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香仁 이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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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하여]
저서: 동방 견문록 서해문집(2004)
저자: 마르코 폴로(1254~1324), 루스티켈로 배진영 옮김
125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출생, 그의 나이 열 다섯에 보석상인인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숙부인 마테오 폴로를 따라 동방여행을 떠났다. 이 때부터의 경험이 그의 유명한 책 동방 견문록의 시작이 되었다.
그들은 소(小)아시아의 시바스에서 모술을 거쳐 이라크로 들어가, 해로(海路)를 이용하여 중국(원나라)으로 갈 예정으로 바그다드에서 바스라로 갔다. 그러나 해로를 이용할 것을 단념하고 육로를 택하기로 하였다. 키르만 타브리즈 •발흐 •파미르 고원을 경유하여 타림 분지(盆地)에 이르렀고, 카슈가르 •야르칸드 •호탄 •체르첸 등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 변두리의 오아시스 여러 도시를 지나 하서(河西) 지방에 도달하여 간저우[甘州]에서 l년간 체재한 다음, 쿠빌라이[世祖]의 여름 궁전이 있는 상도(上都:현 네이멍구자치구의 남부인 돌룬노르)에 도착하여(1274) 쿠빌라이를 알현하였다. 마르코는 그대로 중국에 머물러 원나라에서 우대를 받아 관직에 올랐다. 그 사이 중국 각지를 여행하였으며, 17년간 원나라에서 살았다.
마르코 폴로 일행은 이란의 몽골왕조인 일 한국(汗國)의 아르군 칸에게 강가(降嫁)하는 원나라의 공주 코카친의 여행 안내자로 선발되어 겨우 원나라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행은 푸젠성[福建省]의 취안저우[泉州]를 출범(出帆)하여 자바 •말레이 •스리랑카 •말라바르 등을 경유하여 이란의 호르무즈에 도착하였지만, 아르군 칸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공주를 그의 아우인 가이하투 칸에게 맡겨놓고, 1295년에야 겨우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쿠빌라이 칸이 마르코 폴로를 총애하여 돌려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아르곤 왕의 왕비가 될 공주를 보좌하며 돌아가게 되지만 도착해보니 아르곤 왕이 이미 죽은 관계로 그 공주는 아르곤 왕자의 아들의 부인이 된다. 그 때 쿠빌라이 칸의 죽음을 듣고 마르코 폴로는 25년만에야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마르코는 그 후에 베네치아와 제노바 전쟁에 말려들어 포로로 잡혀 제노바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 옥중에서 이야기 작가인 루스티켈로에게 동방에서 보고 들은 것을 필록(筆錄)시켰다. 이것이 바로 현존하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세계 경이(驚異)의 서(통칭 東方見聞錄)》의 원조본(元祖本)이 되었다. 이 책은 13,4세기의 이란 •중앙아시아 •몽골의 역사와 지지(地誌) 및 민속 등에 관한 귀중한 문헌이며, 프랑스어(語)의 원본은 산일(散佚)되고, 가장 잘 알려진 이탈리아어(語) 사본은 1309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의 기록은 없으나 그가 남긴 유언장의 기록에 따르면 “도나타”라는 부인이 있으며 세 명의 딸이 있다고 한다. 종교단체와 그의 가족에게 유산을 남긴 젓으로 보아 부유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대칸은 신하에게 자기 이름으로 쓴 국서를 교황에게 전하도록 명하였다. 국서의 내용은 교황에게 “기독교의 총명한 사람 100명을 대칸에게 보내달라” 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100명의 총명한 사람이란 일곱 가지 기예 (문법, 논리학, 수사학, 산수, 기하학, 음악, 천문학 등 서구 지식인들이 중시하던 일곱 개 분야의 학문을 의미한다)에 통달하고 논쟁에도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그리하여 우상 숭배(기독교였던 마르코 폴로는 불교나 힌두교 등 기독교 이외에도 모든 종교가 “우상”을 숭배한다고 믿었던 듯하다)자와 이교도들에게 그들이 방 안에 두고 숭배하는 우상은 모두 마귀와 같은 물건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즉 그들에게 기독교의 계율이 그들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종교보다 좋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 것이다. 17p
니콜로의 아들 마르코는 타타르인의 풍속과 언어 그리고 그들의 문자를 매우 잘 익혔는데 그가 대칸의 조정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네 가지의 언어를 알아듣고 마음대로 읽고 쓸 수도 있게 되었다. 대칸은 마르코 폴로의 총명함을 아껴 6개월 이상 걸리는 먼 곳에 그를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22p
마르코는 조정으로 돌아와 사신으로서의 임무를 매우 조리 있게 보고하였다. 보고를 마친 후에는 오고 가는 길에 그가 보았던 기이한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황홀경에 빠져들 정도였다. 대칸과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마르코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 청년은 분명 큰 인물이 될 거야” 22p
