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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6일 11시 49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저서: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푸른숲(1999)
저자: 장파(張法) 유중하, 백승도, 이보경, 양태은, 이용재 옮김

1954년 중국 충칭(重慶)시 출생, 쓰촨(四川)대학교 중문과를 졸업, 베이징(北京)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1984년 런민(人民)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미학사' '중서미학연구' 등을 강의하며 중국 미학계를 이끌고 있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이”란 제목의 이 책은 중국과 서양의 비교에 관한 이야기가 폭 넓게 펼쳐져 있으며 미학이란 필터를 가지고 저자의 해박한 그 비교를 문명의 역사이래 양 쪽을 비교하며 펼치고 있다. 평생을 미학에 관해 공부하였으니 그 박심함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이 빽빽한 페이지의 책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남음이 있었다.

이 책은 번역한 유중하 선생과는 동갑으로 그의 말을 빌리자면 “ 얼굴 생김새가 그리 준수하지 못하다고 전해지는 그가 자신의 생긴 바탕을 배반하여 ‘아름다움을 헤아리는 공부(미학) ’를 한다고 강의록을 모아 낸 것이 바로 이 책” 이라며 저자와의 서면 인터뷰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은 유선생이 “미학”이란 단어를 가지고 조금 놀고 싶었던 것일 뿐 사진에서의 저자의 외모는 준수해 보인다.

서면 인터뷰에서 저자의 사상과 성품을 엿볼 수 있었는데 똑똑하면서도 예의 바른 사람이란 느낌이었다. 단지 이것 만이라면 그냥 그런가 할 수도 있었는데 그의 마지막 인터뷰의 대답은 이 책을 읽으면서 쌓였던 노고를 단숨에 풀어주는 위트도 있음을 발견했다. 저자나 역자나 매력 있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대화는 다음과 같다.

유중하: 서툴고 어설픈 물음에 답변해 주셔서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마지막 질문인데 술은 하십니까?

장파: ………….감사 드립니다……………..저 역시 “한잔 술 나누면서 그대와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진심으로 고대합니다. 저는 평소에 술을 잘 하지 않습니다만, 주량은 어느 정도 됩니다. 한국 술의 도수는 어느 정도 되는 지 모르지만 만약 서양 술처럼 낮다면 아마 저를 취하게 하기가 그다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주요저서로는 「중서미학과 비극의식 中西美學與悲劇意識」,「20세기 서구미학사 20世紀西方美學史」,「중국예술학 中國藝術學」,「중국전통예술의변천 中國傳統藝術學」,「천년화하예술의 개관 天年華夏藝術一瞥」등이 있다.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들]

1. 문화 정신

일찍이 철학가가 말했듯이 사물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는 그것이 무엇을 자신의 참조 체계로 삼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원칙으로 그러한 참조 체계는 무한하며 사물 역시 수많은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가 있다. 5p

인간은 역사적으로 주객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패러다임을 창조해낸다…….패러다임은 영원할 수 없으며 변화와 전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24p

언뜻 보면 고대 중국에는 미학이 없었던 것 같다…………………………..미학의 차원은 존재하지 않았는데도 깊이 있는 미학적 연구는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적 논의만 있고 학문은 없는 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29p

중국 문화는 아편 전쟁 이후의 지난한 현대화 과정 속에서 줄곧 세 가지 문화 세력의 영향을 받았다. 하나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먼저 현대화로 나아간 서구 문화이며 마지막 하나는,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스탈린의 사상이 융합된 소련 문화이다. 미학 역시 마찬가지다. 30p

이리하여 세 방향의 자장이 서로 끌어당기는 상황이 다시금 형성되었다. 중국미학이 현대적 양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이 세 가지 힘의 충돌과 융합과정이다. 이미 영향을 받았고 앞으로도 영양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면, 우리는 이 세 가지 힘의 원류와 본질을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실천의 기초이다. 31p

중국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시대적 차이가 아니라 사상 유파의 차이이다…………………..서구 문화에서 제일 중요한 차이는 중국과는 반대로 시대적 차이이다. 32p

중서의 철학자들이 세계가 어떤 것인지 알고자 했을 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가 지금의 모습을 지니도록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문화는 도(道) 천(天) 무(無) 이(理) 기(氣) 진여(眞如) 등의 개념을 갖고 있다.
서구문화는 Being(있음, 존재) logos 등의 개념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Being(유)과 “무”가 우주관에 대한 중서 문화의 차이를 비교적 잘 보여준다 하겠다…………………..중국 문화만 가지고 논할 경우 이 중에서도 핵심은 도이다. 무는 도의 형이상학적 특징을 나타내준다. 38p

…중서의 우주관을 비교할 때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은 “무”는 개별적 개념이 아니라, 도(道) 무(無) 이(理) 기(氣) 가 일체화된 중국의 정체적(整體的) 우주관으로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39p

Being이 서구 우주관의 핵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가 도(道) 기(氣) 이(理) 를 포함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풍부하게 전개될 수 있는 잠재 능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40p

서구의 우주론은 Being에서 substance로 발전하면서 그 특징이 확연해진다. 즉 우주는 실체의 세계라는 것이다. 41p

고대 그리스로부터 지금까지 서구 문화에서 우주의 총체적 도식은 실체와 허공의 대립에 의해 추동 되어 세 차례 커다란 변화를 겪는데 그것은 네 가지 도식으로 드러난다………..
첫 번 째는 고전적인 안정적 세계이다………..
근대는 동요하는 세계였다…….현대는 운유의 세계이다………………후현대의 서구는 뿌리 없는 세계이다………..하지만 어떻게 바뀌었든지 간에 결국 서구문화는 실체의 차원에서 세계를 바라본 것이며 언제나 실체의 세계를 그려내려는 강박관념 속에서 실체와 허공의 모델을 벗어나지 못했다. 46p

중국의 유무 상생론에서 무는 서구인이 이해하듯 실체가 차지하는 위치와 운동장소로서의 허공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성하고 변화하고 창조하는 작용으로 충만한 기를 뜻한다. 47p

기의 세계에서 유와 실체는 기이며 기의 응집이다. 48p

무는 유의 본원이자 유의 귀속처이다. 유(실체)는 일시적이며 유한하다. 무는 기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 49p

