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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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1254년 마르코 폴로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 니콜로와 숙부 마페오는 동방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베네치아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마르코 폴로가 태어났다. 저자의 집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명한 상인 집안이었다.
1269년 마르코 폴로가 열다섯이 되던 해 아버지와 숙부는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마르코 폴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던 해이다. 하지만 마르코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폴로 형제는 베네치아에서 2년 정도 머무르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지 않자 쿠빌라이에게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동방 여행길에 오를 때 형제는 마르코 폴로도 함께 데리고 갔다.
<동방견문록>의 기록에 따르면 마르코 폴로는 그곳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네 개의 언어를 익힐 만큼 총명했고, 새로운 환경에도 금방 적응했다고 한다. 쿠빌라이의 총애를 얻어 6개월 이상 걸리는 먼 곳으로 사신을 보낼 때면 마르코 폴로를 자주 보냈다. 마르코는 사신의 임무를 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의 문화와 풍습을 눈여겨보았다가 돌아와서는 자기가 본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재미있게 전해주었다. 마르코 폴로는 3년 동안 얀구이 시의 총독으로 파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머물렀던 기간은 대략 17년 정도다. 그 사이에 중국의 북부와 남서부, 남동부 지역을 두루 다녔으며 거의 안 가본 지역이 없을 정도였다. 중국에 머물면서 폴로 일행은 여러 차례 귀국의사를 밝혔지만 쿠빌라이는 그들을 보내려 하지 않았다. 아르곤 왕이 죽은 왕비를 대신할 같은 혈통의 여인을 구하기 위해 쿠빌라이에게 사신을 보냈다. 공주를 얻은 사신단은 육로를 통해 돌아가다가 잦은 정복전쟁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때 막 인도에서 돌아온 폴로 일행은 사신들과 함께 돌아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쿠빌라이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1291년, 코가틴 공주 일행과 폴로 일행은 무려 열네 척의 배를 거느리고 남중국해를 떠나 인도양으로 향했다. 2년여 기간 동안 항해를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아르곤의 왕국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쿠빌라이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폴로 일행은 더 이상 쿠빌라이의 궁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고향으로 출발했다. 1295년, 드디어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25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코는 그간 보고 들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었지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한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유럽 밖의 세계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13세기의 유럽 사람들에게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놀랍다 못해 의심스러웠다.
그동안 타지에서 유랑의 삶을 보냈던 마르코 폴로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세상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베네치아에서 돌아온지 1년쯤 지나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지중해 해상권을 두고 전쟁이 일어났다. 마르코 폴로는 전쟁에 참전했으나 포로로 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 감옥 안에서 이후 세계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진다. 마르코 폴로와 피사의 작가 루스티켈로가 만난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지난 25년간 자신이 겪었던 모든 신기한 경험들을 쏟아냈고, 루스티켈로는 그것을 받아 쓰기 시작했다. 1299년, 위대한 고전 <동방견문록>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마르코 폴로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1323년 1월 9일에 남긴 그의 유언장을 통해 그의 삶을 옅볼 수 있다. 그는 도나타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세 명의 딸을 두었다. 또한 가족과 종교단체에 남긴 유산으로 그의 생활은 어느 정도 풍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하인인 피에트로를 영원히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고 그에게 베네치아 금화 100리라를 주라고 유언장에 남기기도 했다. 그는 유언장을 쓴 후 1년쯤 지난 1324년 1월 8일, 베네치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또한 마르코 폴로의 공동 저자인 루스티첼로는 무명의 피사 출신 죄수가 아니라, 참회 왕 에드워드의 후원을 받아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십자군에 동행해 폴로 일가를 만나기도 했던, 당시 꽤 이름난 작가였다고 한다. 루스티첼로는 역사만큼이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로, 원탁의 아서에 대한 낭만적 역사와 트로이 전쟁,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기를 써왔다.
2. 재미있는 구절
24-마르코가 이러한 미지의 나라들의 특수 사항에 정통해 있었던 이유는, 요컨대 그가 누구보다도 종종 이들 지방을 답사하고 동시에 누구보다도 더 깊은 주의를 기울여 그 지식을 획득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53-이에 대해서 현인들은 그 원인이 토양의 차이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그래서 케르만 왕은 약간 명의 신하를 페르시아 제국 중에서도 유달리 인간이 사악하다고 전해지고 있는, 앞에 적은 이스파한 왕국에 파견하여, 현인들의 시사에 따라 그 나라의 흙을 7척의 배에 실어서 갖고 오게 하였다. 이 흙이 도착하자 왕은 신하들의 출입이 잦은 방 몇 개를 골라 역청을 바르듯이 그 방바닥 위에 바른 다음 융단으로써 이를 덮어 씌우게 하고, 그런 뒤에 이 방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가 벌어지자마자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벌써 서로 말다툼하고 때리고 하더니 마침내 사상자조차 내느 소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리하여 케르만 왕은 비로소 앞에 이야기한 이상한 사실의 원인이 토양의 차이에 있다고 언명하였다.
