데 도리어 청동을 대량으로 쓰고, 덕이 낮은 소리를 좋아하고 짜고 쓴 맛을 좋아합니다. 군주의 지위가 나날이 낮아지며, 빠르면 시내, 구릉, 산, 골짜기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가 바뀌고, 그에 응하여 나라의 이름도 바뀝니다. 큰 변화를 보면 풍속의 변화가 보입니다. 옛날의 제사는, 때에 맞춰 별이 드러날 때 제사지내고, 때에 맞춰 해가 떠서 따뜻할 때 제사지냈습니다. 근심이 따라서 커지니, 이는 음양의 규율입니다. 아름다움도 변하여 쇠락하니, 이는 산천 제사가 바뀌고 나라 이름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천자가 나라를 다스림에 (제사에 필요한) 수물을 갖추려고 도모했습니다.”
[505] 도는 멀리 있지만 도달하기 어렵고,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만 터득하기 어렵다. 그 욕심을 비우면 신이 들어와 자리하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이 머문다. 사람은 모두 지혜롭고자 하지만 아무도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506] 몸에서 마음은 군주의 지위와 같고, 아홉 구멍은 관직과 같다. 마음이 올바른 도에 처하면 아홉 구멍이 이치를 따르지만, 욕심으로 가득 차면 눈이 색을 보지 못하고, 귀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
[508] 죽임으로 사람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죽음을 싫어하기 때문이며, 불이익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이익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좋아하는 것에 유혹 당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에 억눌리지 않으며, 편안함과 고요함으로 꾀와 속임을 버린다. 만물에 응함은 자연스러울 뿐 인위적으로 설정된 것에 따르지 않으며, 그 거동은 자연스러울 뿐 무엇을 꼭 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과실은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데 있고, 죄는 멋대로 변화하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도가 있는 군주는 처함은 무지한 듯하고, 응함은 배합한 듯하니, 고요함으로 자연의 도에 따르기 때문이다.
[510] “사람은 모두 지혜롭고자 하지만 아무것도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고 했는데, 지혜란 대상이다. 지혜로워지는 방법은 주관이다. 주관을 닦지 않으면 어떻게 대상을 알 수 있겠는가? 주관을 닦는데는 비움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비움이란 감춤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버리면 무엇을 따라 구할 것인가? 감춤이 없으면 무엇을 설정할 것이 있겠는가?”라고 한다. 구함도 없고 설정함도 없으면 사려함이 없고, 사려함이 없으면 비움으로 돌아간다.
[520] 무릇 백성의 본성은 반드시 중정과 평화다. 본성을 잃는 까닭은 반드시 지나치게 즐거워하고 노여워하기 때문이다. 노여움을 절제하는 데는 음악만한 것이 없고, 즐거움을 절제하는 데는 예만한 것이 없으며, 예를 지키는 데는 공경만 한 것이 없다. 밖으로 공경하고 안으로 고요한 사람은 반드시 그 본성을 회복한다.
[520] 어찌 이익이 되는 일이 없겠는가? 나는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없다. 어찌 편안한 곳이 없겠는가? 나는 편안함을 구하는 마음이 없다. 마음속에는 또 마음이 있다. 뜻이 언어보다 앞서고, 뜻이 있은 뒤에야 (마음이) 드러나고, (마음이) 드러난 뒤에야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야 안다. 무릇 마음의 특성이 앎이 지나치면 본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534] 땅이란 만물의 근원으로, 모든 생명체가 여기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데, 아름다움과 추악함, 현명함과 못남, 어리석음과 뛰어남이 생기는 곳이다. 물이란 땅의 혈기로 사람에게 혈맥이 흐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물은 모든 가능성의 근원이다”라고 한다.
어떻게 그러한디를 아는가? 말하기를, 무릇 물은 부드럽고 맑아서 사람의 더러움을 씻어 주기를 좋아하니, 어질다. 보기에는 검지만 희고 깨끗하니, 순수하다. 헤아려 되질하지 않아도 가득차면 그치니, 바르다. 어느 곳에나 흐르지 않는 곳이 없고 평평하면 멈추니, 의롭다. 사람은 모두 높은 곳으로 달려가지만 (물은) 홀로 낮은 곳에 거하니, 겸손하다. 겸손함이란 도가 머무는 집이요, 군주 노릇하는 사람이 쓰는 도구이니, 물은 모든 것이 모이는 곳이다.