하나는 실체의 우주이고 다른 하나는 기의 우주이다. 하나는 실체와 허공의 대립이고 다른 하나는 허실의 상생이다. 이것이 중서 문화의 우주 모델에 있어 각 방면의 차이를 양산하는 근본적인 차이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상이한 방식이다. 서구인들이 무엇을 보든지 간에 실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중국인들은 기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51p

고대 그리스는 타문화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신화적 세계관을 지녔었다. 그러다 최초의 철학자겸 자연 과학자인 탈레스가 우주의 근원을 신이 아닌 물질-물-에 귀속시켰을 때 그리스 문화는 세계를 이성화하고 실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가 우주의 본원을 수(數)로 귀결시켰을 때 서구문화는 세계를 형식화하기 시작했다. 52p

후현대에 와서 현대적 형식 구조는 드디어 곤경에서 벗어나게 된다. 세계는 미완성이며 따라서 궁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모든 구조는 다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일다 만들어지면 고정된 구조를 가진다. 그러나 세계는 변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구조는 필연적으로 해체된다…………………이른바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나 무의식 심층 구조등은 단지 사물의 참조체계가 어떤 현상을 전화시켜 만들어 낸 환상일 따름이다.
이처럼 후현대에 이르러 서구인이 형식 원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는 했지만 후현대 역시 현대적 형식 원칙을 부정하고 자신의 형식 원칙으로 그것을 대신한 것에 불과하다. 57p

서구문화의 형식원칙이 지닌 내적 모순은 역사적 한계, 진리와 완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 그리고 과학적 요구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57p

정체 공능은 정체성 그 자체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정체성이란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서 파악된다. 정체를 떠나 부분을 얘기 할 수 없고 정체 공능을 떠나 구조를 얘기할 수 없다. 정체로부터 분리된 부분은 더 이상 정체의 부분이 아니다…………..그것은 원래의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63p

형식 원칙으로 말미암아 서구문화의 형식이 부단히 변화 발전했다면 정체공능으로 말미암아 중국 문화는 시대적 수준을 넘어서 앞서 나갈 수 있었고 또한 이 때문에 문화적 정체(停滯)를 겪어야 했다. 67p

모호함은 정체 공능의 특징이자 정체 공능이 추구하는 바이다. 67p

명료성은 도구를 중시하고 도구에 무조건 복종하기를 요구한다. 70p

도구의 명료성 혹은 명료한 도구는 양면에 칼날 달린 벽을 인간과 세계 사이에, 인간 내면의 감성과 이성 사이에 세워 놓았다. 명료성이 도구적 명료성으로 전화 되면서 인간과 세계가 분열되고 내면의 심리가 분열된 서구적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도구의 소외이다. 71p

명료성은 사방을 밝혀주지만 그 빛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더욱 더 어둡게 만드는 등불과도 같다. 74p

서구 문화가 줄곧 추구해온 객관세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은 그들을 순수한 객관세계로 이끈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의 문화적 세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창조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75p

중국의 도에 관한 책이나 도를 터득한 성인의 책은 모두 모호하다. 모호하기 때문에 임의로해석할 수도 있으나 그것을 뒤집을 수는 없다. 심지어는 자신의 새로운 창조 역시 성인의 마음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자신의 새로운 견해도 고인의 뜻을 발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78p

중국인이 도달하려는 것은 도구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사물 자체에 대한 인식이며 다만 그것은 도구를 매개로 해서만이 가능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80p

2. 미학의 총체적 비교

말은 의미전달이 목적이므로 의미를 파악하면 말 자체는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배움에 있어서도 스승의 마음을 파악해야지 스승의 흔적을 좇아서는 안 된다. 서구인의 인식 과정을 감정에서 이성에 이르는 것, 언어 기호에 의한 최고의 이성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중국인의 그것은 감정에서 언어 기호를 거쳐 깨달음에 이르는 것으로 언어는 결코 최고 층차가 아니다. ………..따라서 중국인은 미를 파악하거나 체험하면서도 미의 본질을 추구하지 않았고 언어를 사용한 공리나 정의를 내리려고 애쓰지 않았으며 미의 본질을 핵심으로 하는 미학을 세우지도 않았던 것이다. 87~88p

쫑빠이화는 중국 미학이 위진 시대의 인물 품평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00p

중국 미학 체계의 성과를 대표하는 것은 유협의 “문심조룡”과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으로 전자는 외적 구조를 중시하며 정련된 문구를 사용한 저서이며, 후자는 내적 구조를 중시하여 유사성에 의거한 방식을 사용한 저서이다. 105p

“문심조룡”이 상고시대부터 당대에 이르는 경과하는 시간관을 표현했다면 “이십사시품”은 순환적 시간관을 표현한 것이다. 109p

중국 미학사는 대체로 선진 양한 시기, 위진 남북조 시기, 당 송 원 명 시기, 그리고 청대로 나눌 수 있다.
선진 양한 시기는 중국 미학의 맹아기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중국문화의 우주적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중국 미학은 바로 이 우주 구조로부터 나왔다. 다른 하나는 선진 시대의 악기 (樂記 )와 한대의 (모시서)를 지표로 사회적 윤리를 중심으로 하는 유가 미학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위진 남북조 시대는 중국 미학이 정식으로 형성된 시기이다……
당 송 원 명 시대는 중국 미학의 발전기이다…………….
청대 미학은 중국 고전 미학의 총결로 나아갔다. 115~117p

3. 문화적 이상의 표현: 화해(和諧)

(여기서 사용하는 화해는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우러진다는 의미, 그리 그 다른 것들을 용납한다는 의미를 포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음악은 가장 신비로운 것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박자를 중심으로 하는 원시 음악은 아주 교묘하게 사람들의 행동을 조정하며 신의 힘은 음악을 통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이다. 120p

고대 문자에서 바람(風)과 봉황(鳳)은 같은 글자였다. 121p

감성적 측면에서 볼 때, 음악은 눈으로는 보루 수는 없어도 바람들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몸으로는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바람도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은 있다. 바람에 닿은 사물은 흔들리기 때문이다. 양자의 공통점으로 말미암아 음악은 기후로 대표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매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갖게 된 것이다. 121p