59-세상이란 편리하게 잘 되어 있어서 곡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여자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과 무관한 죽은 자들을 위하여 돈을 받고 울어준다.
72-케스무르 왕국 : 이 고장의 마술사들은 우상에게 말을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놀라운 기술을 갖고 있다. 그들은 또 마술을 사용하여 기후를 바꾸든가 암흑을 불러내리든가 한다. 그들이 행하는 마술의 묘는 실지로 이것을 보지 못한 자가 아니면 도무지 믿기 어려울 만큼 불가사의하다. 그들이야말로 전세계의 우상숭배자들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112-여하튼 이들 백색의 암말은 이같이 존중되고 있으므로, 그것들이 길을 지날 때에는 아무리 신분이 높은 귀족이라도 감히 그 대열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말떼가 모두 통과하기를 가만히 기다리든가 또는 우회해서 나가든가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 무리의 점성사*우상숭배자가 있어 칸을 향해 다음과 같이 진언했다. “매년 음력 8월 28일을 기하여 백마의 젖을 지상과 공중에 뿌려서 모든 정령에게 공양하십시오. 정령에게 이 말젖을 공양하기만 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칸이 소유하는 모든 것, 즉 인간*가축*금수*곡물을 비롯한 온갖 것을 보호할 것이외다.”
124-“그대들이 믿는 신의 십자가가 나얀을 가호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125-“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받고 숭앙되고 있는 네 명의 예언자가 있다. 기독교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신으로서 숭배하고, 이슬람 교도는 마호메트를 숭배한다. 또 유인 인은 모세를 숭배하고, 우상숭배자는 사캬무니 부르칸(석가모니)을 들어 우상으로 받드는 최초의 인물이라 한다. 나는 이 네 사람모두를 골고루 존경하고 숭앙한다. 하물며 넷 중에서도 신위가 가장 영묘하고 또한 최고의 진리를 갖춘 한 분에 대해서는 특히 존경하며 줄곧 그 가호를 비는 바이다.”
135-또한 칸은 이 석가산에 짙은 초록색을 띤 유리를 깔게 했기 때문에 나무나 풀이나 작은 언덕의 흙빛도 모두 초록색으로 보이고, 따라서 바라보는 눈에 비치는 바 모두 초록 일색이어서 석가산을 ‘초록의 언덕’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147-이토록 이 규칙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 이유는, 문지방을 누군가가 밟으면 반드시 재앙이 생긴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149-칸의 탄생일에는 또 우상숭배자*이슬람 교도*기독교도, 기타 모든 사람들이 성대히 성가를 합창하고 향불을 피우고 등불을 바치며, 저마다 자신들이 믿는 우상이나 신을 향하여 칸을 수호해 달라고 엄숙히 기도하며 그 만세와 행복과 건강을 기원한다. 이상과 같은 축하연이 칸의 탄생일에 거행되는 것이다. / 설날에는 칸에게 예속되는 모든 사람들, 각 지방과 각 왕국에서 온갖 보석류를 비롯하여 훌륭한 흰 천을 칸에게 헌상한다. 즉, 이것은 이 1년간을 통하여 그들의 주군이 칸이 재보를 풍부하게 갖고, 기분좋게 또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153-축전이 끝나갈 즈음 사자 한 마리가 끌려오는데, 그 사자는 칸을 보자마자 공순한 뜻을 표명하는 듯이 그 자리에 엎드린다. 마치 칸이 자기의 군주이며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이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사자가 어전에서 엎드리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이할 만한 광경인 것이다.
177-칸빌리크의 점성사들 이야기
180-그들이 믿는 바에 의하면, 인간은 죽지만 곧 다른 육체에 깃들여 전생한다. 이 경우 생전에 선을 행했는지 약을 행했는지에 따라 보다 나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혹은 나쁜 환경에도 태어난다. 그러므로 만일 그 사람이 평민이라도 생전의 행위가 유덕한 것이기만 하면 사후에는 귀부인의 태에 깃들어 전생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 인물이 생전에 귀족이었고 게다가 선행을 이륙했다면 그는 백작부인의 태에 깃들여 태어나서 그 생애를 마친 뒤에는 이번에는 왕녀의 배를 빌어 다시 태어나고, 점차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기를 거듭하여 마침내 신이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만약 악행을 거듭하면 농부로 다시 태어나고 그 다음에는 개로 태어나며, 계속해서 점차 하등의 것으로 전생해 간다.