발다크(바그다드)는 웅장한 대도시로서 이곳에 모든 사라센들을 지배하는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군주를 뜻하는 말이다)가 있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로마와도 같은 곳이다. 38p
알라우 칸은 발다크의 성으로 들어가 안에 쌓여 있는 엄청난 양의 황금을 보고 몹시 놀랐다. 즉시 칼리프를 불러오게 하여 그의 탐욕스럽고 잔악한 죄악에 대해 물었다. 이렇게 많은 재물과 부를, 군대를 조직하고 훈련시켜 수비를 강화하는 데 쓰지 않아 적의 침입을 막지 못한 것이라 지적했다. 알라우 칸은 칼리프가 이처럼 재물을 좋아하니 칼리프의 재물이 쌓여 있는 탑에 그를 가두고 그에게 절대로 음식을 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칼리프는 자기의 재물을 눈 앞에 두고 건물 안에서 굶어 죽었다. 그의 최후는 이처럼 비참했다. 41p
이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는 고대에 세 명의 왕자가 있었다. 그들은 방금 태어난 선지자를 함께 경배하러 갔는데 각자 자기의 예물, 즉 황금, 유황, 몰약을 가져갔다. 그들은 이 선지자가 분명 하늘의 왕인지, 지상의 왕인지, 아니면 치유자인지 시험해보려 했던 것이다. 그들끼리 말하길, 그가 황금을 받는다면 그는 지상의 왕이며, 유황을 받는다면 하늘의 왕, 몰약을 받는다면 치유자라고 했다. 49p
나귀가 말에 비해 좋은 이유는 사육하기 편하며 무거운 짐을 잘 짊어질 수 있고 비교적 장거리를 가며 일반 말과 노새에 비해 피로를 잘 견디기 때문이다…………나위는 이 황망하고 인적이 없고 물이 부족한 곳을 지날 때 매우 빠르며 또한 사료를 많이 먹이지 않아도 된다. 이 지방의 상인들은 낙타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데 그들은 똑같이 무거운 짐을 운반할 수 있고 사료와 비용 또한 비교적 절약된다. 단 흠이 있다면 속도가 나귀만 못하다는 것이다. 51p
(오르무스)
이 곳 주민의 피부색은 암갈색이며 마호메트를 신봉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는데 부인들의 경우 죽은 남편을 생각하며 4년동안 매일,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울어야 한다. 이처럼 곡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정한 보수를 받기 위해 그는 자기와 털끝만큼도 관계가 없는 사람의 시체를 어루만지고 통곡을 한다. 60p
(발라샨의 명마)
이 지역에는 매우 뛰어난 명마도 있는데 말 발굽이 마치 쇠처럼 단단해서 따로 말굽을 해 줄 필요가 없다. 토착민들은 주로 이 말을 타고 다닌다. 이 말은 다른 가축들이 다닐 수 없는 험한 길도 잘 달린다. 그 곳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렉산더의 명마인 부케팔루스 혈통의 말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은 태어날 때부터 이마에 특별한 표시가 있었다. 그런데 말의 사육 권한을 국왕의 숙부가 장악하게 되자, 그는 조카에게 말을 주려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숙부는 국왕에게 사형 당하게 되었다. 이에 숙부의 미망인은 남편의 죽음에 격분하여 그 종자의 말을 완전히 없애버렸던 것이다. 71p
대칸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기독교를 믿지 않는 다른 백성들, 즉 사라센, 우상 숭배자, 유대인 등의 사람들은 나얀의 깃발 위에 그려진 십자가를 비웃었다.
“ 너희 하느님의 십자가가 기독교도인 나얀을 어떻게 도왔는지 보라!”
이 이야기가 대칸의 귀에도 들어갔다. 대칸은 도착하여 십자가를 조소하는 사람들을 심하게 질책했다. 이후 그는 곳곳의 기독교도들을 불러서 그들을 위로하며 말했다.
“만일 너희 하느님의 십자가가 나얀을 돕지 않았다면 거기에는 뭔가 더 좋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십자가는 옳고 바른 일만 행할 것이다. 나얀은 불충한 반역자로서 군주에게 반역했기 때문에 그가 당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옳지 않은 그를 하느님의 십자가가 돕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다. 왜냐하면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114p
사자를 우리에서 풀어주면 맹렬한 기세로 목표물을 추격하여 잡는데 그 민첩성에 사람들의 찬탄이 끊이질 않는다. 이 때문에 사자를 우리 안에 가둬놓고 사냥 장소까지 데리고 가는데 그 옆에 작은 개도 함께 가둔다. 서로 익숙해서 사자가 사냥개를 해치는 일은 없다. 사자를 데리고 갈 때는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간다. 왜냐하면 혹시 바람결에 사자의 냄새를 맡고 사냥감들이 자취를 감춰버리면 사냥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135p
기근일 때 그는 곡물의 가격을 시장가격의 4분의 3가격으로 판다. 또한 어떤 지역의 가축이 대량으로 떼죽음 당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피해를 입게 되면 그 가축의 십 분의 일세를 면제해주고 다른 지역에서 거둔 십 분의 일세로 보상한다. 만약 가축 떼가 벼락을 맞는다면 3년 동안 가축의 십 분의 일세를 면제해준다. 배가 벼락을 맞는 경우에도 그 배와 화물의 관세를 면제해주었다.
