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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0일 05시 09분 등록
中西美學與文化情神
동양과 서양 , 그리고 미학
- 아름다움을 비추는 두 거울을 찾아서

장파지음/유중하 백승도 이보경 양태은 이용재 옮김/ 푸른 숲


Ⅰ. 저자에 대하여
장파(張法)
1954년 중국 충칭시에서 태어났다. 쓰촨(四川)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北京)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그곳에서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1984년 런민(人民)대학교 철학교 교수로 부함한 이래 ‘중국미학사’와 ‘중서미학연구’ 등을 강의하고 있다.
‘미학연구소’소장과 ‘전국심미문화연구회’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중국 미학계를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중서미학의 비극의식》,《20세기 서구미학사》가 있다. 공동저서로는《중국예술학》,《중국 전통예술의 변천》,《천년화하예술의 개관》 등이 있다.

Ⅱ. 가슴으로 읽는 글귀(인용)

저자서문
[5] 사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는 그것이 무엇을 자신의 참조 체계로 삼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원칙적으로 그러한 참조 체계는 무한하며, 사물 역시 수많은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참조 체계를 결정하기만 하면, 사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지도 규정하게 된다.

[5] 한 텍스트의 의미는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 저자가 중국인(동양인)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쉽게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해제
[9] 이것은 현시대 인류의 최대 고압어니 동서 사상의 대융합, 그것도 정치·경제·철학·과학에 앞서 문화와 미학, 상상력과 미적 교육학이 도리어 근본적인 인간 삶과 세계 변혁의 창조적 초점으로 부각되는 이 시기에, 그리고 서양 쪽보다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 등의 그러한 영적인 미학 사상 내용에 더욱 시선을 많이 집중하고 있는 이 시기에 이 같은 노작이 나타난 것은 출판자 편집자의 말처럼 그야말로 의미 심장한 것이 아닐 수 없다.
* 김지하의 해제 중에서 일부

[9] 현대가 미학의 시대요, 감각의 대중 문화의 시대임은 누구나 안다. .... 그 감각성은 인간 간의, 그리고 인간과 사물, 기계, 또한 사유나 정서, 이미지, 기호와의 소통에 기초를 둔다. 이제 소통은 로고스 현상을 넘어선다. 로고스마저도 감각적으로 소통한다.
* 김지하의 해제 중에서 일부

[9] 감각을 통한 미적 체험이 참으로 삶과 세계 변혁에로 향한 교육학적 효과를 얻으려면 이같이 거의 완성에 가까운 오감 통합의 세련된 기계 기술적 과학 수준을 깊은 깨달음이나 오묘한 아우라의 체험에 연속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대한 대답을 현대 미학이 해야 하는 것이고 이 대답이 사이버 기술의 새 영역을 자극 개발할 것이다. 이래야 한다.
* 김지하의 해제 중에서 일부

[10] 유럽에서 신의 은총이 천재의 광기로, 다시 평상인의 무의식으로 연속되는 것이 중국의 경우엔 ‘신의 도움’이나 ‘신의 깃듦’, 또한 의외성, 예측 불가능한 출현 등으로 드러나는 데 여기에 깊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 나타나고 있다.
* 김지하의 해제 중에서 일부

[11] ‘작품의 계몽자도 오락의 대상도 감정 이입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소통자로서 감상 과정에 들어오는 것이다. 작품은 ...... 감상자를 통해 스스로를 초월하는 것이다. 감상 과정은 감상자와 작품이 양방향으로 초월하는 과정이다.’
* 영화 <취화선>에서 영화감독 임권택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드러냈다. 장승업의 입을 통해서 ‘그림은 살아서 꿈틀대는 것을 그리는 것’이라고 한 대목이 있는데, 장승업 흑수석 하나를 손에 쥐고 방바닥을 뒹굴면서 한가하게 놀면서도 돌도 살아 꿈틀댄다며 그림은 그걸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수석은 장승업에게 살아있는 것이요, 교류하는 존재였다.
*기운생동

[12] 이 아름다운 쌍방향의 성스러운 어떤 내면성의 생성(단순한 지양이 아니라면)이 가능하려면 거기에 먼저 주체와 타자, 즉 객체 안에서 감상 또한 창조 과정에 동시에 생성하는 어떤 성스러운 초월적 예감의 전체성이나 우주적 포괄성, 영감, 새 차원의 창조적 상승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전제가 주어지면 담론은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 김지하의 해제 중에서 일부

[13] 더욱이 미학적 소통은 결코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하나의 자기 내에서의 우주 전체의 완성이요 그 완성의 확장이며 그 확장된 큰 자기의 상호 겹침으로서의 감동이라는 새 아우라 영역의 창조 과정이기 때문에 입자적 개체와 압자적 개체의 수평적 재화가 전혀 아닌 것이다.
* 김지하의 해제 중에서 일부

[14] 미적 영감, 예감, 아우라의 초월성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하고 도 그것은 대중 복제의 민중적 미학에서는 어떻게 작동, 발현할 것인가?

[14] 천부경의 인중천지일, 무궤화삼

0장 서론
[21]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적 세계에는 영원한 진리의 추구를 공통 정신으로 가지고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로부터 기독교의 하느님, 헤겔의 절대 이념에 이르는 서구 사상에 그 정신이 담겨 잇고, 중국의 경우, 유·도·불의 도(道)와 진여(眞如)에도 그 정신이 담겨있다.

[22] *과학적 형태의 요구 조건
1) 기본 개념이 있을 것
2) 일관된 논리가 있을 것
3) 완전한 체계를 갖출 것
4) 보편성을 확보할 것

[23]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더둠 속에 숨어 있도다;
하느님이 말씀하시길, 뉴턴을 보내거라!
그리하여 모든 것이 밝아졌도다
- 알렉산터 포퍼

[24] 실제 작품이 전파될 때, 특히 민족과 문화를 넘어서 전파될 때에는 이론이 예측하지 못했던 뜻밖의 효과를 낳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이론이 제어력을 상실하거나 효력을 상실한 것이다. 따라서 교류가 빈번한 현대 사회에서 범문화적으로 전파되는 문학 작품을 연구함에 있어 예전의 문학 이론은 무능하다. 비교 문학에서의 영향 연구는 바로 여기서 생겨난 것이다.