195-196 티베트 지방의 결혼 풍습
208-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여러 지방, 즉 카라잔*야치*보찬을 통틀어 의사라는 이름이 붙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신분이 높은 자가 병에 걸리면 마술사, 즉 우상을 모시고 있는 무당을 부른다. 이들 마술사가 오면 환자는 이들에게 병의 증세를 알린다. 그러면 마술사들은 우선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부르며 환자주위를 춤추며 돈다.
228-230 카타이 인의 풍습 ~ 그리고 무슨 물건이건 정말로 노파가 말한 대로 찾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불실물이라도 반드시 발견되어 다시 주인의 손에 돌아온다. 분실물이 이렇게 하여 돌아오면 그들은 우상에 대한 존숭과 신심의 표적으로 이를테면 금란이라든가 비단 같은 종류의 값비싼 옷감을 1엘(1엘은 45인치)쯤 바친다.
274-커다란 호리병박의 윗부분을 잘라 이 파피오니가 그 안에 머리를 집어넣을 만한 구멍을 만들어 둔다. 단, 이 동물이 머리를 쑤셔 넣었을 때 그 압력으로 구멍이 찢어져 커지지 않도록 호리병박의 표면에 많은 작은 구멍을 뚫어서 한 가닥의 끈을 거기다 꿰어놓는다. 이렇게 해놓고 호리병박 밑바닥에 기름을 바른 다음 이것을 여러 개 야영지 주위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던져둔다.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파피오니는 뭔가 끌고 갈 것이 없는가 하고 다가와 호리병박에 칠한 기름 냄새를 맡고는 쏜살같이 호리병박으로 달려와서 머리를 그 속에 밀어 넣으려고 하나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안에 든 먹이에 마음이 있으므로 애를 써서 가까스로 머리를 쑤셔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절대로 호리병박에서 목을 뺄 수가 없다. 호리병박은 가벼우므로 머리를 쑤셔 넣은 그대로 이것을 들어 올려 뒤집어쓴 채로 가져가려고 하나 앞이 보이지 않으므로 방향을 몰라 우왕좌왕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상인들은 문제없이 이것을 사로잡을 수가 있다. 이 동물의 고기는 매우 맛있을 뿐 아니라 그 가죽은 비싼 값으로 팔린다.
302-원주민들은 그 가족 중에 누군가가 병에 걸리면 그 병의 상태를 점치기 위하여 주술사를 부른다. 주술사는 마술과 주문과 우상의 힘을 빌려 병자가 회복될지 죽을지를 마술과 주문과 우상의 힘을 빌려 병자가 회복될지 죽을지를 알아낼 수 있다. 나는 방금 이것을 가리켜 ‘마술’이라고 하였으나, 그들은 결코 마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신들의 계시를 자기들의 기능에 의하여 예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15-“우리는 땅에서 나서 결국은 또 땅으로 돌아게 마련이니, 땅에 앉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 위에 앉는 것보다도 품위있는 방법이다. 우리가 아무리 땅을 숭상한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하물며 이 땅을 우습게 여겨서야 되겠는가?”
320-그리고 이곳에서는 이러한 관습도 있다. 즉, 아들을 가진 부모는 그 아이가 13세에 달하면 집에서 일체 먹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13세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충분히 자기가 먹을 것은 스스로 마련할 수도 있고 부친처럼 장사를 해서 돈을 벌 수 있을 만큼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며, 자기들도 실제로 13세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한다. 이리하여 아들에게 20그로소 상당의 돈을 주어 그것으로써 물품을 사서 이익을 얻는 자본으로 삼게 한다. 아버지가 이와 같은 조처를 취하는 것은, 아들이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음으로써 상거래에 익숙해지도록 하려는 배려에서 이다.
334-“우리는 옷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알몸으로 태어났다. 따라서 내 소유물이라고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으므로 이처럼 발가벗은 채 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음부를 드러내고 있어도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우리들에게 있어 음부란 육체적인 욕망의 죄를 범하는 부위가 아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것을 남에게 보여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당신들이 손이나 얼굴, 그 밖의 육체적인 욕망의 죄를 짓지 않는 몸의 일부를 드러내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음부를 사용하여 음탕한 죄를 짓기 때문에 그 부분을 부끄럽게 여기고 언제나 감추어두고 싶어 하는 것이다.”
371-이 지방의 양들은 귀가 없으며, 혹은 귓구명이 없는 것들도 있다. 귀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작은 뿔이 나 있는데, 몸집이 작고 귀여운 양이다. 양*소*낙타*망아지 같은 이곳의 가축들은 모두 생선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402-그들은 펠트로써 일종의 신상을 만들어 이것을 나티게이라 부르고 있다. 이 나티게이 신에게는 아내가 있는데, 이 여신상도 펠트로 만들어져 있다. 이 두 신, 즉 나티게이 신과 그의 비신은 대지의 신으로서 가축이나 곡물, 그밖에 이 대지가 소유하는 모든 것을 보호한다. 그들은 이 두 신을 숭배하는데,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될 경우에는 이 두 신의 입가에 음식을 발라준다.