[536] 사람은 물이다. 남녀의 정기가 합하고 물이 흘러서 (태아가) 형성된다. (태아는 모체안에서) 석 달을 머물며 머금는데, 머금음이란 무엇인가? 오미(五味)라고 말한다. 오장(五臟)이라 말한다. 신맛은 비장을 주관하고, 짠맛은 폐를 주관하고, 매운맛은 신장을 주관하고, 쓴맛은 간을 주관하고, 단맛은 심장을 주관한다. 오장이 이미 갖추어진 뒤 오내(五內)가 생긴다. 비장은 횡격막을 만들고, 폐는 뼈를 만들고, 위는 골수를 만들고, 간은 피부를 만들고, 심장은 살을 만든다. 오내가 이미 갖추어진 뒤 구규가 만들어진다. 비장은 코를 만들고, 간은 눈을 만들고, 신장은 귀를 만들고, 폐는 입과 항문과 요도를 만든다.
[549] 해는 양을 관장하고, 달은 음을 관장하고, 별은 화를 관장한다. 양은 덕이 되고, 음은 형벌이 되고, 화는 정사가 된다.
[550] 도는 천지를 낳고, 덕은 현인을 배출한다. 도는 덕을 낳고, 덕은 바름을 낳고, 바름은 일을 낳는다. 이로써 성왕이 천하를 다스림이 궁극에 달하면 되돌아오고,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
[552] 첫째는 농사요, 둘째는 기계를 만드는 공업이요, 셋째는 상업이요, 넷째는 정치요, 다섯째는 교육이요, 여섯째는 국방이요, 일곱째는 건설이요, 여덟째는 형벌이요, 아홉째는 경제요, 아홉 가지가 갖추어진 뒤에야 오관이 육부에 있고, 오성이 육률과 조화를 이룬다.
[566] 성공하는 방법은 굽히고 펴는 것이 보배다. 하늘의 지극함을 잊지 말고, 하늘의 법칙을 끝까지 탐구하고 그친다. 일을 이루지 못하여도 평소의 모습을 바꾸지 말고, 첫 마음을 잃지 말며, 백성을 안정시키고 때를 살피며, 하늘의 명령을 기다려서 일어나야 한다.
[567] 짐승은 앞만 보고 달려 덫에 걸린다. 엎어지고 제치고 해봐도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
[569] 다섯 가지 형벌을 집행함에 각각 죄명에 마땅해야 죄인이 원망하지 않고, 선인이 (형을 집행해도) 놀라지 않는 것을 형(刑)이라 한다. 그를 바로잡고, 복종하게 하고, 경각하게 하고, 가지런하게 하여, 반드시 죄를 엄하게 다스리지만 백성이 받들어 지키는 것을 정(政)이라 한다. 사계절이 어긋나지 않는 것과 같고, 뭇별이 변하지 않는 것과 같고, 낮과 밤이 바뀌는 것과 같고, 음양이 바뀌는 이치와 같으며, 해와 달이 밝음과 같은 것을 법(法)이라 한다. 그를 사랑하고, 낳고, 기르고, 성장하게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면서도 스스로 덕으로 여기지 않고 천하가 친근히 하려는 것을 덕(德)이라 한다. 덕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으며, 만물이 으뜸으로 숭상하고, 음양이 한 곳으로 돌아오는 것을 도(道)라 한다.
형으로 재단하고, 정으로 명령하고, 법으로 막고, 덕으로 기르고, 도로 밝힌다.
[574] 성군은 법에 맡기되, 개인의 지모에 맡기지 않고, 술에 맡기되 공허한 학설에 맡기지 않고, 공적인 것에 맡기되 사적인 것에 맡기지 않고, 큰 도에 맡기되 작은 이익에 맡기지 않아야 하니, 그런 뒤에야 자신이 안정되고 천하를 다스린다.
[579] 군주가 정사를 다스리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무릇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사로이 상을 주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사사로이 벌을 주지 않는다. 예의를 두고 법을 설치하여 법도를 헤아려 판단하는 사람은 최고의 군주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사로이 상을 주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사사로이 벌을 주며, 대신들의 건의를 팽개치고 좌위의 충고를 듣지 않으며, 오직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사람은 보통의 군주다. 신하에게 사랑스런 구석이 있다고 사사로이 상을 주고, 싫은 구석이 있다고 사사로이 벌을 주며, 공정한 법도를 팽개치고 바른 마음을 버리며, 오직 아첨하는 대신의 말만 듣는 사람은 위태로운 군주다.
