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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30일 10시 24분 등록

[관자, 한국 최초 완역본, 소나무]


관중은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흠모한 인물이며,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선생님이 좋아했고 학문적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관중이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여러 제후국이 서로 경쟁하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관중을 높이 평가하여, 제나라 재상이 되기 전 잠시 몸을 의탁했던 노나라에서도 정무를 맡기려 했을 정도로 대내외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그의 삶을 추적해보기로 한다. 먼저 관중의 사상과 철학을 살펴보고, 40년 동안 제나라 재상으로 지내면서 보잘것없던 나라를 부유하고 강한 나라로 만든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로 기업을 운영하는 관점으로 추적하고, 그의 사상과 행동을 재해석해보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 사람이 한 기업을 어떻게 일구어 나가는지를 빗대어 글을 쓴다면 좋은 소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관중 이름은 이오(夷五)이고 仲은 자이다. 그는 안휘성 북부에서 귀족의 후예로 출생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났을 당시는 이미 몰락한 귀족이었기에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때 나중에 생명의 은인이며 관포지교로 유명한 포숙아를 만났다.

“내가 초년에 어려울 때 일찍이 포숙아와 장사를 하였다. 장사를 해서 생긴 이익을 나눔에 있어서 내가 많이 차지하였는데도 포숙아는 나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포숙아를 위해 일을 꾸몄으나 도리어 더욱 어렵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숙아는 나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을 하다가 보면 유리한 경우도 있고 불리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차례나 벼슬길에 올랐으나 세 번 다 군주에게 쫓겨났다. 그러나 포숙아는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때를 못 만났다고 이해해 주었다. 나는 일찍이 세 번 다 도주하였다. 그런데 포숙아는 나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가 있음을 이해해주었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하자 소홀은 따라 죽었으되 나는 옥에 갇혀서 욕을 당했으나, 포숙아는 나를 염치없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이 천하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연유로 장사를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사를 통해서 세상을 배웠다. 떠돌이 장사를 하면서 각지의 지형, 민속, 경제를 알았고 더불어 정치도 알아갔다. 전쟁에 출전하는 것을 비롯하여 벼슬을 구하기도 하였다. 모름지기 세상을 배우며 자신의 철학을 세워나갔다. 관중의 철학 중 조직에 대한 그의 생각을 책 속의 한 구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몸에서 마음은 군주의 지위와 같고, 아홉 구멍은 관직과 같다. 마음이 올바른 도에 처하면 아홉 구멍이 이치를 따르지만, 욕심으로 가득 차면 눈이 색을 보지 못하고, 귀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그 도를 떠나면 아랫사람이 그 직분을 잃는다고 한다. 말을 대신하여 달리지 말고 (말이) 자신의 능력을 다하도록 하고, 새를 대신하여 날지 말고 (새가) 날개의 힘을 남김없이 다하도록 해야 한다. 사물에 앞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그 규칙을 살펴야 한다. 움직이면 지위를 잃고, 고요하면 저절로 얻는다.”

관이오가 조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몸을 시스템으로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어떤 조직이든지 리더가 중요하고, 그 리더는 아랫사람이 제대로 그 역할을 다하도록 뒤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능력이 있는 사람의 능력을 빼앗지 말고, 아랫사람이 하는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리더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는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았다. 그만큼 도량이 넓고 포용력이 큰 실용주의적 관리자였다. 밝은 군주 아래 현명한 신하가 따르는데, 어리석은 군주보다 세상의 인재들이 어리석은 군주로 인해 모이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포숙이 관중에게 말했다.
“예전에 환공은 그대에게 패업을 도모하라고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라가 더욱 어지러웠습니다. 앞으로 어찌할 작정입니까?”
관중이 말했다.
“우리 군주는 성질이 급하므로 그 지혜를 더 많이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좀 더 시간을 두고서 그가 깨우치도록 할 것입니다.”
포숙이 말했다.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기다리고 나면 나라가 망하지 않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아직은 말했습니다. 국내의 정치는 이오가 보이지 않게 손을 써 놓았으니 이제는 기대할 만합니다. 밖에 있는 제후의 도움도 우리 두 사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누가 감히 우리를 침범하겠습니까?”
이듬해, 조정에서는 녹을 다투어 서로 찌르고 목을 베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
포숙이 관중에게 말했다.
“나라에 죽는 사람이 많은데 피해가 없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어찌 그렇겠습니까? 이들은 모두 욕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오가 근심하는 것은 정의를 위하는 제후들이 제나라를 방문하지 않는 것과 정의를 좋아하는 협객들이 제나라에서 벼슬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이오가 근심하는 것입니다. 저렇게 서로 죽이는 것을 내 어찌 애석하게 여기겠습니까?” 』