409-이곳 주민들 사이에서는 길이사 1스팬이고 가격은 약 5 그로소에 상당하는 막대기 모양의 황금이 통화 역할을 하는데, 소액의 거래에는 담비의 머리가 사용되고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가 1271년부터 1295년까지 동방을 여행한 체험담을 모험 소설 작가인 루스티첼로의 손을 빌려 기록한 여행기이다. 228장(요약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여행의 배경을 설명하는 ‘서편’과 각 여행지의 풍물과 사정을 기술하는 일곱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급하는 지역은 ‘암흑의 나라’ 극지대부터 자바와 수마트라, 그리고 ‘황금의 나라’ 일본까지 포괄한다.
간단하게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대부분이 내용의 진위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백만 가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말하는 이야기꾼이라는 뜻의 ‘마르코 밀리오네(Marco Millione)'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저자. 17세의 나이에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도착한 후 오랜 세월 그곳에서 살다가 20년 후에야 책을 썼다고 하니, 오류가 있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 중 과연 얼마큼이 사실이며, 누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옮긴 것은 얼마 만큼인지,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상태에서 과연 그렇게 기억을 꼼꼼하게 되살릴 수 있을런지. 어디까지가 순수한 상상력인지. 이렇게 의심을 품고 책을 읽자니 책의 재미가 점점 떨어졌다. 그러한 의심을 접고, 나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마르코 폴로와 함께 감옥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그가 말하는 것을 편안하게 들어보고 싶었다.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동방견문록]은 많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중국과 동방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심과 상상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불러 일으켰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에 투신한 동기도 다름 아닌 이 책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떤 미지의 세계를 심어주었을까. 시각을 이렇게 바꾸고 바라보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나에게 신선한 아이디어를 주는 재미있는 동화같이 다가왔다.
동방의 이야기들은 각 지역의 역사와 도시에 대한 묘사, 거주민, 인종, 그들이 쓰는 언어, 정부 조직,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음식, 의복, 결혼제도, 제례와 종교에 대한 풍부하고 상세한 설명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사진 한 장, 그림 한 장 없이도 마치 그림이 그려지듯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배에 탄 사람을 잡아먹을 기회를 엿보며 강 속으로 헤엄쳐 다니는 ‘용’. 몸집이 크고 줄무늬가 있는 ‘사자’, 갑옷을 입은 ‘괴물’, 등에 궁수를 태우고 다니는 코끼리 부대, 깃털 길이가 3.5미터나 되는 새, 불에 타지 않는 천, 나무처럼 타는 검은 돌등,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속속들이 숨어 있다. 그의 서술에 사람들은 ‘허풍쟁이’라고 비웃었을지 모르지만, 실제 사실과 연결되는 상상이 주는 힘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언젠가 쓰게 될 동화노트에 갖가지 재미난 이야기를 메모해 두었다. 그리고 마르코 폴로의 긴 여정을 쫓아가면서 웃을 수 있었던 재미난 순간이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동화적 시선이 오리엔탈리즘으로 이어진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으며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전형을 볼 것이라 생각했던 편견이 사라진 것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그 당시의 유럽문화의 성격과 그들이 동방의 타민족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했는지 뚜렷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었다. 물론 그러한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동방견문록]의 원제목 <세계의 서술(Deion of the World)>에서도 보여주듯이, 저자는 자신의 견문을 토대로 여러 지역에 대한 '진기하고 놀라운 것들'에 대해 서술하는데 초점을 두고자 했다. 개인의 감상이나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고, 탐구심에 가득 찬 한 인간의 눈에 비친 세계 각지의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유럽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약간은 낭만적인 여러 민족의 생활 보고서라고 보여 진다.
아쉬운 점은 여러 민족의 낭만적 생활보고서에 그쳤다는 점이다. 사실에 대한 묘사적 서술과 함께, 저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개되었다면, 좀 더 살아 숨 쉬는 견문록이 됐을 거란 생각이 든다. 특히 탄탄한 서문으로 시작한 책이, 끝날 것 같지 않는 타타르 전생사로 허무하게 이야기를 끝맺은 것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지도를 펴서 그의 여정을 천천히 따라가 보았다. 작은 평면위에 그려진 그림위로도 그의 끊임없는 탐구의 흔적이 조금은 전해져 왔다. 지금 책을 읽어나가는 나에게도 몽골족이 정복한 광대한 제국과, 온갖 신기한 풍습과 거대한 도시, 엄청난 인구, 다양한 주술과 성문화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13세기 유럽인들의 시선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신세계에 대한 희망을 품게한다. 꾸준한 탐구심과 호기심을 벗삼아 사는 삶, 그리고 그것이 기록으로 이어지는 삶에 대한 동경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글을 마무리 한다.