대칸은 이러한 사고나 재해를 하느님이 재물의 주인에게 견책을 표시한 것으로 보았고, 신이 견책을 표시한 재산이 황실 창고로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즉 그는 이러한 사고를 상서롭지 않은 징조로 보았다.
카타이의 주민 대부분이 마시는 술은 쌀에다 각종 향료와 약재를 넣어서 만든 것으로 맛이 진하고 향기롭다. 그들은 술만큼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152p
(티베트)
대나무를 태우면 그 열기로 대나무 마디가 갈라지는 데 그 소리가 어찌나 맹렬한지 3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릴 정도다. 근처의 야수들은 이 소리만 듣고도 멀리서 도망가 버린다. 상인들도 족쇄를 준비하여 말의 다리에 채워 두는데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말이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예방책을 확실히 마련해 두지 않고 소홀이 했다가 데리고 온 가축을 잃었다. 169p
이 곳 사람들은 동정을 지키는 처녀를 아내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남자와 육체관계를 맺은 여자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들은 남녀의 성관계를 신이 주신 기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가 한 명도 없는 여자는 여자로서 가치가 없다고 믿는다.
이 지역에서는 사향 생산량이 아주 많아 곳곳에서 사향 냄새가 진동할 정도다. 169p
(카라잔)
이 곳 사람들은 활을 쏠 때 말등 위에서 쉽게 서기 위해 긴 등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176p
(카르단단:大理)
이 지역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즉시 침대에서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천으로 잘 감싸서 남편에게 준다. 그러면 남편은 그녀의 자리에 누워 아이를 옆에 두고 40일 동안 돌본다.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곁에서 그를 기쁘게 해준다. 부인은 집안 일을 돌보면서 침대에 있는 남편에게 음식을 갖다 주고 때가 되면 옆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 177p
(킨사이:杭州)
수많은 길과 시장은 서로 통하는 데 그 중 어떤 길에는 냉욕 목욕탕이 있다. 그곳에는 손님들을 위해 몸을 닦아주는 남녀 일꾼이 고용되어있다. 이곳 사람들은 사계절 내내 냉수욕을 하는데 그것이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수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온수욕을 하는 곳도 마련되어있다. 이 곳의 사람들은 매일 식사 전에 목욕을 한 차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 198p
(펠레츠왕국: 자바섬)
이 왕국의 원주민들은 대부분 우상을 숭배한다. 단 항구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곳을 끊임없이 방문하는 사라센 상인들에 의해 종교를 이슬람으로 바꾸게 되었다. 이 곳 사람들은 매우 야만적인데 고기라면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혹은 사람이거나 동물이거나 가리지 않고 다 먹는다. 그들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처음 본 대상을 숭배하기 때문에 아주 다양한 것을 숭배하게 된다. 220p
이 섬에서 머무르는 동안 마르코 폴로는 약 2천명의 장정들과 함께 바닷가에 요새를 지었다. 그들을 잡아 먹을 기회를 노리는 미개한 원주민으로부터 화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222p
(마아바르 지방: 인도대륙의 한 지역)
왕은 1천 여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다. 왕은 눈에 드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바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한다. 심지어 동생의 부인까지 자신의 부인으로 만들어 전투가 일어날 뻔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지만 동생이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참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런 상황을 보고 그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젖가슴을 드러내놓곤 말했다.
“너희들이 그렇게 적대적인 행동으로 스스로를 불명예스럽게 한다면 나는 너희들을 먹여 키운 이 젖가슴을 지금 당장 도려내겠다.” 그리하여 불화는 수습되었다. 227p
범죄자의 부인이 남편을 따라 함께 불 속으로 몸을 던지면 그 지역에서 칭찬 받으며 그렇게 하지 않은 부인은 멸시당하고 욕을 먹는다. 228p
이곳 사람들은 육식이나 음주를 하지 않는다. 동물을 죽일 때도 절대로 직접 죽이지 않고 사라센에게 그 일을 시킨다. 235p
(남도와 여도에 대해)
케스마코란에서 남쪽으로 약 800키로미터 떨어진 바다에는 50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두 개의 섬이 있는데 한 섬은 여자 없이 남자들만 살고 있으므로 “남도”라 부르고, 한 섬은 여자 없이 남자들만 살고 있으므로 “여도” 라 부른다. 양 섬의 원주민들은 같은 인종이며 세례받은 기독교인이며 구약성서의 법을 지키고 있다. 예를 들어 부인이 임신을 하면 출산할 때까지 혹은 출산한 후 40일까지는 아내와 접촉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여도를 방문하여 따로 분리해 둔 거주지에서 자신의 부인들과 함께 3월에서 5월까지, 3개월 동안 머문다. 그리고 다시 남도로 돌아와서 여자들과 교제 없이 나머지 9개월을 보낸다. 부인들은 자식들을 데리고 있다가 아들은 열 네살이 되면 그들의 아버지와 같이 살도록 남도로 보낸다. 240p
타타르인들은 그곳의 가축과 재산 등을 약탈하기 위해 어두운 시기에 맞추어 이곳까지 온다. 그곳은 어두컴컴하여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약탈하러 갈 때 망아지를 가진 암말을 데리고 간다. 국경지역에 망아지들을 남겨 놓고 약탈이 끝나면 암말의 목에 굴레를 걸어 자유롭게 앞으로 가게 한다. 그러면 그 암말들은 모성의 본능으로 자신의 망아지를 둔 곳으로 바로 찾아간다. 이런 방법으로 타타르인들은 안전하게 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249p
[내가 저자라면]
몽골이 그 제국을 그토록 빨리 수립할 수 있었던 힘은 그들의 신속한 전투경험이 바로 그것이었고 유럽이 몽골에게 그토록 쉽게 지배를 당한 배경에는 “몽골군의 위력을 몰라서” 였다고 잭 웨더포드는 말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몽골군에게 정복을 당하고서야 잠시 동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여전히 아시아권역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컬럼버스가 도착한 미 대륙을 오랫동안 인도로 알고 있었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고 하니 유럽인들의 동양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음을 알 수있다.
