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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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 루스티켈로 / 배진영 역 / 서해문집
1. 저자 소개
마르코 폴로 (Marco Polo)
문> 그의 일생을 시간대로 간단히 알려준다면?
1254년 이탈리아 베니치아 출생. 그의 출생 전 아버지인 니콜로와 숙부 마페오는 동방무역 차 부재중이었다.
1269년 15세. 아버지를 처음 만나다. 이때 니콜로와 마페오는 새 교황이 선출되기를 기다리며 베니치아로 왔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1271년 17세.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동방여행길에 오르다.
1271~1275년 4년에 걸쳐 육로로 몽골 제국으로 들어간다.
1275년 21세. 쿠빌라이의 수도 중 하나인 샨두에 도착한다.
1275~1291년 쿠빌라이의 사신으로 중국 서남부를 4개월간 다녀온다. 얀구이에서 3년 동안 관리 역할을 했다 이 부분에 대한 중국의 기록은 없다.
1291년 아르군 왕비 감 코카틴 공주 일행과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원 제국을 떠난다.
1294년 41세. 아르군 왕국에 도착하였으나, 쿠빌라이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길에 오른다.
1295년 42세. 베네치아 도착하다.
1298년 45세. 쿠르졸라 해전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해상권 다툼) 에 패배하고 제노바에서 포로로 감옥살이 하다. 감옥에서 루스티켈로를 만나 책을 시작하다.
1299년 46세.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 완성하다.
1299~1324년 유서에 따르면 도나타라는 결혼과 결혼하여 세 딸이 있었으며 부유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1324년. 71세. 사망하다. 유해는 산 로렌쵸 교회에 묻힌 것을 추정되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문> 그의 여행 여정을 좀 더 알려준다면?
원래 이 책은 23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판본에서 크게 서편을 포함하여 여덟편으로 재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동방견문록> (서해문집 刊)에서는 마지막편을 그 전편과 함께 엮었다.
1271 ~ 1295 마르코 폴로가 샨두로 가서 쿠빌라이를 만나기까지의 여정.
1장 서아시아 - 대 소 아르메니아, 모술, 오르무스, 카만두, 케르만, 코비암, 시푸르칸에 이르는 이라크와 페르시아 지방
2장 중앙아시아 - 발라크, 카르카르, 차르찬, 캄프쵸, 에르주울, 텐둑 샨두에 이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미르를 넘어 타림 분지를 경유.
1275 ~ 1291 중국에서 17년간 여정
3장 상도(上都)와 대도(大都) - 쿠빌라이의 수도인 상도와 대도의 모습
4장 중국 서남부 - 타얀, 신딘푸, 카인두, 미엔에 이르는 천․운남을 거쳐 미얀마에 이르는 지역.
5장 중국 동남부 - 당시 남송영역. 난징, 푸주, 차이톤 등지.
1291 ~1295 중국을 떠나 베네치아로 도착하기까지 여정
6장 인도양을 거쳐 페르시아로 들어가는 해로와 베니치아로 들어가는 육로. 러시아와 극지방에 대한 기술 포함.
여기다 옮겨 보여줄 마땅한 지도를 찾지 못했음이 아쉽다.
2. 가슴으로 들어온 구절
서장
13 그때 같은 감옥에 있던 피사 출신의 작가 루스티켈로에게 부탁하여 이 모든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기록된 것은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것들뿐이며, 이것은 그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21 “그는 저의 아들로, 폐하의 노복입니다.”
니콜로가 대답하자, 대칸은
“그를 환영하노라."고 말했다.
22 대칸은 사신들이 직무를 보고하는 것보다 외국의 풍습이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흥미로웠으며 그런 것들을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마크로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임무 외에 그 지역의 기이한 상황들을 관심있게 보고 들었으며, 돌아가서 대칸에게 바칠 신기한 물건들을 준비해 두었다.
26 그들은 요행 중에 대칸 쿠빌라이가 붕어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한 그들은 홀가분하게 고향으로 향할 수 있었다.
2장 중앙아시아
69 발라크 이곳을 벗어나면 12일 정도 걸리는 거리 안에 먹을 것이 거의 없으므로 여행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고에서 식량을 비축해가야 한다.
