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니
- 조회 수 3177
- 댓글 수 1
- 추천 수 0
1. 저자에 대하여
마르코 폴로(1254∼1324)가 1271년부터 1295년까지 동방을 여행한 체험담을 구술하고, 이것을 루스티첼로가 기록한 여행기로서 정식 명칭은 세계의 서술敍述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먼저 저자의 출신에 대해 이견이 있다.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쿠르촐라 출생이라는 설도 있고 이탈리아 베니스 출신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마르코 폴로는 1275년에 서아시아ㆍ중앙아시아를 거쳐 원나라의 상도(上都)에 이르러 쿠빌라이에게 벼슬한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1290년에 일 한국(汗國) 국왕에게 시집가는 왕녀 코카친을 수행하라는 명을 받고 해로(海路)로 페르시아만(灣)의 호르무즈에 도착한 다음 1295년에 베네치아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전쟁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되었는데, 1298∼1299년에 제노바 감옥에서 루스티첼로에게 자기의 동방여행 경험을 구술口述하여 필기하도록 한 것이 이 「동방견문록」이다.
1271년 보석상인인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숙부인 마테오 폴로를 따라 동방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소(小)아시아의 시바스에서 모술을 거쳐 이라크로 들어가, 해로(海路)를 이용하여 중국(원나라)으로 갈 예정으로 바그다드에서 바스라로 갔다. 그러나 해로를 이용할 것을 단념하고 육로를 택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키르만 타브리즈 ·발흐 ·파미르 고원을 경유하여 타림 분지(盆地)에 이르렀고, 카슈가르 ·야르칸드 ·호탄 ·체르첸 등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 변두리의 오아시스 여러 도시를 지나 하서(河西) 지방에 도달하여 간저우[甘州]에서 l년 간 체재한 다음, 대몽골제국의 쿠빌라이[世祖]의 여름 궁전이 있는 상도(上都:현 네이멍구자치구의 남부인 돌룬노르)에 도착하여(1274) 제국의 칸 쿠빌라이를 알현하였다. 마르코는 그대로 중국에 머물러 원나라에서 우대를 받아 관직에 올랐다. 그 사이 중국 각지를 여행하였으며, 17년간 원나라에서 살았다.
쿠빌라이는 마르코 폴로를 가까이 두고 아꼈다. 그래서 여러 번 간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는데, 그러자 마르코 폴로 일행은 이란의 몽골왕조인 일 한국(汗國)의 아르군 칸에게 강가(降嫁)하는 원나라의 공주 코카친의 여행 안내자로 선발되어 오랜 타국살이를 접고 원나라 몽골지역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행은 푸젠성[福建省]의 취안저우[泉州]를 출범(出帆)하여 자바 ·말레이 ·스리랑카 ·말라바르 등을 경유하여 이란의 호르무즈에 도착하였지만, 아르군 칸은 이미 사망한 이후라서 공주를 그의 아우인 가이하투 칸에게 맡겨놓고, 1295년에야 겨우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마르코는 그 후에 베네치아와 제노바 전쟁에 말려들어 포로로 잡혀 제노바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 옥중에서 이야기 작가인 루스티켈로에게 동방에서 보고 들은 것을 필록(筆錄)시켰다. 이것이 바로 현존하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세계 경이(驚異)의 서(통칭 東方見聞錄)》의 원조본(元祖本)이 되었다. 이 책은 13,4세기의 이란 ·중앙아시아 ·몽골의 역사와 지지(地誌) 및 민속 등에 관한 귀중한 문헌이며, 프랑스어(語)의 원본은 산일(散佚)되고, 가장 잘 알려진 이탈리아어(語) 사본은 1309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토피아 참조]
마르코 폴로의「동방견문록」은 13세기 유럽인의 눈에 비친 이방인의 세계를 상세히 묘사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유럽인의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각 지역의 풍습과 자연환경, 사람들의 모습, 종교 등을 세세하게 묘사한 ‘세계 문화의 편람’이라 할 만한 책이라 할만하다. 마르코 폴로 생전에는 허풍과 과장으로 비웃음을 사기도 했을 법하지만 그의 사후에는 ‘성경 다음으로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세계’란 유럽과 이슬람 문화권이 전부로 느껴졌으므로 ‘동방’은 그저 상상 속의 세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베네치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코 폴로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나 마르코 폴로는 열다섯 되던 해 처음으로 숙부와 함께 무역을 하며 아들을 돌보지 않던 아버지를 만나 이국의 땅, 프레스터 존이 산다는 상상속의 동방으로 직접 가보게 되었다. 지중해를 떠나 페르시아, 파미르 고원을 지나 중국으로 들어간 마르코 폴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13세기의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중국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이었으며, 유목민과 농경민의 문화를 접목시킨 새로운 문명이 꽃피던 시기였다. 마르코 폴로는 당대에 세계 최고의 선진 문명을 꽃피우고 있는 중국을 여행한 것이었다.
후에 마르코 폴로는 대략 25년 동안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루스티켈로의 손을 빌려「동방견문록」에 담았는데, 그러한 계기는 1298년 베니스-제노아 전쟁 때 포로가 되어 제노아의 감옥에 갇히게 되자 감옥에서 모험소설 작가 루스티켈로를 만나 동방에서의 견문담(見聞談)을 받아 적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현존하는 폴로의 여행기인 세계의 서술Divisamentdou Monde로「동방견문록」이라 불리는 것이다. 프랑스-이탈리아어로 쓰인 이 책의 원본은 사라졌지만 수많은 사본이 거미줄처럼 퍼져, 유럽인의 동방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마르코 폴로는 은둔생활을 하다가 70세 때 세상을 떠났다.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 시간 관계상 인용문 생략 ^-^* 죄송...
3. 내가 저자라면
하나,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인지는 모르겠으나, 호기심 많고 의욕적인 허풍쟁이 재담꾼의 삶의 지평을 넓히는 모험과 도전의 세계여행이라고 생각되는 한편, 생각보다 재미없는 단순한 내용과 허풍쟁이 이야기꾼의 세계 구전설화 내지는 구비전설의 모음집과도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두울, 문화와 풍속적 다름과 차이에 대한 편견과 모색의 흥미로움
인간으로서의 삶, 생에 대한 여러 가지 방식과 의문들에 대한 숙고와 고찰보다는 먼 이국과 이국인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일관의 대략적 기행을 담은 글로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기도 하거니와 튀는 발상의 여행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곳곳의 내용과 장면적 서술을 살펴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이국의 문화적 이해와 풍속에 대하여 다름과 모름의 차이에서 오는 갭이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점이 있다. 또한 동양에 대한 야릇한 신비감이 존중과 배려와 인식이라는 차원보다는 서양의 기준과 사고에 맞추어져, 비판의 잣대로 일관되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점도 있다고 하겠다. 이질과 야만성으로 통용되듯 왜곡된 해석과 단순한 호기심 유발성의 허풍선이 이야기 수준에 그치듯, 지나치게 저하된 표현 방식과 단순묘사 장면이 더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아쉬움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딴에는 제법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실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서술함과 동시에 세계적 지리에 대한 정확해 보이는 거리적 측정과, 전체적 대략의 개괄적 내용을 담아내기에 충분하였다는 노력이 정말로 당시로서는 더욱 가상하고 놀라우며 기특한 일로서 칭찬할 만하며, 8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가치를 인정받음이 마땅하다 하겠다.