동방 견문록은 수도 없이 많이 들었던 책인데 이제야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컬러판으로 그림과 사진 등이 곁들어 있고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길이 지도로 상세히 표시되어 있어 지루함이 없는 책이다. 각 지역의 관습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놀랍다. 수많은 곳을 다녔을 텐데 기억에 의존해 그것을 구술했다는 점에서 그가 아주 명석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의 습득은 문화를 알지 못한다면 한계에 머물고 마는 것이 보통인데 네 가지 언어에 쉽게 능통했다는 점에서 마르코 폴로의 타문화에 대한 적응성과 더불어 그의 탁월한 언어 감각를 통해 잘 전달되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똑똑했는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알 수 있다.
니콜로의 아들 마르코는 타타르인의 풍속과 언어 그리고 그들의 문자를 매우 잘 익혔는데 그가 대칸의 조정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네 가지의 언어를 알아듣고 마음대로 읽고 쓸 수도 있게 되었다. 대칸은 마르코 폴로의 총명함을 아껴 6개월 이상 걸리는 먼 곳에 그를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22p
외국인이 그 나라 말을 조금이라도 잘 하면 상당히 점수를 후하게 받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가 진정 그 문화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면 더욱 사랑 받을 수 있었으리라.
워낙 방대한 곳을 다닌 기록이라 그가 직접 가본 곳도 있고 누군가에게 듣고 기술되어 있는 부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역사가들은 마르코 폴로의 세밀한 묘사에 그의 기록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기독교도인 그의 입장에서는 다른 신을 믿는 것은 전부 우상숭배로 여겨진 듯 어디를 가도 우상을 숭배한다는 말이 빠지질 않는다. 독특한 풍습들과 더불어 잔인해 보이는 것도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꽤 많은 곳에서 인육을 먹었다는 소리는 상당히 놀라웠다. 그 자신도 그들을 노리는 원주민들을 피하기 위해 요새까지 지어 방비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한 동물과의 자연스러운 동거 또한 눈을 비비게 한다. 사자를 앞세워 사냥하기도 하고 매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그런가 하면 상당히 엉뚱해 보이는 풍습도 있다.
(카르단단:大理)
이 지역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즉시 침대에서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천으로 잘 감싸서 남편에게 준다. 그러면 남편은 그녀의 자리에 누워 아이를 옆에 두고 40일 동안 돌본다.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곁에서 그를 기쁘게 해준다. 부인은 집안 일을 돌보면서 침대에 있는 남편에게 음식을 갖다 주고 때가 되면 옆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 177p
정작 아이 낳느라 고생한 부인은 일을 하고 그 자리를 꿰어 차고 누워있을 남자의 모습은 살짝 코메디다. 아니 한 게 뭐 있다고 그러실까. 풍습이라니 까닭이 있겠지만 사지멀쩡한 남자도 누워있느라 고생한다.
사향이 많이 나는 동네의 또 하나의 재미있는 풍습. 요즘도 그럴까. 좀 궁금해지는데..
(티베트)
이 곳 사람들은 동정을 지키는 처녀를 아내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남자와 육체관계를 맺은 여자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들은 남녀의 성관계를 신이 주신 기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가 한 명도 없는 여자는 여자로서 가치가 없다고 믿는다.
이 지역에서는 사향 생산량이 아주 많아 곳곳에서 사향 냄새가 진동할 정도다. 169p
그 사향이란 것이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인가 보다.
사실 오늘 날의 지구는 이제 웬만한 데는 다 알려져 있어 그다지 놀라울 것은 없지만 마르코 폴로라는 사람의 발자취는 그 독특함으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 그의 기록이 동과 서를 연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그가 알까 모르겠다.
컬러판에 산뜻한 터치의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림이나 사진, 지도 등의 비쥬얼은 역시 요즘의 나와 같은 이들에게 아주 편안하게 그의 세계로 이끌고 가주었다. 몽골의 역사를 또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던 부분도 재미있었다고 꼽으련다.
