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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6일 11시 55분 등록
서문

변화 없는 진보란 없다.
자신의 마음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 조지 버나드 쇼

'Change Your Thoughts—Change Your Life'는 성경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의 어떤 책보다도 많이 번역된 지혜의 책, 『도덕경』을 내가 1년에 걸쳐 연구하고 명상하고 그리고 생활에 적용해온 결과물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중국의 고전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궁극적인 담론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계속해서 고결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고 균형 있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이르기 위한 소중한 원천이 되고 있다. 나는 최근에 이 고전의 81개장을 읽고 또 읽는 것만으로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중독 증상을 극복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한번 상상해보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 책은 100개도 안 되는 짧은 구절들을 통해서 균형 잡히고, 도덕적이고 또한 영적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세상의 모든 삶에 다양하게 적용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도덕경』은 고대 주나라의 수도였던 뤄양(洛陽)의 왕궁 서고의 관리인이기도 했던 노자에 의해 쓰여졌다고 한다. 전쟁 기간 동안 계속해서 쇠락해가는 나라를 바라보던 노자는 결국 서쪽 사막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그 길에서 현자(賢者)인 노자의 명성을 알아본 함곡관(函谷關, Hanku Pass)의 수문장, 윤희(尹喜, Yin His)는 그의 가르침의 정수를 글로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이 바로 도덕경이 5000여자로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도덕경』의 근원에 대한 많은 글을 읽었지만 결정적인 역사적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도덕경』은 거의 모든 언어를 통해 수천 가지 번역본으로 살아남았다. 사실 나는 하루 동안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번역본을 읽고 난 후 『도덕경』에 빠져들었다. 나는 좀더 많은 번역본을 주문했다. 그 중에 다섯 권은 상당히 오래된 것들이었고, 나머지 다섯 권은 비교적 현대적인 것들이었다. (이 목록은 '참고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노자와 『도덕경』의 근원이 역사적으로 분명하지는 않지만 나는 학자마다 이 5000여자의 한문을 모두 다르게 해석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이 고대 한문 중에 일부는 오늘날 더 이상 사용되지 않으며 이는 『도덕경』이 다양하게 해석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때) 각 장에 대해 그 값진 가르침을 21세기에 적용할 수 있는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은 10가지의 각기 다른 번역본에서 그것들이 내 안에 공명을 불러일으킨 방식에 따라 『Change Your Thought—Change Your Life』의 81장을 구성했다(pieced together). 이 책은 나에게 삶과 본질에 대한 통찰을 가져다 준 『도덕경』의 개인적인 해석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책은 내가 연구한 10가지의 서로 다른 번역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하고 모아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어떤 특정 부분은 배제된 것에 대해서 사과한다. (또는 첨가된 부분이 완벽하게 어울리지 못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사과한다.)

『도덕경』이 우리에게 주는 많은 선물 중에 하나는 바로 정신을 확장시켜주는 그 특성이다. 특히 노자가 풍자(irony)와 역설(paradox)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삶을 바라보게 하는 방식이야 말로 『도덕경』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겠다. 당신이 강제적인 것(being forceful)이 옳다고 생각할 때 노자는 겸허함이야 말로 진정한 가치라고 말한다. 어떤 행위(행동, 혹은 '위')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에 그는 당신에게 행하지 않음('무위')를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또한 움켜쥐는 것만이 당신이 필요한 것이나 원하는 것을 갖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는 놓아 보내고 인내하라고 타이른다.