[25] 아인슈타인, 후기 비트겐슈타인, 델리다의 사상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현대 정신에 따르면, 사물에는 최후의 본질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사물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가는 당신이 그것을 어떠한 참조 체계에 끌어들이냐에 달리 것이다.

[26] 사물은 참조 체계에 의해 결정된다.

1장 문화정신

[36] 문화는 자신의 정신적 기절에 따라 객관 세계를 구축하며, 이는 문화의 정신적 기질이 세계관 속에 외화되는 것이다.

[38] “천하만물은 모두 유에서 생기는데, 유는 무에서 생긴다(天下萬物비生于有, 有生于無)”

[45] 해석학에 따르면 세계는 이미 완성된 총체가 아니며, 당신이 그것의 총체성을 인식해 주길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세계는 과정의 집합체이며 그 과정은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46] “존재는 영원한 존재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파르메니데스

[48] 기의 세계에서 유와 실체는 기이며, 기의 응집이다.

[48] 무 역시 기로서, 유형의 사물의 시작이며 유형의 사물이 죽어 기가 흩어진 후 돌아가는 귀속처이다.

[59] “강가에서 어누 누가 처음으로 달을 보았을까, 강물 속 달은 어느 해에 처음으로 사람을 비추었나”

[60] “음과 양이 갈마드는 것을 일러 도라 한다.(一陰一陽謂道)

[61]


[63] 정체 공능은 정체가 부분을 규정하는 것이지, 부분이 정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64] 사람을 평가할 때는 정신과 기량을, 그림을 평가할 때는 기운이 생동하는가를 우선시한다.

[65] 회화에서도 “뜻을 충분히 담을 뿐, 색채의 유사함은 상관하지 않는다.” 서법에서는 “글씨의 세밀함이 아니라 의미를 주도 면밀함”을 문학에서는 “행간에 의미가 무궁함”을 추구한다.

[65] “시는 천지의 마음”
그림은 “붓 한 자루로 태허의 모습을 그려 내는 것(以一管之筆, 擬太虛之體)”

[67]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철인이나 지자가 예술이나 기술 혹은 우주에서 어떤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자. 그 진리에 대해서 중국인은 “입으로 말할 수 없고, 그 마음 속에 비결이 들어 있다”고 하거나, 혹은 “그것은 세속인에게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다. 요컨대, 마음으로 알 수는 있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정신으로 깨달을 수는 있지만 분명한 형체로 나타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구에서는 어떤 학자가 진지를 발견했다고 선언하면 사람들은 그에게 연필을 건네주며 “그것을 증명해 보라”고 한다. 증명하지 못하면 허튼소리임이 입증된다. 아니면 즉각 그의 말에 따라 실험을 해 보아서 그것이 옳은지 틀린지 그 진상이 온 세상에 밝혀지게 된다.

[73] 역사의 발전에 따라 낡은 제 1원리는 언제나 새로운 제 1원리에 의해 뒤집히고, 새로운 것은 더 새로운 것에 의해 뒤집힌다.
* 서양의 경우

[80] 가장 심오한 경지는 기술이 아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기술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며, 사람의 총명함과 재능의 문제이고, 사람이 도를 터득하는 문제이다.

[83] 도는 둘을 겸하는 것이지 둘을 초개 놓은 것이 아니다. 둘을 겸하기 때문에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며, 음양을 예측하지 못한다 하며, 한 번은 닫혔다 한 번은 열린다 하며, 밤낮으로 통한다 하는 것이다. 그 운행을 말로 표현하면, ‘도’이고, 그 예측 불가함을 말로 표현하면 ‘신(神)’이고, 그 끊임없는 생성을 말로 표현하면 ‘역(易)’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시실은 한 가리로 그것을 다르게 이름한 것일 따름이다.

[84] 기·음양·오행의 우주는 순수 자연적 우주가 아니라 문화적 우주이다. 그런데 중국인은 표층을 초월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우주의 본심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우주는 대단히 안정적이며, 변화시킬 필요도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적 우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2장 미학의 총체적 비교

[87] “도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 불변의 도가 아니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은 영원 불변의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 《노자》 1장

[87] 고대 중국인의 말을 들어 설명하자면, 사물이나 사상은 하늘에 거려 있는 달이고 언어는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저것이 달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손가락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보라는 것이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달이므로 달을 보면 손가락의 존재는 잊어야 한 듯이, 말은 의미전달이 목적이므로 의미를 파악하면 말 자체는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87] 배움에 있어서도 스승의 마음을 파악해야지 스승의 흔적을 좇아서는 안된다.

[95] 모든 예술은 모방이며, 그 모앙의 매개·대상·방식에 따라 음악, 회와 시 등으로 나뉜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106]《여씨춘추·대악》은 “음악의 유래는 오래 되었다. 그것은 도량에서 생겨났으며, 우주에 근본을 둔다”로 시작되며, 《역대명화기》는 “대저 그림이라는 것은 교화를 이루고 인륜을 도우며, 자연의 변화를 궁구하고 미세한 기미를 예측하는 것으로, 육경과 동일한 힘을 지니고 잇으며 사계절과 함께 운행한다.”로 시작된다.

3장 문화적 이상의 표현:화해(和諧)

[118] 가장 아름다운 것이 구체적 사물로 표현될 때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띄게 된다.

[120] 음악은 가장 신비로운 것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박자를 중심으로 하는 원시 음악은 아주 교묘하게 사람들의 행동을 조정하며, 신의 힘은 음악을 통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이다.

[125] 화해란 국을 끓이는 일과 같다. 국을 끓이기 위해선 물과 불을 분비하고, 육장을 마련하고, 음식의 간을 맞추고 생선과 고기를 삶고 장작으로 불을 때야 하는데, 요리사가 그 국을 화해시키고 고르게 하여 맛을 낸다. (중략) 군자를 그것을 먹고 마음을 가지런히 한다. (중략) 선왕은 다섯 가지 맛과 다섯 가지 색으로써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정치를 고르게 한다. -《좌전·소공20년》에서

[126] 음악의 화해와 자연의 기가 상호 연관되어 우주적 화해의 기초를 이룬다면, 음식의 화해와 인체의 기의 연관 관계는 사회적 화해의 기초가 된다 하겠다. 요리할 때 사용되는 솥(鼎)은 상고 시대 국가의 최고 상징이었다.
* ‘이몽학 왜란을 틈타 기어이 충남 금산에서 솥을 엎었습니다.’