음악의 화해에서 우주의 화해를 발견했기 때문이고 바람이 중국 문화의 근본 개념인 기(氣)의 전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이러한 기의 특징이 중국적 화해관의 특징과 발전 방향을 규정하였던 것이다. 124p

음악이 화해와 자연의 기가 상호 연관되어 우주적 화해의 기초를 이룬다면 음식의 화해와 인체의 기의 연관관계는 사회적 화해의 기초가 된다 하겠다. 요리할 때 사용되는 솥(鼑)은 상고 시대 국가의 최고 상징이었다. 126p

중국 문화에서는 음악이 바람과 기(氣)를 통해 우주적 화해에 이르렀다면 그리스 문화에서는 수(數)를 통해 우주적 화해에 이르렀다. 127p

치세에 사람들은 개인, 사회, 우주를 서로 대비하는 데 이 때 우주는 인의(仁義)의 성질을 지니게 된다. 이것이 유가의 우주적 화해이다. 난세에 사람들은 개인을 우주와 직접 대비하여 인간과 우주는 모두 사회를 부정하게 된다. 이것이 도가의 우주적 화해이다. 134p

우주 화해의 정체성과 영구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립면 사이의 배척과 충돌로 인해 정체성이 부정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따라서 중국적 정체의 화해에서 중요한 원칙은 대립적인 요소를 포함하여 대립물이 충돌하지 않고 상반상선(相反相性)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 문화에서의 정체적 화해의 두 가지 기본 특징 (시간과 역사의 공간화, 그리고 대립 요소의 화해)이 집중적으로 구현된 것은 음양의 화해와 오행의 화해라는 이론적 도식이다. 136p

서구적 화해는 발전을 중시하며 대립물의 투쟁을 강조한다. 143p

..보존은 중국적 화해의 문화적 함의이고, 혁신은 서구적 화해의 문화적 함의이다. 144p

..중국 그림은 형상의 유사함이 아니라 神氣를 중시한다. 신(神)과 기(氣) 바로 개체와 정체가 상통하는 바이다. 개체의 신을 추구한 것은 곧 개체의 정체성을 추구한 것이다. 그것은 사대부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개인적 추구가 곧 문화정체가 그에게 요구하는 정체성의 추구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145p

개체의 실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총체적 화해를 이룩하기 위해 서구의 화가들은 갖가지 아름다운 자태를 찾아내고 명암을 표현하고 정욕을 표현하는 갖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실체와 형식을 중시하고 광선과 색채를 중시하고 비례와 구도를 중시하고 실재와 힘있는 스타일을 중시한다. 이것이 바로 개체로 총체를 이루는 서구적 화해의 예술적 표현이다. 146p

중국에서 집안의 허는 서구적 허가 아니라 우주의 영기(靈氣)이다. 148p

중국 건축이 추구하는 것은 허와 실의 화해이며 서구 건축이 추구하는 것은 실체 사이의 화해인 것이다. 150p

중국은 천간지지 (天干地支)로 연도를 헤아린다. 따라서 시간은 순환적 원으로 표현된다. 서구 문화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거하면 지상의 운동은 직선 운동이다. 서구인이 서기로 연도를 계산하면서 시간은 직선으로 공식화되었다. 151p

4. 문화적 곤경의 비극: 비극

화해는 문화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극치이며 비극성은 가장 현실적인 극치이다………………모든 문화에는 화해와 현실적 비극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비극 의식은 성숙한 문화만이 가질 수 있다. 158p

비극 의식이 형성되려면 이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성이 있어야만 종교적 마취에서 풀려나 냉혹한 현실과 맞대면하고 현실의 비극성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161p

어떤 의미에서 비극의식은 반 철학적 반 종교적일 수는 있어도 반 문화적이지는 않다. 이데올로기의 일부로서 비극 의식은 철학 종교와 함께 이들을 낳은 사회 문화에 헌신한다. 다만 비극 의식은 철학 종교에 비해 문화 혁신을 촉진하는 힘이 더 크다 할 수 있겠다. 162p

성숙한 비극 의식이란 비극에 대한 문화적 심리 기제의 확립을 뜻하며 계속 커지는 비극성에 대해 그 문화가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164p

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적나라한 현실을 보게 한다. 197p

서구의 비극은 극단적이 생리적 증상이나 심리적 증상-눈멈, 미침, 고독 등-을 통해 주인공의 자아 부정과 자아 초월을 표현한다. 이는 진리 추구의 결과로서 예의 수호와는 다른 특색이다.
진리 추구에서 “진리”는 미지로 나아가는 역정으로 자아 부정을 통해서만 도달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의 수호에서 “예”는 이미 결정된 원칙으로 확고한 믿음만 있으면 목숨을 걸고 지킬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정치 비극에서 주인공은 절대로 자아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예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부정할 따름이다. 199p

5. 문화적 초월 의지의 표현: 숭고

르네상스 시대가 되어서야 인간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201p

고대 미학의 주요 범주가 비극이라면 근대 미학의 주요 범주는 숭고이다…………중서 비교를 위해선 숭고가 특정 문화를 초월한 인류 공통의 현상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202p

토템 숭배는 인간적 주체성의 표현으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이해 방식, 즉 자연과 인간의 동일시를 특징으로 한다. 203p

원시적 숭고 속에서 토템은 두 가지 임무를 갖는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것 또는 적대적인 세력을 대표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왜소함을 느끼게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수호신으로서 인간에 용기를 주어 자신을 초월하게 한다. 원시적 우주가 서구적 우주로 전화되면서 이 두 측면은 철저히 분열되었고 중국적 우주로 전화되면서도 그 성격과 기능이 변화하였다. 205p

버크는 두려운 사물이 숭고가 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인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즉 인간이 안전지대에 있어 위험해 보이긴 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207p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 자연의 미는 그 근거를 우리의 외부에서 찾아야 하지만 숭고는 반드시 우리의 내부와 심적 태도에서 찾아야만 한다. 그 심적 태도가 자연의 표상에 숭고성을 끌어넣는 것이다.” 211p

브래들리는 도덕적 힘을 숭고 객체의 특징으로 여겼다. 객체, 특히 형체가 작은 객체가 숭고감을 야기시킬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지닌 거대한 도덕적 힘 때문이라 여긴 것이다. 213p