춘추시대는 주나라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길 때부터 춘추오패 가운데 하나인 진(晉)나라가 멸망할 때까지를 말한다. 초기에는 천여 개 제후국이 난립하였으나 말기에는 10여 개국으로 압축되었다. 이 시대에는 힘이 약한 주나라 왕실을 존중한다는 명분이 강하여 주왕실을 보호하고 오랑캐를 물리쳐야 한다는 존왕양이(尊王壤夷)를 내세웠다.

제나라 희공은 제아, 규, 소백 아들 셋을 두었다. 희공은 관중에게 규를, 포숙에게 소백을 돕도록 했으나, 포숙은 사양하고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관중은 소홀과 함께 찾아가서 설득하였다. 관중이 포숙을 설득하는 내용을 보면, 관중이 사람에 대한 판단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능력으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활용하였다. 후에 이에 대한 사례를 더 알아보기로 하자.

『관중이 소홀과 함께 찾아가서 말했다.
“어째서 나아가지 않는가?”

포숙이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자식을 아는 것은 아버지만한 이가 없고, 신하를 아는 것은 군주만한 이가 없다’했네. 지금 군주께서는 내가 현명하지 못함을 알고 있다네. 그런데도 나에게 소백을 보좌하라고 하시네. 이는 곧 맡은 일을 포기하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네.”

관중이 말했다.
“안된다네. 사직과 종묘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직무를 사양해서도 안 되고, 쉬려고 해서도 안 되네. 장차 나라를 맡을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네. 자네는 나아가야 하네.”

소홀이 말했다.
“나아가지 말게. 제나라에서 우리 세 사람은, 비유하자면 솥의 다리와 같은데, 하나만 없어도 설 수가 없네. 내가 보기에 소백은 결코 군주가 되지 못할 것이네.”

관중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네. 백성은 규의 어머니를 미워하고 이것이 규에게까지 미치지만, 소백은 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가엽게 여긴다네. 제아는 맏아들이기는 하나 비천하기 때문에 일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네. 그러므로 제나라를 제대로 안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이 두 공자가 아니고는 없네. 소백의 사람됨은 자잘한 지혜가 없고 성질은 조급하지만 큰 뜻을 품고 있는데, 나 이오가 아니고는 소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네. 불행하게도 장차 하늘이 제나라에 재앙을 내리면, 비록 공자 규가 군주의 자리에 앉더라도 국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네. 자네가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 협력하지 않으면 그 누가 하겠는가?”

소홀이 말했다.
“백 년 뒤에 우리 군주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만약 누가 우리 군주의 명령을 범하고, 우리가 옹립한 이를 내쫓아 우리 규를 빼앗으면, 비록 천하를 얻는다고 해도 나는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네. 하물며 내가 제나라의 정치에 참여하겠는가? 군주의 명령을 받고 바꾸지 않으며, 그 받들던 바를 없애지 않는 것이 나의 신하된 도리일 뿐이네.”

관중이 말했다.
“신하로서 나 이오는 군명을 이어서 사직을 받들고 종묘를 지키는 데 있거늘. 어찌 한 사람인 규를 위해서 죽겠는가? 내가 죽을 상황은 사직이 무너지고, 종묘가 사라지고, 제사가 끊어지는 때니, 그 때가 오면 나 이오는 죽을 것이네. 이 세 가지가 아니라면, 나 이오는 살아야겠네. 내가 살아 있으면 제나라에 이로울 것이요, 죽으면 제나라에 이롭지 못할 것이네.”

포숙이 말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관자가 말했다.
“자네는 나아가서 명령을 받드는 것이 옳다네.”