84 주민들은 주로 우상숭배자들이지만 사라센과 기독교도도 약간 있다. 우상숭배자들은 사원도 많이 가지고 이쏙 우상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87 그곳에는 아직 군주가 없었지만, 주민들은 옹 칸이라는 사람에게 세금을 바쳤다. 프랑스러올 그는 ‘프레스터 존’을 뜻한다. 그가 바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위대한 군주, 프레스터 존인 것이다.
92 타타르의 대왕은 어디에서 죽건 간에 설사 100일의 여정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그 산으로 옮겨져 안장된다. 옮기는 사이에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시신을 운반하는 사람들의 칼에 베인다.
94 타타르인들의 군대는 세계의 모든 군대 중에서 가장 인내력이 강하고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지역을 정복할 수 있는 강한 군대이다.
96 타타르인들은 적과 전투하다 항복하여 도망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완전히 이겼다고 마음 놓고 돌아오다가는 모두 피살된 것이다.
3장 대칸의 화려한 수도
106 점쟁이와 우상숭배자들은 대칸에게 매년 8월28일에 반드시 지상이나 공중에 이 흰말의 젖을 뿌릴 것을 아뢰었다. 그래야 귀신이 그것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107 잔은 대전 중앙에, 탁자와 열 걸음 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데 마술사들은 그들의 기술을 이용해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잔들이 각각 스스로 대칸의 앞으로 가도록 한다.
113 기독교도인 나얀은 기독교의 십자가를 깃발 위에 그려 넣었다.
115 칸발루로 돌아온 대칸이 이듬해 2~2월까지 머무르던 중, 그 무렵이 기독교도들의 중요한 절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기독교들을 모두 부르고 그들에게 4종류의 복음서를 가져오게 했다.
117 대칸이 행한 것을 보면 그는 기독교를 가장 진실하고 정직하면 선한 종교라고 생각했다고 단정할 수 있다.
139 대칸의 1년 동안의 생활은 보통 이렇게 지나간다. 6개월은 칸발루에서 지내고, 3개월은 사냥을 즐기고, 3개월은 더위를 피하며 머문다.
156 타타르인은 모두 우상숭배자들이다.
4장 중국의 북부와 서남부
160 칸발루에서 서쪽으로 16킬로미터 정도 가면 ‘풀리상간’이 라는 강이 나온다. 강 위로 아름다운 돌다리가 하나 있다.
5장 중국의 동남부
184 만지 지방은 동방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곳이었으며 팍푸르라 불리는 황제가 그곳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의 왕국은 가장 넓은 강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어느 지역에서도 강물의 폭이 활의 사정거리보다 더 멀었으므로 매우 강대하고 견고하여 天塹이라 칭한다.
194 킨사이라는 이름은 ‘천상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이 도시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세계 어떤 도시들보다 빼어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천당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6장 인도양과 대초원
248 타타르인들의 영토 중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 너머에는 북쪽의 극한한계까지 펼쳐진 ‘암흑지대’(시베리아)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주관이나 감정은 되도록 배제하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전달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기후, 자연, 풍토, 현지인의 모습, 종교, 정치 형태, 군사 운영, 도시 계획 등 매우 다양한 분야를 포괄한다. 물론 쿠빌라이 제국에 집중되어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종교에 대해 서술한 곳이 눈길을 끈다. 마르코 폴로는 가는 곳 마다 종교가 어떻다는 내용을 빼놓지 않고 있는데, 기독교가 아니면 이슬람 나머지는 전부 우상숭배이다. 그리고 당시 기독교가 퍼져 있지 않은 곳에서도 일부 종파 교도가 있다고도 한다. 동방에도 ‘프레스터 존’이라는 기독교를 믿는 군주가 있다 여기고 옹칸을 그로 철석같이 믿는 부분은 웃음을 자아낸다. 기독교가 종교의 전부이며 곧 생활이고 법이었던 당시 좁은 종교관을 보여준다.