그럼 도대체 '도'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인가? 1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름을 규정하는 것은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찾아낸 최선의 답은 다음과 같다: '도'란 궁극의 실재이며 모든 것의 (all-pervasive) 근원이다. '도'에는 결코 시작도 끝도 없으며,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만물의 세상(world of the 10,000 things)이라 불리는)형상과 경계의 세상 속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도덕경(道德經)』의 도(道)는 일반적으로 '길(the Way)'로 해석되고, 덕(德)은 '그 형태와 힘'으로(즉, 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방식), 경(經)은 '책'으로 번역된다. 내가 읽은 모든 번역본들은 도를 대문자 'W'로 시작되는 '길(the Way)'로 나타냈다. 그런데, 65년이 넘도록 함께 해온 웨인 다이어(Wayne W. Dyer)라는 이름을 살펴보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만들었는지 알게 된다. 당신도 이미 봐서 알겠지만 내 이름의 첫 세 글자가 바로 도(道)를 뜻하는 'Way'와 같다. 게다가 'Dyer'라는 이름이 색이나 빛을 더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가. 이는 내가 왜 그토록 『도덕경』을 읽고, 쓰고, 번역하고 이 81개의 이야기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일에 빠져들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중국과 인도의 지혜(The Wisdom of China and India)라는 책에서 Dr. Lin Yutang은 말한다. "모든 동양의 문헌 중에 꼭 하나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면 바로 노자의 도에 대한 책이다. …… 이 책은 인류 철학사에 있어 가장 난해한(?) 책 중에 하나다. ……" 이 책, 'Change Your Thought—Change Your Life'을 읽으면서 당신은 노자의 신비롭고 또한 실용적인 철학을 오늘날의 현대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의 삶에 적용하는 기쁨을 통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선형적이고 이성적인 접근 방식에 들어맞지 않는 아이디어들에 완벽하게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마치 도 그 자체와 같은 (설명할 수도 없고, 이름 지을 수도 없는)방식으로 나를 변화시켰다. 이 책을 위한 프로젝트에 1년을 쓰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이 책을 쓰는 창조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여러분을 위해 이 과정을 기록해두었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과일 주스와 영양제를 챙긴 후에 글쓰기를 위한 나만의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간다. 책상 위에는 액자에 들어있는 노자의 사진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 속에서 노자는 간단한 관복을 입고 있다. 또 다른 사진 속에서 그는 지팡이를 짚고 서있기도 하고 세 번째 사진 속에서는 황소를 타고 있기도 하다. 나는 천천히 작업에 몰입해 들어간다. 『도덕경』의 한 장을 읽고, 그 글이 내 안에 머물도록 한다. 그리고 외적인 그리고 내적인 원기의 힘으로 나를 가득 채운다.

『도덕경』의 어떤 장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지도자를 위한 것처럼 보이는 생각들을 담고 있다.—하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나는 일반적인 독자를 염두에 두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정부나 기업의 특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지혜를 찾고자 노력했다.

나는 간단한 느낌을 몇 가지 써둔다. 그리고는 그 다음의 삼 일 동안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생각한다. 하루 일과의 모든 활동 속에 도를 마치 (이 책의 제목처럼) 배경처럼 나와 함께 하도록 불러들인다.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생각을 바꿔, 웨인 그리고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봐." 그러면 내 생각은 실제로 바뀐다.

나는 도가 나와 함께 하는 것을 느낀다. 도는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무엇도 하지 않는 채로, 그리고 동시에 어떤 것도 미완성인 채로(undone) 남겨두지 않는다. 도를 통해 바라보면 주변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도에 비추어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들이 자신의 본성을 외면하는 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알 게 된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들이 타인의 관심사에 휘말리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제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전보다 더 평화롭고, 더 많은 인내심을 갖게 되었다. 세상의 만물이 순환하는 본질을 깨닫고, 내가 바라보는 것들을 변화시키는 강렬한 통찰을 갖게 되었다. 우리 인간들 역시 자연의 다른 생명들과 마찬가지다. 슬픔, 공포, 좌절 또는 그 어떤 근심도 끝없이 계속될 수는 없다. 자연은 끝나지 않는 폭풍을 낳지 않는다. 불행 속에는 항상 행운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각 장의 지혜에 대해 사색하고 적용하는 날들을 보내면서 나는 이른 아침 사진 속에 있는 노자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는다. '무슨 뜻인가요?', '어떻게 하면 이 구절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이러한 (장엄한) 가르침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그러므로 그 다음 단계는 그냥 마음을 흐르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글은 시간과 분위기에 따라 나의 보라색 펜을 통해서 종이 위에 흐른다. 나는 이것을 '무의식적인 글쓰기(automatic writing)'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만질 수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으며 이름을 붙여 규정할 수도 없다. 때때로 나는 감사하고 당황하고 놀라고 넘치도록 기뻐한다. 그리고는 다음날부터 이 글들이 내게 미친 깊은 영향으로 인해 행복하고 영광스럽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2500년 전 중국의 한 현자가 기록한 지혜의 또 다른 장을 가지고 새롭게 4일의 모험을 시작한다.