세엣, 풍속으로 살펴보는 여성의 상품적 가치로서의 나그네에 대한 성상납과 그들만의 최대 가치적 성문화
자신들의 가정에서 남들과 같으나 확연하게 다를 수 있는 그들만의 질적 차이를 차별화 할 수 있는 상품적 가치였을까? 여성은 손님을 맞는 최대의 자신만만한 가치적 성/혹은 상품으로서의 존재였던가?
서양 사람들이 그들의 기독교적 사관에 입각하여 순결을 강조하였다고 하면 대대적인 파격을 가하는 성性의 차림표와 풍습은 단지 야만적 행동에 지니지 않는 동물적 가치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나체와 음부에 대한 상세한 서술을 즐겨? 사용하며 상세묘사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말초적 흥미를 유발하여 좀 더 많이 읽히고 관심을 끌어내고 싶었을까? 잡기를 모아놓은 잡지 수준의 세계 풍물 기행의 엇비슷한 일면을 양적으로 흘려놓은 잡서에 불과한 느낌마저 드는 것은 나의 독서력과 안목이 편협한 수준을 넘지 못하는 탓일까? 이모저모를 생각해 보게 한다.
........................................................................................................................................
아직 다 하지 못했지만 시간관계상 먼저 올리고 밤을 새워보도록 하겠습니다. 휴~
IP *.70.72.121
마르코 폴로(1254∼1324)가 1271년부터 1295년까지 동방을 여행한 체험담을 구술하고, 이것을 루스티첼로가 기록한 여행기로서 정식 명칭은 세계의 서술敍述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먼저 저자의 출신에 대해 이견이 있다.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쿠르촐라 출생이라는 설도 있고 이탈리아 베니스 출신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마르코 폴로는 1275년에 서아시아ㆍ중앙아시아를 거쳐 원나라의 상도(上都)에 이르러 쿠빌라이에게 벼슬한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1290년에 일 한국(汗國) 국왕에게 시집가는 왕녀 코카친을 수행하라는 명을 받고 해로(海路)로 페르시아만(灣)의 호르무즈에 도착한 다음 1295년에 베네치아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전쟁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되었는데, 1298∼1299년에 제노바 감옥에서 루스티첼로에게 자기의 동방여행 경험을 구술口述하여 필기하도록 한 것이 이 「동방견문록」이다.
1271년 보석상인인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숙부인 마테오 폴로를 따라 동방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소(小)아시아의 시바스에서 모술을 거쳐 이라크로 들어가, 해로(海路)를 이용하여 중국(원나라)으로 갈 예정으로 바그다드에서 바스라로 갔다. 그러나 해로를 이용할 것을 단념하고 육로를 택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키르만 타브리즈 ·발흐 ·파미르 고원을 경유하여 타림 분지(盆地)에 이르렀고, 카슈가르 ·야르칸드 ·호탄 ·체르첸 등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 변두리의 오아시스 여러 도시를 지나 하서(河西) 지방에 도달하여 간저우[甘州]에서 l년 간 체재한 다음, 대몽골제국의 쿠빌라이[世祖]의 여름 궁전이 있는 상도(上都:현 네이멍구자치구의 남부인 돌룬노르)에 도착하여(1274) 제국의 칸 쿠빌라이를 알현하였다. 마르코는 그대로 중국에 머물러 원나라에서 우대를 받아 관직에 올랐다. 그 사이 중국 각지를 여행하였으며, 17년간 원나라에서 살았다.
쿠빌라이는 마르코 폴로를 가까이 두고 아꼈다. 그래서 여러 번 간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는데, 그러자 마르코 폴로 일행은 이란의 몽골왕조인 일 한국(汗國)의 아르군 칸에게 강가(降嫁)하는 원나라의 공주 코카친의 여행 안내자로 선발되어 오랜 타국살이를 접고 원나라 몽골지역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행은 푸젠성[福建省]의 취안저우[泉州]를 출범(出帆)하여 자바 ·말레이 ·스리랑카 ·말라바르 등을 경유하여 이란의 호르무즈에 도착하였지만, 아르군 칸은 이미 사망한 이후라서 공주를 그의 아우인 가이하투 칸에게 맡겨놓고, 1295년에야 겨우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마르코는 그 후에 베네치아와 제노바 전쟁에 말려들어 포로로 잡혀 제노바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 옥중에서 이야기 작가인 루스티켈로에게 동방에서 보고 들은 것을 필록(筆錄)시켰다. 이것이 바로 현존하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세계 경이(驚異)의 서(통칭 東方見聞錄)》의 원조본(元祖本)이 되었다. 이 책은 13,4세기의 이란 ·중앙아시아 ·몽골의 역사와 지지(地誌) 및 민속 등에 관한 귀중한 문헌이며, 프랑스어(語)의 원본은 산일(散佚)되고, 가장 잘 알려진 이탈리아어(語) 사본은 1309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토피아 참조]
마르코 폴로의「동방견문록」은 13세기 유럽인의 눈에 비친 이방인의 세계를 상세히 묘사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유럽인의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각 지역의 풍습과 자연환경, 사람들의 모습, 종교 등을 세세하게 묘사한 ‘세계 문화의 편람’이라 할 만한 책이라 할만하다. 마르코 폴로 생전에는 허풍과 과장으로 비웃음을 사기도 했을 법하지만 그의 사후에는 ‘성경 다음으로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세계’란 유럽과 이슬람 문화권이 전부로 느껴졌으므로 ‘동방’은 그저 상상 속의 세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베네치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코 폴로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나 마르코 폴로는 열다섯 되던 해 처음으로 숙부와 함께 무역을 하며 아들을 돌보지 않던 아버지를 만나 이국의 땅, 프레스터 존이 산다는 상상속의 동방으로 직접 가보게 되었다. 지중해를 떠나 페르시아, 파미르 고원을 지나 중국으로 들어간 마르코 폴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13세기의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중국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이었으며, 유목민과 농경민의 문화를 접목시킨 새로운 문명이 꽃피던 시기였다. 마르코 폴로는 당대에 세계 최고의 선진 문명을 꽃피우고 있는 중국을 여행한 것이었다.