아무리 객관적 서술을 한다 해도 저술하는 자의 사유 체계 안에 있을 수 밖에 없음이 다시 느껴진다. 당시 그러하였음을 웃고 재미있어 할 것도 아니다. 지금의 사상과 사유체계를 훗날의 사람들이 놓고 그런 반응을 보일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동방견문록>에 있는 이야기는 다 사실이냐는 의문은 당연히 제기된다. 물론 아니다. 쿠빌라이가 5대 황제가 아닌 6대 황제로 기술된 것은 차라리 가벼운 것이다. 쿠빌라이의 원정대 일부가 지팡구(일본)을 정복하러 가는 도중 태풍을 만나 잠시 섬에 표류하였으나 일본인이 자신들을 치러 왔을 때 숨어 있다가 몰래 탈출하여 수도를 정복했다는것은 사실이 아니다. 쿠빌라이가 시얀푸를 정복하려 할 때 니콜로와 마페오가 투석기를 소개하는 장면이 있으나, 시얀푸 정복년은 1273년이고 폴로 일행이 쿠빌라이 수도 다시 도착한 해는 1275년이다.
사실 원본은 소실되고 수많은 필사본이 전한다. 그 판본들은 내용이 다른 부분들이 있다. 필사의 과정에서 편찬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갔을 수도 있고, 필사 당시 사상으로 어느 부분은 용납이 안 되었을 수 있다. 또 필사에 필사를 거듭하며, 윤색과 가필과 삭제를 거치면서 그만큼 더 왜곡되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견문록>은 여러 의의를 지닌다.
유럽인에게는 당시 생소한 동방세계에 대한 지식의 보고였다. 단순히 어느 곳을 여행했다로 그치지 않고 여러 분야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모두 사실이 아니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이 사실과 일치하며, 이는 당시를 연구하는 사료로도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또 여태 알려진 바 없는 신비하고 모호한 동방 세계에 호기심을 당겼다. 콜럼버스도 이 책을 라틴어 번역본으로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책의 여백에 주석을 달아가며 탐험을 준비했다. 비록 그가 도착했던 곳은 애초 가려했던 인도는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동방견문록>이 대륙 발견에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다.
사족 한 가지. 이 책은 판본이 여러 가지이다. 원제는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이었고, 영어판 제목 중 하나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Travels of Marco Polo)> 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별명을 딴 <백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한국인 대부분이 알고 있는 제목인 <동방견문록>은 일본어 번역 시 만들어진 제목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씁쓸함을 느낀다면 지나친 것일까.
---
17세에 살던 곳을 떠나 외지를 떠돌다 42세에 돌아온다면, 그 외지란 곳이 정말 아무도 모르는 곳,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면, 어땠을까.
일단 살던 곳이 떠나던 때와 전혀 달라 적응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자기를 알아보는 이도 적을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타타르의 복장을 하고 나타나 친척들에게도 쫓겨났다가 그 복장을 찢고 황금을 보여주니 그제서야 의심을 풀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허풍쟁이라고 하였고 항상 ‘수백만의~’ 운운하는 그에게 ‘백만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그보다도, 없어졌던 25년의 세월을 어떻게 이야기한다?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미친 사람 취급했을 수도 있고 그저 허황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어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답했겠지. 분명 겪은 이야기인데 전혀 받아들여지는 않고. 루스티켈로처럼 이런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 적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면 자신이 쓸 수 밖에.
IP *.120.66.226
마르코 폴로, 루스티켈로 / 배진영 역 / 서해문집
1. 저자 소개
마르코 폴로 (Marco Polo)
문> 그의 일생을 시간대로 간단히 알려준다면?
1254년 이탈리아 베니치아 출생. 그의 출생 전 아버지인 니콜로와 숙부 마페오는 동방무역 차 부재중이었다.
1269년 15세. 아버지를 처음 만나다. 이때 니콜로와 마페오는 새 교황이 선출되기를 기다리며 베니치아로 왔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1271년 17세.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동방여행길에 오르다.
1271~1275년 4년에 걸쳐 육로로 몽골 제국으로 들어간다.
1275년 21세. 쿠빌라이의 수도 중 하나인 샨두에 도착한다.
1275~1291년 쿠빌라이의 사신으로 중국 서남부를 4개월간 다녀온다. 얀구이에서 3년 동안 관리 역할을 했다 이 부분에 대한 중국의 기록은 없다.