우리의 세계가 21세기에 노자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는 지도자를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나의 비전이다. 우리의 생존은 어쩌면 도(道)를 따르는 삶을 통해 '적(敵)'과 '전쟁(戰爭)'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우리 개인의 삶을 제한하고, 과도하게 세금을 거두고 또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데서 한 걸음 물러나야 할 것이다.

우리 개개인은 도(道)의 교훈과 진실을 발견하고 이를 그 삶에 적용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도는 우리를 존재의 거대한 불가사의로 인도할 수 있다.—그렇다. 바로 당신이야말로 살아 숨쉬는 도(道), 그 자체이다. 우리의 존재(有, being)는 비존재(無, non-being)로부터 태어나서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즐거움과 유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을 개인적인 여행으로 삼아라. 먼저 『도덕경』의 한 장과 거기에 이어지는 글을 깊이 음미하라. 그런 후에는 읽은 내용을 스스로에게 적용해보는 시간을 가져라. 길들여진 사고방식을 바꾸고 이러한 사상을 개념화하는 새로운 방식에 마음을 활짝 열어젖혀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녹음을 하는 등 어떤 것이든 본인이 끌리는 방식으로 느낌을 표현하고 정리함으로써 그 내용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라. 그리고는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라.

다음 글은 Deng Ming-Dao가 쓴 '365일의 도(道) - 매일 명상(365 Tao : Daily Meditations)'에서 빌려온 것이다, 나는 이 책의 글들을 나의 하루에 적용하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 이 글을 읽고 여러분의 내면에 살아있는 도(道)를 느껴보기 바란다.

공부하고 자신을 수양하는데 오랜 시간 동안 노력을 기울이면 여러분은 도(道)의 길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또한 탁월한 인식의 세계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사상과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또한 예지라고 할 수도 있는 것들을 느끼게 된다. 여러분이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해도 아무도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또 믿지도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이 길을 걸어갈수록 사회의 보편적인 길에서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아마도 진실을 알게 되겠지만 이와 동시에 사람들이 정치인이나 유명인 그리고 돌팔이들을 더 잘 믿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지게 되면 때때로 여러분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 진정으로 도(道)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도를 그저 하나의 도구로 부당하게 써먹으려는 사람들일뿐이다. 그들에게 여러분의 경이로운 경험을 말하는 것은 종종 잘못된 의사소통으로 인해 시간낭비가 되곤 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 법이다.

왜 그냥 고요하게 있지 못하는가? 그냥 도를 즐겨라.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어라. 여러분은 내면으로부터 신비로운 도(道)의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혹시 여러분의 경험에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을 만나거든 반드시 공유하라. 그러나 낯선 군중 속에서 이방인처럼 서있는 경우라면 오히려 침묵하는 편이 낫다.


아마도 『도덕경』의 가장 우선적인 메시지는 이 고대의 신성한 글을 통해서 알게 된 교훈의 단순함을 즐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사상들을 실생활에 적용해나가면서 여러분은 이 모두가 얼마나 심오한 것들인지 알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단순함과 자연스러움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이 고대 현자의 가르침은 생활에 적용하기도 쉬워서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저 본성에 따라 적절히 듣고 행동하면서 조화롭게 살도록 자신을 놓아주기만 하면 된다.

노자와 그의 놀라운 책, 『도덕경』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통해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한 이 위대한 '도(道)'에 여러분만의 빛과 색을 더하기를 바란다. 도(道)가 중심이 되는 세상을 위한 나의 약속과 함께 내 사랑을 여러분께 전한다. 나는 여러분과 이 지구 그리고 우리의 우주를 위해 이보다 훌륭한 비전을 생각할 수가 없다.

— 웨인 W. 다이어
하와이의 마우이에서




지난 주에 '이제 본격적으로 번역을 시작합니다.'라고 거창하게 써놓고는 일주일의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근데 막상 과제를 낼 시간이 됐는데, 상황이 말이 아니다.

지난 글에 설명했듯이 이 책은 총 81개장으로 나뉘어진 도덕경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그래서 처음에 번역 목표를 잡을 때, 하루에 한 장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지난 금요일에 과제를 제출했으니 이번 목요일까지는 6일의 시간이 있었고, 계획대로라면 도덕경 6장까지를 번역해서 척!하니 과제로 올려야 진도가 맞는다. 그런데 달랑 서문 하나 뿐이다.