[129] 화해는 본래 질적으로 상이한 요소의 배합을 뜻한다. 동질적이 요소의 조합은 그 수량이 아무리 많아도 ‘동(同)’이지 ‘화(和)’가 아니다.

[142] 태양은 매일 새롭게 떠오른다.

[148] 건축의 허는 사라들로 하여금 폐쇄도니 원 내에서 자연의 기운, 우주의 차고 비는 것을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게 해 준다. ...... 대나무를 심으니 “바람 속 비 속에서 소리를 내고, 해 속 달 속에선 그림자 드리우고, 시 속 술 속엔 정이 담기고, 한가함 속 번민 속에선 벗이 되누나. 집안 가득한 조그만 풍경에 정이 생기고 맛이 생기니, 새로움이 오래도록 그득하다.”

4장 문화적 곤경의 표현: 비극

[157] 리우으어는 《노잔유기》<자서(自序)>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소>는 굴원의 울음이고 《장자》는 장주의 울음이며, 《초당시집》은 두보의 울음이다. 우욱은 시를 불어 울었고, 팔대산인은 그림으로 울었다. 왕실보는 《서상기》에 울음을 담았고, 조설근은 《홍루몽》에 울음을 담았다.
* 내 첫 번째 책도 나의 울음을 담을 가능성이 크다.

5장 문화적 초월 의지의 표현 : 숭고

[219] 찬란한 로마 제국은 바로 로마인 자신의 업적이가 성공이었으며, 카이사르의 명언-“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이 이를 가장 적절히 개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20] 속되고 비루한 생물은 대자연이 인류를 위해 계획한 것이 아니다. 대자연은 우리를 낳아 이 우주 속에 살도록 했다. 우리가 위대한 경지가장에서 그의 업적이 관중이 되고, 웅심을 가지고 겨루는 경기 선수가 되도록 처음부터 그는 우리의 영혼 속에 무적을 향한 열애, 모든 위대한 사물과 우리보다 신성한 사물에 대한 열애를 심어 놓았다. 따라서 온 세상조차 인류 t상이 비상하기에는 부족하다. 인간의 영혼은 모든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모든 생명의 영역을 관찰하여 도처에 존재하는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사물을 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요컨대, 일상에 필요한 모든 사물을 사람들은 평범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즐기면 도리어 영혼을 흔드는 놀라운 사물들인 것이다. - Longinos <숭고론>중에서

[220] 숭고한 말이 청중에게 주는 효과는 설득이 아닌 미칠 듯한 희열이다.
..... 수고는 수천의 군대를 쓸어버리는 불가항력의 작용을 일으킨다. 그것은 독자들이 원하든 말든 모든 독자를 조종한다.

[224]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본성을 알며, 그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아는 것이다. 그 마음을 보존하며 본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 《맹자·진심(상)》에서

[233] 천리나 되는 먼 거리로도 그 큼을 잴 수 없고, 천 길 높이로도 그 깊이를 잴 수 없다. 우임금 때는 10년간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어도 불어나지 않았고, 탕임금 때는 8년간 일곱 번이나 가물었어도 줄지 않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고 비가 많건 적적 늘거나 줄지 않는다. 이것이 동해의 큰 즐거움이다. 《장사·추수(秋水)》에서
* 여기서 바다는 무형의 도를 구현한 것이다.

[233] “산수로 아름다운 도를 표현하니 인자가 즐겁다.”

[235] 중국에서 큰 산과 강이 숭고 객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서구와는 다른 의식에 기반한다. 산과 바다는 적대적인 형상이나 신을 거역한 추악한 조형도 아니고, 헤겔의 이론 체계에서 점하는 낮은 지위를 갖지도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양강한 천지의 정기이며,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자연인 것이다.
* 금강의 화가 기산 정명희님은 금강의 물결과 그 위를 자유로이 나는 새를 그리신다. 새를 통해 자신과 우주의 자유를 본다. 그가 40년 넘게 그려온 것은 오직 금강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것은 금강만이 아니라 온 우주이다.

6장 문화적 자유로움의 표현 : 부조리와 소요(逍遙)

[245] 하는 외재적인 것-자연법칙과 사회의 규범에 의한 구속-이며, 다른 하나는 내재적인 것-육체라는 자연과 심리 관념(내화된 사회적 관념)의 수속-이다. 자유와 구속의 대립은 발전을 추구하는 인간의 운동 본능과 상대적으로 정지를 추구하는 자연 및 사회적 법칙 간의 대립이다.

[249]


[250] 자신이 만들어낸 진실의 허구성을 발견했을 때, 인간은 더 이상 허구적 진실을 신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신은 죽었다.

[251] 온 세상은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자연계는 자연 법칙에 따라 운동하며, 인간 사회는 사회적 법칙과 역사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다. 법칙을 어기면 인간은 법칙의 처벌을 받는다. 법칙을 장악해야만 인간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251] 교통 사고의 필연적 발생률과 운전자가 사고를 당할 가능성은 법칙과 논리에 의거하여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칙은 왜 ‘내’가 하고를 당하게 되는지는 영원히 설명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수많은 연애 공식을 알고 있지만, 그 공식으로는 왜 하필 ‘내’가 실연을 당해야 하는 지는 해명해주지 못한다.
... 중요한 것은 특정한 사고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며, 당시의 독특한 고통이 어떤 의미를 진다는 사실이다.

[252]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 죽은 것은 필연이다.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늙고 죽는가는 우연이다. ........ 은연중에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존재자는 더 이상 없다. 인간은 자유로워진 것이다.