포숙이 드디어 허락하고, 나아가 명령을 받들어 소백을 보필했다.』


제희공의 어머니 제이중년이 공손무지를 낳았는데, 희공이 세자처럼 대했다. 희공이 죽자 제아가 가장 연장자로서 군주가 되었다. 이가 바로 양공이다. 양공은 폭군중의 폭군이었다. 그는 무고한 신하를 무수히 죽여 없으며, 치마만 두르면 아무 여자에게나 손을 댔다. 심지어 남의 나라 왕의 부인과도 정을 통하였다. 노나라 환공의 부인 문강은 자기 여동생(계모 제이중년의 딸)이었다. 양공은 여동생이 시집가기 전부터 정을 통하는 사이였다. 춘추시대에서는 남녀사이가 얼마나 문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후에 관중이 제후국의 백성을 통제하기 위해 남녀 간의 관계를 왜 분명히 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부인의 불륜관계를 알게 된 노나라 환공이 분노하여 문강을 죽이려 하자, 양공은 환공을 잔치에 초대하여 독한 술을 마시게 해 취하게 만든 뒤 아들 팽생을 수레에 타게 해 옆구리를 눌러 부러뜨려 수레 안에서 죽였다.

그 포악함으로 인해 포숙아는 공자 소백을 모시고 거나라로 도망갔고, 관이오는 공자 규를 모시고 소홀과 함께 노나라로 도망갔다. 이 후 제나라에서는 공손무지가 반란을 일으켜 양공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공손무지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학대받던 옹름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러자 소백이 거나라에서 먼저 제나라로 돌아와 환공에 오른다. 이때 노나라에서는 규를 군주로 옹립하고자 군사를 일으켜서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건시(현재 산동성 박흥현 남쪽)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전투 중에 관중은 제환공에게 화살을 쏘아 그의 허리띠를 맞추었다. 그러나 노나라는 전재에 패배하였다. 이 때 제환공은 노나라를 무력으로 위협하여 공자 규를 죽이고, 관중과 소홀 또한 죽이려고 하였다.

『제환공은 포숙을 재상으로 삼으려고 말했다.
“장차 어떻게 해야 사직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까?”

포숙이 말했다.
“관중과 소홀을 얻으면 사직이 안정될 것입니다. 신은 군주의 용렬한 신하입니다. 군주께서 신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신을 춥거나 굶주리지 않게 해주시니, 이는 군주의 혜택입니다. 만약 꼭 국가를 다스리려 하시면, 그 적임자는 신이 아니라 오직 관이오뿐입니다. 제가 관이오만 못한 것이 다섯 가지니, 관대하고 은혜를 베풀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그보다 못하고, 국가를 다스리는 데 기강을 잡는 것이 그보다 못하고, 충성과 신의로 제후와 동맹을 맺는 것이 그보다 못하고, 예의를 제정하여 사방에서 본받게 하는 것이 그보다 못하고, 투구를 쓰고 북채를 잡고 군문에 서서 백성들 모두 용맹하게 하는 것이 그보다 못합니다. 관중은 백성의 부모입니다. 장차 자식을 다스리고자 하면 부모를 버릴 수 없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관이오는 직접 과인에게 활을 쏘아 과인의 허리띠를 맞혀서 거의 죽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를 등용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포숙이 대답했다.
“전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선군을 위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의 전하에 대한 태도는 공자 규에 대한 것만은 못했습니다. 규가 죽지 않았으면 어찌 전하를 섬기겠습니까? 만일 군주께서 용서하시어 그를 돌아오게 하면 그는 군주를 위해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러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포숙이 말했다.
“군주께서 사람을 시켜 노나라에 요청하십시오. 군주께서 사자에게 이렇게 말을 하도록 명령하십시오. ‘우리 군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 신하가 지금 노나라에 있으니, 원컨대 여러 신하들 앞에서 죽이고자 청합니다.’그러하면 노나라 군주가 반드시 허락할 것입니다. 또 시백은 관이오의 재주를 알기 때문에 반드시 장차 노나라의 정사를 맡기려 할 것입니다. 노나라의 정사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관이오가 받아들이면 노나라는 제나라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관이오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관이오가 장차 제나라로 돌아갈 것을 알고 반드시 죽일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러면 관이오가 시백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포숙이 말했다.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관이오는 군주를 섬기는데 두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공이 말했다.
“그가 과인에게도 여전히 그렇게 하겠습니까?”

포숙이 말했다.
“군주를 위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군과 사직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군주께서 만약 종묘를 안정시키고자 하시면 빨리 그를 청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노나라가 미처 관중에게 정무를 맡기기 전에 제나라의 사신이 도착하여 ‘이오와 소홀은 제나라의 적이므로 살려서 데려가기 바란다. 만약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노나라는 제나라의 적이 된다’고 하며, 이오와 소호를 데려갈 것을 요구하였다.