후에 마르코 폴로는 대략 25년 동안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루스티켈로의 손을 빌려「동방견문록」에 담았는데, 그러한 계기는 1298년 베니스-제노아 전쟁 때 포로가 되어 제노아의 감옥에 갇히게 되자 감옥에서 모험소설 작가 루스티켈로를 만나 동방에서의 견문담(見聞談)을 받아 적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현존하는 폴로의 여행기인 세계의 서술Divisamentdou Monde로「동방견문록」이라 불리는 것이다. 프랑스-이탈리아어로 쓰인 이 책의 원본은 사라졌지만 수많은 사본이 거미줄처럼 퍼져, 유럽인의 동방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마르코 폴로는 은둔생활을 하다가 70세 때 세상을 떠났다.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 시간 관계상 인용문 생략 ^-^* 죄송...
3. 내가 저자라면
하나,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인지는 모르겠으나, 호기심 많고 의욕적인 허풍쟁이 재담꾼의 삶의 지평을 넓히는 모험과 도전의 세계여행이라고 생각되는 한편, 생각보다 재미없는 단순한 내용과 허풍쟁이 이야기꾼의 세계 구전설화 내지는 구비전설의 모음집과도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두울, 문화와 풍속적 다름과 차이에 대한 편견과 모색의 흥미로움
인간으로서의 삶, 생에 대한 여러 가지 방식과 의문들에 대한 숙고와 고찰보다는 먼 이국과 이국인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일관의 대략적 기행을 담은 글로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기도 하거니와 튀는 발상의 여행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곳곳의 내용과 장면적 서술을 살펴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이국의 문화적 이해와 풍속에 대하여 다름과 모름의 차이에서 오는 갭이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점이 있다. 또한 동양에 대한 야릇한 신비감이 존중과 배려와 인식이라는 차원보다는 서양의 기준과 사고에 맞추어져, 비판의 잣대로 일관되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점도 있다고 하겠다. 이질과 야만성으로 통용되듯 왜곡된 해석과 단순한 호기심 유발성의 허풍선이 이야기 수준에 그치듯, 지나치게 저하된 표현 방식과 단순묘사 장면이 더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아쉬움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딴에는 제법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실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서술함과 동시에 세계적 지리에 대한 정확해 보이는 거리적 측정과, 전체적 대략의 개괄적 내용을 담아내기에 충분하였다는 노력이 정말로 당시로서는 더욱 가상하고 놀라우며 기특한 일로서 칭찬할 만하며, 8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가치를 인정받음이 마땅하다 하겠다.
세엣, 풍속으로 살펴보는 여성의 상품적 가치로서의 나그네에 대한 성상납과 그들만의 최대 가치적 성문화
자신들의 가정에서 남들과 같으나 확연하게 다를 수 있는 그들만의 질적 차이를 차별화 할 수 있는 상품적 가치였을까? 여성은 손님을 맞는 최대의 자신만만한 가치적 성/혹은 상품으로서의 존재였던가?
서양 사람들이 그들의 기독교적 사관에 입각하여 순결을 강조하였다고 하면 대대적인 파격을 가하는 성性의 차림표와 풍습은 단지 야만적 행동에 지니지 않는 동물적 가치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나체와 음부에 대한 상세한 서술을 즐겨? 사용하며 상세묘사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말초적 흥미를 유발하여 좀 더 많이 읽히고 관심을 끌어내고 싶었을까? 잡기를 모아놓은 잡지 수준의 세계 풍물 기행의 엇비슷한 일면을 양적으로 흘려놓은 잡서에 불과한 느낌마저 드는 것은 나의 독서력과 안목이 편협한 수준을 넘지 못하는 탓일까? 이모저모를 생각해 보게 한다.
........................................................................................................................................
아직 다 하지 못했지만 시간관계상 먼저 올리고 밤을 새워보도록 하겠습니다. 휴~
댓글
1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써니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해설
1. 시대적 배경
이처럼 놀라운 위업을 달성한 쿠빌라이가 평생을 두고 해결하지 못한 것은 카이두(Qaidu)와의 대결이었으니, 그루쎄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쿠빌라이의 ‘반명제’ 였던 것이다. p10
쿠빌라이의 치세기간은 34년으로서 그것은 몽골제국의 어느 군주보다도 긴 것이었다.
쿠빌라이는 정치가로서의 원대한 안목과 전략가로서의 치밀한 판단력을 겸비했고, 군주로서의 그의 역량은 초원의 세계를 넘어 거대한 제국을 운영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폴로일가의 여행은 1260년 베니스를 출발하여 1295년 귀향함으로써 막을 내렸는데 그것은 바로 쿠빌라이의 치세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으니,「동방견문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르코 폴로의 놀라운 기록은 바로 쿠빌라이 치세의 몽골제국과 그 주변세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자 이 위대한 시대가 남긴 지워지지 않는 기념물인 것이다.
이처럼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바로 쿠빌라이가 살던 13세기 후반의 몽골제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탄생하였기 때문에 그의 글 페이지마다 그 시대의 모습이 배어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구나가 전편에 드리워진 몽골제국의 그림자가 얼마나 큰지 느끼게 될 것이다. p11
특히 그가 "하늘의 도시 킨사이”라고 부른 항주는 수많은 운하가 가로 지르고 그 위에 1만 2,000개의 다리가 놓여있어 물 위의 도시 베니스를 연상시켰는지 그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대해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항주는 그야말로 몽골제국의 정화이자 도시와 문명생활의 극치였던 것이다. p13
지금 우리가 마르코 폴로의 글을 읽을 때 그 속에 황당한 일화나 터무니없는 과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동시에 다른 여러 역사자료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가 얼마나 정확하고 세밀한 자기 시대의 기록자였는가 하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진실’과 ‘허구’로 구분하는 그 모든 것이 뭉뚱그려진 전체를 하나의 ‘실상’으로 인식했음이 분명하다. p14
2. 마르코 폴로의 생애
「동방견문록」의 내용 자체는 그가 세밀한 관찰력과 기억력의 소유자였음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p15
3. 동방견문록의 내용과 특징
‘대화식’ 표현들을 끊임없이 삽입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주려고 했다.
경이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고 당대인들의 온갖 회의와 비방에도 불구하고 그가 얼마나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p29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점은 14세기 마르코 폴로가 살던 시대의 의식의 수준이다.