IP *.48.43.19
저서: 동방 견문록 서해문집(2004)
저자: 마르코 폴로(1254~1324), 루스티켈로 배진영 옮김
125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출생, 그의 나이 열 다섯에 보석상인인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숙부인 마테오 폴로를 따라 동방여행을 떠났다. 이 때부터의 경험이 그의 유명한 책 동방 견문록의 시작이 되었다.
그들은 소(小)아시아의 시바스에서 모술을 거쳐 이라크로 들어가, 해로(海路)를 이용하여 중국(원나라)으로 갈 예정으로 바그다드에서 바스라로 갔다. 그러나 해로를 이용할 것을 단념하고 육로를 택하기로 하였다. 키르만 타브리즈 •발흐 •파미르 고원을 경유하여 타림 분지(盆地)에 이르렀고, 카슈가르 •야르칸드 •호탄 •체르첸 등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 변두리의 오아시스 여러 도시를 지나 하서(河西) 지방에 도달하여 간저우[甘州]에서 l년간 체재한 다음, 쿠빌라이[世祖]의 여름 궁전이 있는 상도(上都:현 네이멍구자치구의 남부인 돌룬노르)에 도착하여(1274) 쿠빌라이를 알현하였다. 마르코는 그대로 중국에 머물러 원나라에서 우대를 받아 관직에 올랐다. 그 사이 중국 각지를 여행하였으며, 17년간 원나라에서 살았다.
마르코 폴로 일행은 이란의 몽골왕조인 일 한국(汗國)의 아르군 칸에게 강가(降嫁)하는 원나라의 공주 코카친의 여행 안내자로 선발되어 겨우 원나라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행은 푸젠성[福建省]의 취안저우[泉州]를 출범(出帆)하여 자바 •말레이 •스리랑카 •말라바르 등을 경유하여 이란의 호르무즈에 도착하였지만, 아르군 칸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공주를 그의 아우인 가이하투 칸에게 맡겨놓고, 1295년에야 겨우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쿠빌라이 칸이 마르코 폴로를 총애하여 돌려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아르곤 왕의 왕비가 될 공주를 보좌하며 돌아가게 되지만 도착해보니 아르곤 왕이 이미 죽은 관계로 그 공주는 아르곤 왕자의 아들의 부인이 된다. 그 때 쿠빌라이 칸의 죽음을 듣고 마르코 폴로는 25년만에야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마르코는 그 후에 베네치아와 제노바 전쟁에 말려들어 포로로 잡혀 제노바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 옥중에서 이야기 작가인 루스티켈로에게 동방에서 보고 들은 것을 필록(筆錄)시켰다. 이것이 바로 현존하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세계 경이(驚異)의 서(통칭 東方見聞錄)》의 원조본(元祖本)이 되었다. 이 책은 13,4세기의 이란 •중앙아시아 •몽골의 역사와 지지(地誌) 및 민속 등에 관한 귀중한 문헌이며, 프랑스어(語)의 원본은 산일(散佚)되고, 가장 잘 알려진 이탈리아어(語) 사본은 1309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의 기록은 없으나 그가 남긴 유언장의 기록에 따르면 “도나타”라는 부인이 있으며 세 명의 딸이 있다고 한다. 종교단체와 그의 가족에게 유산을 남긴 젓으로 보아 부유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대칸은 신하에게 자기 이름으로 쓴 국서를 교황에게 전하도록 명하였다. 국서의 내용은 교황에게 “기독교의 총명한 사람 100명을 대칸에게 보내달라” 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100명의 총명한 사람이란 일곱 가지 기예 (문법, 논리학, 수사학, 산수, 기하학, 음악, 천문학 등 서구 지식인들이 중시하던 일곱 개 분야의 학문을 의미한다)에 통달하고 논쟁에도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그리하여 우상 숭배(기독교였던 마르코 폴로는 불교나 힌두교 등 기독교 이외에도 모든 종교가 “우상”을 숭배한다고 믿었던 듯하다)자와 이교도들에게 그들이 방 안에 두고 숭배하는 우상은 모두 마귀와 같은 물건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즉 그들에게 기독교의 계율이 그들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종교보다 좋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 것이다. 17p
니콜로의 아들 마르코는 타타르인의 풍속과 언어 그리고 그들의 문자를 매우 잘 익혔는데 그가 대칸의 조정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네 가지의 언어를 알아듣고 마음대로 읽고 쓸 수도 있게 되었다. 대칸은 마르코 폴로의 총명함을 아껴 6개월 이상 걸리는 먼 곳에 그를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22p
마르코는 조정으로 돌아와 사신으로서의 임무를 매우 조리 있게 보고하였다. 보고를 마친 후에는 오고 가는 길에 그가 보았던 기이한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황홀경에 빠져들 정도였다. 대칸과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마르코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 청년은 분명 큰 인물이 될 거야” 22p