[254] 서구 현재인의 실존주의적 자유는 신이 사라진 자유이며, 법칙을 부정한 자유이고, 필연에서 벗어난 자유이다. 이러한 자유와 필연적으로 결합된 것이 부조리이며, 따라서 자유와 부조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254] 그들 공통의 뿌리는 없는 것인가?
존재(고대), 이데아(플라톤) - 신(중세) - 절대이념(헤겔 이후 근대)

[256] 잘못된 이유라도 설명될 수 있는 세계는 낯익은 세계이다. 그러나 반대로, 느닷없이 환상과 빛을 박탈당한 세계에서는, 인간은 소회된 사람 또는 이방인 같은 기분이 된다. 그는 잃어버린 고향의 기억도 혹은 약속된 땅의 희망도 빼앗긴 까닭에, 그의 유형(流刑)에는구제 방법이 없다. 인간과 그의 삶, 배우와 그 무대 장치 간의 이러한 괴리가 바로 부조리의 감정이다.
*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257] 인간은 자아에 집착하여 이방인이 된다. 세계 역시 인간에게서 멀어져 카프카가 묘사했던 바로 그러한 세계, 부조리극과 블랙 코미디가 묘사했던 바로 그러한 세계가 된다.. 인간이 자아에 집착하면서, 타와 타인 사이에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257] 유적 존재와는 다른 나를 부각시켜 신과 법칙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지만, 그때의 자유는 부조리하다. 외재적 법칙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타인의 법칙이 자신에게 행하는 압력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261] 식욕과 성욕은 본성이다.(食色, 性也) -《맹자·고자(告子)》에서

[262] 좌망은 ...... 내면적인 기의 흐름에 전념하여 “뜻을 하나로 하여,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고, 마음이 아닌 기로 듣는 것”이다. 인체의 기는 우주의 기와 상통한다. ..... “기는 비어 있어서 만물을 받아 들일 수 있다. 도는 빈 곳으로 모이니”

[278] 중국의 소요가 의지처의 진정한 소멸, 극단적 자유에 이르게 되자 소요는 몽환감을 띠게 되었다. 선종이 의지처를 소멸시킨 진정한 소요에 도달하려고 한 결과로 도리어 자연 인성론의 발생을 촉진시킨 것이다. 자연 인성론은 이지 사상에 집중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 인성론이 대두되자 은거와 소요는 더 이상 중국 문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 6장의 마지막 부분으로 7장의 논지를 불러 들리는 부분

7장 문(文)과 형식, 그 심화

[281] 예(禮)는 사회의 문(文)이다.

[284] 척도와 비례를 유지하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 플라톤
미는 ‘크기와 질서 있는 배열에 달린 것’이며 미의 주요 형식은 ‘질서와 비례의 명확성’이다.

[293] 내용이 말보다 앞서면 직설적이 되고, 말이 내용보다 앞서면 늘여 쓰게 된다. 내용과 말이 잘 어우러진 것이 경전의 문장이다. -양웅의 《법언(法言)·오자(吾子)》에서

[296] 주체의 차원에서 천재는 형식을 무시하고 스스로 형식을 창조했다. 객체의 차원에서 숭고는, 총체적 조화에 속하여 자체 형식 주조를 지녔던 중세의 추와는 달리, 무형식과 무한을 특징으로 하며 인간의 영혼을 놀라게 했다.

[298] 오리엔트의 상징형 예술은 형식이 내용보다 크고, 그리스의 고전 예술은 형식과 내용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근대의 낭만형 예술은 내용이 형식보다 크다. 이것이 미적 이념의 역사적 전개이다. 예술 유형에서 건축은 상징형에 속하며,조각은 고전형에 속하고 회화나 음악·시는 낭만형에 속한다. 역사 유형과 예술 유형에서 형식과 내용의 다양한 관계란 예술 개념의 본지로가 이상의 차원에서 본 것이다.

[298] 예술 이념의 발전이란 차원에서 보면, 예술 유형의 각 부분은 내용과도 일치한다. “이념 자체가 외재적 형상의 내재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상징적 유형은 “이념이 추상적이며 아직 규정되지 않은 것”이다. 고전적 유형은 미적 이념이 그 이상에 도달한 것이다. 낭만적 유형에서 미적 이념은 절대 정신이다. 그것은 독립된 정신으로 외재 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정신 자체로 되돌아가려 한다.

[299] 천이 불면하면 도 역시 불변하는(天不變, 道亦不變) 중국에서, 형식과 내용의 모순-문이 질을 압도하거나 질이 문을 압도하는 경우, 내용이 말보다 앞서거나 말이 내용보다 앞선 경우, 문을 위해 정(情)을 만들어 내는 경우, 아름답지만 지나친 경우-은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었다.

[301]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며 상이한 형식은 상이한 의미를 갖는다. - 쿠르체니치
*즉, 새로운 형식은 새로운 내용을 창출한다.

[303] 먼저 잉가르덴의 다층적 구조론을 보자. 그에 따르면 무학 작품은 발음 층위·의미 단위 층위·도식화 층위·재현된 객체 층위로 이루어진다.
.... 이 네 가지 층은 하나하나 심입의 과정이다. 첫 번째 층이 없으면 두 번째 층이 없고, 두 번째 층이 없으면 세 번째 층이 없으며, 세 번째 층이 없으면 네 번째 층도 없다. 잉가르덴은 작품에는 이 네 층차 외에 형이상학적 특질이 있다고 한다. 즉 다소 심오한 삶의 경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비극성·숭고함·기괴함·가벼움 등이 그것이다.
* 층차의 우리말의 ‘단계’와 같은 말로 이해했다. 층차라고 하니 어감이 이상하다.

[308] * 노드롭 프라이의 운형 비평가 구조주의 (문학에 대해서)
1단계 - 단어와 그 의미 : 단어는 객관 사물과는 관계가 없다. 그 문학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2단계 - 묘사 : 인물과 사건을 묘사하며 묘사와 서술은 언제나 일방적 방식에 의거한다.
3단계 - 형식 : 형식은 주로 이미지 구조에 의해 구현된다.
4단계 - 신화 : 문화적 자율적 체계를 드러내며 독자의 인식적 양식을 열어준다.

[309] 바다나 황야와 같은 상징은 콘래드나 하디의 작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작품에 확대되어, 무학 전체의 원형적 상징으로 될 수 있다. 흰 고래는 멤빌의 소설에만 머물 수 없으며, 그것은 《구약》이래 바닷속에 살고 잇는 괴물이나 용에 대한 우리의 상상적 경험 속에 흡수되어져 있는 것이다. - Northrop Frye
* 신화의 층위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든 부분

[311] *인물 품평론
인체를 목·금·화·토·수·를 생리적인 골(骨)·근(筋)·기(氣)·기(肌)·혈(血)에 대응시키고, 이를 다시 사회적인 품격인 인(仁)·의(義)·예(禮)·신(信)·지(智)에 연관시켰다. 그리고 인물에 대한 전면적인 고찰은 “구정(九征)”-신(神)·정(精)·근(筋)·골(骨)·기(氣)·색(色)·의(儀)·용(容)·언(言)-으로 세분할 수 있다고 했다.