그러므로 군주는 좋아하는 사람에 치우치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에 치우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에 치우치면 나날이 덕을 잃고, 싫어하는 것에 치우치면 나날이 위엄을 잃는다. 위엄과 덕을 모두 잃으면 군주는 위태롭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여섯 가지 있다. (백성을) 살리고, 죽이고, 부유하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귀하게 하고, 친하게 하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권력이란 군주가 쥐고 있어야 할 것이다. 군주가 처해야 할 곳이 네 군데 있다. 첫째는 문(文)이요, 둘째는 무(武)요, 셋째는 (준법의) 위엄이요, 넷째는 덕(德)이다. 이 네가지 지위란 군주가 처해야 할 곳이다.
[597]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지만, 백성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 어떻게 그러함을 아는가? 백성이 부유하면 고향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가정을 중시한다. 고향을 편안하게 여기고 가정을 중시하면 윗사람을 공경하고 죄를 두려워한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죄를 두려워하면 다스리기 쉽다.
[598] 옛날 79대의 군주들은 그 법률제도가 같지 않고, 명령이 같지 않았으나, 모두 천하의 왕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반드시 나라가 부유하여 양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릇 나라가 부유하고 양식이 많음은 농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선왕은 그것을 중시했다. 무릇 나라를 다스림에 급한 것은 반드시 먼저 상공업이나 사치스런 장식물을 금하는 것이다. 상공업이나 사치스런 장식물 만드는 일을 금하면 백성이 놀고 먹는 일이 없다. 백성이 놀고먹는 일이 없으면 반드시 농사를 짓는다. 백성이 농사를 지으면 농토가 개간되고, 농토가 개간되면 곡식이 많아지고, 곡식이 많아지면 나라가 부유해진다. 나라가 부유하면 군대가 강해지고, 군대가 강해지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영토가 넓어진다.
[600] 그러므로 선왕은 농부와 선비와 상인과 장인 네 직업의 백성이 각기 노력을 하여 그 결과물을 서로 바꾸게 해서, 한 해가 끝났을 때 이익이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백성의 노력은 똑같으면서 이익은 균등하게 나뉜다. 백성의 노력이 똑같으면, 농토가 개간되어 간교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농토가 개간되면 곡식이 많아지고, 곡식이 많아지면 나라가 부유해진다. 간교한 일이 생기기 않으면 백성이 다스려진다. 부유하고 다스려지는 것, 이것이 왕의 도다.
[603] 형체가 바르지 않으면 덕이 오지 않는다. 마음속이 고요하지 않으면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형체를 바르게 하고 덕을 정돈하며, 하늘의 어짊과 땅의 의로움을 본받으면 저절로 신명의 경지에 이르러 만물을 밝게 한다.
[605] 무릇 마음의 모습은 저절로 가득 차고 저절로 넘치며, 저절로 생기고 저절로 이룬다. 그 본심을 잃는 까닭은 반드시 근심, 즐거움, 기쁨, 노여움, 욕심, 이기심 때문이다. 근심, 즐거움, 기쁨, 노여움, 욕심, 이기심을 없앨 수 있으면, 마음이 평정하게 돌아온다.
[607] 하늘은 바름을 주로 하고, 땅은 고름을 주로 하며, 사람은 안정되고 고요함을 주로 한다.
[609] 위로는 하늘에 이르고 아래로는 땅에 미치니,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 무엇으로 그것을 이해하는가? 마음이 편안할 때 가능하다. 내 마음이 다스려지면 감각 기관이 다스려지고,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 감각 기관이 편안해진다. 다스리는 것도 마음이고, 편안하게 하는 것도 마음이다. 마음은 심장 속에 깃들어 있으니, 심장 가운데 또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심장 속의 생각하는 마음은 뜻이 언어에 앞선다. 뜻이 있은 뒤에야 형체가 있으며, 형체가 있은 뒤에야 언어가 있다. 언어가 있은 뒤에야 부림이 있고, 부림이 있은 뒤에야 다스림이 있다. 다스려지지 않으면 반드시 어지러워지는데, 어지러워지면 패망한다.