발다크(바그다드)는 웅장한 대도시로서 이곳에 모든 사라센들을 지배하는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군주를 뜻하는 말이다)가 있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로마와도 같은 곳이다. 38p
알라우 칸은 발다크의 성으로 들어가 안에 쌓여 있는 엄청난 양의 황금을 보고 몹시 놀랐다. 즉시 칼리프를 불러오게 하여 그의 탐욕스럽고 잔악한 죄악에 대해 물었다. 이렇게 많은 재물과 부를, 군대를 조직하고 훈련시켜 수비를 강화하는 데 쓰지 않아 적의 침입을 막지 못한 것이라 지적했다. 알라우 칸은 칼리프가 이처럼 재물을 좋아하니 칼리프의 재물이 쌓여 있는 탑에 그를 가두고 그에게 절대로 음식을 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칼리프는 자기의 재물을 눈 앞에 두고 건물 안에서 굶어 죽었다. 그의 최후는 이처럼 비참했다. 41p
이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는 고대에 세 명의 왕자가 있었다. 그들은 방금 태어난 선지자를 함께 경배하러 갔는데 각자 자기의 예물, 즉 황금, 유황, 몰약을 가져갔다. 그들은 이 선지자가 분명 하늘의 왕인지, 지상의 왕인지, 아니면 치유자인지 시험해보려 했던 것이다. 그들끼리 말하길, 그가 황금을 받는다면 그는 지상의 왕이며, 유황을 받는다면 하늘의 왕, 몰약을 받는다면 치유자라고 했다. 49p
나귀가 말에 비해 좋은 이유는 사육하기 편하며 무거운 짐을 잘 짊어질 수 있고 비교적 장거리를 가며 일반 말과 노새에 비해 피로를 잘 견디기 때문이다…………나위는 이 황망하고 인적이 없고 물이 부족한 곳을 지날 때 매우 빠르며 또한 사료를 많이 먹이지 않아도 된다. 이 지방의 상인들은 낙타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데 그들은 똑같이 무거운 짐을 운반할 수 있고 사료와 비용 또한 비교적 절약된다. 단 흠이 있다면 속도가 나귀만 못하다는 것이다. 51p
(오르무스)
이 곳 주민의 피부색은 암갈색이며 마호메트를 신봉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는데 부인들의 경우 죽은 남편을 생각하며 4년동안 매일,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울어야 한다. 이처럼 곡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정한 보수를 받기 위해 그는 자기와 털끝만큼도 관계가 없는 사람의 시체를 어루만지고 통곡을 한다. 60p
(발라샨의 명마)
이 지역에는 매우 뛰어난 명마도 있는데 말 발굽이 마치 쇠처럼 단단해서 따로 말굽을 해 줄 필요가 없다. 토착민들은 주로 이 말을 타고 다닌다. 이 말은 다른 가축들이 다닐 수 없는 험한 길도 잘 달린다. 그 곳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렉산더의 명마인 부케팔루스 혈통의 말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은 태어날 때부터 이마에 특별한 표시가 있었다. 그런데 말의 사육 권한을 국왕의 숙부가 장악하게 되자, 그는 조카에게 말을 주려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숙부는 국왕에게 사형 당하게 되었다. 이에 숙부의 미망인은 남편의 죽음에 격분하여 그 종자의 말을 완전히 없애버렸던 것이다. 71p
대칸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기독교를 믿지 않는 다른 백성들, 즉 사라센, 우상 숭배자, 유대인 등의 사람들은 나얀의 깃발 위에 그려진 십자가를 비웃었다.
“ 너희 하느님의 십자가가 기독교도인 나얀을 어떻게 도왔는지 보라!”
이 이야기가 대칸의 귀에도 들어갔다. 대칸은 도착하여 십자가를 조소하는 사람들을 심하게 질책했다. 이후 그는 곳곳의 기독교도들을 불러서 그들을 위로하며 말했다.
“만일 너희 하느님의 십자가가 나얀을 돕지 않았다면 거기에는 뭔가 더 좋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십자가는 옳고 바른 일만 행할 것이다. 나얀은 불충한 반역자로서 군주에게 반역했기 때문에 그가 당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옳지 않은 그를 하느님의 십자가가 돕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다. 왜냐하면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114p
사자를 우리에서 풀어주면 맹렬한 기세로 목표물을 추격하여 잡는데 그 민첩성에 사람들의 찬탄이 끊이질 않는다. 이 때문에 사자를 우리 안에 가둬놓고 사냥 장소까지 데리고 가는데 그 옆에 작은 개도 함께 가둔다. 서로 익숙해서 사자가 사냥개를 해치는 일은 없다. 사자를 데리고 갈 때는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간다. 왜냐하면 혹시 바람결에 사자의 냄새를 맡고 사냥감들이 자취를 감춰버리면 사냥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135p
기근일 때 그는 곡물의 가격을 시장가격의 4분의 3가격으로 판다. 또한 어떤 지역의 가축이 대량으로 떼죽음 당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피해를 입게 되면 그 가축의 십 분의 일세를 면제해주고 다른 지역에서 거둔 십 분의 일세로 보상한다. 만약 가축 떼가 벼락을 맞는다면 3년 동안 가축의 십 분의 일세를 면제해준다. 배가 벼락을 맞는 경우에도 그 배와 화물의 관세를 면제해주었다.