기독교적 숭고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역량에 기초하여 하느님을 창조했다. 하느님에게는 인간의 우수성이 모두 담겨 있으며 그것은 인간 자신을 이화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우수성을 하느님에게 부여하고 자신에겐 결점만을 남겼다. 217p

은폐된 구조를 통해 세속 생활을 차단하고 천상을 향해 솟아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야말로 기독교적 숭고를 예술적으로 구현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218p

로마는 작은 도시국가에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거대 제국으로 발전했다. 그것은 자연의 정복이 아닌 사회의 정복이었으며 산과 바다를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류를 노예로 삼는 것이었다. 219p

중국의 천인합일(天人合一)철학에서는 긍정적 인물만이 천의 정기를 받아 숭고할 수 있으며 천을 거역하는 부정적 인물은 공포스럽고 힘이 있다 해도 숭고할 수는 없다. 225p

버크와 칸트가 높은 산과 바다를 숭고 객체로 본 것은 그것이 미지의 자연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교의에 따르면 “대홍수 이후 지구상에 출현한 산”은 “조물주의 (대칭, 절제, 정제에 부합하는) 완벽한 것들을 파괴하였기에 자연의 수치이자 병이다. 헤겔은 자연을 절대 이념의 저급 단계로 보고 미학에서 배제시킨다. 230p

…진정한 미적 감상은 즉각적 체험에 의거하며 사색에 의거하지 않는 좀 더 직접적인 것이다. 그것은 이론적 추상보다 풍부한 것이다. 234p

중국 철학에서 “공”은 서구적인 “비어있음”이 아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공령(空靈)은 예술의 최고 경지이다. “무”도 서구적이 “무”가 아니다. 무는 유를 포함하며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허(虛)는 진실보다 더 진실하며 “도는 허로 모여들고”, 허공이 없으면 만물은 생겨나지 않는다. “정(靜)에 대해서도 중국인은 자연 법칙에 따라 운행하는 우주는 움직이면서도 고요하다고 여긴다. 237p

6. 문화적 자유로움의 표현: 부조리와 소요(逍遙)

소요(逍遙): 장자의 소요유(逍遙遊)편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만물의 본성을 따르고 변화의길을 따라 초연하게 외재적 사물의 구속을 벗어나 모든 것들과 어울리지 않음이 없는 정신의 절대적 자유의 경지를 의미한다. 즉 모든 만물은 자기의 본성과 객관적 환경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으므로 각자 자기의 본성을 따라야 하며 아울러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파악하여 그에 맞고 그 필연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그것을 즐김으로써 내적으로 초월하는 정신의 자유를 구가하라는 의미이다. 245p

현대문화는 고저 문화가 심화된 것이지만 고전적 사유에 의해 규정되었던 본질 추구가 환영임을 보여줌으로써 고전 문화적 세계와 자아의 관계를 파괴했다. 세계가 자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상대적 우주와 다원적 현실 속에서 자기 스스로 자신을 설정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자유로워졌다. 251p

역사는 저급 단계에서 고급 단계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그 자체로 구체적이며 다양한 가능성을 갖는다. 역사에 있어 구체적 변화나 중요사건은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253p

서구 현대인의 실존주의적 자유는 신이 사라진 자유이며 법칙을 부정한 자유이고 필연에서 벗어난 자유이다. 이러한 자유와 필연적으로 결합된 것이 부조리이며 따라서 자유와 부조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254p

인간은 자아에 집착하여 이방인이 된다. 257p

유가식으로 “궁함을 지키는 것”은 여우가 달콤한 포도를 탐내듯 항상 상념에 젖어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도가식으로 “궁함을 지키는 것”은 여우가 신포도를 포기하듯 마음을 철저히 비우고 외계 사물에서 초월하는 것이다. 263p

결국 본심과 본성에 의지하고 자신의 지혜에 의지한다면 그것이 의지하는 바는 있다 하나 집착하지 않게 된다. 송대의 소식은 이 방식으로 소요의 자유를 얻었다. 그 역시 술로써 근심을 잊었지만 중요한 것은 취중에 禪意를 깨닫는 것이다. 273p

7. 문과 형식, 그 심화

사실 미적 현상 속에서 미의 역사는 반복된다. 279p

중국 미학의 경우 미적 본질에 대한 전문적 연구는 없었지만 미적 본질과 유사한 개념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문(文)이다. 고대 자형(字形)을 보면 문은 문신을 뜻하며 일종의 신체 장식이자 외관을 뜻한다. 279p

문신을 통해 한 인간이 씨족 성원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문신을 포함한 토템의식은 예를 통해 한 사회는 씨족 사회로 완성된다. 예는 사회의 문이다. 281p

문은 원시인의 문신이고 노예사회 군자의 의관복식이며 원시사회의 무속의식이고 노예사회 문물이 덕을 드러내는 예제(禮制)이다. 즉 문은 일종의 외관이다. 281p

토템, 예제 등 역사적인 사회제도에서 유래한 문의 규정성은 약정성과 가변성을 지닌다. 약정성은 문질의 계합이 실은 기계적 결합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종교적 정치적 신성함으로 인해 문의 약정적 규정은 천명으로 불변의 것으로 그리고 사물의 객관적 본질로 여겨진다. 문이 문화 전체의 미적 외관이 된 것이다. 283p

형식(form)역시 외관이다. 중국의 문이 정치 윤리와 연관되었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 형식은 과학의 길,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수학의 길로 향했다. 284p

춘추시대에는 많은 지사와 현인이 문의 규정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는데 그 대표자가 바로 공자이다. 하지만 전국 시대에는 그런 싸움도 사라져 버렸다. 287p

소리 색 맛이 향락품으로 전락한 전국 시대, 맹자는 감각적 쾌락과 마음(인의)의 즐거움을 구분하고 양자의 고하와 귀천, 모순을 제시함으로써 인의의 즐거움을 부각시켰다. 289p

맹자와 장자는 기를 도입하여 형식을 초월했다. 문은 외재적 형식이고 기는 내재적인 것으로 그 영역이 분명하다. 문이 아무리 찬란해도 그것은 외재적인 것으로 내재적인 것의 현현일 따름이다. 기는 애초부터 내재적인 것이며 더 중요하게는 우주의 근본이다. 이 때문에 중국 미학에서 문이 기로 대체된 것은 대단한 중요성을 갖는다 하겠다. 292p