[613] 무릇 사람의 생명은 반드시 평정으로 지속해야 한다. 그것을 잃는 까닭은 반드시 기쁨, 노여움, 근심, 걱정 때문이다. 노여움을 그치는 데는 시보다 좋은 것 없고, 근심을 없애는 데는 음악보다 좋은 것이 없고, 즐거움을 조절하는 데는 예의보다 좋은 것이 없고, 예의를 지키는 데는 공경보다 좋은 것이 없고, 공경함을 지키는 데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안으로 고요하고 밖으로 공경하면 그 본성을 회복할 수 잇고, 본성은 장차 크게 안정될 것이다.
[614] 무릇 음식을 먹는 도는 너무 배불리 먹으면 손상되어 몸에 좋지 않고, 너무 굶주리면 뼈가 마르고 피가 마른다. 배불리 먹거나 굶주림의 사이, 이를 혈기가 조화롭고 몸이 건강하여 정기가 의지하는 곳이라 하니, 지혜가 생기는 곳이다. 배부르면 즐겁게 움직이고, 굶주리면 생각을 쉬고, 늙으면 생각을 아껴야 한다. 배부른데 즐겁게 움직이지 않으면, 기가 사지에 통하지 않는다. 굶주렸는데 생각을 쉬지 않으면, 배불러도 떨쳐 일어나지 못한다. 늙었는데 생각을 아끼지 않으면, 피곤하여 생기를 다한다.
[623] 환공이 말했다.
“백성들이 반드시 죽기를 각오하게 하고, 신뢰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세 가지 근본을 밝히는 것입니다.”
환공이 물었다.
“무엇을 세 가지 근본이라 합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세 가지 근본이란 첫째 백성의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이고, 둘째 신분을 높여 주는 것이며, 셋째 믿음을 보증해 주는 것입니다.”
환공이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고국과 부모와 조상의 묘소가 편안히 있는 것이 백성의 마음을 고정시키는 조건입니다. 밭과 집과 작록이 신분을 높여주는 조건입니다. 처자식이 믿음 보증해 주는 조건입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 뒤에야 그들의 존엄을 받들어 주고 투지를 격려해 주면, 백성은 죽기를 각오하고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633] 환공이 만물이 소생하는 봄인 3월의 어느 날 교외로 순찰을 나갔다. 환공이 말했다.
“어떤 사물을 군자의 덕에 비교할 수 있습니까?”
습붕이 대답했다.
“무릇 곡식은 겉껍질 속에 들어 있고, 속껍질로 둘러싸여 있으며, 밖에는 까끄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감히 스스로 뻐기지 않고 낱알일뿐이라고 겸손합니다. 이것이 군자의 덕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관중이 말했습니다.
“벼 싹은 조그맣게 시작하니, 유순함이 어린이와 같습니다. 점점 자라서 굳세니, 씩씩함이 선비와 같습니다. 완전히 익으니, 조화로운 모습이 군자와 같습니다. 천하가 그를 얻으면 안정되고, 천하가 그를 얻지 못하면 위태롭기 때문에 벼라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군자의 덕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641] 수고로운 군주는 직분을 나누는 것이 밝지 못하여 상하가 서로 간섭하고 군주와 신하가 법을 어지럽힌다. 형벌을 지나치게 내려 백성이 두려워하고, 백성의 심경은 더욱 각박해진다. 그것을 없애지 못하면 장차 혼란에 빠진다. 그대로 두면 장차 위태로워진다. 뒤를 잇는 후사가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648] 무릇 나라가 망하고 가문이 쓰러지는 것은 토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일한 결과의 공효가 없기 때문이다. 흉년에 마른 우레가 잦은 것은 비와 이슬이 없어서가 아니라, 건조하고 습한 기운이 때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정사가 번잡한 것은 법령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주고 벌주는 사람이 적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학한 군주와 미혹한 군주는 신하 가운데 심복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하를 취하고 버리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여섯 가지 힘쓰는 것과 네 가지 금하는 것이 있다. 여섯 가지 힘쓰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아껴쓰기, 둘째 현명한 신하의 보좌, 셋째 법도의 준수, 넷째 죄지은 사람은 반드시 벌하기, 다섯째 천시에 따르기, 여섯째 지의에 따르기다. 네 가지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봄에는 죽이거나 벌하지 않고, 큰 구릉을 파헤치지 않고, 화전에 큰 불을 놓지 않고, 대신을 죽이지 않고, 곡식으로 부세를 거두지 않는다. 여름에는 하천의 물이 큰 강에 흘러드는 것을 가로막아서는 안되고, 큰 계곡을 막아서는 안되고, 큰 토목 공사를 일으켜서는 안되고, 새와 짐승을 사냥해서는 안된다. 가을에는 죄과를 사면하지 않고, 죄인을 석방하지 않고, 형벌을 감형하지 않는다. 겨울에는 벼슬을 봉하거나 녹을 깎지 않고, 오곡을 거두어 갈무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669] 관중이 제나라에 들어와 40일째 되는 날까지 아홉가지 시혜 정책을 다섯 번 행했다.