IP *.73.2.112
1254년 마르코 폴로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 니콜로와 숙부 마페오는 동방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베네치아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마르코 폴로가 태어났다. 저자의 집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명한 상인 집안이었다.
1269년 마르코 폴로가 열다섯이 되던 해 아버지와 숙부는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마르코 폴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던 해이다. 하지만 마르코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폴로 형제는 베네치아에서 2년 정도 머무르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지 않자 쿠빌라이에게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동방 여행길에 오를 때 형제는 마르코 폴로도 함께 데리고 갔다.
<동방견문록>의 기록에 따르면 마르코 폴로는 그곳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네 개의 언어를 익힐 만큼 총명했고, 새로운 환경에도 금방 적응했다고 한다. 쿠빌라이의 총애를 얻어 6개월 이상 걸리는 먼 곳으로 사신을 보낼 때면 마르코 폴로를 자주 보냈다. 마르코는 사신의 임무를 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의 문화와 풍습을 눈여겨보았다가 돌아와서는 자기가 본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재미있게 전해주었다. 마르코 폴로는 3년 동안 얀구이 시의 총독으로 파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머물렀던 기간은 대략 17년 정도다. 그 사이에 중국의 북부와 남서부, 남동부 지역을 두루 다녔으며 거의 안 가본 지역이 없을 정도였다. 중국에 머물면서 폴로 일행은 여러 차례 귀국의사를 밝혔지만 쿠빌라이는 그들을 보내려 하지 않았다. 아르곤 왕이 죽은 왕비를 대신할 같은 혈통의 여인을 구하기 위해 쿠빌라이에게 사신을 보냈다. 공주를 얻은 사신단은 육로를 통해 돌아가다가 잦은 정복전쟁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때 막 인도에서 돌아온 폴로 일행은 사신들과 함께 돌아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쿠빌라이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1291년, 코가틴 공주 일행과 폴로 일행은 무려 열네 척의 배를 거느리고 남중국해를 떠나 인도양으로 향했다. 2년여 기간 동안 항해를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아르곤의 왕국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쿠빌라이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폴로 일행은 더 이상 쿠빌라이의 궁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고향으로 출발했다. 1295년, 드디어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25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코는 그간 보고 들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었지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한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유럽 밖의 세계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13세기의 유럽 사람들에게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놀랍다 못해 의심스러웠다.
그동안 타지에서 유랑의 삶을 보냈던 마르코 폴로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세상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베네치아에서 돌아온지 1년쯤 지나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지중해 해상권을 두고 전쟁이 일어났다. 마르코 폴로는 전쟁에 참전했으나 포로로 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 감옥 안에서 이후 세계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진다. 마르코 폴로와 피사의 작가 루스티켈로가 만난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지난 25년간 자신이 겪었던 모든 신기한 경험들을 쏟아냈고, 루스티켈로는 그것을 받아 쓰기 시작했다. 1299년, 위대한 고전 <동방견문록>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마르코 폴로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1323년 1월 9일에 남긴 그의 유언장을 통해 그의 삶을 옅볼 수 있다. 그는 도나타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세 명의 딸을 두었다. 또한 가족과 종교단체에 남긴 유산으로 그의 생활은 어느 정도 풍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하인인 피에트로를 영원히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고 그에게 베네치아 금화 100리라를 주라고 유언장에 남기기도 했다. 그는 유언장을 쓴 후 1년쯤 지난 1324년 1월 8일, 베네치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또한 마르코 폴로의 공동 저자인 루스티첼로는 무명의 피사 출신 죄수가 아니라, 참회 왕 에드워드의 후원을 받아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십자군에 동행해 폴로 일가를 만나기도 했던, 당시 꽤 이름난 작가였다고 한다. 루스티첼로는 역사만큼이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로, 원탁의 아서에 대한 낭만적 역사와 트로이 전쟁,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기를 써왔다.
2. 재미있는 구절
24-마르코가 이러한 미지의 나라들의 특수 사항에 정통해 있었던 이유는, 요컨대 그가 누구보다도 종종 이들 지방을 답사하고 동시에 누구보다도 더 깊은 주의를 기울여 그 지식을 획득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53-이에 대해서 현인들은 그 원인이 토양의 차이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그래서 케르만 왕은 약간 명의 신하를 페르시아 제국 중에서도 유달리 인간이 사악하다고 전해지고 있는, 앞에 적은 이스파한 왕국에 파견하여, 현인들의 시사에 따라 그 나라의 흙을 7척의 배에 실어서 갖고 오게 하였다. 이 흙이 도착하자 왕은 신하들의 출입이 잦은 방 몇 개를 골라 역청을 바르듯이 그 방바닥 위에 바른 다음 융단으로써 이를 덮어 씌우게 하고, 그런 뒤에 이 방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가 벌어지자마자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벌써 서로 말다툼하고 때리고 하더니 마침내 사상자조차 내느 소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리하여 케르만 왕은 비로소 앞에 이야기한 이상한 사실의 원인이 토양의 차이에 있다고 언명하였다.