1291년 아르군 왕비 감 코카틴 공주 일행과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원 제국을 떠난다.
1294년 41세. 아르군 왕국에 도착하였으나, 쿠빌라이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길에 오른다.
1295년 42세. 베네치아 도착하다.
1298년 45세. 쿠르졸라 해전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해상권 다툼) 에 패배하고 제노바에서 포로로 감옥살이 하다. 감옥에서 루스티켈로를 만나 책을 시작하다.
1299년 46세.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 완성하다.
1299~1324년 유서에 따르면 도나타라는 결혼과 결혼하여 세 딸이 있었으며 부유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1324년. 71세. 사망하다. 유해는 산 로렌쵸 교회에 묻힌 것을 추정되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문> 그의 여행 여정을 좀 더 알려준다면?
원래 이 책은 23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판본에서 크게 서편을 포함하여 여덟편으로 재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동방견문록> (서해문집 刊)에서는 마지막편을 그 전편과 함께 엮었다.
1271 ~ 1295 마르코 폴로가 샨두로 가서 쿠빌라이를 만나기까지의 여정.
1장 서아시아 - 대 소 아르메니아, 모술, 오르무스, 카만두, 케르만, 코비암, 시푸르칸에 이르는 이라크와 페르시아 지방
2장 중앙아시아 - 발라크, 카르카르, 차르찬, 캄프쵸, 에르주울, 텐둑 샨두에 이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미르를 넘어 타림 분지를 경유.
1275 ~ 1291 중국에서 17년간 여정
3장 상도(上都)와 대도(大都) - 쿠빌라이의 수도인 상도와 대도의 모습
4장 중국 서남부 - 타얀, 신딘푸, 카인두, 미엔에 이르는 천․운남을 거쳐 미얀마에 이르는 지역.
5장 중국 동남부 - 당시 남송영역. 난징, 푸주, 차이톤 등지.
1291 ~1295 중국을 떠나 베네치아로 도착하기까지 여정
6장 인도양을 거쳐 페르시아로 들어가는 해로와 베니치아로 들어가는 육로. 러시아와 극지방에 대한 기술 포함.
여기다 옮겨 보여줄 마땅한 지도를 찾지 못했음이 아쉽다.
2. 가슴으로 들어온 구절
서장
13 그때 같은 감옥에 있던 피사 출신의 작가 루스티켈로에게 부탁하여 이 모든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기록된 것은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것들뿐이며, 이것은 그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21 “그는 저의 아들로, 폐하의 노복입니다.”
니콜로가 대답하자, 대칸은
“그를 환영하노라."고 말했다.
22 대칸은 사신들이 직무를 보고하는 것보다 외국의 풍습이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흥미로웠으며 그런 것들을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마크로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임무 외에 그 지역의 기이한 상황들을 관심있게 보고 들었으며, 돌아가서 대칸에게 바칠 신기한 물건들을 준비해 두었다.
26 그들은 요행 중에 대칸 쿠빌라이가 붕어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한 그들은 홀가분하게 고향으로 향할 수 있었다.
2장 중앙아시아
69 발라크 이곳을 벗어나면 12일 정도 걸리는 거리 안에 먹을 것이 거의 없으므로 여행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고에서 식량을 비축해가야 한다.
84 주민들은 주로 우상숭배자들이지만 사라센과 기독교도도 약간 있다. 우상숭배자들은 사원도 많이 가지고 이쏙 우상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87 그곳에는 아직 군주가 없었지만, 주민들은 옹 칸이라는 사람에게 세금을 바쳤다. 프랑스러올 그는 ‘프레스터 존’을 뜻한다. 그가 바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위대한 군주, 프레스터 존인 것이다.
92 타타르의 대왕은 어디에서 죽건 간에 설사 100일의 여정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그 산으로 옮겨져 안장된다. 옮기는 사이에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시신을 운반하는 사람들의 칼에 베인다.
94 타타르인들의 군대는 세계의 모든 군대 중에서 가장 인내력이 강하고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지역을 정복할 수 있는 강한 군대이다.
96 타타르인들은 적과 전투하다 항복하여 도망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완전히 이겼다고 마음 놓고 돌아오다가는 모두 피살된 것이다.