할 수 없이 노나라는 관중과 소홀을 제나라로 보냈다. 관중과 소홀은 제나라로 들어가다가. 소홀은 ‘당신은 살아서 신하노릇을 하고, 홀은 죽어서 신하노릇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며 자결하고, 관중은 살아서 제나라로 들어갔다.

당부(제나라와 노나라의 접경 지역으로 지금의 산동성 몽음현 서북) 근처에 이르러, 포숙이 불제 행사를 시행하고 관중을 세 번 목욕시켰다. 환공이 친히 교외에 나와 관중을 맞이했다. 관중은 갓끈을 굽히고 옷깃을 여미어 죽을 채비를 하고, 사람을 시켜 도끼를 들고 그 뒤에 서 있게 했다. 환공이 도끼를 잡은 사람을 세 번 꾸짖어 물러나게 했다.

『환공이 말했다.
“갓끈을 드리우고 옷깃을 내렸으니, 내가 이제 그대를 만나 보려 합니다.”

관중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환공에게 은혜를 받았으니 비록 죽어서 황천에 가도 이름이 더럽지 않을 것입니다.”

환공이 마침내 관중과 함께 돌아가 조정에서 예로 대접했다.

환공이 물었다.
“사직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군주께서 패왕이 되시면 사직이 안정될 것이고, 군주께서 패왕이 안 되시면 사직이 안정될 수 없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나는 감히 이처럼 큰 목표를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사직의 안정을 바랄뿐입니다.”

관중이 (패왕이 되기를)다시 간청하자, 환공이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관중은 떠나면서 군주에게 말했다.
“군주께서 신을 죽음에서 면해준 것은 신의 행운입니다. 그러나 신이 규를 위하여 죽지 못한 것은 사직을 안정시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직을 안정시키지 못한 채 신이 제나라의 정치를 맡고 있었기에 규를 위하여 죽지 못한 것입니다. 신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문에 이르렀을 때 공이 관중을 불렀다. 관중이 돌아오자, 환공은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떠나지 마십시오. 패업을 위해서 힘써 주십시오.”

관중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일어나서 말했다.
“오늘 군주께서 패업을 성취하고자 하시면 신은 명령을 받들기 위하여 재상 자리에 오르겠습니다.”


참으로 귀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신하는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섬기며, 군주는 자신을 따르는 신하를 위한다고 하였다. 이 만남으로 환공은 명군으로 불리고, 관중은 찰상(察相)으로 칭송되었다.

재상에 오른 관중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백성을 살피는 일이었다.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 데 있고, 정치가 피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데 있다.’고 하여 정치는 백성들이 욕망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백성들이 바라는 것으로 (1) 일락(佚樂): 백성은 근심과 노고를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줘야 한다. (2) 부귀(富貴): 백성은 가난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줘야 한다. (3) 존안(存安): 백성은 위험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해줘야 한다. (4) 생육(生育): 백성은 후사가 끊기는 것을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이 잘 살도록 해줘야 한다. 으로 파악하였다. 이는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를 이끌어가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개인의 이익과 조직의 이익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잘 융합하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창고가 가득차면 예절을 알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풍족하면 영광과 치욕을 안다’라고 하여 부민을 통한 부국을 추구하였다.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제도가 좋아야 하고, 인재를 잘 써야 하며, 상벌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시스템 관점에서 볼 때, 우선 제도를 정비하고, 이 제도를 통해 적절한 인재를 등용하고, 상벌을 통해 시스템을 운용한 것이다. 훌륭한 제도 없이는 훌륭한 인재가 활동할 수 없음을 이미 통찰한 것이다. 이에 대한 내용을 환공과 관중의 대화를 통해 알아보자.

『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여러 제후들 틈에서 아무 탈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조금이나마 군비를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안됩니다. 백성이 궁핍합니다. 공께서는 먼저 백성과 함께 해야 합니다. 어찌 병장기를 은밀히 감추어 두려고 하십니까? 군대를 후하게 대해 주는 것은 백성을 후하게 대해 주는 것보다 못합니다. 제나라의 사직도 안정되지 않았는데, 공께서 백성을 먼저 하지 않고 군대를 먼저 하면 밖으로는 제후들과 친밀함을 잃고, 안으로는 백성과의 친밀함까지도 잃을 것입니다.”