대칸은 이러한 사고나 재해를 하느님이 재물의 주인에게 견책을 표시한 것으로 보았고, 신이 견책을 표시한 재산이 황실 창고로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즉 그는 이러한 사고를 상서롭지 않은 징조로 보았다.
카타이의 주민 대부분이 마시는 술은 쌀에다 각종 향료와 약재를 넣어서 만든 것으로 맛이 진하고 향기롭다. 그들은 술만큼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152p
(티베트)
대나무를 태우면 그 열기로 대나무 마디가 갈라지는 데 그 소리가 어찌나 맹렬한지 3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릴 정도다. 근처의 야수들은 이 소리만 듣고도 멀리서 도망가 버린다. 상인들도 족쇄를 준비하여 말의 다리에 채워 두는데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말이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예방책을 확실히 마련해 두지 않고 소홀이 했다가 데리고 온 가축을 잃었다. 169p
이 곳 사람들은 동정을 지키는 처녀를 아내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남자와 육체관계를 맺은 여자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들은 남녀의 성관계를 신이 주신 기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가 한 명도 없는 여자는 여자로서 가치가 없다고 믿는다.
이 지역에서는 사향 생산량이 아주 많아 곳곳에서 사향 냄새가 진동할 정도다. 169p
(카라잔)
이 곳 사람들은 활을 쏠 때 말등 위에서 쉽게 서기 위해 긴 등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176p
(카르단단:大理)
이 지역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즉시 침대에서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천으로 잘 감싸서 남편에게 준다. 그러면 남편은 그녀의 자리에 누워 아이를 옆에 두고 40일 동안 돌본다.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곁에서 그를 기쁘게 해준다. 부인은 집안 일을 돌보면서 침대에 있는 남편에게 음식을 갖다 주고 때가 되면 옆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 177p
(킨사이:杭州)
수많은 길과 시장은 서로 통하는 데 그 중 어떤 길에는 냉욕 목욕탕이 있다. 그곳에는 손님들을 위해 몸을 닦아주는 남녀 일꾼이 고용되어있다. 이곳 사람들은 사계절 내내 냉수욕을 하는데 그것이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수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온수욕을 하는 곳도 마련되어있다. 이 곳의 사람들은 매일 식사 전에 목욕을 한 차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 198p
(펠레츠왕국: 자바섬)
이 왕국의 원주민들은 대부분 우상을 숭배한다. 단 항구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곳을 끊임없이 방문하는 사라센 상인들에 의해 종교를 이슬람으로 바꾸게 되었다. 이 곳 사람들은 매우 야만적인데 고기라면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혹은 사람이거나 동물이거나 가리지 않고 다 먹는다. 그들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처음 본 대상을 숭배하기 때문에 아주 다양한 것을 숭배하게 된다. 220p
이 섬에서 머무르는 동안 마르코 폴로는 약 2천명의 장정들과 함께 바닷가에 요새를 지었다. 그들을 잡아 먹을 기회를 노리는 미개한 원주민으로부터 화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222p
(마아바르 지방: 인도대륙의 한 지역)
왕은 1천 여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다. 왕은 눈에 드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바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한다. 심지어 동생의 부인까지 자신의 부인으로 만들어 전투가 일어날 뻔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지만 동생이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참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런 상황을 보고 그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젖가슴을 드러내놓곤 말했다.
“너희들이 그렇게 적대적인 행동으로 스스로를 불명예스럽게 한다면 나는 너희들을 먹여 키운 이 젖가슴을 지금 당장 도려내겠다.” 그리하여 불화는 수습되었다. 227p
범죄자의 부인이 남편을 따라 함께 불 속으로 몸을 던지면 그 지역에서 칭찬 받으며 그렇게 하지 않은 부인은 멸시당하고 욕을 먹는다. 228p
이곳 사람들은 육식이나 음주를 하지 않는다. 동물을 죽일 때도 절대로 직접 죽이지 않고 사라센에게 그 일을 시킨다. 235p
(남도와 여도에 대해)
케스마코란에서 남쪽으로 약 800키로미터 떨어진 바다에는 50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두 개의 섬이 있는데 한 섬은 여자 없이 남자들만 살고 있으므로 “남도”라 부르고, 한 섬은 여자 없이 남자들만 살고 있으므로 “여도” 라 부른다. 양 섬의 원주민들은 같은 인종이며 세례받은 기독교인이며 구약성서의 법을 지키고 있다. 예를 들어 부인이 임신을 하면 출산할 때까지 혹은 출산한 후 40일까지는 아내와 접촉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여도를 방문하여 따로 분리해 둔 거주지에서 자신의 부인들과 함께 3월에서 5월까지, 3개월 동안 머문다. 그리고 다시 남도로 돌아와서 여자들과 교제 없이 나머지 9개월을 보낸다. 부인들은 자식들을 데리고 있다가 아들은 열 네살이 되면 그들의 아버지와 같이 살도록 남도로 보낸다. 240p
타타르인들은 그곳의 가축과 재산 등을 약탈하기 위해 어두운 시기에 맞추어 이곳까지 온다. 그곳은 어두컴컴하여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약탈하러 갈 때 망아지를 가진 암말을 데리고 간다. 국경지역에 망아지들을 남겨 놓고 약탈이 끝나면 암말의 목에 굴레를 걸어 자유롭게 앞으로 가게 한다. 그러면 그 암말들은 모성의 본능으로 자신의 망아지를 둔 곳으로 바로 찾아간다. 이런 방법으로 타타르인들은 안전하게 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249p
[내가 저자라면]
몽골이 그 제국을 그토록 빨리 수립할 수 있었던 힘은 그들의 신속한 전투경험이 바로 그것이었고 유럽이 몽골에게 그토록 쉽게 지배를 당한 배경에는 “몽골군의 위력을 몰라서” 였다고 잭 웨더포드는 말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몽골군에게 정복을 당하고서야 잠시 동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여전히 아시아권역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컬럼버스가 도착한 미 대륙을 오랫동안 인도로 알고 있었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고 하니 유럽인들의 동양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음을 알 수있다.