잉가르덴은 파악 가능한 형식에서 출발하여 심층으로 내려간다. 명료하며 확정적인 발음이 우선되고 그 다름이 언어 분석과 세밀한 독서를 통한 문맥과 의미 파악이고 형상 등의 파악이다. 마지막의 형이상학적 특질은 구체적 파악이 불가능하므로 기본 층위에서 제외한다.
중국 미학은 이와 상반된다. 언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읽으려면 언어를 통해야 하지만 언어를 통해 작품의 경계 속으로 들어가면 언어는 잊혀진다. 근본적으로 말을 하나의 층차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 너머의 의(境外之意)이다. 319p

8. 전형과 의경(意境)

형은 실체이고 상은 虛體이다. 이 때문에 통일된 형상에서 서구인은 “형(body)”를 중시했다. 그것은 “식(式, form)을 통해서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인은 “상”을 중시했다. 실체의 “식”은 중요하지 않고 虛性의 “상”만이 우주의 기와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맑게 하여 만상을 맛보아야 한다. 상을 맛봄과 도를 보는 것은 통하므로, 마음을 맑게 하여 형을 맛볼 수는 없다 (형과 식은 일목요연한 것이므로 굳이 맛볼 필요가 없다) . 상을 위주로 한다는 것을, 예술 형상이 하나의 범주로 정확하게 표현해내려고 한 것이 바로 “경(境)”이다. 경은 당대에 발견되었다. 323p

중세 예술은 교회가 대표하며 그 정교한 비례 척도 조형은 상징을 위한 것이었다. 331p

고대 로마 시대에는 거의 완벽했던 투시법이 중세 교회의 그림에서는 완전히 소실되었다. 인물은 대부분 정상적인 비례에 맞지 않고 동작과 표정에도 생기가 없었다. 이는 사람들이 육체의 구속을 많이 받던 당시 시대 정신을 드러낸 것이다. 회화는 중세예술의 축소판으로 형식을 경시하면서도 또한 이상적이었다. 331p

천재의 특징은 상상이다. 상상은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모방하지 않고 현실을 창조해 낸다. 333p

발자크는 “프랑스 사회가 역사가라면 나는 그 서기일 따름”이라고 말했다. 335p

또 다른 논자들은 총체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전에 우리가 인식했던 형태로 존재하지 않을 따름이며, 신도 죽은 것이 아니라 숨었을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336p

중국 문화에서 우주는 기본적으로 기 음양 오행 팔괘로 구성된다. 이들은 모아서 하나로 꿸수 도 있고 나누어 분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층차로 나누었다가 그것을 다시 확대 또는 축소할 수도 있고 그 층차로 전체를 상징할 수도 있다. 340p

정체의 차원에서 보면 의경의 최고 경지는 하늘의 기를 획득한 온전한 아름다움이다. 350p

도심은 인간의 욕망을 부정한다. 유가는 봉건적 등급 제도로 인간의 욕망을 제한했다. 성리학의 강령은 “천리를 보존하며 인간의 욕망을 멸하는 “ 것이었다. 360p

도심은 인간의 감정을 부정한다. 유가는 이(理)로 인간의 정(情)을 조절해야 한다고 했고, 도가는 인간이 정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반해 동심설은 감정에 따를 것을 주장했는데 특히 탕현조가 이를 강조했다……………동심에서 나오는 것은 본연의 모습(本色)이고 도심에서 나오는 것은 겉 모습(相色)이라 했다. 361p

9. 창작론

인간이 자기 자신과 주위 세계를 대하는 방식은 예술 작품 속에 선명하게 구현된다. 인간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방식에는 문화관과 심미관이 집중적으로 구현되어있다. 따라서 창작론이 미학에서는 중요한 것이다.
서구 미학의 창작론도 서구 문화와 마찬가지로 부정→전진의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고대, 근대, 현대 각 시기마다 모방, 상상, 직관을 핵심으로 하는 상이한 세 가지 창작론이 있었다. 이 세 가지가 서구 창작론의 기본을 이룬다. 이와는 달리 중국문화는 하나의 기점을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풍부해졌다. 서구에서는 단절과 파열의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이 중국에서는 통일적이면서도 풍부한 정체적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중국 창작론의 특징이라 하겠다. 369p

중국의 자연은 주로 천지 자연을 가리키며 서구의 자연(nature)은 두 가지 의미—(1)본성 (2) 자연—을 포함한다. 우선 자연은 주로 인공과 상대되는 자연스런 본성을 가리킨다. ‘자연은 동물, 식물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인간도 가리킨다.” 그리스 미학에서 제시한 “자연 모방”은 주로 인간과 인간 활동을 모방함을 뜻한다. 따라서 그리스인의 자연 모방은 산수시나 화조도 같은 것을 포함하지 않으며 인체 조각이나 인물화 그리고 인간의 행위를 모방한 극을 뜻한다. 371p

이제껏 사생을 한 중국화는 하나도 없다. 중국 화가는 언제나 “실컷 돌아다니면서 한 껏 보고 나서 그것이 가슴 속에 역력하게 새겨지는 “ 경지를 추구했다.376p

색은 현상적인 색이고 먹은 본질적인 색이다. 큰 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큰 형상은 보지 않고 큰 색은 무색이다. 먹을 색으로 여기는 것은 중국 철학과 일치한다. 378p

그런데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중국 시의 경우 “마음으로 조화를 본받기”는 경물을 마주하고 읊는다는 것이다. 379p

중국은 기의 세계이고 서구는 실체의 세계이다. 중국의 사물은 신기(神氣)를 위주로 하고 서구의 사물을 실체를 위주로 한다. 385p

예술가들이 잡념없는 마음을 중시한 것은 마음에 잡념이 없어야지만 우주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다는 철학자적 심리에 의거했기 때문이다. 노자는 “현묘한 거울의 때를 깨끗하게 닦을 것”을 강조했고, 순자는 “마음을 비우고 한 가지에 집중하여 고요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중국의 기의 우주는 비어있다. 따라서 마음을 비우는 것이 만물의 운동 법칙을 규정하는 우주의 기를 인식하는 최고의 방법인 것이다. 389p