59-세상이란 편리하게 잘 되어 있어서 곡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여자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과 무관한 죽은 자들을 위하여 돈을 받고 울어준다.
72-케스무르 왕국 : 이 고장의 마술사들은 우상에게 말을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놀라운 기술을 갖고 있다. 그들은 또 마술을 사용하여 기후를 바꾸든가 암흑을 불러내리든가 한다. 그들이 행하는 마술의 묘는 실지로 이것을 보지 못한 자가 아니면 도무지 믿기 어려울 만큼 불가사의하다. 그들이야말로 전세계의 우상숭배자들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112-여하튼 이들 백색의 암말은 이같이 존중되고 있으므로, 그것들이 길을 지날 때에는 아무리 신분이 높은 귀족이라도 감히 그 대열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말떼가 모두 통과하기를 가만히 기다리든가 또는 우회해서 나가든가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 무리의 점성사*우상숭배자가 있어 칸을 향해 다음과 같이 진언했다. “매년 음력 8월 28일을 기하여 백마의 젖을 지상과 공중에 뿌려서 모든 정령에게 공양하십시오. 정령에게 이 말젖을 공양하기만 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칸이 소유하는 모든 것, 즉 인간*가축*금수*곡물을 비롯한 온갖 것을 보호할 것이외다.”
124-“그대들이 믿는 신의 십자가가 나얀을 가호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125-“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받고 숭앙되고 있는 네 명의 예언자가 있다. 기독교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신으로서 숭배하고, 이슬람 교도는 마호메트를 숭배한다. 또 유인 인은 모세를 숭배하고, 우상숭배자는 사캬무니 부르칸(석가모니)을 들어 우상으로 받드는 최초의 인물이라 한다. 나는 이 네 사람모두를 골고루 존경하고 숭앙한다. 하물며 넷 중에서도 신위가 가장 영묘하고 또한 최고의 진리를 갖춘 한 분에 대해서는 특히 존경하며 줄곧 그 가호를 비는 바이다.”
135-또한 칸은 이 석가산에 짙은 초록색을 띤 유리를 깔게 했기 때문에 나무나 풀이나 작은 언덕의 흙빛도 모두 초록색으로 보이고, 따라서 바라보는 눈에 비치는 바 모두 초록 일색이어서 석가산을 ‘초록의 언덕’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147-이토록 이 규칙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 이유는, 문지방을 누군가가 밟으면 반드시 재앙이 생긴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149-칸의 탄생일에는 또 우상숭배자*이슬람 교도*기독교도, 기타 모든 사람들이 성대히 성가를 합창하고 향불을 피우고 등불을 바치며, 저마다 자신들이 믿는 우상이나 신을 향하여 칸을 수호해 달라고 엄숙히 기도하며 그 만세와 행복과 건강을 기원한다. 이상과 같은 축하연이 칸의 탄생일에 거행되는 것이다. / 설날에는 칸에게 예속되는 모든 사람들, 각 지방과 각 왕국에서 온갖 보석류를 비롯하여 훌륭한 흰 천을 칸에게 헌상한다. 즉, 이것은 이 1년간을 통하여 그들의 주군이 칸이 재보를 풍부하게 갖고, 기분좋게 또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153-축전이 끝나갈 즈음 사자 한 마리가 끌려오는데, 그 사자는 칸을 보자마자 공순한 뜻을 표명하는 듯이 그 자리에 엎드린다. 마치 칸이 자기의 군주이며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이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사자가 어전에서 엎드리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이할 만한 광경인 것이다.
177-칸빌리크의 점성사들 이야기
180-그들이 믿는 바에 의하면, 인간은 죽지만 곧 다른 육체에 깃들여 전생한다. 이 경우 생전에 선을 행했는지 약을 행했는지에 따라 보다 나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혹은 나쁜 환경에도 태어난다. 그러므로 만일 그 사람이 평민이라도 생전의 행위가 유덕한 것이기만 하면 사후에는 귀부인의 태에 깃들어 전생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 인물이 생전에 귀족이었고 게다가 선행을 이륙했다면 그는 백작부인의 태에 깃들여 태어나서 그 생애를 마친 뒤에는 이번에는 왕녀의 배를 빌어 다시 태어나고, 점차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기를 거듭하여 마침내 신이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만약 악행을 거듭하면 농부로 다시 태어나고 그 다음에는 개로 태어나며, 계속해서 점차 하등의 것으로 전생해 간다.