‘허구’와 ‘상상’의 일화 등을 통해 그 자신 및 동시대인들의 관념세계의 일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p30
상도ㆍ대도ㆍ항주ㆍ천주를 비롯한 원대의 도시들에 대한 묘사는 다른 사료들에 의해 그 신빙성이 입증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디테일로 인해 지금도 그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 일급의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처럼 그의 글은 그가 여행한 넓고 다양한 세계에 대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스러우면서도 정확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의 글은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욕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낯선 지역에 대한 흥미로운 안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살던 세계의 모습을 이해하고 또 그 시대인들이 가졌던 세계관의 단면을 살피는 데에 불가결한 지식의 원천인 것이다. p31
4. 마르코 폴로의 관점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풍습을 세세하게 기록한 마르코 폴로의 글 안에서 다른 문화의 관습에 대한 경멸심, 후일 그의 후손들이 비서구사회를 보고 곧잘 느꼈던 서구문명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자기 문화의 잣대로 다른 문화의 이모저모를 저울질하고 재단하려는 태도보다는 신기하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놀라움과 호기심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역시 시대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종교관이 현대의 다원주의와 같은 것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p35
그의 종교적인 유연성은 서구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힌 네스토리우스 교단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된다. p37
5. 「동방견문록」의 의문점들
최근 일본의 스기야마 마가아키와 같은 학자는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이 이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즉 「동방견문록」은 동방에 대한 당시 유럽인들의 지리 지식의 집적이며 “여러 명의 마르코 폴로”에 의해 수정ㆍ보충되어 완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는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의 실존을 입증할 만한 ‘외제적’인 물증이 없다는 주장이다. p42
마르코 폴로가 ‘제노아의 감옥’에서 루스티켈로에게 ‘구술’해서 책을 완성했다는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우선 현재까지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F본을 꼼꼼히 연구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구어체 용어들의 빈번한 사용과 동일한 구절들의 계속적인 반복을 지적하며「동방견문록」이 ‘구술’에 근거했으리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p44
서편/ 1장~19장
마르코는 비할 수 없이 현명하고 사려가 깊었으며, 대카안은 그가 지니고 있는 선량함과 용맹함을 매우 아꼈다. p89
대카안은 자신의 영역 어디서든 그들이 자유로우며 어디를 가든간에 그들 자신에게 혹은 그들의 일행에게 소요되는 경비를 마땅히 취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칙령과 함께 두 개의 패자를 그들에게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 교황, 프랑스의 국왕, 스페인의 국왕, 기독교권의 다른 국왕들에게 보내는 사절 임무도 맡겼다. 그리고 각각 네 개의 돛대를 갖고 12폭의 돛으로 항해하는 선박을 14척 마련해 주었다. p94
‘마른 나무'(Dry Tree) p95
‘산상의 노인’과 암살자들 p143
3. 내가 저자라면 부분의 보충
[다시 전체 요약]
마르코 폴로의 동방 여행의 동기가 교황 레고리우스 10세의 신임장을 몽골제국에 전달하려는 것이었다. 서양사회의 동양(중국이나 동아시아 등)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전무하던 시대 이와 같은 책을 서술하였다고 하는 사실이 자못 놀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마르코 폴로의 미지의 동방세계에 대한 신비한 지식의 보고서로서 가치가 충분하리라.
무엇보다 동양에 대하여 궁금한 점들을 충족시켜주는 해결서로서 최초의 동양의 완벽 대장정으로 올 로케이션의 풀 가이드북이라 할만하다.
그러므로 동서 문화교섭의 일대 획기적 구심적 야심서요, 서양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신항로 개척의 지리지, 동양 넘보기에 대한 야욕적 정탐서적 가치도 지녔었다 할 수 있겠다.
연구원 과제로 7월에 읽은 르네 구르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보다는 내용의 세세함은 있으나 전반적으로 그 품격은 떨어지는 느낌이다. 하기야 700년 전 작품과 비교할 수는 없겠다.
하나, [보충] 말초감각의 자극적 흥미유발과 마르코 폴로의 허풍선적 일면이 엿보이다.
『이 섬의 국왕은 세상에서 이제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루비를 갖고 있다. 그것의 길이는 한 뼘이고 두께는 남자의 팔뚝 정도이다. 보기에도 황홀한 것으로, 아무런 흠집도 없고 불타는 듯한 붉은 색이다. 그것은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 대카안이 그곳에 사신을 보내 이 루비를 사고 싶다고 전달했다. 그러나 왕은 그것이 자기 조상들의 것이므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대답했다.』 p441
『이 섬의 기독교도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마술사들이다. 이 마술사들은 이상한 일을 많이 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p493
『코끼리까지 들어 올리는 거대한 새 루크와 글리폰은 얼마나 크고 힘이 센지, 코끼리를 집어서 하늘 높이 올랐다가 땅에 떨어뜨려 코끼리를 박살낸 다음 그것을 배불리 뜯어먹는다고 한다. 그것을 본 사람에 의하면 날개를 펴면 30보 , 깃털의 길이는 12보나 되고 두께도 그 길이에 걸맞을 정도라고 한다.』p496
두울, [보충]
장기간, 장거리, 다국적 세계여행을 통한 다각적 삶의 양태를 파악하며, 견문을 넓힌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이야기적 서술이 생생한 책이다. 삶과 일상들이 꿈틀대는 대단한 분량의 내용이 응축되고, 허구적 낭만을 곁들여 신비감과 당혹감으로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하겠다. 여러 이국적 풍경과 생의 현장을 세심한 관찰로 펼쳐 보인다. 많은 다른 문화적 풍습과 생각들을 보고ㆍ듣고ㆍ느끼며 생생한 체험을 즐거운 이야기로 함축하고 꾸며서 재미나게 엮어나간 책이다. 간혹 대화체의 반복적 서술에 지루함이 없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한 오랜 여행과 다국적 견문을 해박한 지식으로 담아냈다. 하여 세계여행 혹은 세계정벌이나 탐구에 귀중한 자료로 쓰여 졌다함에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원나라 대몽골제국의 태평성대와 실크로드를 통한 활발한 상업과 물물교역의 성왕도 이 책의 본문을 읽으며 감지할 수 있었다.
세엣, [보충]
이방인에게 성상납은 생계수단을 위한 필요악이었을까? 단지 물질에 대한 탐욕이었을까?
『그들은 이방인이나 다른 남자가 자기의 아내나 딸이나 누이, 혹은 집안의 어떤 여자와 동침한다고 해도 그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동침하는 것을 좋아하면서 말하기를, 그런 행위로 말미암아 신과 우상들이 자기들에게 혜택을 주고 세속적인 물건들을 무수히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방인에게 자기 아내들을 마음대로 하게 그냥 내버려 둔다.』 p315
네엣, 이 책에는 여러 유목민의 장면들이 나오는데, 연구원 몽골여행에서 말몰이꾼들이 말을 타며 먹던 응고된 치즈덩어리같이 생긴 고체우(말)유가아, 생각난다. 먹고 싶다. 어린 말몰이꾼 <나야>와 <보야> 그리고 내 말몰이꾼 <바트르>가 말을 타며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꺼내먹던, 하얗고 네모나며 치즈나 버터 덩어리처럼 생긴 고체우(말)유가 생각난다.
몽골의 뭉근머리트 지역으로 향하던 중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생필품 등을 사려고 들린 단 한곳밖에는 없던 대형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냉장고를 열 때에 슬쩍 집어 드시던 것이 있었으니, 몽골여행에 이미 익숙하신 사부께서는 그것이 바로 이 유제품을 빙과류처럼 얼려놓고 먹는 고체 말(우)유 임을 아셨던 것이다. 빙과류 속에 섞여있던 그것을 골라 우리에게 먹어보게 하기 위해 집어 드셨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 나는 맛있게 맛을 보았다. 약간 진한 우유 맛에 짭조름하였다.