모방은 보편적 법칙에 의거하지만 상상은 개인의 힘을 신봉하는 것이다. 상상은 천재의 천부적 능력이며 독창적으로 세계를 창조하려 한다. 391p

중국의 神遊에 대응되는 것은 서구의 연상이다. 394p

연상의 주요 관심사는 현실 세계를 근거로 한 창조이고 공감이 강조하는 것은 이미지 창조에 대한 영혼의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환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형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400p

근대 서구의 우주의식이 “환상”을 필요로 했다면 중국의 우주의식은 “玄遊”를 필요로 했다. 현은 중국의 우주 본질이다. 401p

문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들창을 엿보지 않아도 천도를 본다. (노자) 404p

중국 미학의 경우는 경물을 마주하고 이루어지는 조화 본받기든 경물을 등지고 마음 속에서 노니는 것이든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흥(興)”이다. 405p

직관은 개념과 무관하지만 그렇다고 사물과 세계에 대한 직접적 감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과 세계에 대한 직접적 감각은 느낌 혹은 인상이라 부른다. 412p

10. 영감

영감을 신의 은총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명백하다. 그것은 예술가는 어째서 자신을 잃고 다른 인물이 될 수 있는가. 어째서 자신의 심리 상태를 망각하고 다른 사람의 심리 상태가 될 수 있는가, 어째서 그런 심리 상태의 변화로 인해 우수한 작품이 나오게 되는 가이다. 창작 과정에서 자신을 초월하는 이런 행위에는 특정한 법칙이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종교적 분위기가 강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를 신이 선물한 영감이라고 해석했다. 420p

만 권의 책을 독파하니 붓놀림에 신이 깃들인 듯하다. (두보) 422p

중국 문학은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시문(詩文)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중국인은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방법으로 그 문제를 다뤘다. 중국 미학에서는 글은 그 사람과 같고 말은 마음의 소리임을 강조한다……………………..소설가나 희곡 작가가 작중 인물이 되어 봄으로써 우수한 작품을 창작한 경우는 많았지만 중국 미학이 거기에 주의를 기울인 경우는 극히 적었다. 따라서 그런 현상을 영감의 범위에 포함시킨 적도 없었다. 이는 플라톤이 시인의 광기에서 사랑의 광기를 제외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424p

인간과 인간의 동형 구조 속에서 작가와 대상은 동일 층위에 속한다. 인간과 자연의 동형 구조 속에서도 작가와 대상은 동일 층위에 속한다. 인간과 자연의 동형 구조 속에서도 자연과 천도가 상통함으로 인해 인간과 자연 모두 형이상학적 초월성을 지닌다. 사람에게 감정을 기탁했을 때는 도에 대한 깨달음을 담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드물지만 경물에 감정을 기탁했을 때는 도에 대한 깨달음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서사 문학을 기반으로 한 서구의 영감론이 인간(작가)과 인간(인물)의 관계를 위주로 한다면 서정문학을 기반으로 한 중국의 영감론은 인간 (작가의 감정)과 경물 (자연의 경물)의 관계가 중심이다. 인인(人人)영감의 경우 중요한 것은 심리 상태의 변화이다. 광기의 상태에서 인간은 누가 나이고 남인지 알 수 없다. 인경(人景) 영감의 경우 중요한 것은 정신적 깨달음과 융화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무엇이 나이고 사물이지 알 수 없다. 427p

소식도 “시를 지을 때는 도망가는 것을 화급히 좇아야 하니 좋은 경치는 한 번 놓치면 영영 그리지 못한다” 고했다. 431p

천재의 작품은 학습과 시간의 산물이 아니라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다. 천재는 확정된 또는 가정된 법칙이나 표준에 의거하지 않을 뿐만 아닐 도리어 법칙과 표준을 깨고 숭고 비애 위대함의 경지에 이르려 한다. 미적인 것은 우아하고 완전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천의 무봉이어야 한다. 하지만 천재의 작품은 때로 조잡하고 제멋대로 이며 난삽하고 원시적이이서 하늘의 번개 같기도 해야 한다. 435p

서구 천재론에서 시인은 천재이자 보통 사람이고 그렇게 때문에 영감은 신비한 후광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인품론에서 시인이 진정한 천재가 되는 것은 “태어나면서 아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하늘이 내린 것이다.” 비록 애초부터 글에 뜻을 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말과 글에서 드러나도 자기자신은 모른다.” 해도 그들이 줄줄이 휘갈겨 써 낸 것이 저절로 “말의 장단이나 소리의 높낮이가 모두 적절하고”, “순식간에 수 많은 말이 물 흐르듯 터져 나와 사람의 혼을 빼앗으며”, “ 손 가는 대로 그려 내면 그것으로도 산수의 신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예술가 자신이 “기가 왕성하고” “기가 자유로우며” “동심을 지닌” 결과이다. 중서를 비교해보면 천재론에서 말하는 천재보다 인품론에서 말하는 시인이 더 천재에 가깝다. 450p

…이처럼 중국의 영감론은 자아 상실을 통해 순간적으로 영감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 수양을 통해 영구적인 영감을 획득하는 것이다. 중국 문화에서 예술적 영감은 천인 합일의 한 방법이자 인간의 자족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461p

11 미적 주체

“예” 자의 갑골 문자형은 “풍(豊)” 자로 이는 음식을 가득 담은 제기의 형상이다………이런 사실들은 원시 시대이후 주대까지 먹고 마시는 행위가 단순한 식욕 충족을 넘어서 좀 더 깊은 문화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64p

….맹자는 미적 감관을 마음과 오관으로 나눈다. 마음은 도덕 정신으로 충만한 인격미를 즐기고 오관은 색, 소리 ,맛에 의한 향락적인 맛을 즐긴다. 맹자의 주장은 전자를 고급의 “악”이고 후자를 저급의 “악”으로 보는 것이다. 480p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일이지만 도를 행함을 날마다 덜어내는 일이다. (노자) 482p

중국의 미적 주체 구성에 있어서 오관은 심기보다 저급하며 심기에 도달하는 것을 최후의 목적으로 한다. 그것은 내재적 심기가 갖추어져야만 외물의 신기(神氣)와 상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관에서 심기에 이르고 심기에서 내적 통일을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중국의 미적 주체가 지닌 심기와 오관의 동적 구조이다. 499p