번역한 서문에 덧붙여 주저리주저리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조금 복잡하다. 우선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변명이 있을 것이고,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실수에 대한 반성도 포함될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주어진 시간 내에 비교적 만족스러운 수준의 번역을 해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까 한다. 매번 시작은 크게 해서 미미하게 마무리 지어온 전과가 있는지라 조금 조심스럽지만 아무튼 이런 마음으로 지난 한 주를 돌이켜볼까 한다.

#1 시간

연구원 시작하고 언제 한 주라도 시간이 넉넉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질구질하게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무언가 대책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연말이 되면 바빠진다. 일이 많아서 바빠지기도 하고 그냥 연말이라 어수선해서 바빠지기도 한다. 일년 내내 팽팽 놀던 철밥통들도 이 무렵에는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 없이 내몰리기 일쑤다. 나도 매년 연말이면 그냥 그렇게 바빠지곤 했었는데, 이번엔 조금 사정이 다르다.

내가 걸어온 직장생활의 여정을 시시콜콜 설명할 수는 없지만(들어줄 사람도 없을 테고) 얼마 전까지 나는 사무직에 가까운 일을 했었다. 입사는 기술직으로 했는데, 사무, 행정과 관련된 일을 해오다 보니 자꾸만 가지 못한 길에 미련이 남았다. '이번 일만 끝나면 다음 번에는 꼭!'이라는 직장 상사의 말만 믿고 6년째 프로그램 개발일로의 복귀를 노려오던 차에 결국 기회가 왔다. 이게 바로 한 달 전의 일이다.

그렇게 해서 막바지에 몰린 데이터웨어하우스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말만 어렵지 어떤 프로젝트인지는 이 글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칼퇴근을 미덕으로 알던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내내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주말까지 꼬박꼬박 출근을 했으니 개인적인 시간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평일에 늦게 퇴근하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연구원 과제를 위해 예비된 주말까지 회사에 헌납하고 보니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책이야 지하철로 오가며 조금씩 읽는다고 쳐도 책상에 앉아 진득하니 글을 쓸 시간은 만들 수가 없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오랫동안 마음은 있어도 실천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던 '새벽에 일어나 글쓰기'에 도전할 조건이 갖춰진 셈이었다.

나는 지난 한 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책상에 앉았다. 조금씩 책을 읽었고, 나름대로 열심히 번역을 했다. 그런데 진도가 영 신통치 않았다. 번역 속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기로 하고 시간에 대해서만 우선 살펴보자. 나는 분명히 5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2시간을 벌었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돌아보면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았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말이 2시간이지, 침대에 미련이 남아서 뭉그적거리는 시간에다가 잠에서 깨어 화장실 가고 간단한 음료나 차라도 한 잔 챙기는 시간을 생각하면 2시간의 앞 부분은 심한 타격을 입는다. 거기에 요즘 당겨진 출근 시간으로 인해 7시가 채 못 되어서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고 보면 그 2시간의 뒷부분도 온전치 못한 셈이다. 이리 잘리고 저리 날리니 무늬만 2시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아침 시간으로 인해 내가 시간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더 깊이 바라보게 된 점이다. 나의 하루가 어떻게 곳곳에서 부스러지고 있는 지를 살피고 누수를 조절할 방법을 찾게 되었다. 시간을 깊이 쓰고 동시에 조금 더 여유로워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사부님께는 번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12월 중순이 되어야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것이니 그때부터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그때 가서 제대로 시작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살피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되겠다.

번역 품질, 번역 속도

수시로 공포가 찾아왔다. 내가 정말 번역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끝도 없이 일어났다.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이라면 제법 해봤다고 믿어왔던 나만의 생각이 완전히 착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문용어만 알면 누덕누덕 번역을 할 수 있는 기술문서를 좀 다뤄본 실력으로 언감생심 도(道)에 대한 책을 번역하겠다고 달려든 것부터가 실수였는지도 모르겠다. 머리 속으로는 그려지는 그림이 적당한 표현을 만나지 못해 허공에서만 맴돌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한 문장 혹은 한 단어 때문에 시간을 다 까먹어버린 날도 있었다. 혹시 좀더 좋은 표현이 있을까 싶어 한 단어, 한 단어 몽땅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아무리 사전을 뒤적여도 찾을 수 없는 단어를 바라보며 막막한 마음에 가슴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속도는 더딜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번역을 해놓고도 다시 읽어보니 문장은 어색하고 뜻도 잘 통하지가 않았다. 하루에 81개장 중 하나씩을 끝내겠다는 애초의 계획은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쓰기에 더해서 읽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노자에 대한 책을 번역하는 거니까 노자와 장자를 알아야 한다고 책을 잔뜩 사놓았다. 그리고는 이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 한 주 동안 장자에 대한 가벼운 책을 하나 읽었고, 오강남의 도덕경을 거진 읽었다. 근데 이렇게 읽다 보니 정작 읽어야 할 웨인 다이어의 책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이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 웨인 다이어의 노자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노자'만' 읽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번역을 정말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첫 째는 이 일에 조금씩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둘 째는 아직 주어진 시간의 초입에 내가 서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찾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했으니 계속 하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건가?