동방 견문록은 수도 없이 많이 들었던 책인데 이제야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컬러판으로 그림과 사진 등이 곁들어 있고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길이 지도로 상세히 표시되어 있어 지루함이 없는 책이다. 각 지역의 관습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놀랍다. 수많은 곳을 다녔을 텐데 기억에 의존해 그것을 구술했다는 점에서 그가 아주 명석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의 습득은 문화를 알지 못한다면 한계에 머물고 마는 것이 보통인데 네 가지 언어에 쉽게 능통했다는 점에서 마르코 폴로의 타문화에 대한 적응성과 더불어 그의 탁월한 언어 감각를 통해 잘 전달되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똑똑했는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알 수 있다.
니콜로의 아들 마르코는 타타르인의 풍속과 언어 그리고 그들의 문자를 매우 잘 익혔는데 그가 대칸의 조정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네 가지의 언어를 알아듣고 마음대로 읽고 쓸 수도 있게 되었다. 대칸은 마르코 폴로의 총명함을 아껴 6개월 이상 걸리는 먼 곳에 그를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22p
외국인이 그 나라 말을 조금이라도 잘 하면 상당히 점수를 후하게 받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가 진정 그 문화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면 더욱 사랑 받을 수 있었으리라.
워낙 방대한 곳을 다닌 기록이라 그가 직접 가본 곳도 있고 누군가에게 듣고 기술되어 있는 부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역사가들은 마르코 폴로의 세밀한 묘사에 그의 기록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기독교도인 그의 입장에서는 다른 신을 믿는 것은 전부 우상숭배로 여겨진 듯 어디를 가도 우상을 숭배한다는 말이 빠지질 않는다. 독특한 풍습들과 더불어 잔인해 보이는 것도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꽤 많은 곳에서 인육을 먹었다는 소리는 상당히 놀라웠다. 그 자신도 그들을 노리는 원주민들을 피하기 위해 요새까지 지어 방비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한 동물과의 자연스러운 동거 또한 눈을 비비게 한다. 사자를 앞세워 사냥하기도 하고 매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그런가 하면 상당히 엉뚱해 보이는 풍습도 있다.
(카르단단:大理)
이 지역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즉시 침대에서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천으로 잘 감싸서 남편에게 준다. 그러면 남편은 그녀의 자리에 누워 아이를 옆에 두고 40일 동안 돌본다.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곁에서 그를 기쁘게 해준다. 부인은 집안 일을 돌보면서 침대에 있는 남편에게 음식을 갖다 주고 때가 되면 옆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 177p
정작 아이 낳느라 고생한 부인은 일을 하고 그 자리를 꿰어 차고 누워있을 남자의 모습은 살짝 코메디다. 아니 한 게 뭐 있다고 그러실까. 풍습이라니 까닭이 있겠지만 사지멀쩡한 남자도 누워있느라 고생한다.
사향이 많이 나는 동네의 또 하나의 재미있는 풍습. 요즘도 그럴까. 좀 궁금해지는데..
(티베트)
이 곳 사람들은 동정을 지키는 처녀를 아내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남자와 육체관계를 맺은 여자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들은 남녀의 성관계를 신이 주신 기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가 한 명도 없는 여자는 여자로서 가치가 없다고 믿는다.
이 지역에서는 사향 생산량이 아주 많아 곳곳에서 사향 냄새가 진동할 정도다. 169p
그 사향이란 것이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인가 보다.
사실 오늘 날의 지구는 이제 웬만한 데는 다 알려져 있어 그다지 놀라울 것은 없지만 마르코 폴로라는 사람의 발자취는 그 독특함으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 그의 기록이 동과 서를 연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그가 알까 모르겠다.
컬러판에 산뜻한 터치의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림이나 사진, 지도 등의 비쥬얼은 역시 요즘의 나와 같은 이들에게 아주 편안하게 그의 세계로 이끌고 가주었다. 몽골의 역사를 또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던 부분도 재미있었다고 꼽으련다.
VR 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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