환공이 또 물었다.
“과인이 정사를 닦아서 천하 제후의 칭송을 듣고자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공이 말했다.
“무엇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백성을 사랑하는 방법은 어떠한 것입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공께서 공족을 다스리고, 대부는 그의 동족을 다스려서 서로 국사로 이어지고, 서로 녹봉으로 함께 하면, 사람이 서로 친해질 것입니다. 옛날의 죄를 용서하고, 옛날의 종친을 부흥시키고, 후사가 없는 이에게 양자를 세워주면 백성이 늘어날 것입니다.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박하게 하면 백성이 부유해질 것입니다. 향에는 현사를 두어서 그들에게 교화하게 하면 백성이 예의바르게 될 것입니다. 명령을 내리고 번복하지 않으면 백성이 바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관중이 제나라에 들어와 40일 때 까지 아홉 가지 시혜정책을 다섯 번 행했다고 한다.
첫째는 노인을 어른으로 모시는 일,
둘째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일,
셋째는 고아들을 구휼하는 일,
넷째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돌보는 일,
다섯째는 홀로 된 사람을 결혼시키는 일,
여섯째는 병든 사람을 위문하는 일,
일곱째는 곤궁한 사람을 살피는 일,
여덟째는 흉년때 고용인들을 보살펴 도와주는 일,
아홉째는 유공자들에 대한 보훈이다.

이 점만 보더라도 포숙이 관중을 백성의 부모라고 했던 까닭을 알 수 있다. 관중은 안으로 백성을 위한 제도를 정비하며 부민정책을 펴는 동안 환공은 관심을 밖으로만 돌리려고 하였다. 그럴 때마다 관중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을 일깨우려 무진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환공은 관중의 말을 깨우치지 못하였다. 그런데 환공을 일순간에 깨우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 환공이 즉위하고 4년이 되는 해, 군대를 증강하여 보병 10만과 전차 5천량이 되었다.
환공이 관중에게 말했다.
“우리 군사는 훈련이 끝났고, 병력도 확보되었으니 과인은 노나라를 정복하고자 합니다.”

관중은 한숨을 쉬고 탄식하며 말했다.
“제나라는 위태롭습니다. 군주께서 덕을 베푸는 데 힘쓰지 않으시고 군대에만 힘쓰시니, 천하에 보병 10만 정도를 보유한 나라가 이제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적은 병력으로 큰 병력을 정복하려고 하면, 안으로는 백성의 민심을 잃고, 밖으로는 제후들이 경계하여 경비를 갖추니, 준비가 부족한 우리 측에서는 속임수를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가 위태롭지 않기를 바란들,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환공은 듣지 않고 노나라를 공격했다. 노나라는 감히 전쟁에 나오지 못하고 동맹을 청하였다. 관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나라 군주와 만났다. 노나라 장공은 몰래 칼을 품고 있었고, 조귀 역시 칼을 품고 있었다. 섬돌을 밟고 선장공이 품었던 칼을 꺼내들고, 왼손으로는 환공에게 칼을 겨누고, 오른 손으로는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 죽는 마당에 제나라 군주 앞에서 죽겠다.”

관중이 군주에게 달려가자, 조귀가 칼을 뽑아 들고 두 섬돌 사이를 가로막고 서서 말했다.
“두 군주가 장차 지도를 바꾸려 하는데 나서지 마시오”
관중이 말했다.
“군주께서는 (빼앗은) 땅을 노나라에 돌려주시고, 국경을 문수로 하시지요.”

환공이 허락하여, 문수를 국경으로 삼고 돌아왔다.
환공은 돌아온 뒤로 정무에만 힘쓰고, 군대를 증강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정무에는 간섭하지 않으며, 과격한 언행을 자제하고 군대를 쉬게 하였다.』

이 사례는 강요에 의한 약속이며, 설사 손해가 되는 일이 있더라도 약속은 반드시 지킴으로서 국제적 신뢰를 얻게 되었다. 이 후로 환공은 관중의 뜻을
“공께서 정치를 밝게 다스려 백성을 부지런하게 하면 제후들에게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받아들여 세금을 경감하고, 시장의 추렴세를 덜어주고, 조세와 녹봉의 제도를 정비했다. 관중은 나라 안에서 상을 주어 격려하고, 군주는 제후들에게 상을 주었다. 제후 가운데 일을 잘 처리하는 이들에게 값진 폐백으로 축하하였다.