우(말, 혹은 양?)유를 응고시켜 네모나게 만들어서 딱딱한 과자나 빙과를 깨물어먹듯 갉아먹는 맛이 제법이다. 아마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혹시 배탈이 날수도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날씨가 더워도 그다지 흐르거나 바스러지지 않고 가장자리를 긁듯이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유제품이므로 담백하며 먹으면 든든할 것이다. 유목민들은 이것을 말을 타고 달리면서, 참으로 과자를 먹듯 즐겨먹으며 말 타기를 지루하거나 배고프지 않게 즐기더라.
이것이 얼마나 운치가 있는 평화롭고 한가로운 장면인가 하면은 짙푸른 창공에 구름 두둥실 떠다니는 맑은 코발트 빛 하늘을 바라보며, 초원을 유유히 말을 타며 말의 움직임에 따라 유목민들은 말 등에서 자신들의 몸을 내어맡긴 채 말 타기를 즐긴다. 이리 씰룩 저리 씰룩 자연스레 몸이 춤을 추듯 덜렁이고, 마치 흥얼흥얼 시조나 노래를 읊듯 유유히 흐르는 강을 건너며 응고된 우(말)유를 씹는 광경은 천하의 태평성대가 따로 없고, 세상의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을 만큼 여유롭고 한가한 장면으로 연출된다. 아, 다시 가서 말 타고 싶당. (ㅋ)
다섯, 내 어릴 적 영웅 김찬삼님의 세계일주와 미처 실현시키지 못한 내 꿈 또한 세계일주
김찬삼님은 한국 해외여행의 선구자·개척자로 불리는 인물로,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제1차 세계일주 여행을 한 이래 30여 년에 걸쳐 3회의 세계일주와 20여 회의 테마여행을 통해 160여 개국, 1,000여 개의 도시를 방문하였다. 이를 거리로 환산하면 지구를 32바퀴 돈 것과 같고, 시간으로 치면 여행에만 꼬박 14년이 걸렸다.
1992년에는 67살의 나이에 실크로드-서남아시아-유럽을 잇는 7만 3000㎞의 여행길에 올랐다가 열차 사고로 머리를 다친 뒤, 언어장애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였다. 2001년 5월에는 인천광역시 영종도에 세계여행문화원과 여행도서관을 개관하였는데, 평생 모은 여행 가이드북과 여행 관련서 1,800여 권, 화보집 200여 권 등 2,000여 권의 도서를 비치되어 있다.
여섯, 경제력이 없는 여성을 보살피는 가부장적 오랜 전통의 사회보장제도의 일면도 눈에 띈다.
『형이 죽으면 그 부인도 취한다.』 p193
우리나라 부여와 고구려의 형수취수제兄嫂娶嫂制 혹은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는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에 흉노족의 풍습과 같다고 적혀있다. 중국 동북방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에게 이와 같은 관습이 있다고 전해진다. 유목민들의 전형적인 풍속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도 이 장면이 서술되어 있다.
또한 더불어 최고의 사회보장제도라 할 수 있는 왕의 하해와도 같은 성은?
『이 왕국에서는 어떤 아름다운 처녀라도 결혼하기 전에 반드시 왕을 먼저 만나보아야 한다. 만약 왕이 그녀가 마음에 들면 부인으로 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녀가 시집갈 수 있도록 돈을 준다. 』p426 (ㅋㅋ 부럽고 좋은 제도가 아니겠는가.)
일곱, 처녀귀신과 몽달귀신이 구천을 떠돌며 헤매지 않고,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서로의 안녕을 빌며 생과 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양식의 영혼결혼식도 나타난다.
『만약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에게는 죽은 아들이 있고, 또 한 사람에게는 죽은 딸이 있다면, 그들은 죽은 여자 아이를 죽은 남자 아이에게 아내로 주어 혼인을 맺게 하고 그에 관한 문서도 만든다. 이렇게 한 뒤 그들은 서로를 친척이라 여기고 살아 있는 한 그런 관계를 유지한다.』 p199
여덟, 당시에도 등신불이 된 열녀들이 있었다?
『이 왕국의 또 다른 관습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겠다. 사람이 죽어 그의 시체를 태우고 나면 그의 아내는 그 불에 스스로 몸을 던져 남편과 함께 화장된다. 이렇게 하는 여인들은 사람들로부터 크게 칭송받는다. 』p448
아홉, 유목민들의 그들만의 전쟁방식
『군대가 행진할 때에는 그곳이 평지든 산지든 간에 200명의 병사를 전방 이틀까지 보내 정탐케 하는데, 뒤와 옆으로, 즉 네 방향 모두로 사람을 보낸다. 군대가 습격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장거리 원정을 갈 때 그들은 준비도구를 전혀 휴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말 젖을 먹으며 견디는데, 각자 18필의 말과 암말을 데리고 간다. 도중에 말이 지치면 다른 말로 바꾸어 탄다. 또한 두 개의 가죽통을 갖고 가는데 거기에는 마실 젖을 넣어두며, 흙으로 빚은 조그만 토기도 휴대하는데 거기에다 고기를 요리한다. 비가 올때 들어가 있을 조그만 텐트도 휴대한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음식이나 지필 불이 없어도 열흘 거리를 말을 타고 행군할 수 있다.
그들은 말의 피로도 연명하는데, 각자 자기 말의 핏줄을 찔러 그 피를 마시는 것이다.
또한 반죽처럼 반쯤 응고된 젖을 갖고 가는데, 물과 함께 섞으면 응유가 풀어져 마신다.
그들은 전쟁에 나갈 때 이러한 응유를 10파운드 정도 갖고 간다.
그들은 적과 전투할 때 적의 주위를 맴돌며 여기저기로 활을 쏘아댄다. 』p197
열, 너무나 혐오적 장면들의 돌출적 장면에 거부감이 인다.
『어떤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아 국가에 의해 처형되면, 그들은 그를 끌고 가서 요리해 먹는다. 그러나 자기 수명을 다하여 죽은 사람의 시체는 결코 먹는 법이 없다.』 p215
열하나, 쿠빌라이 칸은 3천 궁녀를 거닐었던 백제시대의 의자왕 혹은 기독교의 탕아 JMS정명석?
『사를 낮과 밤을 여섯 명의 여인들이 방에서 침대에서 군주를 모시며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수행하고, 대카안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녀들에게 행한다. 사흘 낮과 밤이 끝나면 두 번째 여섯 명의 여인들이 들어온다. 이렇게 사흘 낮과 밤마다 여섯 명씩의 여인들이 1년 내내 바뀌는 것이다.』 p233
열둘, 별자리도 동양에서 탄생?