[315] 역사적으로 중국 미학에서는 ‘시는 자신의 뜻을 마로 나타낸 것이다.’와 ‘글은 그 사람과 같다’는 명제를 신봉했다.

[317] 사혁은 그림의 육법(六法)으로 전이모사(傳移摸寫)·기운생동(氣韻生動)·골법용필(骨法用筆)·응물상형(應物象形)·수류부채(隨類賦彩)·경영위치(經營位置)를 내세웠는데, 이는 다시 기운·골법·형색·의 세 층위로 나눌 수도 잇고 기·운·골·형·색·근 등 다양한 층차로 나눌 수도 있다.

[317] 문학의 경우, 우협은 정(情)과 문(文), 풍(風)과 골(骨)-“문장에서 골을 필요로 하는 것은 몸의 뼈대이 세우는 것과 같고, 정감이 풍취를 머금은 형체가 기를 품음과 같다”의 두 층위를 논했다. 왕꿰웨이는 세 층위 - 구(句), 골(骨), 신(神)-을 논했다.
* 첼리스트 장한나 철학을 배워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음악을 폭 넓게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날 지휘를 하고 있었다. 담다디의 가수 이상은 미학을 공부하였다. 새로운 음악을 가지고 대중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었다.

[320] 예술 내용에 대한 정치 윤리와 논리 개념의 지배를 타파하고 나서, 서구 미학은 다층적 구조론으로 나아갔고 중국 미학은 인체학적 구조론을 형성했다.

8장 전형과 의경

[322]

* ‘전경과 의경, 그 문화 정신’에서 전형론의 핵심 구도

[327] 발생한 가능성은 있지만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 발생할 가능성은 없어도 있음직한 것을 택하는 것이 낫다. ..... 예술가는 모델보다 더 나은 것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이상적인 모습’에 관하여 말하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336] 특수는 참조 체계 속에 위치하게 되었고, 참조 체계의 변화에 따라 특수의 ‘성격’과 ‘의미’도 변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특수는 ‘변형’이 되었다.

[337] 전형의 핵심이 어떤 ‘형’으로 문화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라면, 의경의 핵심은 어떤 ‘경’으로 문화를 가장 잘 찬미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341] 성당의 시는 ‘바다의 해가 남은 밤을 헤치며 떠오르고, 강의 봄이 묵은 해를 밀어내며 다가온다’와 같다. 중당의 시는 ‘바람이 녹다 남은 눈과 함께 일어나고, 강물이 얼음 조작과 더불어 흐른다’와 같다. 만당의 시는 ‘닭 울음 울고 초가집 지붕엔 달이, 인적은 판교 위 서리에’와 같다. - 《시수》에서
* 나 또한 신영복님의 강의를 읽고 저자를 이런 식으로 얘기했었다.

[345] 봄산은 웃는 듯이 아름답고 화사하고, 여름산은 방울져 떨어질 듯 비취빛으로 우거져 있다. 가을산은 화장한 듯 밝고 맑으며, 겨울산은 장자는 듯 쓸쓸하고 담박하다. - 곽희의 《임천고지》에서

9장 창작론

[369] 인간이 자기 자신과 주위 세계를 대하는 방식은 예술 작품 속에 선명하게 구현된다. 인간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방식에는 문화관과 심미관이 집중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371] “나는 마음을 따르고 그 마음은 눈을 따르며 눈은 화산을 따른다.”고 한 것은 조화에 대한 주석인 셈이다. 조화를 본받는다는 원칙으로 인해 중국의 예술 세계는 대부분 자연 세계이다.

[373] * 모방의 세 가지 경로
(1) 현실 속의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어 모방한다. 예)인상주의
(2) 무수한 일반 사물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종합해 낸다. 예) 현실주의
(3) 성공적으로 자연을 모방한 다른 사람의 작품을 모방한다. 예)고전주의

[375] 서구의 화가는 반드시 풍경을 앞에 놓고 그려야 하므로, 사생은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다. 화가는 예리한 눈으로 풍경을 선택하여 구도를 잡고, 초점 투시·거리 비율·색채 효과를 통해 아름다운 자연을 그려 낸다.
..... 중국 화가는 언제나 “실컷 돌아다니면서 한껏 보고 나서 그것이 가슴속에 역력하게 새겨지는” 경지를 추구했다.

[379] 음양이 만물을 만들어 키우고, 만물은 온 세상에 널려 있다. 현묘한 변화는 말이 없고, 신령한 기술은 진실로 아득하다. 초목이 영화롭게 펼쳐짐은 알록달록한 색깔 때문이 아니다. 구름이 떠다니고 눈이 흩날리는 것은 흰 물감으로 희게 하는 데 의존하지 않는다. 산은 푸른색에 의존하지 않아도 비취빛을 띠며, 봉황은 오색에 의지하지 않고도 아름답다. 이런 까닭에 먹을 이용해도 오색이 구비된다. 이를 득의하고 한다. - 《역대명화기》에서

[385] 서고는 실체를 위로고 하기대무에, 모네는 20여 일 동안이나 같은 시각에 들판에 나가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서구의 우주는 실체적이다. 그래서 자연을 모방하는 서양화는 초점 투시를 사용하며 배경은 모두 실제의 경치이다. 중국의 우주는 기의 우주이다. 그래서 중국의 시와 회화에서는 산점 투시를 사용한다. 그림의 배경은 대개가 여백이며, 시의 최고 경계 역시 “글의 끝이 저 아득하고도 아득한 곳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388] 마음의 티끌을 없애고 기의 불꽃을 소멸시켜야만, 붓을 놀려도 깊은 산중에 있는 듯하고 집에 있어도 들판이나 계곡에 있는 것처럼 된다. - 《화학심법문답》에서

[398] “산에 오르면 온 산에 정이 가득하고, 바다를 보면 바다 전체에서 뜻이 넘쳐 흐른다.”

[399] 문여가는 대나무를 그리면서 “멍하니 나를 잃고 대나무다 되었다”고 했고, 나대경은 풀벌레를 그리면서 “모르겠다. 내가 풀벌레가 된 건가? 풀벌레가 내가 된 건가?”라고 했다.