또한 관중은 환공에게 인재 등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한 에피소드가 있다.
『환공은 재주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궁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밤마다 궁궐 뜰 앞에 모닥불을 피워 밝혀 놓았다. 그러나 일 년이 다 되도록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인재가 없을까?’하고 혀를 차고 있을 무렵, 시골에서 온 한사람이 드디어 면회를 신청하였다. 기대를 잔뜩 한 환공이 그를 반갑게 맞으며 물었다.
“그래, 그대의 재주는 무엇이오?”
그러자 시골 사람이 대답했다.
“저의 재주는 구구단이옵니다.”
매우 실망한 환공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니, 그것도 재주라 할 수 있겠소?”
이에 그 시골 사람은 정색하며 말하였다.
“지금 대왕께서 인재를 구하고 계시지만, 일 년이 지나도록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대왕께서 워낙 현명하시기 때문에 누구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해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의 구구단은 재주도 아니지만 이 정도의 재주도 대우한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재능있는 많은 사람들이 속속 찾아올 것입니다.”
환공이
“그 말이 참으로 옳다.”
하고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 후 한 달이 채 못 되어 나라 안의 인재들이 궁궐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관중은 인물을 기용하는 데 있어서 능력과 재능을 위주로 적재적소에 기용하였다.
“습붕은 총명하고 민첩하므로 동쪽의 나라들을 관리하게 해야 합니다. 빈서무는 성격이 굳세고 마음 바탕이 좋으므로 서쪽의 나라들을 관리하게 해야 합니다. 위나라는 아주 괴이하고 천박하여 실리만 찾습니다. 공자 개방의 사람됨은 두뇌가 총명하여 일처리에 기민하나 참을성이 없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므로 위나라에 보내 일을 시켜야 합니다. 노나라는 육예를 좋아하고 예의로 훈도합니다. 계우의 사람됨은 공경함이 정성스럽고 예의에 해박하며 어느 정도 신용이 있는 편이니, 노나라에 보내 일을 시켜야 합니다. 초나라는 기교가 뛰어나고 꾸미기를 좋아하여 이익만 추구하고, 대의명분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약간의 신용은 지키기를 좋아합니다. 몽손은 교화에 박통하여 문장 꾸미는 기교가 뛰어나며, 대의명분을 세우는 일은 좋아하지 않으나 작은 신용을 지키기 좋아하므로 초나라에 보내 일을 시켜야 합니다. 소국의 제후는 이미 복종했고, 대국의 제후는 이미 귀속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하면 비로소 정사를 제대로 베풀 것입니다.”

또한, 인재를 배치함에 있어 사사로운 친분관계를 철저히 배제하였다. 심지어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지켰다.

『관중이 병이나 자리에 누워 있을 때, 환공이 병문안을 가서 말했다.
“증보의 병이 심한데 이렇게 꺼리고 숨기면 안 됩니다. 불행하게 이 병이 호전되지 않으면 누구에게 정치를 맡겨야 합니까?”
관중은 대답하지 못했다.
환공이 말했다.
“포숙의 사람됨이 어떻습니까?”
관자가 대답했다.
“포숙은 군자입니다. 천승의 나라라도 도에 어긋나면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정치를 담당할 수 없습니다. 그의 사람됨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심하기 때문에 한 가지 악한 일을 보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러면 누가 합당합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습붕이 좋습니다. 그의 사람됨은 많이 알면서도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좋아합니다. 신은 사람에게 덕을 베푸는 것을 어질다하고, 사람에게 재산을 베푸는 것을 선량하다 한다고 들었습니다. 선으로 남을 이기는 사람은 사람을 복종시킬 수 없고, 선으로 남을 기르는 사람에게는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에는 알지 못하는 정무가 있고, 가정에는 알지 못하는 가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반드시 해낼 사람은 습붕입니다.
또 습붕의 사람됨은 집에 있으면서도 조정의 일을 잊지 않고, 공적인 일을 하면서도 가정의 일을 잊지 않으며, 군주를 섬김에 두 마음을 갖지 않고 또한 자기 신분을 잊지 않습니다. 그는 일찍이 제나라 화폐를 가지고 파산한 가정 50호를 구제했는데도 구제 받은 사람이 도운 사람이 알지 못했습니다. 크게 어진 사람이 바로 습붕입니다.”』

관중이 죽자, 제나라는 급속히 기울었다. 환공 역시 패업을 이룬 군주로서의 위상을 하루아침에 기울고 아첨하는 군신들에 싸여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이를 보면서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더라도 이를 운용하는 사람이 제대로 서지 못한다면 이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됨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좋은 인재가 놀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지만은 그 이후는 그 터전을 제대로 운용할 인재가 더 중요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일 것이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제도와 사람 이 두 가지 요소는 꼭 상생해야 하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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