『“그녀의 별자리가 나빠서 그런 것이다.”라고 말한다.』 p234
열세엣, 마르코 폴로는 은근슬쩍 기독교인들에 대한 동정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다이아몬드는 전세계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 왕국에서만 산출된다. 그곳에서 질 좋고 커다란 것이 무척 많이 나오지만, 여러분은 그 좋은 다이아몬드가 우리 기독교의 나라들로 온다고 오해하지 마시라. 그것들은 대카안과 그 여러 지역이나 강역에 있는 왕과 신하들에게 흘러가니, 그것은 그들이 온갖 보물과 값비싼 보석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p459
『주교의 대답을 들은 술탄은 그에게 모욕을 주면서 할례를 시키라고 명령했다. 주교는 그 같은 치욕을 당하고 나서 큰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되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자신이 그 같은 치욕을 당한 것이 기독교의 율법을 위해서이고, 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공덕을 저세상에서 자신의 영혼에게 갚아주시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p502
열넷, 대화체가 쉽기는 하나 사실성과 현실감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느낌이다.
해설
1. 시대적 배경
이처럼 놀라운 위업을 달성한 쿠빌라이가 평생을 두고 해결하지 못한 것은 카이두(Qaidu)와의 대결이었으니, 그루쎄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쿠빌라이의 ‘반명제’ 였던 것이다. p10
쿠빌라이의 치세기간은 34년으로서 그것은 몽골제국의 어느 군주보다도 긴 것이었다.
쿠빌라이는 정치가로서의 원대한 안목과 전략가로서의 치밀한 판단력을 겸비했고, 군주로서의 그의 역량은 초원의 세계를 넘어 거대한 제국을 운영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폴로일가의 여행은 1260년 베니스를 출발하여 1295년 귀향함으로써 막을 내렸는데 그것은 바로 쿠빌라이의 치세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으니,「동방견문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르코 폴로의 놀라운 기록은 바로 쿠빌라이 치세의 몽골제국과 그 주변세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자 이 위대한 시대가 남긴 지워지지 않는 기념물인 것이다.
이처럼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바로 쿠빌라이가 살던 13세기 후반의 몽골제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탄생하였기 때문에 그의 글 페이지마다 그 시대의 모습이 배어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구나가 전편에 드리워진 몽골제국의 그림자가 얼마나 큰지 느끼게 될 것이다. p11
특히 그가 "하늘의 도시 킨사이”라고 부른 항주는 수많은 운하가 가로 지르고 그 위에 1만 2,000개의 다리가 놓여있어 물 위의 도시 베니스를 연상시켰는지 그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대해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항주는 그야말로 몽골제국의 정화이자 도시와 문명생활의 극치였던 것이다. p13
지금 우리가 마르코 폴로의 글을 읽을 때 그 속에 황당한 일화나 터무니없는 과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동시에 다른 여러 역사자료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가 얼마나 정확하고 세밀한 자기 시대의 기록자였는가 하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진실’과 ‘허구’로 구분하는 그 모든 것이 뭉뚱그려진 전체를 하나의 ‘실상’으로 인식했음이 분명하다. p14
2. 마르코 폴로의 생애
「동방견문록」의 내용 자체는 그가 세밀한 관찰력과 기억력의 소유자였음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p15
3. 동방견문록의 내용과 특징
‘대화식’ 표현들을 끊임없이 삽입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주려고 했다.
경이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고 당대인들의 온갖 회의와 비방에도 불구하고 그가 얼마나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p29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점은 14세기 마르코 폴로가 살던 시대의 의식의 수준이다.
‘허구’와 ‘상상’의 일화 등을 통해 그 자신 및 동시대인들의 관념세계의 일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p30
상도ㆍ대도ㆍ항주ㆍ천주를 비롯한 원대의 도시들에 대한 묘사는 다른 사료들에 의해 그 신빙성이 입증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디테일로 인해 지금도 그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 일급의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처럼 그의 글은 그가 여행한 넓고 다양한 세계에 대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스러우면서도 정확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의 글은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욕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낯선 지역에 대한 흥미로운 안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살던 세계의 모습을 이해하고 또 그 시대인들이 가졌던 세계관의 단면을 살피는 데에 불가결한 지식의 원천인 것이다. p31
4. 마르코 폴로의 관점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풍습을 세세하게 기록한 마르코 폴로의 글 안에서 다른 문화의 관습에 대한 경멸심, 후일 그의 후손들이 비서구사회를 보고 곧잘 느꼈던 서구문명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자기 문화의 잣대로 다른 문화의 이모저모를 저울질하고 재단하려는 태도보다는 신기하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놀라움과 호기심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역시 시대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종교관이 현대의 다원주의와 같은 것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p35
그의 종교적인 유연성은 서구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힌 네스토리우스 교단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된다. p37
5. 「동방견문록」의 의문점들
최근 일본의 스기야마 마가아키와 같은 학자는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이 이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즉 「동방견문록」은 동방에 대한 당시 유럽인들의 지리 지식의 집적이며 “여러 명의 마르코 폴로”에 의해 수정ㆍ보충되어 완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는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의 실존을 입증할 만한 ‘외제적’인 물증이 없다는 주장이다. p42
마르코 폴로가 ‘제노아의 감옥’에서 루스티켈로에게 ‘구술’해서 책을 완성했다는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우선 현재까지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F본을 꼼꼼히 연구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구어체 용어들의 빈번한 사용과 동일한 구절들의 계속적인 반복을 지적하며「동방견문록」이 ‘구술’에 근거했으리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p44
서편/ 1장~19장
마르코는 비할 수 없이 현명하고 사려가 깊었으며, 대카안은 그가 지니고 있는 선량함과 용맹함을 매우 아꼈다. p89
대카안은 자신의 영역 어디서든 그들이 자유로우며 어디를 가든간에 그들 자신에게 혹은 그들의 일행에게 소요되는 경비를 마땅히 취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칙령과 함께 두 개의 패자를 그들에게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 교황, 프랑스의 국왕, 스페인의 국왕, 기독교권의 다른 국왕들에게 보내는 사절 임무도 맡겼다. 그리고 각각 네 개의 돛대를 갖고 12폭의 돛으로 항해하는 선박을 14척 마련해 주었다. p94
‘마른 나무'(Dry Tree) p95
‘산상의 노인’과 암살자들 p143
3. 내가 저자라면 부분의 보충
[다시 전체 요약]
마르코 폴로의 동방 여행의 동기가 교황 레고리우스 10세의 신임장을 몽골제국에 전달하려는 것이었다. 서양사회의 동양(중국이나 동아시아 등)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전무하던 시대 이와 같은 책을 서술하였다고 하는 사실이 자못 놀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마르코 폴로의 미지의 동방세계에 대한 신비한 지식의 보고서로서 가치가 충분하리라.
무엇보다 동양에 대하여 궁금한 점들을 충족시켜주는 해결서로서 최초의 동양의 완벽 대장정으로 올 로케이션의 풀 가이드북이라 할만하다.
그러므로 동서 문화교섭의 일대 획기적 구심적 야심서요, 서양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신항로 개척의 지리지, 동양 넘보기에 대한 야욕적 정탐서적 가치도 지녔었다 할 수 있겠다.