[399] 누군가를 대신해서 말하려면, 우선 그 사람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꿈에서 왕래하고 혼이 되어 함께 노니는 것이 아니라며, 어떻게 그의 처지가 되어 보겠는가? 단정한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려면 응당 처지를 바꿔 단정한 생각을 대신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사악한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려 해도 응당 정도를 버리고 권모 술수를 따름으로써 잠시나마 사악한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 《한정우기》에서

[406] 봄 햇살은 느릿느릿, 가을 바람은 솨아솨아. 선물인 양 정(情)을 보내니, 답례인 양 흥(興)이 찾아온다. -유협의《문심조룡·물색(物色)》에서

[406] 글은 다했어도 뜻의 여운이 남는 것을 이르러 흥이라 한다. -종영의《시품》에서

[413] 직관은 개념에 의거하지 않음으로 그것을 찾을 수 있는 논리가 없고, 현실에 의거하지도 않으므로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실체도 없다. 따라서 직관은 흥과 마찬가지로 영감의 특성을 갖는다. 하지만 직관과 흥은 많은 점에서 다르다. 흥은 기와 연관된 것이어서 ‘텅 비어 있으면서도 변화 무쌍하다.’

10장 영감

[415] * 영감
1) 불규칙적이어서 논리적으로 추출할 수 없다. 2) 영감은 인간의 의지에 좌우되지도 통제되지도 않는다. 3) 초월적이다.

[419]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연기자가 “바로 그 인물”이 되었을 때, “연기하는 인물의 삶과 자신의 삶이 어느 순간 완전히 하나가 되어 당신은 의식이 멍해질 것이다. 그때 당신은 자신이 그 배역의 일부이며, 그 배역도 당신의 일부라고 느낄 것이다.”고 했다.

[428] 경물에는 변치 않는 자태가 있지만 생각에는 일정한 규칙이 없다. 때론 소홀이 해도 극치에 이르는 반면, 때론 심혈을 기울여도 엉성한 경우가 있다. - 《문심조룡·물색》에서

[432] 신의 은총설에서 시인은 신을 대신하여 말하는 꼭두각시일 뿐이며, 예술 창조는 완전히 신의 몫이었다. 천재론에서 예술은 인간, 즉 천재의 작품이다. 따라서 단순한 영감론이 아니라, 영감과 예술가의 천부적 특성을 결합시킨 이론이다. 천재의 출현은 서구 근대 문학 발전의 결과물이며, 천재론은 근대 정신으로 영감을 재해석한 것이다.

[439] (예술가는) 자신의 영혼을 거울로 삼는 습관이 있다. 그 거울은 전우주를 비추어 볼 수도 잇고, 자신이 원하는 지역과 풍속, 다양한 인물과 그들의 욕망을 반영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우리가 품격이라고 말하는 그런 논리나 고집이 결여되어 있다. 그는 무엇이든 가정할 수 있고 무엇이든 체험할 수 있다.

[440] 중국의 천재론은 사실상 인품론이다.

[441] 기는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고, 길러 낼 수 있을 뿐이다.

[444] 화가의 육법 중에서 그 첫째가 기운 생동인데, 기운은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으로 하늘이 준 것이다. 하지만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여 흉중의 더러운 먼지를 털어내고, 자연의 산천을 마음속에서 경영하면서, 경계를 이루어 손 가는 대로 그려내면, 그것으로도 산수의신을 전달할 수가 있다.

[451] 억압은 정신 분석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무의식의 내용은 의식에 의해 거부된 것이지만,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생명의 존재로서 쾌락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다. 프로이드의 말을 빌면, 본능은 쾌락을 추구하지만 의식은 현실 원칙을 추구한다. 무의식적 본능은 자신의 쾌락을 추구할 뿐, 현실이 그 본능의 실현을 용납할 것인지 여부는 고려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의식은 본능이 현실에 맞게 실현되도록 조정한다. 무의식은 시시각각 의식의 방어막을 뚫고 현현하고자 하며, 의식은 부단히 무의식의 출현을 억압하고 저지한다. 인간의 내면에서는 언제나 의식과 무의식의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452] 예술가는 창작을 통하여 자신의 꿈을 마음껏 누리며 자책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453] 허구적 인물에게 피와 살이 있는 육체를 부여하는 일은 표현할 길 없는 자신의 자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며, 이를 통해 작가는 자유로운 해방의 쾌감을 얻게 된다.

[453] 스타니슬라프스키도 성격배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본인의 이름을 가지고 선량한 사람이나 착한 사람을 연기할 때는, 다른 사람의 우수한 점을 자신의 이름에 덧보태는 것이 겸손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탕아나 사기꾼을 연기할 때도 자신의 으름에 그런 나쁜 점이 덧보태지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분장을 하면, 사람들은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자신의 나쁜 습관과 우수한 자질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뿐만 아니라 가면을 쓰지 않았을 때는 할 수 없는 마리나 행동도 거침없이 하게 된다.’
* 그럼 하나 쓰면 되겠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는 이미지 트레이닝 할 때

[456] “오래되면 자연히 깨닫게 된다.”

[457] 나이 마흔에 종군하여 남정에 주둔하고 보니, 주연이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공놀이하는 운동장은 천보나 되고, 마구간의 말은 삼만 필이나 된다. 화려한 등불이 줄줄이 늘어선 누각엔 노랫소리가 가득하고, 꽃비녀의 고운 춤사위가 자리를 비춘다. 비파의 현이 우박 쏟아지듯 요란하고, 북 치는 손놀림은 폭풍우처럼 질주한다. 삼매경에 빠졌던 시인은 문득 앞을 보니, 굴원과 가의가 눈앞에 생생하다. 하늘 베틀과 구름 비단을 쓸 수 있는 방도는 내 안에 있으니, 마름질할 묘방은 칼이나 자가 아니로다. - <구월일일야독시고유감,주필작가>에서

[460] 서구의 영감론은 신의 은총설에서 천재론을 거쳐 무의식론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대립-시인과 뮤지, 보통사람과 천재,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 중국의 영감론은 자아 상실을 통해 영감을 획득하는 것이다.