195-196 티베트 지방의 결혼 풍습
208-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여러 지방, 즉 카라잔*야치*보찬을 통틀어 의사라는 이름이 붙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신분이 높은 자가 병에 걸리면 마술사, 즉 우상을 모시고 있는 무당을 부른다. 이들 마술사가 오면 환자는 이들에게 병의 증세를 알린다. 그러면 마술사들은 우선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부르며 환자주위를 춤추며 돈다.
228-230 카타이 인의 풍습 ~ 그리고 무슨 물건이건 정말로 노파가 말한 대로 찾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불실물이라도 반드시 발견되어 다시 주인의 손에 돌아온다. 분실물이 이렇게 하여 돌아오면 그들은 우상에 대한 존숭과 신심의 표적으로 이를테면 금란이라든가 비단 같은 종류의 값비싼 옷감을 1엘(1엘은 45인치)쯤 바친다.
274-커다란 호리병박의 윗부분을 잘라 이 파피오니가 그 안에 머리를 집어넣을 만한 구멍을 만들어 둔다. 단, 이 동물이 머리를 쑤셔 넣었을 때 그 압력으로 구멍이 찢어져 커지지 않도록 호리병박의 표면에 많은 작은 구멍을 뚫어서 한 가닥의 끈을 거기다 꿰어놓는다. 이렇게 해놓고 호리병박 밑바닥에 기름을 바른 다음 이것을 여러 개 야영지 주위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던져둔다.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파피오니는 뭔가 끌고 갈 것이 없는가 하고 다가와 호리병박에 칠한 기름 냄새를 맡고는 쏜살같이 호리병박으로 달려와서 머리를 그 속에 밀어 넣으려고 하나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안에 든 먹이에 마음이 있으므로 애를 써서 가까스로 머리를 쑤셔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절대로 호리병박에서 목을 뺄 수가 없다. 호리병박은 가벼우므로 머리를 쑤셔 넣은 그대로 이것을 들어 올려 뒤집어쓴 채로 가져가려고 하나 앞이 보이지 않으므로 방향을 몰라 우왕좌왕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상인들은 문제없이 이것을 사로잡을 수가 있다. 이 동물의 고기는 매우 맛있을 뿐 아니라 그 가죽은 비싼 값으로 팔린다.
302-원주민들은 그 가족 중에 누군가가 병에 걸리면 그 병의 상태를 점치기 위하여 주술사를 부른다. 주술사는 마술과 주문과 우상의 힘을 빌려 병자가 회복될지 죽을지를 마술과 주문과 우상의 힘을 빌려 병자가 회복될지 죽을지를 알아낼 수 있다. 나는 방금 이것을 가리켜 ‘마술’이라고 하였으나, 그들은 결코 마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신들의 계시를 자기들의 기능에 의하여 예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15-“우리는 땅에서 나서 결국은 또 땅으로 돌아게 마련이니, 땅에 앉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 위에 앉는 것보다도 품위있는 방법이다. 우리가 아무리 땅을 숭상한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하물며 이 땅을 우습게 여겨서야 되겠는가?”
320-그리고 이곳에서는 이러한 관습도 있다. 즉, 아들을 가진 부모는 그 아이가 13세에 달하면 집에서 일체 먹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13세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충분히 자기가 먹을 것은 스스로 마련할 수도 있고 부친처럼 장사를 해서 돈을 벌 수 있을 만큼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며, 자기들도 실제로 13세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한다. 이리하여 아들에게 20그로소 상당의 돈을 주어 그것으로써 물품을 사서 이익을 얻는 자본으로 삼게 한다. 아버지가 이와 같은 조처를 취하는 것은, 아들이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음으로써 상거래에 익숙해지도록 하려는 배려에서 이다.
334-“우리는 옷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알몸으로 태어났다. 따라서 내 소유물이라고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으므로 이처럼 발가벗은 채 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음부를 드러내고 있어도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우리들에게 있어 음부란 육체적인 욕망의 죄를 범하는 부위가 아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것을 남에게 보여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당신들이 손이나 얼굴, 그 밖의 육체적인 욕망의 죄를 짓지 않는 몸의 일부를 드러내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음부를 사용하여 음탕한 죄를 짓기 때문에 그 부분을 부끄럽게 여기고 언제나 감추어두고 싶어 하는 것이다.”
371-이 지방의 양들은 귀가 없으며, 혹은 귓구명이 없는 것들도 있다. 귀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작은 뿔이 나 있는데, 몸집이 작고 귀여운 양이다. 양*소*낙타*망아지 같은 이곳의 가축들은 모두 생선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402-그들은 펠트로써 일종의 신상을 만들어 이것을 나티게이라 부르고 있다. 이 나티게이 신에게는 아내가 있는데, 이 여신상도 펠트로 만들어져 있다. 이 두 신, 즉 나티게이 신과 그의 비신은 대지의 신으로서 가축이나 곡물, 그밖에 이 대지가 소유하는 모든 것을 보호한다. 그들은 이 두 신을 숭배하는데,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될 경우에는 이 두 신의 입가에 음식을 발라준다.