첫째는 노인을 어른으로 모시는 일,
둘째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일,
셋째는 고아들을 구휼하는 일,
넷째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돌보는 일,
다섯째는 홀로 된 사람을 결혼시키는 일,
여섯째는 병든 사람을 위문하는 일,
일곱째는 곤궁한 사람을 살피는 일,
어덟째는 흉년 때 고용인들을 보살펴 도와주는 일,
아홉째는 유공자들에 대한 보훈이다.
[725] 범과 표범은 동물 가운데 맹수다. 깊은 숲과 넓은 뜰에 살면 사람이 그 위력을 두려워하여 존중한다. 군주는 천하에 위세를 가진 사람이다. (조정에) 깊이 살면 사람이 그 위세를 두려워한다. 범과 표범이 심산유곡을 떠나서 사람이 사는 근처에 오면, 사람이 잡아 죽여 위풍을 보지 못한다. 군주가 대궐을 떠나서 백성에게 가까이 오면, 백성은 그를 우습게 봐서 권세가 가벼워진다.
[733] 제때 일어나고, 절도에 맞게 음식을 먹으며, 기후가 알맞으면, 몸에 이로워서 수명이 늘어난다.
[740] 백성은 이로움이 있으면 오고, 해로움이 있으면 떠난다. 백성이 이익을 좇음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를 때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백성을 불러오려는 사람은 먼저 이로움을 일으키면 부르지 않아도 백성이 스스로 찾아온다. 싫어하는 것을 설치하면 불러도 백성이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 곳에 있는 인재를 불러들이려는 군주는 사신만 보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고 한다.
[741] 현명한 군주가 멀리 있는 사람을 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친근하게 하는 것은 그 핵심이 마음에 있다.
[745] 성인은 (일을 할 때) 승낙하고 거절하기를, 먼저 그 의리를 판단하고, 성공할 수 있는지 없는지 헤아린다. 의에 합하면 승낙하고, 의에 합하지 않으면 거절한다. 성공할 수 있으면 승낙하고, 성공할 수 없으면 거절한다. 그러므로 그의 승낙은 믿지 않을 수 없다.
[746] 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광대해질 수 있다. 산은 흙과 돌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높아질 수 있다. 현명한 군주는 사람 수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많을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선비는 배우는데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성철이 될 수 있다. 먹기를 꺼린다는 것은 먹기 싫어하는 것이 많은 것이다. 간언이란 군주를 안정되게 하는 것이다. 음식은 몸을 살찌우는 것이다. 군주가 간언을 싫어하면, 군주의 자리가 안정되지 않는다. 사람이 먹을 것을 싫어하면, 살찌지 않는다. 그러므로 “음식 투정을 하는 사람은 몸에 살이 붙지 않는다”고 한다.
[761] 사람과 교류할 때 거짓이 많고 진실이 없으며, 구차하게 모든 것을 취하려는 것을 까마귀 때의 사귐이라 한다. 까마귀 떼의 사귐은, 처음에는 서로 좋아해도 나중에는 반드시 서로 질타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새나 까마귀들은 잘 모이기는 하나 서로 아낄 줄은 모른다”고 한다.
[762] 현명한 군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를 헤아린 뒤 사람을 부린다. 그러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명령하여 명령이 시행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시키면 그 일이 성공한다.
[769] 군주가 신하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위세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세가 아랫사람에게 있으면 군주는 신하에게 제압당하고, 위세가 군주에게 있으면 신하는 군주에게 제압당한다. 무릇 꽉 막힌 군주는 큰 대문은 닫아걸지 못하고 쪽문만 지키니, 그러하여 명령은 시행되지 않고 금지 사항은 지켜지지 않으며, 하고자 하는 바를 할 수 없어 자기의 위세를 잃는다.