11장 미적 주체

[464] ‘예(禮)’자의 갑골 문자형은 ‘풍(豊)’자로, 이는 음식을 담은 제기의 형상이다. ..... 주례에 따르면 제왕의 거처를 책임지는 4,000여 명 중에서 약 3,200여 명 또는 80% 이상이 음식을 관장하는 일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리 기구인 ‘정(鼎)’은 하·상·주 삼대 정권의 최고 상징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원시 시대 이후 주대까지 먹고 마시는 행위가 단순한 식욕 충족을 넘어서 좀더 깊은 문화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때의 쾌감은 단순한 생리적 쾌감이 아니다. 입과 배의 즐거움 속에는 형이상학적인 정신적 즐거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466] 고대 문자 중에서 술이 가득 담긴 그릇을 뜻하는 ‘유(酉)’자를 편방으로 하는 글자 - 순(醇), 둔, 담(醰) 등-와 고기를 뜻하는 ‘육(肉)’자를 편방으로 하는 글자-첨·태(胎)·담·등-는 그 뜻이 모두 ‘미(美)’이다. 물론 이때의 미는 그 맛에 존재하는 것이다.

[470] 중국의 미감 주체는 오관이 통일되어 있다.

[482]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일이지만, 도를 행함은 날마다 덜어내는 일이다.”

[486] 지식은 사물에 대한 체험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체험에서 생겨나는 사유 속에 있다. 분명한 사유를 통해서만 사물의 ‘존재’와 사물의 원리에 도달할 수 있다. 감각적으로 불가능하다. - 플라톤

[503] * 심리적 거리설
미감을 획득하려면 반드시 실용적 태도에서 벗어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12장 감상방식

[507] 미적 감상 방식에 있어 중서의 특색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관조 방식에 있어, 중국에서는 위로·아래로·멀리·가까이 눈을 돌리며 보고, 서구는 가장 아름다운 범위를 선택하여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 (2)표층을 뚫고 심층을 관상하기에 있어, 중국에서는 ‘맛보기’와 ‘몸으로 깨닫기’에 유의하며, 서구에서는 인식과 본질 규정을 중시한다. (3)미적 감상과정에 있어, 중국에서는 주체가 마음을 비우고 정과 아를 버림으로써 배상이 지진 신비로운 운치를 체득한다. 서구에서는 주체가 정욕을 발산함으로써 스스로를 정화시킬 것을 주장한다. (4)미적 효과에 있어, 중국에서는 주체가 미적 감상을 통해 스스로를 고양시켜 객체의 경계에 도달할 것을 요구한다. 서구에서는 주객의 교류 과정에서 주체가 자신과 대상의 한계를 초월하여 주객이 모두 경험하지 못했던 경계에 도달할 것을 요구한다.

[514] 순환적 우주관을 지닌 중국인은 먼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멀리 가면 반드시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높은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높아지면 반드시 낮아지기 때문이다. ‘끝간데까지 이르는 것(窮)’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끝간데까지 가면 새롭게 변하기 때문이다.

[516] 중국인은 눈 돌리기를 통해 객관 대상의 기운을 찾고자 했으며, 서구인은 최적의 시점을 찾아내서 그 사물의 가장 아름다운 측면을 드러내려 하였다.

[520] 곽박의 시에 이르길,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시냇물에는 멈춰 선 물결이 없다”고 있는데, 완부가 말하길 “ 큰 물소리나 소슬한 바람소리는 실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이 시를 읽을 때면 나는 언제나 정신과 형체가 만물을 초월함을 느낀다”고 했다. - 《세설신어·문학》에서

[525] 눈 돌리기와 초점 맞추기, 몸으로 깨닫기와 인식은 미적 인식론을 중심으로 감상 방식을 논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주체가 객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느끼는가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526] 작품의 감상자는 일 대 일 대응관계에 있다.
* 역기와 순기에 대하여

[533] 예로부터 실컷 웃거나 말하는 것은 슬픔의 무게를 해소시키거나 잠시 동안이라도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이라고 간주되었다.

[535] “작자는 한 가지 생각으로 쓰고, 독자는 각자의 감정에 따라 이해한다” - 왕부지

[535]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그 거대한 체재를 배우며, 재능이 보통인 사람은 그 아름다운 글귀를 터득하며, 시를 즐겨 읊는 사람은 거기에 묘사된 자연을 기억하고, 학동들은 거기에 담긴 풀 이름만 주워 섬긴다. - 《문심조룡·변소》에서
* 허허허. 나는 이 책에서 미학보다도 그림에 관한 글귀가 나오면 마음에 가나 보다.

[536] 사마천은 “높은 산 우러러 보며, 넓은 길을 따라간다. 비록 그 경기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마음만은 그(공자)를 향하리라”고 하였다. 마음으로 그를 향해 가는 것은 좋은 작품을 감상할 때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538] 작품은 절대 그 의미가 확정되어 있거나 감상자의 인식을 기다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작품은 불확정적이며 개방적이고 감상자가 불굴하고 해석해 주기를 기다리는 존재이며, 감상자와 더불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존재이다.
* ?????

[538] 감상자의 성질과 작품의 성질이 감상 과정의 성질을 결정한다. 이것은 주체와 주체의 대화이다. 감상 과정에서 작품과 감상자는 상이한 관점과 개성을 지닌 두 명의 개인과 마찬가지로 서로 묻고 대답하면서 관점을 교정해 가는 개방적 태도를 갖는다. 자신의 ‘시계’ 속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진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539] 작품은 새로운 감상자와 관계를 맺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함으로써 그 의미가 풍부해지고, 감상자를 통해 스스로를 초월하는 것이다.

[539] 감상과정은 감상자와 작품이 양방향으로 초월하는 과정이다.

<발문> 아름다움을 비추는 두 개의 거울

[540] 우연히 눈길을 낚아채는 대목이 있었다. 미인(美人)과 그 미인을 기다리다가 애가 타고 애간장이 녹아 내린 추구자(追求者), 그리고 봉건 질서를 유지하는 골간이 된 예(禮)라는 덕목, 이들 삼자를 삼각관계, 아니 삼각의 구도로 파악한 그림이 그것이다.

[541]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가리켜 이른바 ‘동방의 이소(離騷)’라 하여....

<저자 서면 인터뷰>

[553] 문(유중하) : 문화의 충돌을 거쳐 다시 문화의 종합을 전망한다면 중과 서는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보는지, 다시 말해서 중국이-범위를 넓혀서 이야기 하자면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서구 세계에 제공할 수 있는 미의 핵질은 무엇이며, 그 이전에 우리가 서구로부터 공급받았던 미의 여러요소 가운데 가꾸고 보존해서 더욱 발양시켜야 할 핵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553] 본서에서는 ‘서방’이라는 용어로 고대희랍과 로마문화라는 기초위에 헤브라이에서 기원한 기독교 문화를 융합하여 성장해 온 서구문화를 지칭하였습니다.