3장 대칸의 화려한 수도
106 점쟁이와 우상숭배자들은 대칸에게 매년 8월28일에 반드시 지상이나 공중에 이 흰말의 젖을 뿌릴 것을 아뢰었다. 그래야 귀신이 그것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107 잔은 대전 중앙에, 탁자와 열 걸음 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데 마술사들은 그들의 기술을 이용해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잔들이 각각 스스로 대칸의 앞으로 가도록 한다.
113 기독교도인 나얀은 기독교의 십자가를 깃발 위에 그려 넣었다.
115 칸발루로 돌아온 대칸이 이듬해 2~2월까지 머무르던 중, 그 무렵이 기독교도들의 중요한 절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기독교들을 모두 부르고 그들에게 4종류의 복음서를 가져오게 했다.
117 대칸이 행한 것을 보면 그는 기독교를 가장 진실하고 정직하면 선한 종교라고 생각했다고 단정할 수 있다.
139 대칸의 1년 동안의 생활은 보통 이렇게 지나간다. 6개월은 칸발루에서 지내고, 3개월은 사냥을 즐기고, 3개월은 더위를 피하며 머문다.
156 타타르인은 모두 우상숭배자들이다.
4장 중국의 북부와 서남부
160 칸발루에서 서쪽으로 16킬로미터 정도 가면 ‘풀리상간’이 라는 강이 나온다. 강 위로 아름다운 돌다리가 하나 있다.
5장 중국의 동남부
184 만지 지방은 동방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곳이었으며 팍푸르라 불리는 황제가 그곳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의 왕국은 가장 넓은 강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어느 지역에서도 강물의 폭이 활의 사정거리보다 더 멀었으므로 매우 강대하고 견고하여 天塹이라 칭한다.
194 킨사이라는 이름은 ‘천상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이 도시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세계 어떤 도시들보다 빼어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천당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6장 인도양과 대초원
248 타타르인들의 영토 중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 너머에는 북쪽의 극한한계까지 펼쳐진 ‘암흑지대’(시베리아)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주관이나 감정은 되도록 배제하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전달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기후, 자연, 풍토, 현지인의 모습, 종교, 정치 형태, 군사 운영, 도시 계획 등 매우 다양한 분야를 포괄한다. 물론 쿠빌라이 제국에 집중되어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종교에 대해 서술한 곳이 눈길을 끈다. 마르코 폴로는 가는 곳 마다 종교가 어떻다는 내용을 빼놓지 않고 있는데, 기독교가 아니면 이슬람 나머지는 전부 우상숭배이다. 그리고 당시 기독교가 퍼져 있지 않은 곳에서도 일부 종파 교도가 있다고도 한다. 동방에도 ‘프레스터 존’이라는 기독교를 믿는 군주가 있다 여기고 옹칸을 그로 철석같이 믿는 부분은 웃음을 자아낸다. 기독교가 종교의 전부이며 곧 생활이고 법이었던 당시 좁은 종교관을 보여준다.
아무리 객관적 서술을 한다 해도 저술하는 자의 사유 체계 안에 있을 수 밖에 없음이 다시 느껴진다. 당시 그러하였음을 웃고 재미있어 할 것도 아니다. 지금의 사상과 사유체계를 훗날의 사람들이 놓고 그런 반응을 보일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동방견문록>에 있는 이야기는 다 사실이냐는 의문은 당연히 제기된다. 물론 아니다. 쿠빌라이가 5대 황제가 아닌 6대 황제로 기술된 것은 차라리 가벼운 것이다. 쿠빌라이의 원정대 일부가 지팡구(일본)을 정복하러 가는 도중 태풍을 만나 잠시 섬에 표류하였으나 일본인이 자신들을 치러 왔을 때 숨어 있다가 몰래 탈출하여 수도를 정복했다는것은 사실이 아니다. 쿠빌라이가 시얀푸를 정복하려 할 때 니콜로와 마페오가 투석기를 소개하는 장면이 있으나, 시얀푸 정복년은 1273년이고 폴로 일행이 쿠빌라이 수도 다시 도착한 해는 1275년이다.