연구원 과제로 7월에 읽은 르네 구르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보다는 내용의 세세함은 있으나 전반적으로 그 품격은 떨어지는 느낌이다. 하기야 700년 전 작품과 비교할 수는 없겠다.
하나, [보충] 말초감각의 자극적 흥미유발과 마르코 폴로의 허풍선적 일면이 엿보이다.
『이 섬의 국왕은 세상에서 이제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루비를 갖고 있다. 그것의 길이는 한 뼘이고 두께는 남자의 팔뚝 정도이다. 보기에도 황홀한 것으로, 아무런 흠집도 없고 불타는 듯한 붉은 색이다. 그것은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 대카안이 그곳에 사신을 보내 이 루비를 사고 싶다고 전달했다. 그러나 왕은 그것이 자기 조상들의 것이므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대답했다.』 p441
『이 섬의 기독교도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마술사들이다. 이 마술사들은 이상한 일을 많이 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p493
『코끼리까지 들어 올리는 거대한 새 루크와 글리폰은 얼마나 크고 힘이 센지, 코끼리를 집어서 하늘 높이 올랐다가 땅에 떨어뜨려 코끼리를 박살낸 다음 그것을 배불리 뜯어먹는다고 한다. 그것을 본 사람에 의하면 날개를 펴면 30보 , 깃털의 길이는 12보나 되고 두께도 그 길이에 걸맞을 정도라고 한다.』p496
두울, [보충]
장기간, 장거리, 다국적 세계여행을 통한 다각적 삶의 양태를 파악하며, 견문을 넓힌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이야기적 서술이 생생한 책이다. 삶과 일상들이 꿈틀대는 대단한 분량의 내용이 응축되고, 허구적 낭만을 곁들여 신비감과 당혹감으로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하겠다. 여러 이국적 풍경과 생의 현장을 세심한 관찰로 펼쳐 보인다. 많은 다른 문화적 풍습과 생각들을 보고ㆍ듣고ㆍ느끼며 생생한 체험을 즐거운 이야기로 함축하고 꾸며서 재미나게 엮어나간 책이다. 간혹 대화체의 반복적 서술에 지루함이 없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한 오랜 여행과 다국적 견문을 해박한 지식으로 담아냈다. 하여 세계여행 혹은 세계정벌이나 탐구에 귀중한 자료로 쓰여 졌다함에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원나라 대몽골제국의 태평성대와 실크로드를 통한 활발한 상업과 물물교역의 성왕도 이 책의 본문을 읽으며 감지할 수 있었다.
세엣, [보충]
이방인에게 성상납은 생계수단을 위한 필요악이었을까? 단지 물질에 대한 탐욕이었을까?
『그들은 이방인이나 다른 남자가 자기의 아내나 딸이나 누이, 혹은 집안의 어떤 여자와 동침한다고 해도 그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동침하는 것을 좋아하면서 말하기를, 그런 행위로 말미암아 신과 우상들이 자기들에게 혜택을 주고 세속적인 물건들을 무수히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방인에게 자기 아내들을 마음대로 하게 그냥 내버려 둔다.』 p315
네엣, 이 책에는 여러 유목민의 장면들이 나오는데, 연구원 몽골여행에서 말몰이꾼들이 말을 타며 먹던 응고된 치즈덩어리같이 생긴 고체우(말)유가아, 생각난다. 먹고 싶다. 어린 말몰이꾼 <나야>와 <보야> 그리고 내 말몰이꾼 <바트르>가 말을 타며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꺼내먹던, 하얗고 네모나며 치즈나 버터 덩어리처럼 생긴 고체우(말)유가 생각난다.
몽골의 뭉근머리트 지역으로 향하던 중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생필품 등을 사려고 들린 단 한곳밖에는 없던 대형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냉장고를 열 때에 슬쩍 집어 드시던 것이 있었으니, 몽골여행에 이미 익숙하신 사부께서는 그것이 바로 이 유제품을 빙과류처럼 얼려놓고 먹는 고체 말(우)유 임을 아셨던 것이다. 빙과류 속에 섞여있던 그것을 골라 우리에게 먹어보게 하기 위해 집어 드셨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 나는 맛있게 맛을 보았다. 약간 진한 우유 맛에 짭조름하였다.
우(말, 혹은 양?)유를 응고시켜 네모나게 만들어서 딱딱한 과자나 빙과를 깨물어먹듯 갉아먹는 맛이 제법이다. 아마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혹시 배탈이 날수도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날씨가 더워도 그다지 흐르거나 바스러지지 않고 가장자리를 긁듯이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유제품이므로 담백하며 먹으면 든든할 것이다. 유목민들은 이것을 말을 타고 달리면서, 참으로 과자를 먹듯 즐겨먹으며 말 타기를 지루하거나 배고프지 않게 즐기더라.
이것이 얼마나 운치가 있는 평화롭고 한가로운 장면인가 하면은 짙푸른 창공에 구름 두둥실 떠다니는 맑은 코발트 빛 하늘을 바라보며, 초원을 유유히 말을 타며 말의 움직임에 따라 유목민들은 말 등에서 자신들의 몸을 내어맡긴 채 말 타기를 즐긴다. 이리 씰룩 저리 씰룩 자연스레 몸이 춤을 추듯 덜렁이고, 마치 흥얼흥얼 시조나 노래를 읊듯 유유히 흐르는 강을 건너며 응고된 우(말)유를 씹는 광경은 천하의 태평성대가 따로 없고, 세상의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을 만큼 여유롭고 한가한 장면으로 연출된다. 아, 다시 가서 말 타고 싶당. (ㅋ)
다섯, 내 어릴 적 영웅 김찬삼님의 세계일주와 미처 실현시키지 못한 내 꿈 또한 세계일주
김찬삼님은 한국 해외여행의 선구자·개척자로 불리는 인물로,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제1차 세계일주 여행을 한 이래 30여 년에 걸쳐 3회의 세계일주와 20여 회의 테마여행을 통해 160여 개국, 1,000여 개의 도시를 방문하였다. 이를 거리로 환산하면 지구를 32바퀴 돈 것과 같고, 시간으로 치면 여행에만 꼬박 14년이 걸렸다.
1992년에는 67살의 나이에 실크로드-서남아시아-유럽을 잇는 7만 3000㎞의 여행길에 올랐다가 열차 사고로 머리를 다친 뒤, 언어장애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였다. 2001년 5월에는 인천광역시 영종도에 세계여행문화원과 여행도서관을 개관하였는데, 평생 모은 여행 가이드북과 여행 관련서 1,800여 권, 화보집 200여 권 등 2,000여 권의 도서를 비치되어 있다.
여섯, 경제력이 없는 여성을 보살피는 가부장적 오랜 전통의 사회보장제도의 일면도 눈에 띈다.
『형이 죽으면 그 부인도 취한다.』 p193
우리나라 부여와 고구려의 형수취수제兄嫂娶嫂制 혹은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는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에 흉노족의 풍습과 같다고 적혀있다. 중국 동북방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에게 이와 같은 관습이 있다고 전해진다. 유목민들의 전형적인 풍속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도 이 장면이 서술되어 있다.