현대 서구의 미적 주체 구성은 세 갈래로 방향 전환을 이룩했지만 그것은 다시 하나의 총체로 파악할 수도 있다.
(1) 인간은 유기적 총체이다. 인간의 모든 부분이 미감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다. 물론 시각과 청각이 독보적인 지위를 점하는 것은 사실이다.
(2) 인간의 모든 부분이 미감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은 심미적 태도에 의거한다.
(3) 일단 심미적 태도를 가지고 미적 체험을 할 경우 주체의 구체적 활동 방식은 감관과 대뇌의 운동과정에 의거한다. 506p

12. 감상방식

미적 감상 방식에 있어 중서의 특색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관조 방식에 있어 중국에서는 위로 아래로 멀리 가까이 눈을 돌리며 보고, 서구는 가장 아름다운 범위를 선택하여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서 본다.
(1) 표층을 뚫고 심층을 관상(觀賞)하기에 있어 중국에서는 맛보기(品味)”와 “몸으로 깨닫기(體悟)”에 유의하며 서구에서는 인식과 본질 규정을 중시한다.
(2) 미적 감상 과정에 있어 중국에서는 주체가 마음을 비우고 정(情)과 아(我)를 버림으로써 대상이 지닌 신비로운 운지를 체득한다. 서구에서는 주체가 정욕를 발산함으로써 스스로를 정화시킬 것을 주장한다.
(3) 미적 효과에 있어 중국에서는 주체가 미적 감상을 통해 스스로를 고양시켜 객체의 경계에 도달할 것을 요구한다. 서구에서는 주객의 교류과정에서 주체가 자신과 대상의 한계를 초월하여 주객이 모두 경험하지 못했던 경계에 도달할 것을 요구한다. 507p

순환적인 우주관을 가진 중국인은 먼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멀리가면 반드시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높아지면 반드시 낮아지기 때문이다. “끝간 데까지 이르는 것(궁(窮)”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끝간 데까지 가면 새롭게 변하기 때문이다. 514p

천도에 이르러서야 그 사물을 근본적으로 파악했다고 할 수 있는 거이다. 따라서 하나의 사물을 관조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천도의 관조로 발전하고 여기서 눈 돌리기의 미적 감상 방식이 생겨난 것이다. 중국인은 이와 같은 눈 돌리기를 통해 “바로 지금”을 파악하고 동시에 전 우주를 파악한다고 여겼다. 515p

중국인과는 달리 서구인은 하나의 사물을 인식하려면 그것을 독립적으로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실험 과학을 낳았다. 이런 정신이 심미적 차원에서 구현 된 것이 초점 맞추기다. 516p

초점 투시는 우주 속에서 서구인의 위치를 보여준다. 어떤 사물은 명료하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존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어떤 사물은 명료하게 보지 못함을 알게 되었고 이에 “허무”를 의식하게 되었다.
초점 투시는 실체와 허공의 우주관이 반영되어 있다. 실체와 허공의 우주에서 초점 투시의 핵심은 사물을 감상하는 최적의 시점을 찾는 것이다. 최적의 시점이란 기하학에서의 명제, 초인간적인 하느님, 이론적 구조에서의 논리적 기점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하느님과 절대 이념이 사라지면서 미적 감상에서 최적의 시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초점 투시는 다각적 자리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다. 518p

대상을 심오하게 관조하는 문제에 있어서 중국 미학은 선진 시대의 “보기(觀)” 에서 위진 시대의 “맛보기(味)”, 송대의 “깨닫기(悟)” 로 발전하였다. 518p

…서구인의 인식과 본질 규정은 중국의 미적 감상 방식과 유사성이 있지만 관건적으로 서구의 인식은 몸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국의 감상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서구의 미적 감상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려는 것은 확정적인 최후의 본질이다. 그리하여 서구 미학은 끊임없는 부정의 역사를 이루게 된다. 모나리자의 미소도 부단히 재 해석되고 햄릿의 우유부단함에 대한 해석도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중국의 몸으로 깨닫는 방식은 일단 깨닫기만 하면 만고 불변의 정설이 된다. 525p

미적 감상 과정에서 주체와 객체는 상호 교류한다. 526p

사물을 보면서 사물에 의해 이끌리지 않으려면 자아와 정욕을 버리고 사물을 바라보고 사물을 점유하거나 이용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우선 마음을 비우고 비워진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며 사물의 입장에 서서 사물을 보는 순간 나와 사물이 함께 우주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530p

헤겔은 이성적 차원에서 정화를 설명했다면 프로이트는 배설의 차원에서 정화를 설명한다. 533p

보편적인 중국인의 생각에 따르면 최고 작품이라면 감상자는 그 수준에 완전히 도달할 수가 없다. 중국의 도는 무궁무진하고 성인의 학문도 완전히 익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535p

인간의 머리가 완전히 비어있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인간은 항상 전-이해(preunderstand)를 지닌 채 작품을 대한다. 전-이해에는 세 가지 측면이 포함된다. (1) 이전에 존재했던 것…………….(2) 이전에 보았던 것…………………(3) 이전에 알았던 것………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문화적 전통, 시대적 관념, 개인적 경험, 개인적 특징이 하나로 융화된 전-이해를 지닌 채 작품을 대한다. 인간은 역사와 분리될 수 없듯이 전-이해와 분리될 수 없다. 만일 전-이해가 편견을 뜻한다면 그것은 “합법적인 편견”이다. 537p

근본적으로 작품의 의미는 무궁하다. 이것은 “세익스피어는 모두 다 말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이때 “다 말하지 않았다” 는 것은 중국의 도나 성인처럼 그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작품 밖에 존재하는 참조체계의 무궁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538p

감상과정은 감상자와 작품이 양방향으로 초월하는 과정이다. 539p

[내가 저자라면]

인문학 책을 읽는 재미가 그 책을 덮었을 때, 마치 무언가를 새롭게 깨달은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한 착각을 준다면 장파교수의 책은 그것에 더 하나, 깊은 울림과 우수한 인간에 대한 경외 그리고 사유의 새로운 경지를 펼쳐놓고 있다.