사실 원본은 소실되고 수많은 필사본이 전한다. 그 판본들은 내용이 다른 부분들이 있다. 필사의 과정에서 편찬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갔을 수도 있고, 필사 당시 사상으로 어느 부분은 용납이 안 되었을 수 있다. 또 필사에 필사를 거듭하며, 윤색과 가필과 삭제를 거치면서 그만큼 더 왜곡되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견문록>은 여러 의의를 지닌다.
유럽인에게는 당시 생소한 동방세계에 대한 지식의 보고였다. 단순히 어느 곳을 여행했다로 그치지 않고 여러 분야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모두 사실이 아니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이 사실과 일치하며, 이는 당시를 연구하는 사료로도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또 여태 알려진 바 없는 신비하고 모호한 동방 세계에 호기심을 당겼다. 콜럼버스도 이 책을 라틴어 번역본으로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책의 여백에 주석을 달아가며 탐험을 준비했다. 비록 그가 도착했던 곳은 애초 가려했던 인도는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동방견문록>이 대륙 발견에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다.
사족 한 가지. 이 책은 판본이 여러 가지이다. 원제는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이었고, 영어판 제목 중 하나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Travels of Marco Polo)> 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별명을 딴 <백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한국인 대부분이 알고 있는 제목인 <동방견문록>은 일본어 번역 시 만들어진 제목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씁쓸함을 느낀다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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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에 살던 곳을 떠나 외지를 떠돌다 42세에 돌아온다면, 그 외지란 곳이 정말 아무도 모르는 곳,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면, 어땠을까.
일단 살던 곳이 떠나던 때와 전혀 달라 적응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자기를 알아보는 이도 적을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타타르의 복장을 하고 나타나 친척들에게도 쫓겨났다가 그 복장을 찢고 황금을 보여주니 그제서야 의심을 풀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허풍쟁이라고 하였고 항상 ‘수백만의~’ 운운하는 그에게 ‘백만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그보다도, 없어졌던 25년의 세월을 어떻게 이야기한다?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미친 사람 취급했을 수도 있고 그저 허황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어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답했겠지. 분명 겪은 이야기인데 전혀 받아들여지는 않고. 루스티켈로처럼 이런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 적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면 자신이 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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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 |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 장파(張法) | 素賢소현 | 2007.12.03 | 3164 |
1191 | [독서34]동방견문록/사계절 | 素田최영훈 | 2007.12.01 | 2670 |
1190 | [34] 동방견문록/마르코폴로 | 교정 한정화 | 2007.11.30 | 2970 |
1189 | 『관자』를 읽고 (2) [2] | 현운 이희석 | 2007.11.30 | 2521 |
1188 | (34) 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 | 박승오 | 2007.11.30 | 3533 |
1187 | [관자] 관중의 삶을 좇아 | 여해 송창용 | 2007.11.30 | 2745 |
1186 | 번역을 시작하면서... [7] [3] | 香山 신종윤 | 2007.11.30 | 3213 |
1185 | 동방 견문록 / 마르코 폴로 | 香仁 이은남 | 2007.11.29 | 2910 |
1184 | [34]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사계절) [1] | 써니 | 2007.11.27 | 3177 |
» | 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 [2] | 호정 | 2007.11.27 | 3210 |
1182 | 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 | 소현 | 2007.11.27 | 2881 |
1181 |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2] | 海村 차순성 | 2007.11.26 | 3096 |
1180 |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장파 [1] | 우제 | 2007.11.26 | 3088 |
1179 | [독서33] 관자/3천년의 시공을 넘어서 | 素田 최영훈 | 2007.11.25 | 2978 |
1178 | [관자] 모순(矛盾)과 상생(相生) [2] | 여해 송창용 | 2007.11.22 | 3042 |
1177 | (32) 관자(管子) part.2 [5] | 時田 김도윤 | 2007.11.22 | 3577 |
1176 | (32) 관자(管子) | 時田 김도윤 | 2007.11.22 | 2961 |
1175 | [33] 관자/ 관중 / 소나무출판 [2] | 써니 | 2007.11.21 | 3027 |
1174 | 샘에게 보내는 편지 [2] | 김나경 | 2007.11.21 | 2787 |
1173 | (33) 관자 : 관중 | 박승오 | 2007.11.21 | 30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