[553] (저자) 현대에는 서구의 문화가 중국 문호의 기본 구조를 크게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중국 문화는 서구의 문화를 흡수하는 과저에서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모순이나 고통과 유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 저자의 답변

[554] (저자) (1)서구 문화는 전지구화된 오늘날의 세계에 무엇을 제공해 주었는가? 중국 문화는 오늘날의 세계에 무엇을 제공해 왔고 무엇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이것은 두 가지 문제를 포함합니다. 첫째 중국의 고대 문화가 어떠한 문화적 자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둘 째 중국의 고대 문화와 서구의 충격을 계기로 하는 현대화 경험은 오늘날의 세계에 어떠한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 유가와 불교를 기초로 하는 줄곧 서구의 충격이라는 도전에 응전해 왔고, 또한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도 한 동아시아가 오늘날 세계에 무엇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

[555] (유중하) 동아시아의 음양이론적 미학과 서방의 변증론적 미학 사이의 미적 원리가 상호 소통도리 수 있는 가능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556] (장파) 사상은 하나의 도구이며 여러 다양한 사상은 갖가지 다양한 도구에 해당하고, 각 도구는 다른 것이 대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용도를 지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이야기하면, 어떤 도구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 도구를 가져다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만약 현재의 도구가 새로운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가 생겨난다고 하면, 그때가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야 할 시기가 됩니다. 오늘날과 같이 아주 복잡한 세계에서 하나의 도구를 만능 도구로 변화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와 같은 인류의 도구를 잘 이해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현실적 수요에 근거하여 새로운 도구를 창조해 냄으로써 도구 창고들의 재고를 증가시키는 일입니다. 다양한 여러 사상은 문화적이면서 동시에 인간학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이 어떤 사상들간의 융합을 필요로 한다면 그 사상들은 자연히 융합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융합이 필요치 않은 때라면 사람들은 그 사상들을 융합시키려고 노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Ⅲ. 내가 저자라면

1) 책 내용을 정리하는 발문
유중하 교수의 발문은 나중에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보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 전체를 보는 눈을 제시했을 터인데 놓쳤다. 그러나 본문을 다 읽고서 책 전체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2) 저자와의 서면 인터뷰
‘Ⅱ.인용’에 몇 개의 질문과 답변을 옮겼다. 유중하 교수의 질문은 속의 말을 한국이라는 부분으로 대치해서 본다면 코리아니티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유중하) : 문화의 충돌을 거쳐 다시 문화의 종합을 전망한다면 중과 서는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보는지, 다시 말해서 중국이-범위를 넓혀서 이야기 하자면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서구 세계에 제공할 수 있는 미의 핵질은 무엇이며, 그 이전에 우리가 서구로부터 공급받았던 미의 여러 요소 가운데 가꾸고 보존해서 더욱 발양시켜야 할 핵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p.553)

이에따른 저자의 답변은 자신이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대답대신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고 제시했다.

(저자) (1)서구 문화는 전지구화된 오늘날의 세계에 무엇을 제공해 주었는가? 중국 문화는 오늘날의 세계에 무엇을 제공해 왔고 무엇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이것은 두 가지 문제를 포함합니다. 첫째 중국의 고대 문화가 어떠한 문화적 자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둘 째 중국의 고대 문화와 서구의 충격을 계기로 하는 현대화 경험은 오늘날의 세계에 어떠한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 유가와 불교를 기초로 하는 줄곧 서구의 충격이라는 도전에 응전해 왔고, 또한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도 한 동아시아가 오늘날 세계에 무엇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p554)

이것에 대한 답은 각자의 나라에서 자신의 시대적 위치와 문화적 위치를 인식하고 해야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 역시 코리아니티에 대한 질문과 답변에 연관될 것 같다.

3) 이 책은 숨막히게 진지하다.
이 책은 숨막히게 진지하게 쓰여졌다. 모든 장이 무겁다. 이 책을 음식에 비유한다면 이 책은 훌훌 떠먹고 후르륵 마시는 음식이 아니다. 한번에 한입씩 꼭꼭 씹어서 맛을 음미해야 하는 음식이다. 중간쯤 가다가 읽기가 쉬워지길 바랬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다.
그래도 몇 개의 덩어리로 나누어서 읽고 정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구분을 해본다. 미학를 모르는 독자의 입장에서 장을 아래와 같이 구성해 본다. 이것은 정리하기 책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서 구분한 것이다.
1바탕 - 1장 문화이론
2총체적 비교 - 2장
3중서 미학의 차이(미의 내용) - 3장 화해, 4장 비극, 5장 숭고, 6장 부조리와 소요
4중서 미학의 차이(예술의 형식과 내용) - 7장 문과 그 심화, 8장 전형과 의경
5창작론- 9장 창작론, 10장 영감, 11장 미적주체
6감상 - 12장 감상방식

1장 문화정신은 저자가 서술하고자 하는 것의 기본바탕을 이룬다. 1장은 다른 장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주기만 각장은 1장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각장은 유기적으로 다음 장을 시작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여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그리고 특히 서구파트를 설명할 때 각 장들은 그 사슬처럼 연결된 것 외에 사상이 정립되는 순서에 의해, 즉 역사적 필요 의해 하나씩 등장한 미학 이론들 설명하면서 시대순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미학이론에서 등장하는 주요 이슈들을 쭉 훑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12장의 ‘발산’ ‘초월’이 감상과 잘 연결되지 않아 무엇을 의미하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작품과 감상자의 양방향성 초월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설명이 부족하다.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데 안타깝다.

4) 대단히 논리정연하다.
저자가 대단히 논리적이라고 감탄한 부분은 p.42~44 우주모델을 들어서 인식론을 설명하는 대목인데, (1)단계에서 (6)단계까지 이어갈 때, 저자를 따라가다가 어느새 마쳤다.
저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도 저자가 대단히 논리적으로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펼침을 느꼈다.

5) 정리를 한다.
‘중국에서는’ 미적감각에 대해서 이러이러하다, ‘서구에서는’ 미적감각에 대해서 저렇다라는 식으로 대구를 이루어 각 절의 첫머리에 운을 띄운 후에 각 장의 마무리에서는 다시 대구를 이루어 결론을 요약 정리한다. 정리는 통해서 자칫 여러 방향으로 흘러버릴 염려가 있는 것들을 계속 끌어들여서 이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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