[782] 다스림의 근본은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고, 둘째는 일을 다스리는 것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쓰임을 구해야 하고, 일을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치밀하게 이루도록 해야 한다. 사람에는 (뜻을) 거스르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있고, 일에는 (대상의 역량을)정확히 측정하는 칭량이 있다. 사람이 마음을 거스르면 쓰지 않는다. (일에) 칭량을 잃으면 일이 치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이 치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손상이 있다. 사람은 쓰이지 않으면 원망을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는 자신에 비추어 보아서 무리하지 않게 하고, 사업을 완성하는 데는 필요한 재물을 부족하지 않게 지원한다”고 한다.
[785] 안정된 나라에는 ‘삼기(三器)’가 있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육공(六攻)’이 있다. 현명한 군주는 육공을 이기고 삼기를 세우기 때문에 나라가 안정된다. 어리석은 군주는 육공을 이기지 못하고 삼기를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나라가 안정되지 않는다. 삼기란 무엇인가? 법령, 형벌의 도끼, 녹과 상이다. 육공이란 무엇인가? 친근한 사람, 귀한 사람, 재화, 여색, 아첨하는 무리, 즐기는 물건이다.
[787] 해와 달의 비춤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 어디나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 성인은 그것을 본받아 만민을 골고루 밝게 비추기 때문에 밝게 살피어 잊히는 선행이 없고, 숨겨지는 악행이 없다.
[804] 저울이란 물체의 무게를 재는 목적으로 쓴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을 쓰지 않는 것은, 마음은 재물의 이익을 싫어하기 않기 때문이다. 저울은 저울추와 저울대로 이루어졌는데, 저울추로 수량의 많고 적음을 멋대로 조작할 수 없고, 저울대로 무게의 가볍고 무거움을 멋대로 조작할 수 없다. 사람은 저울을 사용하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군주 자리에 있으면, 관리들이 법을 왜곡할 수 없고, 아전들이 사사로이 일처리를 할 수 없으니, 백성들이 관리를 섬기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재화가 아전들의 손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저울대가 똑바로 평행을 유지한 다음에 저울에 물건을 실어야 하듯이, 인간 사회에서도 모든 문제를 공정히 처리하려면 법에 의존해야만 가능하다. 모든 것을 법에 의해 처리하면, 간교한 무리가 사사로운 이익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명법>에 “저울의 계량이 있으면 무게를 속일 수 없다”고 한다.
[839] 환공이 관자에게 물었다.
“내가 누대와 정각에 세금을 징수하려는데 어떻습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이는 지어져 있는 누대와 정각을 헐게 할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나는 나무에 세금을 징수하려 합니다.”
관자가 대답했다.
“이는 묘목을 베게 할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나는 가축들에 세금을 징수하려 합니다.”
관자가 대답했다.
“이는 어린 가축을 죽게 할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나는 인두세를 징수하려는데, 어떻습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이는 욕정을 억제하여 인구를 줄어들게 할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가?”
관자가 대답했다.
“오직 산과 바다의 자원을 잘 관리해야만 합니다.”
[1008] 환공이 말했다.
“남에게 빌어먹는 척박한 땅을 가졌는데, 이를 극복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세 가지 재원을 통제하십시오.”
환공이 말했다.
“무엇을 세가지 재원이라 합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군주께서 포목을 통제하려면 삼에 세금을 거두십시오. 삼가격이 10배로 오르면, 포목가격은 50배가 됩니다. 이것이 방법입니다. 군주께서 직물로 이윤을 얻으시려면, 먼저 실에 세금을 거두십시오. 실이 되기 전에 실에 세금을 거두고 직무을 통제하면 20배의 이윤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면 양식에 세금을 거두지 않아도 됩니다. 이 때문에 포목으로 수익을 얻고자 하면 실과 삼을 통제합니다. 양식세로 수익을 얻고자 함년 씨앗, 뽕나무, 양잠을 공급하는 산을 통제합니다. 가축으로 수익을 얻고자 하면 목축을 하는 교외를 통제합니다. 물자 생산의 가장 빠른 시기에 세금을 걷는 방법을 호령을 잘 운용하는 것입니다.”
[1010] 환공이 말했다.
“그러하면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습니까? 가난함을 부유함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물자가 처음 생겼으나 아직 형상이 뚜렷하지 않은 시기가 바로 훌륭한 군주가 공을 세우는 때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을 써서 사람의 마음을 잡는 방법은 사람의 태도가 관건이고, 물가 조절 정책을 통해 상품에서 세금을 거두려면 상품 가격의 높낮이가 중요합니다.”