지난 주에 올린 글에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아주셨다.

초벌로 빨리 가라. 그리고 사이사이 노자에 접근해라. 장자도 봐라. 그러면 초벌 속에서 무엇을 고쳐야 할 지 알게 될 것이다. 때때로 외국의 문화적 국외자가 범한 실수도 알게 될 것이고, 우리의 무의식 속에 축적되어 있어 우리는 오히려 보지 못한 것이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도 보게 될 것이다.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후에 '코리아니티' 에 대한 비교시선을 잡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해라.

'초벌로 빨리 가라'. 처음에는 이 부분에 공감하면서도 앞으로 걸어갈 수가 없었다. 불완전한 부분을 그냥 내버려둔 채 앞으로 걸어가려는 걸음을 나의 최상주의자(Maximizer) 테마가 계속해서 붙잡았다. 그래서 진도가 더뎠다. 재미는 줄었고, 고민은 늘었다. 더 이상 이대로여서는 곤란하다. 초벌로 달려나가고 그 길에서 쌓아서 다시 돌아와 초벌을 다듬는 것이 효율을 높이고 속도를 붙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게 일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정해졌으니 뒤돌아보지도 말고 그렇게 가야겠다.

역시나 처음의 걱정대로 창대한 시작에 비해 미미한 결말로 글을 마무리해야 할 듯 하다. 번역할 시간을 빌어 반성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벌써 창 밖이 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했으니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친 듯이 바쁜 프로젝트는 12월 20일이 준공일이니 그만하면 됐고, 번역 자체는 점점 더 재미를 느끼면서 그에 따라 속도도 붙을 테니 그것도 희망적이다.

다시 한 주 열심히 달려가야겠다.

PS : 다이어의 책과 도덕경 판본에 대한 이야기는 좀더 정리가 필요해서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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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향기
2007.12.06 13:00:06 *.109.104.19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동안 북리뷰에는 그다지 관심이 생기지 않아, 올린것만 확인(?)하고는 칼럼으로 건너가 읽기만 했네요.
새로 시작된 번역문은 빠짐없이 읽을것같아요. 끌리는걸요 ^^
책이 나오면 다시 읽게되겠지만, 그 전에 맛보는 특별한 시식같아서 느낌이 새롭네요.
잠결에 가끔 나와서 보면 어두운 작은방에서 스탠드하나 켜놓고 노력하는 그대의 등이 그때는 그리 커보이지 않고 어찌나 안쓰러운지 몰라요..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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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12.07 14:45:10 *.128.229.81
단어를 찾는데 시간 쓰지 마라. 원어로 그대로 남겨두고 넘어가라. 그 단어에 쏙 맞는 말은 사전 속에 있지 않다. 네가 context를 이해해야
그 맗을 찾아 낼 수 있다. 최대한 빨리가라.

그리고 2시간을 온전히 쓰느법은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나는 깨어나 어제 쓴 글의 뒤로 들어 가는 데 5분을 넘지 않는다. 일어나거 옷 입고 커퓨터 부팅하고 아래층에 내려가 물한잔 마시고 올라와 글을 쓰기 시작하는 데 5분이면 족하다.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책을 보면 그데로 옮겨라 네 마음 속으로 들어 온 생각을 끌고가라. 의심되는 것만 원어로 그대로 남겨 두어라. 초벌이 끝나고 전체를 이해하게 될 때 다시 그 자리로 들어 오면 그 단어의 한국어 짝을 찾게 될 것이다. 초벌 재벌 3벌 4벌을 한다 여겨라. 전체에서 디테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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