409-이곳 주민들 사이에서는 길이사 1스팬이고 가격은 약 5 그로소에 상당하는 막대기 모양의 황금이 통화 역할을 하는데, 소액의 거래에는 담비의 머리가 사용되고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가 1271년부터 1295년까지 동방을 여행한 체험담을 모험 소설 작가인 루스티첼로의 손을 빌려 기록한 여행기이다. 228장(요약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여행의 배경을 설명하는 ‘서편’과 각 여행지의 풍물과 사정을 기술하는 일곱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급하는 지역은 ‘암흑의 나라’ 극지대부터 자바와 수마트라, 그리고 ‘황금의 나라’ 일본까지 포괄한다.
간단하게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대부분이 내용의 진위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백만 가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말하는 이야기꾼이라는 뜻의 ‘마르코 밀리오네(Marco Millione)'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저자. 17세의 나이에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도착한 후 오랜 세월 그곳에서 살다가 20년 후에야 책을 썼다고 하니, 오류가 있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 중 과연 얼마큼이 사실이며, 누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옮긴 것은 얼마 만큼인지,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상태에서 과연 그렇게 기억을 꼼꼼하게 되살릴 수 있을런지. 어디까지가 순수한 상상력인지. 이렇게 의심을 품고 책을 읽자니 책의 재미가 점점 떨어졌다. 그러한 의심을 접고, 나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마르코 폴로와 함께 감옥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그가 말하는 것을 편안하게 들어보고 싶었다.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동방견문록]은 많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중국과 동방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심과 상상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불러 일으켰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에 투신한 동기도 다름 아닌 이 책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떤 미지의 세계를 심어주었을까. 시각을 이렇게 바꾸고 바라보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나에게 신선한 아이디어를 주는 재미있는 동화같이 다가왔다.
동방의 이야기들은 각 지역의 역사와 도시에 대한 묘사, 거주민, 인종, 그들이 쓰는 언어, 정부 조직,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음식, 의복, 결혼제도, 제례와 종교에 대한 풍부하고 상세한 설명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사진 한 장, 그림 한 장 없이도 마치 그림이 그려지듯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배에 탄 사람을 잡아먹을 기회를 엿보며 강 속으로 헤엄쳐 다니는 ‘용’. 몸집이 크고 줄무늬가 있는 ‘사자’, 갑옷을 입은 ‘괴물’, 등에 궁수를 태우고 다니는 코끼리 부대, 깃털 길이가 3.5미터나 되는 새, 불에 타지 않는 천, 나무처럼 타는 검은 돌등,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속속들이 숨어 있다. 그의 서술에 사람들은 ‘허풍쟁이’라고 비웃었을지 모르지만, 실제 사실과 연결되는 상상이 주는 힘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언젠가 쓰게 될 동화노트에 갖가지 재미난 이야기를 메모해 두었다. 그리고 마르코 폴로의 긴 여정을 쫓아가면서 웃을 수 있었던 재미난 순간이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동화적 시선이 오리엔탈리즘으로 이어진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으며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전형을 볼 것이라 생각했던 편견이 사라진 것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그 당시의 유럽문화의 성격과 그들이 동방의 타민족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했는지 뚜렷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었다. 물론 그러한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동방견문록]의 원제목 <세계의 서술(Deion of the World)>에서도 보여주듯이, 저자는 자신의 견문을 토대로 여러 지역에 대한 '진기하고 놀라운 것들'에 대해 서술하는데 초점을 두고자 했다. 개인의 감상이나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고, 탐구심에 가득 찬 한 인간의 눈에 비친 세계 각지의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유럽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약간은 낭만적인 여러 민족의 생활 보고서라고 보여 진다.
아쉬운 점은 여러 민족의 낭만적 생활보고서에 그쳤다는 점이다. 사실에 대한 묘사적 서술과 함께, 저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개되었다면, 좀 더 살아 숨 쉬는 견문록이 됐을 거란 생각이 든다. 특히 탄탄한 서문으로 시작한 책이, 끝날 것 같지 않는 타타르 전생사로 허무하게 이야기를 끝맺은 것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지도를 펴서 그의 여정을 천천히 따라가 보았다. 작은 평면위에 그려진 그림위로도 그의 끊임없는 탐구의 흔적이 조금은 전해져 왔다. 지금 책을 읽어나가는 나에게도 몽골족이 정복한 광대한 제국과, 온갖 신기한 풍습과 거대한 도시, 엄청난 인구, 다양한 주술과 성문화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13세기 유럽인들의 시선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신세계에 대한 희망을 품게한다. 꾸준한 탐구심과 호기심을 벗삼아 사는 삶, 그리고 그것이 기록으로 이어지는 삶에 대한 동경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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