환공이 말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나라의 물가를 하나로 통일하면, 이익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나라의 물가를 열 가지로 차등하면, 이익이 100배가 됩니다. 그러하면 우리는 호령의 완급을 운용하여 통제하니, 마치 왼손으로 오른손에 주고 오른손으로 왼손에 주는 듯하고, 이것으로 안팎을 조절하면 몸이 다하도록 허물이 없을 것입니다. 훌륭한 군주는 백성에게 직접 세금을 거두지 않고 물자 생산의 가장 빠른 단계를 장악하며, 사계절 물가의 높낮이를 통제하고 명령의 완급을 활용할 뿐입니다. 샘을 마를 수 있고, 귀신의 활동은 멈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자 생산의 가장 이른 단계를 장악하면, 몸이 다하도록 이익이 고갈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재원의 근본과 끝이라고 합니다.”
[1028] 정신은 생각을 생성하고, 생각은 법규를 생성하고, 법규는 곱자를 생성하고, 곱자는 네모를 생성하고, 네모는 바름을 생성하고, 바름은 역법을 생성하고, 역법은 사계절을 생성하고, 사계절은 만물을 생성한다. 성인은 이러한 원칙에 의거하여 사물을 다스리니, (세상을 다스리는)도가 두루 갖추어진다.
3. 내가 저자라면
모든 일에 시작이 중요함을 언급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될지 모르지만 『관자』책을 보면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역본이어서 반은 한자이고 반은 한글이라고 하지만, 우선 1000페이지에 이르는 부피에 질리고, 여기에 중국 최고의 정치가인 관중의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으니 첫 장을 넘기는 손이 무겁지 않을 수 없었다.
『 환공이 마구간을 시찰하다가, 마구간 지기에게 물었다.
“마구간에서 어떤 일이 가장 어려운가?”
마구간 지기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관중이 대답했다.
“저는 일찍이 말을 길러 본 적이 있는데, 우리를 짜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말 우리를 짤 때 나무 막대를 엮으며 짜는 데, 먼저 굽은 나무를 쓰면 이어서 굽은 나무를 써야 하고, 굽은 나무를 쓰면 곧은 나무를 써서 엮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곧은 나무를 쓰면 이어서 곧은 나무를 써야 하고, 곧은 나무를 쓰면 굽은 나무를 써서 엮을 수가 없습니다.”』
(관자, 小問, p 630)
방대한 양을 짧은 시간 내에 소화하기란 어렵기에 먼저 관점을 정하기로 하였다. 어떤 관점으로 책을 볼 것인가? 지혜의 바다에 어떤 그물을 던져 어떤 물고기를 낚을 것인가? 이 점을 먼저 찾기 시작하였다. CEO, 시스템 경영, 실용주의 등 여러 가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 나의 눈을 밝힌 한 구절을 발견하였다.
『국가의 부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백성의 부를 중시하느냐 하는 부국(富國)․부민(富民)의 문제는 유가와 법가 사이의 중요한 논점이다. 대체로 법가에서는 부국을 유가에서는 부민을 우선시 한다. 그러나 관자는 양자를 모순 관계로 보지 않고 부민을 통한 부국을 추구한다.』(p 19)
모순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이분법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상생의 길을 발견한 관자의 관점을 발견하였다. 나는 이 관점에 마음이 쏠렸고 이 책을 ‘모순과 상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로 정하였다.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하겠다. 그 구성요소는 제도와 사람이다. 여기서 두 구성요소 중에 어느 부분을 우선시 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철학을 구분해볼 수 있다. 유가는 도덕적 인간을 강조하는 반면, 법가는 제도를 우선시한다. 이와 달리 관자는 이 두 가지를 모순 관계로 보지 않고 전체적인 관점, 즉 시스템 관점에서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하겠다. 시스템과 모순, 이 두 가지를 고민하던 나에게 『관자』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 같다. 나의 책을 쓰는 데도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목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 행정, 법, 경제, 철학, 교육, 군사,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를 포괄하는 사상과 철학이 담겨있어 자신이 필요한 부분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 담겨있다. 시스템경영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관자』를 앞으로 지혜의 보고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조직에서부터 기업, 정부 등 큰 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을 담고 있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백성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지만, 백성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 어떻게 그러함을 아는가? 백성이 부유하면 고향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가정을 중시한다. 고향을 편안하게 여기고 가정을 중시하면 윗사람을 공경하고 죄를 두려워한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죄를 두려워하면 다스리기 쉽다. 백성이 가난하면 고향을 위태롭게 여기고 가정을 경시한다. 고향을 위태롭게 여기고 가정을 경시하면 감히 윗사람을 능멸하고 금령을 어긴다. 윗사람을 능멸하고 금령을 어기면 다스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다스려지는 나라는 항상 부유하지만 어지러운 나라는 반드시 가난하다. 그러므로 나라를 잘 경영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한 뒤에야 다스린다.』(관자, 치국(治國), p 597)
위 내용을 기업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기업은 반드시 직원을 만족시켜야 한다. 직원이 만족하면 다스리기 쉽다.’는 말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와 유사한 일본 기업이 생각난다. 일본에 있는 전기설비 제조업체인 미라이 공업주식회사이다.