또한 더불어 최고의 사회보장제도라 할 수 있는 왕의 하해와도 같은 성은?
『이 왕국에서는 어떤 아름다운 처녀라도 결혼하기 전에 반드시 왕을 먼저 만나보아야 한다. 만약 왕이 그녀가 마음에 들면 부인으로 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녀가 시집갈 수 있도록 돈을 준다. 』p426 (ㅋㅋ 부럽고 좋은 제도가 아니겠는가.)
일곱, 처녀귀신과 몽달귀신이 구천을 떠돌며 헤매지 않고,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서로의 안녕을 빌며 생과 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양식의 영혼결혼식도 나타난다.
『만약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에게는 죽은 아들이 있고, 또 한 사람에게는 죽은 딸이 있다면, 그들은 죽은 여자 아이를 죽은 남자 아이에게 아내로 주어 혼인을 맺게 하고 그에 관한 문서도 만든다. 이렇게 한 뒤 그들은 서로를 친척이라 여기고 살아 있는 한 그런 관계를 유지한다.』 p199
여덟, 당시에도 등신불이 된 열녀들이 있었다?
『이 왕국의 또 다른 관습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겠다. 사람이 죽어 그의 시체를 태우고 나면 그의 아내는 그 불에 스스로 몸을 던져 남편과 함께 화장된다. 이렇게 하는 여인들은 사람들로부터 크게 칭송받는다. 』p448
아홉, 유목민들의 그들만의 전쟁방식
『군대가 행진할 때에는 그곳이 평지든 산지든 간에 200명의 병사를 전방 이틀까지 보내 정탐케 하는데, 뒤와 옆으로, 즉 네 방향 모두로 사람을 보낸다. 군대가 습격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장거리 원정을 갈 때 그들은 준비도구를 전혀 휴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말 젖을 먹으며 견디는데, 각자 18필의 말과 암말을 데리고 간다. 도중에 말이 지치면 다른 말로 바꾸어 탄다. 또한 두 개의 가죽통을 갖고 가는데 거기에는 마실 젖을 넣어두며, 흙으로 빚은 조그만 토기도 휴대하는데 거기에다 고기를 요리한다. 비가 올때 들어가 있을 조그만 텐트도 휴대한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음식이나 지필 불이 없어도 열흘 거리를 말을 타고 행군할 수 있다.
그들은 말의 피로도 연명하는데, 각자 자기 말의 핏줄을 찔러 그 피를 마시는 것이다.
또한 반죽처럼 반쯤 응고된 젖을 갖고 가는데, 물과 함께 섞으면 응유가 풀어져 마신다.
그들은 전쟁에 나갈 때 이러한 응유를 10파운드 정도 갖고 간다.
그들은 적과 전투할 때 적의 주위를 맴돌며 여기저기로 활을 쏘아댄다. 』p197
열, 너무나 혐오적 장면들의 돌출적 장면에 거부감이 인다.
『어떤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아 국가에 의해 처형되면, 그들은 그를 끌고 가서 요리해 먹는다. 그러나 자기 수명을 다하여 죽은 사람의 시체는 결코 먹는 법이 없다.』 p215
열하나, 쿠빌라이 칸은 3천 궁녀를 거닐었던 백제시대의 의자왕 혹은 기독교의 탕아 JMS정명석?
『사를 낮과 밤을 여섯 명의 여인들이 방에서 침대에서 군주를 모시며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수행하고, 대카안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녀들에게 행한다. 사흘 낮과 밤이 끝나면 두 번째 여섯 명의 여인들이 들어온다. 이렇게 사흘 낮과 밤마다 여섯 명씩의 여인들이 1년 내내 바뀌는 것이다.』 p233
열둘, 별자리도 동양에서 탄생?
『“그녀의 별자리가 나빠서 그런 것이다.”라고 말한다.』 p234
열세엣, 마르코 폴로는 은근슬쩍 기독교인들에 대한 동정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다이아몬드는 전세계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 왕국에서만 산출된다. 그곳에서 질 좋고 커다란 것이 무척 많이 나오지만, 여러분은 그 좋은 다이아몬드가 우리 기독교의 나라들로 온다고 오해하지 마시라. 그것들은 대카안과 그 여러 지역이나 강역에 있는 왕과 신하들에게 흘러가니, 그것은 그들이 온갖 보물과 값비싼 보석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p459
『주교의 대답을 들은 술탄은 그에게 모욕을 주면서 할례를 시키라고 명령했다. 주교는 그 같은 치욕을 당하고 나서 큰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되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자신이 그 같은 치욕을 당한 것이 기독교의 율법을 위해서이고, 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공덕을 저세상에서 자신의 영혼에게 갚아주시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p502
열넷, 대화체가 쉽기는 하나 사실성과 현실감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느낌이다.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192 |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 장파(張法) | 素賢소현 | 2007.12.03 | 3164 |
1191 | [독서34]동방견문록/사계절 | 素田최영훈 | 2007.12.01 | 2670 |
1190 | [34] 동방견문록/마르코폴로 | 교정 한정화 | 2007.11.30 | 2970 |
1189 | 『관자』를 읽고 (2) [2] | 현운 이희석 | 2007.11.30 | 2521 |
1188 | (34) 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 | 박승오 | 2007.11.30 | 3534 |
1187 | [관자] 관중의 삶을 좇아 | 여해 송창용 | 2007.11.30 | 2745 |
1186 | 번역을 시작하면서... [7] [3] | 香山 신종윤 | 2007.11.30 | 3213 |
1185 | 동방 견문록 / 마르코 폴로 | 香仁 이은남 | 2007.11.29 | 2910 |
» | [34]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사계절) [1] | 써니 | 2007.11.27 | 3177 |
1183 | 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 [2] | 호정 | 2007.11.27 | 3211 |
1182 | 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 | 소현 | 2007.11.27 | 2882 |
1181 |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2] | 海村 차순성 | 2007.11.26 | 3097 |
1180 |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장파 [1] | 우제 | 2007.11.26 | 3088 |
1179 | [독서33] 관자/3천년의 시공을 넘어서 | 素田 최영훈 | 2007.11.25 | 2978 |
1178 | [관자] 모순(矛盾)과 상생(相生) [2] | 여해 송창용 | 2007.11.22 | 3042 |
1177 | (32) 관자(管子) part.2 [5] | 時田 김도윤 | 2007.11.22 | 3577 |
1176 | (32) 관자(管子) | 時田 김도윤 | 2007.11.22 | 2961 |
1175 | [33] 관자/ 관중 / 소나무출판 [2] | 써니 | 2007.11.21 | 3028 |
1174 | 샘에게 보내는 편지 [2] | 김나경 | 2007.11.21 | 2788 |
1173 | (33) 관자 : 관중 | 박승오 | 2007.11.21 | 30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