어려운 책이다. 골이 깊은 산이다. 넘어가야 할 고개는 어디까지나 독자의 역량이겠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그 소통대상에 따라 아주 흥미로울 수도 있으며 지극히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외한인 나는 그 양극을 경험하며 나라는 주체와 장파라는 객체를 통해 어떻게든 가까이 가보려고 피눈물 나는 노력했다. 뿌듯함과 모호함이 남겨졌지만 역시 나의 한계는 그가 보여준 담론의 언저리에서 그저 서성거리고만 있었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책을 덮을 때는 이 책의 아우라가 내 주변에 아주 조금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

역사적인 기술을 읽는 재미는 과연 저자들은 어떤 필터로 그것을 보았느냐 하는 것과 어떠한 도구를 가지고 세계사를 훑으며 자신의 필터를 관철시켜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는 생각이다. 저자의 중국 미학과 서양 미학의 비교 관점은 그런 면에서 그 나름의 비교 방식을 선정하고 설명하고 풀어내는 솜씨에 웃음과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는 높은 산을 올라가는 리더의 역할을 아주 충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현실에서 동일한 현상을 보고도 우리는 100% 합일에 이르지 못한다. 가족간에도 의견의 불일치는 종종 일어나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견해를 가지고 사물을 대하게 마련이다. 하물며 지역이 다르고 나라가 다르고 게다가 오랫동안 교류하지 않았던 대륙끼리라면 그 차이가 이질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기본 명제와 그들의 살아가야 하는 모습은 그것이 크건 작건 비슷한 모습을 지니게 된다. 미학은 그 양상의 차이를 아주 잘 보이게 하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장파교수는 서문에서 참조체계라는 설명으로 중서 비교의 큰 틀을 설명한다.
“일찍이 철학가가 말했듯이 사물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는 그것이 무엇을 자신의 참조 체계로 삼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원칙으로 그러한 참조 체계는 무한하며 사물 역시 수많은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가 있다. “
그러니까 무엇을 근간으로 인간은 사유하고 표현해 왔으며 그것이 어떻게 나타났고 또 궁극적으로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가에 대한 설명을 서구사와 중국사의 구석구석을 건드리며 독자에게 납득시키고 있었다.

좀 더 작은 틀의 설명에는 전-이해라는 설명이 부가된다. “인간의 머리가 완전히 비어있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인간은 항상 전-이해(preunderstand)를 지닌 채 작품을 대한다. 전-이해에는 세 가지 측면이 포함된다. (1)이전에 존재했던 것 (2) 이전에 보았던 것 (3) 이전에 알았던 것,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문화적 전통, 시대적 관념, 개인적 경험, 개인적 특징이 하나로 융화된 전-이해를 지닌 채 작품을 대한다. 인간은 역사와 분리될 수 없듯이 전-이해와 분리될 수 없다. 만일 전-이해가 편견을 뜻한다면 그것은 “합법적인 편견”이다. 537p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인인 나는 크게 보자면 중국사,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구의 참조체계는 어쩌면 오늘날의 외적인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사유체계는 확실히 중국의 그것과 닮아있었고 더구나 내가 추구하는 이상은 도가의 그것과도 닮아 있음에 나의 전-이해는 그것에서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구의 숭고사상이 학습된 것이라고 한다면 중국의 그것은 원래부터 내 몸 안에 깃들여져 있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답답한 면도 있다. 바로 그것이 오늘 또 변화하려는 자신의 모습이니까. 그래서 깨트리고 싶고 사춘기 소년이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것처럼 내 안의 반항 세력이 꿈틀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미학에 관한 책들이 주로 서양의 그것이었다면 중국의 미학에 관한 글을 처음 대했다. 부분보다 전체를 중시했던 중국, 예라는 말의 강조, 사상의 변천..등등은 서구와의 차이를 확연하게 비교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저자의 태도는 중국 미학의 존재를 그의 의도대로 아주 잘 전달하고 있다고 보인다. 때때로 비극에서 서양이 불합리를 타파하는 데 반해 중국인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부분에서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힘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니 살짝 답답했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조금 흠을 잡으라면 지나치게 자세한 번역이 아니었던가 하는 느낌도 든다. 공능, 완정, 음양오행과 같은 내용은 한자로 그대로 써 주는 것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다.
서양의 비교에서는 수 많은 성당 가운데서도 유독 고딕 성당의 외면에 관한 언급이 많이 있다. 하늘에 가까이 가고자 했던 열망, 천일합일을 중요시 여겼던 중국과 가장 대비되는 개념이었을까, 건축에서 유독 고딕성당만이 몇 번이나 비교대상으로 채택되고 있다.

내 안의 점들이 군데군데서 희미하게 나마 일렬로 서 있는 형태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하얀 백지장에 컴퓨터 화면이 아주 느릿느릿 나타나는 것처럼 그렇게 보이려고 한다. 중국문화의 정수를 그린 책, 알게 되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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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번역002] 제 1장 Living the Mystery [3] [2] 香山 신종윤 2007.12.14 2169
1211 [국화와 칼] 서양과 다른 동양, 한국과 다른 일본 여해 송창용 2007.12.14 7067
1210 (34)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3] 時田 김도윤 2007.12.16 2407
1209 [36]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수정) [1] 한정화 2007.12.14 2232
1208 국화와 칼(菊と刀) / 루스 베네딕트 [3] [2] 香仁 이은남 2007.12.19 2301
1207 [36]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1] 써니 2007.12.12 2349
1206 국화와 칼 - 루스베네딕트 [2] [4] 우제 2007.12.12 2341
1205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file [1] 호정 2007.12.11 4463
1204 (35)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 장파 박승오 2007.12.10 2359
1203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소현 2007.12.10 2319
1202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2] 자로 2007.12.09 6002
1201 아름다운 경영 [8] 한명석 2007.12.09 2314
1200 [독서35]동양과서양,그리고 미학/장파 素田 최영훈 2007.12.07 2718
1199 [35]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장파 校瀞 한정화 2007.12.10 2861
»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 장파(張法) 香仁 이은남 2007.12.06 4643
1197 [번역001] 서문 - Change Your Thoughts...... [2] 香山 신종윤 2007.12.06 2158
1196 (33)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 장파 file 時田 김도윤 2007.12.06 2651
1195 [35]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장파 써니 2007.12.03 3150
1194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우제 2007.12.04 2563
1193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中西美學與文化精神) / 장파(張法) (1) file [3] 호정 2007.12.03 3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