“잔업, 휴일근무 없음. 전 직원 정규직. 70세 정년, 종신고용. 정리해고 없음. 업무 목표 없음. 연간 140일의 휴가+개인 휴가. 3년간 육아 휴직 보장. 5년 마다 전 직원 해외여행….”
어느 직장인이 꿈에 그린 회사의 풍경이 아니다. 실제로 이 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구조조정과 성과주의가 기업과 시장의 상식이 된 요즈음과는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대기업 마쓰시다 전기를 누르고 일본 동종 업계 시장 점유율 1위의 결과를 이루어 내어 일본에서도 ‘유토피아 경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주목하고 있다.
속도와 효율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논리가 아닌 “사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잘 된다”, “회사는 사장도 주주도 아닌 사원의 것”이라는 현대의 시류와 정반대인 논리를 펼치고 있다. 관자의 경영과 유사한 면도 많다.
이렇듯 극심한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의 재상으로서 부강한 나라로 발전시켰던 관자의 사상을 현대 기업에 적용할 이론으로 정리하여 현대의 성공한 기업의 사례로 비교 분석하여 보면 흥미로운 결과들을 도출해낼 수도 있겠다.
비록 많이 늦었지만 『관자』가 완역본으로 나오게 되어 다행이다. 그러나 86편중에 10편이 망실되고 76편만이 전해 오고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역사는 순환한다. 기록으로 남겨진 내용은 후대에 언젠가는 빛을 발할 날이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중요한 역사적 기록뿐 아니라 개인적인 기록도 남길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이는 구본형 선생님도 매우 강조하는 부분이다. 변화에 있어서 기록은 좋은 나침반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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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 | [독서34]동방견문록/사계절 | 素田최영훈 | 2007.12.01 | 2670 |
1190 | [34] 동방견문록/마르코폴로 | 교정 한정화 | 2007.11.30 | 2970 |
1189 | 『관자』를 읽고 (2) [2] | 현운 이희석 | 2007.11.30 | 2521 |
1188 | (34) 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 | 박승오 | 2007.11.30 | 3534 |
1187 | [관자] 관중의 삶을 좇아 | 여해 송창용 | 2007.11.30 | 2745 |
1186 | 번역을 시작하면서... [7] [3] | 香山 신종윤 | 2007.11.30 | 3213 |
1185 | 동방 견문록 / 마르코 폴로 | 香仁 이은남 | 2007.11.29 | 2911 |
1184 | [34]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사계절) [1] | 써니 | 2007.11.27 | 3178 |
1183 | 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 [2] | 호정 | 2007.11.27 | 3211 |
1182 | 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 | 소현 | 2007.11.27 | 2882 |
1181 |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2] | 海村 차순성 | 2007.11.26 | 3097 |
1180 |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장파 [1] | 우제 | 2007.11.26 | 3088 |
1179 | [독서33] 관자/3천년의 시공을 넘어서 | 素田 최영훈 | 2007.11.25 | 2978 |
» | [관자] 모순(矛盾)과 상생(相生) [2] | 여해 송창용 | 2007.11.22 | 3042 |
1177 | (32) 관자(管子) part.2 [5] | 時田 김도윤 | 2007.11.22 | 3578 |
1176 | (32) 관자(管子) | 時田 김도윤 | 2007.11.22 | 2961 |
1175 | [33] 관자/ 관중 / 소나무출판 [2] | 써니 | 2007.11.21 | 3028 |
1174 | 샘에게 보내는 편지 [2] | 김나경 | 2007.11.21 | 2788 |
1173 | (33) 관자 : 관중 | 박승오 | 2007.11.21 | 30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